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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愚 桂奉瑀(1880~1959)의 역사민속 서술과 인식

        임학성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8

        This paper examines Buk-Woo, Gye Bong-Woo's (1880-1959) writings and viewpoint on Korean historical-folklore, who fled the country under Japanese rule and devoted his whole life to nationalist education and research of Korean studies. Gye Bong-Woo, born from the low class, Hamgyeongnamdo, in the late 19th century, was a pioneer who studied, taught, and built Korean studies in North Gando, the Maritime Territory, and Central Asia (Russia). Especially, his research ranged over Korean language, literature, and history. In spite of activities for independence, nationalism, and socialism, he wrote about thirty books on Korean studies including Korean historical-folklore. Introduction and Research of his achievement was begun in the field of Korean studies after 1990, the first year of Korean-Russian relations. Collecting and examining his writings, researchers evaluated that he nearly compared with Park, Eun-Sik and Shin, Chae-Ho, the typical scholars of Korean studies in the colonial era. There has been no review of his Korean historical-folklore, however. This paper analyzes what he wrote about Korean historical-folklore and how he viewed it.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of all, of all Korean historical-folklore, he was interested in (a) religion and mythology, (b) play, (c) the lunar calendar and holidays, and (d) common custom. He described on them, except play, according to the negative point of view, such as deception of the exploiting class, superstitions, and non-scientific ignorance. Secondly, he wrote that Korean play was much influenced by interactions with countries bordering west China in the ancient days. He also wrote that it was very popular during Goryeo Dynasty, but was in decline under Confucianism in Joseon Dynasty. Nevertheless, he considered the birth of satirical drama and burlesque drama, very popular with public, as an important characteristic of history of play in Joseon Dynasty. Finally, he ignored positive, popular, wish-making characteristics of Korean historical-folklore, although he described on it with various reasons, taught it Korean people in Central Asia, and left his legacy to the succeeding scholars. It seems that Christian belief and socialist thought would affect on his ideas.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국외로 망명하여 한국학 연구 및 민족 교육에 평생을 바친 北愚 桂奉瑀(1880∼1959)의 한국 역사민속 서술 내용과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계봉우는 조선왕조의 운명이 다하던 19세기 말, 함경남도의 하층민 집안에서 태어나 북간도와 연해주, 중앙아시아(러시아) 등의 지역에서 한국학/고려학을 연구․교육하고 정립한 선구적 인물이다. 특히 그가 이루어낸 한국학 연구는 한국어와 한국문학, 한국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쳤으며, 독립과 민족 및 사회주의 운동에 전념하면서도 무려 30여 편의 한국학 관련 저술을 이루어냈다. 한국학에 대한 그의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窮究는 필연 한국 역사민속에 대해서까지 적지 않은 저술을 남겼던 것이다. 그런데 계봉우가 남긴 한국학 분야의 업적에 반해, 그에 대한 한국학계에서의 소개와 연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가 59세에 중앙아시아(현, 카자흐스탄)로 강제 이주 되어 말년을 우리와 미수교국인 소련에서 지냈던 점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다가 한․러 수교(1990년) 이후 계봉우의 활동 내용 및 저술들이 국내에 알려지고 수집되면서 독립운동사 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졌고, 최근에는 그가 남긴 한국어학․한국문학․한국사 관련 저술들을 분석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계봉우를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한국학자 朴殷植과 申采浩의 업적과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다고까지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계봉우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나 아직 역사민속학 방면에서의 考究는 이루어진 바가 없다. 이에, 본 논문을 통해 그의 역사민속에 대한 서술 내용과 인식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계봉우가 관심을 보인 한국 역사민속은 ① 종교․신화, ② 演戱, ③ 舊曆 및 名節, ④ 通俗 등으로 집약 된다. 이 가운데 연희를 제외한 나머지 역사민속 항목들은 모두 착취계급의 기만, 미신, 비과학적 몽매 등과 같은 부정적 인식 하에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연희는 고대 西域과의 교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고려시대에 연희가 성행하다가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연희가 침체되기 시작했다고 서술․인식하였다. 그렇지만 民衆 속에서 자주 흥행되던 諷刺劇과 滑稽劇이 탄생한 점을 조선시대 연희사의 큰 특징으로 보았다. 셋째, 계봉우는 다양한 전거에 토대하여 한국의 역사민속을 서술함으로써 당대의 중앙아시아 고려인에게 교육시키고 후대의 한국 역사민속학자들에게 연계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민속이 지닌 긍정적, 민중적, 祈福的 요인들을 외면한 부분은 논쟁이 될 사항이라 하겠다. 한국 역사민속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전적으로 그의 思考에 크게 영향을 끼친 기독교 신앙과 사회주의 사상 때문이었다고 해석된다.

