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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라벨의 ‘악의 현존과 고통’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 그리고 그 한계

        이명곤(Lee, Myoung-gon) 대한철학회 2018 哲學硏究 Vol.145 No.-

        루이라벨의 사상에서는 현대철학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주제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의 사유에서 악의 개념은 ‘악이란 존재의 부족’이라는 스콜라철학의 소극적인 규정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세계에 현존하는 악이란 ‘삶과 가치’를 파괴하는 의지적인 힘으로, 즉 도덕적인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악의 현존(la présence du mal)’을 ‘세계의 스캔들(le scandale du monde)’로서 규정하는 그의 사유에는 모든 인간이 의지의 태도로서의 악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와 인간사회에서의 악의 현존은 필연적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반면 악의 결과가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으로서 나타나기에, 고통을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태도’는 이러한 악을 극복하고자 하는 도덕적인 의지를 유발하게 한다. 악의 현존 앞에서 가지게 되는 ‘내적인 고통’인 ‘도덕적인 고뇌’는 그 자체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는 의식을 가지게 하고 여기서 자기만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고통스럽지만 도덕적인 존재가 됨에 대한 자기만족과 행복감은 인간이 악의 현존에 맞서 이를 초극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이자 동기이다. 즉 라벨의 선과 악에 대한 사유는 ‘도덕 심리주의’에 기초해 있으며, 고통에 대한 거부와 도덕적 고뇌에 있어서의 ‘심리적 지평과 윤리적 지평의 일치’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악을 극복하고 선을 산출하도록 한다는 ‘윤리적 낙관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는 분명 스콜라 철학의 발전된 현대적인 적용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또한 ‘악을 유발하는 의지의 태도에 대한 구체적 양태의 분석’, ‘사회 속에 현존하는 악의 구체적인 양태들’ 그리고 이러한 악을 초극할 수 있는 ‘의지적인 노력의 다양한 양상’ 등에 대한 분석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구체성의 부족은 선과 악에 관한 라벨의 사유가 여전히 소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In the philosophy of Louis Labelle, the subject of “good and evil”, which is rarely discussed in modern philosophy, emerges as a very important concept. In his reasoning, the notion of evil starts from a passive stipulation of the Scholastic philosophy of “the lack of being”, but he defined the evil, which actually exists in the world with more positive sense as a willing force destroying “life and values”. In his reasoning that defines “the presence of evil” as “le scandale du monde”, all humans have the possibility of evil as an attitude of will, and the presence of evil in the world and in human society is inevitable. On the other hand, because the outcome of evil appears as physical and mental “pain”, the human’s attitude toward pain, which attempts to deny suffering, induces a moral will to overcome this evil. The moral anguish, which is the “internal suffering” that we have in front of the presence of evil, makes us conscious of becoming a “moral being”, and people become self-satisfied here. Although painful, self-satisfaction and happiness about becoming a moral being is the only occasion and motive for man to overcome this by opposing the presence of evil. In other words, Lavelle’s thoughts for good and evil are based on “moral psychologism”, and the “coherence of psychological horizons and ethical horizons” between rejection of suffering and moral agony enables “ethical optimism” that man constantly overcomes evil and produces good. This is clearly an advanced modern application of scholasticism on the concept of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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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茶山의 道家易學비판

