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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사재동(史在東) 소장(所藏) 필사본(筆寫本) 한국고전소설(韓國古典小說)의 현황(現況)과 자료적(資料的) 가치(價値)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14 국학연구론총 Vol.0 No.14

        이 논문에서는 사재동 소장 필사본 소설의 전통적 지역성과 그 유통범위를 추적하였다.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국문소설이 필사·유전된 이래, 면면한 전통을 이어 대전·충남 중심의 기호지방에서 생성·정착됨으로써, 그 시대를 통관하고 이 지역을 망라하여 각계 각층에 유통되었다. 따라서 경산문고 필사본의 유통범위가 그 분포도에 근거하고 입체적인 분포망을 따라서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경산문고의 이본적 현황과 자료적 가치를 검토하였다. 단독 이본은 400책의 22% 정도인데 그 중 「김용주전」이나 「갑진녹」·「왕조열전」·「쇼듕화역□셜」·「소강절실긔」·「셔부인젼」·「쳥암녹」·「쳥월당영화록」 등 10여개 작품들은 미발표 자료로 가치가 높다. 이들 필사본은 그 유통과정에서 강독과 강담, 강창과 가창의 방편을 타고 민간 대중에 연행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유통망을 형성하고 이끌어 옴으로써, 다른 장르와 관련하여 국문학유통사상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여 왔던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경산문고의 문화사적 위상을 파악하였다. 먼저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생성·유통의 역사적 도정에서 국문소설사 그 자체의 역할을 감당하여 왔다. 더구나 이 필사본의 여러 이본들이 위와 같은 유통의 방편으로 연행·교접하는 가운데 희곡장르나 시가장르 내지 평론장르를 생산함으로써, 당시의 국문희곡사나 국문시가사·국문평론사와 합류되었으니, 그 국문학사상의 위상이 높이 평가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다양한 기술·표현 가운데 그 시대에 상응하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음운·어휘·어법, 그리고 방언 등을 통하여 그 시대의 국어사를 정립·체계화할 수가 있고, 그 국자·국문장을 통하여 훈민정음 교습·보급의 교과서적 원전으로서 국자·국문보급사 내지 국문문장사를 계통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필수적 원전 자료가 되었다. 또한 경산문고는 그 시대의 민간·대중에 유전·보급된 국문문헌으로서 보편적인 전형성과 지역·계층적인 특이성을 다양하게 갖추었기에, 그 문헌사를 고찰·정리하는 데에 중요한 원전·자료가 된다. 겸하여 경산문고는 다양·다기한 국문필체를 구비하였기에, 그 시대 국문필체사를 체계화하는 데에더 직접적인 원전·자료가 된다. 이와 같이 경산문고는 고전소설·국문학의 연구 원전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국문소설유통사 내지 국문학유통사의 체계화에 필수되는 그 원전이라고 본다. 전국에 유전되는 모든 필사본의 이본을 총체적으로 집성해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값진 민족문화유산으로 높이 평가될 보전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유일본은 국가의 문화재로, 희귀본도 국가문화의 문화재로, 기타 필사본은 국민문화유산으로 영구 보존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five hundred fictional stories of hand-writing edition in the Sa Jae-dong collection of premodern fiction and provides an index to this collection. First of all, this study traces sources of fictional stories, which help us understand the reception and circulation of traditional fiction, and locates that most stories appearing in the collection are from Giho province. Second, this study addresses the significance of the collection as a precious cultural asset of Korean tradition. The stories have potentials to be made into various forms of media and art such as new story-telling, film, drama, animation, and also they can be used in visual media. Third, it is necessary to make this collection more available to the modern readers. Since most texts exist in a form of hand-written manuscripts, it is also important to translate these texts into modern Korean. In terms of preservation and circulation of premodern source, I suggest that we should discover and collect premodern fiction at a place and also secure a space for reading the collected works in order to make the stories readable and accessible not only for scholars but also for the younger generations.

