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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의 민족문학론과 언어론

        하정일(Ha Jeong-il) 한국근대문학회 2011 한국근대문학연구 Vol.12 No.1

        임화가 언어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은 1934년 무렵부터이다. 이 시기는 카프의 볼세비키화가 일제의 파시즘적 탄압에 맥없이 좌절되면서 프로문학운동이 존립의 위기에 처한 때였다. 이에 임화는 볼세비키화론을 자기비판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민족문학’을 조선문학의 당면과제로 제시했다. 임화의 민족문학론은 코민테른 4차대회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론과 ‘이중의 임무’론을 근거로 삼고 있다. 훗날 임화는 〈농촌과 문화〉에서 이를 이중과제로 명명한다. 임화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의 문학이념은 민족문학이지만, 조선의 경우에는 토착 부르주아가 민족문학을 건설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새로운 민족문학은 프로문학이 ‘주류적 담당자’가 되는 민족문학이다. 새로운 민족문학은 근대적 과제와 탈근대적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부여받은 민족문학이라고 임화는 주장했다. 언어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임화는 식민지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부르주아가 민족어의 정립에 실패했고 그 과제를 프로문학이 떠맡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프로문학은 언어 문제에 있어서도 ‘이중의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임화는 말한다. 요컨대 부르주아문학이 이루지 못한 ‘언어상의 근대적 개혁’을 해결하면서 프로문학 고유의 ‘새로운 언어적 세계’까지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새로운 언어적 세계란 민중어에 바탕한 문화어를 의미한다. 그러나 총동원체제와 3차 교육령은 상황을 전변시켰다. 일본어 상용이 제도적으로 강제되고 조선어가 정규과정에서 사라지면서 민족어의 일대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이에 임화는 새로운 언어적 세계의 개척을 유보하고 민족어의 수호에 전념하게 된다. 총동원체제에 맞서기 위해 임화가 선택한 방책은 탈정치를 통한 정치적 저항이었다. 특히 임화는 일문(日文)으로 쓴 〈언어를 의식한다〉에서 세개의 은유를 적절하게 활용해 민족어의 존재 가치를 설파한다. 다만 이 시기에도 임화는 어문 정리가 ‘유행하는 문화풍속으로서의 조선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면서 민족주의로의 경사를 막으려 했다. ‘새로운 언어적 세계’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This essay is a study on Limhwa's linguistic theory in late colonial period. His linguistic theory was based on the thesis of 'double burden' in 4th Comintern. This thesis was appeared not only in Limhwa's linguistic theory but also in his whole literary criticism. The thesis of 'double burden' meaned that proletarian literature should realize both accomplishing modernity and overcoming modernity. Double burden in language was that proletarian literature should realize both accomplishing national language and opening up new linguistic world. First of all proletarian literature should accomplish national language because bourgeois literature failed in this mission. Secondly proletarian literature should open up new linguistic world. This mission was a pecular project of proletarian literature. Limhwa thought that performance of double burden could build a new national literature, namely socialistic national literature. At the same time he believed that it was an effective resistance on colonialism.

      • KCI등재

        한일병합 100년, 한국문학의 식민성과 탈식민성 ; 탈식민과 근대극복

        하정일 ( Jeong Il Ha )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11 민족문학사연구 Vol.45 No.-

