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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강도 전자소자 리드프레임용 Cu/STS/Cu 클래드 메탈제조 및 물리적특성에 대한 열안정성 연구

        김일권,손문의,김용성,Kim, Il-Gwon,Son, Moon-Eui,Kim, Young-Sung 대한용접접합학회 2014 대한용접·접합학회지 Vol.32 No.5

        We have successfully fabricated high strengthening Cu/STS/Cu 3 layered clad metal of $70kgf/mm^2$ grade for electric device lead frame, and investigated thermal effect of the mechanical and physical properties on the Cu/STS/Cu 3 layered clad metal lead frame material at different temperatures ranging from RT to $200^{\circ}C$. The fabricated clad metal shows a good thermal stability under 6% degrading of mechanical tensile strength and hardness change at $200^{\circ}C$ and also physical properties show stable thermal and electrical conductance of over $220W/m{\cdot}K$ and 58.44% IACS upto the $200^{\circ}$. The results confirm that fabricated high strengthening Cu/STS/Cu 3 layered clad metal can be applied for the high performed electrical lead frame devices.

      • 조선후기 치농과 음식의 필용지식 전개로서 『거가필용』과 『산림경제』의 지식지형 고찰

        김일권 ( Kim Il-gwon ) 한국농업사학회 2016 농업사연구 Vol.15 No.1

        이 글은 우선적으로 양란 후 조선 중기 사회가 생활지식의 일신과 수급을 위해 이미 400년 이전에 편찬된 송원교체기 내지 원나라 시대 저작물을 주목하여 자신들의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면모를 17세기 제지류(諸志類) 저작물인 『유원총보』(1643)와 『색경』(1676)을 통해 살펴보았다. 아울러 18세기초 성립된 『산림경제』(1718)가 농업과 음식의 밀접한 관계성, 곧 농식불가분 관계론 측면을 담아낸 주목할 농식서 내지 식농서로 조망 되었으며, 무엇보다 이 책에는 원나라 시대의 생활백과지식 체계를 개진한 『거가필용』 문헌이 명나라 시대 산림서 저작물인 『신은지』와 더불어 가장 많은 인용빈도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이미 근 500년이나 지난 원나라의 음식지식지형이 조선후기 음식 준거 확충에 적지 않게 기여하는 면모를 드러내었다. 이러한 고찰은 궁벽한 시골살림 경영에서 필요로 하는 농사와 음식 등에 관한 조선후기 일용생활백과지식의 구성과 그 수급 과정을 심화하는 좋은 통로라 간주되었으며, 여기에는 당시 사회의 빈약한 지식지형을 충족 확충하려는 당대 학인들의 지난한 지적 필요성이 큰 동인으로 작동한 것임을 짐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본고는 『거가필용』의 음식편 구성 등이 일상의 생활필용지식으로서 『산림경제』 「치선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향후 이런 측면에 대한 비교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길 요청하였다. In this paper, I studied about the development of necessary knowledge for farming and food in the middle and later Choseon dynasty. After two wars by Japan and Qing dynasty, they needed their new necessary knowledge for daily life or their farming and food, etc., at such time, they noticed on the old literature text, such as the Geoga-pilyong published about 400 years ago in the Yuan dynasty. The text of Sallim-kyeongje compiled during the early 18<sup>th</sup> century emphasized a kind of inseparable relation between farming and food, and described mostly its necessary knowledge of farming and food on the base of text such as the Geoga-pilyong of Yuan dynasty`s publication, etc. In this respect, I argued about development of arifood text during the middle and later Choseon periods. As the result, I regarded the Sallim-kyeongje as a category of arifood text. Altough analyzing shortly, I made a comparative study with the Geoga-pilyong and the Sallim-kyeongje around food part contents and their predication constr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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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운주사 북두칠성 원반석과 산정와불의 고려천문학

        김일권(Kim, Il-gwon)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한국학 Vol.37 No.2