      • 내포 가야산 불교문화의 위상

        사재동(Sa, Jae dong)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9 충청학과 충청문화 Vol.26 No.1

        가야산 불교권은 산문 성지로서 그것이 바로 금강산문이나 대전 계족산문 양산 영축산문이나 합천 가야산문과 함께 불사천지 불교적 이상세계를 이루어 왔다. 그리고 이 가야산문의 사찰들이 활발한 문화활동을 통하여 보원사를 중심으로 수승한 불교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다. 따라서 보원사는 그 가운데, 천연의 길지요 숙연의 불지 위에 장엄·광활한 보궁으로 우뚝하여, 역대의 수많은 승려들과 신도·대중이 여법한 불교생활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찬연한 불교문화를 조성·발전·전승시켰다. 그 중요하고 값진 불교문화는 먼저 불교미술 분야가 불교건축과 불교회화 불교조각과 불교공예 등으로 조성·전래되었고, 다음 불교어문 분야가 불교문헌과 불교언어, 불교문학과 불교출판 등으로 형성·유전되었다. 이어 불교활동 분야가 불교의례·재의와 불교윤리 그리고 불교법회 등으로 대두·전승되었고, 불교연행 분야가 불교음악과 불교무용, 그리고 불교연극 등으로 등장·유통되었다. 끝으로 불교풍속 분야가 불교의식주와 불교의약 불교통과의례와 불교월령 등으로 나타나 행세하였다. 이처럼 찬란하고 보배로운 이 사찰문화, 불교문화는 그 불교사와 운명을 같이하면서 이 지방 정신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보원사 중심의 가야산 산문, 그 불교문화가 백제권 내포지방의 불교 문화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파악하였다. 이 보원사의 불교문화사는 찬연하고 보배롭게 전개되었다. 이 사찰의 불교문화가 중심·주축이 되어 가야산문 성지의 불교문화가 하나의 원만한 문화권을 조성하여 권능을 발휘하는 가운데 내포지방의 불교문화가 발전 · 융성승벽 자연적인 문화세계, 행복한 정신세계를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내포지방 정신문화의 중심·주축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백제권 중요지역의 불교문화와 호응하고 거국적 불교문화와 대등하게 합류하였다. 나아가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문화와 교류·상장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불교문화는 백제시대와 신라통일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불교사와 운명을 같이하여 형성·발전·난숙·성행의 도정을 겪고는 마침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실세· 쇠망하여 땅에 떨어져 지금의 사지·문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 KCI등재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創制),실용(實用)의 불교문화학적(佛敎文化學的) 고찰(考察)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10 국학연구론총 Vol.0 No.5

        그동안 이 훈민정음은 세종의 친제에다 집현전 학사 정인지·최항·신숙주·성삼문·이개 등의 협조로 완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 훈민정음은 그 당시 조정·유교계가 중국과 제휴하여 건국의 이념과 국시의 차원에서 극구 반대·부인하던 문자였으니, 그 유신 정예학자인 집현전 학사들이 이 훈민정음의 창제에 적극 협력했다는 것은 불합리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기실 그유신 학사들은 문자로서의 ‘훈민정음’ 창제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라, 어명에 의하여 훈민정음해례본 그 책자로서의 ‘訓民正音’을 저술하고 나아가 <용비어천가>나 <동국정운> 등을 역해하는 데에 주력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 문자로서의 훈민정음은 세종이 친제하였으되, 오직천재적 군왕으로서 신화적으로 창제한 것이 아니고, 적어도 국자의 어제에 따른 정식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즉위 20년을 넘어서면서 숭불주가 된 세종이 당시 건국 이념·국시에 반해서 새로운 문자로 불경·불서를 간행·홍포하여 불교중흥과 함께 불교왕국의 재건을 갈망·고대하던 불교계에 명하여 그 훈민정음을 제진케 한 것이었다. 이에 세종은 그 창제의 총체적 책임자로서 승왕의 대망을 품었던 수양대군을 그 총괄적 주관자로, 당대 불교계를 대표하는 학승 신미·수미·설준·홍준·효운·지해·해초·사지·학열·학조·김수온 등을 전문적 실무자로 위촉하여 극비리에 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실험·확정·공표했던 것이다. 이어 조정·유신과 중국측의 반대·위협에 직면한 세종은 한자음 개신과 운서 간행이나 <용비어천가> 제작 등의 명분으로 이를 극복하고 왕권으로 조정·유교계와 왕실·불교계에 그 활용을 적극 권장·강요하게 되었다. 이에 왕실·불교계에서는 그 창제 즉시로부터 훈민정음을 불교문자로 수용하여 15세기 말까지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월인석보>는 물론, 간경도감의 수많은 불경언해를 간행하였지만, 조정·유교계에서는 훈민정음을 냉대·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유경언해나 삼강행실도언해·두시언해, 실용서언해 등을 강력히 하명 받고도 15세기 말까지는 온갖 핑게로 유보·연기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 훈민정음은 그 창제·실용과정에서 적어도 15세기 말까지 조정·유교계의 장벽과 박해 아래, 불교중흥과 불교문화 발전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여 왔다고 보아진다. King Sejong nominated Prince SooYang in director in charge of the invention of Korean alphabet (hunmin chongum) and also appointed Sinmi, Sumi, Soljun, Hongjun, Hyoun, Jihae, Haech’o, Saji, Hagyol, Hakcho, Kim Suon as the chief executors to invent and promulgate the Korean alphabet. Although the invention of the Korean alphabet faced oppositions by court officials and the Chinese, King Sejong, while composing Yongbi och``onga (Songs of Flying Dragon), strongly encouraged the spread of the Korean alphabet. The royal families and the Korean Buddhist society played a major role in adopting this writing system. Until the end of 15th century, a number of Buddhist scriptures had been translated into vernacular Korean, including Worin ch’ongang chigok (Songsof the Moon``s Reflection on a Thousand Rivers) Sokpo sangjol (A Detailed Biography of the Buddha Sakyamuni), Worin sokpo (The combined edition of Worinch’ongang chigok and Sokpo sangjol) from Kangyong togam (Publishing Bureau of Buddhist texts). However, the court officials and Confucian literati continued to disregard the legitimacy of the Korean alphabet, even though they participated in publishing many works in Korean such as Samgang haengsilto onhae (Korean translation of The Three Principles of. Basic Human Relationships) Tusi onhae (Korean translation of Du Fu’s poems), Silyongso onhae (Korean translation of practical books), and etc. Despite the hostile criticism from the court and Confucian scholars, Korean alphabet had been widespread and acknowledged as effective writing system. By late 15th century, those who most benefited from the invention of Korean alphabet were the Buddhist community who actively employed the Korean alphabet system to spread Buddhist scriptures and achieved the restoration of Buddhist culture in Korea.

