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조선 후기 병풍 연구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4509503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조선 후기에 유독 병풍 형식의 서화가 증가한 현상에 주목하
    여 그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논구하고자 한다. 조선 사회를 견인하였던 유
    교의 이념은 의례를 통해 실천되었다. 이 과정에서 병풍은 왕실의 오례(五
    禮)와 민간의 사례(四禮)에 적극 활용되었다. 아울러 왕실의 행사를 기념
    하기 위해 제작된 서화도 18세기 후반부터는 대개 병풍 형식으로 제작되
    었다. 이 밖에 일상적인 실내 장식과 방한 용도로도 병풍은 꾸준하게 사용
    되었다. 조선 후기 병풍은 단순한 서화의 형식을 넘어 의구(儀具)이자 일
    상용구(日常用具)로서 조선 사회 곳곳에서 사용된 것이다.
    병풍이란 목재로 병풍틀을 만들고 그 위에 서화를 붙인 것이다. 이는 동
    아시아의 전통적인 서화 장황 가운데 하나였다. 병풍은 필요에 따라 펼치
    고 접을 수 있다. 따라서 임시로 공간을 구획하거나 의례의 장엄(莊嚴)을
    위해 활용되었다. 아울러 일상적인 방한(防寒)과 장식 용도로도 사용되었
    다. 병풍은 용도에 따라 병풍차(屛風次)의 주제, 재료, 높이, 폭의 수가 결
    정되었다. 한국 서화사에 있어서도 병풍은 걸개〔軸〕, 책첩〔帖〕, 두루마리
    〔卷〕의 장황 형식과 함께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병풍은
    신라시대부터 장식과 교역, 조공품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고려시대에
    는 십장생도, 사군자도, 산수도 등의 병풍이 만들어졌다. 조선 시대의 병
    풍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물의 수도 상당하다. 특히 조선 후기가 되면
    병풍의 용도가 세분되고 사용 계층도 확대되었다. 이는 영조(英祖) 대에
    왕실 오례에 병풍을 사용하는 것이 국정예서(國定禮書)로 명문화된 것과
    관련이 깊다. 이를 바탕으로 왕실의 행사를 장엄하는 장병(裝屛)과 행사를
    기념하는 계병(禊屛)의 제작과 사용이 정례화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19
    세기가 되면 유교 예속(禮俗)을 따르며 양반 의식을 갖춘 인구가 증가하였
    다. 이로 인해 민간사례(民間四禮)에 사용되는 병풍의 제작은 대폭 증가하
    였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 후기의 정치·사회·경제·문화·인구학적 변화가 병
    풍의 제작과 사용을 견인한 양상을 구명(究明)하는 동시에 이것이 미술사
    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병풍이라는 형식이 조선 후기에 증가하는 현상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왕실 병풍의 경우 주로 궁중기록화와 궁중장식화
    를 논구하는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이 때문에 이들 대부분이 왜 병풍 형식
    이었는가와 그것이 어떻게 배설(排設)되고 어디에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질
    문으로는 이어지지는 못한 측면이 있다. 또한 민간에서 제작한 병풍에 대
    해서는 대부분 민화의 범주로 논의되어왔다. 이로 인해 길상(吉祥)과 벽사
    (辟邪)의 화제가 강조되었을 뿐 정작 이것이 왜 제작되었고 어떻게 사용되
    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간과된 측면이 크다. 병풍의 사용은 500년 간 조선
    사회를 움직인 가장 근본적인 이념인 유교와 그것의 실천 지침인 『주자가
    례(朱子家禮)』를 조선화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왕실은 왕실의 사
    치를 통제하는 한편 의례를 정례화하기 위한 국정예서를 간행하였다. 영조
    대에는 『국혼정례(國婚定例)』(1749년)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1758년)을 간행하여 각각의 의례에 요구되는 병풍의 종류와 수량을 명시
    하였다. 병풍의 종류와 화제(畵題), 채색 여부와 재료, 병풍 배설의 시점과
    장소에 대한 명기는 왕실 의례용 병풍을 통제하는 방편이 되었다. 아울러
    정조 대에는 사대부 계층에서 제작되던 계병(契屛)의 전통을 왕실이 차용
    함으로써 궁중 행사를 기념하는 계병(禊屛·稧屛)의 전범을 정례화 하였다.
    이는 차비대령화원제도(差備待令畵員制度)를 통해 제도적으로 지원되었다.
    정조(正祖, 1776~1880년 재위)의 정책은 궁중 미술을 진작함으로써 김홍
    도(金弘道, 1745~1803년 이후)를 위시한 걸출한 화원화가들을 배출하였
    다. 화가들은 전대로부터 전해진 다양한 화제를 병풍으로 재구성하는 한편
    새로운 병풍화의 주제를 창안해 냈다. 아울러 이러한 왕실의 병풍은 제용
    감(濟用監)과 도감(都監)의 병풍 대여를 통해 사가(私家)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 사례에서도 병풍의 사용이 필수화되었다. 사대부 계층은
    『주자가례』를 주해하는 과정에서 원전에는 보이지 않던 병풍의 사용을 명
    기한 절차를 포함시켰다. 또한 마을 공동체의 향약안(鄕約案)에 의례용 병
    풍의 공동 소유를 포함시켰다. 결국 이러한 과정은 병풍 사용의 관행이 왕
    실을 넘어 민간에까지 확산되는 동기로 작용했다.
    19세기에는 전대에 완성된 제도와 병풍 사용의 전통이 순조롭게 계승되
    었다. 이로 인해 ‘병풍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병풍이
    여러 계층에 의해 소비되었다. 중앙 정부에서는 왕실의 계병 수급의 안정
    화를 위하여 지방관에게 계병채(禊屛債)를 부과하였다. 이를 통해 계병은
    행사도 형식 뿐 아니라 일반 주제의 병풍화로도 다수 주문되었다. 아울러
    병풍이 각폭(各幅)이 아닌 연폭(連幅)으로 꾸며지는 형식이 유행하면서 왜
    장병풍(倭粧屛風)이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었다. 용어의 연원은 일본 막부
    에서 조선 왕실로 보낸 수 백점의 왜병(倭屛)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일본
    병풍의 유입은 문인 계층이 가졌던 병풍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꾸어 놓
    았다. 고종(高宗, 1863~1907년 재위) 대가 되면 일반 병풍보다 제작비용
    이 최대 8배 높은 자수병풍과 12폭으로 증가된 대형병풍이 유행하였다.
    이는 병풍 형식이 가진 전시의 효과를 고종이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
    이다. 이로 인해 병풍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더욱 강화되었다. 아울러 흥
    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과 왕실 여인들이 병풍 제작의 주체가
    된 경우가 증가했다. 또한 병풍은 서양인들에게 하사되는 외교 예물로도
    활용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결국 왕실이 병풍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
    함으로써 병풍을 다양하게 활용한 역사를 보여준다.
    19세기 민간에서의 병풍은 서화시장에서 병풍차(屛風次)가 유통됨으로써
    크게 확산될 수 있었다. 사적 주문이 아니라 고정 점포를 통해 거래되었기
    때문에 병풍의 소비 계층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전대보다 많은 인구가 양
    반 의식(意識)을 가지게 되면서 의례 병풍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아울러
    한양을 넘어 평양, 안주, 전주, 군산, 삼척, 강릉 등 지방의 거점 도시에
    화단이 형성되었다. 아울러 서화 시장을 중심으로 병풍 전문화가가 활동하
    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정 화가가 특정 화제를 독점하거나 특정 가문이
    특정 기법을 세전(世傳)시키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이들은 초본(草本)과 견
    본(見本)을 활용하여 동일한 도안의 병풍을 다량 제작할 수 있었다. 이 같
    은 전략은 화가로 하여금 전문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하는 방편
    이 되었다. 병풍 사용 인구의 확산은 점차 병풍 시장을 분화시켰다. 이를
    통해 고급 병풍과 저급 병풍의 시장이 모두 활성화 되었다. 전자의 경우
    이금(泥金), 호분(胡粉), 자수 등 제작 시간과 비용이 높은 기법으로 유행
    하였다. 반면 후자는 석화(席畫)로 제작 가능한 속필(速筆)과 혁필(革筆)의
    방식이 선호되었다. 민간 병풍은 기존에 있던 도상을 결합하여 여러 화제
    를 한 화면에 합쳤다. 이를 통해 하나의 병풍으로 복수의 효과를 낼 수 있
    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급기야 제례용과 축연용(祝宴用) 주제를 양면에 그
    린 양면 병풍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20세기에는 육필(肉筆) 서화 뿐 아니
    라 인쇄 화면도 병풍차로 제작되었다. 특히 식민시기 이후에는 병풍이 상
    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어 매매, 전시, 절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
    대에도 유교 의례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병풍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거
    시적 관점으로 보자면 조선 후기 병풍 문화는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셈
    이다.
    지난 50여 년 간 한국회화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축적해왔다. 조선
    화단에서 활약한 대가(大家)들의 작가론과 주요 화제를 분석한 주제론 연
    구가 조선 시대 회화사 연구의 근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축
    (軸)·첩(帖)·권(卷)·병(屛)이라는 형식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성과가 없었
    다는 것이 본 논문의 출발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후기 화단에서 가장
    부각되었던 병풍의 형식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병풍차로서의 서화
    를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 병풍의 제작과 사용 전반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자 하였다. 따라서 병풍이 배설된 공간, 병풍이 사용된 의례, 병풍을 주문
    한 계층, 병풍차의 제작 환경, 병풍차의 유통 경로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
    으로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간 회화사를 주도해 온 문인화론과
    직업·화원화가론, 궁화론(宮畵論)과 민화론 같은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병
    풍이라는 틀로써 조선시대 회화사를 다시 보고자 하였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본 논문은 조선 후기 병풍이 지닌 미술사적 의의를 조명하고자 하였
    다. 아울러 고전문학, 문헌사학, 민속학, 인류학, 문화재 보존학과 같은 인
    접 분야의 학문과도 연구 성과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번역하기

