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 KCI등재

        남도민속학회의 지향과 과제

        서해숙(Seo Hae-sug) 한국민속학회 2010 韓國民俗學 Vol.51 No.-

        이 글에서는 남도민속학회가 설립된 이래 학회 구성원들의 연구 활동과 연구 성과 그리고 지역민속학으로서의 위상을 점검해보고, 향후 남도민속학회가 지향할 바와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성찰한 것이다. 한국민속학의 발전은 지역민속학의 발전과 비례한다. 각 지역에서 철저한 현장조사와 함께 치밀한 연구를 시도하는 이들에 의해, 민속학은 학문적 체계와 연구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다. 현재 남도민속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정립하는 연구자들의 중추적인 모임인 ‘남도민속학회’의 역할과 위상은 각별하다. 1991년 설립된 이래 오늘까지 꾸준한 연구 활동을 통해 남도민속, 남도문화의 연구 열기를 의미 있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도민속학회는 개인 연구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를 수행하고 있고, 새로운 방향의 논의를 이끌어 지역민속학회로서의 지역문화에 창조적인 논의에 기여하고 있다. 민속학은 민속문화가 연행되는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가 전제되는 학문이다. 따라서 현장조사가 배제된 민속학 연구는 모래 위에 탑을 쌓듯이 학문적 토대를 굳건히 할 수 없다. 한국민속학회가 그렇듯이 남도민속학에서도 민속조사를 통한 학문적 안목과 훈련을 거치면서 연구자들이 육성되었고 그것이 학회 결성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현재 남도민속학회는 남도라는 문화적 영역을 대상으로 그 영역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 즉 민속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지역민속학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는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민속조사 활동과 지역 및 중앙 학계에서의 활발한 연구 활동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남도지역의 관련 연구자들이 결집하여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고 그 전망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잠재적 기능성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민속은 역사성, 전통성,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언젠가 사라질 문화가 아닌 현재를 있게 하고 미래를 담보하는 문화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남도민속학의 지속적인 연구 축적을 위해서는 독자적인 학과로서의 민속학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이는 남도민속학회가 지향하는 학문적 독창성과 경향성이 학문적 기반과 전통 위에서만 기능하기 때문이다. The development of Korean Folk Studies is proportionate to the development of Regional Folk Studies. Researchers that closely work with regional folk activities for in-depth studies establish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Folk Studies. 'Namdo Folk Society,' the central gathering of researchers that study and create Namdo folk, is playing critical roles at a distinct position. Since it was established in 1991, it has constantly supported various research activities to succeed the studies of Namdo folk and Namdo culture. Namdo Folk Society is active as the center of Namdo Folk Studies that research Namdo folk and the lifestyles and mentality of Namdo people. It is particularly conducting large-scale studies that are difficult to handle for individuals and contributes to creating regional culture by leading new perspectives and discussions. This study examined the research activities and accomplishments of the members of Namdo Folk Society since its establishment, and contribution to Regional Folk Studies, and the future responsibilities to be pursued by Namdo Folk Society.