      • 충암의 불교생활과 문학세계

        사재동(Sa, Jae-Dong)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20 충청문화연구 Vol.23 No.-

        이 충암 김정은 일찍부터 법천사나 청량사를 비롯하여 한산사·청룡사·유점사·장안사·표훈사 등 여러 사찰을 찾아 유거하면서 공부·수행하기를 출가자처럼 거듭하였고, 인연 따라 지열상인을 비롯하여 성인·설청·자혜·행분·각해·진기·수간 등 40명을 헤아리는 많은 승려들과 교유하여 불법을 논의하고 시문을 주고 받는 법연이 돈독하였다. 그리하여 충암은 외유 내불의 천재적 지성으로서 그 화엄의 이치를 실증하고, 선정의 경지를 체달하며, 법연에 따라 교학·선지를 익히는 가운데, 하화중생의 불교적 염원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충암이 그만한 불교사상과 신앙·정서를 갖추었기에, 그 문학 작품, 시문의 상당 부분이 불교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먼저 그 화엄 세계적 작품으로 〈題叢石亭〉과 〈釋守侃字葆和說〉·〈登高丘賦〉 등 10여편의 고원·미려한 명품이 있고, 그 선정 경지적 작품으로 〈次昌世蓮庵口號韻〉과 〈十一箴〉·〈忽忽〉 등 20여편 정도의 청정·진솔한 가작이 있다. 그리고 법연 공감적 작품으로 〈贈玉曦〉와 〈贈志悅上人序〉·〈贈寒山僧〉 등 35편의 명작이 있고, 교화 방편적 작품으로는 〈都近川水精寺重修記〉와 〈濟州風土錄〉 등의 고매·이념적 명문이 있었던 것이다. 이 충암의 문학작품 전체는 그 장르적 성향을 보였으니, 먼저 그 시가의 하위 장르로는 5·7언 절구에 〈鎭川道中〉과 〈懷古〉·〈感興〉 등 287수의 명편이 있고, 5·7언 율시에 〈牧丹〉과 〈次友人韻〉·〈秋涼〉 등 217수의 가집이 남았으며, 고시에 〈西瓜〉와 〈次友人韻〉·〈感懷〉 등 63수의 수작이 행세하였다. 그리고 사(詞)에 〈題高相荊山畵屛〉과 〈四時詞〉·〈鴛鴦詞〉 등 가작이 있고, 가(歌)에 〈賡南薰歌〉와 〈迎新使歌謠〉·〈三山歌〉 등 명편이 남았으며, 사(辭)에 〈浴沂辭〉와 〈臨絶辭〉 등 절품이 있는 데다, 부(賦)에 〈登高丘賦〉가 명품으로 유전하였다. 한편 산문, 수필 장르로는 교령에 〈諭慶尙道觀察使金安國敎〉가 응제되었고, 주의에 〈請復故妃愼氏疏〉와 〈辭成均館事及副提學疏〉·〈請歸養疏〉·〈獄中疏〉 등이 엄연하며, 논설에 〈女媧氏鍊石補天辨〉과 〈擬廉頗謝藺相如書〉·〈釋守侃字葆和說〉·〈濟州風土錄〉 등 명문이 남았다. 이어 잠명에 〈十一箴〉과 〈段秀實擊朱泚笏銘〉·〈無絃琴銘〉 등 명품이 있고, 서발에 〈贈玉曦序〉와 〈贈志悅上人序〉·〈十一箴序〉 등 14편의 가작이 남았으며, 비지에 〈順天府使金公鏵墓碣銘〉과 〈軍器寺判官兪公汝諧墓碣銘〉 등 명편이 행세하였다. 또한 애제에 〈製進獻陵親幸祭文〉와 〈祭延昌府院君金勘文〉·〈黃龍祈雨祭文〉 등 16편의 명품이 있고, 서간에 〈答對馬島主書契〉와 〈奉復安求禮書〉·〈奉復安順之處順書〉 등 6편의 명문이 전하며, 잡기에 〈叢石亭重修記〉와 〈都近川水精寺重修記〉 등 수작이 전래되었다. 이와 같이 당대 유불회통의 천재적 지성, 충암이 불교사상에 입각하여 상당한 시문을 제작하고, 시가와 수필, 각개 하위 장르를 통하여 풍성한 명품·가작을 산출한 것은 실로 값지고 높이 평가할 일이다. 일찍이 충암의 시문은 성당의 시격과 서한의 정심한 문체를 터득하였다고 정평이 났다. 그래서 허균은 그의 저술애서 ‘충암이 명나라 10대 문장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고, 그 쟁쟁함이 천고에 빛났다.’고 평하였던 것이다.