        방인(Bang In) 대한철학회 2008 哲學硏究 Vol.108 No.-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조선(朝蘇) 후기(後期)의 실학사상가(實學思想家)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도가역학(道家易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왕필(王弼)은 도가역(道家易) 계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로서, 한대고문경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대상수학의 방법론을 부정한 사상가이다. 왕필역학은 진(晉)의 한강백(韓康伯)에게로 계승되고 있으며, 당(唐)의 공영달(孔潁達)은 왕필(王弼)과 한강백(韓康伯)의 주(注)에 자신의 소(疏)를 덧붙여 『주역정의(周易正義)』를 편찬하였다. 이러한 왕필의 역학은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 양파육종(兩派六宗)의 한 갈래로 설정할 만큼 역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산은 왕필역학에 대한 비판적 지양(止揚)을 통해서 자신의 역학이론을 형성한 만큼, 다산과 왕필은 방법론적 측면에서나 혹은 철학적 관점에 있어서나 서로 대척점(對蹠點)에 서있다.   필자는 다산의 도가역학에 대한 비판을 분석하기 위해서 『역학서언(易學總言)』을 주로 활용할 것이다. 『역학서언(易學緖言)』은 역학사의 중요사상가들에 대해 다산이 비평적 관점에서 논평한 것을 모아놓은 것으로서, 이 가운데에는 왕필(王弼)과 한강백(韓康伯) 등의 도가역(道家易) 계열의 역학자들에 대한 다산의 비판이 중요한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역학서언(易學緖言)』중에서 「왕보사역주론(王輔嗣易注論)」은 다산의 왕필비평이 집중적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이므로,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아울러, 왕필역학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진(晋)의 한강백(韓康伯)에 대한 다산의 비판인 「한강백현담고(韓康伯玄談考)」에 대해서도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왕보사역주론(王輔嗣易注論)」과 「한강백현담고(韓康伯玄談考)」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도가역에 대한 다산의 비판적 관점의 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밖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는 「공소백일평(孔疏百一評)」, 「한위유의론(漢魏遺義論)」, 「정강성역주론(鄭康成易注論)」등이 있다. 「공소백일평(孔疏百-評)」은 공영달에 대한 다산의 비평을 담고 있는 글로서, 당(唐)의 공영달(孔潁達)은 왕필과 한강백의 주에 자신의 소(疏)를 덧붙여 『주역 정의(周易正義)』를 편찬한 인물이기 때문에 역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 다음으로 「한위유의론(漢魏遺義論)」은 한(漢)·위(魏) 제가(諸家)의 학설에 대한 다산의 비평이며, 「정강성역주론(鄭康成易注論)」은 정현의 역론에 대한 다산의 비평이다. 아울러, 다산의 역학관련 주저인 『주역사전』 중에서 왕필에 관해 언급된 부분들도 보충적 자료로서 활용할 것이다.   이러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서, 다산은 왕필을 위시한 도가계열의 사상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 관점으로 맞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왕필은 본래 유가의 경전인 주역을 이념적으로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한대(漢代)역학의 상수역적 방법론을 역학에서 제거해 버렸다. 왕필의 역학은 한강백에게로 계승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도가적 이념에 바탕을 둔 역학해석이 일세를 풍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역의 상수역적 방법론 가운데에는 술수로 치우쳤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으나, 거기에는 동시에 고대역학의 정통적 방법론을 원형 그대로 전수해 내려온 긍정적 측면도 있다. 다산은 역학의 정통적 맥이 왕필에 의해 단절되었음을 개탄하면서, 역의 정통성을 회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유가의 경전인 주역을 도가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후세에 혼융주의적 해석을 크게 유행시켜, 삼교일치론(三敎-致論)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산은 이러한 혼융주의적 해석의 근원에 왕필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왕필비판을 통해서 이단적 해석의 뿌리를 제거하고, 수사학(洙泗學)의 본원(本源)으로 복귀(復歸)하고자 한 것이다.   In this paper, I dealt with Dasan(茶山) Jeong Yag-yong(丁若鏞)"s criticism on the Taoistic interpretation of the Yijing(易經). Although there were several other scholars who made a Taoistic interpretation of the Yijing, Wang Bi(王弼) is particularly important because he is the person who, for the first rime, made the Taoistic interpretation on the Book of Change. In almost every aspect regarding Yijing, Dasan"s standpoint is diametrically opposed to Wang Bi"s viewpoint. Dasan who was outspokenly critical of Wang Bi"s philosophy, thought that Wang Bi deviated too far from the right path of the orthodox Confucianism. He maintained that Wang Bi had ignored the significance of xiang(象: the image) although it was an indispensible element for deciphering the meanings of the hexagram statement. It is particularly regrettable that Wang Bi"s disregard of xiang lead to the abandonment of the various interpretive skills which belonged to the Xiangshu School of the Han period, such as huti(互?), guaqi(卦氣), guabian(卦變), najia(納甲) theory. Instead, he replaced them with the theory of Xuanxue(玄學, Dark Learning School). However, from Dasan"s point of view, such removal of Xiangshu interpretive methods did nothing but the harm to the history of the Yijing. He considered Han"s Xiangshu methods to be the precious legacies handed down from the earliest period related to the Yijing. In addition, Dasan reproached Xuanxue(玄學)"s ontological view that the nonexistence should be regarded as the source of every existence. Evidently, it is none other than Wang Bi who initiated such Taoistic interpretation. Afterwards, Han Kang-bo(韓康伯), who had much admired Wang Bi, finally completed the annotation of the Ten Wings(十翼, Shi Yi) unfinished by Wang Bi. Although Kong Ying-da(孔潁達) attached much importance to Wang Bi and Han Kang-bo compiling the Zhouyi Zhengyi(周易正義, The Rectifications of Meanings of Zhouyi), Dasan severely reproached Kong Ying-da for giving consent to their authority. But if one goes back to the origin of this syncretic ideology, it is sure that Wang Bi should be more blamed for initiating such a tendency. As a natural consequence, Dasan, who was firmly determined to remain faithful to the orthodox Confucianism, attempted to revert to the pristine message of the Yijing by criticizing Wang Bi and his success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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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학과 논술