        이 글은 전남 화순군 운주사 경내 산등성이에 놓여 있는 7개의 북두칠성 원반석과 산정의 초대형 와불에 대한 고려시대 역사천문학 및 불교천문학적 고찰을 시도한 것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이처럼 거대한 북두칠성 원반석으로 구현하였다는 점에서 국내 유일의 별자리 거석문화라 평가되고, 각 칠성석의 크기와 배치가 실제 보이는 겉보기 등급과 거리에 비례하도록 의도하였다는 점에서 단순히 신앙 차원만이 아니라 관측천문학 관점이 반영된 우수한 유적이다. 운주사의 창건 시기가 고려시대 11세기 초반으로 상정되었고, 적어도 12세기 초반 무렵에는 사역 건물이 남북 자오선 방향으로 전면중창되었다는 점에서 이 칠성석과 와불의 제작 시기도 이 시기 범주를 따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석가불과 미륵불의 경쟁구도로 설정된 쌍배불감의 존재와 연관하여 산정의 대형 와불은 바로 미래의 구세주인 미륵불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고, 산기슭에 놓인 북두칠성 원반석이 북극성을 가리키는 북쪽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와불이 바로 북극성 성격임을 보이는데, 그것이 고려의 천문체계를 잘 담고 있는 고려 전본 치성광불화를 통해서 확인되듯이 고려시대에 널리 신앙되었던 북극성 치성광불로 대비되었다. 이처럼 운주사 유적은 이미 1,000년의 세월을 지닌 오래된 역사물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 천문학 수준과 당시 사람들의 천문사상 인식을 잘 보여주는 주목할 자료인 것이다. 역사 사료로 전하는 기록이나 명문 각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산정와불을 북극성의 치성광불로 해석하고, 또 쌍배불감을 석가불과 미륵불로 해석하는 가설이 비록 추론성의 한계를 지닌다 하더라도, 운주사 북두칠성 원반석과 북극성 와불은 그것이 지닌 독특한 천문적 문화성과 유구한 역사성으로 말미암아 세계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충족하는 것이라 평가된다. There are two interesting relics of seven disc stones represented north dipper constellation and the huge Buddha statue lain at the top of Unjoo-temple mountain in Hwasoon-gun, Jeollanam-do, South Korea. Above of all, each size of seven disc stones is mostly different from 2 to 4 meters in diameter and is build according to the brightness of the dipper star by the measure. This fact means the dipper stones of Unjoo-sa were made by magnitude of stars from the beginning of foundation. The excavation data of the museum of Jeonnam University show the early part of Unjoo-sa buildings were build around the first half of 12 centuries because the angle of early buildings was adjusted to the meridian of north and south. This amazing phenomenon is worthy of notice for a kind of huge astronomical stone sculpture. I would like to put emphasis on a Korean astronomical megalithic structure confirmed at first in the Korean Peninsula. On the other hand, the big Buddha statue are lain at the top of Unjoo-temple mountain. By my measure of disposition between the dipper stones and the top Buddha statue, it is similar to relation of the polaris and northern dipper, because the lying statue lay as north direction to seven stones. The composition such as that could be confirmed at a Koryo dynasty Buddhist star chart called Chi-sung-gwang Buddhist Painting containing many Buddhist constellation images. I also argued that the central twin back Buddha of hollow sculptures sitting back to back with each other could be explained to correspond to the Sakya Buddha and Maitreya Buddha. As above, in this paper I studied about astronomical approach and historical meaning of the mystic dipper stones and top lying Buddha at Unjoo-templ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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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민속문화 관련 류서류 편찬물 현황과 특성

