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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 전통연희에 나타난 문화적 감성과 문화콘텐츠적 요소 연구

        심상교 ( Sang Gyo Sim ) 한민족문화학회 2007 한민족문화연구 Vol.22 No.-

        동북아 3국-중국·한국·일본-의 문화적 감성의 공통점을 찾고 이를 문화콘텐츠화 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공통적인 주제소를 연구했다. 이를 위해 동북아 3국의 전통연희 가운데 전승과정이 분명하고 서사성이 강하며 현재에도 대중들이 선호하는 장르 몇 가지를 대상으로 공통된 문화적 감성의 측면을 주제와 관련지어 살폈고 문화콘텐츠화 가능성 측면은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관련지어 살폈다. 문화적 감성의 공통점을 찾는 일은 대상이 되는 작품들에 나타난 공통된 주제를 찾는 일과 밀접하기 때문에 공통된 주제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살폈고, 문화콘텐츠화 하는 방법모색은 공통된 문화감성이 어떤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살폈다. 세 나라의 전통연희에는 다양한 용어가 있지만 본고에서는 포괄적 의미의 전통적 공연형식이란 의미로 전통연희라는 용어로 사용했다. 고찰 대상 전통연희는 중국의 『서상기』, 일본의 『주신구라』, 한국의 『춘향가』였다. 이상의 세 부류는 공연발생 시점이나 공연형식 등은 다르나 현재까지도 대중들에게 선호되는 장르이며 서사성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중들에게 선호되며 서사성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은 중요한 시사점이다. 또, 전통연희라는 공통점은 세대에 걸친 문화적 감성이 집적되어 있고 그 가운데서 효율적 표현성을 가진 것들만으로 구성된 집약성도 나타내기 때문에 문화콘텐츠로의 활용에 효과적이 될 수 있다. 공통된 문화적 감성의 측면은 1. 가치관에 우선하는 인간의 성정, 2. 완성지향성, 3. 해원을 통한 감격유도로 나누어 살폈다. 문화콘텐츠화 가능성 측면에서는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중심으로 살폈다. 결과는 1. 우연성, 2. 선악대결의 대립구조, 3. 도식화된 결말 측면에서 고찰했다. 이상의 논의 결과들은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것을 문화콘텐츠로 재창조 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응용될 것이다. This thesis analysis 『西相記』, 『忠臣藏』, 『春香歌』in a cultural sensibility & melodramatic viewpoints. They contained abundant epic structure & are loved by mass. Why they are loved through long long time. It is core of this thesis. They are inherent in humanity, balance, impression. They raise marriage for emphasis on natural human instinct. They pursuit balance in society for their happiness. Balance is expressed through love & marriage. Impression is compensation of enduring sufferings. These genre contains varied characteristics which are created diverse works. For example, contingency/opposition structure/wiping grudge. These elements are contribute to these works acquired mass-popularity. These elements are melodramatic characteristics, too. These elements are utilized for contemporary art works.