        식민주의를 청산하고 해체하려는 노력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의 극복이 여전히 한국사회의 공안으로 남아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을 근대성의 수준에서만 이해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성은 여러 부면에서 식민주의와 겹치기 때문에 근대주의로는 식민주의를 온전히 해체할 수가 없다. 근대극복이라는 맥락에서 탈식민의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다만 탈근대와 근대극복은 분별할 필요가 있다. 탈근대가 근대의 전면 부정을 꾀하는 기획이라면 근대극복은 근대의 지양에 가까운 기획이다. 요컨대 그것은 근대의 보존과 폐기라는 변증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탈근대 기획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담론으로만 시끄러울 뿐 근대세계체제에 별다른 균열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탈근대 기획은 우리의 구체적 삶을 장악하고 있는 근대성의 현실에 눈 감은 채 탈근대라는 유토피아에서 홀로 자족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근대극복의 기획은 온갖 시행착오 속에서도 근대성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지 않았다. 근대극복의 기획은 근대 내부로부터의 근대극복을 지향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근대의 해방적 잠재력을 극대화함으로써 근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탈근대 기획은 근대와 탈근대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 근대 이후를 이상화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근대와 탈근대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게 되면 일종의 선악 이분법이 개인하기 십상이다. 근대를 뛰어넘어 근대 이후로 도약하려는 조급증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러한 조급증은 근대의 해방적 잠재력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근대성은 좋든 싫든 우리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더구나 근대성의 존재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지만 근대성의 부재로 고통 받는 사람들 또한 그 못지않게 많다. 그래서 근대성의 존재와 부재를 둘러싼 정면대결 없이는 근대의 극복도 탈근대도 무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탈근대 기획이 근대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프로그램이 되기 어려운 것은 근대의 복수성을 읽지 못하는 평면적 사고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볼세비키화론, 네그리의 제국론, 최근의 문화연구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근대극복의 기획은 근대와 탈근대의 복잡한 길항관계에 주목해 근대를 넘어서는 경로를 찾으려 한다. 근대극복의 기획은 이중과제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중과제론은 코민테른 4차대회의 ``이중의 임무``론에서 단초가 제시되었고 한국에서는 임화와 백낙청에 의해 심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임화가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민족, 곧 민중 주체의 민족을 통해 자본주의 근대를 극복하고자 했다면, 백낙청은 민중을 주체로 한 분단체제의 극복을 통해 근대세계체제를 내파하려 한다. 임화와 백낙청이 공히 민족문학을 근대문학의 이념으로 제시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이들에게 민족문학이란 이중과제론의 문학적 표상을 의미한다. 이들은 탈식민을 매개 고리로 하여 근대성의 성취와 근대극복을 연결시킨다. 그것은 탈식민이 근대를 내파할 해방적 잠재력을 내장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가 국가를 통한 지배에서 시장을 통한 지배로 바뀐, 그리하여 여전히 불균등발전과 부등가교환과 국제노동분업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신식민 시대라는 점에서 탈식민을 이중과제론의 매개 중심으로 설정한 것은 적확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탈근대 기획이 박래품인 데 비해 근대극복의 기획은 내발적 고민의 산물이다. 한국적 근대의 특수성에 대한 진지한 사유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탈근대 기획의 실패가 분명해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근대극복의 기획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This essay is a brief summary and comparison of the post-modern project and overcoming-modern project. Commonly decolonization has been accepted on the level of modernity. That is why decolonization is not yet completed. Because modernity overlaps with colonialism in many aspects. So we must consider overcoming modernity in oder to complete decolonization. Post-modern project is based on the easy dichotomy of modernity and postmodernity. Therefore post-modern project denies modernity completely. I think that post-modern project has failed. Its failure is caused by the disability for modernity. Because modernity is widespread all over our lives. On the other hand overcoming-modern project promotes overcoming modernity inside modernity. It is similar to ``aufhebung``. So overcoming-modern project pays attention to the emancipatory potentiality of modernity. Overcoming-modern project can be condensed to the theory of ``double mission``. The theory of ``double mission`` was presented by Limhwa and systemized by Paik Nakchung. Korean post-modern project is deeply affected by eurocentric universalism. So that theory lacks reality and concrete vision. On the contrary overcoming-modern project is firmly based on the particularity of korean modernity. Therefore this project has strong reality and concrete vision.