        김일권(Kim, Il-Gwon) 한국역사민속학회 2010 역사민속학 Vol.- No.32

        조선 지식인들은 전통시대 문물백과전서격인 각종 류서류들을 조선 중후기 이래 꾸준히 편찬하면서, 당대 사회의 제도, 문물, 역사, 지리, 문화, 사상 등 한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적 정보를 종합적으로 집성하고 통찰하고자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전통 민속과 문화의 지식체계가 축적 전승되었고 당대 사회를 가능할 수 있는 지적 표준을 성립시켜 갔다. 민속문화 관련 31종의 류서를 재분류하고 검토한 결과, 관찬 서류로는 『증보문헌비고』가 거의 유일한 정도였으며, 『지봉유설』, 『성호사설』, 『산림경제』, 『오주연문장전산고』, 『송남잡지』 등 나머지는 모두 개별 성리학자들의 1인 위주 사찬 류서였다. 이것은 중국 사회가 수백명까지 동원한 관찬 류서 작업을 활발히 펼친 것에 비하여 상당히 소략한 수준이어서, 조선 사회가 지식의 공공적 표준화와 공적 확산보다는 개인의 지적 활동에 기반한 지식 공유 체계에 더 심혈을 기울였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사찬 류서는 활자가 아닌 필사 위주의 유통 구조를 가졌고, 또 성리학의 고거주의적이고 온고이지신적인 학문성이 투영된 까닭에 지식의 창발성보다는 지식의 반복과 집성에 주안목을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류서류의 내용 분석을 통하여 우리 민속 문화의 분명한 역사적 준거를 확보하고 우리 문화의 내면성을 읽어내는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I surveyed the per-modern encyclopedic literature, so called Ryuseo, about the Korean folk-culture in the Choseon Dynasty. I efforted to show features of the encyclopedic literature and outlines of the development. Specially, I wondered for themselves how to establish their knowledge system, how to make the knowledge flow in the Choseon society. Having re-arranged historically all 31 books of encyclopedic literature about the Korean folk-culture, I noticed the fact that most encyclopedic literature was written by individual neo-Confucianists, for example, Jibong-yudol, Seongho-sasol, etc. This intellectual flow showed us the Choseon society was interested in individual intellectual concerns than in public standardization of knowledge system or in spreading of common knowledge. For all that, we can improve an obvious basis of historical understanding and our inner cultural identity about folk-culture traditions through these pre-modern encyclopedic literature of Ch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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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풍수방위론의 카오스와 코스모스