      • KCI등재

        문화, 교양, 자본 그리고 자유 -초기 박인환의 이념적 모색과 시적 향방-

        박민규 한민족문화학회 2018 한민족문화연구 Vol.61 No.-

        This paper began with question about the research trends that have only found realism or postcolonialism in Park In-hwan’s early poetry. In the liberation period(1945-50), Park In-hwan’s poems shows the process of dynamic self-search that can not be converged into one. The dynamic self-search is characterized by culturalism, capital and freedom as poetic topos. From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Park In-hwan, who internalized culturalism unique to student soldier generation, shows his cultural capacity in bookstore ‘Mariseosa’ after liberation. Through interaction with the leftist literati who meets in the process, he produces post-colonial poems based on ‘anti imperialism, anti capitalism’. However this tendency does not last long, and his poems are deeply absorbed into his inner dominance through the crises of the left wing total arrest and Mariseosa. He makes a kind of self-settlement with expressing complicated inner feelings such as optimism and will, as well as sadness and remorse, loss and helplessness, fear and hesitation, and then he moves away from all progressive forces with the formation of Sinshiron coterie. As a result, the progressive attitude of ‘anti-empire, anti-capital’ disappears, but he continues to maintain the attitude of ‘anti- capital’ by culturalism. In fact, “the American Cinema Diagnosis” which has a form of cultural discourse can be seen as attempting to raise a critical issue about the ‘non-culture’ of American subordinated to capital. Since then, he searches for the modern values of ‘anti-feudalism’ and criticizes both socialism and capitalism while pursuing the ‘free spirit’. In particular, he dreams of the “primitive forest of poetry” that can escape from the urban civilization governed by “army of capital”. Although he maintains the view of culturalism which saw capitalism only as a secular materialism, the ‘primitive forest of poetry’ is the ideal of cultural freedom, which means aesthetic modernity to confront the capitalist modern. However the upcoming ‘conversion space’ give him the death of culturalism. With the advent of extreme anti-communism, in addition to not only ‘cultivate’ as his intellectual exploration which had been acrossed the left and the right, including socialism, liberalism and capitalism, but also ‘culture’ as a primitive forest of poetry and ‘freedom’ that can pursue it became impossible. 초기 박인환의 시세계를 탈식민적 현실주의로 규정해온 그간의 연구 경향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 논문은 출발하였다. 해방기 박인환의 시는 하나의 단일성으로 수렴될 수 없는 역동적인 자기 모색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모색은 문화, 교양, 자본, 자유를 시적 토포스로 삼아 전개된 특징이 있다. 일제 말기부터 학병 세대 특유의 문화적 교양주의를 내면화한 박인환은 해방 후 ‘마리서사’로 자신의 문화적 역량을 선보였으며, 그 과정에서 만난 좌익계 문인들과의 교감을 통해 ‘반제-반자본’의 탈식민적 시들을 창작한다. 하지만 이 같은 경향은 오래가지 못했으며, 곧 이은 좌익 총검거와 마리서사의 위기 속에서 그의 시는 내면의 주관으로 깊이 침잠한다. 낙관적 전망과 의지뿐 아니라 슬픔과 회한, 상실감과 무기력, 두려움과 망설임 등 복합적 감정을 자아낸 내성시편으로 일종의 자기 결산을 도모한 그는 신시론 동인의 결성과 함께 제반 진보 세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반제-반자본’의 진보주의도 사라지지만, 그는 문화적 교양의 시선을 유지하면서 ‘반자본’의 태도만큼은 지속적으로 견지하였다. 실제로 문화 담론의 외피를 두른 「아메리카 영화 시론」은 자본에 종속된 미국 문화의 ‘비교양’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이후 반봉건의 근대적 가치들을 모색한 그는 “自由 精神”을 추구하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자를 비판했고, 특히 “資本의 軍隊”가 지배한 도시 문명에서 탈주할 수 있는 “詩의原始林”을 꿈꾸었다. 비록 자본주의를 세속적 물질주의 정도로만 본 교양주의라는 한계가 있지만, ‘시의 원시림’은 문화적 자유의 이상향으로, 자본주의적 근대에 맞서기 위한 미적 근대성의 소산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곧 이은 전향 공간은 그가 추구해온 문화적 교양의 죽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극우 반공주의의 도래를 맞이하여 과거 반제와 반봉건 및 사회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등 좌우를 넘나들었던 그의 지적 편력으로서의 ‘교양’과 이를 통해 도달한 시의 원시림으로서의 ‘문화’와 그 문화를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자유’ 또한 큰 폭으로 제한되는 결과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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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의 문화콘텐츠화 양상 연구

