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응모하기
      확인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냉전, 민주화 이행 그리고 한국학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40년의 성과와 의의

          김원(Kim, Won)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 한국학 Vol.42 No.2

          본 연구는 1978년 개원한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과 더불어 냉전 하에서 80년대 민주화 이행 이전 시기, 민주화 이행 이후 90년대 후반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가 대학과 연구기관에 도입된 현재까지 세 시기를 중심으로 한국학연구기관으로서 의의를 평가하고, 이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제언’을 결론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1978년 정문연의 개원은 한국학 연구의 ‘제도적인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제1기에는 광범위한 국내 연구진의 결합에 기초한 한국학에 대한 학제간 연구, 사전과 분류사 등에 대한 연구, 제2기에는 한국학 기초자료의 수집과 연구 토대, 한국학의 세계화, 사료에 입각한 연구라는 한국학 연구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 물론 이는 각 시기별 정부정책, 연구기관의 특수한 문화, 운영 체계의 특수성, 조직원 간의 의사소통과 조직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다. 국민정신교육이 강조되던 시기에도, 민족문화에 기반한 백과사전 편찬, 민속, 구비 그리고 방언에 기초한 전통문화의 발견 그리고 사상사, 사회사, 자료사 대계가 전근대와 근대 시기를 망라하는 동시에, 당대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학제간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바로 한중연의 존재 의의는 현재 한국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었다. 2000년대 이후 한중연의 존재의의는 장서각 자료에 기초한 왕실문화, 고전문학 등에 대한 어학, 문학, 예술, 역사, 사상 등 학제간 연구가 제도화된 연구과제 형태로 정착됐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전근대 및 근현대 분야의 각종 사전(공구서), 국내 근현대 1차 자료에 대한 영문번역을 통한 소스북 발간, 고전자료의 현대화에 기초한 다양한 연구의 확장을 들 수 있다. 이들 흐름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제기했던 민족문화의 개념을세분화된 차원에서 확장한 연구한 동시에, 개념, 사건 그리고 자료를 중심으로한국학 개념의 원천을 탐구한 시도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국학진흥사업과 현대사연구소를 통한 근현대자료의 집성,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과 구비문학증보사업을 통한 대규모 자료의 집적은 해당 분야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2000년대 확산시켰다. 특히 근현대시기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사료라는 역사적 기반을 둔 연구들이 90년대 중반부터 현재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부각되기보다 특정한 정치적 외부 논리에 의해 연구원이 평가되어온 이유는, 정책변화, 기관장 교체 등에 의한 불안정화/대립적 조직문화의 재생산 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1978년 개원 이후 주요한 논쟁은 ‘연구’와 ‘교육’의 비중 간의 긴장이었으며, 연구원의 전망 역시 각종 연구조직, 연구소 개폐, 대학원 직제개편 등을 둘러싼 연구와 교육이란 두 가지 문제를 연결시킬 수 있는 인적, 제도적 자원을 집중해 나아가는 방향을 둘러싼 문제이다.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을 둘러싼 연구원 성격 규정, 한국학의 범위를 확정하는 문제와 학제적인 한국학 연구, 기관의 자율성 확보, 중점사업 개발의 필요성, 대학원의 특성화, 연구결과의 확산 등 『개원 20년사』에서 제기했던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10여 년의 역사를 반추한다면, 향후 연구와 교육의 기본 방향에 대한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적어도 2018년 현재 어느 정도 합의 가능한 한중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국학 연구와 교육의 연계’와 ‘일반대학이나 한국학연구소에서 하기 어려운 장기적 연구’를 통한 특성화라는 ‘총론’일 것이다. This study focused on the Cold War, the transition to democracy, the late 1990s and the three periods to date, with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evaluating the significance of the study as a research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nd then reviewing the direction to move forward. The opening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in 1978 has great significance in that it created a “institutional framework” for the study of Korean studies. In the first period, the institute built an institutional foundation for Korean studies, including interdisciplinary research based on the combination of broad researchers, dictionary and classification history studies, and the collection of historical source on Korean studies in the second period, and globalization of Korean studies. In the 1980s, the compilation of encyclopedias, the discovery of national culture, and the study of thought history, social history were also conducted. At the same time, it laid the foundation for interdisciplinary research covering all areas of Korean studies.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2000s, interdisciplinary research based on Jangseogak source has been established in the form of a research project. Secondly, various studies based on the modernization of various dictionaries and classical materials in modern and contemporary fields have been expanded. Such research was an attempt to expand the concept of national culture, while exploring the sources of Korean studies, focusing on concepts, events and source. In addition, the collection of large.scale research source through the Korean studies promotion project, oral history research project and korean studies on pre.modern period project has spread the interest of academia in the field. Despite various research achievements since the 2000s, the reason why researchers have been evaluated for certain political logic rather than for their achievements has been because of changes in policy, instability of organizations due to the replacement of heads of institutions, and the reproduction of confrontational organizational culture. Over the past 40 years, the main debate within the researchers has been tension over the importance of ‘research’ and ‘education.’ The tasks raised in the 20 years history of the opening of the institute, including stipulating the nature of researchers surrounding research functions and educational functions, establishing the scope of Korean studies, securing autonomy of institutions, the need to develop intensive projects, specialization of graduate schools and the spread of research results, are still valid. Currently, the direction of korean studies should move forward is “link between Korean studies and education” and that it is a specialization through long‒term research that is difficult to do at ordinary universities or other Institute of Korea studies.