    본 논문은 조선 후기에 유독 병풍 형식의 서화가 증가한 현상에 주목하 여 그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논구하고자 한다. 조선 사회를 견인하였던 유 교의 이념은 의례를 통해 실천되었다. 이 ...

    본 논문은 조선 후기에 유독 병풍 형식의 서화가 증가한 현상에 주목하
    여 그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논구하고자 한다. 조선 사회를 견인하였던 유
    교의 이념은 의례를 통해 실천되었다. 이 과정에서 병풍은 왕실의 오례(五
    禮)와 민간의 사례(四禮)에 적극 활용되었다. 아울러 왕실의 행사를 기념
    하기 위해 제작된 서화도 18세기 후반부터는 대개 병풍 형식으로 제작되
    었다. 이 밖에 일상적인 실내 장식과 방한 용도로도 병풍은 꾸준하게 사용
    되었다. 조선 후기 병풍은 단순한 서화의 형식을 넘어 의구(儀具)이자 일
    상용구(日常用具)로서 조선 사회 곳곳에서 사용된 것이다.
    병풍이란 목재로 병풍틀을 만들고 그 위에 서화를 붙인 것이다. 이는 동
    아시아의 전통적인 서화 장황 가운데 하나였다. 병풍은 필요에 따라 펼치
    고 접을 수 있다. 따라서 임시로 공간을 구획하거나 의례의 장엄(莊嚴)을
    위해 활용되었다. 아울러 일상적인 방한(防寒)과 장식 용도로도 사용되었
    다. 병풍은 용도에 따라 병풍차(屛風次)의 주제, 재료, 높이, 폭의 수가 결
    정되었다. 한국 서화사에 있어서도 병풍은 걸개〔軸〕, 책첩〔帖〕, 두루마리
    〔卷〕의 장황 형식과 함께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병풍은
    신라시대부터 장식과 교역, 조공품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고려시대에
    는 십장생도, 사군자도, 산수도 등의 병풍이 만들어졌다. 조선 시대의 병
    풍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물의 수도 상당하다. 특히 조선 후기가 되면
    병풍의 용도가 세분되고 사용 계층도 확대되었다. 이는 영조(英祖) 대에
    왕실 오례에 병풍을 사용하는 것이 국정예서(國定禮書)로 명문화된 것과
    관련이 깊다. 이를 바탕으로 왕실의 행사를 장엄하는 장병(裝屛)과 행사를
    기념하는 계병(禊屛)의 제작과 사용이 정례화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19
    세기가 되면 유교 예속(禮俗)을 따르며 양반 의식을 갖춘 인구가 증가하였
    다. 이로 인해 민간사례(民間四禮)에 사용되는 병풍의 제작은 대폭 증가하
    였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 후기의 정치·사회·경제·문화·인구학적 변화가 병
    풍의 제작과 사용을 견인한 양상을 구명(究明)하는 동시에 이것이 미술사
    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병풍이라는 형식이 조선 후기에 증가하는 현상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왕실 병풍의 경우 주로 궁중기록화와 궁중장식화
    를 논구하는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이 때문에 이들 대부분이 왜 병풍 형식
    이었는가와 그것이 어떻게 배설(排設)되고 어디에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질
    문으로는 이어지지는 못한 측면이 있다. 또한 민간에서 제작한 병풍에 대
    해서는 대부분 민화의 범주로 논의되어왔다. 이로 인해 길상(吉祥)과 벽사
    (辟邪)의 화제가 강조되었을 뿐 정작 이것이 왜 제작되었고 어떻게 사용되
    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간과된 측면이 크다. 병풍의 사용은 500년 간 조선
    사회를 움직인 가장 근본적인 이념인 유교와 그것의 실천 지침인 『주자가
    례(朱子家禮)』를 조선화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왕실은 왕실의 사
    치를 통제하는 한편 의례를 정례화하기 위한 국정예서를 간행하였다. 영조
    대에는 『국혼정례(國婚定例)』(1749년)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1758년)을 간행하여 각각의 의례에 요구되는 병풍의 종류와 수량을 명시
    하였다. 병풍의 종류와 화제(畵題), 채색 여부와 재료, 병풍 배설의 시점과
    장소에 대한 명기는 왕실 의례용 병풍을 통제하는 방편이 되었다. 아울러
    정조 대에는 사대부 계층에서 제작되던 계병(契屛)의 전통을 왕실이 차용
    함으로써 궁중 행사를 기념하는 계병(禊屛·稧屛)의 전범을 정례화 하였다.
    이는 차비대령화원제도(差備待令畵員制度)를 통해 제도적으로 지원되었다.
    정조(正祖, 1776~1880년 재위)의 정책은 궁중 미술을 진작함으로써 김홍
    도(金弘道, 1745~1803년 이후)를 위시한 걸출한 화원화가들을 배출하였
    다. 화가들은 전대로부터 전해진 다양한 화제를 병풍으로 재구성하는 한편
    새로운 병풍화의 주제를 창안해 냈다. 아울러 이러한 왕실의 병풍은 제용
    감(濟用監)과 도감(都監)의 병풍 대여를 통해 사가(私家)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 사례에서도 병풍의 사용이 필수화되었다. 사대부 계층은
    『주자가례』를 주해하는 과정에서 원전에는 보이지 않던 병풍의 사용을 명
    기한 절차를 포함시켰다. 또한 마을 공동체의 향약안(鄕約案)에 의례용 병
    풍의 공동 소유를 포함시켰다. 결국 이러한 과정은 병풍 사용의 관행이 왕
    실을 넘어 민간에까지 확산되는 동기로 작용했다.
    19세기에는 전대에 완성된 제도와 병풍 사용의 전통이 순조롭게 계승되
    었다. 이로 인해 ‘병풍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병풍이
    여러 계층에 의해 소비되었다. 중앙 정부에서는 왕실의 계병 수급의 안정
    화를 위하여 지방관에게 계병채(禊屛債)를 부과하였다. 이를 통해 계병은
    행사도 형식 뿐 아니라 일반 주제의 병풍화로도 다수 주문되었다. 아울러
    병풍이 각폭(各幅)이 아닌 연폭(連幅)으로 꾸며지는 형식이 유행하면서 왜
    장병풍(倭粧屛風)이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었다. 용어의 연원은 일본 막부
    에서 조선 왕실로 보낸 수 백점의 왜병(倭屛)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일본
    병풍의 유입은 문인 계층이 가졌던 병풍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꾸어 놓
    았다. 고종(高宗, 1863~1907년 재위) 대가 되면 일반 병풍보다 제작비용
    이 최대 8배 높은 자수병풍과 12폭으로 증가된 대형병풍이 유행하였다.
    이는 병풍 형식이 가진 전시의 효과를 고종이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
    이다. 이로 인해 병풍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더욱 강화되었다. 아울러 흥
    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과 왕실 여인들이 병풍 제작의 주체가
    된 경우가 증가했다. 또한 병풍은 서양인들에게 하사되는 외교 예물로도
    활용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결국 왕실이 병풍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
    함으로써 병풍을 다양하게 활용한 역사를 보여준다.
    19세기 민간에서의 병풍은 서화시장에서 병풍차(屛風次)가 유통됨으로써
    크게 확산될 수 있었다. 사적 주문이 아니라 고정 점포를 통해 거래되었기
