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펼치기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연구논단 1] 유네스코 생명윤리와 인권 보편선언의 분석

        권오용(Oh-Yong Kweon) 한국생명윤리학회 2007 생명윤리 Vol.8 No.2

        유네스코 '생명윤리와 인권 보편선언'은 생명과학과 의료에 관한 일반적인 윤리원칙으로서 뿐 아니라 국제인권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생명윤리와 인권 보편선언'의 윤리적, 법적 의미와 효력을 검토하고, 이에 비추어 한국의 생명윤리법제와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현행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뿐 아니라 입법예고 된 개정안은 모두 선언의 원칙에 반하고 위헌의 소지도 있는 조항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생명윤리와 인권 보편선언의 내용을 반영한 생명윤리기본법과 함께 생명윤리의 각 분야별로 개별법들을 제정하는 입법안을 제안한다. UNESCO's Universal Declaration on Bioethics and Human Rights(UDBHR) is expected to develop as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S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reviewing on UDBHR in respect to legal meaning and effect to seek the direction of Korea's legislation to go. UDBHR is not international law itself and does not have binding force. But it can become international customary law and at least can be a guidance in the area of bioethics even now. In the light of UDBHR, both the present Korean legislation on bioethics and the amended bill have serious defects against the principles of UDBHR or Korean constitutional law. I suggest a new legal system on bioethics including a fundamental bioethics law and branch legislations.

      • KCI등재후보

        대학교육현장에서의 생명윤리교육

        양재섭(Jae Sub Yang),구미정(Mi-Jung Koo) 한국생명윤리학회 2009 생명윤리 Vol.10 No.1

        이 글은 대학교육현장에서 생명윤리 강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를 대구대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 연구이다. 대구대학교에서는 2004학년도 1학기부터 교양과목으로 〈인간복제시대의 생명윤리〉(2006학년도부터 〈생명윤리와 영화〉로 개명)를, 2005학년도 1학기부터는 분자생물학과의 전공과목으로 〈생명윤리학〉을 개설, 운영하여 왔다. 이 강좌에서는 대체로 ‘생명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과정’에 함축된 다양한 윤리 문제들을 다룸에 있어 해당 주제별로 적절한 영화를 선별, 활용하였고, 모둠별 토론활동을 통해 공동체성을 강화하고자 노력하였다. 자살과 낙태 등 생명경시가 유행병처럼 번지는 위기상황에서, 그리고 경쟁일변도로 치닫는 대학의 각박한 분위기에서 생명윤리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에, 생명관련 학과 학생은 물론 모든 대학생들을 위해 생명윤리교육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 생명윤리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과제가 시급히 요구되며, 복잡하고 어려운 생명윤리의 주제들을 쉽고 흥미롭게 가공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할 중간 매개자를 발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how the bioethics education works out in the universities. Especially focusing on the case of Daegu University, 〈Bioethics in the age of Human Cloning〉 had been operated as a selective course in the liberal arts since 2004, which has been changed into the title of 〈Bioethics and the Movies〉 in 2006. From 2005, 〈Bioethics〉 for Molecular Biology Students was added. When the lectures run this course, they choose and use the movies relating the bioethical issues so that the students can easily understand what is the main point of each themes and develop the community spirit through group activities. Because bioethics can be the last stronghold in the university where the humanities are hanging at the critical moment, it should be a compulsory course, not a selective one. Also for the bright future of bioethics in the universities, it is urgently needed to develop the professionals and encourage the intermediators to product the diverse educational supplements that help bioethics education be ease and interesting.

