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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교도 신학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과 북한선교

        홍성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15 국내박사

        RANK : 250671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세습왕조’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각색하여 만든 주체사상과 유래가 없는 수령론으로 북한 주민들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자신들을 신격화시키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유아 때부터 철저히 세뇌를 당해 그 심령이 피폐해졌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미국 영적대각성과 평양대부흥운동의 동력인 청교도 신학이 요구됨을 밝히기 위해 본 연구를 수행하였다. 청교도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은혜와 사랑으로 베푸신 하나님의 언약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학이며, 미국영적대각성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에 있어 원동력이었다.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역사로 심령의 각성과 부흥이 나타나서,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끈질긴 기도로 모든 역경을 뚫고 나가 (breaking through) 마침내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고, 온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신학이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이주한 청교도들이 100년이 지나지 않아서, 청교도적 가치를 잃어갈 때,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길버트 테넌트 등의 목회자들이 청교도 회심신학에 근거한 교리 설교를 했다. 이때 성령의 역사로 제1차 영적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제2차 영적대각성운동도 성령 충만한 제임스 맥그리디 (James McGready), 아사헬 네틀톤 (Asahel Nettleton), 에드워드 그리핀 (Edward Griffin) 등 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제3차 영적대각성운동 또한 제임스 알렉산더 (James Alexander), 제레마이어 램피어 (Jeremiah Lamphier) 등의 목회자들이 청교도 회심신학에 의한 죄인의 회개를 설교했을 때, 성령의 부어주시는 은혜로 심령에 부흥이 일어났으며, 성령충만한 디엘무디 (D.L. Moody)를 통하여 전국적인 대부흥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영적대각성운동은 선교에 대한 사명을 고취시켰으며, 위대한 19세기 선교의 시대를 활짝 열게 된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브레이너드 (David Brainerd)의 일기”는 윌리암 캐리 (William Carey)로 하여금 인도선교사로 헌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프란시스 애즈베리 (Francis Asbury), 토마스 쿡 (Thomas Coke)등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디엘 무디의 사역 또한 수많은 젊은 엘리트들이 선교사로 헌신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에드워즈의 “겸손한 기도” (An Humble Attempt) 또한 공로가 매우 크다. 디엘 무디의 영향을 받은 프린스톤 대학과 맥코믹 대학의 젊은 선교사들이 미국 북장로교의 청교도 신학의 전통을 조선에 이식시켜,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의 촉매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마치 강대국의 발이 차이는 축구공과 같은 구한말에 한국에 들어와, 청교도 신학에 근거하여 교리적 말씀을 다년간 뿌리며 기도하였을 때, 1907년 1월 장대현교회의 부흥사경회에 성령의 폭포수와 같이 부어주시는 역사로 평양대부흥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과 한국의 복음화 물결은 청교도 신학을 견지한 가운데 하나님의 깊은 섭리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일어난 것임을 말할 수 있다.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오늘날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성도들에게 적용을 시키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의 영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온 열방에 전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의 주관자이시며 주재자이시다. 선교의 영이신 성령님은 탁월한 선교의 전략가이시다. 따라서 선교의 주재이신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부어져야 하나님의 선교를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성령의 부으심 혹은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주어지는 것이지만, 인간의 의무 또한 다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미국 영적대각성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의 목회 자들도 성령의 예외적인 부어주심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북녘 땅에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기 위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청교도 신학을 통한 성령의 부어주시는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한다. 북한 선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섭리로 이루어지는 것 을 인식하여야 하며,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충만을 갈구해야 한다. 동토의 땅 북한에 부흥의 계절을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성령의 예외적인 부어주심을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북한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선교의 문이 열리길 소망하며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다섯 가지의 제안을 하였다. 첫째, 교단과 교파간의 연합 선교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적극적 대응방안을 모색해야한다. 셋째, 역량 있는 선교사명자를 발굴하고 양성해야한다. 넷째, 선교 재정과 집행에 대한 교회의 정책이 마련되어야한다. 다섯째, 통일 및 개방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해야 한다.

