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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지방염과 흉막비후를 동반한 경화성 장간막염

        박경하(Kyoung Ha Park),장현규(Hyun Kyu Chang),최선영(Sun Young Choi),한명식(Myoung Sik Han),최윤백(Youn Baik Choi),김남현(Nam Hyeon Kim),정행섭(Haing Sub R . Chung),허환(Hwan Herr) 대한내과학회 1999 대한내과학회지 Vol.57 No.1

        Sclerosinng mesenteritis is a rare disease that occurs most often among middle aged man. Fewer than 200 cases have been reported in the literature. It is a benign mesenteric lesion characterized by fat necrosis, fibrosis and chronic inflammation. The pathogenesis of this disease is unclear through an autoimmune origin has been proposed. The disease is generally localized and self- limiting. Fatal case is rare but has been reported. In patients with biopsy proven sclerosing mesenteritis having a relentless downhill course, treatment with prednisolone and oral cyclophosphamide in isolated case report has lead to evident clinical and radiological responses. This is a report of a case of sclerosing mesenteritis, who presented to us with history of colicky abdominal pain and weight loss. She was treated with prednisone and intravenous cyclophosphamide pulse therapy and resulted in radiological and clinical improvement. Interestingly this case has associated with skin panniculitis and pleural thickening. The skin panniculitis also showed good response to prednisolone. Our case is the first in which sclerosing mesenteritis was associated with pleural thickening.

      • KCI등재

        1920년대 한 朝鮮 靑年의 求職 및 日常生活에 대한 일고찰

        박경하(Kyoung Ha Park) 한국역사민속학회 2009 역사민속학 Vol.- No.31

        이 논문에서는 1920년대 임실에 거주하였던 진판옥의 10대, 20대의 삶을 『진판옥일기』를 통해 학교생활 경제생활 여가활동 그리고 구직 및 면서기 생활로 재구성하여 살펴보았다. 진판옥은 1918년에는 보통학교를 다녔고, 1921년에는 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교사를 희망하여 사범학교 등의 진학을 꿈꾸나 실패하고, 가출하여 서울에 올라오지만 냉혹한 현실에 절망하여 한강철교에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1923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진학 및 취업을 하려고 하나, 조선인에 대한 차별에 엿장사, 우유배달, 신문배달, 건설현장 막노동 등을 전전하다가 9월1일 관동대지진으로 일본 경찰에 구류되어 10월에 강제 송환된다. 귀국하여 고향에서 부친과 함께 농사일을 하나, 소작료를 납부하고 나면 생활비가 없어 하루에 두끼도 겨우 먹는 경제 환경 속에서 부친의 强勸으로 1925년 초부터 내키지 않는 면서기 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1년 반 만에 그만 두었다. 그 후 1928년에는 다시 면서기로 취업하였으나 남에게 빚을 지어야 할 정도로 여전히 경제생활은 어려우나, 1920년대 초반 小作을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自作農이 되었고, 비교적 안정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1928년의 면서기 생활을 통해서 일제통치의 對民 前哨 행정단위인 面에서의 직무를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일기의 내용이 기존에 연구된 일제의 식민 지방통치정책과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일기를 통해 1920대 조선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꿈을 꾸지만, 어쩔 수 없는 가난 속에서 자기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는 것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 진판옥의 1930년대와 40년대의 삶은 稿를 달리하여 추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The study reconstructs Jin, Panok"s school activities, economic activities, leisure activities, job search, and life as a township official (Myeonseogi) through Jinpanokilgi(Jin, Panok"s diary), which represents Jin, panok"s 10s and 20s who lived in Imsil, Jeollabuk-do in the 1920s. Jin, panok attended Botonghakgyo (Elementary School) in 1918, but failed to attend normal school after graduating Godeung Botonghakgyo (High School) in 1921. He ran away from home and went to Seoul, but, facing grim reality, he thought of suicide on railroad bridge of Han river. In 1923, he tried to receive higher education and secure employment in Japan. But he was discriminated against for being Koreans, and made a living only by becoming a wheat-gluten seller, milk delivery person, newspaper delivery person, and physical laborer in construction sites. He was kept in custody by Japanese police after the great Kwandong Earthquake on September 1, and faced a compulsory repatriation in October. Returning home, he started farming with his father, which did not provide enough living expenses after paying farm rent and taking two rare meals a day in a harsh economic environment. As his father"s forceful encouragement, he unwillingly started a job as a Myeonseogi (official of township office) in early 1925, but left it after a year and a half. He was re-employed as a Myeonseogi in 1928, but his economic life was still difficult and accumulated debts. In the early 1920s, he became a landed farmer, ending a life as a tenant farmer, and this made a relatively stable homely life. I looked into administrative duties in Myeon (township), the lowest administrative unit under Japanese rule through the life of Myeonseogi (official of township office) in 1928. Here the contents of the diary could identify with previous studied results concerning local rule policie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diary shows vividly that although the youth of the 1920 in Joseon dreamed of a better life for their future, they did not accomplish their dreams in poverty and instead experienced conflicts and frustration. I intend to compare and analyze Jin, panok"s life in 1930s and 40s in a different study.