        권갑하 한민족문화학회 2014 한민족문화연구 Vol.48 No.-

        This paper focuses on Arirang recreated as the cultural contents aspect of various genres and the way of evolving contents. Although the concept of cultural contents was used after 2000, the cultural contents of Arirang have already begun the film of Na Un-gyu <Arirang> in 1926. The cultural sensation inspired of the film <Arirang> and theme song has constantly been created through various genres as like pop song, poem, novel, dance, play and musical. This various genre transitions certainly show us the status of Arirang as OSMU(One Source Multi Use). They recreated inner characters and praised the message. They particularly cognized Arirang as cultural sign indicated Korea and Korean. Afterward, it had strong influence the cultural demands. The developmental aspect of Arirang cultural contents and the evolved way of content can provide the meanings 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to Arirnag global contents. Arirang have been turned according to basic concept and way with the change of times. Not following fixed form and meaning, Arirang cultural contents will be realized as creative and unique advance without ignoring born-identity of Arirang. 이 글은 아리랑이 다양한 장르의 문화콘텐츠로 재창조된 양상과 내용상의 전개 방향을 살펴본 것이다. 문화콘텐츠 개념은 2000년대 이후에야 상용화되었지만, 아리랑의 문화콘텐츠화는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서 이미 시작된 셈이다. 영화 <아리랑>과 그 주제가가 일으킨 문화적 센세이션은 이후 대중가요를 비롯해 시, 소설, 무용, 연극, 뮤지컬 등 실로 다양한 장르를 통해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아리랑의 다양한 장르전이는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원천자원으로서 아리랑의 위상을 확고히 보여준다. 아리랑의 문화콘텐츠 창작은 아리랑의 본래적 형질을 되살리거나 의미를 기리고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아리랑을 한국과 한민족을 가리키는 문화기호로 인식하고 그 의미를 기리고 선양하는 문화적 수요로 경도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리랑의 문화콘텐츠 개발 양상과 내용상의 전개 방향 연구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의 글로벌 콘텐츠화 추진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아리랑의 존재 기반과 방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것처럼 아리랑의 문화콘텐츠화 추진도 고정된 형식과 의미 지향을 답습하지 말고 아리랑의 본래적 형질을 경시하지 않으면서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변화를 실현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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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품 광고 모델로 본 스타문화사 연구

        정민아 ( Jeong Min-ah ) 한민족문화학회 2016 한민족문화연구 Vol.55 No.-

        광고는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동시에 삶을 만들어 나아가는 중요한 문화 행위이다. 기본적으로 광고는 물건을 파는 기능을 하지만 의미의 구조를 창조해 낸다. 다시 말해, 광고는 시대의 거울이며, 주체의 상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문화이데올 로기의 재생산 기제다. 그 중에서도 화장품 광고는 여성들의 미의식과 사고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여 다른 생활문화 분야를 리드하며 소비자욕구를 반영한다. 화장품 광고는 현대 여성의 기호와 사고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라 할 수 있으며, 광고의 중심에는 광고 모델이 있다. 화장품 광고 모델은 당대의 미의식을 포함하고 있으며, 당대의 미의식은 당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의 구체화이다. 본고는 광고 모델과 스타이미지를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결합하여, 스타 현상의 본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또 스타가 텍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또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며 기능하는지 주목하고자 하였다. 화장품 광고모델을 통해 살펴본 스타문화사 연구는 현 대중문화를 사회문화사적인관점과 관객성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본고는 서양식 화장품 광고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던 1960년대, 그리고 현대 화장품 광고 모델 패턴의 형성기인 1970년대, 화장품 광고 모델 패션의 성장기인 1980년대까지 각 시대별 대표적인 화장품 광고 모델을 통해 스타이미지와 당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이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 그 양상을 읽어 보았다. 화장품 전속 모델로서 장기적으로 활약한각 시기별 대표 스타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까지의 홍세미, 1970년대 중후반에서 1980년대 초의 정윤희, 1980년대 중후반의 황신혜를 사례로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전통적 여성의 순응적이미지에서 소녀의 관능적 이미지, 현대적이고 활동적인 이미지로의 이상적 여성상의 시대적 변천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상과 집단적 가치를 읽어낼 수 있는 상징 기호이다. 광고는 당대의 사회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안정적인 이미지 제시로 소비자에게 호소하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욕망을 과잉되게 투영하기도 한다. Commercial advertisement has become a part of our everyday lives and is an crucial cultural practice that at once reflects and shapes our lives. Its basic function is to boost sales of a product, but it also creates a certain structure of meanings. Advertisement is a mirror to a certain era and a reproduction mechanism that shapes symbolic images of a subject. Cosmetics advertisement, among others, is especially keen to women’s aesthetics and thoughts, and it promptly reflects consumers’ needs and in that sense leads the whole living culture. At the heart of cosmetics commercials lies an advertisement model. Aesthetic sense of a certain era is embodied in the era’s ideal image of a woman. Analyzing images of advertisement models in view of cultural history, I intend to reveal the nature of superstar phenomena and how a superstar, in relations with a text and in a sociocultural context, produces and distributes meanings. The cultural historical approach to advertisement models is a project to analyze contemporary mass culture in view of the industry and spectatorship. In this paper I try to analyze representative cosmetics advertisement’ models of 1960s when western style cosmetics commercials were regularly introduced, of 1970s when modern cosmetics advertisement’ models began to take a certain pattern, and of 1980s when cosmetics advertisement modelling experienced substantial growth, and try to relate those superstar images to ideal image of women in respective periods. Hong Semi from late 1960s to early 1079s, Jeong Yunhui from mid-to-late 1970s to early 1980s, and Hwang Sinhye in mid-to-late 1980s are chosen here because they worked as cosmetics advertisement models under long-term and exclusive contracts. The transition of an ideal image of a woman from a traditional submissive image to a girly and sensual image to a modern and active image represents constantly changing social aspects and collective values. The advertisements try to appeal to consumers with stable images that are acceptable by contemporary social values and ideologies, but it also tends to over-project desires that are unfulfilled in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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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주세령(酒稅令)의 실체와 문화적 함의

