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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교실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최근 6년간 한국 6개월 이하 영아의 모유수유 율

        이원석,조자향,최용성,정성훈,배종우,정지아 대한신생아학회 2013 Neonatal medicine Vol.20 No.2

        목적 : 모유수유는 영아기의 영아에게 가장 이상적인 수유와 영양법으로, 전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센터들의 여러 가이드라인에 의해 권장되고 있다. 이에 최근 6년 동안 한국 영아들의 모유수유율을 조사하고 연도별 변화 추이를분석하였다. 방법 : 본 연구는 대단위 데이터 베이스를 갖고 있는 (주)매일유업의 어머니 육아교실에 등록한 산모의 영아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한국에서 최근 6년(2007-2012년)동안 생후 1주, 1-6개월 시점에서 완전모유수유율, 혼합수유율, 완전분유수유율 그리고 모유수유가 경험된 수유율을 조사하였고 그 변화 추이를 분석하였다. 결과 : 최근 6년(2007-2012년)동안 출생 후부터 6개월까지의 완전모유수유율의 평균은 1주: 34%, 1개월: 38%, 2개월:42%, 3개월: 39%, 4개월: 33%, 5개월: 27%, 6개월: 25% 이었다. 최근 6년간 완전모유수유율은 생후 1주, 1개월,4개월, 5개월, 6개월에서 증가 추세를 보였다. 혼합수유율의 전반적인 변화는 관찰할 수 없었으며, 완전분유수유율은 대체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또한, 모유수유가 경험된 수유율은 1주, 1개월, 2개월은 증가 추세였고, 3-6개월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결론 : 2007년부터 2012년 까지 최근 6년간 한국의 모유수유율은 증가 추세에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증가되어야 한다. Purpose: Breastfeeding is ideal diet for young infant and worldwidely recommended by many guidelines of authoritative centers. We investigated breastfeeding rate of young infant during recent 6-year in Korea and analyzed the tendency of it. Methods: The subjectives were young infants whose mothers registered in childcare database of Mail dairies Co., Ltd. We surveyed exclusive breast feeding rate, mixed feeding rate, exclusive artificial milk feeding rate and ever breastfed rate at 1st week after birth and every months of age from the first to sixth months and assessed the changes of them during recent 6-year (2007-2012) in Korea. Results: During the recent 6-year (2007-2012), the means of exclusive breastfeeding rates from the birth to 6th month in age were 34% for 1 week, 38% for 1 month, 42% for 2 months, 39% for 3 months, 33% for 4 months, 27% for 5 months and 25% for 6 months. The exclusive breastfeeding rate had been increased at 1 week, 1 month, 4 to 6 months aged infants during the recent 6-year. The mixed feeding rate had not been changed significantly and the exclusive artificial milk feeding rate had been decreased. Also, ever breastfed rate had been increased at 1 week to 2 months aged infants and had not been changed significantly at 4 to 6 months aged infants. Conclusion: The young infant’s breastfeeding rate in Korea had been increased in recent 6-year from 2007 to 2012 and should be further increased.

