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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직후 인민의 문제성과 엘리트의 인민 순치 = The Problematics of Inmin (People) and Its Domestication to Elite Politics right after South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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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53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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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제 식민지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들은 인민을 민주적 민족 국가 건설의 주체로 사고하면 서, 각종 문화 작업을 통해 인민을 국가․민족 주권의 소유․행사자로 정체화하고, 그것의 자주적․주체적․주권적 주체성을 표상하였다. 이와 같이, 인민은 해방 직후의 남한 역사를 표현 하는 역사적 실체였다.
      하지만 인민은 자신의 경쟁적 호명․실체들과 혼동․혼효․혼용되고 있었던 문제적 기표 였다. 또한 인민은 역사적 또는 경험적 실재가 아니라, ‘정치성’이나 ‘의식성’에 의해 결정되는 ‘관념적 실체’이었다. 또한 인민의 주권적 주체 상(像)은 실제 현실에서 비주체적인 존재로 재 현되고 있던 인민상(相)과 충돌하고 있었다. 보다 심각하게는 인민의 주권적 주체화는 국가․ 정부를 객체․대상․수단화하면서 국가의 독립 성과 주체성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지배 엘리트의 지도성을 정면으로 부인 하면서 통치의 권위와 정통성(legitimacy)을 위협․부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 앞에서, 엘리트들은 인민 주권의 제도화, 또는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민을 자신의 의제에 순치 시킨다. 먼저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들은 인민 주권의 입법화 과정에서 그것을 입법 대상으로, 또 이후 법에 의해, 달리 표현하면 국가에 의해 보호․보장되는 피(被)보호자로 변질시킨다. 이와 함께, 인민의 주권이 법(학)과 정치(학)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정치권’과 ‘인민권’으로, 그리고 정치권이 다시 선거권으로 규정되면서, 최종 적으로 인민 주권은 정치적으로 선거권으로 제한․축소된다.
      그리고 당대 엘리트들은 대의 정치제도와 ‘인민 총의’라는 장치 등을 통해 인민을 일상의 정치 과정으로부터 배제․분리하고, 나아가 통치
      권을 가진 국가,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통치와 동원 대상으로 인민을 대상화한다. 또한 인민은 계몽운동을 통해 일상적으로 엘리트들의 계몽․ 교육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인민의 탈(脫)권 력화, 또는 인민 주권성의 ‘박탈’이 이루어진다.
      대신, 주권은 실제적 통치권을 가진 국가, 또는 정부에게 귀속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해방 직후 인민의 시대에 인민을 둘러싸고 진행된 당대 남한 역사와 사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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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식민지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들은 인민을 민주적 민족 국가 건설의 주체로 사고하면 서, 각종 문화 작업을 통해 인민을 국가․민족 주권의 소유․행사자로 정체화하고, 그것의 ...