      • KCI등재

        北愚 桂奉瑀(1880~1959)의 역사민속 서술과 인식

        임학성(Lhim, Hak-Seong)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8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국외로 망명하여 한국학 연구 및 민족 교육에 평생을 바친 北愚 桂奉瑀 (1880∼1959)의 한국 역사민속 서술 내용과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계봉우는 조선왕조의 운명이 다하던 19세기 말, 함경남도의 하층민 집안에서 태어나 북간도와 연해주, 중앙아시아(러시아) 등의 지역에서 한국학/고려학을 연구·교육하고 정립한 선구적 인물이다. 특히 그가 이루어낸 한국학 연구는 한국어와 한국문학, 한국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쳤으며, 독립과 민족 및 사회주의 운동에 전념하면서도 무려 30여 편의 한국학 관련 저술을 이루어냈다. 한국학에 대한 그의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窮究는 필연 한국 역사민속에 대해서까지 적지 않은 저술을 남겼던 것이다. 그런데 계봉우가 남긴 한국학 분야의 업적에 반해, 그에 대한 한국학계에서의 소개와 연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가 59세에 중앙아시아(현, 카자흐스탄)로 강제 이주 되어 말년을 우리와 미수교국인 소련에서 지냈던 점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다가 한?러 수교(1990년) 이후 계봉우의 활동 내용 및 저술들이 국내에 알려지고 수집되면서 독립운동사 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졌고, 최근에는 그가 남긴 한국어학·한국문학·한국사 관련 저술들을 분석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계봉우를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한국학자 朴殷植과 申采浩의 업적과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다고까지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계봉우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나 아직 역사민속학 방면에서의 考究는 이루어진 바가 없다. 이에, 본 논문을 통해 그의 역사민속에 대한 서술 내용과 인식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계봉우가 관심을 보인 한국 역사민속은 ① 종교·신화, ② 演戱, ③ 舊曆 및 名節, ④ 通俗 등으로 집약 된다. 이 가운데 연희를 제외한 나머지 역사민속 항목들은 모두 착취계급의 기만, 미신, 비과학적 몽매 등과 같은 부정적 인식 하에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연희는 고대 西域과의 교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고려시대에 연희가 성행하다가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연희가 침체되기 시작했다고 서술·인식하였다. 그렇지만 民衆 속에서 자주 흥행되던 諷刺劇과 滑稽劇이 탄생한 점을 조선시대 연희사의 큰 특징으로 보았다. 셋째, 계봉우는 다양한 전거에 토대하여 한국의 역사민속을 서술함으로써 당대의 중앙아시아 고려인에게 교육시키고 후대의 한국 역사민속학자들에게 연계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민속이 지닌 긍정적, 민중적, 祈福的 요인들을 외면한 부분은 논쟁이 될 사항이라 하겠다. 한국 역사민속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전적으로 그의 思考에 크게 영향을 끼친 기독교 신앙과 사회주의 사상 때문이었다고 해석된다. This paper examines Buk-Woo, Gye Bong-Woo's (1880-1959) writings and viewpoint on Korean historical-folklore, who fled the country under Japanese rule and devoted his whole life to nationalist education and research of Korean studies. Gye Bong-Woo, born from the low class, Hamgyeongnamdo, in the late 19th century, was a pioneer who studied, taught, and built Korean studies in North Gando, the Maritime Territory, and Central Asia (Russia). Especially, his research ranged over Korean language, literature, and history. In spite of activities for independence, nationalism, and socialism, he wrote about thirty books on Korean studies including Korean historical-folklore. Introduction and Research of his achievement was begun in the field of Korean studies after 1990, the first year of Korean-Russian relations. Collecting and examining his writings, researchers evaluated that he nearly compared with Park, Eun-Sik and Shin, Chae-Ho, the typical scholars of Korean studies in the colonial era. There has been no review of his Korean historical-folklore, however. This paper analyzes what he wrote about Korean historical-folklore and how he viewed it.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of all, of all Korean historical-folklore, he was interested in (a) religion and mythology, (b) play, (c) the lunar calendar and holidays, and (d) common custom. He described on them, except play, according to the negative point of view, such as deception of the exploiting class, superstitions, and non-scientific ignorance. Secondly, he wrote that Korean play was much influenced by interactions with countries bordering west China in the ancient days. He also wrote that it was very popular during Goryeo Dynasty, but was in decline under Confucianism in Joseon Dynasty. Nevertheless, he considered the birth of satirical drama and burlesque drama, very popular with public, as an important characteristic of history of play in Joseon Dynasty. Finally, he ignored positive, popular, wish-making characteristics of Korean historical-folklore, although he described on it with various reasons, taught it Korean people in Central Asia, and left his legacy to the succeeding scholars. It seems that Christian belief and socialist thought would affect on his ideas.