        이화선 ( Lee Hwa-seon ),구사회 ( Gu Sa-whae ) 한민족문화학회 2017 한민족문화연구 Vol.57 No.-

        우리가 일상에서 마시는 술에 세금이 부과된 때는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19세기까지만 해도 아무런 조세 부담 없이 자유롭게 술을 빚어 마셔왔다. 이는 한국의 가양주(家釀酒)문화라는 독특한 문화가 작용했던 탓이 커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 하에 공포된 주세법(1909)과 주세령(1916)은 오늘날의 주세제도 형성의 시발점이 되며, 이때부터 술에 세금이 매겨지게 된다. 주세령은 한국의 술과 문화를 짧은 기간 동안에 급격하게 변화시켜 놓으며, 오늘날 전통문화자원의 가치 상실을 가져온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논문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집적되어온 한 민족의 문화가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단시간 내에 사라지고 마는 경우로써 일제강점기 한국의 술과 술 문화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외부로부터의 일방적인 유입으로 인해 집단 구성원이 주체성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문화가 형성되는 경우에 어떠한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인지, 또 이들이 사회 구성원 간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아울러 어떠한 확장성을 가지고 이후 변화할 것인지를 문화사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연구하는 방법으로써 먼저 일제강점기에 발령했던 주세령과 주세령 공포의 배경을 짚어보고 그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또한 주세령의 핵심 조항으로 꼽히고 있는 제1조 ②항의 술의 명칭과 분류 기준, 제6조 제한석수(制限石數)에 관한 규정을 검토, 그 문화적 함의를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 술과 술 문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린 기점이 바로 주세령 공포 전· 후인 것으로 파악, 자료를 분석하는데 있어 조세(租稅) 등 산업적인 영역에까지 다소 확장시켰다. 무엇보다 새로운 제도와 법률체제가 민중 속으로 어떻게 파고들어 영향을 끼쳤던 것인가를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이를 주도했던 세력이 누구였는지, 이들을 뒷받침하고 주도했던 사상이 무엇이었는지 연결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이를 위해 당시 사상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오늘날까지도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는 이광수(李光洙, 1892 ~ 1950)의 `민족개조론`과 안재홍(安在鴻, 1891 ~ 1965)의 `민족문화건설론`을 비교했다. `민족개조론`은 오늘날 주류 산업에서도 큰 흐름을 형성하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한국의 현행 주류 산업과 문화에 봉착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민족개조론`의 골격이나 근본 사상을 완전히 부정해야할지도 모른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종합하면 일제강점 하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졌던 문화의 다양성과 특수성에 대한 외면이 오늘날 사회· 문화에 실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논증하고자 했다. 덧붙여 전통문화자원의 상실이 갖는 문화적 함의를 제시하는 데 있어 자연 현상을 규명하는 두 개의 큰 축즉, 보편성(Universality)과 다양성(Diversity)이라는 관점에서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이는 향후의 변화 가능성과 맥락을 짚어보고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This study examined the Korean liquor and alcohol culture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s a case where a country`s culture accumulat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disappeared in a short time in an unintended direction. In particular, this study attempted to understand the operation of mechanism when a new culture is formed by a unilateral influx from the outside where group members did not have subjectivity, to examine how they appeared between members of society and to study how they are changed with expandability in the context of cultural history. As a method of studying this, the study examined the liquor tax order and the background of the announcement of the liquor tax orde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ogether with its development features. In addition, the study analyzed the name and classification standard of Article 1 (2), which is considered as the core provision of the liquor tax order, and the provisions on Article 6 (Restricted Quantity) in order to figure out its cultural implications. In this process, Korea`s traditional liquor and alcohol culture collapsed very rapidly, and it was found that it was before and after the proclamation of the liquor tax order. Thus, this study expanded the data analysis to industrial area such as taxes. In conclusion, the study aimed to examine the actual impact of the underestimation of cultural diversity and peculiarity under the name of moder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upon today`s social and cultural reality. Furthermore, the study attempted to describe the two major axes of natural phenomena in terms of universality and diversity in presenting the cultural implications of the loss of traditional cultural resources. It was a task to look at the possibility and context of future changes and to suggest the right di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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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이념 ‘문화’를 둘러싼 상징투쟁