        • KCI등재

          냉전, 민주화 이행 그리고 한국학 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40년의 성과와 의의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 한국학 Vol.42 No.2

          본 연구는 1978년 개원한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과 더불어 냉전 하에서 80년대 민주화 이행 이전 시기, 민주화 이행 이후 90년대 후반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가 대학과 연구기관에 도입된 현재까지 세 시기를 중심으로 한국학연구기관으로서 의의를 평가하고, 이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제언’을 결론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1978년 정문연의 개원은 한국학 연구의 ‘제도적인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제1기에는 광범위한 국내 연구진의 결합에 기초한 한국학에 대한 학제간 연구, 사전과 분류사 등에 대한 연구, 제2기에는 한국학 기초자료의 수집과 연구 토대, 한국학의 세계화, 사료에 입각한 연구라는 한국학 연구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 물론 이는 각 시기별 정부정책, 연구기관의 특수한 문화, 운영 체계의 특수성, 조직원 간의 의사소통과 조직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다. 국민정신교육이 강조되던 시기에도, 민족문화에 기반한 백과사전 편찬, 민속, 구비 그리고 방언에 기초한 전통문화의 발견 그리고 사상사, 사회사, 자료사 대계가 전근대와 근대 시기를 망라하는 동시에, 당대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학제간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바로 한중연의 존재 의의는 현재 한국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었다. 2000년대 이후 한중연의 존재의의는 장서각 자료에 기초한 왕실문화, 고전문학 등에 대한 어학, 문학, 예술, 역사, 사상 등 학제간 연구가 제도화된 연구과제 형태로 정착됐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전근대 및 근현대 분야의 각종 사전(공구서), 국내 근현대 1차 자료에 대한 영문번역을 통한 소스북 발간, 고전자료의 현대화에 기초한 다양한 연구의 확장을 들 수 있다. 이들 흐름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제기했던 민족문화의 개념을 세분화된 차원에서 확장한 연구한 동시에, 개념, 사건 그리고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학 개념의 원천을 탐구한 시도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국학진흥사업과 현대사연구소를 통한 근현대자료의 집성,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과 구비문학증보사업을 통한 대규모 자료의 집적은 해당 분야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2000년대 확산시켰다. 특히 근현대 시기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사료라는 역사적 기반을 둔 연구들이 90년대 중반부터 현재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부각되기보다 특정한 정치적 외부 논리에 의해 연구원이 평가되어온 이유는, 정책변화, 기관장 교체 등에 의한 불안정화/대립적 조직문화의 재생산 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1978년 개원 이후 주요한 논쟁은 ‘연구’와 ‘교육’의 비중 간의 긴장이었으며, 연구원의 전망 역시 각종 연구조직, 연구소 개폐, 대학원 직제개편 등을 둘러싼 연구와 교육이란 두 가지 문제를 연결시킬 수 있는 인적, 제도적 자원을 집중해 나아가는 방향을 둘러싼 문제이다.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을 둘러싼 연구원 성격 규정, 한국학의 범위를 확정하는 문제와 학제적인 한국학 연구, 기관의 자율성 확보, 중점사업 개발의 필요성, 대학원의 특성화, 연구결과의 확산 등 『개원 20년사』에서 제기했던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10여 년의 역사를 반추한다면, 향후 연구와 교육의 기본 방향에 대한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 This study focused on the Cold War, the transition to democracy, the late 1990s and the three periods to date, with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evaluating the significance of the study as a research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nd then reviewing the direction to move forward. The opening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in 1978 has great significance in that it created a “institutional framework” for the study of Korean studies. In the first period, the institute built an institutional foundation for Korean studies, including interdisciplinary research based on the combination of broad researchers, dictionary and classification history studies, and the collection of historical source on Korean studies in the second period, and globalization of Korean studies. In the 1980s, the compilation of encyclopedias, the discovery of national culture, and the study of thought history, social history were also conducted. At the same time, it laid the foundation for interdisciplinary research covering all areas of Korean studies.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2000s, interdisciplinary research based on Jangseogak source has been established in the form of a research project. Secondly, various studies based on the modernization of various dictionaries and classical materials in modern and contemporary fields have been expanded. Such research was an attempt to expand the concept of national culture, while exploring the sources of Korean studies, focusing on concepts, events and source. In addition, the collection of large‒scale research source through the Korean studies promotion project, oral history research project and korean studies on pre‒modern period project has spread the interest of academia in the field. Despite various research achievements since the 2000s, the reason why researchers have been evaluated for certain political logic rather than for their achievements has been because of changes in policy, instability of organizations due to the replacement of heads of institutions, and the reproduction of confrontational organizational culture. Over the past 40 years, the main debate within the researchers has been tension over the importance of ‘research’ and ‘education.’ The tasks raised in the 20 years history of the opening of the institute, including stipulating the nature of researchers surrounding research functions and educational functions, establishing the scope of Korean studies, securing autonomy of institutions, the need to develop intensive projects, specialization of graduate schools and the spread of research results, are still valid. Currently, the direction of korean studies should move forward is “link between Korean studies and education” and that it is a specialization through long‒term research that is difficult to do at ordinary universities or other Institute of Korea studies.

