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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 문명사의 전환과 김시습의 <유금오록(遊金鰲錄)>

        풍기 ( Kim Pung-gi ) 한민족문화학회 2018 한민족문화연구 Vol.62 No.-

        고려 말 본격적으로 수입된 성리학 기반의 유교는 조선 건국과 함께 하나의 국가학으로 인정되었지만, 지식인들 사이에서 수용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여러 논의가 수반되었다. 특히 기득권 세력인 불교와의 사상적 논쟁은 여전히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런 맥락에서 김시습의 시문은 다양한 논점을 제공한다. 여기서는 그의 <유금오록> 소재 시문을 대상으로 유불교체기의 문명사적 전환에 대한 김시습의 입장을 논의하고자 한다.그러나 유교화 과정은 16세기 전반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철학적 개념을 유교적 개념으로 바꾸는 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논쟁을 벌였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 교체기에 활동했던 중요한 인물이다. 정치적 사건 때문에 승려가 되었지만(그의 불교 이름은 ‘설잠’이었다), 그는 늘 유교 사회가 만드는 관료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불교 경전을 깊이 연구하는 한편 유교 경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유교와 불교의 화해를 도모했다. 그 과정에서 김시습의 내면 풍경과 사상적 갈등은 한시로 표출되었다. 그러한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유금오록>이다. 이 논문은 김시습이 엮은 시집인 <유금오록>을 통해서 불교를 어떻게 유교와 결합하고자 했는지, 승려로서의 심리적 갈등이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With the founding of Joseon Dynasty, the process of Confucian transformation, which had been going on since the late 14th century, came to fruition. The Koryeo Dynasty, whose system had been fundamentally and philosophically operated based on Buddhism, was transformed into a Confucian-based nation by gentry(Sadaebu) class. Even though Neo-Confucianists owed much to the philosophical basis of Buddhism, they built their own world by condemning Buddhism as heterodoxy. Koryeo Intellectuals who studied in Yuan Dynasty after this dynasty had accepted Neo- Confucianism as a national study became a pioneering class that made Confucianism their philosophical basis.It is reasonable, nevertheless, to state that the process of Confucian transformation was completed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To transform the philosophical basis of Buddhism into Confucian one was not able to accomplish in a short period of time. Furthermore, intellectuals were inevitably confronted with lots of controversial and fierce arguments during this process.Kim Si-Seup, a scholar, writer, and also Buddhist monk, is an important figure during this transition period from Buddhism to Confucianism. Although he became a monk-his Buddhist name is 'Suljam' -due to some political matters, he was always interested in bureaucracy of Confucian society. In addition to studying Buddhist scriptures in depth, he, with a profound understanding of Confucian classics as well, pursued reconciliation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His inner reflection and ideological conflicts, in that process, were expressed in his poetry written in Chinese. It is 『Yugeumorok(遊金鰲錄)』, which is a collection of poems and whose title means ‘the record of rambling and savoring moments on Geumosan, that projects images of Kim Si-Seup’s inner world closely. Through 『Yugeumorok(遊金鰲錄)』, this paper, therefore, discusses how Kim Si-Seup strived to combine Buddhism with Confucianism as well as how he tried to depict his own inner conflicts as a monk into his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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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제례(祭禮)에 나타난 제수(祭需) 진설(陳設)의 사례 연구 -『장절공묘소정식절목서(壯節公墓所定式節目序)』를 중심으로-