      • 언약의 통일성과 다양성 : 개혁주의 언약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언약사상 연구

        정도열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14 국내박사

        RANK : 250671

        The Covenant Theology rediscovered by the Reformers was compiled in chapter 7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The Covenant Theology was not devised by an individual. It was already revealed by Irenaeus and Augustine in during the second and fourth centuries. However, Covenant Theology had been buried by Catholic ritualism and nominalism during the Middle Ages. It was only used to elevate the authority of the Holy Sacrament in the Catholic Church. Covenant Theology was rediscovered by the Reformer Zwingli through a dispute over Anabaptists' denying the infant baptism. However Zwingli already had the idea of Covenant Theology. It was systemized by his disciple Blinger. After that, Oecolampadius and Ursinus laid the foundation of covenant theology. Ursinus divided the covenant of God into the Covenant of Nature and the Covenant of Grace in the Heidelberg Catechism. He applied Covenant Theology even to the time of creation. Through his work it was confirmed that all the covenants pointed to Jesus, the Old and New Testaments having unity and continuity as one covenant. The faith of the covenant was spread among the persecuted Puritans and it was established as the Covenant of Work and the Covenant of Grace by them. They put Covenant Theology into practice in their daily lives and their society. They could deeply understand the Gospel of Jesus' death on the cross and His resurrection based on the Covenant of Works and the Covenant of grace. In this way, the Covenant Theology of the Reformers was compiled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systematically. Therefore, Reformed Covenant Theology could protect Christianity from Arminians who weakened the sovereignty of God, and emphasized human works. Also, Antinomianism ignored human responsibility. Moreover, Covenant Theology could protect Christianity from the Catholicism, keep Reformed thought from the heresy dof the anabaptists. Through this, the Reformers established the identity of Reformed Theology. However, the Covenant Theology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mplied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 of Redemption. It defined the Covenant of Grace as the Covenant God made with Jesus, the representative of the human beings God gave to Him before eternity. But Witsius established the Covenant of Redemption made before eternity, the Covenant of Works and the Covenant of Grace made in history. The covenant God made with Jesus Christ was the covenant made with God in the Trinity. The first covenant made with Adam in Eden was the Covenant of Creation(Natural covenant or Legal Covenant or the Covenant of Works or the Covenant of Life). The covenant made with the elected people after Adam's fall was the Covenant of Grace. Witsius combined the reformed Covenant Theology in the unity and variety of the covenants. After that, the Covenant Theology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was placed as one of the important foundations of Reformed Theology. However, in the 20th Century, the Covenant of Works was negated by Karl Bart and Reformed Covenant Theology was greatly challenged. Because Karl Barth and existential theologians didn't think of the creation account as real history, but as the Saga(Geschichte), the Covenant of Works was ignored. They didn't consider the sin of Adam as the severe sin of disobeying God's will. They just regarded the sin as an accidental incident that just happened, like a child stumbling by mistake. So they did not acknowledge the relationship with God as the covenant relationship, in which humans should give perfect and eternal obedience to God. They claim that the Covenant of Grace God made with Christ, is the only covenant. They only acknowledge this covenant, excluding others. Torrance and Rolston criticized that the Covenant Theology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was different from Calvin's theology. It changed the sovereignty and grace of God into human works and law. They separated Calvinists from Calvin and insisted that Covenant Theology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had left the covenant thought of Calvin. But C. Hodge, A. Hodge, L. Berkhof, Geerhardus Vos, J. Murry, M. Cline, P. Robertson, W. VanGemeren, M. Horton, and such Reformed theologians, basically accepted the Covenant Theology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nd followed it, even though they had some specifically different viewpoints. Horton took the advantages of the Reformed theologians and established the framework of the Reformed Covenant Theology firmly. But Covenant Theology was greatly challenged because of the new perspectives of Paul and Federal Vision in the Reformed Theology. It started from human pride, which restricted the God of justice and love to only the God of Grace. The Covenant Theology of Reformed Theology and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s the spiritual legacy that Paul and the Reformers handed down to us. Covenant Theology is a vessel holding th Gospel of Cross and resurrection that Paul preached. It is one of the important bases of Reformed Theology. Christians should find a way to apply Covenant Theology to their daily pious lives, and develop it without only displaying it on the showcase, like an antique. Covenant Theology will play the role of a cornerstone, protecting the Reformed Theology from charismatics and mysticism, such in Pentecostalism and the New Apostolic movement. But today, Reformed Covenant Theology has been confronted with a serious crises. It is worried that Reformed Covenant Theology will be transformed and distorted into various aspects. The covenant of works is like a bank of a dam which fills with water. The Covenant of Grace is based on the Covenant of Works. If the Covenant of Work disappears, the Covenant of Grace will be gone.