        윤혜진(Yoon, Hey-jin) 대한철학회 2009 哲學硏究 Vol.109 No.-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를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윤리학은 우리의 가치관이나 도덕적 신념 형성에 직접 결부되어 있다. 한 개인의 도덕적 신념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이끌어간다. 이런 차원에서, 수많은 윤리적 쟁점에 대한 자기 해답은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자신의 도덕적 신념이 실린 도덕적 삶의 방식은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로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윤리논술은 간과될 수 없는 중대한 학문적 방법이다. 윤리 논술의 핵은 윤리적 논증이다. 윤리적 논증 구성은 윤리적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맞는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로 끝맺음된다. 따라서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과 그에 대한 교육의 핵심 목표 역시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윤리적 논증, 즉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적합한 윤리적 근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이 글은 윤리학에서의 논술과 논술 교육이 윤리적 논증 형성이라는 핵심 목표, 특히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대한 도덕적 근거 제시를 얼마나 정당하게 표현해내느냐에 있다고 보고, 그에 대한 효율적 방안 등을 검토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요컨대, 본 논문은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해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일, 그리고 그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논증적 글쓰기로서의 논술에 대한 기본적 정의를 마련하면서, 논술과 윤리적 주제와의 상관관계 역시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What is the argumentative writing? What is the argumentation in ethics? In this paper we will examine the notions of argumentative writing and the implications that seem to follow from it. And then we will examine the relation of ethics and argumentative writing. To clarify the relation is important for analyzing and evaluating ethical arguments. This paper is trying to give consistent and systematic ways of argumentation about ethical subjects. After this we will explore the outlines of argumentative writing in ethics, which holds to the validity of moral principles in ethical arguments. By doing these works, we can learn the ways teaching argumentive writing in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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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학과 논술:도덕적 근거 제시의 중요성

        윤혜진 대한철학회 2009 哲學硏究 Vol.109 No.-

        What is the argumentative writing? What is the argumentation in ethics? In this paper we will examine the notions of argumentative writing and the implications that seem to follow from it. And then we will examine the relation of ethics and argumentative writing. To clarify the relation is important for analyzing and evaluating ethical arguments. This paper is trying to give consistent and systematic ways of argumentation about ethical subjects. After this we will explore the outlines of argumentative writing in ethics, which holds to the validity of moral principles in ethical arguments. By doing these works, we can learn the ways teaching argumentive writing in ethics.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를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윤리학은 우리의 가치관이나 도덕적 신념 형성에 직접 결부되어 있다. 한 개인의 도덕적 신념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이끌어간다. 이런 차원에서, 수많은 윤리적 쟁점에 대한 자기 해답은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자신의 도덕적 신념이 실린 도덕적 삶의 방식은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로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윤리 논술은 간과될 수 없는 중대한 학문적 방법이다. 윤리 논술의 핵은 윤리적 논증이다. 윤리적 논증 구성은 윤리적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맞는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로 끝맺음된다. 따라서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과 그에 대한 교육의 핵심 목표 역시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윤리적 논증, 즉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적합한 윤리적 근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이 글은 윤리학에서의 논술과 논술 교육이 윤리적 논증 형성이라는 핵심 목표, 특히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대한 도덕적 근거 제시를 얼마나 정당하게 표현해내느냐에 있다고 보고, 그에 대한 효율적 방안 등을 검토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요컨대, 본 논문은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해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일, 그리고 그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논증적 글쓰기로서의 논술에 대한 기본적 정의를 마련하면서, 논술과 윤리적 주제와의 상관관계 역시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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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의 권력론에 대한 리쾨르의 해석