        풍기 ( Kim Pung-gi ) 한민족문화학회 2021 한민족문화연구 Vol.73 No.-

        이 논문에서 필자는 조선 후기 제례가 변화해가는 방식을 통해서 종중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아울러 제수(제사 음식)를 진설하는 방식을 다른 사례와 비교하여 그 특징을 살피려는 것이다.18세기 후반이 되면 문중 개념이 보편화된다. 문중은 동일한 조상을 모시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그들은 동일한 조상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결속한다. 그러나 시조를 모시는 일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문중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서 규칙을 만든다. 그 규칙이 문서화되고, 그 문서에 의해 조상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대체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이다.이러한 사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장절공묘소정식절목서(壯節公墓所定式節目序)』이다. 장절공(壯節公)은 신숭겸(申崇謙)의 시호이다.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을 조상으로 모시는 평산신씨 가문은 1803년 이 문서를 통해서 묘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모든 것들을 규칙으로 정했다.『수호절목』에는 제사 음식을 차리는 방식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그것은 조선 초기부터 사대부들 사이에 중시되어 온 『주자가례』를 기반으로 하고,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에 나오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신숭겸의 제사에서는 이들보다 훨씬 확대된 방식의 제사 음식이 차려졌으며, 그것은 강원도 내의 다른 가문과도 차별성을 가진다. 특히 강릉김씨 가문의 음식이 바닷가의 성격을 반영한다면, 신숭겸의 경우는 내륙지방의 음식을 반영하고 있다.『수호절목』은 조선 후기 한 가문의 시조를 제사지내는 형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문서로, 이를 통해서 우리는 문중이 결속하는 방식으로서의 제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covers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Jongjung(the families of the same clan) by examining the ways of the ancestral rites being chang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intends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of arranging the ritual food as well, comparing the manners in some cases.In the late 18th century, the concept of Munjung, the general term for a group of families who worship the same ancestors, became common. While it was possible for them to bond together by holding memorial services for the same ancestors, however, since it was likely to cause many relevant problems, rules were established via the consent of the members of Munjung so as to eliminate the possibility of troubles.A typical example of these records is 『Jangjeolgongmyosojeongsikjeolmokseo』(壯節公墓所定式節目序). Jangjeolgong (壯節公) is Shin Sung-gyeom (申崇謙)’s posthumous name. The clan of Pyeongsan-Shin family, who holds Shin Sung-gyeom in veneration, one of the national contributors of Goryeo Dynasty, set the rules in 1803 for managing tombs and performing ceremonies through this document.『Suhojeolmok』 typically shows the form of a ritual ceremony for the progenitors of a fami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rough this document, we can clearly confirm the rites as a way of strengthening the families’ 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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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언어의 위계화와 새로운 언어 권력의 탄생 -조선 후기 시조(時調) 가집(歌集)의 서발(序跋)을 중심으로

        풍기 ( Pung Gi Kim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5 용봉인문논총 Vol.- No.46

        지배 언어의 강한 자장 안에서 소수 언어의 생존은 늘 위협 받는다. 생존을 위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새로운 언어 문화적 지형도를 만든다. 어떤 언어든 자신을 중심으로 문화적 지형도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혹은 문화적 환경 때문에 그러한 노력은 대부분 무위로 끝난다. 언어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는 그 전략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 하나의 언어가 소멸되거나, 다른 언어를 흡수하여 동화시키거나, 혹은 공존을 선택한다. 그렇게 볼 때, 조선 후기 가집에서 보이는 언문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① 한시를 포함한 한문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② 노래로서의 한시 문학인 『시경』과 노래로서의 시조가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③ 한문과 언문이라는 표기 차이를 제외하면, 인간의 진정한 마음을 담는다는 점은 같다고 주장한다. ④ 이를 통해서 한문이 담당할 수 없는, 언문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와 노래가 같다고 하는 ‘시가동도론(詩歌同道論)’이 제기된다. 이것은 근대의 여명기에 언문이 급격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끝내 새로운 언어 권력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Within the realm of the dominant language, a minor language is always under constant threat of marginalization and extinction. For survival, the minor language creates its own space and inscribes in it a new linguistic and cultural topography. Every language attempts to create its own cultural topography. However, most of their efforts fail in facing with the pre-established social, economic, political or cultural environments. The relationship between minor and dominant languages can be characterized as following ways: extinction, assimilation (absorption), and coexistence. On this account, this paper argues that Eonmun in the song books of the late Joseon period takes following strategies: 1) acknowledging that Sino-Korean classics including Sino-Korean poetry has a long tradition, 2) emphasizing both Shijing and Sijo reflect the true mind of humans through their common musicality, 3) claiming both Chinese character and Eonmun can represent the true mind of humans despite their linguistic differences, 4) finding the unique area of Eonmun in its relationship with Chinese character. In this process, the idea that the Shi is identical with the song or ode first emerged. And it was a pivotal moment for Eonmun, which became a new language power at the dawn of the modern era.