      일제 식민지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들은 인민을 민주적 민족 국가 건설의 주체로 사고하면 서, 각종 문화 작업을 통해 인민을 국가․민족 주권의 소유․행사자로 정체화하고, 그것의 자주적․주체적․주권적 주체성을 표상하였다. 이와 같이, 인민은 해방 직후의 남한 역사를 표현 하는 역사적 실체였다.
      하지만 인민은 자신의 경쟁적 호명․실체들과 혼동․혼효․혼용되고 있었던 문제적 기표 였다. 또한 인민은 역사적 또는 경험적 실재가 아니라, ‘정치성’이나 ‘의식성’에 의해 결정되는 ‘관념적 실체’이었다. 또한 인민의 주권적 주체 상(像)은 실제 현실에서 비주체적인 존재로 재 현되고 있던 인민상(相)과 충돌하고 있었다. 보다 심각하게는 인민의 주권적 주체화는 국가․ 정부를 객체․대상․수단화하면서 국가의 독립 성과 주체성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지배 엘리트의 지도성을 정면으로 부인 하면서 통치의 권위와 정통성(legitimacy)을 위협․부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 앞에서, 엘리트들은 인민 주권의 제도화, 또는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민을 자신의 의제에 순치 시킨다. 먼저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들은 인민 주권의 입법화 과정에서 그것을 입법 대상으로, 또 이후 법에 의해, 달리 표현하면 국가에 의해 보호․보장되는 피(被)보호자로 변질시킨다. 이와 함께, 인민의 주권이 법(학)과 정치(학)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정치권’과 ‘인민권’으로, 그리고 정치권이 다시 선거권으로 규정되면서, 최종 적으로 인민 주권은 정치적으로 선거권으로 제한․축소된다.
      그리고 당대 엘리트들은 대의 정치제도와 ‘인민 총의’라는 장치 등을 통해 인민을 일상의 정치 과정으로부터 배제․분리하고, 나아가 통치
      권을 가진 국가,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통치와 동원 대상으로 인민을 대상화한다. 또한 인민은 계몽운동을 통해 일상적으로 엘리트들의 계몽․ 교육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인민의 탈(脫)권 력화, 또는 인민 주권성의 ‘박탈’이 이루어진다.
      대신, 주권은 실제적 통치권을 가진 국가, 또는 정부에게 귀속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해방 직후 인민의 시대에 인민을 둘러싸고 진행된 당대 남한 역사와 사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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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South Korean elites right after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ism, regarding inmin(people) as the subject of building the Korean democratic nation-state, identified it as a national sovereign while representing it a as a sovereign subject. This shows that inmin was a post-colonial historical entity in South Korea.
      Nevertheless, inmin was a problematic signifier with no clear meaning to the extent that it was confused with its rival appellations and entities such as the nation. Also, it was a product of ideation rather than a historical reality nor an empirical one. Moreover, inmin culturally constructed as a sovereign subject, and inmin existing in the real world contradicted each other. Most crucially, the national subjectivization of inmin could threaten the independent subjectivity of the state and its embodiment, the government while relegating them to the object of, or the means to, inmin constructed as a sovereign subject. At the same time, the subjectivization could de-legitimize the leading authority of contemporary ruling elites.
      This problematic situation led South Korean elites to domesticate people in various ways in the process of instituting the democracy of popular sovereignty.
      Also, the elites excluded and separated inmin not only from power politics but also from the politics of everyday life. It was this dual progress that testified to the post-colonial South Korean history which evolved around in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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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th Korean elites right after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ism, regarding inmin(people) as the subject of building the Korean democratic nation-state, identified it as a national sovereign while representing it a as a sovereign subject. T...

      South Korean elites right after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ism, regarding inmin(people) as the subject of building the Korean democratic nation-state, identified it as a national sovereign while representing it a as a sovereign subject. This shows that inmin was a post-colonial historical entity in South Korea.
      Nevertheless, inmin was a problematic signifier with no clear meaning to the extent that it was confused with its rival appellations and entities such as the nation. Also, it was a product of ideation rather than a historical reality nor an empirical one. Moreover, inmin culturally constructed as a sovereign subject, and inmin existing in the real world contradicted each other. Most crucially, the national subjectivization of inmin could threaten the independent subjectivity of the state and its embodiment, the government while relegating them to the object of, or the means to, inmin constructed as a sovereign subject. At the same time, the subjectivization could de-legitimize the leading authority of contemporary ruling elites.
      This problematic situation led South Korean elites to domesticate people in various ways in the process of instituting the democracy of popular sovereignty.
      Also, the elites excluded and separated inmin not only from power politics but also from the politics of everyday life. It was this dual progress that testified to the post-colonial South Korean history which evolved around in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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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서론
      • 2. 문제적 기표, 문제적 표상
      • 3. 인민의 이념성과 실재성
      • 4. 엘리트의 인민 순치
      • 5. 결론
      • 1. 서론
      • 2. 문제적 기표, 문제적 표상
      • 3. 인민의 이념성과 실재성
      • 4. 엘리트의 인민 순치
      •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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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유열, "현대 학생 우리말 사전" 현대사 1949