      • KCI등재

        귀화인 金忠善(沙也可)의 생애와 역사문화콘텐츠로의 재현 사례

        박경하(Kyoung-Ha Park) 중앙대학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2015 다문화콘텐츠연구 Vol.0 No.19

        金忠善(沙也可)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선봉장으로 참전하였으나 곧 투항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김해 김씨 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가훈?향약 등을 마련하여 향리교화에 힘썼으며, 『모하당문집』을 남겼다. 조선에 투항한 金忠善(沙也可)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충신이자 영웅이었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배신자, 매국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慕夏堂文集』(1915)이 조선연구회에서 간행되었을 당시에도 일본학자들은 이와 같은 매국노가 동포 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감의 극이라고 할 만큼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김충선(사가야)의 일본에서의 기록이 불명확한 점을 들어 한국에서 조작해 낸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일본의 문호로 추앙받는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기행문이 출간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김충선의 생애는 역사문화콘텐츠로 재현되어 일본과 한국에서 김충선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들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일본과 한국의 방송에서도 김충선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일 양국의 교과서에도 김충선이 소개되었으며, 심지어 만화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 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녹동서원과 한일우호관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사야가는 일본인으로 태어나 22년을 살았으며, 김충선이 되어 제2의 조국인 조선을 위하여 50년을 살다가 1642년 72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해마다 수만 명의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을 찾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는 사야카 연구단체가 설립되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400여 년 만에 평화주의자로 부활하고 있다. 결국 金忠善(沙也可)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조선도 일본도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의 가치를 파괴하는 침략자들이었다. 그는 오늘날 시공을 초월해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씻고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관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 KCI등재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커피소비유형에 관한 연구 - 커피애호가들의 커피소비유형을 중심으로 -

        박경하 ( Park Kyoung-ha ),이지수 ( Lee Ji-soo ),방한나 ( Bang Han-na )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2012 한국디자인포럼 Vol.34 No.-