      • KCI등재

        프로문학의 탈식민 기획과 근대극복론 : 볼세비키화 시기를 중심으로

        하정일(Ha Jeong-il) 한국근대문학회 2010 한국근대문학연구 Vol.11 No.2

        The criticism of KAPF's theory of Bolshevization is mostly summarised as populrism and leftist adventurism. In fact, it cannot be denied that there is such an aspect in KAPF's theory of Bolshevization. However, it contains complexities that is not easily simplified. KAPF's subjective and endogenous judgement co-exists with a cognition of the state of things. The core of the theory of Bolshevization was the problem of partisanship and internationalism. The reason why the problem of Partisanship was treated preferentially is that the problem was connected with the identity of proletarian literature. Before that time, proletarian literature had been defined by being distinguished from other literatures such as bourgeois literature, anarchist literature and nationalist literature. Thus, 'the proletarian avant-garde eye'(Lim Hwa) was the first self-definition of proletarian literature. The identity of proletarian literature was formed this self-definition. KAPF's Bolshevization was the movement advocating internationalism. The positive perception of internationalism is the original pecularity of the theory of Bolshevization. According to what An-Gwangchun said, the ultimate reason why th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should be seen in the formality of the international solidarity of anti-imperialism was that the 'Chosun Revolution' is 'a part of prolrtarian world revolution'. The important undertone of the establishment of the objective which links th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with the overcoming of the imperial world system is that the problem of overcoming modernity came into korean socilist' view in the Boshevization period. KAPF's Bolshevization also made the problem of overcoming modernity a main topic. An Mak expressed it as 'the ultimate proletarian victory'. Clearly, 'the ultimate proletarian victory' refers to socilist revolution. It is the most important outcome arising from the Bolshevization of proletarian literary movement that th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is newly defined as the project for overcoming modernity which is the abolition of the imperial world system beyond the modern project of the establishment of the independent state. 카프의 볼세비키화론에 대한 비판은 거개가 추수주의와 좌익 모험주의로 요약된다. 하지만 카프의 볼세비키화론은 그렇게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복잡성을 내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거기에는 카프 나름의 주체적이고 내발적인 판단과 정세인식이 병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볼세비키화론은 한마디로 프롤레타리아 주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카프의 볼세비키화는 1차 방향전환 때부터 시작되어 2차 방향전환기까지 이어진 연속적 과정이었는데, 프로문학의 독자성을 확보해 프롤레타리아 주체성을 정립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특히 그것은 근대 극복이라는 볼세비키화 테제의 기본 방향과 탈식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결합시키기 위한 이론적?실천적 노력이었다. 요컨대 근대 극복이라는 방향성을 근간으로 하면서 거기에 민족해방이라는 당면 목표를 결합시키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방향전환의 전(全)과정에서 신간회 문제가 주요 사안이 되었던 것도 그래서이다. 볼세비키화론의 핵심 명제는 당파성과 국제주의였다. 당파성은 프롤레타리아 주체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원칙의 표현이었다. 프로문학의 독자성은 그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전까지 프로문학은 다른 문학 유파와의 차이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타자에 의한 규정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프로문학이 독자적 주체로 자립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당파성에 대한 강조는 자기규정을 통해 스스로를 독자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기규정의 요체는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눈’이었다.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눈’은 프로문학을 프로문학답게 해주는, 프로문학‘만’의 독자적 원리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국제주의는 근대 극복이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민족해방운동이 독립국가의 건설에서 그치지 않고 제국주의적 세계체제의 극복으로까지 이어지려면 국제적 연대는 필수 요건이었다. 국제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이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같은 기층 민중운동에 초점을 맞춘 것도 그래서였다. 근대 극복을 사회주의운동 혹은 프로문학운동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한것은 볼세비키화론의 가장 중요한 의의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사회주의운동이 근대성의 성취-독립국가의 쟁취-에 긴박되어 있었다. 그것은 민족주의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특수조선’론이나 ‘백의의 무산자’론은 그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세비키화론은 근대 극복을 하나의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제시한 최초의 담론이라 할 수 있다. 근대 극복을 탈식민과 결합시키려 한 것도 한국의 볼세비키화론이 남긴 중요한 이론적 유산이다. 신간회 해소에서 드러나듯 그것은 단순히 코민테른 노선의 추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적 정세판단에 근거하고 있었다. 근대 극복과 탈식민의 결합은 반(反)제국주의론으로 나타났다. 반제국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을 반일의 차원에서 ‘전지구적 계급투쟁’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매개고리였다. 그러나 볼세비키화론은 노농소비에트의 수립이라는 목표설정에서 잘나타나듯 좌익 모험주의적 조급성에 빠져 있었다. 거기에는 표면적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변혁론이라는 공식 노선을 지키면서,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변혁과 사회주의혁명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려는 조급성이 반영되어 있었다. 따라서 볼세비키화론은 일종의 ‘변형된 프롤레타리아혁명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간회 해소라는 선택 또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물론 신간회 해소는 신간회의 개량화가 대세가 되면서 이루어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소 이후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해소라는 선택은 조급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해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해소 이후의 프로그램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고, 그것은 볼세비키화론의 좌익 모험주의적 조급증이 낳은 결과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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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일본어에 있어서 실례와 무례의 의미확장 -개념적 중심성과 기능적 중심성-