        장인수 ( Jang In-su ) 한민족문화학회 2021 한민족문화연구 Vol.74 No.-

        전시 이념 ‘문화’는 국방부 정훈국, 문교부 국민사상연구원 주변의 관학적 지식 엘리트에 의해 형성된다. 그것은 한국전쟁의 대의명분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호로 부상한다. 지식 엘리트에게 ‘문화’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외래문화에 응전해가면서 새롭게 창조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는 정훈 계통, 문총과 종군작가단의 문인에 의해 전파된다. 이 기획과 전파의 구도 안에는 이미 ‘지식의 위계’가 전제되어 있었고, ‘문화’라는 기호는 전시기 상징투쟁의 장을 연다. 문인들은 이념으로서 ‘문화’와 구체적 ‘생활’의 괴리를 느끼며 번민한다. 임긍재는 ‘생활’의 문제를 ‘모랄’의 차원으로 다룸으로써 이 괴리를 봉합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문화를 규범적인 것으로 성역화하는 길로 이어진다. 전시기 ‘문화’는 점점 초월적 기표가 된다. 적치하에서 부역 혐의를 받은 문인은 ‘문화’를 정치와 무관한 반공·자유주의적 기호로 전용한다. 그러나 이 전용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 행위였음은 물론이다. 전시기 많은 문인이 ‘문화’라는 기호로 상징투쟁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에 관여하고자 한다. 문화보호법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 그들은 ‘문화’를 일종의 ‘칭호’로서 획득하고자 경쟁한다. 또 여성의 풍기 문란과 부산의 퇴폐한 세태 등을 ‘문화’가 아닌 것으로 상대화함으로써 ‘규율하는 언어’로서 ‘문화’를 전유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은 칭호와 상대화의 상징투쟁을 통해 지배계급의 원리를 재생산하는 데 부지불식간에 가담하게 된다. The wartime ideology “culture” is formed by the government-run intellectual elite around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s AFIED and the Ministry of Education’s National Institute of Thought. It becomes an important sign in the process of finding the justification of the Korean War. For the intellectual elite, “culture” was not a matter of either capitalism or communism, but of responding to foreign cultures and creating new ones. The culture formed like this is spread by the AFIED, and the War Writers’ Group. Within this composition of planning and propagation, “the hierarchy of knowledge” was already premised, and the sign of “culture” opens the stage for symbolic struggles during the wartime period. Writers suffer from the difference between wartime ideology “culture” and specific “life”. Lim Geung-jae seeks to bridge this gap by treating the issue of life as a “moral” dimension. But as a result it leads to a path to sanctifying culture as normative. The wartime ‘culture’ becomes an increasingly transcendent significant. Writers accused of collaboration under the enemy rule use “culture” as anti-communist and liberal symbols unrelated to politics. But of course, the appropriation itself was extremely political. Many wartime writers want to engage in “politics” by participating in symbolic struggles under the sign of “culture.” Amid the chaos surrounding the Cultural Protection Law, they compete to acquire ‘culture’ as a kind of ‘title’. In addition, the writers aims to transfer “culture” as a “discipline language” by relativizing women’s promiscuity and Busan’s decadent world as not “culture.” However, they unconsciously participated in reproducing the principles of the ruling class through a symbolic struggle for title and relativ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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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1960년대 대중매체 보급과 미의식의 근대화 양상 -김수영 텍스트를 중심으로-