    때문에 병풍의 소비 계층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전대보다 많은 인구가 양
    반 의식(意識)을 가지게 되면서 의례 병풍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아울러
    한양을 넘어 평양, 안주, 전주, 군산, 삼척, 강릉 등 지방의 거점 도시에
    화단이 형성되었다. 아울러 서화 시장을 중심으로 병풍 전문화가가 활동하
    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정 화가가 특정 화제를 독점하거나 특정 가문이
    특정 기법을 세전(世傳)시키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이들은 초본(草本)과 견
    본(見本)을 활용하여 동일한 도안의 병풍을 다량 제작할 수 있었다. 이 같
    은 전략은 화가로 하여금 전문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하는 방편
    이 되었다. 병풍 사용 인구의 확산은 점차 병풍 시장을 분화시켰다. 이를
    통해 고급 병풍과 저급 병풍의 시장이 모두 활성화 되었다. 전자의 경우
    이금(泥金), 호분(胡粉), 자수 등 제작 시간과 비용이 높은 기법으로 유행
    하였다. 반면 후자는 석화(席畫)로 제작 가능한 속필(速筆)과 혁필(革筆)의
    방식이 선호되었다. 민간 병풍은 기존에 있던 도상을 결합하여 여러 화제
    를 한 화면에 합쳤다. 이를 통해 하나의 병풍으로 복수의 효과를 낼 수 있
    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급기야 제례용과 축연용(祝宴用) 주제를 양면에 그
    린 양면 병풍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20세기에는 육필(肉筆) 서화 뿐 아니
    라 인쇄 화면도 병풍차로 제작되었다. 특히 식민시기 이후에는 병풍이 상
    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어 매매, 전시, 절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
    대에도 유교 의례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병풍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거
    시적 관점으로 보자면 조선 후기 병풍 문화는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셈
    이다.
    지난 50여 년 간 한국회화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축적해왔다. 조선
    화단에서 활약한 대가(大家)들의 작가론과 주요 화제를 분석한 주제론 연
    구가 조선 시대 회화사 연구의 근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축
    (軸)·첩(帖)·권(卷)·병(屛)이라는 형식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성과가 없었
    다는 것이 본 논문의 출발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후기 화단에서 가장
    부각되었던 병풍의 형식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병풍차로서의 서화
    를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 병풍의 제작과 사용 전반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자 하였다. 따라서 병풍이 배설된 공간, 병풍이 사용된 의례, 병풍을 주문
    한 계층, 병풍차의 제작 환경, 병풍차의 유통 경로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
    으로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간 회화사를 주도해 온 문인화론과
    직업·화원화가론, 궁화론(宮畵論)과 민화론 같은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병
    풍이라는 틀로써 조선시대 회화사를 다시 보고자 하였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본 논문은 조선 후기 병풍이 지닌 미술사적 의의를 조명하고자 하였
    다. 아울러 고전문학, 문헌사학, 민속학, 인류학, 문화재 보존학과 같은 인
    접 분야의 학문과도 연구 성과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1
    • 1. 선행 연구 2
    • 2. 문제 제기 6
    • 3. 연구 방법 11
    • 4. 논문의 구성 15
    • Ⅰ. 머리말 1
    • 1. 선행 연구 2
    • 2. 문제 제기 6
    • 3. 연구 방법 11
    • 4. 논문의 구성 15
    • Ⅱ. 18세기 병풍의 제작 배경 및 사용 양상 21
    • 1. 궁중 계병 형식의 정착과 사용 22
    • 2. 국정예서(國定禮書)의 재편과 왕실오례(王室五禮)를 위한 병풍 40
    • 3. 다양한 병풍화 주제의 정립과 확산 48
    • 4. 민간에서의 병풍 사용과 대여의 확산 68
    • Ⅲ. 19세기 왕실의 병풍 제작 양상 76
    • 1. 왕실 행사와 병풍의 제작 77
    • (1) 왕실 의례 문화의 강화와 의장용 장병(裝屛) 78
    • (2) 왕실 의례 문화의 강화와 기념용 계병(屛) 98
    • (3) 왕실 병풍의 제작과 계병채(屛債) 114
    • 2. 왕실 병풍의 제작 과정과 처소별 사용 124
    • (1) 다양한 병풍 주제의 정립과 명칭 문제 124
    • (2) 증조병풍(贈朝屛風)의 유입과 왜장병풍(倭裝屛風)의 제작 129
    • (3) 왕실 처소별 병풍의 사용과 수장 144
    • (4) 1879년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으로 보는 왕실 계병의 제작과 수장 153
    • 3. 왕실 병풍화의 새로운 후원자와 신경향 159
    • (1) 궁궐도 및 별서도 제작 159
    • (2) 어필병풍(御筆屛風) 전통의 새로운 계승 165
    • (3) 병풍의 대형화 및 고가화 경향 171
    • (4) 고종 친정기(親政期) 외교용 병풍 179
    • Ⅳ. 19세기 민간 병풍의 저변화와 시장의 형성 188
    • 1. 의례 병풍의 확산과 병풍 사용 문화의 저변화 189
    • (1) 민간사례(民間四禮)에 사용된 병풍 190
    • (2) 병풍 치레의 확산과 다양한 병풍의 용도 197
    • 2. 병풍전(屛風廛)의 형성과 병풍의 차세(借貰) 203
    • (1) 한양 광통교의 서화사(書肆)와 병풍차(屛風次) 거래 203
    • (2) 지방화단의 성장과 병풍 시장의 확대 215
    • 3. 특정 화목 전문 화가와 장황인(裝潢人)의 활동 220
    • (1) 화목별 전문화가의 등장 220
    • (2) 초본과 견본을 통한 제작 방식의 체계화 223
    • (3) 궁화(宮畵)와 민화의 상호 교류 240
    • 4. 병풍 소비 계층의 확대와 새로운 취향 248
    • (1) 주제의 혼용과 도상의 결합 248
    • (2) 이색기법의 활용과 양면 병풍의 유행 253
    • (3) 판화 병풍 및 인쇄 병풍의 확산 258
    • Ⅴ. 에필로그: 20세기 병풍 문화의 계승과 변용 261
    • 1. 일본 병풍의 유입과 전통의 변형 262
    • 2. 병풍의 독자적 상품 기능 강화 269
    • 3. 병풍의 전통적 기능 계승과 변용 272
    • Ⅵ. 맺음말 274
    • 참고문헌 281
    • 부록 300
    • 도판목록 316
    • 도판 326
    • Abstract 352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양가』, 강명관, 신구문화사, 신구문화사, , 2008