      • KCI등재

        역사민속학의 궤적과 전망

        주강현(Joo Kang-Hyun) 한국역사민속학회 2011 역사민속학 Vol.35 No.-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성립은 '87체제'의 산물이다. 87년 체제는 일정한 변혁성을 담보하며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희구하였다.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출현은 종전의 민속학이 갖는 성격의 불투명함, 심하게 말해 지나친 체제 온존성과 수구적 태도 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던졌다. 당시 민속학 분야에서는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출구가 모색되고 있었으며, 1970~80년대 이래의 민속연희운동을 통한 일정한 진보적 역량이 갖추어진 상태였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쓰이지 아니한 역사'에 대한 갈증과 욕구가 역사민속학이라는 과제로 수렴되고 있었다. 역사민속학의 출발에서 학제 연구가 필연적이었다. 한국역사민속학회는 학회 명칭에서 '역사민속학'을 표방했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민중생활사' 구현을 최대 목표로 설정했다. 역사민속학은 '역사 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의 줄인 용례이다. 역사민속학은 역사학 범주이며, 학사적으로는 향후 史學史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통섭 및 학제 연구의 필연성과 확충은 역사민속학이 구현하고자 했던 방향과 일치된다. 학제 연구는 필연적으로 제 학문과의 교섭을 요구한다. 또한 민속이란 이름의 개념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근대 풍속의 해체와 새로운 풍속의 생성이라는 지난 100년 간의 변동 속에서 기존 민속개념만으로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수 없게 되었다. The establishment of the historical-folklife society is a product of '87'system which desire a certain transformation and democratization in Korea. The historical-folklife society threw conservertive attitude in studies. In the field of folkstudies the exit of academic identity was being sought, and in the field of history the thirst and desire for the challenge of history, 'folklife as a historic science'. Interdisciplinary research in the historical-folklife studies was inevitable departure. In the name of historical-folklife, the terms of contents represent a studies of people's life. The historical-folklife include in the historical category. Interdisciplinary research inevitably requires negotiation with diversity of studies. What is the name of the folk-life there has been expansion of the concept. Pre-modem deconstruction and creation of new changes in the last 100 yeats alone, the existing concept of folklife was unable to lead the 21st century.

