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시화된 세계적 냉전이 남한 사회에 수용되어 고착화되어갔던 역사적 과정을 냉전담론의 형성과 분화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해방과 함께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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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시화된 세계적 냉전이 남한 사회에 수용되어 고착화되어갔던 역사적 과정을 냉전담론의 형성과 분화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해방과 함께 당...
본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시화된 세계적 냉전이 남한 사회에 수용되어 고착화되어갔던 역사적 과정을 냉전담론의 형성과 분화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해방과 함께 당위적 가치로 부각된 ‘민족’과 ‘민족주의’를 둘러싼 좌우의 경쟁 및 갈등 양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좌우의 민족과 민주주의를 기축으로 한 경쟁과 대립의 논리가 전후 세계를 해석하고 규정하는 진영적 시각과 틀로 발전했던 과정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해방 이후 남한 사회가 좌우 정치세력의 시각과 해석을 매개로, 즉 그들을 번역자로 전후 세계를 인식하고 수용해갔던 과정을 검토했다. 또한 이렇게 수용된 냉전담론이 전후 진영론의 하나로서 분단정부수립 이후 재생산의 구조를 형성하면서 확산·분화되어간 양상을 검토했다. 이 확산과 분화는 지배 권력의 일방적 작용이 아닌, 냉전적 시각과 논리에 위와 아래가 모두 긴박되어갔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 담론’으로서 냉전담론은 지배의 유력한 자원이자 장치이기도 했지만, 저항의 논리 속에서 전유의 대상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찾아온 해방은 한반도를 지배했던 기존의 일제 식민통치권력과 그것을 뒷받침했던 사상 및 세계관의 붕괴와 전도를 가져왔다. 식민통치권력은 미·소의 분할점령으로, 파시즘을 비롯한 ‘인종·권역주의’에 기초한 서구 근대 비판의 사조는 민족(주의)·민주주의에 의해 대체되었다. 즉 해방은 남한의 현실적인 정치·권력적 조건뿐만 아니라 추구해야 할 이념과 가치 역시 변화시키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남한의 좌우 정치세력들은 민족자결과 민주주의가 당위적 가치로 부상한 전후 세계를 의식하면서, 동시에 식민과 탈식민의 경험과 담론자원을 토대로, 정국의 주도권 경쟁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좌우는 각자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정치노선에 입각해 전후 세계를 해석하고 규정했다.
즉 해방 직후 좌우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지향의 차이에 근거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재현상은 서로 달랐다. 좌우가 추구했던 근대민족국가 건설의 상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 실현방식의 차이 역시 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치노선의 차이는 전후 세계에 대한 이해방식과 시선의 차이를 동반했다. 해방 직후 無정형의 유동적 남한사회에서 좌우 정치세력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자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해석하고 재규정했다. 단순하게 국제적 사태와 정세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자파의 정치노선을 실현하고 정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했다. 즉 서로 다른 지향이 곧 세계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 틀을 산출했고, 세계에 대한 서로 다른 의미화 작업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해방 직후 남한 사회에는 미소에 대한 이중적 시선이 유지되는 가운데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개의 진영론이 공존하면서 경쟁하였다.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는 민족지상의 논리를 통해 자파의 정당성을 구축했고, 그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그것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전후 세계를 민족 단위의 경쟁과 협조의 체계로 이해했다. 민족 간의 협조와 경쟁에 대한 강조는 세계를 ‘세력균형’적 틀 속에서 바라보게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미소 간 국제무대에서의 긴장과 대립이 심화하고 그것이 다시 ‘냉전’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되었을 때, 우파는 그대로 ‘냉전’적 논리를 흡수하게 되었다.
반면,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은 그들이 추구했던 계급해방과 사회개혁의 지향을 담아 전쟁과 전후 세계를 설정했다. 좌익은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모순에 의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당연히 전후 파시즘 잔재의 일소와 독점자본가 세력의 반동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를 막기 위해서는 국제적 인민전선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곧 일국 단위의 민족적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국제적 계급연대에 기초한 국제 민주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로 실현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좌익의 정치노선과 지향은 곧 세계를 국제주의 계급노선의 시각으로 재규정하면서, ‘민주 대 반민주’의 진영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진영론은 다시 1947년 말 미소공위가 결렬되고 분단이 가시화되자 ‘제국주의적 반민주주의 진영 대 반제국주의적 민주주의 진영’론으로 귀결되었다. 이와 같이 탈식민 이후 얼마간 남한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재현은 ‘냉전’이라는 우파의 당파적 진영론으로 귀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복수의 세계표상과 의미경쟁이 소멸하는 과정이 분단의 과정이자, 남한의 미국 헤게모니 진영 내로의 편입 과정이었다.
정부 수립 초기 이승만 정부에 의해 생산된 냉전담론은 단순한 현실 세계의 반영이 아닌, ‘이데올로기적 담론’으로 기능하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냉전의 시각과 논리는 역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균질한 ‘보기의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냉전적 시각과 논리가 세계와 남한의 제반 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틀로 작동하는 양상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동시에 ‘미·소’와 ‘남·북’의 냉전적 진영대립의 가시화는 그 대립의 의미와 성격에 대한 사회적 확산 역시 이끌었다. ‘침략’ 대 ‘방어’라는 구도에 ‘독재-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라는 의미대립이 겹쳐진 진영논리가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남한의 체제이념으로 급부상했다.