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재발견된 언약 사상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7장에서 집대성되었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은 종교개혁자들의 언약 사상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언약사상은 어느 누가 개인적으로 창안해낸 사상이 아니다. 언약사상은 이미 2-4세기에 이레니우스와 어거스틴에 의해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언약사상이 중세를 지내오면서 가톨릭의 의식주의와 유명론자들에 의해 묻혀 있었다. 중세에는 언약사상이 성례의식의 권위를 세우는 목적으로만 사용이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에 의해서 재발견되었다. 그의 개혁사상에 언약 신학이 이미 있었지만 재세례파와 유아세례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언약신학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언약사상은 그의 제자 블링거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그 후 외콜람파디우스와 우르시누스에 의해 개혁주의 언약 신학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특히 우르시누스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자연언약과 은혜언약으로 구분함으로서 언약사상을 창조사건에까지 거슬러 적용하게 되었다. 모든 언약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신구약이 하나의 언약으로 통일을 이루고 연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박해받는 청교도들에게 언약신앙이 전파되어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정립하과 언약사상을 실제 삶 속에서 적용하게 되었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사상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처럼 종교개혁자들의 언약사상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체계적으로 잘 집대성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개혁주의 언약사상이 정립됨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던 아리우스주의자들과 도덕폐기론자들로부터 기독교를 지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약사상이 가톨릭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켜내었고, 재세례파나 알미니안주의 등 교묘한 이단들로부터 개혁주의를 지켜내는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서 개혁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에는 구속언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 은혜언약을 하나님께서 인류의 대표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게 주신 자들과 영원 전에 맺으신 언약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윗시우스에 의하여 영원 전에 맺으신 구속언약과 역사 속에서 맺으신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정리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맺으신 언약은 창세전에 삼위 하나님 안에서 맺으신 언약이며, 역사 속에서 에덴에서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이 창조언약(자연언약, 법률언약, 행위언약, 생명언약)이며,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과 맺으신 언약이 은혜언약이다. 윗시우스는 언약의 통일성과 다양성 속에서 개혁주의 언약사상을 통합하였다. 그 이후에 18,19세기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이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한 근거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칼 바르트에 의해서 행위언약이 부정되었고, 개혁주의 언약신학이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 바르트와 실존주의 신학자들은 창조 자체를 역사(history)로 보지 않고 사가(Geschichte)로 보기 때문에 창조언약이나 행위언약이 무시된다. 아담의 범죄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니의 주권에 도전한 심각한 죄로 여기지 않는다. 어린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본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완전하고 영원한 순종을 전제로 한 언약관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창세전에 그리스도와 맺으신 은혜언약이 유일한 언약이다. 은혜언약의 유일성만 주장한다. 특히 토렌스와 롤스톤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이 칼빈 신학과 다르며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인간의 행위와 율법으로 바꾸었다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을 분리하고, 그들이 칼빈의 언약사상을 떠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찰스 핫지나 A. 핫지, 벌코프, 게할더스 보스를 위시한 머레이, 클라인, 로벗슨, 밴게메렌, 호튼 등과 같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을 세밀한 부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수용하고 따르고 있다. 호튼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장점들을 수용하여 구속언약과 창조언약, 은혜언약이라는 확고한 개혁주의 언약사상의 틀을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개혁주의 안에서 일어나는 바울의 새 관점이나 페더럴 비전으로 인해 개혁주의 언약사상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으로 가두러 두려고 하는 인간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혁주의 언약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은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영적 유산이다. 언약신학은 바울이 전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한 기초 중의 하나이다. 개혁주의 언약신학이 진열장에 갇혀있는 골동품이 되지 않고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적용하며 발전시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언약신학은 오순절 운동이나 신사도 운동과 같은 은사주의와 신비주의로부터 개혁주의 신앙을 지켜낼 수 있는 모퉁이돌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새 신학운동이나 페더럴 비전, 바울의 새 관점주의자들에 의해 개혁주의 언약사상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고 왜곡되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행위언약은 은혜의 댐에 물을 가두는 둑과 같다. 이 둑을 무너뜨리면 은혜도 함께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 한국기독교의 순교신앙과 신사참배 연구

