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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兩漢代의 五行論的 世界觀에 따른 五郊 儀禮 考察

        金一權 중국사학회 2003 中國史硏究 Vol.23 No.-

        In this Paper, 1 studied on the Five Rural Sacrifice Rituals developed in Han dynasty period, which are important for understanding how the Five Changes Thought is applied to national process of rituals. The rituals are sacrificed to what we called "O-dge" in Chinese wu-di, the Five Heavenly Emperors, being believed as the governing gods against five directions : the east Blue emperor, the south Red emperor, the west White emperor the north Black emperor and the middle Yellow emperor. They are corresponded to wood, fire, metal (or iron), water and earth respectively based on the Five Changes Theory. In those days, however, the "O-dge" are not regarded as directional deities in the earth like later understanding, but are sacrificed as the Superme Being reigning over the heaven. This fact is a very important and difficult problem. Because their concept of Superme Being is plural. To solve these difficult problems, they provided for the aspect of the open-close relationship. In opening aspect the Five Emperors are regarded as plural superme deities, but otherwise in closing aspect they are regarded as a single deity of totality In this case they are called Shangti as the Heavenly Prime God. The former is pluralism or polytheism, the latter is monism or monotheism. As this, though it is obvious they are five beings, in that they are managed to a single deity without complete separation, 1 would like to contrast with so called kathenotheism or henotheism developed in the ancient Hindu myth tradition. 1 thought that's a very interesting and important point of view in understanding ancient Chinese way of thinking about god or heaven. A new Supeme Being is introduced into the national systems of rural sacrifices during the period of Emperor Hanwudi (r. 141-87 B.C.). The god is named Taj-yi, meaning literally the big one symbolizing the north polar star regarded as the cosmic center· He is the supreme god sacrificed to the prime ritual serving Heaven. As a result of that, the O-dge are retired from the main deity on the rural rituals and became assistants to the Tai-yi god. After this, the O-dge are reborn as the guarding gods receiving holy spirits or vitality from five directions in the Five Suburban or Rural Sacrifice Rituals in Later Han dynasty. This new ritual system is initiated by a Confucian politician Wang-mang (B.C.45-A D.23). In this system the O-dge are boiled as each a main sod governing each directions and each seasons, as it were natural orders. 這編論文旨在說明中國賓禮的起源與演變的過程, 本論文主要講述中國的賓禮從起源點周代覲禮出發在中國王族發展歷史過程中是즘樣演變的.幷對各年代所反映的國際關係進行整理.儀禮中的覲禮裡記載了周天子與諸侯間的謁見儀式.此謁見儀式與天子和藩國間的謁見儀式類似. 雖然在 '覲禮' 上沒有詳細的記載,也看不出任何區分.但唐代杜佑認爲周代天子的謁見儀式分爲天子與諸侯本人的謁見儀式和天子與諸侯派遣的使者間的謁見儀式兩種.此兩種謁見儀式與覲禮本身一直影響到後代幷被後代所繼承. 周代以後,中國政治體制從封建制改成郡縣制,隨之,賓禮也從 「天子-諸侯國」關係變成「天子-藩國」關係爲主,此關係在各個朝代編纂的禮書裡都有記載,其中有代表性的是『開元禮』此書不僅對唐代.而且對以後中國王族的賓禮提供了一個標準,從『開元禮』以後中國賓禮之對象是以藩國爲主,同是這一儀式又分爲藩主和藩使兩種情況.雖然這種儀式隨着各個時代按照官僚體制的修訂行政機關的擴大等而不得不變得複雜化,但從其本質士.比較而言. 『關元熊』不可否認地繼承了『儀禮』 中的 '覲禮. 在宋化 『雌和五禮新儀』 繼承 『開元禮』 之體制.宋代國際關係由契丹興起而縱的臣子關係變成橫的兄弟關係.宋代賓禮之特徵是先把賓禮的對象按照國家或者地區進行分類,然後再行使賓禮.雖然宋代賓禮直接繼承了『開元禮』之體制.但是其起源可一直上溯到『儀禮』. 在歷代賓禮中.明代賓禮最槪括性,幷且分類最詳細.明代禮書分成三個部門;a)蕃王朝貢b)蕃使朝貢c)遣使,其中a)項中的儀注 和c)項中的之內容是明代禮晝的最大特徵.