        김우필 ( U Pil Kim ) 한민족문화학회 2013 한민족문화연구 Vol.42 No.-

        4.19혁명으로 민주적 이념이 고취되면서 1960년대는 국민들의 대중문화 욕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시기이다. 제1공화국 시기까지 한국사회는 인쇄매체를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 문화가 대중문화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제3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라디오, TV 같은 방송매체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방송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화 단계로 한국사회의 문화 환경이 빠르게 변하게 된다. 제3공화국을 수립한 박정희의 군부정권은 정부의 경제발전정책을 선전,선동하기 위한 홍보수단으로 방송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1960년대 한국은 50% 가까운 높은 문맹률과 빈곤 때문에 쉽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라디오를 중심으로 방송매체가 확산되었다. 라디오 이후 TV가 보급된 것도 군부정권의 파시즘적 대중정치의 정당화를 위한 방편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렇게 정치적 의도로 활성화된 방송매체의 보급 탓에 1960년대는 소비대중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방송매체의 갑작스런 보급으로 소비대중문화가 나타났지만 대중문화는 콘텐트가 부족하여 여전히 인쇄매체문화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식인 엘리트들은 새롭게 등장한 방송매체 중심의 대중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문화적 갈등을 일으켰다.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를 중심으로 각각 대중문화의 헤게모니 갈등이 나타날 때 김수영은 새로운 매체 의식을 알레고리적으로 표출하기도 하였다. 김수영은 소비대중문화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등장한 키치를 저급한 스노비즘으로, 아방가르드를 고급한 스노비즘으로 보았다. 1960년대 문화, 정치, 경제 분야 모두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한 스노비즘은 피할 수 없는 미의식의 근대화 양상이었다. 식민지 조선 때부터 이미 등장했던 교양주의는 전후에 교양속물주의로 확장되었고 1960년대에는 대중들과 엘리트모두를 잠식하면서 스노비즘 사회가 전면적으로 등장했다. 김수영은 이러한 스노비즘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고급한 스노비즘으로서 아방가르드를 새로운 미의식으로 제기하였다. A democratic idea be inspired by april 19 revolution, it was time to appear that desire about popular culture of people in earnest. Until The First Republic, A Korea society governed by elite`s culture base on printed media. But After The Third Republic established, As a broadcast media the same thing Radio and TV has came into wide use, Cultual environment of Korea society became quickly to base of broadcast media. The Park regime who The Third Republic established has made use of broadcast media to advertising for propagate economic developement policy of government. As it has problem of fifty percent illiteracy rate highly and poverty in the 1960s, a broadcast media spread of radio mainly. After radio`s spreadable, it was happening that popular rule of fascism justify oneself TV has came into wide use too. Because the broadcast media was active for political intention, In the 1960s was up popular consumer culture period. Kim Su-young recognized kitsch when it appeared with popular consumer culture as vulgar snobbism, avant-garde as classy snobbism. The advent of snobbism was unavoidable modernization aspect of aesthetic. The culturalism which it appear already since colonial Joseon spread as cultural snobbism in postwar and snobbism society appeared completely as encroach all people and elite in the 1960s. Kim So-young recognized snobbism as unavoidable completely, raised avant-garde as classy snobbism as new aesthe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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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무궁화의 활용 방안 연구