        • KCI등재

          해외한국학의 현지화 연구

          김진량(Kim, Jin-ryang)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 한국학 Vol.42 No.1

          이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외한국학 씨앗형사업의 성과 사례분석을 통해 해외한국학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지화 양상을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 결과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한국학 교육과 연구의 여러 양상과 성과, 전망에 관해 일관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 한국학의 의미에 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여러 시기와 관점에 따라 사용되는 한국학 개념을 살핀 다음 국학/본국학 개념은 배제할 수 있고 조선학/고려학/코리아학 등의 유사 용어 사용 또한 필요하지 않음을 보였다. 다음, 본고에서 사용하는 한국학 개념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해외한국학 개념을 재규정하였다. 여기서 해외는 단순히 장소나 연구자의 국적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고 한국학의 객체화가 본질적인 요인임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해외한국학은 한국학을 객체화(타자화)함으로써 기존 지식의 재해석과 변용이 가능하고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학문적 실천으로 재의미화 하였다. 또, 해외한국학의 다양한 양상을 기술하기 위한 개념으로 ‘현지화’를 제시하였다. 현지화는 해외한국학의 교육과 연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며 궁극적으로 각 지역의 교육제도 안에 지속가능한 학문 활동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으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현지화의 정도를 평가하는 데 있어 지속성, 다양성, 자율성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외한국학 씨앗형사업 성과 사례에 나타나는 한국학의 현지화 양상을 지속성, 다양성, 자율성 범주를 활용해 기술하였다. This research aims analysis of the achievement cases of ‘AKS SEED Project’ to describe the feature of localization which appeared on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overseas Korean studies in the world. According to the result of this study there are four conclusions in this paper. First, an agreement on the concept of ‘한국학/ Korean studies’ is necessary to have a consistent discussion on various features, results, and prospects of world wide education and research about Korea. Second, in this paper, ‘해외한국학/overseas Korean studies’ is re-defined as a new academic practice to develop new knowledge on Korea after re-interpretation and transforming of existing knowledges. Third, localization was suggested as a concept to describe the diverse feature of ‘해외한국학/overseas Korean studies’. Continuity, variety, and autonomy are three classes for description of the features of overseas Korean studies. Fourth, the feature of localization of overseas Korean studies in the result cases of ‘AKS SEED Project’ was described in the frame of the three classes above. All of these discussion aims to provide an idea for integration and evaluation of various overseas Korean studies in the world and to dedicate its development.