      • KCI등재

        경인민속학회의 지향과 과제

        정형호(Jung Hyung-ho) 한국민속학회 2010 韓國民俗學 Vol.51 No.-

        경인민속학회는 5년의 역사를 지닌 신설학회로서 서울 경기ㆍ인천 지역의 민속을 조사연구하는 지역민속학회이며, 지역적 특성에 따라 도시민속학을 연구하는 학회의 성격을 아울러 지닌다. 26회의 월례발표회, 3회의 규모 있는 학술발표회, 3번의 현지조시를 실시했으며, 46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1권의 총서를 발간했다. 발표 내용을 보면, 주로 민속신앙이 가장 많고, 총체적 접근으로 도시민속 연구사, 민속방법론, 공동체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기타 비교민속, 생업, 세시풍속 등도 몇 편씩 다루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지역이 가장 많고 이어 경기도로 나타난다. 따라서 분야별, 지역별로 다소 편중되어 있는 실정이지만, 점차 지역을 넓히고 분야별 분화하고 도시와 현대민속으로 연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서울을 중심축으로 공간의 확대와 개항지로서의 인천과 연관성율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기도는 서울 확대와 관련지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역민속학회로서 지역 공간의 변화와 거주자의 생업 및 변화 과정을 면밀히 검토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도시민속학회로서 인접 도시사회학, 도시문화학, 도시역사학, 현대민속학과 밀집한 관련을 지닌다. 그리고 도시는 역사적사건이나 외세 침략, 정치적 영향 등의 외무적 충격에 민감하고, 개인에 따라 민속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기존 민속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일상생활사, 개인생애사까지 범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접근 방법은 대략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법, 민속의 확대된 갈래 및 주제로 접근하는 방법, 개인의 생업적 특성에 의한 접근 방법, 역사적 사건에 따른 접근 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런 접근 방법은 모두 개인의 구술생애사를 중심으로 상호 유기적인 관련성을 추출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학회의 당면 과제는 지역과 도시민속의 접점을 어떻게 오색하고, 연구 분야와 지역의 편중 현상을 극복하며, 개인생애사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 그리고 전문연구자의 육성 등이라 할 수 있다. Kyungin Folklore society is the newborn institute which has been for 5 years and investigates folklore around Seoul, Incheon, Kyungki area. In addition, it has a character as the society which studies urban folklore according to local characteristics. Nowadays, monthly meeting has been conducted 26 times, systematic lectures presentation has been conducted 3 times, field survey had been done 3 times. 46 articles were published and one collection book came out. If we see the issues in presentation, folk religion had the highest number and then city folklore methodology, city community issue were dealt with. In addition to these issues, a comparative folklore, an occupation and seasonal customs were presented a little. Research area had the highest number of Seoul and then Kyungki province. Research area was biased according to local places. Therefore, we need to expand the research area and detail by the issues and expand the study range. The approach might be divided into specific-place, folklore theme, private occupational character, historical event. This kind of approach has the mutual organic relatedness with the center of personal oral life history. The present issues of the society are to grope contact points between country and urban folklore, to overcome the concentrated phenomenon of research area and range and to foster lots of exclusive researchers.

