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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세계구호위원회(World Relief Commission)의 한국 활동과 그 의의: 엘마 길보른(Elmer Kilbourne)의 활동을 중심으로

          박창훈 한국교회사학회 2021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8 No.-

          본 논문은 한국에서 활동한 외원단체들 가운데,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던 세계구호위원회(World Relief Commission)의 설립동기와 배경, 그리고 한국에서의 활동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세계구호위원회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한 엘마 길보른(Elmer Kilbourne)의 활동에 집중하여,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에 기여한 점을 추적하고 있다. 본 논문은 세계구호위원회와 엘마 길보른의 활동을 밝힘으로, 전후 한국사회의 재건과 사회사업 및 복지기관의 출현 등에 끼친 복음주의 기독교의 역할 및 한국성결교회의 기여를 드러내려고 한다. 본 논문은 미국복음주의협회 관련자료, 엘마 길보른의 보고서와 회고록, 세계구호위원회의 활동기록, OMS 보고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록, 기독공보 등을 통해, 한국사회를 사회사업의 역사와 비교하여 살펴보기 위하여, 사회학적인 접근과 함께 역사적 기술방법을 택하고 있다. 본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구호위원회의 한국 활동은 처음 구호활동에서 시작하여 점차 사회사업으로 발전하였다. 둘째, 세계구호위원회의 한국활동은 한국성결교회를 통해 진행되어, 교단이 사회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인도주의적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셋째, 세계구호 위원회의 한국 활동은 전쟁을 통해 형성된 반공의식을 더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넷째, PL480을 통한 미국정부의 세계구호위원회의 지원은 사회 사업을 더 강화시킨 측면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자발적 활동의 한계를 노출시켰다. 마지막으로, 세계구호위원회의 한국 활동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데, 자료 활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motives and backgrounds of the World Relief Commission, which was closely related to 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 among foreign organizations active in Korea, and their activities in Korea. In particular,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Elmer Kilbourne, who led the World Relief Commission, this paper traces the contributions to Korean social welfare since then. This thesis aims to reveal the role of evangelical Christianity and the contribution of the Korean Evangelical Holiness Church in the reconstruction of post-war Korean society, social work, and the emergence of welfare institutions, by revealing the activities of the World Relief Commission and Elmer Kolbourne. This paper compares the history of Korean society with the history of social work through materials related to the National Association onf Evangelicals, reports and memoirs of Elmer Kilbourne, records of activities of the World Relief Commission, OMS report, general meetings of the Korea Evangelical Holiness Holiness Church, and the Christian Gazette. In addition, it is taking the methodology of historical description with a sociological approach.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is as follows. First, the World Relief Commission's activities in Korea began with relief efforts and gradually developed into social work. Second, the World Relief Commission's activities in Korea were carried out through the Korea Evangelical Holiness Church, providing an opportunity for the denomination to take interest in the weak in society and attempt a humanitarian program. Third, the activities of the World Relief Commission in Korea served to further strengthen the anti-communist consciousness formed through the war. Fourth, the US government's support of the World Relief Commission through PL480 strengthened social work, but relatively exposed the limitations of voluntary activities. Finally, in conducting a research on the activities of the World Relief Commission in Korea, there are difficulties and limitations to use the data.

        • KCI등재

          전재민구호활동과 기독교: 미군정기를 중심으로

          박창훈 한국교회사학회 2017 韓國敎會史學會誌 Vol.46 No.-

          본 논문은 해방 후 전재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구호활동을 살펴보려고 한다. 당시 인구의 1/10-1/6에 해당하는 전재민이 남한에 유입되면서, 한국 사회는 커다란 변동을 경험했는데, 경제적 위기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 에 전재민들의 성향에 대해서는 사회학적인 방법을 그리고 전재민 구호활 동에 대해서는 사회복지의 측면에서 살피고자 한다. 미군정청에서 활동한 주요 한국인들이 해외 유학파 기독교인이며, 교회는 민간구호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전재민 교회는 자신 스스로가 자력갱생 을 이루는 모범적인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를 통해 기독교가 전재민구호활동을 통하여 한국현대사회에 기여하였음을 보이려고 한다. 해방 후 미군정기간에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였던 전재민에 대한 구호활 동은 종교인들의 당연한 관심의 영역이었을 것이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없었 다. 또한 당시에 대한 연구가 지나치게 정치역학의 관점에서만 조명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은 기독교인들의 인도주의적 활동을 설명하면서, 전재민 구호활동이 민간인 주도에서, 미군정청중심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전재민 스스로 자력갱생의 과정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밝히려고 한다. This paper traces Korean relief activities for the repatriates after the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When the repatriates came in, they were 1/10-1/6 of the population of South Korea. Through their inflow, the Koreans experienced a tremendous social change with the economical crises. For the methodology, the paper chooses the sociological approach to the repatriates’ political orientation and examines the relief activities in the perspective of social welfare. In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the majority of Korean officials were Christians who had studied abroad, and the churches were very much involved in the non-governmental relief activities. Especially, the repatriates’ churches showed themselves the possibilities of self-supporting communities. Through the examination of all these, the paper tries to demonstrate that Christianity made significant contributions for the formation of modern Korean society. There has been few researches on the religious relief activities for the repatriates, though the religious people must be concerned about this main issue during the US Military Government Period. The researches on this period mainly focus on that issue in terms of political dynamics. In this sense, this paper traces humanitarian Christian activities and shows the trajectory of the relief activities for the repatriates developing from the phase of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to the phase of the USA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and finally to the phase of the repatriates’ self-supporting participation.