        • KCI등재후보

          『월인천강지곡』의 부안 실상사 소장 경위와 그 전래 과정

          안승준(Ahn, Seung-jun),유학영(Yu, Hak-young)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장서각 Vol.0 No.32

          사찰에 소장되었던 고서는 그 출처와 소장내력을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월인천강지곡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평소 사찰 문헌이 원래의 소장처와 그 전래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어왔다. 이 글에서는 『월인천강지곡』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기탁을 계기로 본 도서의 이동 경로 및 그 원인과 배경을 구명하였다. “세종대왕이 지은 歌詞 월인천강지곡이 어떻게 외진 전라도 변산반도의 실상사에 보관되어 있었는가? 실상사와 월인천강지곡, 그리고 효령대군과는 어떠한 因果가 있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에서부터 동학농민전쟁, 일제강점기, 6·25전쟁이라는 근대사 전개과정에서 월인천강지곡의 소장 경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요컨대 이 글은 월인천강지곡이란 책자가 1462~1466년 실상사 奉安된 이후 1960~1970년대까지 약 500년간 역사적 공간을 추적해 그 傳存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15세기 중엽 효령대군에 의해 부안 실상사에 월인천강지곡이 佛腹藏됨 20세기 초, 1462년과 1466년에 작성된 실상사 三尊佛 조성을 위한 普勸詞(勸善文) 2건과 실상사 중창 發願文 1건이 발굴되었다. 이 3건의 고문서를 통해 효령대군에 의해 실상사 삼존불이 조성되었고, 4년 뒤에 실상사가 중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삼존불 조상과 사찰의 重建을 계기로 월인천강지곡이 효령대군에 의해 佛腹藏되었다. 실상사에 월인천강지곡이 소장된 것은 이 절이 바로 세조의 願堂으로서 사회·경제적 위상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② 19세기 말 동학농민이 실상사 불상을 파괴하면서 월인천강지곡이 세상에 나오게 됨 1894년 동학농민들은 실상사 부처의 몸에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말을 믿고 불상을 파괴하였다. 이때 금은보화는 발견되지 않고 다수의 고서와 고문서가 불복장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때 월인천강지곡이 세상에 나왔으나 이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③ 1914년 白鶴鳴 스님이 부안 實相寺 불복장에서 월인천강지곡을 발견함 1914년 봄, 부안 來蘇寺에서 20리 거리에 있는 실상사의 법당이 퇴락하고 本尊佛도 더 이상 수리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내소사 주지였던 백학명 스님이 불상의 腹中에 봉안된 월인천강지곡 상권 1책을 발견하였다. ④ 1918년 鞠?潭 스님 인수함 1918년 10월, 국묵담(1896~1981) 스님이 내소사에서 당시의 실상사 주지 金性連스님에게서 ‘월인천강지곡 상’을 인수해 왔다. 이후 국묵담 스님의 주석처를 따라 백양사 청류암, 담양 용화사에서 보관, 관리하였다. ⑤ 1961년 光州遞信廳 陳錤洪 청장 인수함 1961년 1월 23일, 국묵담 스님이 「월인천강지곡을 陳遞信廳長님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서한과 함께 월인천강지곡을 당시 광주체신청 청장이었던 진기홍 씨에게 인계하였다. 1963년 9월 2일, 문화재청은 진기홍 씨가 소장하던 월인천강지곡을 보물 제398호로 지정하였다. ⑥ 1972년 大韓敎科書 주식회사 金光洙 사장 인수함 1972년 7월 21일, 대한교과서 주식회사(현 ㈜미래엔) 김광수 사장이 진기홍 청장으로부터 월인천강지곡을 인수하여 회사에서 收藏하였다. ⑦ 2013년 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에서 위탁 관리함 ㈜미래엔에서 월인천강지곡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寄託, 2013년 6월 26일 기탁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주)미래엔 김영진 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정길 원장 등이 참석하였고, 이때부터 장서각이 관리의 주체가 되었다. Many old books stored in temples are without reliable source of their origin and sequence of possession, including Weolincheongangjigok. The author has been interested in the origin of temple books and started a research taking the opportunity that the book is deposited in Jangseogak library,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his article traces the original place where the book was stored and the sequence of possession including background. How the book written by King Sejong was stored in the remote place of Silsangsa temple in Byeonsanbando peninsula in Jeollado province? How Silsangsa temple, the book, and Prince Hyoryeong were related? How the book was handed down through Donghak peasant revolution,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Korean war? This article tracks the historical space of the book’s existence from 1462-1466 when it was stored in Silsangsa temple to 1960-70, covering about 500 years. The findings are as follow. ① In mid 15th century, it was stored inside of a buddha statue in Silsangsa temple, Buan, by prince Hyoryeong. 2 articles 普勸詞 (勸善文) written in 1462 and 1466 encouraging donation to build triple buddha 三尊佛 in Silsangsa temple and an article 發願文 for rebuilding the temple were found in early 20th century. The three documents confirmed that the triple buddha in Silsangsa was built by prince Hyoryeong and the temple was rebuilt 4 years later. At the time the book was stored inside the buddha. Silsangsa was a prestigious temple 願堂 dedicated for the heavenly peace of King Sejo. ② In 1894 Donghak devotees destroyed the buddha to find gold and silver treasures inside the buddha believing in a rumour. Instead, old books and documents came out. However no one paid attention to the book, Weolincheongangjigok, among them. ③ In the spring of 1914, monk Hakmyeong Baek 白鶴鳴 who was in charge of Naesosa 來蘇寺 temple, about 20-ri (8km) away from Silsangsa temple, discovered volume 1 of the book inside a buddha in Silsangsa, Buan. At the time the building and buddha in Silsangsa were decayed and impossible to repair. ④ In 1918, monk Gukmukdam 鞠?潭 (1896~1981) took over the volume 1 from the chief monk 金性連 of Silsangsa at the time. Monk Gukmukdam stored and maintained the book in his residences of Cheongryuam in Baekyangsa temple and Yonghwasa temple, Damyang. ⑤ On January 23rd, 1961, monk Gukmukdam hand over the book to Gihong Jin 陳錤洪, chief officer of Gwangju Regional Communication Office 光州遞信廳, with an accompanying letter words (a letter) sending a book, Weolincheongangjigok, to chief officer Jin of Gwangju Regional Communication Office. The book possessed by Jin was designated as treasure no. 398 by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⑥ On July 21st, 1972, Gwangsu Kim 金光洙, c.e.o. of Daehangyogwaseo Korea textbook 大韓敎科書 company (later Mirae N) took over the book and stored in the company. ⑦ On June 26, 2013, Mirae N Co., Ltd. deposited the book to Jangseogak library and hold a ceremony with the presence of c.e.o. Yeongjin Kim of Mirae N. and president Jeonggil Jeong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From then on, Jangseogak maintains the book.