    2. 「요지연도」, 이성훈, (안휘준 민길홍 외 편, 『조선시대 인물화 연구』, 학고재, , 2009

    3. 『조선 회화』, 홍선표, CAS 한국미술연구소, 한국미술연구소, , 2014

    4. 「조선민화론」, 정병모, (서울역사박물관 편, 『반갑다! 우리민화』, 서울역사박물관, , 2005

    5. 『민화이야기』, 윤열수, 디자인하우스, , 1995

    6. 『서울상업사』, 이태진, 태학사, 태학사, , 2000

    7. 『韓國의 刺繡』, 許東華, 三省出版社, , 1978

    8. 『단원 김홍도』, 오주석, 솔, 솔, , 2006

    9. 『서재에 살다』, 박철상, 문학동네, , 2014

    10. 『왕의 화가들』, 박정혜, 돌베개, 돌베개, , 2012

    1. 『한양가』, 강명관, 신구문화사, 신구문화사, , 2008

    2. 「요지연도」, 이성훈, (안휘준 민길홍 외 편, 『조선시대 인물화 연구』, 학고재, , 2009

    3. 『조선 회화』, 홍선표, CAS 한국미술연구소, 한국미술연구소, , 2014

    4. 「조선민화론」, 정병모, (서울역사박물관 편, 『반갑다! 우리민화』, 서울역사박물관, , 2005

    5. 『민화이야기』, 윤열수, 디자인하우스, , 1995

    6. 『서울상업사』, 이태진, 태학사, 태학사, , 2000

    7. 『韓國의 刺繡』, 許東華, 三省出版社, , 1978

    8. 『단원 김홍도』, 오주석, 솔, 솔, , 2006

    9. 『서재에 살다』, 박철상, 문학동네, , 2014

    10. 『왕의 화가들』, 박정혜, 돌베개, 돌베개, , 2012

    11. 『옛 궁궐 그림』, 안휘준, 대원사, , 2002

    12. 역, 『표암유고』, 정은진, 김종진, 변영섭, 강세황, 지식산업사, , 2010

    13. 중국 한국 미술사, 김홍남, 학고재, , 2009

    14. 「한국민화산고」, 안휘준, (호암미술관 편, 『민화걸작전』, 호암미술관, , 1983

    15. 『表具美學槪論』, 고수익, 고륜, , 2007

    16. 『조선왕조의궤』, 한영우, 일지사, , 2005

    17. 「병풍 속의 서예」, 박철상, (수원박물관 편, 『병풍 속 글씨와 그림의 멋』, 수원박 물관, , 2011

    18. 「숙종의 서화취미」, 진준현, 『서울대학교박물관연보』 7, , 1995

    19. 『고서점의 문화사』, 이중연, 혜안, 혜안, , 2007

    20. 『이조시대 서사시』, 임형택, 창비, 2, 창비, , 2013

    21. 『조선왕실의 가례』, 권오영, 송혜진, 임민혁, 김문식, 강제훈,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1, 한국학중앙연구 원, , 2008

    22. 「한국 노안도 연구」, 이지윤,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 2003

    23. 『단원 김홍도 연구』, 진준현, 일지사, 일지사, , 1999

    24. 『왕과 국가의 회화』, 박정혜, 돌베개, 돌베개, , 2011

    25. 『조선 궁궐의 그림』, 박정혜, 돌베개, 돌베개, , 2012

    26. 「낙화의 역사와 상징」, 김삼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 편, 『문화예술의 고장 V: 우리 그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2010

    27. 「조선 요지연도 연구」, 박본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고려대학교 박사논문, , 2016

    28. 역, 『(국역) 국혼정례』, 박문수, 권영대, 국학자료원, , 2007

    29. 「지류문화재보존처리」, 송정주,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지류 직물 문화재 보존』, 국립문화재연구소, , 2011

    30. 「<동궐도>와 궁궐의 삶」, 정병설, 『동궐』 (고려대학교 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 관, 『동궐』, 고려대학교 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 2012

    31. 「강이천과 『漢京詞』」, 방현아, 『민족문학사연구』 5, , 1994

    32. 「김홍도의 서원아집도」, 김지산, (안휘준 민길홍 외 편, 『조선시대 인물화 연구』, 학고재, , 2009

    33. 「일월오봉병과 정도전」, 김홍남, 『중국 한국미술사』, 학고재, , 2009

    34. 「조선시대 궁중채색화」, 이성미, (정병모 기획, 『한국의 채색화 세트: 궁중회화와 민화의 세계』, 다할미디어, , 2015

    35. 「朝鮮時代 別墅圖 硏究」, 조규희,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 2006