        하정일 ( Jeong Il Ha ) 한국일어일문학회 2015 日語日文學硏究 Vol.93 No.1

        본 논문은 실례와 무례의 개념적 중심성 및 기능적 중심성의 의미확장을 분 석하고 두 가지 용법의 의미확장이 상이점을 유발하는 원인에 대해서 고찰하였 다. 실례와 무례의 기본적인 의미는 예의를 벗어나는 것, 이른바 비례 또는 결례 라는 개념적 중심성을 지닌다. 따라서 두 가지의 용법은 공통으로 비례 또는 결례라는 개념적 중심성으로부터 “사회적 규범에 관한 부정적 평가”, “체면침해 행위에 관한 부정적 평가” 라는 “부정적 평가” 용법의 기능적 중심성의 의미확 장이 나타난다. 그러나 실례 용법은 “인사”, “주의환기”, “말걸기”, “서론제기” 라는 기능적 중심성의 “의례” 용법의 의미확장이 나타나지만, 무례 용법에서는 이러한 용법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실례 용법은 사과의 대상에 따라서, 화자 의 청자에 대한 “예의에 관한 사과”, “과실에 관한 사과”, “공손전략에 관한 사 과” 라는 기능적 중심성의 “사과” 용법의 의미확장이 나타난다. 이른바 비례 또는 결례에 어긋나지 않는 “의례” 용법의 의미확장이 예의를 벗어나는 행동이 아닌 단순한 “과실에 관한 사과”, “공손전략에 관한 사과” 의 의미확장을 가능하 게 한다. 한편, 무례는 “의례” 용법의 의미확장을 지니지 않으므로 “과실에 관한 사과”, “공손전략에 관한 사과” 의 의미확장이 나타나지 않고, 단지 “예의에 관 한 사과” 만의 의미확장이 나타난다. 이러한 기능적 중심성의 의미확장에서의 상이점은, 두 가지 용법에서의 시간적인 축의 인식에 기인한다. This paper analyzes the extension of the meanings of shitsurei and burei from conceptual centrality to functional centrality, thereby inquiring into the cause of the difference in expansion between their respective meanings. The two words shitsurei and burei basically mean to lack good manners, thus possessing the conceptual centrality of bad or improper manners. The usage of the two words then expanded from the conceptual centrality of bad or improper manners to the functional centrality of “negative evaluation,” as in “negative evaluation in terms of social norms” or “negative evaluation due to face threatening acts.” However, the meaning of shitsureiexpanded in the direction of the usage of “rituals” with the functional centrality of “farewells,” “attracting attention,” “calling,” and “exordium,” while on the other hand, this did not occur with the usage of burei. Further, the usage of shitsurei is, depending on the subject of apology, expanded to that of “apology” with the functional centrality of “apology in rituals,” “apology for mistakes,” and “apology for volition” extended by the speaker to the listener. That is to say, the expansion of the meaning of shitsurei to the usage of “rituals,” rather than focusing on making bad or improper manners, allows for the expansion to merely an “apology for mistakes,” not for behaviors lacking good manners. On the other hand, since the meaning of burei did not expand to the usage of “rituals,” it did not expand to “apology for mistakes” or “apology for volition,” but only to the usage of “apology in rituals.” Thus, the difference in the expansion of meaning to functional centrality between the two usages is caused by their perceptions of the temporal 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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