      • KCI등재

        한국 민속학의 학제간적 복합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30년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한국학 Vol.35 No.2

        이 글은 한중연 민속학 전공 30주년에 즈음하여 민속학의 학문적 독립과학을 주창하다 작고한 고 장철수 교수의 10주기를 기리는 일환으로 한국민속학의 학제간적 복합성과 분과학적 특성을 짚어본 글이다. 무엇보다 해방 이후 전개된 민속학 진영의 흐름은 매우 다양한 학회설립과 기관 창설을 통해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 정립에 몰입하였던 다학회적 특성이 활발하였음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민속문화의 기반이 향토와 지역성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전국 도 단위의 민속문화의 해 선정과 범학계연합인 한국민속학자대회가 국가기관과의 유기성 속에 공동확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민속문화가 민족문화, 전통문화, 지역문화, 향토문화로의 정체성을 재생적으로 확인하는 일환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외적 특성 외에 민속학의 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민속학의 주요 기초로서 민속학사론과 민속현상학으로 대별되는 민속학방법론을 중심으로 두고, 학제간 측면에서 구비민속학, 역사민속학, 종교민속학, 인류민속학, 사회민속학의 다섯 인접학문이 긴밀한 연계성을 지니면서 복합학문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민간의 설화적이고 구비전승적인 구비문학민속학은 민속학이 학적으로 출발한 주요 배경으로 거대한 기반을 엮어왔고, 민간의 속신과 민속신앙, 무속현상 등을 다루는 종교민속학은 민속 주체의 정신문화적 해석학에 크게 기여해왔다. 또한 각종 민속현상의 역사적 해명과 해석을 추구하는 역사민속학은 기존 정통사학이 소홀히 한 민중의 삶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민족을 하나의 인류단위로 보고 한국인의 문화적 관습을 조사 분석하는 인류민속학 역시 민속학의 현지조사적 접근과 민속지적 특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해왔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 조직과 사회문화적 특질을 드러내려는 사회민속학은 일상생활의 민속현상과 마을이나 지역 단위의 연구기초를 심화해왔다. 이렇게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인접 분야에 크게 기대고 있는 민속학이 자기 학문의 이론적 심화를 위하여서는 이들 분과학과의 복합적 방법론 개발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민속의 주체가 되는 민이 시기적으로 끊임없이 변동하는 까닭에 정합적인 민의 재해석을 통해 민속학의 학적 독립과 자유로운 학문 추구를 노정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였다. 이에 시대를 넘어서도 추구할 가치가 있는 학문으로서의 고전민속학을 정립하여 민속과 문화의 학문인 민속문화학이 확산적으로 지향되기를 제시하였다.