        • KCI등재

          존 웨슬리의 옥스퍼드대학 설교 : 종교개혁자로서의 존 웨슬리

          박창훈 한국교회사학회 2017 韓國敎會史學會誌 Vol.48 No.-

          본 논문은 웨슬리의 설교에 집중하여 중년 이전의 웨슬리의 생각을 추 적하여, 특별히 그가 메소디스트 운동을 시작한 옥스퍼드에서 공개적으로 행한 설교에 집중한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 사건을 전후해서 그가 옥스퍼 드에서 한 9편의 설교를 통해 볼 때, 대학에서 시작된 메소디스트 운동의 중심 사상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무슨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대학 강단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영국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곳에서 교육을 담당한 교수 들이, 그리고 이후에 목회를 담당할 학생들이 과연 어떤 각오와 결단을 해 야 한다고 웨슬리가 생각했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웨슬리 자신은 교회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수행하려고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기대를 안고 입학하여 공부한 곳, 그곳에서 자신을 가르친 교수 와 동료와 후배,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그들이 어떤 각오로 공부를 하고,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밝힌 웨슬리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웨슬리의 옥스퍼드 설교는 당시의 교수나, 목사나, 신학도 가 교회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기에, 2017년 종교개 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의 신학대학과 교회에서 활동하는 교수와 목 사들에게, 예언자로서 그리고 종교개혁자로서 선포하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This treatise is focusing mainly on the middle-aged John Wesley’s public sermons, especially, on Oxford University where he started the Methodist Movement. Thinking of the nine sermons he preached there before and after his Aldersgate experience, one could recognizes what the main thoughts of the Methodist Movement and their critical minds were, and, at last, what kinds of changes they expected on that campus. This also shows Wesley’s ideas of what kinds of determination and resolution were needed for the faculties who were teaching and the students who would become pastors later, as the representatives of British intellectuals in those times. In this sense, this reveals the direction to which Wesley himself tried to reform the church. This article points out Wesley’s earnest mind to show how they would study and prepare the future ministry in the front of his professors, colleagues, younger generations, and pupils on Oxford, where he had entered with freshman’s expectation, While Wesley implied that the faculties, pastors, and theologians were at the center of the church problems, his sermons which he preached as a prophet and reformer could be the messages for Koran faculties and pastors in the seminaries and churches, where passionately celebrate the 500 anniversary of the Reformation.

        • KCI등재

          해방 후 통일담론의 발전과 기독교의 역할: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의 배경과 의의

          박창훈 한국교회사학회 2018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0 No.-

          본 논문은 해방 후 남한의 정치·경제·사회적인 시대상황에 따라, 다양한 통일론에 대한 조사와 개관 그리고 평가를 그 내용으로 하며, 그 가운데서 기독교인들의 참여를 추적한다. 특히 죽산 조봉암을 중심으로 한 평화통일론의 배경과 의의를 살피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대체로 38선 철폐운동, 미군철수반대운동, 그리고 한국전쟁 중에 휴전반대운동과 북진통일론을 전개하여 왔다. 이러한 통일론은 한국사회의 전쟁경험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이로 인해 이승만의 독재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기독교에는 또 다른 통일담론 즉 평화통일론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조봉암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시기적으로 너무 앞서고,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섣부름도 있었지만, 그가 간첩으로 오인 받고,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소리높인 평화통일이라는 구호는 이후 진보적인 기독교인들과 정치인들의 목소리로 발전하였다. 해방 후 기독교가 남한에서의 통일담론 발전에 있어서 다양한 구조와 논의를 전개하였고, 그 결과 일정한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하였음을 밝히기 위하여 본 논문은 각 종 신문과 전기 및 선언서 등을 참조할 것이다. 아울러 신학적인 입장이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살피는 종교사회학의 방법을 차용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현대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특별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남·북한의 평화노력에 대한 그 근원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찾는 과정이다. 아무쪼록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잘못되었을 때의 폐해는 무엇인지? 아울러 어떻게 그 노력을 성취할지?"를 묻는 첫 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This paper traces the participation of Christians in the context of the investigation, overview and evaluation of various theories of unification according to the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circumstances of South Korea after the Liberation. In particular, it examines the background and significance of the discourse of the peaceful unification, centering on Jooksan Bongam Cho. Korean Christianity has generally carried out the Abolishment Movement of the 38 Line, the Opposition Movement of the US Military Withdrawal, and the Anti-truce Movement and the Discourse of Military Unification during the Korean War. These Discourses were due to the war experience of the Korean society, but this resulted in the acceptance of Syngman Rhee's dictatorship. On the other hand, in Christianity there has been another unification discourse, the flow of peaceful unification theory. The slogan of peaceful unification, which has risen sharply until the time when Bongam Cho was fabricated as a cummunist spy and lost his life, and has been developed into a voice of progressive Christians and politicians, though there was a period of premature, far-reaching, After the Liberation, Korean Christians developed various structures and discussions of unification discourse. As a result, this paper could refer to various newspapers, biographies and declarations. This paper would borrow a method of religious sociology by focusing on the social activities of the church, not the theological position. Through this, the role of Korean Christianity in the period of 1945-1960 can be uniquely revealed. In conclusion, this paper can find the root and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peace efforts of South and North Korea. Hopefully, this will be the first step in asking “why do we need to understand each other, what are the obstacles when we are wrong, and how to accomplish those eff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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