      • SCOPUSKCI등재
      • KCI등재

        유자휘에게 끼친 대혜 종고의 영향

        이원석 한국유교학회 2022 유교사상문화연구 Vol.- No.88

        Liu Zihui(劉子翬, 1101-1147), a teacher in the early days of Zhu Xi, was criticized academically by Dahui Zongao(大慧 宗杲) when he was young and later revised his Confucian theory based on the criticism. In Daehui's view, the problem with the cultivative practices taken by Lui Zihui was to pursue that of Silent-Penetrative Seon(黙照禪) while also pursuing a conceptual understanding of it. In addition, according to Dahui, Liu Zihui mistakenly considered that Zhouyi's key phrases corresponds to those of the Diamond Sutra. Dahui pointed out that Liu Zihui committed such an error because he did not understand life and death problems. Liu Zihui's “Thesis on Saint’s Transmission(聖傳論)” indirectly shows that he accepted Dahui's criticism to some extent. First of all, Liu argued about Dao(道) that it is not only a still and empty identical body, but also a principle of diversity. In addition, he saw that Mind is inherently silent, but it can create appropriate emotions in response to objects outside the mind, and more importantly, it plays the role of the presiding one which accurately distinguishes human nature and emotions. Liu then argued that it is neither desirable nor possible to calm the mind by removing thoughts and emotions, and that instead, you should think about good and change your mind to like it. Finally, Liu presented Confucius as an ideal example, but reinterpreted him as a person who solved the problems of life and death. First, Liu explains Dao and the essence of the world through the concept of Yi Qi(一氣), and as is well known, Zhang Zai was a representative of the theory of Qi. Second, Liu’s explanation of the concept of mind is very similar to that of Zhang Zai. Zhang Zai stipulated that "the sum of nature and perception is the mind," and Liu also thought it was the mind to accurately distinguish between human nature and emotion, so both relatively highlighted the role of the mind. Finally, I supported the connection between Liu and Zhang by the human network between the two. 주희 초년 시절의 스승인 유자휘(劉子翬, 1101-1147)는 젊은 시절 대혜 종고(大慧 宗杲)로부터 학문적 비판을 받고 이후 자신의 사상적 내용을 수정함으로써 유불조화론(儒佛調和論)의 한 양상을 보여준 인물이다. 대혜가 보기에 유자휘가 취한 수행법의 문제점은, 묵조선적 선정(禪定)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성적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유자휘는 주역 의 주요 구절을 금강경 의 주요 구절에 대응시키려 했는데, 그가 이런 오류를 범한 까닭은 생사의 관문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혜는 지적했다. 본론에서 분석한 유자휘의 「성전론(聖傳論)」은 그가 대혜의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유자휘는 도(道)에 대해, 그것이 단지 고요하고 공허한 동일적 본체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의 원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마음’은 본래 적막하여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것이지만 외물과 감응하여 적절한 감정을 낼 수 있는 것이며, 더욱 중요하게는 그것이 본성과 감정을 정밀하게 변별하는 주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보았다. 그다음, 유자휘는 사려 및 호오의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대신 선을 사유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쪽으로 마음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유자휘는 이상적 모범으로서 공자를 제시하되, 생사의 관문을 깬 인물로 그를 재해석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유자휘의 논변 이면에서 장재(張載)의 철학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유자휘는 도와 세계의 본질을 일기(一氣)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주지하다시피 장재는 기론(氣論)의 명실상부한 대표자였다. 둘째, 마음 개념에 대한 유자휘의 설명이 장재의 심통성정설(心統性情說)과 매우 유사하다. 장재는 “본성과 지각을 합한 것이 마음”이라고 규정하였고 유자휘 역시 본성과 감정을 정밀하게 변별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여겨, 두 사람 모두 마음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부각했다. 이 글은 마지막으로 유자휘와 장재 사이의 연관성을 양자 사이의 인적 관계에 의해서 뒷받침했다.

      • KCI등재

        희박 벡터자기상관회귀 모형을 이용한 한국의 미세먼지 분석

        이원석,백창룡 한국데이터정보과학회 2014 한국데이터정보과학회지 Vol.25 No.4

        This paper considers multivariate time series modelling of PM10 data in Korea collected from 2008 to 2011. We consider both temporal and spatial dependencies of PM10 by applying the sparse vector autoregressive (sVAR) modelling proposed by Davis et al. (2013). It utilizes the partial spectral coherence to measure cross correlation between different regions, in turn provides the sparsity in the model while balancing the parsimony of model and the goodness of fit. It is also shown that sVAR performs better than usual vector autoregressive model (VAR) in forecasting. 본 논문은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미세먼지 (PM10)의 일별 평균농도에 대해서 전국 16개 시도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관측한 다변량 시계열 자료에 대한 연구이다. 다변량 시계열 모형을 이용해서 시간 및 공간에 대한 상관관계를 동시에 고려, 일변량 혹은 특정 지역에 국한해서 분석한 기존의 연구와 차별성을 두었다. 또한 Davis 등 (2013)이 제안한 부분 스펙트럼 일관성 (partial spectralcoherence)을 통해 다른 지역간의 상호 의존성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변수 선택을 통해 희박벡터자기회귀모형 (sVAR; sparse vector autoregressive model)을 적합하는 방법론을 적용하여 고차원 자료 분석의 단점 및 한계를 보완하였으며 예측력 비교를 통해서 sVAR 모형 적합의 타당성을 검증하였다.

