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潭樵 南永魯의 생애와 『玉樓夢』에 반영된 사유

        金豊起(Kim Pung-Gi) 한국인물사연구소 2007 한국인물사연구 Vol.8 No.-

        Coming from an insignificant family, one of the Joseon literati Nam Yeong-no left a significant legacy in literary history with the writing of Ongnumong (The Dream of Jade Tower). There is very little record life of him, hence, it is almost impossible to retrace the course of his life or his literary thoughts. It seems that Nam Yeong-no obtained his cultural nourishment from the friendships he shared with many writers or artists around him. After failing civil service exam several times, he lived in seclusion and wrote Ongnumong using his literary talent. He often communicated with other literati and they sometimes read and critiqued one another's works. He showed the world his literary talents while communicating with fiction writers such as Seo Yu-yeong, Gim So-haeng, Sim Neung-suk and poets of Samhodang Poetry Group such as Seo Don-bo and Seo Gi-bo. Ongnumong succeeded the narrative structure of Guunmong (The Cloud Dream of the Nine) which is a typical dream-vision novel and covered extensive range of writing style from the domestic novel to romance novel, and to war hero story which became popular among the later generations. It means that Ongnumong had the strongest popular appeal of the nineteenth century novel. What Ongnumong accomplished in the late Joseon can be seen as something great. It has reached a level that other work can hardly compare in its high level of understanding about women, sharp criticism on political disputes, and the detailed description of diverse popular cultures including the contemporary entertainments.

      • KCI등재

        조선 초기 문명사의 전환과 김시습의 <유금오록(遊金鰲錄)>

        김풍기 ( Kim Pung-gi ) 한민족문화학회 2018 한민족문화연구 Vol.62 No.-

        고려 말 본격적으로 수입된 성리학 기반의 유교는 조선 건국과 함께 하나의 국가학으로 인정되었지만, 지식인들 사이에서 수용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여러 논의가 수반되었다. 특히 기득권 세력인 불교와의 사상적 논쟁은 여전히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런 맥락에서 김시습의 시문은 다양한 논점을 제공한다. 여기서는 그의 <유금오록> 소재 시문을 대상으로 유불교체기의 문명사적 전환에 대한 김시습의 입장을 논의하고자 한다.그러나 유교화 과정은 16세기 전반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철학적 개념을 유교적 개념으로 바꾸는 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논쟁을 벌였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 교체기에 활동했던 중요한 인물이다. 정치적 사건 때문에 승려가 되었지만(그의 불교 이름은 ‘설잠’이었다), 그는 늘 유교 사회가 만드는 관료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불교 경전을 깊이 연구하는 한편 유교 경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유교와 불교의 화해를 도모했다. 그 과정에서 김시습의 내면 풍경과 사상적 갈등은 한시로 표출되었다. 그러한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유금오록>이다. 이 논문은 김시습이 엮은 시집인 <유금오록>을 통해서 불교를 어떻게 유교와 결합하고자 했는지, 승려로서의 심리적 갈등이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With the founding of Joseon Dynasty, the process of Confucian transformation, which had been going on since the late 14th century, came to fruition. The Koryeo Dynasty, whose system had been fundamentally and philosophically operated based on Buddhism, was transformed into a Confucian-based nation by gentry(Sadaebu) class. Even though Neo-Confucianists owed much to the philosophical basis of Buddhism, they built their own world by condemning Buddhism as heterodoxy. Koryeo Intellectuals who studied in Yuan Dynasty after this dynasty had accepted Neo- Confucianism as a national study became a pioneering class that made Confucianism their philosophical basis.It is reasonable, nevertheless, to state that the process of Confucian transformation was completed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To transform the philosophical basis of Buddhism into Confucian one was not able to accomplish in a short period of time. Furthermore, intellectuals were inevitably confronted with lots of controversial and fierce arguments during this process.Kim Si-Seup, a scholar, writer, and also Buddhist monk, is an important figure during this transition period from Buddhism to Confucianism. Although he became a monk-his Buddhist name is 'Suljam' -due to some political matters, he was always interested in bureaucracy of Confucian society. In addition to studying Buddhist scriptures in depth, he, with a profound understanding of Confucian classics as well, pursued reconciliation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His inner reflection and ideological conflicts, in that process, were expressed in his poetry written in Chinese. It is 『Yugeumorok(遊金鰲錄)』, which is a collection of poems and whose title means ‘the record of rambling and savoring moments on Geumosan, that projects images of Kim Si-Seup’s inner world closely. Through 『Yugeumorok(遊金鰲錄)』, this paper, therefore, discusses how Kim Si-Seup strived to combine Buddhism with Confucianism as well as how he tried to depict his own inner conflicts as a monk into his works.