      • 文廟釋奠의 문화적 생명미학

        徐坰 遙 간재학회 2010 간재학논총 Vol.11 No.-

        제사문화는 생명문화에 대한 기도를 통해 생활문화의 안녕을 유지하려는 생존의 集會문화이다. 제사 중에는 천지와 산천에 대한 제사나 금수, 巨石, 古木과 같은 자연생명에 대한 제사와 인간생명을 낳아준 조상에게 대한, 그리고 문화생명을 낳아준 聖賢에게 드리는 제사 등이 있다. 이른바 釋奠은 文廟라는 學宮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이다. 따라서 고대 학교는 문화적으로 존현의식과 양현의식의 두 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다. 예물과 예절, 歌樂과 舞蹈등의 예술적 활동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행사이다. 또한 유교의례로서 석전대제는 祭壇이 되는 祠堂을 설치하고, 그 곳에 신앙의 대상을 位牌로서 現身하도록 하여, 인간에게 時空的인 제약을 초월하여 생명의 문화와 생활의 문화를 享有하도록 해준 데 대하여 그 고마움을 기리는 祭祀儀式이다. 문묘 석전의 典禮는 예악무의 종합적인 문화예술에 의해 행해진다. 그 대강을 보면, 석전은 廟宇에 先聖先師의 位牌를 모시고 時食의 祭羞를 진설하고, 笏記의 禮順에 따라 獻爵하며 歌樂舞로 그 德業을 칭송하는 문화적 제사이다.우리나라의 <釋奠儀註>는 迎神, 奠幣, 初獻, 亞獻, 終獻, 撤?豆, 送神, 飮福, 望?등으로 되어 있다. 또한 석전은 陽氣가 시작되는 仲春과 陰氣가 시작되는 仲秋의 각 上丁日에 樂正에게 무도를 익혀 釋菜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祭羞를 나물류만을 썼으므로 석채라 하고, 반궁을 芹宮이라고도 한다. 祭器로는 ?豆俎爵을 쓰고, 희생물로는 牛羊을 썼다 하여 釋奠이라 한다. 이른바 時祀를 지내는 것은 음양의 기운이 처음 시작하는 때를 택한 것이요, 가장 훌륭한 음식은 時饌이다. 제철 음식은 음양의 기운을 完備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樹木도 때에 맞추어 時伐해야 하고 禽獸도 때에 맞춰 時殺해야 한다. 한 나무를 자르고 한 짐승을 잡더라도 그 때로 하지 않으면 孝가 아니다. 이것은 仁者가 인간답지 못한 것을 미워하여 非孝라고 한 것이다. 효의식은 근본이 생명의식이다. 이것은 時中之道가 인간다움을 행하는 도로서 그 생명의식을 기준으로 殺生해야 함을 말해 주기도 한다.석전에서 행해지는 가악무는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적인 미학이다. 樂章의 송가, 器樂의 연주, 佾舞의 연희 등은 文武의 음양대대로 나누어 행해진다. 또한 악장은 八句로, 雅樂은 八音으로, 일무는 八列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천하에 천지자연과 인간의 소리와 몸짓으로 성현을 받들고 그 敎化가 팔방으로 퍼지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팔구체는 四言고체시의 형식으로 자연적인 음률에 맞게 노래하는 것이요, 팔음체는 金石絲竹과 匏土革木등 천지 속에서 나는 자연물로 만든 악기의 조화로 연주되는 것이요, 팔열체는 내외, 전후, 좌우, 상하의 팔방으로 춤사위를 펼치는 것이다.이러한 의식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미학은 바로 인간문화의 생명미라고 할 것이다. 또한 樂歌와 奏樂은 인간의 심지를 八音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온 천하에 政敎가 잘 행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소리인 것이다. 堂上, 堂下두 개의 음악으로 나누 것은 오로지 천지조화에서 상징을 취한 것이다. 고대 문화가 集成된 하은주 삼대 제사악은 영신에 당상의 노래와 당하의 연주를 合樂하여 일시에 아울러 신령이 상제 곁에 계신 곳에서 성음을 듣고 강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樂舞는 천지의 도를 인간이 ‘裁成輔相’하여 인사에 펴는 것이다. 문무를 통하여 겸양을 수련하고 무무를 통하여 일의 순발력을 키우는 용맹함을 단련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천지자연의 음양의 待對에 맞추어 舞具를 드는 것도 모두가 덕성을 갖추어 생활의 화동함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춤사위의 동작 또한 세 번 읍양하고 세 번 진격하는 것도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사회가 조그마한 서운함과 시샘이 없는‘無怨不爭’하는 安樂함과 和同의 미감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문묘의 제례악과 제례무는 성현의 德業과 함께 어울리기 위하여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가악무는 숭모하는 마음의 소리와 숭앙하는 몸짓의 춤사위로 興起시켜 그 祭儀를 鼓舞시키는 것이다. 歌辭는 頌歌이다. 祝文을 확대한 것이다. 홀기는 다만 예의 절차를 순서대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詩, 歌, 舞는 인간 내심의 지기를 안락하고 화동하게 하는 정감을 밖으로 표현하는 미학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樂舞는 천지의 유행과 형상을 그려내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천지 조화의 유행은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만져 보려 해도 형상이 없고, 쓰려 해도 말로 다하지 못하고, 그려내려 해도 그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오직 높고 낮은 악음만이 이를 원활하게 형용할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의식은 성현을 모신 사당에서 악장과 악가와 악무를 통해 문화생명을 기리는 축제인 것이다. 문무로 나누어 주악과 무도하는 것은 文舞樂을 통하여 예의를 학습하고 武舞樂을 통하여 신체를 단련하여 활동하는 문화를 상징하여 정교이념을 제시하는 것이다.옛 성인이 耳目과 心思의 힘을 다해 律管을 만들어 악을 조화시켜 예와 병행하여 예악이라 한다. 또한 국가 풍속의 후박함, 정치의 득실, 국운의 隆替함을 모두 악과 관련시켜 聲音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고 말한다. 樂音은 德音으로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듯이 정치의 교화가 펴져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문화생명이란 생동하는 活潑性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인간의 정감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살아있는 것이다. 음악 절주의 조화를 통해 세상살이의 안락함을 구가하는 일이다. 정교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그 지방의 노래가 편안해야 한다. 바로 마음을 나타내는 소리가 인간문화의 즐거움을 구가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노래와 춤이라는 것은 신체단련을 위해 고대에서부터 추어왔다. 그래서 무예나 양생술과 서로 통한다고 한다. 雅樂舞는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을 위함이었다. 文舞가 마음자세를 위한 정신수양이고 武舞가 신체단련이었다. 무도는 수렵을 나가기 전에 마음을 단련시키고, 수렵에서는 한번 창을 던져 바로 잡아야 용서가 되는데, 이를 연습하기 위해서 문무와 무무를 함께 연습 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악무는 演戱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감을 고취시키는 일종의 修身의 敎科目인 것이다.문화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다. 그것은 나와 남이 함께 문화적 소통을 통하여 삶을 질적으로 승화시켜 나아가는 일이다. 문화생명의 상징성은 인간다움이다. 나와 남이 함께 생명의 기쁨과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석전 행사에서 萬世의 宗師로 모시는 공부자 위패의 시호에 大成至聖이란 의미도 世道인심의 인간적 환경 교화를 위해서 유교문화 집대성한 더할 나위 없는 성인이시라는 뜻이다.유가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이른바 인간과 금수의 分辨의식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금수는 無禮하여 감정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지만, 인간은 인간다운 예의를 가지고 있어 세련된 문화생활을 영위한다. 따라서 인간문화는 인심을 음악으로 교화하여 바로잡는 예악사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문묘석전대제는 단순히 유교제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행하여진 집회문화로서 문화적

