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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 ( Kim Junhui ) 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23 현대사회과학연구 Vol.27 No.-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동북 변강지역의 역사와 현실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 2002년 2월에 추진하기 시작하였던 프로젝트로,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문제와 장래에 다가올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 추진하였다. 그 주요 목적은 중국 동북지역의 소수민족 이탈 문제와 북한 정세에 대비하고자 함에 있다. 중국 학계에서 고구려사 귀속 문제에 접근하였던 방식은 족원론과 조공책봉 관계론 두 가지로 정리되는데, 본고에서 주로 족원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중국 측에서 내세우는 족원론의 시각에 따르면, 고구려는 주로 중국 북방 소수민족인 예맥족이 한족(漢族) 일부와 융합하여 형성되었으며, 그 기원은 한반도 중남부의 한(韓)계통 주민 집단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멸망 이후, 이러한 예맥 집단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국에 흡수되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중국 학계의 시각이 실제 문화 양상과 일치하는지 검토하기 위해 중국동북지역과 한반도의 주민 집단을 북방의 예맥(濊貊), 남방의 한(韓)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예·맥·한이라는 개념을 분석하였다. 필자는 이를 위해서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의 기록에서 확인되는 이들의 풍속과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경에 이르는 물질자료를 주요 자료로 활용하였다. 분석 결과, 문헌 기록에 나타나는 양상에서는 오히려 맥으로 기록된 고구려와 일반적으로 예로 분류되는 옥저, 동예 등이 가장 비슷한 집단으로 확인되며, 제천의식에서는 한반도 중서부 마한도 이들과 비슷한 점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가장 북쪽에 위치한 부여는 북방문화 요소와 일부 유사한 점이 있으며, 나머지 남쪽 정치체들과는 다소 다른 점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고고학 자료에서 보이는 양상을 보면, 초기국가 형성기 시점, 부여 이남의 정치체들은 세형동검문화 확산에 따른 문화 융합의 결과로 각자 개별적인 문화를 변용 발전시키면서 성장하였으며, 부여 역시 본격적으로 북방문화 요소를 수용하기 전까지는 이들 문화와의 관련성이 높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게다가 예와 맥이라는 개념에 대한 구분은 문화적인 구분보다는 중원 왕조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임의적인 구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동북지역-한반도 북부와 한반도 중남부 간의 간극을 강조하고자 한 중국 학계의 의도와는 달리 예·맥·한의 개념은 문화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개념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The Northeast Project was launched in February 2002 by the Chinese Academy of Social Sciences to study the history and reality problems of northeastern China, and was promoted as a precaution to prevent historical problems in northeastern China and future crises. Its main purpose is to prepare for the issue of ethnic minority departure in northeastern China and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The method of approaching the Goguryeo problem in Chinese academia is summarized in two ways: the origin of the nation and the relationship of tribute and responsibility, and this study mainly focused on the origin of the nation. According to the Chinese side's view, Goguryeo was formed mainly by the Yemaek tribe, a northern Chinese minority, fused with part of the Han peoples(Chinese), and its origin is different from that of the residents in the central and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main content is that after the collapse of Goguryeo, most of these Yemaek groups were absorbed by China, except for some. In order to examine whether this perspective of Chinese academia matches the actual cultural aspects, this paper analyzed the concept of Ye, Maek, and Han(Korean), which divides resident groups in northeastern China and the Korean Peninsula into Yemaek in the north and Han(Korean) in the south. To this end, I used their customs and material data from the 2nd century BC to the 3rd century AD as the main data. As a result of the analysis, it was confirmed that Goguryeo, which is recorded in Maek, and Okjeo and Dongye, which are generally classified as examples, are the most similar groups, and Mahan in the mid-we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is similar to them in Jecheon ceremony. And Buyeo, located in the northernmost part, has some similarities to northern cultural elements, and it has been confirmed that it is somewhat different from the rest of the southern politics. And according to the archaeological data, at the time of the early formation of the state, political bodies in the south of Buyeo grew by transforming and developing individual cultures as a result of cultural convergence following the spread of the Slender Bronze Daggers culture, and Buyeo was also found to be highly related to these cultures until it accepted northern cultural elements in earnest. Moreover, it can be seen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concept of Ye and Maek was a voluntary distinction based on the political position of the Chinese Dynasty rather than a cultural distinction. Therefore, contrary to Chinese academia's intention to emphasize the differences between northeastern China, the nor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central and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the concepts of Ye, Maek, and Han(Korean) were not clearly culturally distinct.
약용작물 잔대와 천궁 중 Pyraclostrobin의 잔류특성
서정아 ( Jeong-a Seo ),김태한 ( Taehan Kim ),박홍묵 ( Hongmuk Park ),이윤수 ( Yunsoo Lee ),김준희 ( Junhui Kim ),박인호 ( Inho Park ),김영대 ( Youngdae Kim ),김주환 ( Juhwan Kim ),김동현 ( Donghyun Kim ),맹지현 ( Jihyun Maeng ),김지 한국환경농학회 2022 한국환경농학회 학술대회집 Vol.2022 No.-
본 연구는 pyraclostrobin의 잔대 및 천궁에 대한 잔류성을 구명하여 잔류농약의 잔류특성 및 안정성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코자 하였다. Pyraclostrobin은 strobilurin계로 식물병원균의 포자발아억제, 균사생육저지의 예방효과가 우수하며, 예방 및 치료용의 침투이행성 살균제로 사용되고 있다. 잔대의 시험 약제는 디메토모르프.피라클로스트로빈 25.5(16+9.5)% 액상수화제를 2,000배 희석하여 3회 살포 후 7일, 14일, 21일, 30일 경과후 수확하였으며, 천궁의 시험약제는 피라클로스트로빈 20% 입상수화제를 3,000배 희석하여 3회 살포 후 7일, 14일, 21일, 30일 경과후 수확하였다. Pyraclostrobin은 acetonitrile로 추출하고 응용된 QuEChERS 분석법을 이용하여 LC/MS/MSD로 기기분석하였으며, 분석법상 정량한계(method limit of quantitation; MLOQ)는 모두 0.01 mg/kg이었다. 분석의 정확성 및 재현성 검증을 위하여 약제를 처리하지 않은 공시료에 정량한계, 정량한계 10배 수준이 되도록 표준용액을 첨가하여 3반복 회수율 실험을 실시하였다. 회수율 시험 결과는 농촌진흥청에서 고시한 회수율의 유효 범위 및 변이계수(coefficient of variation, C.V.)를 만족하였다. Pyraclostrobin의 잔류량은 건잔대에서 정량한계(0.01 mg/kg) 미만∼0.07 mg/kg, 생잔대에서 정량한계(0.01 mg/kg) 미만∼0.01 mg/kg이었고, 건천궁의 잔류량은 0.21 mg/kg∼2.18 mg/kg, 생천궁 잔류량은 0.08 mg/kg∼0.14 mg/kg이었다. 생시료를 건시료로 건조하였을 때 잔대의 건조수율은 평균 22.8%, 천궁은 40.6%로 였다. 시험 작물 중 건조 농산물 잔류량이 생 농산물에 비해 높게 잔류되었으며, 건조 과정 중 수분제거로 인한 농약잔류량의 증가로 판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