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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건국신화와의 비교를 통해 본 백제 건국신화의 인물 형상과 그 의미
서철원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08 인문학연구 Vol.36 No.-
본고는 다양한 계열의 전승이 남아 있는 백제 건국신화가 왜 이와 같은 형태로 남게 되었고,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이루어졌다. 유사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는 대가야 건국신화와의 비교를 통해 백제 건국신화의 특징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백제의 건국신화는 크게 주몽을 시조의 生父로 인정하는 친고구려적인 온조-도모 계열과, 주몽을 부정하고 북부여 해부루왕계와의 혈연을 강조하는 비류-구태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쪽이라도 혈연상의 接點이 될 수 있는 소서노에게는 거의 비중을 두지 않았다. 위대한 여성이 두 명의 시조왕을 낳았다는 서사구조의 골격은 백제와 대가야의 건국신화가 서로 닮아 있다. 그러나 대가야의 정견모주는 산신이 되고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한 ‘형제’ 의식이 강했던 반면, 백제의 소서노는 신화에서 거의 무시되었고 비류-온조의 갈등은 어느 한쪽의 죽음을 요청할 정도로 격렬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별개의 신화가 이루어진 배경은 백제가 고대국가로의 사회 통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건국의 영웅들 가운데 한 사람을 시조신으로서 신격화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또다른 시조신격을 찾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성격의 시조신은 대외적 경쟁 관계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원만한 사회 통합을 이루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따라서 성읍에 근거한 세력은 현명함을 갖춘 온조왕을, 해양세력은 과감한 결단력을 지닌 비류왕을 시조왕으로 바라보는 별개의 시조전승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The birth myth of Baekjae can be devided into two ranges. One is the Onjo-Domo : pro-Koguyeo range, the other is the Biryoo-Gootae : anti-Koguryeo range. One is the castle town society and the other is the ocean society. Both of them are ignore their mother's line which can be the point of contact between them. The birth myth of two natins, Baekjae and Daegaya have the same the motif of 'great mother brought into being two kings'. But the characters of the mother and sons are much different. Jeonggyeonmojoo(the mother) of Daegaya became the godess of the mountain gaya, her sons and their descendents have very big connectedness in their names. Otherwise Soseono(the mother) of Baekjae had been ignored. her sons may start the complications of brothers which request the death of one side. The external founder god of the ancient nation Baekjae is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these two separate myth. The Great Kings of Baekjae deify the god and godess of the old country Booyeo and Koguryeo. instead of deifying the heroes and heroin of the birth of Baekjae. So the castle town society select Onjo of wisdom as their founder, in the same breath the ocean society select Biryoo of decision. At last their founder transmission make separations.
서철원 국문학회 2018 국문학연구 Vol.0 No.38
In this article, I will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Uisang (義相, 625~702) and Kyunyeo(均如, 923~973) through their ideas and literature. Directly referred to as “Beopseongge” (法性偈, The Song of Dharma Nature), also known as “Hwaeomilseung Beopgyedo” (華嚴一乘法界圖, Dharma-realm of the One-vehicle of the Huanyan), Gatha of Uisang and “Bohyeon Sipwonga” (普賢十願歌, Songs of the ten vows or aspirations of Bodhisattva Samantabhadra) of Kyunyeo. This is to restore the tradition of religious poetry that was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Silla Hyangga, the 7th and 10th centuries. Beopseongge is aiming relativism throughout his works. Through the endless chain of interpenetration of things, Uisang sought to transcend all distinctions such as one and the whole, space and time, Buddha and regeneration, enlightenment and foolishness. This was an important factor for Kyunyeo in Bohyeon Sipwonga. And he went one step further to include whitespace not covered by Uisang. Uisang and Kyunyeo compressed “Hwaeomgyeong”(華嚴經, Avatamsaka Sutra) for almost the same purpose of making relativism widely known, and re-created it. This allowed Hwaeomgyeong to be made known to more readers and her literary works to be legacy. 화엄 사상을 둘러싼 의상(義相)과 균여(均如)의 법맥에는 문학사적 의미도 있다. 그들은 각각 7세기의 <법성게>와 10세기의 <보현십원가>를 지은 시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균여전』에 따르면 균여는 송나라 사신도 만나고 싶어 했고 훗날 일본에 환생했다고 하는 등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로 보이는데, 이는 그의 저술이 중국의 현수(賢首) 이래로 이어져 온 의상 화엄학의 국제적 성격에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상과 균여는 사상적으로 상통할 뿐 아니라, 시에 대한 공통의 창작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화엄경』은 부분과 전체 사이가 두루 넘나들고 통하는 글이기 때문에, 시로써 『화엄경』을 요약, 압축할 수 있다면 그 원뜻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많은 독자층에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의상은 10만여 자의 『화엄경』을 <법성게> 210자로 압축하여 독자층을 넓히고자 한다. 