        요즘 현대인들은 개인의 취향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짐으로써 기호품에 대한 니즈가 더욱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다. 커피 소비를 살펴보아도 과거에는 단순히 인스턴트 커피로 만족하였으나 근래에는 커피전문점을 통한 원두커피가 커피시장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음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커피메이커도 가정에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최근에는 가정에서도 손쉽게 커피전문점 수준의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고안된 캡슐커피가 도입되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커피 소비자도 과거처럼, 커피를 수동적으로 음용하지 않으며, 커피에 대한 지식도 전문화되어 자신의 취향, 상황 등을 고려하여 제품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날로 변화하고 세분화되고 있는 기호품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커피 같은 기호품은 더욱 더 그러하다. 본 연구는 커피의 종류에 따른 소비자의 성향분석 및 세분화를 통해 향후 커피 산업 마케팅에 있어서의 발전 방향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또한 최근 등장한 캡슐커피에 대한 소비증가와 트랜드화가 커피 소비문화의 고급화 현상을 반영하는데 이에 따른 소비자의 인사이트를 분석하여 향후 마케팅 활성과 시장 대처방안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In modern days, people increasingly pursue their own tastes, with more subdivided and specialized needs for favorite food. Considering consumption of coffee, it shows that people fully satisfied with instant coffee in the past, more often visit specialized coffee shops to enjoy brewed coffee. It has consequently brought a drastic change in the coffee market. More houses have personal coffee makers, which offer the most suitable method to gratify personal taste. Recently, capsule coffee products have been newly introduced and rapidly become popular. With the products, consumers can relish high-quality coffee at home as if they had at a professional coffee shop. Coffee consumers do not stay just sipping the coffee served, but step forward to choose what they want as per their tastes and situations with their expertise on coffee. However, there are few studies on favorite food, which are getting diversified and itemized day by day. Studies on coffee, in particular, should categorize consumers in more details according to their motives and propensity to consume. Thus, this study aims t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coffee marketing industry through analyzing their propensity in detail. It will also conduct surveys to investigate consumers` insights with regard to changes of coffee culture and sophisticated taste along with growing consumption of capsule coffee products and current trends. The results will yield new ideas for future directions to revitalize marketing and how to cope with ever-changing markets.

      • KCI등재후보

        인본적 신산업기술정책의 방향과 과제

        박경하(PARK Kyoung-Ha),이석희(LEE Suk-Hee),최영훈(CHOI Young-Hoon) 인문콘텐츠학회 2006 인문콘텐츠 Vol.0 No.7

        이 논문은 신산업기술정책의 인본주의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인본주의를 산업기술정책의 내용과 과정의 관점에서 언급하였다. 내용적 인본성은 인본적 결과지향과 인본적 프로그램 지향으로 구분하였고, 과정적 인본성은 인본적 참여범위, 인본적 참여단계, 절차적 인본성 등으로 구분하였다. 우리나라 신산업기술정책의 문제점들을 예시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이론적 실용적 정책대안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인본적 가치지향과 정책과제 등은 신산업기술정책의 방향, 신산업기술개발, 창의적 인적자원개발, 명품화 및 마켓팅 등의 측면에서 논의하였다.