      • KCI등재

        고전의 번역과 대중화, 그 현실과 전망

        김풍기(Kim, Pung-gi) 우리말글학회 2012 우리말 글 Vol.56 No.-

        고전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책들이 등장하였다. 그 덕분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던 고전은 우리 주변으로 와서 독자들을 유혹한다. 고전은 다층적인 해석의 층위를 지니기 때문에, 그것의 본령에 접근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전을 다시 써서 독자들이 쉽게 고전의 바다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나의 책이 고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전의 사유 구조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해석적 층위를 가져야 한다. 그 해석들은 기존의 생각과 맞서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한 투쟁을 통해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연다. 과거의 생각들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새로운 사유지평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상 투쟁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목소리를 내면화한다. 다만 그 목소리가 자신만의 방식에 의해 변주되면서 기존의 사유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새로운 생각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고전을 훼손하거나 재해석하면서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의 고전이 탄생하는 것은 굳은 해석을 잘게 부수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전의 대중화에 대한 우려가 높은 만큼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 가운데서 많은 논쟁과 해석, 사유 등이 표출되고, 그것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전을 준비하는 신호탄이기도 할 것이다. As the interest in classics grew socially, various forms of books appeared. Due to this, the classics that were looked up as something inaccessible came within our reach and lure us with their charms. For the classics have multiple layers of interpretation, it is a difficult job to reach the essence and grasp the meanings. It is always necessary to rewrite the classics so that the readers can delve into the sea of classics more easily. For a book to be recognized as classics, it must possess the interpretive layer that could create cracks in the existing structure of thoughts. These interpretations must confront the existing thoughts and secure their territory; and these confrontations open up new horizon of thoughts. It must be noted that new horizon of thoughts do not emerge from a complete severance from the past ideas. Through the ideological struggles, they naturally internalize the voices of the past. However, the voices are altered by their own ways and become the starting point for creating ruptures in the existing thoughts and revealing theirs. New thoughts are formed as they desecrate or reinterpret what was already established. In this sense, classics are born when firm interpretations are taken apart and the possibilities of new interpretations are created. As much as one is worried about the popularization of classics, one also anticipates the birth of new classics. During that process, many arguments, interpretations and thoughts will be born and this would be the signal for us to greet the new classics of our age.

      • KCI등재

        조선 후기 제례(祭禮)에 나타난 제수(祭需) 진설(陳設)의 사례 연구 -『장절공묘소정식절목서(壯節公墓所定式節目序)』를 중심으로-

        김풍기 ( Kim Pung-gi ) 한민족문화학회 2021 한민족문화연구 Vol.73 No.-

        이 논문에서 필자는 조선 후기 제례가 변화해가는 방식을 통해서 종중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아울러 제수(제사 음식)를 진설하는 방식을 다른 사례와 비교하여 그 특징을 살피려는 것이다.18세기 후반이 되면 문중 개념이 보편화된다. 문중은 동일한 조상을 모시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그들은 동일한 조상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결속한다. 그러나 시조를 모시는 일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문중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서 규칙을 만든다. 그 규칙이 문서화되고, 그 문서에 의해 조상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대체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이다.이러한 사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장절공묘소정식절목서(壯節公墓所定式節目序)』이다. 장절공(壯節公)은 신숭겸(申崇謙)의 시호이다.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을 조상으로 모시는 평산신씨 가문은 1803년 이 문서를 통해서 묘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모든 것들을 규칙으로 정했다.『수호절목』에는 제사 음식을 차리는 방식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그것은 조선 초기부터 사대부들 사이에 중시되어 온 『주자가례』를 기반으로 하고,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에 나오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신숭겸의 제사에서는 이들보다 훨씬 확대된 방식의 제사 음식이 차려졌으며, 그것은 강원도 내의 다른 가문과도 차별성을 가진다. 특히 강릉김씨 가문의 음식이 바닷가의 성격을 반영한다면, 신숭겸의 경우는 내륙지방의 음식을 반영하고 있다.『수호절목』은 조선 후기 한 가문의 시조를 제사지내는 형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문서로, 이를 통해서 우리는 문중이 결속하는 방식으로서의 제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covers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Jongjung(the families of the same clan) by examining the ways of the ancestral rites being chang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intends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of arranging the ritual food as well, comparing the manners in some cases.In the late 18th century, the concept of Munjung, the general term for a group of families who worship the same ancestors, became common. While it was possible for them to bond together by holding memorial services for the same ancestors, however, since it was likely to cause many relevant problems, rules were established via the consent of the members of Munjung so as to eliminate the possibility of troubles.A typical example of these records is 『Jangjeolgongmyosojeongsikjeolmokseo』(壯節公墓所定式節目序). Jangjeolgong (壯節公) is Shin Sung-gyeom (申崇謙)’s posthumous name. The clan of Pyeongsan-Shin family, who holds Shin Sung-gyeom in veneration, one of the national contributors of Goryeo Dynasty, set the rules in 1803 for managing tombs and performing ceremonies through this document.『Suhojeolmok』 typically shows the form of a ritual ceremony for the progenitors of a fami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rough this document, we can clearly confirm the rites as a way of strengthening the families’ unity.