        김선하(Kim, Sun-ha) 대한철학회 2017 哲學硏究 Vol.143 No.-

        리쾨르는 사도 바울의 권력론을 해석하면서 제도를 통한 구속이론을 전개한다. 그리고 정치적 권력에 대한 이해를 소유의 경제적 영역과 가치의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을 넘어서 인간 형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전개하는 그의 논리의 근거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에 있다.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한 사도 바울은 모든 권세들이 하나님에 의해 ‘설립되고 세워진다’는 것과, 따라서 권위에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권력자는 너의 선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권력자 개인에 대한 인격적 복종이 아니라 제도에 대한 존중이다. 다시 말하면 전체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권력을 가진 개인들의 악의에도 불구하고 국가제도는 선하다는 주장이 사도 바울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배경은 그리스 교부 이레니우스적 창조관과 ‘하나님 형상’에 대한 해석이다. 리쾨르는 정치 권력자에 대한 논의를 경제와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전개하면서, 제도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This paper is an attempt to explain the interpretation of P. Ricoeur on the theory of power of Saint Paul. P. Ricoeur tried to reinterpret Saint Paul’s thoughts on the power of a nation, the purpose being to link this theory to salvation through the social system. Ricoeur expands this interpretation of political power to the economy and culture. The basis of these ideas is the ‘imago Dei’ namely the image of God. I would like to consider the image of God as the key to salvation through social system,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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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생명사상에 있어 인간의 지위

        박영신 대한철학회 2011 哲學硏究 Vol.119 No.-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consider the status of human beings in the life thought of Kim, Ji-Ha. For this purpose, firstly, I would like to consider the world view of life after separated by the essence of life, time and space of life, secondly, look at the logic of life perception, thirdly, discuss the natural and human relationships, Spirituality and ethical responsibilities, and the status of human. For Kim, Ji-Ha, life is a creation, not a reality and things with vibration, rotation, expansion are all life without replication ability. In other words, animals and plants, organic, inorganic, and culture as well as human beings can be included in the scope of life. All life is connected to one, the relationship between each other is the servant. Life is the revealed material order in the phenomenon of life and spirituality is the order of the hidden heart. Human beings do not have any special status as a cyclical life net in the perspective of life. But, human beings have their special status in the perspective of spirituality as a last flower of evolution process. And, having the special status means having a sense of ethical responsibility for all life, not means the supremacy of human life. 생태위기의 중심에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적 관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극복할 가능성도 인간이 가지고 있다면, 기존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점검과 이를 대체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기존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관념은 자연과 인간은 대립적이거나 공존적 관계이거나 인간은 모든 존재를 총괄하는 자연의 일부라는 입장이 있다. 이들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우위, 자연과 인간이 분리된 채로 공존, 자연의 우위만을 강조하기에 자연과 인간의 존재론적 연결성과 인식론적 특수성이 동시에 확보되지 않는다. 김지하에 따르면 생명은 실체가 아니라 생성이므로 명확히 고정시켜 정의할 수 없지만 복제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진동, 순환, 팽창, 생성하는 모든 것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범위에는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 유기물, 무기물, 질병, 문화 등이 모두 포함된다. 생명을 인식하는 ‘아니다 그렇다’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논리는 생명현상을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질서인 영성과 드러난 물질적 질서인 생명으로 구분한다. 영성적 측면에서 우주 만물은 모두 인식적 능력인 영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간이 가장 높은 인식능력을 가진다. 즉 인간의 인식론적 특수성이 확보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정복이나 착취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윤리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다. 한편 생명적 측면에서 인간은 순환적 생명그물의 일부이기에 인간의 지위 자체를 거론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 특수한 지위를 확보하면서도 확보하지 못하는데, 이는 생명현상이 가진 불연기연의 역설적 논리 때문이다. 따라서 김지하에 있어 인간의 지위는 자연과의 불가분적 관계가 전제되어 있으며, 자연과의 존재론적 연결성과 인간의 인식론적 우위를 동시에 확보한다. 즉 자연 만물의 유기적·공동체적 연결성이 확보되는 사상적 기반 위에 자연 만물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인식이 확보되고, 이를 통해 인간을 포함한 자연 만물에 대한 모심과 공경을 실천함으로써 생태위기 상황을 극복할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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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바달다 5法의 성립배경 고찰