        김일권(Kim Il-Gwon) 한국도교문화학회 2006 道敎文化硏究 Vol.24 No.-

        전주시에는 매우 다양하고 중첩적인 방위 지표물들이 산재해 있다. 이 글은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이러한 전주시의 방위 이야기를 그 당대의 관점에서 읽어보려는 의도에서 준비되었는바, 그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풍수이론에 입각하여 단정되는 것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시대정신과 지표물의 사상 맥락에 따라 온당한 방위 우주론의 관점을 모색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 태조의 본향으로 인식되면서 전주시는 성역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건지산과 곤지산 등 이전에 없던 다양한 비보풍수론이 적용 강화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방위론의 상징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특히 건지산의 방위를 서북방으로 보는 것은 전통 풍수론의 모식인 문왕팔괘방위론에 따라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 관찰하면 서북이 아니라 동쪽으로 약간 기운 북방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이에 풍수지리의 방위론이 아니라 다른 관점의 도입이 필요하며, 그것은 역론적 우주론에서 중시되는 건곤의 천지사상론 측면에서 해석될 만하다고 여겨졌다. 또한 전주부성의 전체 격국에서 청룡세 역할을 하는 완산칠봉이 서쪽에 두어지고, 서방의 방위신수로 읽히는 기린봉이 동쪽에 자리잡은 것이 일견 방위혼돈으로 여겨지지만,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형세론을 따르면, 그것은 혼돈이 아니라 남쪽의 성황산을 주산으로 삼아 좌청룡 우기린세를 엮은 고심의 산물이었다고 결론된다. 이렇게 전주의 방위론은 혼돈이 아니라 그 속에 장치된 코스모스의 질서를 온당하게 도출해낼 수 있는 우리의 관점 개발이 중요하다. 그것이 인공물이든 자연물이든 그렇게 함으로써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온함과 소통성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방위비보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원론적인 방위론보다 긴 역사를 통하여 전승되어오는 맥락과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실상론의 형세에 근거하여 주변을 재해석해냄으로써, 우리가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람일 것이다. The city of Jeonju is one of the most famous cities in Korea from Choseon dynasty till now. The word of Jeonju means perfect village or wholeness of world in Korean language. The city has become famous after Lee daynasty was founded, because the city was believed as a born town of the founder, King Lee Sung-gye. So they have changed the city as a kind of sacred city through geomantic topography. By the way, many names of geomantic mountains are different from real directions, for example, Gunji Mt. and Gongi Mt. meaning north and south are located at northwest and southeast. Girin Mt. meaning west guardian animal is located at east city of the Jeonju. And Wansan seven Mt. called Blue Dragon means east guardian, but it flew down over the west wall of the city. Some directional discordances like these make us chaotic geomancy. However, a chaos state cannot exist as it is, because the people have already hidden the cosmic order in that confused direction. I get to know the most important key point is lied on development of another perspective matching to the proper condition. Jeonju city is composed of high south mountains and flat north field, so we called it south-high-north-low. If we take a view of real geographical point, although the names differ from directions of some places, we could find plausible cosmos systems among cofused geomantic direcions. The contemporaries have considered Sung-hwang Mt. which is risen south as the main montain, and Wansan seven Mt. of east blue dragon is located at west of the city. Girin Mt. meaning west is really located at east outer of the city. As a result, I would like to say that mankind living meaningful life want to make efforts to change their arounds more sacred, but the way of change viewpoint is not fixed along the times or current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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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진청 국역농서 발간의 학적 성취와 민속문화사적 연구방향