      • KCI등재

        조선 전기 언해 사업의 문화적 의미

        김풍기(Kim, Pung Gi) 동악어문학회 2012 동악어문학 Vol.58 No.-

        조선을 건국한 주체 세력들은 자신들이 구상한 문명으로 조선을 끌고 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문자의 소유를 통한 권력을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이상, 이는 명확하게 한계를 가지는 것이었다.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났던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한자보다 훨씬 배우기도 쉽고 표기 범위도 넓은 정음은 백성들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지식 권력을 비판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백성들을 교화하여 유교적 문명의 자장(磁場)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언해가 선택된다. 언해는 외국어(원천언어), 특히 한문 서적을 정음(목표언어)으로 번역하는 행위를 통칭한다. 과거에 향찰이 존재했었지만 그것은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말을 온전히 표기할 수 없었다. 정음은 이러한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해주는 문자였다. 언해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언해는 조선의 문명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천언어에 대한 분석과 목표언어로의 재구성은 서로 다른 문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원천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 새로운 우리말 문체의 발견 등과 같은 학문적 성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원천언어를 하나의 모범으로 보고 그것을 통해 목표언어 사용자들을 교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언해의 이면에는 문화적 폭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한 것이 중화문명으로 조선을 편입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백성들의 인식을 높임으로써 중화문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해를 통해 중세 지식이 습득되고 나아가 새로운 조선 문명의 건설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에 대한 섬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The main agents that founded Joseon endeavored to lead Joseon to the civilization that they initially conceived. However, as they monopolized the power by dominating the scripts, which was the Classical Chinese, this effort had a clear limitation. The controversies that surrounded the invention of Hunminjeongeum, the Koreanalphabet, should beunderstood in this context. Hunminjeongeum, which was much easier to learn and write, was both the tool that could raise the intellectual level of ordinary lay men and the means to criticize the intellectual power. Government needed to edify the people and draw them into the spiritual territory of Confucian civilization. This is where eonhae, which could be directly translated as the vernacular translation, comes in. Eonhae refers to the translation of foreign language (source language), mostly Classical Chinese texts into Hunmin jeongum(target language). Hyangchal existed in the past, but this writing system which transcribed Korean by borrowing the meaning and sound of Chinese characters fell far short for the given mission. Hunminjeongeum was the script that solved a considerable portion of this problem. Eonhae basically existed for communication. It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at elevating the level of Korean civilization. Analysis of the source language and reconstruction of the target language was an attempt to transform into a different civilization and, in doing so, deeper understanding of source language and discovering new styles of Korean writing followed. However, a cultural violence was underlying in eonhae from the outset, for its purpose was to educate the users of target language while the source language served as an exemplary model. Hence, at first, it worked toward incorporating Joseon into the Chinese civilization, but as people’s level of intellect and perception increased, it provided the opportunities to escape from the China-centric worldview. Thus, a meticulous research is required to understand how eonhae opened new avenues for acquiring the medieval knowledge and served as a momentum in establishing the new civilization of Joseon.