        염중섭 대한철학회 2009 哲學硏究 Vol.112 No.-

        Devadatta's cakrabheda was not originated from the emotional aspects by the competition for wedding as asserted by some Buddhist traditions but from the viewpoint difference in the training way of 5 methods as shown in the vinaya pitaka and other scriptures. Therefore, the consideration on the 5 methods, which were the core of the cakrabheda, can acquire an important validity in understanding the cakrabheda. There have been controversies on the specific items of 5 methods among the related documents, but in 「the Consideration I and II of Devadatta's 5 Methods」 the author has presented that the 5 methods must be as follows: clothing-humble patched clothes(pāṃsu-kūla); food-begging; prohibited food-dairy product, fish and meat; residence-sitting on the road and under the trees. Upon the itemized arrangement, this paper investigates the origin of the 5 methods and their implication. Then, the differences of Devadatta and Buddha in their viewpoint on the 5 methods are diagnosed. The 5 methods were a disciplinary way which was presen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contemporary Buddhist sect by Devadatta who tried to be a new Buddha. Therefore, through the correct recognition of the meaning in the 5 methods, we can secure the mor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n the situation of saṃgha at that time. Through the fact that Buddha acknowledged some of and negated the other of 5 methods at the same time, it is possible to comprehend the character of Buddha's middle way viewpoint and the difference of 5 methods. It rightly explains why Devadatta could not become the successor of Buddha and had to proceed to the cakrabheda. Devadatta's saṃgha-bheda is a very problematic event in the Buddhist viewpoint. But, as it is a undeniable event in the Buddhist history, it is necessary to arrange it clearly. For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saṃgha-bheda. it is in turn necessary to comprehend the 5 methods rightly. Furthermore, the academic approach to the 5 methods is significant in that it gives us the more realistic recognition on Buddha in his later days. 提婆達多의 破法輪僧은 佛傳들에서 주장되는 것처럼 捔術爭婚에 의한 감정적인 측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律藏 類의 전적들에서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5法과 관련된 수행방법론적인 관점 차이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의 핵심이 되는 5법에 대한 내용적 고찰은 파법륜승의 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타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5법의 구체적인 항목에 대해서는 관련전적들에 따른 편차가 크지만, 필자는 이에 관하여 「제바달다의 5法 고찰Ⅰ·Ⅱ」를 통해 5법이 ‘衣:糞掃衣, 食의 방법:乞食, 食의 금지:乳酪·肉魚, 住:樹下露坐’가 되어야 함을 고찰한 바 있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항목적인 정리를 바탕으로 5법의 성립 來源과 내포의미를 검토한 이후, 제바달다와 붓다의 5법에 대한 관점차이 문제를 개진해 보고자 한 것이다. 5법은 新佛이 되고자 한 제바달다의 당시 불교교단에 대한 대안제시의 성격을 가지는 수행방법적인 측면이다. 그러므로 5법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승단의 상황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확보해 볼 수가 있게 된다. 또한 5법이 붓다에게 있어서도 일면 긍정되는 동시에 부정된다는 것을 통해서 붓다의 중도주의적인 관점의 특성과 5법의 차이를 파악해 보는 것이 가능해 진다. 이는 제바달다가 붓다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동시에 제바달다가 파법륜승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측면에 대한 이해를 도출케 해준다. 제바달다의 파승가는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문제가 많은 사건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실재했던 교단사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리는 필연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파법륜승에 대한 보다 정확한 내용 이해를 위해서라도 5법에 대한 올바른 파악은 반드시 요청된다고 하겠다. 또한 5법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붓다 만년에 관한 보다 사실에 근접한 인식을 확보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본 연구의 의의는 존재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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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기술 그리고 윤리- 과학기술의 책임에 대한 윤리적 고찰 -