      • 17세기 시가의 향유방식과 허균의 문학

        풍기(Kim Pung-gi)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4 江原人文論叢 Vol.12 No.-

        17세기의 황폐한 문화적 토대는 이전 시기의 문화적 성과를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시기 음악사 연구가 미진한 것도 황폐한 문화적 환경과 함께 자료의 산실에 근거한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이 시기의 개인문집을 중심으로 유흥공간의 묘사를 살핌으로써 상당 부분 보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연희공간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범박하게 나눌 때, 공적 연회공간이 잘 짜여진 체제와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방식이라면 사적 연회공간은 술과 음악, 기생으로 구성되는 간단한 방식이다. 공적 연희공간에서는 악장(樂章)과 같은 공식적인 음악 중심의 연주가 이루어지는데 비해 사적 연회공간은 다양한 노래들이 연행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17세기에 불리웠던 우리말 시가의 현황을 짐작할 수 있다. 〈산자고〉나 〈최득비여자가(崔得?女子歌)처럼 정확히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관서별곡〉 〈관동별곡〉 〈장진주〉 와 같이 널리 알려진 시가가 연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적 연희공간에서의 악기 구성은 주로 북, 피리(퉁소), 거문고 등이었으며, 기생의 노래를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허균의 기록 속에 등장하는 연회공간에서는 대부분 이들 중 최소한의 요건만을 갖추면 충분히 놀이가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단편들을 모아서 재구성한다면 17세기 음악사와 시가사의 궤적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그 첫걸음인 셈이다. In the devastated cultural foundation of the seventeenth-century Chos?n, cultural achievement of the previous centuries could not spread its root. The reason that extensive research was not done on the musical history of this period is that cultural environment of this time was too devastated and much of the original materials were scattered and lost. Now the issue is how to overcome this situation: centering on individual's anthologies of that time and exploring the portrayals of the amusement and entertainment space would provide some solutions to this. Space for entertainment displays distinctive differences between that of public and private. A simple way to distinguish between them is that the public entertainment space requires well-organized system and a good deal of people and the private entertainment space constitutes of drink, music and kisaeng (women entertainers). While music of diverse kind could be played in the latter, that which was composed to serve official purpose, such as akchang, was played in the former. In this settings, we could get a glimpse of some of the Korean songs recited in seventeenth-century Chosen. There are some of which that are unknown to the contemporary scholars or readers such as Sanjago or Choe Tukbi yojaga; but one could also see that relatively familiar songs like Kwanso pyolgok, Kwnadong py?lgok, Changjinju were recited. The music played in private entertainment space generally required instruments such as puk (drum), t'ungso (flute), k?mun'go (string instrument) and was accompanied by the songs by kisaeng. Ho Kyun's records illustrate that the minimum of these components were enough to maintain the entertainment. Collecting and reconstructing these fragments would enable to restore the history and trajectories of seventeenth-century music and poetry. This paper can be the first step to that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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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에 나타난 이상향(理想鄕)의 의미(意味)- 주자(朱子)의 <무이도가(武夷櫂歌)>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풍기 ( Pung Gi Kim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4 율곡학연구 Vol.29 No.-