        김일권(Kim, Il-gwon) 한국민속학회 2020 韓國民俗學 Vol.72 No.-

        이 글은 농업진흥청이 지난 15년간 <고농서 국역사업>(2001-2015) 결과로 산출한 조선시대 국역농서 57종의 발간작업에 대해 그 학술적 성취를 일별하면서, 고농서가 지닌 역사학적, 민속문화사적 의의와 향후 발전적 방향 개진을 논의하였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농사지식의 보급을 위해 농서 편찬에 주목을 하였고, 그것이 태종조 『농서집요』(1414)와 세종조 『농사직설』(1429) 등으로 성취를 보았으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전국 8도 지역별 농사 상황이 어떤지를 현지조사하는 문제에까지 나아갔으며, 그 흔적을 『세종실록지리지』를 통해 읽을 수가 있다. 여기에 실린 각종 물산 항목을 심화 연구하여 향후 조선초 농사지식과 실제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길 기대한다. 조선사회는 초중기와 후기까지 중국본 농서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았던 점을 감안할 때, 농서지식의 한중교류사 연구로 확대할 필요성이 높다. 특히 왜 조선에서 멀리 떨어진 원나라 시대의 농서지식을 여전히 필요로 하였고, 이를 통해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를 심화하고, 또 조선후기의 농서지식기반에 대해 명나라 『농정전서』와 같이 새로운 명청대 농서와의 비교연구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고심하였던 조선 농학의 발달사 및 지식문명사적 교류 연구로도 나아갈 필요성이 크다. 발전적 제언으로 고전농서의 충실한 학술적 번역의 보완 관련이다. 현대 한자사전에 기댄 축자적 번역 위주를 넘어서서 해당 분야의 학술적 전문성이 크게 반영되길 요청한다. 고전문헌은 그 자체로 오탈자 없이 완정한 글은 아니어서 인용과 필사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성격이므로, 그 문헌이 인용하고 있는 중국문헌과의 대조를 통한 원전교감작업의 중요성이 크다. 더욱이 조선시대 고문헌은 대부분 중국고문헌을 재인용하여 편집한 일종의 편집저작물 성격을 지닌 까닭에, 단순한 원전교감 차원 정도가 아니라 방대한 중국원전농서 연구에 대한 학술적 기반이 크게 확충되길 기대한다. 나아가 조선시대 고전문헌은 우리 사회 공동의 지식 유산물인지라 어느 누가 독점하고 배타하는 대상이 아니며, 그 번역은 학술적 공익의 목적 아래 공개적으로 임할 숭고한 작업임이 더욱 공유되길 바란다. 끝으로, 고농서 연구는 현재에서 새로운 한국사적 지식문명사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며, 우리 생태환경에 기반한 한국적 자연학의 연구로 확대되는 기반이다. 이런 점에서 농진청 국역농서의 발간은 그 자체가 큰 성과이자, 이제 다시 한국학계에 새로운 학문을 여는 출발점에 있는 학술적 가치의 성취라 이를 만하다. This study explores the publication project and its achievement of 57 classified books on farming of Joseon (1392-1910), It resulted from the ‘Korean Translation Project of Classic Books on Farming’ (2001-15) conducted by the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The significance of the studies of cultural history and folk culture and their prospect for future development are presented. Joseon from its founding period paid attention to the publication of books on farming to spread farming information. The publication included the Essentials of Agriculture (1414) during King Taejong and Straight Talk on Farming (1429) during King Sejong. They also conducted agricultural surveys of the eight provinces of the nation, which are traced in the ‘Geography Section’ of the Annals of King Sejong. This material provides items worth for in-depth research for expanded studies on the connection between farming information and the real situation of the early Joseon. Early and mid Joseon highly depended on Chinese material, and therefore there is a demand for exploring the Korea-China exchange. Why did the Joseon people want the farming books of Yuan which was a far distance from them? What did they accomplish through this? For the late Joseon, the basis was provided by the Collection of Agricultural Administration of Ming, thus those new books of Ming and Qing should be compared with the previous ones. Such comparative studies are needed to establish the field of developmental history of farming of Joseon, or the history of intellectual exchanges on farming. Another issue is related to the supplementary measures of faithful translations of the classics on farming. Academic professionalism is largely requested to overcome dependence on a modern Chinese dictionary for word-by-word translations. The classic material is not without errors and missing letters, and thus in the course of citation and transcription errors naturally occur. It is important to compare the original Chinese material for the correction of the copied ones. Since Joseon classics are mostly characterized as collected works of Chinese, there is a large demand, beyond simple examination measures, to compose a research basis on which to deal with the enormous amount of Chinese farming books. Finally, the research on the classics of Korean farming at present is the pursuance of a new intellectual history of South Korea. It is the basis of the expanded research of South Korean naturolgy based on its ecological system. In this regard, the publication of the Korean edition produced by the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is not only a splendid achievement but also a new opening for South Korean academic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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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일식기록의 한중 사료 대조와 일식상황 비교

