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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한국언론정보학회 20년, 비판적 학술운동의 고민과 한계

          김서중(Suh-Jung Kim),김은규(Eun-Gyoo Kim) 한국언론정보학회 2008 한국언론정보학보 Vol.43 No.3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창립된지 20년이 지났다. 이 글은 비판적 학술운동이라는 창립정신으로 출발했던 학회의 20년을 되돌아보면서 그 정체성을 점검하고자 했다. 논문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1980년대 후반에 태동되었던 비판적 학술운동이 한국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둘째는 비판언론학 진영의 학술운동을 표방하며 출발했던 ‘한국사회언론연구회’의 활동을 되돌아본다. 구체적으로 학회의 창립배경과 창립정신에 기반한 학술연대 운동, 언론연대 운동, 현안 대응 연대 운동 등의 활동을 점검한다. 셋째는 한국언론정보학회로 전환한 이후 학회의 활동 사항에 대한 점검이다. 학회의 20년을 되돌아볼 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성과는 비판언론학의 학문적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회의 외연 역시 성장하였다. 하지만 학회의 초기 정신과 정체성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존재한다. 이에 본 글에서는 결론적으로 학회의 정체성 강화를 위해 사회적 현안에 대한 유기적 학술회의의 조직, 학보정체성 강화,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 분과활동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KACIS was established in 1988 for critical academic movement in communication area. For 20 years after establishment, KACIS has grown into major academic societ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reflection on the history of KACIS for 20 years. For this, this article review three areas on KACIS. First, It examine how critical academic movement that was initiated in middle of 1980s was changed in gear with Korean Society's shift. Second, It turn around the activity of 'Korean study group for society and communication', the predecessor of KACIS, which operate during 1988~1998. Third, it consider KACIS's activity after convert to association, during 1998~2008. When look back co 20 years of KACIS, first of all, the biggest fruit is to extend critical communication in academic area. However, several controversies exist about KACIS's identity. Conclusively, this article emphasize, for further development, organizing organic academic conference about social pending issue, strengthening journal's identity, fostering future academic generation, vitalizing research divisions.

        • KCI등재

          압축적 상업화

          이정훈(Junghoon Lee) 한국언론학회 2014 커뮤니케이션 이론 Vol.10 No.2

          본 연구는 한국의 언론이 대중적 상업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정파성과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1960년대 한국 언론의 상업화 과정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상업 언론은 한국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언론 형식이지만, 당파적 언론(partisan press)에 고유한 문제로 여겨지던 정파성과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의 문제가 한국의 상업 언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은 흔치 않다. 현대 미국의 상업 언론은 19세기 미국의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 그리고 계몽주의를 배경으로 출현한 페니 신문(penny press)이 기존의 당파지(party press), 무역지(mercantile press)와 한 세기에 걸친 치열한 경쟁 끝에 지배적인 언론 형식으로 살아남은 결과이다. 그러나 페니 신문의 출현은 19세기 미국의 정치적 변화(민주주의), 경제적 변화(시장경제 체제), 인식론적 변화(계몽주의)의 결과이며, 이후로도 기존의 지배적인 언론 형식을 혁명적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한 세기에 걸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배적인 언론 형식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반면에 한국 언론의 상업화는 박정희 정부가 정치적 근대화는 왜곡 또는 지체시키는 가운데 경제성장 중심의 압축적 근대화를 추진하던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언론의 상업화는 1960년대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로 급속하게 이루어진 도시화와 산업화를 물적 토대로 하여 이루어졌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박정희 정부의 언론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박정희 정부의 언론 정책은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부의 국정 운영 원리인 행정적 민주주의가 언론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언론 정책은 언론의 상업화를 위해 경제적 지원과 정책적 특혜를 허용하는 대신에 권력을 감시하고 정치담론을 활성화하는 언론의 정치화를 철저하게 억압하는 이중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1960년대 한국 언론의 상업화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적 지원과 정책적 특혜를 얻기 위해 언론의 정치화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언론사 사주들에 의해 전격적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따라서 1960년대 한국 언론의 상업화는 정치화가 왜곡된 채 경제적 상업화만으로 이루어진 ‘압축적 상업화’였다. 한국의 상업 언론이 정파성과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한국 언론의 상업화가 정치화를 왜곡시킨 압축적 상업화였기 때문이다.