        • KCI등재

          해외한국학 동향 분석 및 발전요인 연구

          곽수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한국학 Vol.35 No.3

          이 글의 목적은 해외한국학의 현황 분석을 통해 한국학 발전이 성숙단계에 이른 기관을 준별하여, 이 기관들이 어떻게 한국학 발전을 이루었는가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 분석은 한국학 발전 도상에 있는 기관들의 발전을 기획하고 지원할 때 참고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2009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된 Korean Studies Abroad 와 2007년 국제교류재단에서 발간한 ??해외한국학백서??의 자료 313건을 분석하여 해외한국학의 현황 분석을 시도하였다. 특히 해외한국학 개설 대학을 ① 전공과정 설치 형태, ② 전임 교원의 수, ③ 개설 과목의 다양성을 기준으로 분류하여, 발전단계에 따라 가장 성숙된 형태의 14개 해외한국학 개설 대학을 도출한다. 또한 성숙단계 대학의 핵심적 발전요인으로 해당 국가나 지역사회의 측면에서 조성되는 외부적 요구와 그와 연결고리를 형성해가는 내부적 리더십, 그리고 한국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주목하였다. 그 실증적 사례로 UCLA와 하와이대학, SOAS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발전요인을 살펴보고, 향후 정책 추진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본다.