      • KCI등재

        『승정원일기』영정조대 30년간(1770~1779) 측우기록과 우량주척 고찰

        김일권 조선시대사학회 2018 朝鮮時代史學報 Vol.- No.84

        조선의 측우기는 세계사적 발명품이자 한국의 역사기상학에 분기점을 이룬 사건이다. 이논문은 그러한 가치의 세종조 임술년 측우기(1442)의 창제와 조선 후기 영조 경인년 측우기(1770) 재건 과정을 검토하면서, 그 측우기의 제원과 크기를 통해 당시 사용된 우량 주척의문제를 먼저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가장 앞선 연구로 중요한 와다유지(1917)의 우량기록연구결과를 우일수, 우량표, 경정우량표 문제 중심으로 재검토하였고, 그 결과 이 우량연구가 『승정원일기』의 본문 측우기록과 일치하지 않은 점이 적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조선후기 경인측우기로 시작된 『승정원일기』의 측우기록은 영조 46년(1770) 6.6일(음5.13)부터 한말 순종 원년(1907) 11.23일(음10.18)까지 장장 138년간 연속된 매년월일 기록이란 역사기상학적 가치가 높은데, 『승정원일기』는 본면기상부의 측우기록항에서 그 측우기록을 수록하여 전하였다. 표제기상부는 첫줄에 사관이 판단한 그날의 개략적 기상상태기록이고 주로 ‘청음우설풍(晴陰雨雪風)’의 5대 기상현상 중심으로 표기하여 자료특성이 다르다. 본고는 『승정원일기』의 측우기록을 전면 분석하는 일환으로 측우기 기록이 처음 시작된영조 46년(1770)부터 정조 23년(1799)까지 18세기 후반 30년간(1770~1799) 단위를 대상으로 삼아, 연간 우량과 월별 우량 및 필요시 일별 우량 상황을 상세히 고찰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측우기록 분석방법론을 개발하였다. 연간 우일수 검토결과, 1770년대는 346일간, 80년대는 494일간, 90년대는 539일간으로점점 더 비내린 날이 증가하였으며, 우량치 분석으로도 1770년대는 6,622㎜, 80년대는10,764㎜, 90년대는 11,138㎜로 점점 증가하였고, 30년간 연평균 우량값은 950.8㎜로 계산되었다. 최다 우일년과 최다 우량년을 검토하여 수해가 의심되는 해로 정조 8년(1784), 정조 11년(1787), 정조 15년(1791), 정조 16년(1792)가 추산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여름철 우기인 7월과 8월의 강우 상황을 자세히 살폈다. 이들 측우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상관측 시간대가 변경되었음을 확인하였으며, 정조중반까지는 하루 기상의 구분 시점을 새벽 05시경 매상(昧爽)에 두고서, 주간은 ‘매상 05시~ 유시 19시’(14시간) 구간으로, 야간은 ‘초혼 19시~오경 05시’(10시간)로 비균등 구분하여 측우 기록하였다. 이 체계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정조 15년(1791)부터는 1일 3차 8시간 균등시간제로 개정하였고, 현대시각으로 새벽 04시경의 개동(開東) 시각을 하루 시작점으로 삼고서, 낮12시의 오초(午初)와 밤20시경의 인정(人定)을 각기 기준시각으로 적용하였음을 분석하였다. 이 개정규정이 『서운관지』 권1 「번규편」 <측우기조>에 수록되었다. 끝으로 영정조 30년간 중 월별 비가 많은 다우월 빈도와 추이를 조사하여, 고우량월(100 ㎜이상)은 여름형 강우특성이고, 중우량월(50~10㎜)은 봄가을형, 저우량월(10㎜이하)은 겨울형 특성임을 분석하였다. 『승정원일기』에 수록된 측우 기록 방식이 누적방식과 분할방식으로다르며, 이를 통해 시간당 강우속도 추산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추후 『승정원일기』 138년간 강우기록에 대해 전면적 분석과 다각적 복원을 통해 조선후기 뿐만 아니라 한반도 기상기후변동 해석에 참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meteorological phenomena during the Choson Dynasty, especially during King Injo and King Hyojong(1623~1659) from the records of 『The Annals of Seung-jeong-won』(Seongjeongwon Ilgi). 『The Annals of Seung-jeong-won』 is an important source in terms of historical meteorology in Korea in that this annals recorded everyday weather information during Choson Dynasty. In these annals, weather information was recorded in two kinds of forms; title form and expository form, the former is representative weather of that day, such as clear, cloudy, or rainy and snowy, while the latter gives additional and concrete weather information, like fog, thunder, hail and frost, and even lunar and solar halo, which were considered important phenomena in the past, and also natural disaster. These records allow analysis of following factors in this paper. First, the rates of clear day. Second, droughts and floods, and the following damage caused by these natural disasters. Third, yearly and seasonal tendency of lunar and solar halo. Fourth, the first frost date changes. Especially, research on the first frost date yielded significant results. During 1623~1659, the first frost date was between September 19th and October 21st, and the average date of the first frost was around October 3rd. It shows difference with the average date during 1864~1906, which was around October 13th according to the former research. This result shows climate changes of that time. As a conclusion, this research not only shows the value of the 『The Annals of Seung-jeong-won』 as a meteorological text, but also shows the various aspects of the weather during the Choseon Dynasty, and therefore will contribute to the foundations of historical meteorology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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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정원일기』의 인조-효종대 역사기상일지적 성격과 기상기록 특성 고찰