        이윤복 대한철학회 2009 哲學硏究 Vol.112 No.-

        Science, technique and ethics which could be conceived as the embodiment of three functions of our reason performed their own role at their own sphere dividedly or separately in ancient times. These separation and division went on till the Middle age. Technique existed without science and science didn't combine with technique in that age. From the beginning of the modern age, science and technique interrelated with each other and in the end dissolved into new one which could be called technology or techno-science. And this technology begins to change the nature and at last it is trying to create the new world which would be the second nature. We are now living in this era; nobody cares the future world which is created or is still being created by technology, and nobody cares whether this the future world would be Utopia or Dystopia and technology runs rapidly on its progressive way with optimistic confidence based on the materialistic affluence by providing technology itself. So the world that is created and being created needs another combination, namely the combination of technology and ethics in order to eliminate the danger of the dystopia before too late. For this combination, social ethics of technology which deals with the responsibility of society for technology should be added to individual ethics of technology which deals with the responsibility of technologist or the technology itself the society. For this th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technology and the participation of the representatives in every social field are needed. The social agreement by the representatives who have th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echnology would be essential theme of 'the future ethics', showing positively the ideal image of future world in which we want to live on the active side, and it would be the important imperatives of 'the prescriptive or preventive ethics', showing negatively the technology and the technologist what to permit and what not to permit on the inactive side. 이성의 세 가지 능력이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과학과 기술과 윤리는 고대에서는 서로 분리 혹은 분열된 채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분리는 중세까지 계속되었다. 그때까지 기술은 과학 없이 존재했으며, 과학은 기술과 결합하지 못했다. 이제 근대에 들어오면서 과학과 기술은 상호 교류하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로 융합되게 된다. 그리하여 새롭게 태어난 테크놀로지(과학기술)는 새로운 세계(제2의 자연)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과학기술에 의해 창조된 혹은 창조되고 있는 미래세계가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아니면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채 과학기술은 자신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낙관적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진보에의 길을 빠르게 달려온 것이 서구의 근대일 것이다. 이제 과학기술에 의해 건설되었고 아직도 창조되고 있는 세계가 디스토피아에로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또 다른 융합 즉 과학기술과 윤리의 융합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 융합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혹은 과학기술자들의 책임과 그들의 사회 혹은 세계에 대한 책임(과학기술에 관한 개인윤리)만으로는 부족하고 오히려 사회의 과학기술에 대한 책임(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윤리)이 보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대표자들의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지닌 다양한 분야의 대표들이 참여하여 이루어낸 사회적 합의는 적극적로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세계상을 제시하는 미래의 윤리학이 될 것이고, 소극적으로는 그 세계상에 비추어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에게 허용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제시하는 처방 혹은 예방의 윤리학이 될 것이다.