      • KCI등재

        생명체의 ‘환경’(milieu)과 들뢰즈의 ‘문제’ 개념

        문성균 대한철학회 2023 哲學硏究 Vol.167 No.-

        According to Canguilhem, the milieu is a category of thought tha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life. Biological discussions of the milieu conceptualize it as either an external cause for the organization of living or a product that the living organizes according to its own internal system. However, this conceptualization is insufficient in that it sees living and milieu as binary opposites. Rather, the milieu should be understood as for sufficient epistemic and ontological reasons for the organization of living things. This first requires an analysis of the duality of the milieu. The milieu is both physical and geographical, but it is also a space that is organized by the living. According to this analysis, the physical and geographical milieu will be conceptualized as a potential milieu for the living. The potential milieu is differentiated into an actual milieu for the living through encounters with the living's body, where the milieu emerges as a problem to be solved by the living. In this sense, the organization of living expresses the process of life, the process by which the living solves problems posed by its milieu. 캉길렘에 따르면, 환경은 생명체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유의 범주이다.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인 논의는 환경을 생명체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외적 원인 혹은 생명체가 자기의 내적 체계에 따라 구성하는 산물로 개념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화는 생명체와 환경을 이항대립 관계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불충분하다. 오히려 환경은 생명체의 조직화를 구성하는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충분 이유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환경의 이중성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환경은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동시에 생명체에 의해 구성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환경은 생명체에 대해 잠재적인 환경으로 개념화될 것이다. 잠재적인 환경은 생명체의 신체와의 마주침을 통해 생명체에 대한 현실적인 환경으로 분화하고, 이때 환경은 생명체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로서 출현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명체의 조직화는 생명체가 환경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즉 생명의 과정을 표현한다.