      • KCI등재

        허균의 우정론과 그 의미

        김풍기(Kim Pung-gi) 韓國批評文學會 2010 批評文學 Vol.- No.37

        For most confucian scholars of Joseon, sharing the philosophical and intellectual vision was an important part of friendship. What bound them together was the congenial spirit as the fellow thinkers who follow the same path. Artistic taste or literary disposition was less of a matter in forming friendship. However, in reality, finding a friend who share the same intellectual vision was not an easy thing. For this reason, people preferred to communicate with the sages of the past through reading. This worked as the cultural basis to encourage “the idea of befriending the people from the past.” In comparison to this, Heo Gyun displays a different aspect. On the spiritual level, he also speaks of “the idea of befriending the people from the past.” At the same time, he shares friendship with the people of different social status with unreserved attitude in reality. He became friends with the sons of concubines who were lower in social standing and also ginyeo, the female entertainer/artist who held the lowest rank of society. Friendship with these underprivileged people or the minorities reveal a new form of relationship that was formed by Heo Gyun. He valued the common ground in artistic and literary taste and stressed the righteous spirit in friendship. In this sense, he displays the earlier form of the ethics of friendship that became more prominent among the confucian intellectuals in the 18th century Joseon.

      • KCI등재

        조선전기 문학론의 위계와 「동인시화(東人詩話)」

        김풍기 ( Kim Pung Gi ) 한민족어문학회 2016 韓民族語文學 Vol.0 No.73

        이 논문은 서거정이 만년에 저술한 「동인시화」를 분석하여, 그 속에서 주장하는 문학론의 구도를 위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서거정의 문학론을 용사론, 기상론, 풍격론 등 다양한 범주에서 논의해왔지만, 이들의 구도를 함께 설명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가장 먼저 서거정이 내세운 방식은 기존 문학론에 대한 충실한 습득이었다. 용사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개념들―도습(蹈襲), 점화(點化), 환골탈태(換骨奪胎) 등을 내용으로 하는 용사론은 방대한 독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자본을 두텁게 쌓은 가문이 아니면 습득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용사의 충실한 습득을 통해 관료가 되어야 비로소 장대한 기상을 보일 수 있으므로 두 개념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두 조건이 충족될때 비로소 서거정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호부(豪富)’ 즉 호탕하고 부섬(富贍)하다는 미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서거정의 문학론적 지형도 속에서 관인, 처사(處士), 승려의 단계로 그 위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구성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서 주장한 것이 바로 「동인시화」다. 이 책의 저술을 통해서 조선은 비로소 국가적 문학론의 완성을 이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the discourse and understand the structure of literary theory being unfolded in Donginsihwa(東人詩話) in hierarchical manner, a work of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that was written by SeoGeo-jeong’s in his later years. Seo Geo-jeong’s literary theory has been discussed in diverse categories including yongsa(用事), gisang(氣象), punggyeok(風格), and so forth but efforts to explain their structure as a whole has been relatively lacking. The first method of literary composition that Seo Geo-jeong asserted was a faithful acquisition of existing literary theories, which is related mainly to the concept of yongsa, i.e. using classical allusions in poetry and literature. The theory of yongsa, which encompasses diverse concepts that center around the idea of yongsa, such as doseup (蹈襲, emulation), jeomhwa(點 化,transformation), hwangoltaltae(換骨奪胎, adaptationorrewriting) requires an extensive reading, which made it difficult for anyone outside the privilege of ample cultural capital to acquire. The idea of gisang, which could be roughly translated as spirit or vigor, is inseparable from that of yongsa, since one can eventually display one’s vigorous and empowered spirit by becoming a government official through perfecting one’s use of yongsa. Once these two conditions are met, only then can one reach the aestheticsense of hobu(豪富), that is, being magnanimous and abundant-a state considered ideal by Seo Geo-jeong. In that sense, perhaps, it is only natural that there was a hierarchy of official, Confucian recluse and monk in the literary geography of Seo Geo-jeong’s. It is in Donginsihwa that this structure was argued with abundant examples. It can be said that Joseon truly saw the completion of national literary theory thorough the composition of this book.