      • KCI등재
      • 佛敎齋儀軌範의 公演樣相과 文學的 展開

        史在東(Sa, jae-dong)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5 충청문화연구 Vol.15 No.-

        Throughout the paper, I have discussed about the performing processes and literature developments of Buddhist Ritual Dance patterns from the perspective of theater theory, play theory. The followings are summarized. The first, I reviewed the details of Buddist ritual dance patterns and their distributions. They were performed in Buddhist temples by words of mouths and books the day or later nationally. The second, I reviewed the types of Buddist ritual dance patterns. Their types are scripts of ritual performing having the literary values and the play values. The third I traced the play developments. Their procedures are "Beginning-Predicted describing-Event-Increasing- Peak- Decreasing- End" The beginning is a prelude, the describing and event is Act1, the increasing is Act2, the peak is Act3, the decreasing is Act4, the end is Act5, those procedures are correspond to the play. The forth, Buddhist ritual dance patterns are studied literature facts and genre developments. These works meet the demand of literature genre system. The fifth, the statues of Buddhist culture are checked. The patterns of them had been displayed for the propagating and the revival of Buddhism. Specially, they stood high in Ghoseon Dynasty Buddhism A hitherto, I have discussed about the performing processes and literature developments of Buddhist Ritual Dance patterns but still the lack for the values themselves. In fact, these patterns the treasures in performings, plays, and literatures.

      • KCI등재

        미륵사지(彌勒寺址) 문물(文物)의 예술사적(藝術史的) 고찰(考察)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09 국학연구론총 Vol.0 No.3