        김성문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17 국내박사

        RANK : 250671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왔다. 한국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천만 명 가까이 그리스도인이 생겼을 뿐 아니라 5만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매년 수천 명의 신학생을 배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뿌리는 다양하겠지만 확실한 이유 한 가지는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과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과 보수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세워진 순교신앙은 한국교회가 장차 겪게 될 일제의 강점기 가운데 모진 핍박이 가해지는 신사참배의 압박을 견디게 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안과 논문을 쓰게 될 목적을 찾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맞서서 고난당하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애국심으로 무장된 걸출한 신앙의 지도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길선주, 손양원, 이기선, 주기철, 주남선, 최덕지 등은 대표적인 순교신앙의 길을 걸어간 자로서 반일 순국의 민족교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평양대부흥 운동과 새벽기도의 운동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은혜의 체험으로 마침내 더 크고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힘을 더하게 되었으니, 한국교회가 체득한 일사각오적인 순교신앙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제의 박해 가운데 굴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미 로마천주교를 시작하여 각 교단마다 신사참배를 수용하게 되었고, 장로교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보수적이었던 장로교는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27회 총회가 회집되었고, 총독 당국은 신사참배 결의안을 총회 석상에서 통과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손을 뻗쳐 공작하였다. 총회 당일에는 교회당 안팎에 수백 명의 경찰관이 동원되어 교회당을 포위한 상태였다. 총대들의 좌우에는 경찰관들이 동반했고 무술경관 백여 명이 있었던 것이다. 조작된 각본대로 신사참배 안은 가결되었고,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가부’를 묻지도 않은 채 그냥 만장일치의 가결로 선포하고 말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던 장로교회가 일본의 태양신 앞에 머리를 숙인 순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은 기독교 학교에도 신사참배를 요구하였다. 여기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 사이를 이간시키고, 이들 학교를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어 식민지 교육의 도구로 삼으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사실 신사참배 문제가 선교사들 간에도 견해가 일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사 참배의 여부가 선교학교의 존폐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따라 홀드크로프트(James G. Holdcroft)와 매큔(George S. McCune)은 강경한 반대를 추구했던 반면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콘스(John S. Cornes)는 타협적이고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기타 많은 선교부들의 입장은 신사참배의 강요에 순응하는 쪽이었으니, 이와 같은 선교사들의 입장과 논쟁은 한국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신사참배 문제는 해방 후에 남북한 교회 재건과 맞물려 자칫 교회가 분열로 치달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 되고 말았다. 신사참배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적이고 심리적인 회개를 중시하는 내적 회개론 자들, 신사참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연약성을 제시는 시대적 상황론 자들, 공개된 방식으로 회개의 절차를 수행하고 권징을 수용해야 한다는 공적 회개론 자들의 갈등은 진정으로 회개하여 교회가 연합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교권과 맞물려 피할 수 없는 분열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신사참배 처리 문제로 인하여 다시 순수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건 방법론의 차이로 인해 많은 분열을 더 조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생겨나게 된 것이 최덕지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재건파,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복구파,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 고려파였다. 결국 신사참배를 기점으로 다양한 교권과 맞물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분열은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분열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분열을 더 가속화시키는 요인은 한국교회 내에서 신학이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양화된 신학과 교회 성장주의의 욕망은 점점 더 교회를 분리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가 바르게 세워져 갈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는데, 당시 선교사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신적 권위에 기초한 프린스톤 신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이 신학의 영향으로 일제의 모진 핍박과 신사참배를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가 한때 경험했던 치욕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의 연약성을 대표하는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향후 신사참배에 대한 연구와 핍박 아래서 보여진 인간의 연약성을 늘 통감하며 회개하는 모습이 한국교회 안에 공적으로 시행되어져야 하고, 한국교회와 성도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국 진정한 회복은 돌아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부흥의 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돌아감의 출발이 개혁주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순교신앙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순교신앙으로 어두워진 한국교회를 깨우실 것을 확신해 본다.