      • KCI등재

        19世紀 咸鏡道 安邊의 鄕廳ㆍ作廳 職任과 人事慣行

        박경하(Park, Kyoung ha) 한국역사민속학회 2014 역사민속학 Vol.0 No.44

        이 연구에서 19세기 함경도 안변도호부의 부사 휘하 행정조직으로서 사족들이 참여하는 향청과 향리들의 작청조직의 직임과 인사관행을 분석하였다. 안변도호부의 新出 ‘鄕廳ㆍ作廳 職任 名案’ 문서를 통해 향청과 작청의 직임과 구성원의 역할, 인사관행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특히 실질적으로 이 연구에서 향청과 작청의 40개의 직임과 1848년부터 1853년 6년 동안 330여 명에 달하는 직임의 명단을 가지고 족보와 대조를 통해 개개인의 신분 및 가문을 추적하였다. 이들 성씨의 大同譜 派譜 등을 무작위로 일일이 그 본관과 성명을 대조하여 그 중 19명의 가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안변도호부의 향청 작청의 직임과 직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지방행정 조직으로는 사족의 향청과 일반 행정 집행기관으로서의 作廳과 軍事 討捕 등의 업무로서의 將廳이 존재하는데, 안변에서는 장청의 기능을 향청의 감관과 작청의 호장이 분담하여 지휘하였다. 호장이 장청의 기능을 지휘함으로써 그 역할이 타 지역에 비해 높았다. 안변은 호장 이방 천총 중심의 운영으로 보여진다. 租稅수입을 보관하는 各倉은 일반적으로 향청 임원인 座首 鄕所가 겸임하여 관리하는데 비해, 안변에서는 좌수 향소 이외에도 호장 이방 부이방 등이 겸직을 하기도 하고 역임 전후 겸임없이 各倉 監色을 단독으로 맡고 있다. 향청 작청 인사는 1周年 교체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連任이 많으며, 隔年으로 맡거나, 다음 해에는 타 직임으로 轉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6년 동안 330여 명의 직임을 171명이 맡은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족보에서 찾은 19명을 중심으로 보면, 각 직임에 취임하는 나이는 좌수는 5-60대, 향소는 3-40대, 호장 육방들은 비교적 4-50대에, 각창의 색리들은 4-50대이고, 수통인은 20대에 직임을 맡는 것으로 파악된다. 軍事 討捕 등의 경찰 업무는 비교적 전문직으로서 자체 순환하여 맡고 있었다. 통상 常賤이 맡는 각 창의 색리는 監과 色으로 복수로 구성하여, 향청의 향소나 작청의 호장 六房吏가 겸임하기도 하고 단독으로 맡기도 하여 신분에 구애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인사운영의 전반적 특징은 향청 임원은 倉監을 겸임하기도 하지만 향청내에서만 순환하였다. 반면 작청의 상급 향리인 호장과 이방 직임은 서로 순환하여 맡을 수 있지만 특정 가문이라기보다는 申ㆍ李ㆍ朴 3개 성씨만이 맡고 있다. 다른 향리들은 상하 구분없이 各色과 各倉의 監과 色을 겸임 또는 순환하여 맡고 있다. 경상ㆍ호남지역과 달리 향청이나 향리 직임을 몇몇 가문이 世傳하지 않고, 여러 성씨들이 직임을 돌려 가면서 직역을 분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 KCI등재

        개신교 교회의 교육선교 계승을 위한 교회주도형 대안교육의 방안 및 타당성 연구

        박경하(Kyoung-Ha Park) 한국기독교교육정보학회 2015 기독교교육정보 Vol.0 No.47

        본 연구는 한국 개신교 교회가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룩한 교육선교라는 사명을 효율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타당성을 탐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타당성을 탐색하기 위하여 개신교 전래 초기 선교사들이 이룩한 교육선교의 역사를 고찰하고, 한국 공교육 현장에서의 종교자유논쟁과 이로 인한 교육선교의 한계상황을 토대로 한국 개신교 교회가 교육선교 계승이라는 사명을 어떻게 수행하고 계승할 수 있는지 에 관한 대안적 교육 방안을 모색해보았다. 현재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수행되고 있는 대안교육의 형태는 크게 세 부류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전일제 대안학교, 둘째, 주말형 대안학교, 셋째, 방과후 대안학교이다. 개 교회의 규모와 상황에 따라 운영의 유형, 주체, 방법 등이 상이하지만, 가각의 형태는 개신교 초기 선교사들이 이룩한 교육선교의 사명을 계승하는데 일익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개신교 교회는 이러한 교육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많지 않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도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고군분투하며 교육선교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의 아름다운 전통인 교육을 통한 선교, 즉 교육선교라는 대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대안적 교육의 타당성을 연구하였다.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feasibility of a way to efficiently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inherited the mission of the early protestant missionaries have achieved educational mission. In order to explore the feasibility of these examines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aries introduced the initial training missions accomplished. And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has been seeking an alternative education plan how about to perform the mission of educational missions succession in freedom of religion controversy in the field of Korea public education. Korean protestant churches are facing many difficult circumstances to deal with the mission of educational missions. Therefore, the mission of education through the beautiful tradition of protestantism, that studied the feasibility of alternative education for carrying out the Great Commission that educational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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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類書類에 나타난 향촌사회 자료의 성격