        • KCI등재

          직업이데올로기로서의 한국 언론윤리의 형성과정

          남재일(Jae-Il Nam) 한국언론정보학회 2010 한국언론정보학보 Vol.50 No.2

          이 연구는 언론윤리를 기자집단의 직업이데올로기로 보고 한국 언론윤리가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에 나타나는 특수한 조건들을 언론윤리의 형성에 개입하는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한국 언론윤리의 성격을 해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한국 언론윤리의 정립을 위한 언론현장의 실천 전략과 언론윤리 논의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하고자 했다. 그래서 한국 기자들의 직업적 위치 변화 추이와 언론윤리 담론의 전개양상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한국의 언론윤리 담론은 윤리의 전제가 되는 직업적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압력에 대응하는 도구적이고 수사적인 방편으로 이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그 결과 한국 언론윤리의 성격은 언론윤리 강령의 수사적 성격, 구조화된 인식과 실천의 괴리, 책임과 윤리의 개념적 혼동 등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직업이데올로기로서 언론윤리의 정립을 위해서는 윤리에 접근하는 기자집단 내부의 방식이나 사회적 논의의 양상이 기자의 직업적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journalism ethics as job ideology by analyzing the specific conditions revealed in the historical process of the construction of Korean journalism ethics, focusing on the change of social relationships which intervene in the construction of journalism ethics. By this interpretation, this study proposes the desirable directions in journalism ethics discussion and practice strategies in the journalism field. Therefore this study analyzed the historical process and the development phase of discourse in journalism ethics in which the job position of Korean journalists have changed. In result, this study found that the discourse of Korean was used for the instrumental and rhetorical means to cope with the outside pressure in the lack of occupational self-control which becomes the premise of ethics. Because of this, the Korean journalism ethics characterize the rhetorical feature of ethical code, the structured separation of practice from cognition, the conceptual confusion of responsibility from ethics.

        • KCI등재

          우범(牛凡) 이해창(李海暢)의 언론학과 언론사 연구에 관한 고찰

          김영희(Young-Hee Kim) 한국언론학회 2009 韓國 言論學報 Vol.53 No.5

          이 글의 목적은 한국 언론학의 초창기 역사를 만들어간 언론학 1세대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우범 이해창의 언론학과 언론사 연구를 고찰하고, 한국 언론학 연구사에서 이해창의 연구사적 의미를 검토하는 데 있다. 연구결과 이해창의 연구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해창은 1947년 저널리즘 전문 연구 잡지 『신문평론』을 발행하여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높이고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둘째, 그는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신문학과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한국에서 언론학 교육의 초기 제도화에 기여했다. 셋째, 이해창은 자신의 학문적 배경인 독일 공시학(푸블리찌스틱학)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연구했다. 넷째, 이론과 함께 역사를 중시하는 일본의 신문학과 독일 공시학의 학문적 전통에 영향 받아 한국언론사를 연구하여 여러 주제에 대해 선구적인 업적을 내었다. 다섯째, 한국 언론학계 최초로 한국 시사만화의 역사를 개관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researches on mass communication and its history by Lee Hae-Chang(李海暢), one of the representative scholars of first generation in the field of Korean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Studies(KJCS), and to review the meaning of his studies in the research history of KJCS and his role as well. The review result for Lee’ studies with respect to research history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he published the Sinmunpyoungron(新聞評論), the journalism research magazine from 1947 to 1949, which helped raise the understanding of journalism and improve its popularization. Second, he took an initiative in establishing the department of journalism at Ewha Woman’s University in 1960, which helped improve an early institutionalization of KJCS education. Third, he was the first one who introduced and studied systematicaly Pulizistikwissenschaft of Germany in Korea. Fourth, he studied the pioneering themes of Korean mass communication history. Fifth, he studied the Korean cartoon history for the first time in KJCS cir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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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언론인의 직업 정체성

          이정훈(Jung-Hoon Lee),김균(Kyun Kim) 한국언론학회 2006 韓國 言論學報 Vol.50 No.6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제도이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형태로 운영된다. 언론 사주와 경영자는 상업적 이익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이런 경향성은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위기는 전적으로 일선 언론인의 위기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 언론이 처한 위기의 성격과 해결책의 실마리를 언론인의 직업 정체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언론은 1960년대 이후 정책적으로 급격하게 기업화하였다. 그러나 언론사에 대한 경제적 특혜와 언론(인)에 대한 탄압이라는 이중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한국 언론의 기업화는 일선 언론인들에게 정체성의 혼란과 직업적 위기로 작용했다. 이것은 70~80년대를 거치면서 반복ㆍ강화되었고, 1987년 언론 자유화에 따른 무한경쟁과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조에 이르렀다. 한국의 언론인들은 직업적 위기를 겪을 때마다 전문직업인주의나 노동조합 운동을 직업 이데올로기로 내세우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결국 한국 언론 기업화의 역사는 한국의 일선 언론인들에게는 샐러리맨화의 역사였다. The press in the capitalist society functions as a social institution providing public services. At the same time it is an enterprise striving for better economic returns. As time goes on the economic side of the press, at the expense of its public responsibilities, gets more attention from the owners and managers of newspapers. It is this general trend which constitutes a major source of journalistic crisis in Korea and in turn it signifies the very crisis of journalists. This paper tries to link the current crisis of Korean journalism to the crisis and confusion of professional identity among Korean journalists who have been in the middle of the historical upsurge of entrepreneurship in Korean newspaper industry. This exploration requires a thorough examination of the historical process of 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 among journalists in Korean press. Based on this exploration this paper tries to demonstrate that although the idea of professionalism has been a persisting slogan and a long-cherished wish among the Korean journalists it has never been realized in the historical formation of journalistic identity. Instead, the very essence of Korean journalists' professional identity could best be described in terms of their historical transformations as functionaries who are salaried by a private newspaper enterp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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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언론인 박권상의 언론학 연구에 대한 고찰