        첫째, 미륵사지 문물의 조성연대에 대하여 재검토하였다. 그동안의 무왕창건설을 극복하고 그 무령왕창건설을 재강조하되, 『삼국유사』 <무왕>조의 기사가 그 주기의 고본대로 무강왕 즉무령왕의 기사라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여기서 무령왕대의 국력이나 경제력, 그 당시 백제불교문화사의 흐름과 왕·왕후의 신심·원력, 미륵사지 문물의 시대적 특징, 최근에 발굴된 사리장엄구·사리봉안기의 내용, 그 왕의 국혼담과 즉위과정 등을 상고하여 그 왕은 무왕이기보다는 무령왕임을 보완·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 사리봉안기에 보이는 ‘己亥年’이 바로 무령왕19년 519년임을 밝히면서 그 무령왕창건설을 재정립하였다. 둘째, 이 미륵사지 문물의 미술사적 위상을 거론하였다. 이문물의 건축·회화·조각·공예에 걸친 수많은 작품들은 각기그 양식과 가치의 실상이 무령왕대에 부합되고, 각기 백제사찰건축사·회화사·조각사·공예사를 이끌어서, 무령왕대로부터 조선전기 내지 현재까지 장구한 세월에 걸친 백제미술사와 한국미술사 상의 위상을 추적하였다. 셋째, 이 미륵사지 문물의 문학사적 위상을 고구하였다. 이문물에 얽힌 문학작품들이 시가·수필·소설·희곡 장르에 걸쳐 계통적으로 전개되고, 다시 백제문학사·신라통일기문학사·고려기문학사·조선전기문학사를 이룩하여, 그 사찰이 창건·유지되던 장구한 세월의 백제문학사 내지 한국문학사 상의 위상을 파악하였다. 넷째, 이 미륵사지 문물의 공연예술사적 위상을 고찰하였다. 이 문물을 통하여 연행된 공연예술이 음악·무용·연기의 요건을 갖추고, 그 공연현장이 제의공연과 경찬공연, 행사공연으로 나누어지면서, 그 장르가 가무극·가창극·강창극·대화극·잡합극으로 전개되어, 미륵사의 역사와 함께 한 백제공연예술사내지 한국공연예술사 상의 위상을 어림해 보았다. 이로써 미륵사지 문물은 생동하던 미륵사의 문물로 재구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륵사 문물의 예술사적 위상이 그 현장 터전 위에 복원·정립된 것이었다. 이 밖에도 미륵사의 문물은 백제불교언어사·문헌사·신앙사·의례사·사상사·교육사·종통사·의약사·생활사·민속사 등 백제불교문화사를 재구해 내는 기반·전거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미륵사지 문물은 그 사리봉안기의 증언에 따라 무왕대보다 120년을 소급하여 백제문화사·한국문화사를 새롭게 써야 할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 미륵사가 창건되어 유지된 기간이 무려 1000여 년이요, 폐사된 지도 500여 년이나 되니, 그 기나긴 세월 백제·한국의 불교문화사와 한국문화사를 지켜 온 그 문물이 너무도 거룩하고 영광스럽기만 하다. 지금은 비록 폐사의 운명으로 그 문물이 모두 파괴·유실되어 초라한 유물·유적으로 남았을 뿐이지만, 그 실물의 실상은 몰라도 그 문화사적 위상은 영원하고 찬연하게 빛날 것이다. 이 미륵사지 문물 내지 미륵사의 문물은 실로민족문화의 정화요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그 사지의 일체 문물은 모두가 너무도 값진 보물이니, 바야흐로 길이 보전하고 깊이 연구·선양할 때가 왔다. This paper examines the establishing period of artifacts and temple of Bodhisattva Maitreya(Miruksaji). It aims to avoid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of King Mu’s in relation to the temple and to emphasize that the artifacts of Maitreya shows a closer relationship with king Muryong, who must have made a contribution to founding the temple. This study reveals that the date of temple establishment, inscribed on a relic of the Buddha’s bone, indicates the 19th year of king Muryong’s reign in 519. First, I considered the architecture, paintings, sculpture, and craft works to reveal the artistic aspect of the temple and its significance in Korean art history. Second, this study explore how the Temple of Bodhisattva Maitreya occupies an important standing in Korean literary tradition in terms of lyrics, essays, fiction, and plays dealing with the temple. Third, I also examine the role of temple in respect with performing art by identifying the performance condition, performing site, and the genre. Conclusively, the artifacts and temple of Bodhisattva Maitreya not only manifest the spirit of Korean culture but also become world-class cultural asset. Further studies in the future and preservation of the temple are expected to follow.