    36. 「正祖代 宮中繪畫 연구」, 유재빈,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 2016

    37. 「조선시대 계회도 연구」,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논문, , 2004

    38. 「조선시대 화조화 연구」, 이은하, 고려대학교 박사논문, , 2011

    39. 「조선후기 백자도 연구」, 김선정,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 2000

    40.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윤방언, 문화재청, 문화재청, , 2002

    41. 주해, 『정미가례시일기』, 황문환,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 2010

    42.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강명관, Humanist, 휴머니스트, , 2015

    43. 「《태상향의도병》 연구」, 손명희, 『고궁문화』 7, , 2014

    44. 「金圭鎭의 『海岡日記』」, 김소연, 『미술사논단』 16 17, , 2003

    45. 「조선시대 <동궐도> 연구」, 최민아, 동아대학교 석사논문, , 2005

    46.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이현진, 글항아리, 글항아리, , 2015

    47. 「朝鮮後期 十長生圖 硏究」, 박본수, 홍익대학교 석사논문, , 2003

    48. 「근대기 서화합작품 연구」, 양선하, 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29, , 2009

    49. 「조선시대 당시의도 연구」, 민길홍,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 2001

    50. 「조선의 국왕과 궁중화원」, 강관식, (이성미 외, 『조선왕실의 미술문화』, 대원사, , 2005

    51. 『백두용과 한남서림 연구』, 이민희, 역락, 역락, , 2013

    52. 『조선시대 서화수장 연구』, 황정연, 신구문화사, 신구문화사, , 2012

    53. 『주선후기 궁중화원 연구』, 강관식, (상)(하), 돌베개, , 2001

    54. 「민화 문자도의 상징 읽기」, 차장섭,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 편, 『문화 예술의 고장 V: 우리 그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2010

    55. 「석연 양기훈의 회화 연구」, 서정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논문, , 2013

    56. 「어진 관련 의궤와 오봉병」, 이성미, 『어진의궤와 미술사』, 소와당, , 2012

    57. 「희원 이한철의 회화 연구」, 최희정,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 2014

    58. 「조선 후기 연폭 병풍 연구」, 김아영,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 2012

    59. 「한국 <郭汾陽行樂圖> 연구」, 김홍남, 『미술사논단』 34, , 2012

    60. 『吉祥: 우리 채색화 걸작전』, Gana Art Center, Gana Art Center, , 2013

    61.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정옥자, 효형, 효형출판, , 2001

    62. 「18~19세기 기성도 병풍 연구」, 박정애,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74, , 2009

    63. 「김홍도 산수풍속도병 연구」, 조지윤,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 2006

    64. 「조선시대 궁궐의 그림치장」, 홍선표, (장남원 등 저, 『동아시아의 궁중미술』, 한국미술연구소, , 2013

    65.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박정혜, 일지사, 일지사, , 2000

    66. 『영조 대의 의궤와 미술문화』,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014

    67. 역주, 『증보사례편람 역주본』, 문옥표, 이충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 2014

    68. 「조선후기 곽분양행락도연구」, 정영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논문, , 1998

    69. 「책거리의 역사, 어제와 오늘」, 정병모, (경기도 박물관 편, 『책거리 특별전: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 경기도박물관, , 2012

    70. 편저, 『한국미술사자료집성』 1, 진홍섭, 일지사, , 1987

    71. 편저, 『한국미술사자료집성』 2, 진홍섭, 일지사, , 1992

    72. 편저, 『한국미술사자료집성』 4, 진홍섭, 일지사, , 1996

    73. 편저, 『한국미술사자료집성』 6, 진홍섭, 일지사, , 1998

    74. 편저, 『한국미술사자료집성』 8, 진홍섭, 일지사, , 2002

    75. 「19세기 광통교에서 나온 민화」, 윤진영, (서울역사박물관 편, 『광통교서화사』, 서울역사박물관, , 2016

    76. 「朝鮮時代 ‘宮牧丹屛’ 硏究」, 김홍남, 『미술사논단』 9, , 1999

    77. 역, 『(국역) 고종정해진찬의궤』, 인남순, 보고사, , 2008

    78. 「19세기 國婚과 安東 金門 家勢」, 임혜련, 『한국사학보』 57, , 2014

    79. 「궁중장식화의 개념과 그 성격」, 이수미, 『(조선시대 궁중장식화 특별전) 태평성 대를 꿈꾸며』, 국립중앙박물관, , 2004

    80. 「지방 화단에서 활약한 화가들」, 이원복, (류창규, 노용필 외, 『개화기 지방 사람 들 1 왕실 중인 천민』, 어진이, , 2006

    81. 『(일상 속의 미술) 이발소 그림』, 박석우, 동연, , 1999

    82. 『조선시대 관혼상제: 상례편(3)』, 문옥표, IV, 힌국정신문화연구원, , 2000

    83. 「강원도 지역 민화에 대한 고찰」, 윤열수,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9, , 2008

    84. 「조선 말기의 百衲圖 屛風 연구」, 안보라, 『미술사연구』 27, , 2013

    85. 『木石으로 찍은 우리의 옛 그림』, 이승일, 가나아트, , 2012

    86.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 이성혜, 해피북미디어, 해피북미디어, , 2014

    87. 「朝鮮宮中宴享圖의 特徵과 性格」, 安泰旭, 『동악미술사학』 13, , 2012

    88. 「조선시대 왕세자와 궁중기록화」, 박정혜, (박정혜, 이예성, 양보경 저, 『조선왕실 의 행사그림과 옛 지도』, 민속원, , 2005

    89.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예술세계』, 김정숙, 일지사, 일지사, , 2004

    90. 기획총괄, 『삼년상: 소운 김시인』, 김시덕, 정명섭, 국립민속박물관, , 2011

    91. 「개화기 화단의 신경향과 잡화병」, 김취정, 한국미술연구소, 『美術史論壇』 27, , 2008

    92. 「병풍문화의 전승과 현대적 해석」, 김세영, 『병풍 속 글씨와 그림의 멋』, 수원박 물관, , 2011

    93. 「석강 황승규의 생애와 작품세계」, 차장섭, (삼척시립박물관 편, 『(삼척시립박물 관 개관 5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한국의 문자도』, 삼척시립박물관, , 2005

    94. 「조선후기 瑤池宴圖에 대한 연구」, 우현수, 이화여자대학교 석사논문, , 1996

    95.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 공간』, 강명관, 소명출판, 소명출판, , 1999

    96. 영조대 친경의식의 거행과 친경의궤, 金芝英, 일지사, 『한국학보』 107, , 2002

    97. 「19세기 궁중연향과 궁중연향도병」, 박정혜, (서인화 외, 『조선시대 진연 진찬 진하병풍』, 국립국악원, , 2001

    98. 「國立中央博物館 소장 <十長生圖>」, 박본수, 『미술사논단』 15, , 2002

    99. 「朝鮮後期 王室 嘉禮用 屛風 硏究」, 박은경,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 2012