      • 개혁주의생명신학으로 본 한국교회 청년대학생사역의 문제점과 그 대안: 제2의 종교개혁을 기대하면서

        안오순 ( Ahn Oh Soon ) 개혁주의생명신학회 2017 생명과 말씀 Vol.18 No.-

        한국교회는 민족의 아픈 현실 속에서 겨자씨 한 알처럼 시작하였지만 대한민국의 건국과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하면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일은 청년대학생이 교회를 떠난다는 사실이다. 이 겨레와 함께 하였던 한국교회가 그 겨레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교회가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세속의 가치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안팎에서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암담한 중세교회 현실에서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개혁자들의 후예로서 개혁운동을 시작할 때이다. “교회는 `개혁된 교회`가 아니라 `항상 개혁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개혁은 한 시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할 성경정신이다. 그 개혁운동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개혁운동은 청년대학생사역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운동은 개혁주의생명신학에 뿌리를 둬야 한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유일한 목표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살리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교회 청년대학생사역을 개혁주의생명신학의 렌즈로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 하고자 한다. 그 대안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청년대학부사역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1대1 성경공부와 소그룹 사역, 그리고 성경적 설교를 통하여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을 신행일치의 제자,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로 양성하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의 뿌리에는 전도와 기도가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성경적 생명가치를 회복시키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붙들고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다면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겨레와 하는 함께 하는 생명력 있는 교회, 한반도를 넘어서 오대양 육대주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역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을 것이다. The Korean church, which originated as a kernel of wheat during national crisis, has now spread its roots and grown as a tree in which birds can nest.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is nation, its modernization, industrialization and democratization, the church took its role as the salt and light of society. However, in contemporary society, the church has found itself in disrepute. The most pressing issue lies in that youths do not wish to stay within the church, highlighting that is has become outdated and is increasingly shunned. The reason for this lies in that churches have lost their spiritual power and have conformed to the secularism of this world. This highlights the need for the second reformation of the church. Today`s believers are the descendants of reformers in the middle age who lifted their voices and effected change. Reformation entails continuity, it is not finished with the work of one generation but it is a continual and ongoing process of change. Churches must be reformed continually. This is biblical reformation. Where will this change begin? Campus youth ministry is the starting point of reformation. The foundation of this lies in Reformed Life theology. The ultimate purpose of Reformed Life theology is to let ourselves to be transformed by the power of the Spirit so that we may resuscitate the church and glorify God. In light of this, I would like to propose alternative ways to address the current spiritual situation of campus youth ministry in Korea. Alternatives such as encouraging a paradigm shift in Korean spiritual leaders regarding campus youth ministry, the recovery of the Christian community through one to one Bible study, small group ministry and Biblical preaching. Its fruit will be the genuine disciple who practice Biblical teachings in their actual lives and self-supporting lay missionaries who can spread the gospel of Jesus to the world. The root of all these works must be evangelization and prayer. Reformed Life theology is the way to restore the Biblical values of life. We must pay heed to it and cling to it, practice it until the second reformation arises in our generation. With this, the Korean church will be regain its spiritual power and influence and Korea will become a conduit for sending missionaries the world over. And God will use Korea as a priestly nation for world mission again.

      • KCI등재

        생명현상과 지구의 우주공간이동

        김채수(Kim, Chae-Su)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인문과학연구 Vol.0 No.35