        • KCI등재

          체코 찰스(Charles) 대학의 한국학 운영 현황과 과제: 인문대학(Filozofická Fakulta[Faculty of Arts]) 한국학 전공을 중심으로

          황문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 한국학 Vol.43 No.2

          This paper examines the current status of Korean Studies at Charles University by focusing on the Korean Studies major in the Filozofická Fakulta [Faculty of Arts]. In some cases, it compares the differences between Korean studies and Chinese or Japanese studies. Charles University, which housed Korean Studies since the 1950s, has distinctly maintained its orientation of pursuing Korean Studies for academic purposes when compared to other universities. This article analyzing the current status of Korean studies at Charles University can be a useful resource for finding ways to promote Korean studies in Central and Eastern Europe beyond Charles University. 이 글에서는 체코 찰스대학 인문대학(Filozofická Fakulta[Faculty of Arts]) 한국학 전공을 중심으로 찰스대학의 한국학 운영 현황을 한국학 학생과 교원 현황, 한국학 강좌 현황, 한국학 관련 기타 현황 등으로 나누어 점검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학, 일본학 등과 비교하면서 상호간의 격차가 어떠한지를 파악하기도 하였다. 체코 찰스대는 이미 1950 년대부터 한국학을 운영해 왔을 뿐 아니라 타 대학과 비교할 때 ‘ 학문 목적의 한국학’에 대한 지향을 뚜렷이 유지해 왔다. 따라서 찰스대학의 한국학 운영 현황을 분석한 이 글은 찰스대학을 넘어 중유럽 내지 동유럽의 한국학 진흥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한국학의 위상학: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한국학 국제학술회의(‘한국의 전통과 변천’, 1969)를 중심으로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 한국학 Vol.44 No.1

          This study seeks to focus on the ways of early formation of Korean studies. The materials analyzed mainly consist of first international academic conference on Korean Studies hosted by the Asiatic Research Center(ARC) at Korea University, 1969. It was the first international academic conference held on the topic of “Korean studies.” The contents of the 1969 academic conference can be seen as the material that better demonstrates the ways in which the modernization theory has been applied to the examination of Korea. The participants sought to reconstruct not only Korea’s “tradition” but also “change” as well as the nation as it was at the time rather than its past per se. By examining in detail the process, it will be possible to explore the origins of problems related to the identity of academic learning that have surfaced i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Korean studies today. 이 글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The Asiatic Research Center, ARC)와 미국 사회과학연구협의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SSRC)‒미국 학술단체협의회(American Council of Learned Society, ACLS) 산하의 한국학 공동위원회(Joint Committee on Korean Studies, JCKS)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한국학(Korean Studies) 국제학술회의인 “한국의 전통과 변천”을 분석한다. 먼저 이 글은 1969년에 한국학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는 두 가지 흐름을 검토한다. 하나는 한국 내에서 국학을 세계에 전파하고 알리고자 했던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축적되는 양상이다. 이 두 가지 흐름이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학/Korean Studies에 대한 지적 관심으로 합류되는 맥락을 상세하게 검토한다. 이어 “한국의 전통과 변천”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회의자료를 분석하면서, 당대의 초창기 한국학 연구자들이 추구했던 지적인 목표를 분석한다. 먼저 초창기 한국학 연구자들은 중국학, 일본학으로부터 한국학을 ‘독립’시키고자 했다. 주로 역사학자들이 이와 같은 작업을 맡았다. 동시에 역사학자들은 한국의 ‘전통’에서 근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 자질을 탐색하려 했다. 이어 사회과학자들은 한국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인 현장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1969년 한국학 학술회의에서 등장한 여러 담론들은 한국학/Korean Studies의 형성에서 끊임없이 제기될 질문의 선구격이었다.