      • KCI등재

        조선민속학회 창립의 산파 송석하와 한국 민속학의 길

        임재해(Lim, Jae-Hae) 한국민속학회 2013 韓國民俗學 Vol.57 No.-

        식민치하에서 창립된 조선민속학회는 민족 내부의 자주적 학문운동과 국제적 식민체제극복운동의 두 갈래 상황 속에서 인식되어야 그 의미가 제대로 포착된다. 조선민속학회는 국내 학문운동을 중심으로 보면, 모국어 회복 운동을 한 ‘조선어학회’ 활동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민족문화 운동이고, 국제적 민족운동과 관련하여 보면, 식민지배를 받은 제3세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민속학회를 결성한 선구적 학문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국내외민족운동의 맥락 속에서 주목해야 조선민속학회의 민족사적 의미와 세계사적 민족운동 의의가 제대로 드러난다. 조선민속학회의 성립과 활동 과정을 이해하려면 학회 창립의 산파 역할을 한 송석하의 활동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송석하는 학회를 발의하고 주도하는 가운데 사재를 털어 학회지 『조선민속』을 간행했다. 학회지의 체제와 연간 4회 간행하려는 의욕은 요즘 학회와 견주어 보아도 탁월하다. 그럼에도 송석하는 일본학자들과 어울렸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식민주의 공범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식민주의 시각에 따라, 학회지 『조선민속』 3호발행인이 송석하 대신 아끼바로 바뀐 데 관한 해석이 ‘일본화’와 ‘일제화’로 엇갈린다. 일본학계의 ‘일본화’ 주장에 대하여 전경수가 ‘일제화’로 맞서자, 남근우는 일제화를 비판하며 오히려 일본화에 동조했다. 그 근거는 조선어 사용 금지 시기와, 조선민속학회가 유명무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어 사용 전면 금지 이전부터 일제화가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발행인 교체가 사승관계에 있는 일본인 두 사람에게는 매우 유의미하게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일본화를 주장하는 식민주의 옹호 논리를 재비판했다. 그리고 송석하의 학회활동 중단 원인에 대한 전경수의 질병원인론과 인류학 선호론을 극복하며, 식민체제에 따른 민속탄압론에 이어서 인류학 통섭론을 제기했다. 문제는 한국민속학의 길이다. ‘송석하가 우리시대의 민속학자였다면 어떤 수준의 활동을 했을까?’ 반문할 필요가 있다. 일제치하의 민속학회와 송석하의 활동을 제대로 본받으려면 민속학자로서 민속지 작업과 학술저서 작업을 병행하고 인접학문을 통섭함으로써 자기 학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송석하의 학회창립, 사재출연, 학회지 발행, 민속조사, 논저집필, 인류학 통섭, 박물관 설립 등 그의 활동을 본받아 실천할 필요가 있다. Joseon Folklore Society which was founded during Japanese colonization of Korea can have its meaning clarified only if it is recognized in the two paths of situations, the independent study academic movement within the nation and the international movement to overcome colonialism. Joseon Folklore Society is an ethnic culture movement which was established in the contexts like ‘Joseon Language Society based on mother language restoration movement in the perspective of the aforementioned domestic academic movement and pioneer academic movement constitutes the only folklore society among the 3rd world country who received colonial rule in the aspect of international pioneer academic movement. As such, the ethnic history meaning and world ethnic movement meaning of Joseon Folklore Society may be identified properly only if domestic and overseas ethnic movements are taken note of. For understanding of the establishment and activity process of Joseon Folklore Society, the activities of Seok-Ha Song who played the role as the midwife of the establishment of the society cannot but be paid attention. Seok-Ha Song published 『Joseon Folklore』 the academic journal of the society by paying private money while initiating and leading the society. The system of the society’s journal and his passion to publish as many as 4 times a year are outstanding even in comparison with these day society. Nevertheless, he was also regarded as an accomplice of colonialism due to the excuse that he hung around with Japanese scholars. In such colonialism related view, the interpretation that the publisher of the 3rd edition of 『Joseon Folklore』 the society’s academic journal was divided into ‘Japanization’ and ‘Japanese imperialization’. As Gyeong-Su Jeon hits back as ‘Japanese imperialization’ about the Japanese academic circle’s claim as ‘Japanization’, Geun-Woo Nam rather criticized Japanese imperialization and synthesized with ‘Japanization’, and his ground to that was the coincidence of the period of prohibition of use of Joseon language and titularity of Joseon Folklore Society. However, he criticized again the logic of advocating colonialism which claims Japanization on the ground that Japanese imperialization began even before prohibition of use of Joseon language and replacement of publisher was very significantly utilized to the two Japanese persons who were teacher and pupil. And he proposed the theory of consilience of anthropology after ethnic suppression theory by colonial system by overcoming the Gyeong-Su Jeon’s preference of disease causation theory and preference theory for the Seok-Ha Song’s cause of pause of the society activities. The problem is the path of Korean folklore study. If Seok-Ha Song was a folklore scholar of these days, what level of activities would he do? It is worth questioning. Following the Folklore Society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 activities of Seok-Ha Song properly would be to carry out the work of folklore journal and the work of academic writing simultaneously as folklore scholar and establish the identity of one’s own study by learning inter-disciplinary studies in integrated manner. To that end, it is necessary to take his activities as example and practice them by establishing the society of Seok-Ha Song, investing private fund, issuing academic journal, surveying folklore, writing papers, learning inter-disciplinary study of anthropology and establishing museum etc.