          김영희(Younghee Kim) 한국언론학회 2016 韓國 言論學報 Vol.60 No.2

          이 연구는 1960년대 언론인 박권상의 언론학 연구에 대해 고찰하고 한국 언론학 연구사에서의 의미를 검토했다. 무엇보다 박권상은 서구의 자유언론이론과 그 대안으로 출현한 사회책임이론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그의 매스커뮤니케이션이론 강좌도 당시로서는 가장 자세하고 체계적인 논의였고, 미디어의 근대화이론 연구는 그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고 한국 현실을 검토한 깊이 있는 논의였다. 또한 그의 1960년대 한국 언론현실 분석은 언론현실에 대한 분석방법과 수준을 높여준 연구이며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있다. 이와같이 한국 언론학 연구사의 초기 형성기였던 1960년대 박권상의 연구는 한국 언론계는 물론 한국 언론학계에 서구 커뮤니케이션이론의 이해수준을 높이고 그 한국적 적용 및 한국 언론현실 진단에 새로운 시각과 논의를 제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This study reviewed Park Kwon-Sang’s researches on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studies in the 1960s, and examined its meaning in the research history of Korean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studies. Above all he introduced in earnest the Western libertarian theory of the press and the social responsibility theory appeared as an its alternative to Korea. His mass communication theory course was most detailed and systematic at that time, and his study on modernization theory to the media was also a through discussion which considered Korean reality and pointed out its negative effect. His analysis of media situation in Korea of the 1960s also raised its level and standard. Moreover it was more persuasive in view of the fact that his analysis was based on hands-on experience as journalist. Thus Park Kwon-Sang’s researches in the 1960s, an early formative period of the research history of Korean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studies can be evaluated to lift the level of understanding mass communication theory of the West in the world of the press as well as in media studies in Korea, and to give a new perspective in examining the Korean media reality and applying them to Korea.

        • 초창기 한국 언론학의 제도화와 정체성 변화

          양승목(Seung-Mock Yang) 한국언론학회 2005 커뮤니케이션 이론 Vol.1 No.1

          본 논문의 목적은 초창기 한국 언론학의 제도화와 정체성 변화의 과정을 탐구하는 데 있다. 특히 1960~70년대에 이루어진 한국 언론학의 정체성 변화에 주목하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南玎 金圭煥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국 언론학의 제도화 과정은 ‘예비기(~1953)’, ‘초창기(1954~1974)’, ‘도약기(1975~1990)’, ‘전성기(1991~현재)’의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도화 초창기에 한국 언론학은 ‘전통적 신문학’에서 ‘사회과학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연구’로 학문적 정체성의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국의 윌버 슈람(Wilbur Schramm)의 영향을 크게 받은 김규환은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창설의 주역으로서 그리고 제2대 한국 신문학회 회장으로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였다. 김규환의 리더십에 힘입어 ‘사회과학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1970년대에 와서 ‘주류 언론학’으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학이 저널리즘 실무교육을 지양하고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심의 학문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and identity change of Korean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studies(KJCS) during its early twenty years(1954~1974). In particular, the paper focuses on the role of Kim Kyu Whan who was a key figure in the process of identity change of KJCS made during 1960s and 1970s. Leading the Graduate School of Mass Communication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Kim had played a critical role in transforming KJCS from "traditional journalism study" to "scientific communication research." Influenced by Wilbur Schramm, a founding father of American communication studies, Kim had tried to make KJCS a solid social science. Thanks to Kim's leadership, empirical and behavioral communication research became the mainstream of KJCS in 1970s. This change also resulted in a shift of journalism education in Korea: profession-oriented journalism education gradually gave way to theory-oriented communication education.