      • 온라인 음악 교육 발전 방안에 대한 고찰

        조황상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21 국내석사

        RANK : 250671

        인터넷과 매스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탄생한 온라인 교육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바일기기 및 PC를 통한 학습이 가능하게 하였다. 실무적인 부분이 중심이 되는 예체능 계열은 과거 온라인으로 교육하기 힘들 것이라는 논쟁과는 달리 최근에는 음악, 디자인, 응용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온라인 교육이 확산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사이버대학교 실용음악학과가 신설되고 온라인 음악 교육 사이트가 운영이 되어 온라인을 통한 음악 교육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온라인으로 배우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인 대면 방식을 고수해야만 하는지 아직까지 논쟁이 되고 있어 4개의 온라인 음악 교육 사이트 커리큘럼과 국내 사이버대학교 실용음악 교육 현황을 조사하였고 나아가 국내보다 먼저 온라인 음악 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온·오프라인의 융합적 형태의 효과적인 블렌디드 러닝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밸리시티주립대학교, 100% 온라인으로 수업을 운영하여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교육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버클리 음악대학교의 온라인 음악 교육을 조사하고 비교를 진행함으로써 온라인 음악 교육의 발전을 고찰하고자 한다.

      • 허암 김홍전 박사의 개혁파 예배관 연구

        조창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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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주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바른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시작하는 제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고, 거기에 답하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재창조 받은 자라는 사실을 전제적으로 인정하고 믿는 기독교인들의 인생론이며 세계관이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문에서도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나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하게 그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이루어서 그분이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이룬 자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이고도 중요한 일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성삼위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무엇보다 먼저 예배하는 일에 치중하여 왔고, 예배를 강조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오고 오는 모든 교회와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전문적으로 사역하는 신학교들이 이 예배에 대하여 더 많은 것들을 논하고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이렇게 예배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논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예배가 진실로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歆饗)하시기를 바라는 거룩한 심정과 주님을 사랑하는 강렬한 충정과 열심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고 믿는 것들이 자기가 속한 교회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가 속한 교단 교리의 틀 안에서 이해되고 논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떤 이의 주장이 옳고, 어떤 이의 주장은 틀리다’라고 무우 자르듯이 쉽게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제각각 자기 교회와 연관된 교리와 예배모범에 근거하여 논하고 자기 신학과 신앙에 의지하여 예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교회 어느 교단에 속했든지 자기가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면 모두가 한가지로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냐 아니면 사람이 세운 사람을 위한 교회이냐’의 구분이 분명하게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교회가 만약 사람을 위한 사람들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로 존재한다는 행전 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전제적인 인정이 있고 그렇게 믿는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우리 손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거룩하고 신령한 교회의 신령한 예배가 되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정성구 박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며, 예배는 그 계시에 대한 응답”이라고 하였다. 정성구, 『실천신학개론』(서울: 총신대출판부, 1980), 154. 정성구 박사는 자기의 다른 저서인 『개혁주의 설교학』, 제12장 “칼빈주의 예배와 설교”의 서문에서 Ralph G. Turnbull의 말을 인용하여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성경의 계시에 기초한 예배이다”라고 하고, 인간의 편의와 욕구 충족을 위해서 행해지는 타종교의 예배와는 다르다고 하였다. 예배에 대한 이같은 정의는 정성구 교수 개인만의 정의가 아니고, 개혁교회를 지향하는 모든 교회와 그 교회를 섬기는 신학교 교수들의 한결같은 정의이다. 