      • KCI등재

        2000년 이후 민속연구의 양상과 향후 민속연구의 보완 과제 모색

        강등학 한국민속학회 2020 韓國民俗學 Vol.71 No.-

        What is Korean folklore? The question of the academic identity of Korean folklore has been discussed since the 1970s. These discussions have contributed to the widespread sharing of the perception that Korean folklore is an independent study characterized by a lot of adjacent studies, and that it is a study dealing with issues of the day as well as the past. Following this trend, Korean Folklore’s research activities since 2000 have fostered fundamental interest in urban folklore, and are also showing signs of revitalizing the current problem consciousness in traditional folklore. So, we believe that modern folklore, which arose after modern times, is no longer classly culture of the ruling class, and its spatial background is also central to the city. In addition, as the mechanism of cultural flow today proceeds from the city to the village, the current cultural development engine of folklore exists in the city. Therefore,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small citizens along with the common people of the city as the realist of the present times. Our folklore academic edition is gradually weakening with the peak of 2009, and the same trend has intensified especially over the last three years. Even in this situation, the research activities of folklore since 2000 have formed a new trend. Discussions on social and academic issues related to folklore have been carried out considerably. Most of these folktales discuss contemporary issues. Since 2000, the alternative trend of Korean folklore has been the present science of dealing with contemporary issues, showing its orientation in line with the thesis as a branch of science that pursues an independent sense of problem. However, there are challenges that need to be complemented. Such tasks include spreading a sense of problems about contemporary issues and unique problems of folklore evenly across various folk fields, accumulating more lively academic work in modern folklore including urban folklore, producing differentiated logic as a branch science literature, enhancing academic activities on folk-related aspects of mainstream culture, including broadcasting, and accumulating cases. 한국민속학은 어떤 학문인가? 한국민속학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1970년대 이후 여러 논의가 있었고, 이러한 논의는 한국민속학이 인접학문이 많은 것을 특징으로 하는 독립학문이며, 과거는 물론 당대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인식을 널리 공유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우리 민속학술판은 2009년을 정점으로 점차 연구활동이 약화되는 추세에 있고, 특히 최 근 3개년에 걸쳐 같은 추세가 더욱 심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2000년 이후 민속의 연구활동은 흐름을 새롭게 형성하는 면이 있다. 민속을 두고 관련된 사회적 문제, 학술적 문 제 등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수행되었다. 이러한 민속 관련 담론은 대부분 당대의 문제를 논 의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전통민속 연구에 당대에 관한 문제의식이 상당한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반적으로 2000년 이후 민속학술판이 연구활동은 약화되는 상황에 놓이면서도 당대의 문제의식이 활성화되는 국면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한국민속학의 대체적 흐름은 당대문제를 다루는 현재학으로서, 독자적 문 제의식을 추구하는 분과학문으로서의 명제에 부합되는 지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부적 으로는 보완되어야 할 과제들이 존재한다. 당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민속학의 고유한 문제의 식을 여러 민속분야에 고르게 확산하는 일, 도시민속을 포함한 현대민속의 학술작업을 보다 활기 있게 축적하며, 분과학문으로서 차별화된 논리를 생산하는 일, 방송을 비롯한 주류문 화의 민속관련 국면에 대한 학술활동을 제고하며 사례를 축적하는 일 등이 그러한 과제에 해당한다.