    100. 「조선 민화의 새로운 관점과 이해」, 홍선표, 『조선 회화』, 한국미술연구소, , 2014

    101. 「조선시대 장황 용어와 관련 기록」, 이진희, 한국학중앙연구원, 『藏書閣』 23, , 2010

    102. 「<동궐도>의 성격과 회화사적 의의」, 장진성, (고려대학교 박물관 동아대학교 박 물관, 『동궐』, 고려대학교 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 2012

    103. 「《谷雲九曲圖帖》의 多層的 의미」, 조규희, 『미술사논단』 23, , 2006

    104. 「조선후기 士人風俗畵와 餘暇文化」, 장진성, 『미술사논단』 24, , 2007

    105.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 구운몽도』, 정병설, 문학동네, , 2010

    106. 『문화재 보존과 기법: 회화 지류편』, 이상현, 소와당, 소와당, , 2014

    107. 「단원 김홍도 筆 <三公不換圖> 연구」, 조규희, 『미술사학연구』, 275 276, , 2012

    108. 「책가화 책거리의 제작층과 수용층」, 이인숙, (실천민속학회 편, 『조선후기 민속 문화의 주체』, 집문당, , 2004

    109. 공저, 『우리 옛 지도와 그 아름다움』, 안휘준, 배우성, 한영우, 효형, , 2003

    110. 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간행위원회, 김홍남, 『동아시아의 궁중미술: 김홍남 교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 한국미술연구소, , 2013

    111. 「20세기 생활 공간에서의 민화(民畵)」, 김윤정, (국립민속박물관 편, 『민화와 장 식병풍』, 국립민속박물관, , 2005

    112. 「조선 후기 列聖御筆의 刊行과 廣布」, 이완우, (1)(2), 『藏書閣』 30, , 2013

    113. 「한국 근 현대 표구기술의 변천 과정」, 김산호, 용인대학교 석사논문, , 2005

    114. 『조선시대 평안도 함경도 실경산수화』, 박정애,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2014

    115. 알렌 지음, 신복룡 역주, 『조선견문기』, H. N, 집문당, , 1999

    116. 「조선 백자도의 형성과정과 도상 연구」, 유정서,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 2011

    117. 「조선후기 王會圖 屛風의 제작과 의미」, 박정혜, 『미술사학연구』 277, , 2013

    118. 「韓國 近代期의 畵壇과 書畵 需要 硏究」, 김취정, 고려대학교 박사논문, , 2014

    119. 「궁화(宮畵): 궁궐 속의 “민화(民畵)”」, 김홍남, (국립민속박물관 편, 『민화와 장 식병풍』, 국립민속박물관, , 2005

    120. 「조선 백자도의 기원과 도상 형성 과정」, 유정서, 『한국민화』 3, , 2012

    121. 지음, 임형택 외 옮김, 『(역주)매천야록』, 황현, 문학과지성사, , 2005

    122. 「[이야기로 보는 책거리]⑨ 민화 책거리」, 박본수, 『경기신문』, 년 05월 21 일자 기사, , 2012

    123. 「석연 양기훈(石然 楊基薰) 노안도 연구」, 서정민,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9, , 2015

    124. 「宣祖大王 御筆 <古詩> 屛風에 관한 硏究」, 박문열,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35-2, , 2004

    125. 「중국 <郭子儀祝壽圖> 연구: 연원과 발전」, 김홍남, 『미술사논단』 33, , 2011

    126. 「18~19세기 지방인식과 도시경관의 시각화」, 박정애, (국립중앙박물관 편, 『(심포 지움 자료집)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국립중앙박물관, , 2016

    127. 「조선 인조-영조 년간의 궁중연향과 미술」, 이성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 후기 궁중연향문화』 1, 민속원, , 2003

    128. 「조선시대 진전(眞殿)의 역사와 신선원전」,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신선 원전: 최후의 진전 창덕궁 신선원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 2010

    129. 국학자료조사실, 『영조대왕: 특별전 도록』, 장서각, 한국학중앙연구원 藏書閣, , 2011

    130. 「18세기 후반 국가전례의 정비와 춘관통고」, 김지영, 일지사(한국학보), 『한국학보』 30-1, , 2004

    131. 「19세기 궁궐 계화와 <동궐도>의 건축 표현」, 박정혜, 『동궐』, 고려대학교 박물 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 2012

    132. 「20세기 인쇄병풍의 유행과 민화에의 영향」, 박근아, 『미술사논단』 42, , 2016

    133. 「英祖年間의 宮中記錄畵 제작과 濬川契帖」, 박정혜, 『도시역사문화』 2, , 2004

    134. 「일제강점기 詩社활동과 書畵合璧圖 연구」, 김예진, 『미술사학연구』 268, , 2010

    135. 「제주도민화연구: 문자도병풍을 중심으로」, 정병모,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구 한국미술사연구소 ), 『강좌미술사』 24, , 2005

    136. 『시폐: 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 조영준, 아카넷, 아카넷, , 2013

    137. 「英祖大王 御筆 <無逸篇> 屛風에 관한 硏究」, 박문열, 『(강남대학교 인문과학연 구소) 인문과학논집』 29, , 2004

    138. 「개항기 ‘김홍도 풍속화’의 모방과 확산」, 신선영, 『미술사학연구』 283 284, , 2014

    139. 「開化期 서울畵壇의 後援과 繪畵 活動 硏究」, 김취정, 『미술사학연구』 263, , 2009

    140. 「궁궐 전각의 장식그림: 창호그림과 부벽화」, 박윤희, (국립고궁박물관 편, 『궁궐 의 장식그림』, 국립고궁박물관, , 2009

    141. 『왕실 혼례의 기록: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이성미, 소와당, 소와당, , 2008

    142. 「<태평성시도>와 조선 후기 상업공간의 묘사」, 이수미, 『미술사와 시각문화』 3, , 2004

    143. 「광통교 일대 문화의 생산 소비 유통의 중심」, 김취정, (서울역사박물관 편, 『광통 교서화사』, 서울역사박물관, , 2016

    144. 「대한제국기 진찬 진연의궤와 궁중연향계병」,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조 선후기 궁중연향문화』 3, 민속원, , 2005

    145. 「서화가 김규진(金圭鎭)의 작품 활동과 수입」, 이성혜, 『동방한문학』 41, , 2009

    146. 『권력과 인간: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정병설, 문학동네, 문학동네, , 2012

    147. 역, 민족문화추진회 편, 『(국역) 진연의궤』 1-2, 박소동, 민족문화추진회, ~2008, , 2005

    148. 저, 민족문화추진회 옮김, 『(국역)우서: 신편』, 유수원, 한국학술정보, , 2006

    149. 「19세기 洪世燮의 翎毛畵에 대한 새로운 해석」, 최경현, 『미술사연구』 26, , 2012

    150. 「대한제국기화원 제도의 변모와 화원의 운용」, 박정혜, 『근대미술연구』, 국립현 대미술관, , 2004

    151. 「영조대 왕실 상장례의 정비와 국조상례보편」, 이현진, 『한국사상사학』 37, , 2011

    152. 「19세기 眞殿 및 御眞奉安處 운영에 대한 연구」, 김지영, 『장서각』 26, , 2011

    153. 「조선왕실 凶禮의 儀仗用 屛風의 기능과 의미」, 신한나, 홍익대학교 석사논문, , 2009

    154. 그림자 국왕의 초상: 와룡관학창의본 이하응초상, 이경화 ( Kyung Hwa Lee ),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미술사와 시각문화 』 14, , 2014