        황해도 해주 석담에 경영했던 고산구곡은 율곡이 자신만의 이상향을 실현시킨 장소였다. 성리학자로서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현실 속에 구현하려는 뜻에서 고산구곡을 구성하였다. 그 안에서 그는 벗들과 시를 읊고 학문도 연마하면서 주희(朱熹)가 구현하고자 했던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율곡이 꿈꾸는 이상향은 그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에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여기서 그는 공부가 깊어지면서 우주와 만나는 내면의 흥취가 더욱 도도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깊은 경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사명을 잊지 않는다. 내면에 침잠하여 즐기는 내면의 흥과 사유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율곡의 이상향은 폐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유교가 지향하는 ‘평천하(平天下)’로 가려는 모습을 지닌다 하겠다. 도덕적 이상향으로서의 모습은 세속과 절연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율곡 이상향의 특징이며, 그러한 면모를 「고산구곡가」 안에 펼쳐 놓았다고 하겠다. For Yulgok Yi-I, Gosangugok in Haejoo Seokdam, Hwanghaedo was an utopian place. As a neo-confucian scholar, Yi-I established Gosangugok in order to create the most beautiful and perfect world in his reality. While studying and reciting poetry with his friends at this place, he endeavored to realize Chu-Hsi``s vision of ideal world. Gosangugok-ga beautifully describes Yulgok Yi-I``s utopianism. It portrays how Yi-I``s inner world had developed and evolved along with his study of the universe in detail. For him, it was a shame that not many in the world was unable to understand his study. Yi-I believed, it was his destiny to enlighten people with his knowledge. The practice of his study and thought can be characterized by individualistic Heung. However, the weight of his utopianism is always toward society. In this sense, Yulgok``s utopianism is not a reclusive practice of thought. Rather, it was a realistic and even pragmatic practice, which aims to make his world better. In reading Gosangugok-ga, we can see that the singularity of Yulgok Yi-I``s utopianism lies on the fact that the pursuit of the moral ideal should be centered on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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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극복으로서의 번역과 공동체 문화의 계승 -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 출간의 의미

        풍기 ( Kim Pung-gi ) 택민국학연구원 2021 국학연구론총 Vol.- No.27

        번역은 두 가지 층위를 가진다. 목표언어는 한국어지만, 출발언어가 외국어일 경우와 한국어일 경우가 있다. 출발언어가 외국어인 경우는 공간 극복의 차원이 번역의 1차적인 목표지만 출발언어가 한국어일 경우는 시간 극복의 차원이 번역의 1차적인 목표다. 과거의 한국어를 현재의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 이것이 한국 고전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당면한 과제다. 한국 고전소설은 그동안 자료 발굴과 연구가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자료를 대규모로 모으는 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완간된 <김광순 교수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은 고소설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라 할 만하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모은 사실도 드물 뿐만 아니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많은 고소설 연구자들이 힘을 모아 모든 작품에 해제를 붙이고 주해를 하여 지금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현대 역을 붙인 것은 학계의 대단한 성과이다.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고소설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고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새롭게 많이 생길 것을 기대한다. 나아가 고소설 자료가 아카이브 형태로 구축되어 여러 분야에서 활용이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을 기대한다. 이것은 우리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Translation has two layers of meaning. Even though the target language is Korean, there are two cases when the source language is either a foreign language or archaic Korean. When the source language is a foreign language, the primary goal of translation is to overcome space, but when the source language is archaic Korean, the goal of translation is to overcome time. It is this difficult task of translating the Korean language of the past into the modern language, that those who translate Korean classics face. In the area of Korean classical novels, there has been activity for a long time in finding new materials and conducting studies, but collecting data on a large scale has not been done properly. The recently published < Professor Kim Kwang Soon’s Collection of 100 Manuscripts of Korean Classic Novels >, in this regard, marks a new milestone in research on Korean classical novels. It is very rare that one person individually collects a vast amount of data, and in addition to the collected material, there are a number of new works that were previously unknown. It is a great achievement in the realm of academia that many researchers of Korean classical novels have teamed up to work on making comments and annotations on these collected works, and to finally add their modern translations so that readers today can also appreciate them. Through this kind of work, we can expect that new research on Korean classical novels will be greatly stimulated and that many readers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enjoy the Korean classics. Moreover, it also helps the numerous material on Korean classical novels to be built up in an archive, which provides the chance for the collected materials to be utilized in various fields. These materials have profound significance in that they preserve the culture shared by our community now for the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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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번역과 대중화, 그 현실과 전망