        필자는 오파린의 “생명은 물질운동의 특수한 형태”라는 견해에 기초해, 생명이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물질운동의 특수한 형태로 정의한다. 또 ‘생명은 물질의 역사적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한 독특한 현상’이라는 그의 정의를 받아들여, 생명은 지구상의 물질적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독특한 현상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우주 속에 처해 있는 지구라고 하는 한 천체의 표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일으켜가는 생명현상이란 오직 지구가 만들어낸 물리적 환경에서만이 일어날 수 있는 한 특수한 물질적 현상이라면 지구는 그러한 물질적 현상을 어떻게 일으켜가고 있는 것인가? 본 연구는 바로 이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생명체들의 생명현상은 지구의 우주공간이동에 의거해 행해진다. 이러한 사실의 논거는 물체들의 물리적 차원 또는 그것들을 구성하는 분자 내지 원자 수준의 화학적 차원 등에서 행해지는 물질적 현상들의 시각으로부터 그것들의 관련성과 공통성 등의 파악을 통해 제시될 수 있다. 우선 지구의 우주공간이동의 물리적 현상의 특징은 본론을 통해 검토된 바와 같이 지구가 이동성?방향성?지속성?단계성?반복성 등과 같은 특성들이 구체화된 형태를 취해 우주공간 내에서의 열적 평등과 동적 안정을 추구해나가는 현상으로 규정될 수 있다. 지구상의 생명현상은 바로 이러한 특징을 취하는 물리적 현상의 결과로 혹은 그러한 물리적 현상과의 연동 결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개체적 안정과 종족적 안정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부단히 움직여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그토록 안정을 추구해가는 의지는 과연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그것은 보다 더 안정된 상태를 확보해가기 위해 끊임없이 우주공간을 이동해가는 지구 바로 그것에 근거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 생명의 본질에 대한 문제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추구해가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자각과 그것에 근거한 생명윤리의 확립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접근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입장이 취해지는 것이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개체?집단?동종 등과 같은 각 차원들을 통해 자신들의 신체적 안정을 추구해가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생명의 본질을 각 생명체들의 신체적 안정의 추구현상으로 규정해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생물체들에게서 신체상의 절대적 안정상태의 확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단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지구의 우주공간이동이 일으켜가는 지구상의 물리적 현상에 맞물려 바로 그러한 상태를 추구해나가는 존재들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절대적 안정 상태를 추구해 가는 지구의 우주공간 이동과정이 우주의 팽창과정과 연동되어 개체의 생명작용?종족번식?타 생명체들과의 연동 등과 같은 형태를 취해 생명현상을 일으켜가고 있는 것이다. Based on the view of Alexander Oparin that ‘life is a special form of physical movements,’ the author of this paper defines life as a special form of physical movements that take place on Earth. Also, accepting Oparin’s definition that ‘life is a unique phenomenon that occurs at a certain stage of the historic advancement of materials,’ the author of this paper takes a position that life is a unique phenomenon that occurs in the physical evolution process of Earth. Speaking in terms of a more comprehensive dimension, the life phenomena caused by all life forms, which exist on the surface of a celestial body called Earth in the universe, can be asserted to be physical phenomena that can only occur on Earth. If so, then how has Earth come to cause such special physical phenomena? The principal agent that causes life phenomena on the surface of Earth is the Earth’s movement in the space of the universe. First, the characteristics of physical phenomena of the Earth’s movement in the space of the universe can be defined as the phenomena of Earth’s pursuit of thermal equality and dynamic stability within the space of the universe by taking forms, in which characteristics such as mobility, directionality, persistence, being phasic, repetitiveness, etc. are materialized. Life phenomena on the surface of Earth can be defined as the results of physical phenomena that take these exact characteristics, or be defined as the interrelated results of such physical phenomena. From a sense of the meaning that all current life forms on Earth are entities that comprise Earth, by taking the very forms of the characteristics through which the Earth’s movement in the space of the universe can be understood, life forms can be defined as beings that pursue thermal equality and dynamic stability. All life forms on the surface of Earth are constantly moving their bodies for their individual stability and the stability of their species. If so, where does their resolve of pursuit of stability indeed come from, and what is it based on? It becomes inevitable not to accept the notion that everything is based on Earth, which is on an endless move through the space of the universe to secure a more stable state. All life entities on this Earth are pursuing physical stability for themselves through various dimensions such as individual entities, groups, homogeneous species, etc. Each life entity is a being that is in pursuit of such a state. All life forms on Earth are -- as the process of Earth’s movement through the space of the universe in pursuit of an absolutely stable state is interrelated with the expansion of the universe -- causing life phenomena by taking forms such as life actions of individual entities, proliferation of species, interrelations with other life forms, etc. The author of this paper proposed in Chapter 3 of the main discussion a position that the Earth’s movement in the space of the universe has created all the life forms on the surface of Earth and presented an experimental method that can prove such assertion. In case such an experiment is undertaken henceforth by someone, most likely, that experiment will be named the second Miller-Urey experiment.