    155.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太平城市圖> 屛風 硏究」, 이수미, 서울대학교 박사논 문, , 2004

    156. 역, 민족문화추진회 편, 『(국역) 친경 친잠의궤』, 박소동, 민족문화추진회, , 1999

    157.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와 18세기 서울의 풍경」, 안대회, 『고전문학연구』 35, , 2009

    158. 「순조 헌종 년간 궁중연향의 기록: 의궤와 도병」, 박정혜, 『조선시대 향연과 의 례』, 국립중앙박물관, , 2009

    159. 「조선시대 具례도감의궤에 나타난 오봉병 연구」, 명세나, 『미술사논단』 28, , 2009

    160. 「《顯宗丁未溫幸契屛》과 17세기의 산수화 契屛」, 박정혜, 『美術史論壇』 29, , 2009

    161. 「藏書閣 소장 일제강점기 儀軌의 미술사적 연구」, 박정혜, 『美術史學硏究』 259, , 2008

    162. 「關東地域을 中心으로 본 孝悌文字圖 作家 硏究」, 윤열수, 『동악미술사학』 7, , 2006

    163. 「조선후기 기복호사 풍조의 만연과 민화의 범람」, 홍선표, (서울역사박물관 편, 『 반갑다! 우리민화』, 서울역사박물관, , 2005

    164. 「중암 강이천 문학 연구: 「한경사」를 중심으로」, 강경훈, 『고서연구』 15, , 1997

    165. 「청운 강진희의 《鍾鼎瓦甎銘臨模圖》 10첩 병풍」, 김영욱, 『고궁문화』 5, , 2012

    166. 「근대 전환기 조선 왕실에 유입된 일본 자수 병풍」, 김수진, 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36, , 2013

    167. 「순묘조 〈왕세자탄강계병〉에 대한 도상적 고찰」, 박은순, 『미술사학연구』 174, , 1987

    168. 「전통과 권위의 표상: 高宗代의 太祖 御眞과 眞殿」, 조인수, 『미술사연구』 20, , 2006

    169. 「조선 궁중자수의 전통과 화원의 수본(繡本) 제작」, 박윤희, (국립고궁박물관 편, 『아름다운 궁중자수』, 국립고궁박물관, , 2013

    170. 「조선시대 오봉병 연구-具례도감의궤를 중심으로」, 명세나, 이화여자대학교 석 사논문, , 2007

    171. 「李亨祿의 冊架文房圖 八曲屛에 나타난 중국도자」, 방병선, 『강좌미술사』 28, , 2007

    172. 「朝鮮末期 崔奭煥(1808-1883以後)과 葡萄圖 連幅屛風」, 정현희, 이화여자대학 교 석사논문, , 2013

    173. 「조선말기 궁중장식병풍 형식과 기능에 관한 연구」, 설은정, 홍익대학교 대학원, 홍익대학교 석사논 문, , 2012

    174.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의 경제적 여건과 사적활동」, 장진성, (삼성미술관 Leeum, 『화원』, 삼성미술관 Leeum, , 2011

    175. 「18세기 후반 서울의 도시상(都市相)과 윤기의 시선」, 안대회, 『대동문화연구』 89, , 2015

    176. 지음, 홍학희 옮김, 『부사산 비파호를 날 듯이 건너』, 성대중, 소명출판, , 2006

    177. 「文字圖를 통해 본 民畵의 地域的 特性과 作家 硏究」, 윤열수, 동국대학교 박 사논문, , 2006

    178. 「조선시대(朝鮮時代)의 포백척(布帛尺)에 관한 연구」, 이은경, 『한국복식학회지』 16, , 1991

    179. 『사라진 서울: 20세기 초 서울 사람들의 서울 회상기』, 강명관, 푸른역사, 푸른역사, , 2010

    180. 「‘장식’과 ‘길상’의 경계, 책가도冊架圖 이야기」, 윤진영, 『월간민화』 19, , 2015

    181. 「명헌태후 칠순기념 신축년 진찬도병의 특징과 의의」, 박정혜, 『한국궁중복식연 구원 논문집』 6, , 2004

    182. 「정묘조 <왕세자책례계병>: 신선도계병의 한 가지 예」, 박은순, 『미술사연구』 4, , 1990

    183. 「조선후기 진작 진찬의례를 통해본 궁중의 미술문화」,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 원,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2, 민속원, , 2005

    184. 「근대기 평양지역 동양화단(東洋畵壇)의 형성과 전개」, 김취정, 『한국근현대미술 사학』 28, , 2014

    185. 「활옷과 병풍을 중심으로 본 조선시대 자수의 재조명」, 김태자, 한국복식학회, 『복식』 58-5, , 2008

    186. 『조선시대 사행기록화: 옛 그림으로 읽는 한중관계사』, 정은주, 사회평론, , 2014

    187. 「장서각소장 조선왕조 가례도감의궤의 미술사적 고찰」, 이성미, 『장서각소장 가 례도감의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1994

    188. 편, 『(고서화도록 7) 유희삼매 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 이태호, 유홍준, 학고재, , 2003

    189. 「LA 카운티 미술관 소장 〈戊辰進饌圖屛〉에 관한 연구」, 부르그린드 융만, 『미 술사논단』 19, , 2004

    190. 「석창(石窓) 홍세섭(洪世燮)의 생애(生涯)와 작품(作品)」, 이태호, 고고미술 146 147, , 1980

    191. 「17세기 후반 안동권씨의 기념 회화와 남인의 정치 활동」, 서윤정, 『안동학연구 』 11, , 2012

    192. 「조선의 으뜸 가문, 안동 김문이 펼친 인문과 예술 후원」, 조규희, 『새로 쓰는 예술사: 한국문화 이천년을 이끈 예술후원자들』, 글항아리, , 2014

    193. 「개인 소장 <百子圖> 10폭 병풍: 새로운 장면이 추가된 예」, 김선정, 『미술사논 단』 22, , 2006

    194. 「화원과 궁중회화: 조선 초기 궁중회화의 양상과 기능(2)」, 박은순,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미술사』 26-2, , 2006

    195. 「만민화친(萬民和親)의 장: 조선시대 궁중과 사가의 연향」, 박정혜, (천안박물관 편, 『춤, 그림 속에서 연을 벌이다』, 천안박물관, , 2010

    196.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통해 본 서유구의 이용후생학」, 안대회, 『한국실학연 구』 11, , 2006

    197. 「조선후기 한양의 명승명소도와 국도(國都) 명승의 재인식」, 조규희, 『한국문학 과 예술』 10, , 2012

    198. 『(옛 그림엽서로 본) 민족의 사진첩: 개화기의 생활과 풍속』, 최석로, 4, 서문당, , 1998

    199. 「책거리 그림 작가의 개명 문제와 제작 시기에 대한 재고찰」, 이훈상, (에드워드 와그너 지음, 이훈상, 손숙경 옮김,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 일조각, , 2007