보다 주목할 것은 이승만 정부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고창이 권력 자신도 그 이념과 논리에 의해 규제당하는 역설적 상황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체제를 보장받기 위해서, 또 지배 권력의 이념적 정당성을 구축할 목적으로 내세웠던 자유민주주의의 논리에, 역으로 지배 권력 스스로가 비판당하는 경우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즉 냉전과 분단의 사태가 초래한 담론이 다시 새로운 사태를 가져오는 연쇄작용 속에서 냉전적 시각과 논리의 순환구조가 발생했다. 냉전의 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권력이나, 그 권력의 지배 이념과 현실 사이의 균열을 포착하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집권세력을 비판했던 저항집단 역시, 냉전논리를 반복하고 강화시키는 행위자였다. 반면 정부수립 이후 급증했던 냉전담론과 그것이 촉발시킨 냉전적 풍경의 이면에는, 여전히 이에 비판적인 힘과 다양한 反냉전담론 역시 공존했다. 뿐만 아니라 식민시기 서구 근대 비판의 사조가 지속되면서 다양한 사상적 갈래가 경쟁·공존했다. 이후 反냉전의 정치적 세력관계와 사상적 조류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재편되었다.
한국전쟁은 출범 초기 취약한 남한체제의 실존적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 사태였다. 하지만 역으로 전쟁은 사회 전반에 대한 강제와 동원에 기초해 남한체제와 정권의 기반을 구축하는 주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특히 전쟁이 사상전의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이승만 정부는 남한을 ‘이데올로기적 상상의 공동체’로 새롭게 재편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냉전담론은 전시동원을 목적으로 한 애국담론과 결합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전시 애국담론은 국가권력의 사전검열제도를 비롯한 각종 통제 메커니즘에 의해 유력한 ‘이데올기적 국가장치’로 기능했던 대중매체에 의해 생산되었다. 당시 신문은 ‘애국’이라는 어휘를 매개로, ‘적/아’, ‘애국/비애국’의 의미를 확정짓고, 끊임없이 후방의 주민을 ‘자유/공산’의 이원화된 가상의 세계로 호출하였다. 더 나아가 애국담론은 감성정치를 통해 한층 강렬한 방식으로 ‘친밀과 적대’의 정서를 강화시키는 가운데 후방의 주민들을 규율화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남한 주민을 냉전이데올로기를 각인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새롭게 주조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이승만 정권은 사상전에 대응해 체제 및 지배 정당성과 전쟁의 목적을 사상적 차원에서 설명해야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전시 사상전 속에서 反서구 근대성의 담지자로 이해된 미국과, 그 헤게모니 내로 편입된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논리를 생산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이승만 정부는 국민사상지도원을 설립하고, 현실의 ‘세계-국가-개인’의 관계를 ‘義’의 세계사를 통해 재규정하고자 했다. 국민사상지도원 소속 지식인들은 서구 근대와 反서구 근대 그리고 냉전이 뒤엉킨 이념 지형 속에서, ‘義’의 세계사를 기축으로 한 새로운 시공간의 분할과 배치 속에서 ‘我-他’를 비정하고, ‘동시성의 비동시성’의 담론전략을 통해 냉전의 사상적 지반을 구축했다.
반면 한국전쟁은 이승만 정권의 체제 및 지배당성을 강화시키는 계기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시동원을 위해 이승만 정권이 끊임없이 주장했던 냉전이데올로기가 스스로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그 취약성과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지배 권력의 정당성 자체를 위협하기도 했다. 지배 질서의 공고화를 위해 외쳤던 냉전적 자유민주주의가 역으로 지배 권력을 비판하는 양날의 칼이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자기모순과 저항의 양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승만 정부의 애도-원호정치였다. 전시 애도정치는 원호정치의 실패가 낳은 실제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지배 권력 자신에게도 일정한 부담과 구속을 가하면서, 그 내부에 균열과 저항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죽은 자를 매개로 산 자들에게 투영된 지배의 시선이 역으로 산 자들의 시선에 의해 지배 권력을 향했다. 특히 애도정치가 구축한 가상의 세계와 원호정치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커질수록, 오히려 산 자들에게 각인된 지배의 시선이 지배 권력을 옥죄고 강제해갔다. 그리고 체제 내 비판 세력은 이러한 균열을 확인하고 새로운 애도와 원호의 서사를 구축하면서 지배 권력에 저항해갔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 내 비판 세력의 저항 역시 이승만 정권의 애도-원호정치와 마찬가지로 양가적인 것이었다. 지배 권력의 유력한 상징자원인 애도-원호정치의 논리를 찢고 그 작동을 정지시켰다는 점에서, 그 결과 지배 권력의 통치력을 위협했다는 점에서, 체제 내 비판세력의 ‘자유민주주의’론의 전유는 주요한 저항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배-저항의 메커니즘은 냉전 반공주의에 긴박되어, 오히려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그것을 더욱 확대 강화시켰다. 다시 말해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체제 내 비판 세력이 주장했던 ‘자유민주주의’론은 ‘반공’에 긴박된 냉전적 자유민주주의였고, 저항 역시 ‘반공’에 포섭된 저항이었다. 때문에 체제 내 비판세력은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주장하면서 ‘반공’에 기초한 이승만 정권의 지배정당성을 위협할 수 있었고 실제 1960년 ‘4·19’를 통해 붕괴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공’과 그것에 밀착된 ‘냉전적 자유민주주의’ 자체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결과 냉전의 시각과 논리는 이후에도 재생산되어 남한 사회에 체제화 되어갔다.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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