      • KCI등재

        역사민속학의 궤적과 전망

        주강현 한국역사민속학회 2011 역사민속학 Vol.0 No.35

        The establishment of the historical-folklife society is a product of '87'system which desire a certain transformation and democratization in Korea. The historical-folklife society threw conservertive attitude in studies. In the field of folkstudies the exit of academic identity was being sought, and in the field of history the thirst and desire for the challenge of history, ‘folklife as a historic science'. Interdisciplinary research in the historical-folklife studies was inevitable departure. In the name of historical-folklife, the terms of contents represent a studies of people's life. The historical-folklife include in the historical category. Interdisciplinary research inevitably requires negotiation with diversity of studies. What is the name of the folk-life there has been expansion of the concept. Pre-modern deconstruction and creation of new changes in the last 100 years alone, the existing concept of folklife was unable to lead the 21st century.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성립은 ‘87체제'의 산물이다. 87년 체제는 일정한 변혁성을 담보하며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희구하였다.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출현은 종전의 민속학이 갖는 성격의 불투명함, 심하게 말해 지나친 체제 온존성과 수구적 태도 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던졌다. 당시 민속학 분야에서는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출구가 모색되고 있었으며, 1970~80년대 이래의 민속연희운동을 통한 일정한 진보적 역량이 갖추어진 상태였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쓰이지 아니한 역사'에 대한 갈증과 욕구가 역사민속학이라는 과제로 수렴되고 있었다. 역사민속학의 출발에서 학제 연구가 필연적이었다. 한국역사민속학회는 학회 명칭에서 ‘역사민속학'을 표방했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민중생활사' 구현을 최대 목표로 설정했다. 역사민속학은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의 줄인 용례이다. 역사민속학은 역사학 범주이며, 학사적으로는 향후 史學史 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통섭 및 학제 연구의 필연성과 확충은 역사민속학이 구현하고자 했던 방향과 일치된다. 학제 연구는 필연적으로 제 학문과의 교섭을 요구한다. 또한 민속이란 이름의 개념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근대 풍속의 해체와 새로운 풍속의 생성이라는 지난 100년 간의 변동 속에서 기존 민속개념만으로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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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민속학의 민간신앙 연구관점

        이필영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7

        Historical folklore study in the field of folk religion is not far from the principle of historical science and popular life history and their relevant points of view. Considering the universality and speciality of methods in historical science, a number of noteworthy viewpoints in the field of historical folklore can be illustrated. First, it is appropriate to broadly define the folk religion as the religion handed down from people as well as the religion handed down from all social classes. Second, the study subject of folk religion should not be confined to village religion, home religion, and shamanism.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how folk religion comprises the mutually related interacting functional whole with other aspects of culture. Third, it cannot be overemphasized to utilize all related research materials even outside historical resources when studying historical folk religion or finding historical linkage of current local folk religion with past literatures on folk religion. Fourth, the topics yet to be revealed their value from historical materials cannot be easily neglected. The historical folklore study on folk religion should be based on ‘the attention to all folk religions in history'. Fifth, the topics of Korean folklore especially those contain universality over region or time, needs particular attention in the future. Sixth, the folk religion should be understood as a religion instead of the subject of study irrespective of any academic approaches to be taken. Without grasping this notion, one could only scratch the superficial surface without touching the essence. 역사민속학은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을 표방하면서, 그 안에 민중생활사를 주된 연구 내용으로 담아내고자 목표를 둔 학문이다. 역사민속학은 역사학과 민속학이란 2개 학문이 단순히 결합된 용어가 아니다. 역사민속학의 중심 낱말은 민속이다. 그것이 역사속의 민속이든 현장 속의 민속이든, 민속을 역사과학의 차원에서 보려는 학문이 역사민속학이다. 특히 현장 속의 민속은 역사 속의 민속 이상으로 중시되어야 한다. 민간신앙 분야의 역사민속학 연구도 기본적으로 역사과학과 민중생활사라는 대원칙과 그와 관련한 제 관점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역사민속학 방법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민간신앙 분야의 중요한 관점들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간신앙은 그 뜻을 ‘백성들(또는 민간) 사이에 전승되어 오는 신앙'인 동시에 ‘모든 사회계층에서도 전해 내려오는 신앙'으로 확대하여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민간신앙의 연구대상을 마을신앙(고을신앙을 포함하여), 가정신앙 그리고 무속에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민간신앙이 다른 부면의 문화와 어떻게 ‘상호관련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셋째, 민간신앙 연구는 장차 민중사상사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데 一助를 하거나, 또한 민중사상사의 측면에서도 민간신앙이 연구되어야 한다. 넷째, 역사상의 민간신앙을 연구하거나 현재의 민간신앙 현지자료를 과거의 민간신앙 문헌자료와 연계하여 그 역사성을 추구할 때에, 역사문헌 외에도 다른 모든 분야의 자료를 최대한 광범위하게 이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째, 역사자료에 의하여 그 역사성이 잘 밝혀지지 않는 주제라 하여 무시되거나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민간신앙에 대한 역사민속학 연구는 ‘역사 속의 모든 민간신앙에 대한 관심'에 기초해야 한다. 여섯째, 한국의 민속학 자료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여 보편성을 지니는 주제에 대해서도 향후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곱째, 민간신앙을 어떤 학문의 입장에서 접근하든 그것이 학문의 대상이기 이전에 그것이 신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본질을 보지 않거나 보려고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학문 대상의 외피에서만 맴돌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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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철산의 역사민속학연구-사학사상의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