        김일권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6 동국사학 Vol.61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후기 『승정원일기』의 역사기상학적 기록가치 를 드러내는 일환으로 『인조일기』와 『효종일기』를 중심으로 그 기상기록 방식과 현황을 검토하고 인조원년에서 효종10년 동안(1623~1659)의 기상기록 특성을 분 석하였다. 기상기록은 날짜칸과 함께 제시된 <표제기상부>와 일기 본론의 <본면 기상부>로 나누어 접근되었고, 전자는 1차 기상요소인 청음우설풍(晴陰雨雪風)의 5대 기상현상 중심으로 기록하였고, 후자는 기상실체성이 강한 비와 눈, 안개와 서리, 우뢰와 우박, 햇무리와 달무리 등의 2차 기상요소에 대해 아침 낮 늦녘 저녁 밤 새벽 등의 구간별 시간대 관찰과 자축인의 12시진법 등으로 매우 구체적인 발 생시각과 지속시간을 관찰하여 기록한 특성을 보였다. <표제기상부>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 기상으로 맑음과 흐림이 주목되었고, 맑 음은 인조대 연평균 286일간이고 효종대는 270일이어서 16일간 줄어든 변화를 보 였다. 이는 일조시간의 변화로 연결되는 면이어서 이 시기 기상변화와 흉작황 문 제에 일정한 기상사료로서 의의가 있을 것이라 파악되었다. 다음으로 강우일수를 분석하여 연평균 50일 이상의 다우년과 연평균 10일에 못미치는 과우년을 검출하 여 제시하였고, 특히 연속된 과우년은 당시 심각한 가뭄 상태를 초래하였을 것이 므로 이에 관련한 기양 기우제 기록이 더욱 빈번해지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본면기상부>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 기상은 햇무리와 달무리 현상이었으며, 이를 집중 분석한 결과, 햇무리는 연평균 79일간, 달무리는 연평균 38일간 기록빈 도를 보였고, 각기 매월 7일씩과 3일씩 관찰된 결과였다. 두 무리의 연도별 분포도 는 매우 유사한 변동 곡률을 보이고 있어서 대응성이 강한 기상현상임이 확인되었 다. 계절별 분포로 본 결과, 둘다 봄철이 가장 높은 가운데, 햇무리는 봄>여름>가 을>겨울 순으로, 달무리는 봄>겨울>가을>여름 순의 발생빈도 특성을 보였다. 끝으로 서리 기록 63건을 추출하고 그 중 가을 첫서리를 분리하여 분석한 결 과, 첫서리 시기가 9월 19일에서 10월 21일 사이의 33일간으로 변동하였으며, 10 월 서리에 비해 9월 서리 비율이 43% 비율이고, 그 첫서리 평균일자는 10월 3일경 으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고종일기』를 통한 19세기 후반 고종대 44년간(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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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Ps P2P Insurance플랫폼을 통한 영세 물류 개인 사업자의 소득 개선 방안 연구

        김일권,정종필 한국산업융합학회 2021 한국산업융합학회 논문집 Vol.24 No.2

        With COVID19 Small-scale Logistics Entrepreneurs are under a lot of pressure. According to a report by the South Korean National Police Agency, 75.5 percent of the traffic deaths in South Korea are caused by truck driver accidents involving truck drivers. In Korea, about 1,000 people die each year from truck driving accidents. Every day, two to three deaths occur in freight car accidents. The burden on small logistics private operators, which has increased since COVID 19 in 2020, is proving to be the number of deaths from industrial accidents. According to the Korea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gency’s “Status Report on Industrial Accidents in the Delivery Industry” from 2012 to 2019, there were 18 deaths from industrial accidents in the delivery industry over the past eight years. In 2020, about 20 courier workers died from overwork. Seven of them died of cerebral cardiovascular disease caused by overwork. Also, Korea’s small logistics private operators are classified by law as “special employment workers.” In Korea, “special employment workers” are not subject to mandatory subscription of four major insurance policies, including employment, labor and insurance. For this reason, Korea’s small logistics businesses represent about 80 percent of the average income of Korean city workers. The Korean Insurance Business Act was revised as of December 8, 2020. Article 35 of the Korea Cargo Transport Business Act stipulate that freight cars with a maximum load of more than 5 tons or a total weight of 10 tons are required to be insured. It imposes a fine of up to 5 million won on unaccompanied drivers. The CIPs P2P Insurance platform is a public financial service system that can improve the annual income of Korea’s small logistics private operators without additional government financial expenditure. The CIPs P2P Insurance platform provides indirect savings in Korean government spending. The CIPs P2P Insurance platform reliably improves the annual income of Korean small logistics busine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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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5세기 금석문에 나타난 干支曆日 자료와 曆法 연구

        김일권 동북아역사재단 2012 東北亞歷史論叢 Vol.- No.36

        This article treats the Koguryo calendar system. It is difficult to find detailed information of that calendar due to the limited historic data. Further, only a few sexagenary cycle records from Koguryo are handed down through Samguksagi , the oldest Korean history. I examined not only Koguryo records, but also fifth century epigraphic data from Koguryo. In particular, I found that an intercalary month record first appeared during the reign of King Jangsu(412~491) in the Koguryo Annals in Samguksagi . That occurred in 488, during the reign of King Jangsu. This record of an intercalary month means that Koguryo used the lunar-solar calendar system at least around the fifth century. That calendar may be the Xuanshi Calendar(412~522), which the Northern Wei dynasty used for a long period of time. Koguryo’s position for the intercalary month differs from that in Chinese documents from the same period. Koguryo used an eighth month intercalary month, but Northern Wei used the ninth month intercalary month. Owing to this difference, I believe Koguryo established a calendar system that differed from the Chinese calendar. To analyze several fifth century epigraphic data, including the Deukheung-ri mural tomb, I knew that it was possible for Koguryo to use its own calendar, which differed from the Chinese Taeshi Calendar used from 265 to 420 in Eastern Jin. As a result, I raise a new hypothesis of the existence of a Koguryo calendar. I have named this the Yongnak calendar of the Koguryo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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