      • KCI등재

        시ㆍ도 입장에서 모색한 한국민속예술축제 보완

        박미현(Park Mi-Hyun) 한국민속학회 2009 韓國民俗學 Vol.50 No.-

        이 글은 한국민속예술축제 점검과 전망을 시ㆍ도 입장에 두고 출발하였다. 전국 16개 시ㆍ도와 이북 5도 등 지역은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축제와 함께 호흡하여왔다. 1958년 창설된 후 줄곧 서울서 열리던 축제가 1967년부터 지역을 순회하고, 1976년부터는 도청 소재지가 아닌 곳에서도 열리면서 더 가까워졌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한국민속예술축제로 개칭된 1999년 이후 외형은 ‘축제’, 내용은 ‘경연’이라는 이중 구조로 인한 또 다른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모색을 해야 되는 시점이어서 시ㆍ도 입장에서 성과와 문제점, 방향성을 찾아보았다. 전국 시ㆍ도 입장은 두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하나는 경연 방식으로 치러지는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 선수’입장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매년 순회하는 축제 개최지로서 측면이 있다. 시ㆍ도는 급격히 사라지는 지역 민속예술 발굴ㆍ보존ㆍ계승이라는 축제 취지에 따라 의무적으로 경연에 참가하고 있는데, 시ㆍ도 민속예술대표단은 민속예술 전승 주체이면서 심사 평가를 받는 대상으로서 객체가 되는 모순된 입장에 처해있다. 축제를 존재케 하는 민속예술 전승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주인공 자리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관 주도로 짜놓은 행사에 초청된 손님으로서 주변적 위치로 동시에 호명되고 있는 것이다.‘축제’의 외피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시ㆍ도는 ‘참가선수’ 로 대상화됨으로써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위치를 갖지 못한 것은 한국민속예술축제 역사의 어두운 면이기도하다. 중앙정부와 공동 주최하는 개최지로서의 시ㆍ도와 시군 입장에서 살펴본 결과 민속예술 보존과 전승이라는 고유 목적 이외에 개최지 문화의 자긍심 제고와 참가단과 관람객 유치를 통한 특산물 판매와 지역 경제 수익 제고, 관광객 유인 등의 효과를 점점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축제와 연계하고 부대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며 자매결연도시 인원 동원 등의 행정 변화는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이 같은 시ㆍ도 입장에서 무형문화재 인정과 보존, 민속예술 전승자로서 자긍심 계발, 마을 구심체 역할, 실생활에 도움 주는 관광문화 자산 확보 등을 축제 성과로 꼽을 수 있었다, 문제점으로 전승 주체자의 객체화와 단절화, 텅 빈 관중석과 운동장 경연환경, 빈약한 일회적 지원과 제도를 지적하였다. 보완점으로 민중 곧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생산하고 매개하며 전승할 수 있는 민속예술 본질 회복과 비일상적인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일상이 되는 전승여건, 연행될 때 객석 관중과 부담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방향성을 두고 민속예술 일상성 회복과 현장 심사제, 도농교류나 마을축제 연계, 심사위원 전문가 풀제, 긴장감과 활력 제공하는 시상제 유지, 중앙정부 제도적 장치와 지원 제도를 제안하였다. 한국민속예술축제는 중앙정부의 행정력을 발휘하여 민속예술을 지키고 가꿔가는 관 주도 사업으로 단순히 볼거리 제공 축제나 이벤트 형태와 달라야 하며 지역민속 보존과 전승 동력을 촉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한다는 측면에서 시ㆍ도 입장과 지역적 욕구 수렴에 우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편 축제 폐지론 이유 중 하나인 소재 고갈 논란에 대해서는 강원지역 사례를 집중분석한 결과 제한된 전문 인력과 고증에서 오는 문제점으로 파악하였다. 시ㆍ도 입장에서는 예선 성격으로 치러지는 시ㆍ도민속예술축제가 한국민속예술축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기도 하므로 두 축제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한 동반 개선 방안 마련이 중요함을 피력하였다. This writing focuses on the standpoint of city and province concerning examination and prospect of Korea Folk Art Festival. 16 cities and provinces nationwide as well as 5 provinces in the North celebrated the festival together for more than half a century. After its establishment in 1958, the festival, held mostly in Seoul mostly, began its nationwide tour in 1967. From 1976, the festival became closer by opening itself in places that are not necessarily capital cities. After it changed its name from National Folk Art Competition to Korea Folk Art Festival in 1999, it reached another breaking point due to the dual structure of “festival” on the outside, and “competition” on the inside. Therefore, it