        김영만 ( Young Mann Kim ) 한민족문화학회 2010 한민족문화연구 Vol.32 No.-

        본 연구는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무궁화를 활용하는 방안에 관한 연구이다. 국가브랜드가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어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이 치열하다. 이에 국가브랜드의 개념적 접근을 통해 국가브랜드 구축에서 국가의 문화정체성이 중요하고 문화적 요소가 핵심적 가치로 작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문화브랜드` 개념을 새로이 제시하고, 국가브랜드 평가지표에서 문화적 요소들을 추출하여 국가문화브랜드 영역으로 8개 기본영역을 설정하였다. 이 영역들은 문화를 통한 국가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데 있어서 우선 고려되어야 할 요소로서 국가 정체성을 원천으로 하는 국가 이미지와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접근성과 수용성, 그리고 문화콘텐츠와 같은 문화산업과 접목될 경우 높은 확산성을 가질 수 있어 활용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였다. 무궁화는 국내적으로 우리의 대표적 문화 원형질로서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세계인들의 호감적 정서와 더불어 전 세계에 걸쳐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세계화를 위한 기반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무궁화는 생명체인 꽃으로 탈이데올로기·탈정치적 성격,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보편성과 다양한 이야기 소재를 갖고 있어 문화콘텐츠로 개발이 용이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가브랜드로서 무궁화의 유용성을 기저로 국가문화브랜드 기반구축 추진체계 모형과 8개 기본영역별로 관련 사업을 탐구하여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문화적 요소화로 무궁화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ursue a plan for utilizing rose of Sharon to enhance our country`s national brand value. National brand is being recognized as the origin of national competitiveness. Thus, an effort in each country of the world to reinforce value of national brand is fierce. In implementing national brand through concept-based approach to national brand, the nation`s cultural identity is important. The cultural element could be confirmed to function as the core value. Accordingly, a concept of `National Cultural Brand` was newly suggested. The cultural elements were extracted from the evaluation index of national brand. Then, 8 basic spheres were suggested as the national cultural brand sphere. These spheres are those that will need to be preferentially considered in reinforcing value of national brand through culture. And, these spheres were judged to be high in the application-based value not only because of having the same context even as national image, which has the national identity as the origin, but also because of having accessibility, acceptance, and high pervasiveness when being integrated with cultural industry like cultural contents. The rose of Sharon is securing symbolism as our typical cultural protoplasm domestically, and is evenly distributed internationally over the whole world along with favorable emotion to the global people, thereby having been able to be confirmed to be formed foundation for globalization. Also, the rose of Sharon is a flower as living creature, thereby having de-ideological and de-political character, and having universality called beauty, and diverse story materials. So, the development into cultural content could be confirmed to be easy. And, it inquired into a model of a driving system, which implements the foundation of the national cultural brand, based on usefulness in the rose of Sharon as this national brand, and into a relevant project by 8 basic spheres. Thus, a plan for utilizing the rose of Sharon was suggested as cultural element for enhancing value of national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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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 등재로 비롯된 한중간 문화갈등 배경 연구 - 중국 조선족 문화의 이중정체성을 중심으로 -