        김일권(Kim, Il-gwon) 신라사학회 2016 新羅史學報 Vol.0 No.37

        본 연구는 《삼국사기》 수록 65차 67건의 일식기록이 지닌 사료적 가치와 자료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고대 중국사의 일식사료와 일일이 대조하는 사료비판작업을 진행하였고, 더불어 실제 발생한 것으로서의 역사일식도로써 대비를 수행하여, 삼국시대 일식상황을 일식기록의 상황과 일식발생의 상황으로 분리하여 접근하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개진하였다. 한중 사료 비교를 진행한 결과, 67건 중 63건 기록이 《한서》, 《후한서》 등 고대 중국사의 일식기록과 동일성을 보여 중국사료 의존성이 94%나 되었다. 중국사에 대응되지 않는 나머지 4건은 공교롭게도 모두 일식이 불가능 해의 기록이어서 기록 착란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삼국사기》가 중국사와 무관하게 일식사건을 독립적으로 기록한 사례가 하나도 없는 상황을 야기하였다. 《삼국사기》 일식기록 중에서 사료 오류 내지 한반도 일식 불가 기록이 전체 34%(총 22차 23건)로 추출되었으며, 이는 《삼국사기》 기록의 일식실현율이 최대 66%임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그 오류유형과 자료형태가 여러가지로 분석되었는데, T1 유형(4건)은 중국사에 대응기록이 없으면서 일식 불가능한 해의 기록착란 유형이고, T2 유형(19건)은 중국사가 지닌 일식기록 오류와 동일한 상태의 기록이며, T3 유형(5건)은 중국사 기록과 선택적 동일성을 지니면서 한중 일식이 가능한 경우이며, T4 유형(39건)은 한중 양자 기록이 동일하면서 한반도에서 일식 가능한 경우이다. 다시 하위 세분을 시도하여, T2A 유형은 양자 오류가 동일하면서 한중 모두 일식이 불가능한 경우(4건), T2B 유형은 중국사 여러 기록 중 오류기록을 선택하여 결과적으로 한중 일식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3건), T2C 유형은 전사과정에 오탈자가 발생하여 역시 일식이 불가능한 경우(2건), T2D 유형은 한중 둘다 일식불가한 기록을 답습한 경우(6건), T2E는 동일한 기록이나 중국은 가능하고 한반도는 관측불가능한 경우(4건)로 나눠졌다. T3A 유형(1건)은 외견상 오류가 아니나 건축(建丑) 개력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역법상 오류로 보았고, T3B 유형(4건)은 오류가 아닌 기록을 선택한 경우이다. T4A 유형(11)은 한반도에 개기식과 금환식이 발생한 경우, T4B 유형(18건)은 개금식보다 낮은 강한 부분식 경우, T4C 유형(11건)은 0.5식분 이하 약한 부분식 상황인데, 여기에 속한 0.5이하 저식분(5건)과 0.3이하 미식분(5건)는 해석에 따라서 직접 육안으로 관측하기 힘든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이때 애장왕 2년(801) 5월 기록은 이날 경주에서 0.43식분을 보인 발생 일식임에도 불식(不食)으로 기록함으로써, 신라 자신의 직접 관측 결과 기록이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0.5이하 저미식분인 경우 육안관측이 어려운 문제 곧 관측 한계식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3종의 역사일식도로써 삼국시대 일식발생상황을 개금식 중심으로 검출한 결과, 신라 992년 동안 총 76회가 추출되었다. 이는 개금식 빈도가 삼국시대에 매 13년마다 1회 발생하고, 개기식은 평균 27년에 1회꼴로 발생하는 비율임을 시사하였다. 이 새로운 분석은 당시 실제 개금식 발생에 따라 정치사회적 변화를 재해석하는 새로운 역사해석의 기준과 방법을 제시한 의의가 있을 것이라 전망되었다. As to know, there are 67 records of solar eclipse in the ancient Korean history text, Samguk-sagi. As two records are overlapped for the same year of eclipses, there are really 65 cases of solar eclipse events. In order to know the historical material value of solar eclipse records written in the ancient Samguk-sagi, in this paper I made a comparative study between the eclipse records of the Samguk-sagi and those of many ancient Chinese history texts, for Shiji, Hanshu, Later Hanshu, Jinshu, Weishu, Old and New Tangshu, etc. As the result of my analysis in this paper, I checked total 63 cases among 67 records were same or similar records with those of the ancient Chinese history texts. I classified each error type of record eclipse or the recording similarity. The other 4 records are written only in the Samguk-sagi, but they are not dates of real eclipse occurring, because all of them have each certain recording error. This means most of the eclipse records of Samguk-sagi reproduced from those of the ancient Chinese history texts. I also verified these matters by another method of several historical charts of East Asian solar eclipse. It brings up a new issue to our academic circles that someone sometime in the past would have inserted all those eclipse records to the Samguk-sagi by accident, however it is hard to know a reason of the record inserting. Therefore, for the first time, I argued newly that the existence of same Chinese eclipse records in the Samguk-sagi were irrelevant to the recording authenticity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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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關聖敎의 敬信修行論