is time to seek for a new solution. The results, weaknesses, and future direction from the standpoint of cities and provinces are examined. The position of cities and provinces nationwide can be summarized into two standpoints. First, cities and provinces can participate as “competitors” at Korea Folk Festival, which will be held in competition format. Second, cities and provinces can be viewed as sites of annual tour of the festival. Cities and provinces participate in the competition mandatorily in order to discover, conserve and inherit regional folk art, which is rapidly disappearing. City-province Folk Art delegation is the principle agent transmitting Folk Art as well as subject of evaluation at the same time. The paradox is that on the one hand, they play the principle role of transmitting the Folk Art and organizing the festival, and on the other hand, they are also invited as guests at the festival. The fact that city-province didn’t get active position by remaining as “competitors” even after the competition became a “festival” is the dark side of the Korea Folk Art Festival’s history. After examining from the perspective of city-province as the site sponsoring jointly with the central government, and of city-district, various effects including raising the pride about the culture of the site, raising economic profit by selling special products of region, attracting tourists, and more seem to be considered increasingly important apart from traditional purpose, such as conservation and transmission of Folk art. The administrative changes like liaison with local festivals, activation of troop programs, and mobilization of people in sister-city affiliation reflects this type of trend. The fruitful outcomes of the festival from the perspective of city-province include certification and conservation of intangible cultural assets, development of pride as folk art successor, playing crucial role in the area, securing touristic and cultural property benefiting the real life, and more. In contrast, the drawbacks of the festival are objectification and separation of principle agent of transmission, empty seats and stadium environment, as well as poor one-time support and policy. In order to supplement for the shortcomings, it’s been suggested that the local residents should be the principle agent. Restoring the essence of Folk art, transmission condition in everyday life, promoting environment in which all people get joined together should be focused. Also, restoration of ordinaries of Folk art, field screening policy, liaison of local festival or agricultural exchange, inviting professional judges, maintaining award policy to provide vitality, institutional measure and support of central government have been suggested. It’s been argued that Korea Folk Art Festival must be different from simple festival or event and central government should display its administrative power to protect Folk art. Moreover, it’s been emphasized that the priority should be on responding to the desire of the region and the perspective of city-province in order to facilitate regional folk conservation and transmitting power. On the other side, a focused analysis of Gang-Won area case in response to one of the reasons in