      • KCI등재

        생명의 생태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 - 니체와 쉬바이처를 중심으로

        변순용 범한철학회 2010 汎韓哲學 Vol.56 No.1

        In der vorliegenden Abhandlung handelt sich um den Begriff des Lebens bei A. Schwietzer und F. Nietzsche. Der Begriff des Lebens bei A. Schweitzer und F. Nietzsche ist wichtig in ihrer Philosophie. Während Schweitzer den Begriff des Lebens vor allem mit Solidarität und Verbundensein mit anderem Leben in Zusammenhang bringt, bedeutet das Leben für Nietzsche im wesentlichen genau das Gegenteil, nämlich Konflikt, Kmapf, Ausbeutung und Übermächtigung. Scharfe Kritik übt Schweitzer zudem daran, daß Nietzsche ganz offensichtlich den Willen zum Leben durchgängig in engste Verbindung mit dem Willen zur Macht bringe, d.h., den Willen zur Leben regelrecht mit dem Willen zur Macht identifiziere. Wenn man die Kraft, die nach dem Leben strebt, als Kraft im selbst die Akkumulation von Kraft für das Leben unterscheiden kann, dann den ersteren nimmt Schweitzer, und Nietzsche nimmt den letzteren. Denn ist der Wille zur Macht vielmehr immer und grundsätzlich eine Pluralität von Kräften. Für Schweitzer ist Lebensverneiung nämlich keineswegs immer einfach gleichbedeutend mit Verneinung des Lebens. Es mag sich vielmehr gerade auch hier ein Streben nach Lebensbejahung, nach Lebensverbesserung, nach Lebenssteigerung verbergen. Die beiden Denker haben eine gleiche Ausgangspunkt, aber durch anderen Weg, d.h. Solidarität und Ausbeutungscharakter des Lebens, sind sie zum gleichen Schluß, d.h., die Weltbejahung durch Lebensbejahung, gekommen. 생명 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을 통해 생명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기에, 이 논문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서로 상반되었다고 여겨져 왔던 쉬바이처와 니체의 생명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쉬바이처가 생명 개념을 연대성 내지 결합성, 혹은 다른 생명과의 조화를 향한 노력으로 정의한데 반해, 니체는 생명현상의 핵심으로 착취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니체가 생명의지를 힘의 의지로 보느냐 힘의 축적의 의지로 보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물론 힘의 축적의 의지도 넓게 보면 힘의 의지에 포함되겠지만, 만약 이 두 의지가 구분된다면, 즉 생명의지가 ‘살려는 힘의 의지 그 자체(Kraft als Kraft)’와 ‘힘을 (가급적 많이) 축적하려는 의지’(Akkumulation von Kraft)로 구분된다면, 쉬바이처는 생명의지를 전자 쪽에, 니체는 후자 쪽에 관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 내지 적어도 상태유지라는 의미에서의 생명의지와 여러 종(種)간, 종내의 투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힘의 축적을 지향하는 생명의지는 같지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쉬바이처에게 있어 생명부정은 단순하게 생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긍정을 향한 노력, 생명개선, 생명의 상승 작용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결국 쉬바이처와 니체는 생명긍정과 생명부정의 긴장관계에 대하여 힘으로서의 생명의지라는 동일한 출발점을 갖지만, 각각 다른 길을 통해 결국 최종목표인 생명긍정을 통한 세계긍정이라는 곳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 KCI등재

        중독사회 극복을 위한 생명 감수성 향상 필요성과 방안 연구

        조준호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2022 생명연구 Vol.64 No.-

        Addiction society is an expression of the view of our society as an addict. The life of a civilization captured by tools, technology, money, organization (system), and writing causes the person to lose self as life. Instead, it leads to a mechanical life, leading to a lack of life sensibility such as various deficiencies, anxiety, obsession, and indulgence. Such vital susceptibility deficiency symptoms are also pointed out as the cause of addiction. Therefore, this study investigated the relationship between life and addiction, civilization and society, addiction society, and life susceptibility as a response to the addiction society, and suggested the necessity and method of improving the sensitivity of life. In addition, it was intended to propose an understanding of addiction from the perspective of life in our society where studies and policies to manage addiction as a disease are dominant. ‘중독사회’는 우리 사회를 하나의 중독자로 보는 견해의 표현이다. 도구, 기술, 돈, 조직(시스템), 문자에 포획된 문명의 삶은 생명으로서 자아를 잃게 한다. 대신에 기계적 삶으로 이끌어 각종 결핍, 불안, 집착, 탐닉 등 생명 감수성의 결핍에 처하게 한다. 이와 같은 생명 감수성 결핍 증상들이 개인적 중독의 원인이자 중독사회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중독사회의 대응으로서 생명과 중독, 문명과 사회, 중독사회, 생명 감수성 등의 관계를 규명하고 생명 감수성의 향상 필요성과 방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질병으로서 중독을 관리하는 관점의 연구와 정책이 지배적인 우리사회에 생명 관점의 중독 이해라는 제안을 하고자 하였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