      • KCI등재

        시간 극복으로서의 번역과 공동체 문화의 계승 -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 출간의 의미

        김풍기 ( Kim Pung-gi ) 택민국학연구원 2021 국학연구론총 Vol.- No.27

        번역은 두 가지 층위를 가진다. 목표언어는 한국어지만, 출발언어가 외국어일 경우와 한국어일 경우가 있다. 출발언어가 외국어인 경우는 공간 극복의 차원이 번역의 1차적인 목표지만 출발언어가 한국어일 경우는 시간 극복의 차원이 번역의 1차적인 목표다. 과거의 한국어를 현재의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 이것이 한국 고전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당면한 과제다. 한국 고전소설은 그동안 자료 발굴과 연구가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자료를 대규모로 모으는 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완간된 <김광순 교수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은 고소설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라 할 만하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모은 사실도 드물 뿐만 아니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많은 고소설 연구자들이 힘을 모아 모든 작품에 해제를 붙이고 주해를 하여 지금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현대 역을 붙인 것은 학계의 대단한 성과이다.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고소설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고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새롭게 많이 생길 것을 기대한다. 나아가 고소설 자료가 아카이브 형태로 구축되어 여러 분야에서 활용이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을 기대한다. 이것은 우리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Translation has two layers of meaning. Even though the target language is Korean, there are two cases when the source language is either a foreign language or archaic Korean. When the source language is a foreign language, the primary goal of translation is to overcome space, but when the source language is archaic Korean, the goal of translation is to overcome time. It is this difficult task of translating the Korean language of the past into the modern language, that those who translate Korean classics face. In the area of Korean classical novels, there has been activity for a long time in finding new materials and conducting studies, but collecting data on a large scale has not been done properly. The recently published < Professor Kim Kwang Soon’s Collection of 100 Manuscripts of Korean Classic Novels >, in this regard, marks a new milestone in research on Korean classical novels. It is very rare that one person individually collects a vast amount of data, and in addition to the collected material, there are a number of new works that were previously unknown. It is a great achievement in the realm of academia that many researchers of Korean classical novels have teamed up to work on making comments and annotations on these collected works, and to finally add their modern translations so that readers today can also appreciate them. Through this kind of work, we can expect that new research on Korean classical novels will be greatly stimulated and that many readers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enjoy the Korean classics. Moreover, it also helps the numerous material on Korean classical novels to be built up in an archive, which provides the chance for the collected materials to be utilized in various fields. These materials have profound significance in that they preserve the culture shared by our community now for the next generation.

      • KCI등재

        명승 구성의 방식과 유형화의 길 :

        김풍기(Kim Pung gi) 한국언어문학회 2018 한국언어문학 Vol.104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A subject s gaze is inevitably inherent in a process of discovering and appreciating any scenic spot. Landscape is not just recognized by natural objects themselves, but by the efforts of the subject who interprets the arrangement of natural objects from a new and different perspective and endows meaning to them. When the subject s interpretation and efforts get some social consensus and create various meanings, appeal, and emotions to the audience, people, only then, acknowledge a spot as a scenic place. Therefore, the subject s point of view is essential to the formation of the landscape. The initial perception of Gyungpodae and its surrounding landscape can be found in the records of An Chuk, a scholar and poet of late Goryeo Dynasty. Before An Chuk, people would generally accept a place as a beautiful landscape only when it draws people s eyes in a unique and unusual shape. But An thought that any place could be meaningful enough to appreciate even though it was just simple and still. In a transition to Joseon Dynasty, the landscape formation around Gyeongpodae, which An suggests through his own interpretation, arouses the Confucian scholars appreciation and, that way, Gyeongpodae is definitely recognized as the scenic place among the intellectuals of Joseon Dynasty. The landscape that people can look out over from Gyeongpodae is repeatedly and considerably reproduced, mainly focused on the image of the open sea and the serene lake. However, these landscapes are difficult to differentiate from similar ones in other regions. It is the elements reflecting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that give the differentiation to such a landscape of Gyeongpodae. By tracing Sa-seon, that is, four hermits, An Chuk emphasizes, as a cultural element of landscape formation, the specific images of Taoist hermits in the Silla Dynasty, which are later passed down in the Yeongdong area of Gangwon province. In this way, Gyeongpodae gains locality. Also, it acquires Arcadian imagery like Xanadu by being tinted with some Taoist images. Another element that shows regional characteristics is an old episode of Hongjang. This anecdote, which owes to Taoist images of Gyeongpodae, shows various amusements of taste and gallant spirit that the intellectuals of those days enjoy. Gyeongpodae becomes highly celebrated for a certain scenic spot by pre-modern intellectuals who dream of a Taoist ideal on the basis of Confucianism. Yet, it results in standardized typification of this place. In poetry depicting Gyeongpodae, materials and ways of expression are repeated similarly and typically. This tendency makes it possible for those who have not visited Gyeongpodae to share its archetypal images. As the perception of the subject becomes fixed to the language, the typification of the landscape gets increasingly intensified.

      • KCI등재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