그리고 3세기 후의 균여도 한마디 말로 전체를 꿰뚫을 수 있다는 원음(圓音)의 효력을 근거 삼아, 『화엄경』의 마무리 부분에 해당하는 「보현행원품」을 <보현십원가> 11수로 재구성하고는 『화엄경』과 같은 효과를 거두고자 했다. 의상은 <법성게>에서 단계상으로는 자기 수행보다 나중의 과정인 중생 구제를 더 앞서 배치하는가 하면, 초발심의 경지를 전반부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처음의 초발심이 끝까지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처음과 끝, 먼저와 나중의 순서를 뒤바꾼 도치(倒置)와 순환은 작품 자체가 그리고 있는 도인(圖印)의 회귀적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균여 역시 <보현십원가> 곳곳에서 ‘미오동체(迷悟同體)’라는 표현을 비롯하여 불․보살과 중생, 남과 나의 분별을 넘어서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법성게>가 추구한, 남과 나, 개체와 전체를 구별하지 않는 중생 구제의 구체적 실천 방법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균여는 신라의 불교문학 전통에서 중시했던 참회의 요소를 가미하여 접근성을 더욱 높이고자 했다. 의상과 균여의 시 창작 동기와 독자에 대한 태도는 문학사 속에서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일반논문: 眞平王代의 <彗星歌>와 <薯童謠> 비교-인물 형상과 시적 자아의 성격을 중심으로-
서철원 한국고전문학회 2006 古典文學硏究 Vol.30 N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mpare two Hyangga works-Hyesungga and Seodongyo-in the age of King Jinpyong, focused on their characters and the poetic ego. The poetic ego of Hyeungga has the same personality with the author Yoongchunsa. Their personality came under the character 'Saint'. The Saint is the traditional figure of Shilla that solves the transcendental problems by the negotiations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 In this tradition, By the poetic ego crossing the world and the heavens, the readers could make conversions in their senses. The poetic ego of Hyesungga had the character of the Saint, therefore the readers made solution of their problems. In the other side, the narrator of Seodongyo had emphasized the roles of the princess Sunhwa contrary to those of King Moo. The intension is a reverse to the real history itself. After all, the readers have a different historical view about the relations between Paekjae and Shilla. Princess Sunhwa made Seodong[Muwang] the King of Paekjae, the Sage King. In the same breath, it is also reflected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Shilla people. The narrator of Seodongyo described the character of the Beauty, by this the readers can reform their historical view. Hyesungga and Seodongyo have the same interconnection, and it can be harmony with other missing works in the age of King Jinpyong. Our next theme is the comparative study about them. 본고는 진평왕대의 향가 2수, 곧 <혜성가>와 <서동요>를 그 인물 형상과 시적 자아의 성격을 중심으로 비교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들 작품은 진평왕대의 정치적․문화적 흐름에 대한 작가와 시적 자아의 인식을 배경으로 하여, 시가 작품이 발휘하는 현실적 효용이 수용자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창작되었다. 우선 <혜성가>의 시적 자아는 작가 융천사와 동일한 인격을 지닌다. 이는 신라 문화사 관계 자료에서 등장하는 ‘聖人’의 인물 형상에 해당한다. ‘성인’ 형상은 초월적․현실적 차원의 문제를 수용자와의 긴밀한 교섭․영향 관계를 통해 해결하고자 시도했던 인물 형상이었는데, 그러한 관계의 형성을 통해 수용자의 인식을 뒤바꾸는 매개체로 구실했던 것은 주로 국․한문 시가 작품이었다. <혜성가>의 시적 자아는 이러한 전통의 일환으로서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따라서 <혜성가>에서는 지상에서의 인식과 천상에서의 작용이 교차하는 구성에 주목하였으며, 대상의 이름을 ‘혜성’에서 ‘길 쓸 별’로 바꿈으로써 수용자의 인식이 전환하고, 시적 자아의 행동에 따라 천상․지상의 존재들이 서로 조응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혜성가>는 ‘聖人’의 역할을 하는 시적 자아와, 초월적 문제 상황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수용자의 욕구를 중심으로 창작․향유되어 왔다 하겠다. 한편 <서동요>를 비롯한 배경담 전체의 서술자는 신라 문화의 전통 속에서 ‘美人’으로 형상화된 선화공주의 역할을 능동적인 것으로 강조하였으며, 이에 따라 남주인공 武王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간다. 이러한 지향은 백제 무왕을 중심으로 나․제 관계가 형성되어간 실제 역사의 흐름과는 어긋나는 것으로서, 결국 이는 수용자에게 실제 역사와는 다른, 역사 인식의 전환을 유념하도록 만들 여지가 있다. 요컨대 무왕 ― 선화공주의 관계를 실제 역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묘사함으로써, 신라인의 관점을 적극 반영한 방향으로의 인식 전환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선화공주는 혼인 이후의 배경담 내용이나 시가 텍스트의 문면 등에서 여러 차례 주도적 역할을 하는데, 이는 ‘美’의 권능에 대한 신라문화의 적극적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서동요>는 백제 주도의 실제 역사를 신라 주도의 역사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수용자의 인식에 따라, ‘美人’에게 感發됨으로써 여러 가지 역사적 역할을 맡게 되는 시적 자아가 등장하게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혜성가>와 <서동요>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인’, ‘미인’ 등 당대 문화사에 나타나는 인물 형상을 등장시켜, 이를 매개로 시적 자아와 수용자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둘째, 수용자는 자신이 인식한 현실 세계 자체보다는, 시적 자아가 향가를 통해 ‘보여주는’ 세계를 보다 높이 평가하고, 이를 긍정하고 있다. 셋째, 서정성 자체보다는 초월적 질서 혹은 역사현실에서의 효용을 앞세우고, ‘당대사에서 중요한 덕목을 갖춘 인물 형상의 행위’를 통해 수용자의 인식을 조정하려 했다. 이러한 특징은 진평왕대의 失傳歌謠 작품들과도 일맥상통한다. 고대가요와 신라중대 향가 사이에 놓여 현실적 효용을 중시한 진평왕대 시가의 경향이 지닌 의미를 전체 시가사의 서정성의 맥락을 고려하여 조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 하겠다.