      • KCI등재

        찬경(纂經)≪동국정운(東國正韻)≫의 편위(編緯)와 활용양상(活用樣相)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14 국학연구론총 Vol.0 No.13

        ≪東國正韻≫에 대한 몇 가지 미흡한 문제를 재검토하려는 것이다. 첫째 이 운서 편찬의 주체를 최고 책임자, 총괄적 주관 자, 그리고 전문적 실무자로 나누어 검토하되, 거기에 불교계의 전문가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추적하여 보았다. 둘째 이 운서편찬의 동기·목적이 훈민정음 창제·실용과 직결되어 내외적인 양면성과 함께 불교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음을 규명해 보았다. 셋째 이 운서 편찬의 실제적 과정이 훈민정음의 그것과 맞물려 일련의 불교적 어문사업으로 진행되었음을 검토하여 보았다. 넷째, 이 운서가 편간 전후에 활용된 양상을 조정·유교계와 왕실·불교계의 문헌을 통하여 실증하여 보았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a reviewal for some faults on the <Donggukjeongeum>. First, I divided a main agent a compilation to a chief officer and a supervisor of the overall and the staff of the specialty. And I traced to possibility of a intervention of a specialist into Buddhism. Second, I investigated and reveal the truth of the double-sidedness for a motive and a purpose of the <Donggukjeongeum> is directly connected to a invention and a practical of the <Hunminjeongeum>, so it disclose its Buddihism tendency. Third, I inguired that a process of a <Donggukjeongeum>`s compliation mesh nicely to a process of a <Hunminjeongeum> and it is made stead process. Forth, I made an appearance of a practical use in context of its compilation and sticked from a document in a Royal Court and a Cunfuciaism and a Royal family and a plan to a Buddihism.

      • KCI등재

        《월인석보》권25 소재 「아육왕전」의 문학적(文學的) 연구(硏究)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08 국학연구론총 Vol.0 No.2

        이 <아육왕전>은 《석보상절》제24와 《월인석보》권25에 실려 최근에 발견된 국문 서사문학이다. 이 작품은 인도의 문화사나 불교사상에서 워낙 저명한 ‘아쇼카왕’ 즉 아육왕의 전기를 바탕으로, 유구한 전승과 분명한 계통을 거쳐, 불교계 문사에 의하여 형성·전개되었다. 이 작품은 그 자체가 불교계의 전기나 서사문학 내지 예술적 대본의 실상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을 문학론에 입각하여 여러 모로 고찰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15세기 한국문학·국문문화의 정화인《석보상절》·《월인석보》의 말권에 실림으로써, 그 형성 경위와 역사적 좌표가 확인되었다. 이 작품은 《월인석보》에 이르러 월인곡의 운문과 상절부의 산문, 협주 세문이 조화롭게 교직되어 장편의 입체적인 종합문학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작품을 장르론에 따라 분석·고찰하니, 여기서는 국문장편소설과 함께 국문장편희곡, 그리고 분화된 월인곡과 삽입가요를 망라한 국문시가, 협주 세문으로 된 국문수필이 분리·성립되어 나왔다. 게다가 이 작풍의 장르들은 또한 불교계의 연행예술에 의하여 공연될 운명을 스스로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15세기 국문문학, 국문시가·국문수필·국문소설·국문희곡의 주심부를 이루어, 그 전범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불교계와 왕실의 주도하에 간행된 위 두 문헌을 통하여 널리 유통·전파됨으로써, 후대의 국문문학사 - 한국문학사 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은 불교계 공연예술사 - 한국공연예술사 상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The biography of King Ashoka (아육왕전)(304 BCE - 232 BCE), recently discovered in Korea, is a vernacular literature. It is found in both Sokposangjol(서보상절) (Detailed Contents of the Life History of Sakyamuni), volume. 24 and Worinsokpo(월인석보) (The Moon’s Reflection on the Life of Sakyamuni), volume. 25. It deals with the biographical record of King Ashoka, who as one of India’s greatest emperors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Indian culture as well as Buddhist philosophy. It is written by an anonymous Buddhist scholar-writer, taken a form of Buddhist hagiography. However, the significance can be also derived from its value as literary narrative and artistic drama. In this article, I attempt to analyze the text of the biography from a literary perspective. This biography is compiled in the last chapter of Sokpo sangjol and Worinsokpo in the 15th century Korea. In particular, the biography in Worinsokpo is characterized by the interwoven of verses, narratives, and supplementary commentaries I nbetween . Interms of genre, this biography contain savariety of sub-genres in cluding vernacular Korean fiction, plays, poem-songs, and essays of commentaries. Also, it appears to have been performed in Buddhist rituals and traditional performin garts in Korea. The biography of King Ashoka embodies a prototype of the 15thcentury Korean literature : poem-songs, miscellany writings, fiction, and drama. It was constructed and circulated in Buddhist society and royal families but spread to a wider range of audience, and it serves to inspire the following generation of vernacular literature This study reveals that this biography had a great impact on the development of Buddhist-Korean performing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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