        • KCI등재

          현장과 전체상에 충실한 한국학을 위한 제언

          오수창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 한국학 Vol.42 No.2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view the specific problems of the field where scholars are researching Korean Studies. It would be one of various efforts to find a new path of Korean Studies. It can not be overemphasized that Korean researchers should explore the subject in the temporal and spatial context. Jeong Yag‒yong’s political thoughts are considered to have opened a new era beyond the medieval limits. But, as confirmed by two cases of Banjeong(The Restoration of the Righteous King), the realities of Joseon’s politics were more advanced than the idea of Jeong. Although the traditions of all provinces and towns are important, it seems to be more important that the studies of regional history in the late Joseon period should be conducted in the context of the construction of a unified national state. In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when we look into the place where Chunhyang and I‒doryeong first met and loved, It is revealed that the conventional explanation of Chunyang‒jeon have understood the novel in a streotyped and outdated framework. The researches of Korean Studies have placed too much importance on the words and writings of intellectuals. Scholars should make efforts to build the whole picture when they study intellectuals or a society. In order to achieve this goal, we must promote discussion and debate first of all. It is because there is a limit to the ability of every scholar. Scholars of Korean Studies are required to have basic knowledge in philosophy, history, social sciences as well as in literature and fine art. And there are more specific conditions. We need to increase the weighting of provocative agenda setting and active debates in peer reviews. It is desirable that academic conferences should be held on controversial themes. And a journal should be established that specializes in discussions and debates. 오늘날 한국학의 활로를 개척하는 방안으로 연구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를 재검토하였다. 한국학 연구자들은 연구대상을 그 시간적・공간적 현장 속에서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약용의 정치사상은 조선후기 정치사상의 신기원을 연 것으로 이해되지만, 조선왕조 개창, 반정의 현장은 그의 사상보다 더 나아가 있었다. 지방사・지역사 연구의 경우 주민공동체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당대의 현장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 문학 연구에서도 춘향이 이도령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의 통설이 춘향전을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틀 속에서 이해했음이 확인된다. 개인이든 사회든 그 특정한 일면을 돋을새김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오류를 극복하여야 한다. 특히 지식인들의 말과 글은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분에 그치므로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상을 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체상을 지향할 때 지금까지의 설명과 다른 면모가 확인될 사례로 정조와 정약용의 정치사상, 조선후기의 화이론, 조선시대 국왕의 권한 등을 들 수 있다. 한국학의 총체성은 근대 학문이 이룩한 분과학문의 전문성을 살리는 바탕 위에서 추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연구자들은 이웃 분야의 기본 식견을 공유한 위에서 토론을 활성화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학술지의 논문 심사에서 도발적 문제 제기와 논쟁에 대한 가중치를 높여야 하며, 학술대회를 논쟁 위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토론과 논쟁 중심의 학술지를 운영할 필요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학계의 토론과 논쟁을 이끌어야 중앙을 자처할 수 있다.

        • KCI등재

          학술지 『정신문화연구』 30년의 회고와 전망

          박성진(Park Sung-jin)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한국학 Vol.31 No.1

          학술지 『정신문화연구』가 1978년 10월 14일 제1호를 발간한 이래 2008년 3월 31일 현재 제110호(제31권 1호)를 발간하면서 30주년을 맞게 되었다. 이는 1978년 6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출범과 더불어 1978년 10월 ≪정신문화≫라는 원보(院報)로 출발한 『정신문화연구』가 어느덧 연구원의 대표적인 학술 소통의 장(場)이자 한국학 학계의 중견학술지로서 성장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30년간 『정신문화연구』는 총 1,325편에 이르는 한국학 분야의 각종 기획논문, 연구논문, 서평, 등의 글들을 게재해 왔다. 이중 약 34%가 기획논문, 44%가 연구논문, 서평이 13% 기타가 9% 정도를 차지했다. 특히 기획논문의 비중이 34%라는 것은 일반 학술지로서 상당한 수치이며, 이는 『정신문화연구』가 특정 학문 분야 및 주제에 관해 심화연구를 진행해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논문게재자의 소속별 지역 분포로는 수도권이 82%로 압도적이어서, 국내 학계의 수도권 집중도를 간접적이나마 보여준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학계에 불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쟁 논리와 이를 반영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등재(후보)학술지 사업은 『정신문화연구』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사업을 통해 전문 심사제도 및 체계적 발간 제도의 확립이라는 장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와 더불어 심각한 부작용도 생겼음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국내 학술지들은 물론 『정신문화연구』도 학계의 격심한 환경 변화에 제2의 도약을 이룰 계기가 절실하다고 하겠다.