      • KCI등재

        19世紀 중반 揚州學派 劉毓崧의 實學的 通學

        이원석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1 No.-

        본고는, 19세기 중반 揚州學派 劉毓崧(1818~1867)의 학술을 분석한 것이다. 그 접근법은 유문기가 기초를 마련한 가학의 계승과 발전, 그 결과로 수립한 실학적 통학의 규모와 내용 및 성격을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19세기 초에 전성기를 맞이한 청조의 고거학풍이 19세기 중반에 어떠한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儀徵劉氏의 가학은 유문기(1789~1854)가 기틀을 만들었다. 그의 전공은 1828년 연구결사를 통해 春秋左氏學으로 확정되었다. 그는 『春秋左氏傳舊注疏證』작업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로 『左傳舊疏考正』을 출간하였다. 이 연구는 孔潁達이 『오경정의』에 반영된 杜預의 주소를, 청대 고거학자들의 주소연구를 참작하여 賈逵 服虔 鄭玄의 漢注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또한, 史志學은 『揚州水道記』, 『楚漢諸侯疆域志』와 각종 지방지의 편찬으로 구체화되었다. 평생 준직업으로 종사한 校讎校勘도 가학의 일부였는데, 송대 彭叔夏가 지은 『文苑榮華辨證』의 체례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미완의 『좌전구주소증』의 완성은 가학의 유업으로 전해지고, 또한 공영달의 『오경정의』를 비판하는 주소학도 가학으로 계승 발전된다. 優貢生 유육숭은 史志學에서 역사지리를 계승하는 한편 한위․명청 교체기의 역사인물과 사적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옮겼는데, 주로 춘추의 의리를 규명하는 작업이었다. 예제 예학으로 좌전을 해석하는 방법론과 연구의 축적은 춘추좌전학에서 춘추학 전반으로, 그리고 주역과 예학으로 발전하였는데, 특히 예학의 발전으로 경세성의 보강과 함께 양주학파의 실학적 특징이 제고되었다. 교수교감은 이른바 活校法으로의 발전과 함께 對校의 대상이 크게 확대됨으로써 實事求是的인 접근이 강화되었다. 여기에는 반관반재야적인 전문가의 생존양상도 투영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杜預와 孔潁達의 주소학에 비판적인 시각은 『좌전』을 넘어 『周易』, 『尙書』, 『毛詩』, 『禮記』에 관한 『舊疏考正』을 저술하여 注疏學을 확대하였다. 춘추좌전학은 외견상 도리어 축소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춘추좌전』의 연구에서 축적된 예학과 의리, 그리고 춘추필법 등을 토대로 古學과 諸子學으로 연구 분야를 확장하여 ‘六經皆史論’을 제출하여 경학과 제자학을 融會貫通하였다. 심지어 謠諺 地方史志 逸文이나 또한 小學, 今古文學, 陽明學, 古學, 漢學(蜀學) 등을 아울러 광대한 通學의 학술체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학술은 학문연구방법론으로 소학을 통한 實事求是的인 접근으로 微言大義의 발명을 추구하였고, 그 성격은 실제 생활에서 실용 실천 경세의 내용을 중심으로 미언대의(義理)를 회통한, ‘實學的 通學’이었다. 그의 학술종지는 吳派와 皖派의 장점을 겸용한 부친의 입장을 바꾸어 미언대의와 경세성을 크게 강화함으로서 환파 지향으로 전환하였다. 유육숭의 실학적 통학에 보이는 경학의 ‘通經化’나 ‘廣經化’, 六經皆史論, 儒家諸子同源論, 西學中源說 등은, 서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양무운동기 이전인 19세기 중반에, 청대 考證漢學이 도달한 종점이자 중국전통학술의 최후단계였다. 이에 따르면, 경학․경전․공자의 상대화로 인해 그 지위가 격하되었고 양무운동기의 사상을 모색한 측면에서 근대 지향성도 담보하고 있었다. 왕조교체기의 인물과 사적에 대한 연구로 경세성이 제고되었다. 다만, 주자학의 학술종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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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世紀 중반 揚州學派 劉毓崧의 實學的 通學