    200. 『새로 쓰는 예술사: 한국문 화 이천년을 이끈 예술후원자들』, 송지원, 류주희, 김경한, 조규희, 정병삼, 박남수, 양정필, 글항아리, 글항아리, , 2014

    201. 지음, 박재금 옮김,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일본을 기록하다』, 원중거, 소명출판, , 2006

    202. 「근대기 지방화단 연구: 서울화단과의 영향관계를 중심으로」, 김취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한국근현 대미술사학』 20, , 2009

    203. 공저, 『권력과 은둔: 조선의 은둔문화와 김수증의 ⑲운 구⑲』, 윤진영, 유준영, 이종호, 북코리아, , 2010

    204. 「『高山九曲詩畵屛』의 구성상 특징과 所載 詩文에 대한 검토」, 이상원, 『국제어 문』 31, , 2004

    205. 「궁궐그림에서 민화까지: 봉황도를 중심으로 본 민화의 대중화」, 윤진영, 『월간 민화』 1, , 2014

    206. 「한국 민화의 존재와 양상: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김윤정, 『민 속학연구』 19, , 2006

    207. 「조선후기 후궁 가례의 절차와 변천: 경빈 김씨 가례를 중심으로」, 이욱, 『장서 각』 19, , 2008

    208. 「한국 근대기 인쇄 병풍화와 민화 연구: 동물 화조화를 중심으로」, 박근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이화 여자대학교 석사논문, , 2010

    209. 「19~20세기 초 조선 궁녀의 침선 활동과 궁중 자수서화병풍의 제작」, 황정연,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 한국근대미술사학』 26, , 2013

    210. 「<문효세자 보양청계병>: 1784년 문효세자와 보양관의 상견례 행사」, 민길홍, 국립중앙박물관, 『 미술자료』 80, , 2011

    211. 「19세기 서울 옥호정(玉壺亭)과 석파정(石坡亭)을 통해 본 정원 특성 」, 이원호,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2-3, , 2014

    212. 「강이천의 『한경사(漢京詞)』에 대하여 -18세기 서울의 시적 형상화」, 정우봉, 『 한국학보』 20, , 1994

    213. 「제국을 향한 염원: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 소장 <海鶴蟠桃> 병풍」, 김수진, 『미술사논단』 28, , 2009

    214. 「朝鮮後期 進饌義軌와 進饌義軌圖 -己丑年 『進饌義軌』를 중심으로」, 박은순, 『 민족음악학』 17, , 1995

    215. 「金弘道의 <朱夫子詩意圖>, 御覽用 繪畵의 性理學的 性格과 관련하여 」, 오주석, 『美術資料』 56, , 1995

    21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형록필 책가도: 덕수4832 <책가도>를 중심으로 」, 민길홍, 『동원학술논문집』 16, , 2015

    217. 「17 18세기 한일 회화교류의 관계성: 에도시대의 조선화 열기와 그 영 향」, 홍선표, 『조선 회화』, 한국미술연구소, , 2014

    218. 「20세기 초, 한국 서화의 매매와 유통 양상 -신문 광고와 기사를 통해 봄-」, 이성혜,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44, , 2009

    219. 「김조순(金祖淳)을 통해 본 19세기 安東金門의 골동서화애호와 감상 풍 조」, 황정연, 『대동한문학회지』 43, , 2015

    220. 「18~19세기 조선의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와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 會)」, 안대회, 『대동문화연구』 69, , 2010

    221. 새비지 랜도어 저, 신복룡 역, 『(한말외국인기록 19)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 선』, A.H, 집문당, , 1999

    222. 「별서도(別墅圖)에서 명승명소도(名勝名所圖)로-정선(鄭敾)의 작품을 중 심으로-」, 조규희, 『미술사와 시각문화』 5, , 2006

    223. 「조선 말기 중국화의 유입 양상: 호림박물관 소장 <백납 6⑲병> 한 쌍 을 중심으로」, 한정희,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 한 중 일 고분벽화에서 실경산수화까지 』, 사회평론, , 2012

    224. 「금릉(金陵) 남공철(南公轍)의 서화(書畵)에 대한 관심과 『서화발미(書畵 跋尾)』」, 신영주, 『동방한문학』 47, , 2011

    225. 「조선시대 ‘일월오봉병’에 대한 도상해석학적 연구: 군주와 유교적 통치 의 원리」, 김홍남, 『중국 한국미술사』, 학고재, , 2009

    226.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십장생병풍(十長生屛風) 연구: 왕세자두후평 복진하계병」, 박본수, 『고궁문화』 2, , 2008

    227. 「20세기 초, 한국 서화가의 존재 방식과 양상 -수암(守巖) 김유탁(金有 鐸)을 중심으로-」, 이성혜, 『한문학보』 21, , 2009

    228. 「개화기 서울의 문화 유통 공간 -광통교 일대의 서화(書畵) 도서(圖書) 유통을 중심으로」, 김취정, 『서울학연구』, , 2013

    229. 꼬레아 에 꼬레아니: 100년 전 서울 주재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제티의 대한제국견문기, 이순우, 이돈수, 하늘재, , 2009

    230. 「조선시대 왕세자 用禮 복식의 추이: 『춘관통고』와 『관례책저도감의궤』 를 중심으로」, 이민주, (권오영, 임민혁 외, 『조선 왕실의 가례』 1,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8

    231. 『(국립민속박물관 세시기번역총서 5) 조선대세시기Ⅲ: 경도잡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이창희,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 2007

    232. 「조선 후기 병풍의 장황형태 및 제작기법 연구: 십장생 자수 10 ⑲병의 보존처리를 통한 연구」, 한종철, 남유미, 『삼성미술관 Leeum 연구논문집』 1, , 2005

    233. 「朝鮮後期 宮中御筆 收藏과 印刊: 1725년 『乙巳列聖御筆刊進及景宗大 王御筆屛風t錄』의 분석」, 황정연, 『藏書閣』 12, , 2012

    234. 「19세기 왕실 잔치 때 전각 내 왕실공예품의 배치 연구 -경복궁의 근 정전과 강녕전을 중심으로-」, 장경희,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향연과 의례: 잔치 풍경』, 국립중앙박물관, , 2009

    235. 알렉산더 크나이더 지음, 최경인 옮김, 『독일인의 발자취를 따라: 한독 관 계 초창기부터 년까지』, 한스, 일조각, 2013, , 1910

    236. 「조선후기 國葬用 牡丹屛의 사용과 그 의미: 정조(正祖) 국장(國葬) 관 련 의궤(儀軌) 분석을 중심으로」, 이종숙, 『故宮文化』 창간호, , 2007

    237. 「18~19세기 초반 문인들의 서화감상과 비평에 관한 연구: 成海應의 「書畵雜誌」와 南公轍의 「書畵跋尾」를 중심으로」, 손혜리, 『한문학보』 19, , 2008

    238.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통해 본 서유구(徐有구)의 일본 인식: 『화 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를 인용한 사례를 중심으로」, 조창록, 『대동문화연구』 78, , 2012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