        • KCI등재후보

          가전체소설 「海衣國史」의 이본 고찰

          배종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 장서각 Vol.- No.45

          Haeuiguksa (海衣國史) is a Korean anthropomorphism novel that personifies the laver. It is unique in that it is based on ‘laver’, a motif that has not been seen in Korean anthropomorphism novels ever known. In recognition, it was featured in Yonhap news in 2007. At that time, the author was known as Park Sangyeon (朴尙淵, 1631-1696), based on a paper published by Professor Yu Kwonseok in 2007, which has been known to the academia and the public so far. However, I recently found another version of this work in a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by An Gyeong (安璥, 1564-1640), which is still little known to the academic community. Two copies of An Gyeong’s collection are currently housed in the Harvard-Yenching Library and in Jangseogak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respectively in manuscripts. Therefore, there are three versions of Haeuiguksa, two of which were contained in the collection of An Gyeong and the other in the collection of Park Sangyeon. This paper compared the three different versions of Haeuiguksa. First, the two versions of An Gyeong’s collection called Geunjeonjip(芹田集) were compared to each other to determine which is the original one, and the difference was analyzed in contrast to the version of Park Sangyeon’s collection of writings Geumgokjip(金谷集). As a result, Haeuiguksa of Geunjeonjip housed in Jangseogak predated one of Harvard-Yenching Library. The two versions of the Haeuiguksa of An Gyeong shared the same allusion, and the description was generally brief. On the other hand, the Haeuiguksa of Park Sangyeon revised the allusion to fit in the context, and the description was relatively detailed. This is the evident reason why Park Sangyeon wrote an article with a higher level of completion by using the writings of An Gyeong. Haeuiguksa was written with the purpose of vigilance that the emperor ‘laver’ should be well versed in the rise and fall of the heavenly kingdom, reject Buddhism and attain prestige on his own. An Gyeong, who was no longer a government official after the disgrace of the country of 1636, was also wary of his descendants and considered prestige important. In the case of Park Sangyeon, he went on a trip to Jeolla-do after being dismissed from office due to the incident called Gyeong-sin-dae-chul-cheok (庚申大黜陟) in 1680. And it is believed to have been a modified version to Haeuiguksa of An Gyeong at that time. 「海衣國史」는 김을 의인화한 가전체소설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전체소설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사물인 ‘김’을 소재로 지어진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이 때문에 2007년 「연합뉴스」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때 저자를 朴尙淵(1631~1696)으로 소개하였는데, 이는 2007년에 발표한 유권석 교수의 논문을 근거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계와 대중에 이렇게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필자는 아직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安璥(1564~1640)의 문집에서 이 작품을 찾았다. 안경의 문집은 현재 하버드 옌칭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각각 필사본 이본이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각각 「해의국사」가 실려있다. 그러므로 「해의국사」의 이본은 총 3종으로 2종은 안경의 문집에, 나머지 1종은 박상연의 문집에 실려있다. 본 논문에서는 3종의 「해의국사」 이본을 비교하였다. 먼저 안경의 문집 芹田集 이본을 서로 대조하여 선본을 가렸다. 그리고 박상연의 문집 金谷集 과 비교하여 그 차이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안경의 문집은 장서각에 소장된 근전집 이 선본이었다. 금곡집 과의 비교를 통해서는 안경의 「해의국사」는 전고를 그대로 차용하였고, 서술이 대체로 간략한 측면이 있었다. 반면, 박상연의 「해의국사」는 전고를 문맥에 맞게 수정하였고, 서술이 비교적 상세하였다. 이 점은 박상연이 안경의 글을 개작하여 보다 완성도 높은 글을 지었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해의국사」는 김이 천자인 나라의 흥망성쇠를 전개하며 이단[불교]을 배척하고 스스로 위신을 갖춰야 한다는 경계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안경의 경우 병자년(1636)의 치욕으로 더 이상 벼슬하지 않고, 자손에게도 벼슬하지 말라고 경계하며 스스로의 위신을 생각한 것이 이 글을 짓게 된 동기와 관련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박상연의 경우는 경신대출척을 겪으며 벼슬길이 막힌 뒤 전라도를 유람하였는데, 이때 김을 접하고 안경의 「해의국사」를 수정·보완하여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서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