      • KCI등재
      • KCI등재

        부산의 지역축제를 위한 지역민속 활용방안

        김정하 한국민속학회 2020 韓國民俗學 Vol.72 No.-

        This treatise aims to search for a method of adapting regional folklore to regional festivals to improve the regional festivals. For this goal, this treatise analyzes the problems of planning and administrating Busan regional festivals opened in 2013, which adapted regional folklore for their programs. The festivals analyzed in this treatise were criticized by many treatises and reports. Therefore, their characters were already clarified fully for several years. Nevertheless, this treatise explores a new method of adapting regional folklore to regional festivals to develop them as means of regional authenticity and participants’ communication and dialogue. By such analysis, this treatise resulted in many regional festival program problems such as insufficient investigations or misunderstandings about regional folklore and timidness in pursuit of regional authenticity. Most Busan regional festivals did not fully adapt the character of regional folklore. Therefore, this treatise goes one step further to suggest proper ways for improving the problems of regional festivals, finding methods of clarifying the authenticity of Busan, and having it easy for participants to communicate and dialogue while enjoying regional festivals. This treatise unifies similar regional festivals as new festivals pursuing three themes: play, refreshment, and regional identity. The regional festivals were named Busan Sea Festival, Old Downtown Festival and Dongnae History Festival, and they were regarded to clarify authenticity and to promote the communal spirit of Busan. With these results, first, it was possible to find and adapt the characters from regional folklore to the regional festival programs. Second, it will be expected to use traditional folklore for creating new culture and for having Busan citizens achieve harmony with each other. Third, it will be possible to adapt regional festivals to education and tourism. 이 논문은 부산에서 거행되는 지역축제의 문제점을 기획과 운영 면에서 살펴보고 개선방안을 제시한 후 지역민속을 접목하여 활성화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시도했다. 이를 위해 기존논의와 평가가 축적된 2013년 전후의 부산 지역축제를 분석한 결과 지나 친 관의 개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운 상업화로 인해 프로그램이 일반화, 상투화됨으로 써 특이성과 차별성이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프로그램에서 제의적 신성성이 사라지고 유흥과 놀이에 치중한 ‘보여주기’ 식 공연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고 지역성은 함축하지 못 한 채 참가자를 객체화된 관객으로 전락시켜 자기결정권마저 빼앗음으로써 지역축제다운 성 격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이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마을주민이 주도하던 전래의 마을 굿이나 동제의 원리를 응용하여 지역성을 함축한 프로그램을 진설하는 한편 관 주도에서 벗어나 참가자가 주체가 되어 축제를 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나아가 2013년 현재 부산의 지역축제 가운데 나름대로 지역민속이 접목된 지역축제인 <광안리어방축제>를 비롯해 <가덕도숭어축제>, <동래읍성문화축제>, <금정산성역사문화 축제> 등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했다. 그 결과 해당 지역축제들마저 지역민속에 대한 발굴과 고증이 부족하고 전래민속의 재현이 허술하거나 지나친 현대화로 인해 전래민속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례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그 문제점을 개선하고 지역축제를 활성화하는 구체적 대안으로 축제의 취지이자 지역민속의 원리인 ‘유희’와 ‘쇄신’, ‘지역성’이란 주제를 설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그 주제 에 따라 기존의 유사축제를 통폐합한 [부산바다축제], [원도심축제], [동래역사축제]의 구 체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즉, ‘유희’를 주제로 한 [부산바다축 제]에서는 참가자가 인습적 형태를 전복하는 주체로서 타자와 연결되어 제의성과 생산성, 오 락성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쇄신’을 주제로 한 [원도심축제]에서는 근현대기 이질적 문물 도입으로 인한 사회변화와 충격을 재현함으로써 옛것과 새것,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공공자 산과 개인자산, 공적 생활과 개인생활의 극적 전화(轉化)와 조화를 추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지역성’을 주제로 한 [동래역사축제]에서는 지역민을 비롯한 참가자가 프로그램을 통해 헤 게모니를 균분(均分)해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상징적으로 재구성된 지역정체성에 접근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부산에서 축제의 취지와 지역민속의 원리를 활용하여 지역축제를 활성화함으로써 학습과 관광의 활용과 전래문화 계승, 새로운 문화 창출, 나아가 지역민의 화합과 공동체의 식 강화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 KCI등재