      2 유진오, "헌법기초회고록" 일조각 1948

      3 임종명, "해방 직후 최재희와 개인 주체성 담론" 호남사학회 (53) : 197-257, 2014

      4 임종명, "해방 직후 이범석의 민족지상・국가지상론" 호남사학회 (45) : 151-190, 2012

      5 임종명,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의 이성 담론, 규율 주체 생산과 헤게모니 구축" 한림과학원 (12) : 235-278, 2013

      6 임종명,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전 미국기행문의 미국 표상과 대한민족(大韓民族)의 구성" 역사학연구회 (67) : 53-102, 2008

      7 임종명, "해방 공간의 스파이 이야기와 정치적 함의" 호남사학회 (41) : 127-160, 2011

      8 임종명, "해방 공간과 인민, 그리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한국사연구회 (167) : 193-246, 2014

      9 김남식, "한국현대사자료총서 11" 돌베개 소수 1988

      10 박찬표,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1 유열, "현대 학생 우리말 사전" 현대사 1949

      2 유진오, "헌법기초회고록" 일조각 1948

      3 임종명, "해방 직후 최재희와 개인 주체성 담론" 호남사학회 (53) : 197-257, 2014

      4 임종명, "해방 직후 이범석의 민족지상・국가지상론" 호남사학회 (45) : 151-190, 2012

      5 임종명, "해방 직후 남한 엘리트의 이성 담론, 규율 주체 생산과 헤게모니 구축" 한림과학원 (12) : 235-278, 2013

      6 임종명,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전 미국기행문의 미국 표상과 대한민족(大韓民族)의 구성" 역사학연구회 (67) : 53-102, 2008

      7 임종명, "해방 공간의 스파이 이야기와 정치적 함의" 호남사학회 (41) : 127-160, 2011

      8 임종명, "해방 공간과 인민, 그리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한국사연구회 (167) : 193-246, 2014

      9 김남식, "한국현대사자료총서 11" 돌베개 소수 1988

      10 박찬표,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11 김상태, "평안도 친미 엘리트층의 성장과 역할" 한국기독교역사학회 51 : 2001

      12 김성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 형성과 민족 정체성" 2009

      13 정은, "정신 장애와 민주 사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30) : 52-90, 2014

      14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대한민국사" 국사편찬위원회 1968

      15 최봉윤, "민중주체중립화통일론" 전예원 1988

      16 최봉윤, "떠도는 영혼의 노래 : 민족통일의 꿈을 안고" 동광출판사 1986

      17 대한민국 보훈처, "대한민국독립유공자 공훈록 제13권"

      18 김성보, "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 개념의 분화" 한국사연구회 (144) : 69-95, 2009

      19 김삼룡, "黨路線을爲하야"

      20 금고학인(今古學人), "選擧의基本觀念②: 選擧基本條件"

      21 금고학인(今古學人), "選擧의基本觀念①: 選擧基本條件"

      22 금고학인(今古學人), "選擧의基本觀念(八) (四) 普通選擧制度"

      23 금고학인(今古學人), "選擧의 基本 觀念(六) (三) 人民과人民代表"

      24 금고학인(今古學人), "選擧의 基本 觀念(四) 二, 選擧의本質"

      25 금고학인(今古學人), "選擧의 基本 觀念(五) (三) 選擧의本質"

      26 혁진사, "語囊" (창간) : 1946

      27 이우적, "自己啓蒙은充分한가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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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박치우, "現實과 思想" 백양당 1946

      32 박치우, "現實과 思想" 백양당 1946

      33 박치우, "現實과 思 想" 백양당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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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이청원, "民主主義十二講" 문우인서관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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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이강국, "民主主義 朝鮮의 建設" 조선인민보사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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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이강국, "建國設計의 當面大綱: 軍政과人民共和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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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문세영, "中等朝鮮語辭典" 삼문사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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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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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3 1.23 1.1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7 2.154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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