        주강현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8

        This studies focus on fogetten Hwang-Chul San who was the best folklorist in R.O.K. He is originally born at North Korean. He pioneered the history of folklore in the North. His research methodology was the very historical. But he was forgotten in the North. At the same time he is forgotten in Korea. So this research hopes his restoration as a outstanding academics in north korea & south korea. What's more, he is a valuable person in historical perspective. The South and the North have been disconnected. However, this one connecting South and North Korea hope through these studies. Hwang-cheol studies would be a good sample study. 황철산은 북한과 남한 모두에게 기억 속에서 사라진 역사민속학자이다.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을 주창하는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입장에서도 황철산은 잘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북한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실 실장으로서 북한민속학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더욱이 그의 연구방법론은 철저하게 역사민속학의 입장에 근거하였다. 북한의 역사민속학에 대한 본질적 연구가 미진한 상태에서 북한민속학의 사학사적 궤적을 옳게 알아채리는 연구자가 오늘날에도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황철산은 민속학방법론,역사과학에서의 민속학의 위상, 물질 생산민속, 종족문제 해결에서 민속학이 개입하는 위상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업적을 냈다. 그의 역사민속학을 통하여 남북의 통합된 역사민속학서술을 가능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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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민속학과 기록자료 활용

        이해준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7

        This is not so much a research paper as a plainly written article to examine the results, reflections, and follow-up tasks of Korea Society for Historical Folklife Studies in terms of its academic history by looking back on the last 25 years. This study has investigated the consciousness and directivity of the society's foundation, reflect how much its goal has been achieved, and the auxiliary aspects to be complemented further afterwards. The birth of Korea Society for Historical Folklife Studies in 1990 was a new grouping and trial to reverse indifference to history of folklife in our history within the limitations of historical understanding that previous folklore research has, that is, complaints and regrets about ‘the historical changes of folklore and difference in the aspects of development'. The initiators of its foundation were the researchers in such areas as folklore, history, anthropology, and religious studies having a critical mind about the folklore research constantly, and they accumulated research results different from those of previous academic circles by organizing the arrangement methodology of history of folklife and history of historical folklife studies, excavating and using regional data exclusively, or trying interdisciplinary research methods as general culture. Meanwhile, this study emphasizes the necessity to explore diversely and mobilize and use exclusively recorded data regarding history of folklife and history of living culture. Particularly they include the lively diary data found by this author's data mobilization experience, data of family mottos as living data of family education, and the importance and utilization of classical data recording a village's operation and detailed living culture. It is expected that this pointing out and suggestion will be used as methods to find and use more data sources from the recorded data as well as unwritten data of historical folklife studies afterwards. 본고는 연구논문의 성격이라기보다 한국역사민속학회의 25년을 회고하면서 그동안 이루어낸 학술사적 성과와 반성,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들을 점검하는 소박한 글이다. 학회 창립기의 의식과 방향성이 과연 무엇이었으며, 또한 그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를 반추하면서, 앞으로 좀더 보완하여야 할 부면을 지적하여 본 것이다. 1990년 한국역사민속학회의 태동은 기존의 민속학연구가 지닌 역사적 이해의 한계, 즉 ‘민속의 역사적 변천과 전개 양상의 차이'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 그리고 역사학의 민중생활사에 대한 무관심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모색이자 시도였다. 창립의 주역들은 평소 민속학 연구에 대하여 비판과 문제의식을 가졌던 소장 민속학, 역사학, 인류학, 종교학 등 여러 분야 소장연구자들로 이들은 민중생활사 정리방법론, 역사민속학사의 정리, 지역자료의 광범한 발굴과 활용, 종합문화로서의 학제적 연구방법 시도 등등 기존의 학계와 다른 연구성과를 축적하였다. 본고에서는 민중생활사, 생활문화사와 관련하여 기록 자료의 다양한 탐색과 광범한 동원 활용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필자의 자료 동원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생생한 생활일기 자료라든가, 집안의 교육의 산 자료로서 가훈류 자료, 그리고 마을의 운영과 세세한 생활문화를 기록화한 성책 고문서 자료의 중요성과 활용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지적과 제안을 토대로 향후 역사민속학이 쓰여 지지 않은 자료와 쓰여 진 기록자료 사이에서 더 많은 자료원을 찾고 활용하는 방법들을 모색하기를 기대해 본다.