        이정원,공정배,김용범 한민족문화학회 2012 한민족문화연구 Vol.40 No.-

        This paper is the study about the background of cultural conflict between Korea and China and trends and prospects of the expected future conflict between the two countries that were originated from listing folksong <Arirang> in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 of UNESCO. Cultural conflict between Korea and China raised by China's Northeast Project 'research projects in 2002 is surfaced as <Gangneung Dano festival> in korea is listed in the Unesco in 2005 and showed contending aspect as China listed <Dragon Boat Festival>, changing the name, in 2009. What is more, when the 「Tonguibogam 주제어 : 중앙아시아 고려말, 종결어미, 대화 등급, 중앙아시아 고려인 소설, ≪레닌기치≫, ≪고려일보≫of Korea is listed in 2009, China listed <Chinese Sewing Kit> in 2011. And cultural conflict between Korea and China is being run in contending aspect for preoccupancy of item while China listed <Nongak> of Korean race as <Farmer's Dance of ethnic Koreans living in China> in 2006.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Chinese Ministry of Culture selected <Arirang>, <Pansori>, <Gayageum art> as China's national cultural heritage material through the notification of State Council for the third national cultural heritage materials registration in 2011. China is claiming to advocate the policies that protect minorities' cultural heritage, but behind them the intention that lead the flow of the East Asian cultural identity through preoccupancy of listing heritage that is shared by South Korea, North Korea, and China in Unesco is laid. In its origin, there is ethnic Koreans with different cultural double identity in China as a Chinese citizen in national identity and as Koreans in ethnic identity. And, the conflict that takes place and is overlapped with korea in process ethnic Koreans represent the position of China in culture terrain of international society is the source of cultural conflict between Korea and China. The problem is the fact that the cultural conflict which encircles <Arirang> is just beginning. Korea and China share 17 ethnic Koreans' cultural heritage among three Northeastern provinces of the country's cultural heritage materials in China. The number of cultural heritages that are shared by two countries is increased to 60 when a level is lowered to district cultural heritage material. District cultural heritage material is upgraded to national cultural heritage material through evaluation in any time. When upgrading is regarded as a being listed, the ethnic Koreans' cultural heritages are the factors of cultural conflicts between Korea and China. 본고는 민요 <아리랑>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 등재로 비롯된 한중간 문화갈등 원인 및 배경과 향후 예상되는 양국 간 갈등 추이 예측에 관한 연구이다. 2002년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 사업으로 불거진 한중 문화갈등은 2005년 한국의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에 등재됨에 따라 양국 간 문화마찰이 표면화되고 뒤이어 2009년 중국은 <용선축제>로 이름을 바꿔 등재하는 경합 양상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2009년 한국의『동의보감』이 등재되자 2011년 중국은 <중국침구>를 등재했고, 2006년 중국이 한민족의 농악을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농무>라는 이름으로 등재하는 등 경쟁적 아이템 선점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중국 문화부는 제3차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 등록에 대한 국무원 통지를 통해 <아리랑>, <판소리>, <가야금예술>을 중국의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선정하였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자국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겠다는 정책을 표방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한국 중국 북한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의 유네스코 등재 선점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정체성에 대한 흐름을 주도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그 근원에 중국 국민으로서 국가정체성과, 한민족으로서 민족정체성이 상이한, 문화적 이중정체성을 지닌 조선족이 존재하며, 이들이 국제사회 문화지형 내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중첩되어 벌어지는 갈등이 한중 문화갈등의 근원이다. 문제는 <아리랑>을 둘러싼 한중 문화갈등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중국 동북3성의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 중 17개의 조선족 문화유산을 한국과 중국이 모두 공유하고 있다. 한 단계 아래의 성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내려가면 한중 양국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의 수는 60개로 늘어난다. 성급비물질문화유산은 언제라도 심사를 거쳐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승급할 수 있으며, 승급이 유네스코 목록 등재를 전제한다고 볼 때 조선족의 문화유산은 한중간 문화갈등의 잠재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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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식’ 문화예술 건설에 미친 소련 문화의 영향

        김지니 한민족문화학회 2008 한민족문화연구 Vol.27 No.-

        In the early period of government establish, North Korea is willing to fix socialism culture and art, not only music, art, movie, but also a publication which made from the Soviet Union is supplied with North Korea. and that theory become a point of culture and art of North Korea. but directly after the korea war, as culture and art of China have influence on North Korea art so influencing power is on the decrease. in spite of polical change, art and culture of the Soviet Union still have influence on North Korea art and culture at the hands of variety exchange of art. 본 논문은 북한 정권 초기 소련의 문화예술이 북한 문화예술에 미친 영향과 북한이 소련의 문화예술에서 벗어나 어떻게 '북한식' 문화예술을 정립하였는지에 대해 연구·분석하였다. 북한은 해방직후 소련의 문화예술에 의존하여 소련의 문예이론과 형식을 답습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와의 문화예술 교류를 확대해 나가면서 서서히 '북한식' 문화예술 이론과 형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식' 문화예술 이론과 형식은 장르별, 대상별, 규모별로 더욱 분화·발전되어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북한식' 문화예술이 자리 잡게 된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식' 문화예술 이론과 형식에 맞게 창작된 예술작품들을 대외 문화예술 교류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북한은 각종 문헌과 정기간행물을 통해 '북한식' 문화예술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적극적으로 선전하였다. 북한은 1971년 '<피바다>식 혁명가극'을 시작으로 종전과 구별되는 독특한 '북한식'의 문화예술 이론과 형식의 발전 모델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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