        한국 민속예술축제가 민속의 전승에 미친 영향

        한양명(Han Yang-Myung) 한국민속학회 2009 韓國民俗學 Vol.50 No.-

        지금까지 민속예술경연대회(한국민속예술축제)에 대한 논의에서 경연대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다양한 부면에서 노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경연대회의 대상인 민속 그 자체의 존재 및 성격 변화와 전승주체의 동향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부연하자면 본디와 다른 맥락에서 전승되던 민속이 경연대회를 위해 재구성 되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유통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성격의 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야기된 전승주체들의 위상 변화에 대한 논의가 쟁점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선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텍스트를 생산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 동원된 기술적 측면들을 개관한 다음, 민속의 존재 및 성격과 주체의 위상 변화 문제를 검토해 보았다. 연구결과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서 전래의 민속은, 참가작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가공되지 않은 자원으로 인식되었고 민속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시공간 압축 및 선택과 집중을 통한 인상적 연출이라는 필수적 기술과 콜라주, 스펙타클화와 같은 선택적 기술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민속예술경연대회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전승주체와 민속은 서로 이화됨으로써 상호 소외와 물화의 관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Up to now, the problems about the National Folk Arts Contest are revealed from various side on the estimation. But, in my opinion, the full discussion about the issue, the change of folklore’s existence and character as a object of the contest and the trends of the subject, was not enough. Explain clearly, the folklore which had been passed down on the context which is not original was restructured for the contest, and folklore had been designed as a cultural property and It has been put into circulation. However, the discussion about the change of character in this process and change of status of the subject during that process does not became a issue. In this context, I overview a course of produce text and technical side to attend contest. Then I examine the folklore’s existence and character, and the change of status of the subject carefully. As a result of study, the traditional folklore has been recognized as aresource to make a work of art which is need to attend the contest. And essential technic that including time-space compression and impressive direction through selection and concentration, and optional technology; collage, spectaclization, were mobilized in the process for making a work of art. Through this process, the subject reificated folklore, but also the subject had been a part of folklore. Eventually, dual relationship between reification and alienation developed between the subject and folklore. In this process, folklore had been departed from life context, and the reification and alienation was not solved between the subject and folklore. Finally, the transmission of the subject was a folklore as a product. In addition, it was not the art of life and not the folklore of life which is for human through reflection and self-motion. The leftovers are folklore and the subject that was reificated and alienated by each other.

      • KCI등재

        독일의 도시민속학 연구 경향

        이정재(Lee Joung-Jae) 한국민속학회 2005 韓國民俗學 Vol.41 No.-

        도시민속학과 현대민속학은 오늘날 민속학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 추세이다. 문화의 세기이자 글로벌시대인 오늘의 상황에 자민족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그에 기초한 현재의 문화 현상을 분석하여 당대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학문이 취할 당연한 자세이다. 한국 민속학계에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도시민속학적 연구는 지극히 미약하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독일의 민속학도 나름대로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발전을 해왔다. 그 과정을 더듬어 한국민속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격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가 있다면 이를 피하는 지혜를 얻는다거나, 앞선 이론이나 연구 방법론이 있으면 받아들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독일도시민속학의 연구 경향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동안 도시민속학에 대한 추상적인 설명과 소개를 벗어나 구체적인 개설 강좌와 연구 방법 및 연구 주제들에 대한 소개 및 설명과 분석을 위주로 하였다. This paper focused on urban-folklore in Germany. After 2nd world war tried German folklore academy to make a new methode of research for analyse German culture. They were depressed by their historical incident. The work of Swiss schola Richard Weiss, 〈Volkskunde der Schweiz〉, influence on German schola. For realization of urban folkore in Germany they should experience a series of social and academic accidence; Movement of aginst Nazi, Student movement, women folklore, development of big city, visual media and diffusion of digital culture etc. By these process we can see two facts; one is confusion of concept about urban folklore, second, certain establish of urban folklore or modern folklore is not jet ended but in progress. But in this progress the results is worthy of cross attention. The studies of ADV, DVA, that is worked by historical and geographical methode Difusionism. In addition to this introduced many of theories of folklore study; for example 문화사회비평(kultur-gesellschaftkritisch) 혹은 비평적 경험문화학(Kritische empirische Kulturwissenschaft), 문화변동(Kulturwandel), 사회민속학(soziologische Volkskunde), 의사소통학(Kommunikations-forschung), 문화인류학적 민속학(Ethnologische Volkskunde), (Vergleichende Folklotistik), (historisch - archivalische Forschun) etc. Comparing with these theories I have introduced many of lectures, that were opened at faculty of folklore in german university last 5~6 years. The lectures were go on by german folklore following on their new theories. Now a days appeared on an new subjects in lectures, especially body, healthy, Fitness and wellbing, eco-environment, and a problem of die and old, social pure and difficult and about individual life etc.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