      • KCI등재

        현실 권력과의 거리두기 철학(함), 철학적 소신인가 현실 타협적 기회주의 행태인가―김태길을 중심으로―

        선우현 대한철학회 2014 哲學硏究 Vol.129 No.-

        In this paper, the main subjects with which I deal are as follows:(1) Is Distancing Philosophy from the real ruling power a way of practical- philosophical resistance, based on social reformation as a axiological directivity of Kim Tae-Gil's ethical thought, though it is negative type of resistance? Or is it a sort of transformed value-free opportunist behavior which allows antidemocratic ruling group to coerce the people into submission, assuming an uncompromising stand seemingly?(2) Is Kim's defense argument on the opening of the course of National Ethics and the all-out activation of National Ethics education under Park's Yushin Regime derived from his own philosophical belief? Or is it brought out from the external conditions and circumstances surrounding Kim Tae-Gil which forces him to participate in the national undertaking for the settlement of the course of National Ethics in the university? The 'provisional' answers about the two subjects are as follows:(1) Kim's Distancing Philosophy is a type of practical philosophical revolt against the dictatorship power under Yushin Regime, though it is negative form of resistance. We can accept this philosophical elucidation above all by confirming the fact that the reform of reality is the main ethical trait running through his entire ethical thought system. However distancing philosophy disclose the crucial limits to allow itself to boil to the philosophical practice compromising with real ruling power eventually, though it is intended upon its own social ethical directivity and conviction. (2) The primary factor which affects Kim to propose such an advocation argument on the course of National Ethics and the education of National Ethics is the external conditions and circumstances surrounding him, especially the power-relation between he and ruling group and intimate human relation between he and his superior philosophers who carries out the role of a ideologue for the Yushin Regime, rather than his own philosophical belief. But no matter what primary factor, Kim's action to make a advocating argument to support the course and the education of National Ethics is to blame, on that account that he cannot adequately his social responsibility and role given to him as a reformist moral philosopher who will pursue the realization of righteous democratic society. Along with that, It is not too enough to criticize him sharply for such defending action. The reason is that his supporting stance for National Ethics education is brought out, by not adhering closely to the philosophical way of distancing from the dictatorial power devoid of political legitimacy and moral justification. 이 글에서 다루려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현실 권력과의 거리두기 철학(함)’은 김태길 윤리학의 가치론적 지향성인 ‘사회 개혁(성)’에 기초한―비록 소극적인 형태이지만―실천철학적 저항의 한 방식인가? 아니면 외관상 독재 정권과의 비타협성을 가장하여, 반민주적 통치 세력을 용인해 버리는 일종의 변형된 가치중립적 기회주의 행태인가?(2) 박정희 유신 정권 하에서 김태길이 제기한 ‘국민윤리 교과 개설 및 교육의 전면적 활성화’에 대한 옹호 논변은 과연 그 자신의 고유한 실천철학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인가? 혹은 유신체제의 존속 및 강화를 위한 이념적 정당화 작업의 일환으로 국민윤리 교과의 대학 내 개설과 교육의 효과적 추진 사업에―측면 지원을 통해서라도―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그를 둘러싼 외적 조건과 상황으로 인해 초래된 것인가? 두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1) 무엇보다 김태길 윤리학이 자신의 실천철학적 방향성으로 설정한 현실 개혁(성)이 그의 사상적 전후기를 일관하는 중심적인 윤리학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독재 정권 하에서 나타난 거리두기 철학함은, 비록 미온적이며 소극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독재 권력에 대한 실천철학적 저항의 한 형태였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한 거리두기 철학은 현실 개혁이라는 그 자신의 사회윤리학적 지향성 및 신념에서 의도되어 수행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현실 권력 영합적인 철학적 실천’으로 귀착된다는 점에서 그 결정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2) 김태길로 하여금 그러한 옹호 주장을 펼치는데 보다 일차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그의 철학적 신념보다는, 그의 철학자적 삶을 둘러싼 통치 세력과의 관계 그리고 체제 옹호 이데올로그로 나선 주요 선배 철학자들과의 친밀한 인간관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명을 잠정적으로 보다 설득력 있는 것으로서 채택하였다. 그럼에도 어느 쪽으로 해석되든지 간에, 당시 국민윤리 교육 및 교과에 대한 옹호 논변을 개진한 김태길의 행위는, 정의로운 민주 사회의 구현을 추구하는 개혁적 도덕 철학자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 뿐 아니라, 오히려 그에 ‘역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제아무리 비판이 가해져도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더불어 측면에서의 그러한 지지 입장은, 정통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 권력과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시도하는 철학함 방식을 철저하게 고수하지 못한 탓에 야기된 것임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러한 옹호 논변은, ‘거리두기 철학함의 기저에는 사회 개혁(성)의 이념, 즉 반민주적 독재 체제에 대한 도덕적 비판과 거부, 그리고 민주사회의 구현이라는 실천철학적 이념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해석에 의거하여 개진된, 그의 사회윤리학에 대한 긍정적 평가마저 일순간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을 내장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 KCI등재