        풍기(Kim, Pung-gi) 우리말글학회 2012 우리말 글 Vol.56 No.-

        고전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책들이 등장하였다. 그 덕분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던 고전은 우리 주변으로 와서 독자들을 유혹한다. 고전은 다층적인 해석의 층위를 지니기 때문에, 그것의 본령에 접근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전을 다시 써서 독자들이 쉽게 고전의 바다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나의 책이 고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전의 사유 구조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해석적 층위를 가져야 한다. 그 해석들은 기존의 생각과 맞서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한 투쟁을 통해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연다. 과거의 생각들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새로운 사유지평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상 투쟁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목소리를 내면화한다. 다만 그 목소리가 자신만의 방식에 의해 변주되면서 기존의 사유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새로운 생각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고전을 훼손하거나 재해석하면서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의 고전이 탄생하는 것은 굳은 해석을 잘게 부수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전의 대중화에 대한 우려가 높은 만큼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 가운데서 많은 논쟁과 해석, 사유 등이 표출되고, 그것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전을 준비하는 신호탄이기도 할 것이다. As the interest in classics grew socially, various forms of books appeared. Due to this, the classics that were looked up as something inaccessible came within our reach and lure us with their charms. For the classics have multiple layers of interpretation, it is a difficult job to reach the essence and grasp the meanings. It is always necessary to rewrite the classics so that the readers can delve into the sea of classics more easily. For a book to be recognized as classics, it must possess the interpretive layer that could create cracks in the existing structure of thoughts. These interpretations must confront the existing thoughts and secure their territory; and these confrontations open up new horizon of thoughts. It must be noted that new horizon of thoughts do not emerge from a complete severance from the past ideas. Through the ideological struggles, they naturally internalize the voices of the past. However, the voices are altered by their own ways and become the starting point for creating ruptures in the existing thoughts and revealing theirs. New thoughts are formed as they desecrate or reinterpret what was already established. In this sense, classics are born when firm interpretations are taken apart and the possibilities of new interpretations are created. As much as one is worried about the popularization of classics, one also anticipates the birth of new classics. During that process, many arguments, interpretations and thoughts will be born and this would be the signal for us to greet the new classics of our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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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담의 문화사: 조선후기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한 방법

        풍기(Kim Pung-gi) 韓國批評文學會 2011 批評文學 Vol.- No.42

        이 논문은 조선과 중국의 지식인들이 교류했던 중요한 방식인 필담의 형성과 그 의미를 다룬 것이다. 말이 달라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중세 공동문어(共同文語)인 한문을 이용하여 그들은 학문적 교분을 나누었다. 필담은 현장에서 이루어진 초고를 바탕으로 필담집으로 편찬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개가 이루어진다. 필담 현장에서도 필담 내용을 삭제하거나 원고를 소각하는 등 상당한 변개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대부분 팔담 내용이 시국에 저촉되거나 공개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또한 글자를 하나씩 써나가는 동안 필담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문학성을 가미한 문장을 구사하게 된다. 이 역시 필담이 말의 구비성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필담의 일차 자료가 만들어지면 그것은 재가공된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일차 자료가 제공하는 정보에 일정한 변화를 준다. 필담집의 편찬에 필요하지 않는 자료는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사장되도록 만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의 재배치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편찬자는 주제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필담집이 필담 일차 자료보다 훨씬 정제된 형식과 문식성을 획득하는 것도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필담집이 편찬되어 유통됨으로써 필담집 편찬자는 주변의 지식인들과 그 결과물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교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외부의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사유를 창조적으로 펼치는 자료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필담의 역학은 주목되어야 한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formation and meaning of written conversation, which was an important form of cultural exchange for Joseon and Chinese intellectuals in order to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While they could not communicate through spoken language due to their differences, they could communicate through the common written language, Classical Chinese. These written conversations were compiled into a collection of written conversation. During this process, various modification and revision occurred. Sometimes parts of these written conversations were deleted or the manuscripts were burnt on-site, mostly because the contents might be too sensitive to be revealed or in conflict with the political climate of the time. The ones involved in written conversation could take time to recollect their thoughts and converse in a more literary language. When the primary material of written conversations was collected, it went through an editing process. During this process, the writers revised and modified the information that was provided by the primary material. They not only go through a careful selection process, but, most importantly, rearrange the materials. Through this, the compiler delivers a theme to the readers. This is when the written conversation acquires a more refined form and rhetorical embellishment. By having the collection of written conversation compiled and circulated among the intellectuals, the compiler shared thoughts and ideas with other intellectuals. In doing so, he could come in contact with the outside knowledge and use it as a source to express his thoughts creatively. Hence, due attention should be paid to the role of written conversation among the intellectuals of late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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