        • KCI등재

          해직 언론인에 대한 생애사적 접근 연구

          김세은(Sae Eun Kim) 한국언론학회 2012 韓國 言論學報 Vol.56 No.3

          이 연구는 해직 언론인의 생애사를 통해 한국 사회와 정치, 언론 간의 복잡다기한 국면과 상호관계에 대해 접근하려 한다. 즉, 해직 언론인의 생애사를 통해 보다 입체적이고 독창적인 언론사의 구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해직 언론인을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핵심 행위자로 설정하고 해직과 해직 이후 35년 동안의 삶에 대한 그들의 회고와 기억, 의견을 바탕으로 생애사를 구성함으로써 한국언론의 구조와 역사에 대해 보다 풍부한 이해와 해석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한국 언론의 역사에서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일련의 언론인 해직 사태에 대한 학문적,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자 하는 목적도 지니고 있다. 이를 위해 75년 해직 이후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랜 기간 동안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복직과 보상 등 명예회복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활발히 수행해 온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연구대상으로 하여, 기존의 출간된 자료뿐 아니라 재판에 제출된 개인기록물, 심층인터뷰 등을 통해 해직 언론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가능한 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 내용을 토대로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해직 언론인의 생애사를 추적, 구성함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해직 언론인으로 만들었는지, 해직 이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또 한국 사회와 언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의 질문에 답하면서 동아투위의 정체성을 벼려내고자 하였다. 이 연구는 해직 언론인의 삶의 궤적을 생애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거기에 투영된 한국 사회와 언론의 모습을 유추해 봄으로써 오늘날 한국언론이 처한 위기 상황에서 자유 언론, 독립 언론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To set up the basis for understanding and interpreting the structure and history of the Korean press, this study focuses on the lives of the dismissed journalists, composing a combined life history from various retrospection, memories, and opinions. Moreover, it also aims to call academic and social attention to those dismissals under the dictatorship which are greatly important cases in the process of democratisation of Korean society. Thus, asking these questions: What made them act differently from other colleague journalists who survived the press control; what made them dismissed among many other journalists; how have they lived after the dismissal; and how have their lives influenced Korean society and press, this study selects Dong-A Committee for Free Press for analysis, which has been having monthly meetings for almost 40 years since 1975, constantly working on ways for reinstatement, indem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In order to find answers to these questions, the study has gathered not only published materials on the lives of the dismissed journalists, but also personal memoirs presented for trial, in-depth interviews as an effort to pursue and construct the individual as well as public life history of the dismissed journalists in order to follow and sharpen the collective identity of the dismissed journalists. Arguing that the dismissals of journalists in the 70s and 80s are not merely past incidents but still significant events to understand the current condition of Korean press, this study is a new attempt to read the historical change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society and press through the life history of the dismissed journalists. This study is a homage to them.

        • KCI등재

          1950년대 미국무성의 미국 언론 전문가 파견 사업 연구

          차재영(Jae Young Cha) 한국언론정보학회 2018 한국언론정보학보 Vol.87 No.1

          본 연구는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무성이 교육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행했던 미국 언론 전문가 파견 사업의 내용과 성과, 그리고 그것이 한국 언론에 미친 영향 등을 분석하고자 했다. 미국무성은 이 사업을 통해 미국의 언론 제도나 문화를 전파함으로써 친미적인 언론인을 양성하는 동시에, 아직 정론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대중매체로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된 한국의 언론을 근대화(혹은 미국화)시키려고 했다. 미국무성은 1955년부터 1959년까지 격년으로 컬럼비아대학의 로스코 엘라드 교수, 남일리노이대학의 웨인 롤런드 교수, 그리고 노스웨스턴대학의 플로이드 아팬 교수 등 3명의 언론학 교수를 선발해 한국에 파견했다. 이 교수들은 각각 한국에 6주 동안 체류하면서 서울이나 지역의 언론사들을 방문해 경영, 편집, 제작 부문 등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다양한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방한 활동은 언론인 단체의 구성이나 언론인 재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구의 설립 등 제도적 차원에서는 한국 언론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객관적 보도 관행의 보급이나 윤리 의식과 전문성에 기초한 전문직주의의 전파 등 문화적 차원에서는 사실상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This study analyzed the U.S. specialist program of the Department of State in the 1950s to modernize or Americanize Korean journalists and their newspapers, most of which were thought to be old-fashioned political papers, by transferring the institution and culture of American journalism. Especially, this study focused on the U.S. Specialists’ activities and achievements, and their influences on Korean journalism. As a result of this study, it was found that in every second year from 1955 to 1959, the U.S. Department of State sent three journalism professors, Roscoe Ellard of the Columbia University, D. Wayne Rowland of the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and Floyd G. Arpan of the Northwestern University. All of these professors stayed six weeks in Korea, to have seminars and lectures for Korean journalists in Seoul and provincial areas, to visit as many newspaper companies and news agencies there as possible to review their management, news rooms, and printing processes, and to give some advices or suggestions to solve their problems. These professors’ activities seemed to make a few achievements and influences on Korean journalism, though not that many. It may be said that their efforts on the institutional level partially succeeded to persuade Korean journalists to build up some journalist organizations as well as school of journalism. Meanwhile their efforts on the cultural level mostly failed to transfer into Korean journalism the routines of objective reporting as well as the professionalism, based on the ethics and expertise of the journalists, prevalent in American jour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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