명효(明皛)의 『해인삼매론(海印三昧論)』 소재 게송(偈頌)에 나타난 깨달음과 실천
서철원 한국시가문화학회 2022 한국시가문화연구 Vol.- No.49
Gathas of Haeinsammaeron is worth showing the achievement of Hwaeom Poetry between Uisang and Gyunyo. The contents of this work are as follows. In the beginning poem, the practice of mercy was put forward to publicize to all people that the journey back to the foundation was a process of enlightenment. In the main text, life, death, and anguish were said to be the causes of nirvana and enlightenment. This is because human beings in reality must experience reincarnation and anguish to gain nirvana and enlightenment. To explain this process, you must understand the part and the whole, the diversity of various worlds, equality of all beings, and awareness of time. This also included equality and harmony in Hwaeom thought. The editorial added to the text also said not to be arrogant and to always repent. Realistic practice and performance were more important. He affirmed his attempt to share his enlightenment with others, and said that penance was important as a way to perform. The future task is to compare this work with the works of other Hwaeom thinkers. Compared to Uisang's Beopsongge, several topics are dependent on each other and independent. In addition, the possibility of comparing Gyunyeo's Bohyunsiwona with the method of penance was opened. 해인삼매론(海印三昧論)』의 게송 3편은 그간의 문학 연구에서는 거론된 적이 드물지만, 의상과 균여 사이의 시대에서 화엄 시학의 성취를 보여준다는 가치가 있다. 본 작품은 서시(序詩)와 본문인 다라니송(陀羅尼頌), 마지막의 회향게(廻向偈) 등으로 이루어졌다. 서시에서는 근본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곧 깨달음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모든 중생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자비의 실천을 내세웠다. 본문인 다라니송에서는 생사와 번뇌가 곧 열반과 보리의 원인이라고 했다. 현실 속의 인간이라면 삶과 죽음을 거듭하는 윤회, 번뇌에 빠졌다가 참회하는 체험을, 열반과 보리를 위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어서이다. 이렇게 인과 관계를 동시의 것, 인접한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한다거나, 여러 세상의 다양성을 포용하거나, 크고 작은 존재들이 무한한 공간 안에서 평등하다고 간주하거나, 일념으로 무한한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는 등의 통섭적 발상이 필요했다. 이런 발상 그 자체가 화엄 사상의 평등과 조화를 포함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회향시는 본문에서 깨달은 내용을 이론과 실천의 양쪽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정리해 주었다. 한편 본문에 덧붙은 론에서는 아만(我慢)을 경계하고 참회를 강조했다. 다라니송의 간명함은 자칫 아만의 계기가 될 과도한 지식을 경계한 것이었다고 한다. 화엄 사상의 특징과 해인삼매의 대의는 최대한 간략하게 서술하였고, 그 대신 현실적인 실천과 수행을 더 중시했다. 끝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남들과 공유하려는 문학적 시도를 긍정하며 수행 방법으로서 참회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앞으로의 과제로서 인접한 시기 화엄 사상가들의 작품과 견주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앞 시기 의상의 <법성게>에 비하면 『해인삼매론』은 본문의 생사-열반과 번뇌-보리, 서시와 회향시의 자비, 론의 참회 등 여러 주제가 서로 의존적이면서도 자립적이었다. 또한 참법(懺法)으로 보현행원을 분석했던 시각을 토대로, 본 작품의 실천과 참회, 화엄 교학의 참법 등을 <보현십원가>와 견주어 거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