        불교의 마음 이해 -緣起적 관점과 性起적 관점을 중심으로-

        장진영 대한철학회 2012 哲學硏究 Vol.123 No.-

        We have numerous terms representing mind. We can understand them largely as the relationship of 'Discernible Mind' and 'Indiscernible Mind.' Because, our understanding mind is formed by linguistic discernment. When any discernment arise from our mind, we recognize the mind shown by discernment[Discernible Mind]. At the same time, we can think orignal mind[Indiscernible Mind] outside that discernment. Buddhism, generally, has understood mind in the relation with everything. That is to say, they have understood it from the perspective of dependent co-arising. In the early Buddhism and the abhidharma Buddhism, approaches to mind were mainly made by the discerning method. They explained arising and vanishing of 'Discernible Mind' by the law of dependent arising. Co-arisen 'Discernible Mind' is impermanent and temporary. But they never be denied on 'Discernible Mind' as an vainness. In Mahāyāna Buddhism, Nāgarjuna understood the essence of dependent arising as the śūnyata (emptiness) and the law of dependent arising as simultaneous dependence, not gradual dependences. Nāgarjuna criticized on vainness of Discernible Mind through śūnyata, and made possible to directly perceive Indiscernible Mind, before Discernment. Undiscriminating Mind can not be explained for being stayed beyond the state linguistic discernment(false discrimination), however, had been approached from various other names to potential consciousness or original nature. While śūnata thought focused on criticizing vainness of discernment, Hwaeum thought suggested aspect of Indiscernible mind from the aspect of ekayāna dependant co-arising that everything has been co-arisen, the truth of discrimination. Furthermore, it opened the path to affirm the both indiscernible mind and discernible mind by illuminating that everything is manifestation of original nature itself, i.e. nature-arising. Hwaeum thought focused on perfect understanding by explicating the relation both indiscernible mind and discernible mind from the view point of non-abiding, rather than clarifying 'Discernible Mind' and 'Indiscernible Mind', itself. That is to say, from the aspect of dependant co-arising, Hwaeum thought plays a role that enters the indiscernible world from discernible world, and also, another role, from the aspect of nature-arising that is manifesting discernible world from indiscernible world. These aspects are important for righteous understanding on mind, and also simultaneously, very effective for healing disease of obsession, a kind of metal disease. 우리는 마음을 나타내는 수많은 용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크게 분별심과 무분별심이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마음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언어적 분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어떤 것에 대한 분별이 일어날 때, 우리는 그 분별에 의하여 나타난 마음[분별심]을 인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분별을 벗어난 본래 마음[무분별심]도 함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불교에서는 마음을 일체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연기적 관점에서 이해하여 왔다.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는 마음에 대한 분별적 접근이 주로 이루어지고, 그 분별심의 생성과 소멸을 연기의 법칙으로 설명하였다. 이때 분별심은 연기된 것으로 무상한 것이며, 찰나적인 것이다. 그러나 결코 분별심을 허망한 것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한편 대승불교에서 용수는 연기의 본질을 ‘空’으로 파악하고 연기를 순차적 의존관계가 아닌 동시적 의존관계로 이해하였다. 용수는 공을 통하여 분별심의 허망성을 지적함으로써 분별 이전의 무분별심을 직접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무분별심은 언어적 분별(허망분별)을 떠난 자리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不空’의 측면에서는 여러 假名을 통하여 심층의식이나 본성에 대한 접근이 시도될 수 있었다. 여기서 공사상이 분별의 허망성을 지적하는데 초점을 두었다면, 화엄사상은 분별의 진실성을 일체가 연기되어 있다는 일승연기의 입장에서 제시하고 있으며, 나아가 일체가 모두 본성이 그대로 현현한 性起임을 밝힘으로써 무분별과 분별(참 분별) 모두를 긍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화엄사상에서는 ‘분별심’ 혹은 ‘무분별심’ 자체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無住의 입장에서 분별과 무분별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마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연기적 관점[緣起門]에서는 분별의 세계에서 무분별의 세계로 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기적 관점[性起門]에서는 무분별의 세계에서 분별의 세계마저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마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분별에 집착하는 마음병을 치유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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