        박경하(Park, Kyoung-Ha) 한국역사민속학회 2010 역사민속학 Vol.- No.33

        조선후기 類書類를 대상으로 분석하였으나, 『林細經濟』와 『增補山林經濟』는 주로 일상생활의 삶과 생업활동의 지식 규모 및 박물지적 관심을 수록하였고, 『五洲衍文長箋散稿』, 『松南雜識』는 주로 천문 지리 인사 만물의 세계관 하에 인문과 자연물 전반에 관한 관심을 담은 박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 문헌들에서 향촌사회의 민속문화를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향촌사회의 민속은 유서류 중 주로 17세기 이수광의 『芝峯類說』과 18세기 성호 이익의 『星湖僿說』에 나타난다. 향촌에서의 상호부조하는 공동체적 생활을 권장하는 방법으로 신라시대 이래의 香徒와 향촌에서의 契를 소개하고, 이를 계속 유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수광의 기사를 이후 대부분의 유서에서 재인용하거나 보완하여 서술하였다. 향촌에서의 연장자를 우대하는 장유유서의 풍속으로는 강릉의 ‘청춘경로회’의 例를 들어 권장하고 있다. 이 역시 『지봉유석』에서의 기사 이후 유서들에서 인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 농경풍속인 서민들의 ‘세서연’을 성호가 언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연말에 ‘호미씻이’를 행했다는 내용은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향촌 풍속이 퇴폐해져 카는 폐단을 교화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類書에서는 ‘鄕飮酒禮’와 ‘鄕射禮’, ‘鄕約’의 시행 등을 쇄신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倭亂 이후 무너져가는 身分秩序를 바로잡고 향촌에서 長幼有序 등 綱常의 윤리를 확립하고, 유교적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I analyzed Ryuseoryu (Encyclopedia) of late Joseon era; Sallim gyeongje (Farm Management) and Jeungbo sallim gyeongje (Revised Farm Management) are mainly based on daily lives, scale of livelihood activities, and wide knowledge and Oju yeonmun jangjeon sango (Random Expatiation of Oju) and Songnam japji (Encyclopedic knowledge of Songnam) also contain contents of wide knowledge including overall interest in the humanities, natural objects under a view of the world of Almanac, Geography, human affairs, and all things. However, there are limits in scrutinizing the folk culture in the society of country villages through the books mentioned. The folk customs in the society of country villages mostly appear on Yi Su-gwang"s Jibongyuseol (Topical Discourses of Jibong) in 1614 and Lee Ik"s Seongbo saseol (Sengbo"s Encyclopedic Discourse) in the 18th century among Ryuseoryu (Encyclopedia). They suggested to keep them, introducing Hyangdo(香徒) since the Silla dynasty and Gye (契) within country villages as a way to encourage communal life with mutual assistance within country village. Most of the books are written by re-quoting Yi Su-gwang"s articles or describing them supplementing the historical narrative. Jangyuyuseo as a example of Cheongchun Gyeongrohoe (association for respecting elderly) of Gangneung. The custom, an article of Jibongyuseal was also cited in Ryuseoryu (Encyclopedia) ever since. Seongho mentioned ordinary people"s Seseayeon(洗鋤宴), the representative farming custom of late Joseon period. However the content having Homissisi (hoe washing day) at the end of the year in the proces should be reviewed. Most Ryuseoryu (Encyclopedia) for enlignting decadent custom within country villages suggest Hyangeumjurye (Confucian ceremony), Hyangsarye (Confucian archery ceremony), and Hyang-yak (Village compact) as the alternative reformations. This intended to restore crumbling status system, and reestablish the ethics of Gangsang (Three Bonds and Five Constant Virtues) like Jangyuyuseo (長幼有序), and consolidate Confucian order after Hideyoshi invastions of Korea (159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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