        김일권(Kim, Il-gwon) 한국도교문화학회 2014 道敎文化硏究 Vol.40 No.-

        조선전기와 달리 조선후기는 소중화사상의 강화로 성리학 일변도의 사회가 지속되었는데, 그 와중에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이식한 關廟 신앙이 18세기 무렵이면 다량의 勸善書들을 한문본과 언해본으로 간행하면서 關聖敎라 부를 만한 비성리학적 종교전통으로 크게 확산되는 국면을 맞는다. 본고는 이 조선 후기 관성도교의 확산을 검토하면서 이들이 추구한 수행론의 면모를 敬信信行論이라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공고한 성리학 사회에서 비성리학적 종교흐름인 관성교가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명나라에 대한 尊明大義적 인식뿐만 아니라 관묘가 지니는 武廟로서의 역할 제고, 관성제군이 지닌 충절보국의 충효사상 등이 주목되었고, 또한 청나라 등극 이래 燕行使로 북경을 기행한 지식인들이 사행로 주변의 관제묘와 문창묘 등 생생한 관성신앙 현장을 반복적으로 기록 보급함으로써 관제 인식의 일반화를 가져온 논변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관성교가 견지한 수행론의 주된 방향은 대중의 敬과 信을 위주로 하는 신행적 실천론에 있었으며, 관성도교의 主神인 三帝君(관성제군, 문창제군, 부우제군)에 대한 崇敬과 충효질서에 대한 敬愛 및 도교적 이념에 대한 信仰은 그 敬信論적 종교신행을 이끌어가는 주요 줄기로 파악되었다. 구체적 신행방법은 삼제군의 畵像을 직접 예배하고, 선악과보의 공과격 권선서들을 독경 신행하며, 積功積善의 가치 아래 삼제군의 표상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는 종교적 신행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三界의 온갖 邪鬼를 제압하고 인간의 올바른 도덕을 覺世시키는 伏魔大帝(관성제군)와 지극한 孝義와 文昌을 권면하는 弘仁大帝(문창제군) 및 대중을 救劫救難하고 修行登仙하는 孚佑大帝(부우제군)를 崇奉하는 관성교 신앙은 조선후기에 새롭게 변동되었던 주목할 만한 비유교적 종교문화양태라 할 것이다. Korean history of Taoism changed generally to three stages in the respect of age. The period of the Three-kingdom States spread out as a Taoist hermit ideology, Koryo period developed as a tendeny of state Taosim, and Choseon period took a new turn of Tanhag Taoism mainly with body practice. As we all know, Choseon dynasty was a country of new Confucianism, oppressing most of the other religious traditions. Through the mode of Confucianism-oriented society, new Taoistic tradition related the Kwan-sung religion are introduced during the late Choseon dynasty period. In this paper, I argued the Kwan-sung Taosim had several complement functions to Choseon society of new Confucianism, for eample, as a military ritual of shrine, the thought of loyalty and filial piety, etc. Above all, Choseon scholars and gentlmen were sent regularly an envoy to Beijing of Chinese Ching dynasty, they recorded into many literatures the things they observed personally Chinese Taoism features of Kwan-sung religion. Their observation diaries were read spreadly, so late Choseon people perceived positively the Kwan-sung Taosim. Toward 19th century many peolple believed plenty of Kwan-sung teachings. The major practices of Kwan-sung Taosim are the reverence and the faith in several Taoist gods. The most famous deities are three historical personal gods, the great Kwan-sung, the great Moon-chang and the great Boo-u. The late Choseon people believed and revered the Taoist deities, and they made an effort to harmonize their life with the Taoist teac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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