        李元錫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1 No.-

        본고는, 19세기 중반 揚州學派劉毓崧(1818~1867)의 학술을 분석한 것 이다. 그 접근법은 유문기가 기초를 마련한 가학의 계승과 발전, 그 결과로 수립한 실학적 통학의 규모와 내용 및 성격을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19세 기 초에 전성기를 맞이한 청조의 고거학풍이 19세기 중반에 어떠한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儀徵劉氏의 가학은 유문기(1789~1854)가 기틀을 만들었다. 그의 전공 은 1828년 연구결사를 통해 春秋左氏學으로 확정되었다. 그는 ⌈春秋左氏 傳舊注疏證⌋작업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로 ⌈左傳舊疏考正⌋을 출간하였다. 이 연구는 孔潁達이 ⌈오경정의⌋에 반영된 杜預의 주소를, 청대 고거학자들 의 주소연구를 참작하여 賈逵服虔鄭玄의 漢注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또 한, 史志學은 ⌈揚州水道記⌋, ⌈楚漢諸侯疆域志⌋와 각종 지방지의 편찬으로 구체화되었다. 평생 준직업으로 종사한 校?校勘도 가학의 일부였는데, 송 대 彭叔夏가 지은 ⌈文苑榮華辨證⌋의 체례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미완의 ? ⌈좌전구주소증⌋의 완성은 가학의 유업으로 전해지고, 또한 공영달의 ⌈오경정의⌋를 비판하는 주소학도 가학으로 계승 발전된다. 優貢生유육숭은 史志學에서 역사지리를 계승하는 한편 한위?명청 교체기의 역사인물과 사적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옮겼는데, 주로 춘추의 의리를 규명하는 작업이었다. 예제 예학으로 좌전을 해석하는 방법론과 연구의 축적은 춘추좌전학에서 춘추학 전반으로, 그리고 주역과 예학으로 발 전하였는데, 특히 예학의 발전으로 경세성의 보강과 함께 양주학파의 실학 적 특징이 제고되었다. 교수교감은 이른바 活校法으로의 발전과 함께 對校 의 대상이 크게 확대됨으로써 實事求是的인 접근이 강화되었다. 여기에는 반관반재야적인 전문가의 생존양상도 투영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杜預와 孔潁達의 주소학에 비판적인 시각은 ⌈좌전⌋을 넘어 ⌈周易⌋, ⌈尙書⌋, ⌈毛詩⌋, ⌈禮記⌋에 관한 ⌈舊疏考正⌋을 저술하여 注疏學을 확대하였다. 춘추좌전학은 외견상 도리어 축소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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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辛亥革命期 劉師培의 民族主義革命論

        李元錫 동국역사문화연구소 1994 동국사학 Vol.28 No.-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유사배의 민족주의혁명론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민족주의 이론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따라서 일정한 기준에 따라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유사배는 혁명운동에 뜻을 둔 뒤에 곧바로 《黃帝紀年設》을 발표하고 중국사 大事年表를 덧붙였다. 연표의 작성기준은 중국민족의 변천과 중국정계의 활동, 그리고 중국문화의 변천이었다. 본고는, 편의상 이 대사연표를 작성한 기준, 다시 말하면 민족, 政體[민권], 문화를 중심으로한 유사배의 민족주의혁명론을 차례로 살피고 이들 혁명론 사이의 상호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러면 자연히 유사배의 민족주의혁명론의 성격이 보다 잘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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