개혁자 칼빈이 “예배가 성경적이어야 하며, 신학적으로 충실할 것을 주장하였고, 명령받지 않은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John Calvin, Tracts and Treatises on the Doctrine and Worship of the Church, vol. 2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9; reprinted, Grand Rapids: Eerdmans, 1958), 118; “First, Whatever is not commanded, we are not free to choose.” 이정현, 『개혁주의 예배학』(경기 시흥: 샘터, 2005), 97에서 재인용. 칼빈의 이 말은 개혁교회의 예배를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인용하는 경구와 같은 것이다. 정성구 교수는 『개혁주의 설교학』에서 “칼빈주의 예배의 특성”으로 인용한다. 레이몬드 박사 역시 “예배의 규범적 원리”에서 이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필자의 지도 교수인 이승구 박사 역시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에서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의 소논문에서 이 글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의 후예를 자처하는 우리들도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요구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넘어서서 교회가 자의적인 주권의 주장으로 어떤 새로운 예배의 규례나 규정을 만들어내는 바람직하지 않은 시도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거부할 용기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승구,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서울: SFC, 2007), 41. 그런데 요즘은 많은 교회들의 예배에서 ‘예배가 사람들의 어떤 수단에 이용되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 기도가 하나님과 그 자녀인 신자와의 교통을 위한 거룩한 수단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잘못 오용되어 기독교라는 한 종교 행위의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리는 것과 일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령 ‘열린 예배’ 같은 것이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시작은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겠다는 선하고 착한 동기에서 시작한 것이었겠으나 이 열린 예배는 구도자 중심의 예배가 되어버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바로 예배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리이고 이 일로 인하여 교회는 스스로의 열심과 노력으로 말미암아 속화일로(俗化一路)로 달려 나가는 우(愚)를 범하게 되었음을 절감한다. 진실로 예배가 하나님이 명하셔서 그 명에 순종하여 자기의 신(神)으로 드려지는 절이 되기를 바라는 소원들이 있다면, 아직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입맛에 맞는 예배를 드리게 해서 예배의 타락을 가져오게 되는 어리석고 우매한 일들은 삼가야 마땅할 것이다. 정성구 교수는 여기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변을 토하고 있다: “기독교의 예배의 근거는 실용주의적(實用主義的)인 것이 아니고 신학적(神學的)이며, 기독교의 예배는 단순한 전도 집회와는 다른 것이고, 축복을 받기 위한 어떤 의도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성구, 『실천신학개론』, 146. 불신자가 예배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하나님이 은혜의 방도로 주신 구원의 복음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 말씀을 성신께서 생명의 회개를 일으키는 말씀으로 써주셔서 그들이 새로운 사람으로 중생하게 하고, 신생(新生)하게 된 자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예배하러 나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내신 말씀에 근거하고 의지해서 예배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해서 성삼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주고 바로 예배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고 교회를 섬기는 신학자들이 해야 할 당위의 일일 것이며, 먼저 믿은 신자들이 해야 할 지대한 사명일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 앞에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참 예배인지를 미처 몰라서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서 차례 지내듯이 찬송하고 기도하고 헌상하고 성경 낭독할 때 가만히 듣고, 설교하면 경청하다가 축도가 끝나면 그것으로 예배가 다 되었다고만 생각하다보니 이러한 여러 이론들이 나오는 같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김홍전 박사가 생전에 교회를 이루면서 그 교회에 소개했던 강설들을 중심으로 김홍전 박사의 예배관을 논하려고 한다. 그는 예배를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가르쳤고, 그 전개의 방식은 칼빈과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개혁교회의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을 따른다. 그는 자기의 성경해석과 가르침의 성격이 성경에 근거 할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 소요리문답,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조를 따른 것임을 본인의 저술들에서 천명하고 있다. 필자는 그가 개혁교회가 지향하는 그 정신을 계승하여 좀더 바르고, 좀더 내용 있게 진전시키고 발전시킨 예배를 개혁파적으로 진술하고 그러한 교회를 이루어 간 분으로 여겨서 김홍전 박사의 예배관이 어떤 점에서 개혁파 신학에 충실한 것이고 어떤 점에서 우리 상황에 적합하게 제시된 것인지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 현대 복음주의 전도 신학 비판