      • KCI등재

        역사민속학과 기록자료 활용

        이해준(Lee, Hae-Jun)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7

        본고는 연구논문의 성격이라기보다 한국역사민속학회의 25년을 회고하면서 그동안 이루어낸 학술사적 성과와 반성,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들을 점검하는 소박한 글이다. 학회 창립기의 의식과 방향성이 과연 무엇이었으며, 또한 그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를 반추하면서, 앞으로 좀더 보완하여야 할 부면을 지적하여 본 것이다. 1990년 한국역사민속학회의 태동은 기존의 민속학연구가 지닌 역사적 이해의 한계, 즉 ‘민속의 역사적 변천과 전개 양상의 차이'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 그리고 역사학의 민중생활사에 대한 무관심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모색이자 시도였다. 창립의 주역들은 평소 민속학 연구에 대하여 비판과 문제의식을 가졌던 소장 민속학, 역사학, 인류학, 종교학 등 여러 분야 소장연구자들로 이들은 민중생활사 정리방법론, 역사민속학사의 정리, 지역자료의 광범한 발굴과 활용, 종합문화로서의 학제적 연구방법 시도 등등 기존의 학계와 다른 연구성과를 축적하였다. 본고에서는 민중생활사, 생활문화사와 관련하여 기록 자료의 다양한 탐색과 광범한 동원 활용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필자의 자료 동원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생생한 생활일기 자료라든가, 집안의 교육의 산 자료로서 가훈류 자료, 그리고 마을의 운영과 세세한 생활문화를 기록화한 성책 고문서 자료의 중요성과 활용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지적과 제안을 토대로 향후 역사민속학이 쓰여 지지 않은 자료와 쓰여 진 기록자료 사이에서 더 많은 자료원을 찾고 활용하는 방법들을 모색하기를 기대해 본다. This is not so much a research paper as a plainly written article to examine the results, reflections, and follow-up tasks of Korea Society for Historical Folklife Studies in terms of its academic history by looking back on the last 25 years. This study has investigated the consciousness and directivity of the society's foundation, reflect how much its goal has been achieved, and the auxiliary aspects to be complemented further afterwards. The birth of Korea Society for Historical Folklife Studies in 1990 was a new grouping and trial to reverse indifference to history of folklife in our history within the limitations of historical understanding that previous folklore research has, that is, complaints and regrets about ‘the historical changes of folklore and difference in the aspects of development'. The initiators of its foundation were the researchers in such areas as folklore, history, anthropology, and religious studies having a critical mind about the folklore research constantly, and they accumulated research results different from those of previous academic circles by organizing the arrangement methodology of history of folklife and history of historical folklife studies, excavating and using regional data exclusively, or trying interdisciplinary research methods as general culture. Meanwhile, this study emphasizes the necessity to explore diversely and mobilize and use exclusively recorded data regarding history of folklife and history of living culture. Particularly they include the lively diary data found by this author's data mobilization experience, data of family mottos as living data of family education, and the importance and utilization of classical data recording a village's operation and detailed living culture. It is expected that this pointing out and suggestion will be used as methods to find and use more data sources from the recorded data as well as unwritten data of historical folklife studies afterwards.

      • KCI등재

        韓國歷史民俗學의 모색과 궤적

        주강현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7

        The folklife studies is different from folklore. This treatise analysis about scolastic Meaning of historical folklife & method of research. The folklife studies is mainly interest in a science of history,but in korea folklore is mainly interest in a literature. After 1945 year,historical folklife become extinct with a death of Son-Jin-Tae(孫晉泰). Son-Jin-Tae conduct an studies about history & folklife, but no one suceed to his scolastic tradition. The folklife studies set up a purpose critictical viewpoint of riddance in historic study. The theory of remain cultural viewpoint in folklife studies have many problems. The folklife studies emphasis on the history of the folklife, and long-term history & short-term history. The folklife studies conduct extention of historical-folklife text. The field-work research and ancient document research is main methods of historical-folklife studies. The folkhistory related with ancient document. In the studies of historical-folklife,the phases of the time is very important,and that is realize by reserching ancient document. And,This treatise analysis a little about “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al-folklife Studies”(韓國歷史民俗學會) & “The Journal of Historical-folklife”(歷史民俗學). 본 연구는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이 지니는 학사적인 위상을 밝혀내고.연구방법론의 일부를 몇가지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자 하였다. 역사민속학은 일반적 민속학(folklore)과 많이 다르다. 역사와 민속의 단순 결합이 아닌,‘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이란 입장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역사학계의 선학인 손진태는 역사학과 민속학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손진태 이후에 역사학과 민속학은 그 관계가 단절되었으며,민속학은 대개 국문학 연구의 일환으로 연구되었다. 역사민속학은 일반민속학의 몰시대성․탈시대성에 관한 일정한 비판을 전제로 하며 민속의 낙후된 부분만을 민중생활의 전모인 양 파악하는 잔존문화론을 비판한다. 역사민속학에서는 민속사를 주목하며, 민속사는 장기지속의 역사,단기지속의 역사를 모두 포함한다.모든 시기에 해당되는 통시대적인 민속도 있지만, 일정한 시기에 발현된 단기적인 민속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민속학의 발전과정에서 북한의 역사민속학이 중요하다. 북한민속학은 출발 단계에서부터 역사과학으로 위치지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 통합에서 역사민속학이 일정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문헌과 현장 구술의 제 관계도 주목하였다. 역사민속학은 쓰여진 역사와 쓰여지지 아니한 역사의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문헌과 현장 구술이 상호 결합되고 상호 보완된다면 역사연구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 KCI등재

        황철산의 역사민속학연구

        주강현(Joo, Kang-Hyun)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8

        황철산은 북한과 남한 모두에게 기억 속에서 사라진 역사민속학자이다.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을 주창하는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입장에서도 황철산은 잘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북한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실 실장으로서 북한민속학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더욱이 그의 연구방법론은 철저하게 역사민속학의 입장에 근거하였다. 북한의 역사민속학에 대한 본질적 연구가 미진한 상태에서 북한민속학의 사학사적 궤적을 옳게 알아채리는 연구자가 오늘날에도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황철산은 민속학방법론,역사과학에서의 민속학의 위상, 물질 생산민속, 종족문제 해결에서 민속학이 개입하는 위상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업적을 냈다. 그의 역사민속학을 통하여 남북의 통합된 역사민속학서술을 가능케할 것이다. This studies focus on fogetten Hwang-Chul San who was the best folklorist in R.O.K. He is originally born at North Korean. He pioneered the history of folklore in the North. His research methodology was the very historical. But he was forgotten in the North. At the same time he is forgotten in Korea. So this research hopes his restoration as a outstanding academics in north korea & south korea. What's more, he is a valuable person in historical perspective. The South and the North have been disconnected. However, this one connecting South and North Korea hope through these studies. Hwang-cheol studies would be a good sampl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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