        안병권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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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의 후예가 틀림없지만, 종교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로마카톨릭의 신학인 세미펠라기우스주의를 따르고 있다. 이것은 세미펠라기안 사상을 취한 찰스피니를 복음주의 교회들이 따랐기 때문이다. 찰스 피니는 교회의 양적 부흥을 추구하는 ‘부흥주의’의 대명사로서, 그가 사용했던 방법들이 복음주의 교회에서 가공 발전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신학의 부재, 교리의 약화로 여러 문제가 발생했는데, 본 연구에서는 특히 복음주의의 전도방법을 돌아보고, 더욱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연구를 진행하였다. 제1장에서는 본 연구의 목적과 동기, 범위와 방향을 말하고, 각 장의 연구 계획과 주요 용어를 정의하였다. 제2장에서는 현대 복음주의의 역사를 조명해보았는데, 복음주의의 태동 배경에 자유주의와 이에 대항했던 근본주의가 존재했으므로 이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복음주의의 흐름과 이들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를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현대복음주의의 전도의 신학적인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펠라기우스주의와 세미펠라기우스주의를 살펴보았고, 이들의 가르침을 따른 찰스피니의 부흥주의를 조명했다. 찰스피니는 세미펠라기안 사상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더욱 발전시킨 인물로서 자신의 신앙적인 체험과 사역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고유한 신학을 만들어 냈다. 그의 특징은 세미펠라기안 사상과 다를 바 없이 ‘구원’의 결정권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하나님이 도우실수 있는 경로를 밟는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전능하심이 약화되었다. 이런 경향은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노력을 하게 되고, 그 방법은 어떤 것이든지 조금이라도 신앙의 유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면, 모두 수용하게 되었다. 복음주의교회들은 이러한 유행에 민감해져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쉽게 믿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에 복음주의의 전도방법의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하여 ‘사영리’. ‘다리전도’, ‘전도폭발’, ‘능력전도’에 대해서 4장에서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이들의 문제점은 크게 둘로 나누는데,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의 역사가 일어날 여지가 없는 세미펠라기우스주의의 전통아래 있으며, 찰스 피니의 부흥주의에 충실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5장에서는 과거 칼빈과 청교도들의 전도방법에 대해서 조명해보며 대안을 찾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 ‘독력주의’와 ‘절대주권’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들에게서 물려받은 좋은 전통과 모범을 그대로 받게 된 한국의 초기교회도 성령의 사역에 철저하게 기댄 전도의 방법을 활용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는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다만 은혜에 대한 응답일 뿐이다. 결론에 이르러서 “참 구원의 길을 아십니까?”(한국청교도연구소, 2012)란 전도지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그 구성과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교육과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복음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 일변도의 과당 경쟁을 배격하고, 공생 협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또한 기독교적인 도덕성 회복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또한 말하였다. 신앙과 삶은 따로 아닌 일치된 모습으로 나타나서 세상에 영향을 미쳐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좋은 전도방법은 바른 믿음과 신학과 실천이라고 결론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적인 분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구원론적 관점에서 본 신복음주의 신학 비판

        김영갑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1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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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현대 개신교 진영 안에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의 유산들이 신복음주의의 거대한 세력화에 밀려 남으로서 사실상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부재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을 잇는 개혁주의 신학을 축소 내지 왜곡시킨 거대한 신학적 변절의 경향성은 현대 개신교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신복음주의의 심부(深部) 안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신복음주의 신학이 표방하는 구원론은 성령의 주권적인 구원역사를 인간에 의한 자력적 구원관으로 조장하는 기계적 이념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로 신 복음주의 신학은 회심과 중생 없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양산하는 넓은 길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또한 역사적으로 개혁파교회가 싸워 배격했던 펠라기우스주의 내지 알미니안주의 신학의 부활을 의미한다. 본 논문은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현대 복음주의가 표방하는 구원론의 신학적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구원 없는 피상적 전도관의 실체를 밝힘으로서 개혁주의 신학과 역사적 신앙고백을 내용으로 하는 성경적 구원론을 회복해야 함을 논증한다. 논문의 전개는 먼저 신복음주의의 역사적 형성배경이 되는 19세기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투쟁과 갈등을 조망하고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맥을 잇는 프린스톤 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제3의 길로서의 신복음주의 신학의 태동사와 그 태생적 한계성을 살펴보고 신복음주의의 신학적 변절의 과정을 이해하기위해 풀러 신학교와 신복음주의 리더들의 사상을 평가한다. 그리고 신복음주의 운동을 대변하는 로잔 언약과 사영리를 중심으로 신복음주의 신학의 구원관의 오류와 위험성을 진단한다. 끝으로 20세기 영미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함으로 주류 개신교 신학으로 자리한 신복음주의의 신학적 문제점들을 진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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