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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어려움

        정세근 대동철학회 2010 大同哲學 Vol.51 No.-

        이글은 평화라는 주제를 아래 다루어진 여러 철학과 그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를 정리하고 비판했다. 군국주의에 찬동한 니시다 키타로 철학의 전체주의적인 성격에 대해 의심했고, 히틀러에 동조한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속에 감춰진 무관용적 존재론에 대해 반성했다. 아울러 유태인 아렌트가 독일인 하이데거를 어떤 의미에서 받아들였고 그렇지 않았는가를 물었다. 아렌트의 말처럼 악은 무척이나 평범(banal)하며, 생각 없는 삶은 정치적 악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불교는 힌두교와 계급과 평등의 문제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이를테면 ‘무기업’(無記業)은 일용의 직업이기 때문에 업을 쌓지 않는다. 그러나 힌두교는 그런 개념이 없다. 따라서 계급은 유전되고 죄도 누적된다. 불교는 평등의 종교이지만 힌두교는 불평등의 종교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들어오면서 그것은 바가바드기타와 너무 비슷해지고 부처조차 많은 신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불교는 자멸한다. 불평등 속에서 가장된 평화가 아니라, 평등 속에서의 참 평화가 중요하다. 칸트는 사변적인 비판서만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도 깊었다. 그는 아시아에 대한 서구열강의 침탈은 부당하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조처는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칸트는 이성의 한계를 밝히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영구평화를 꿈꿨다. 국제연맹은 아무리 공상적이라도 숙고되어야 했으며, 보편적 세계사를 이룩하는 것이 인류의 과제였다. 그러나 칸트도 자유를 남용할 ‘악한 지도자’의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갈퉁은 평화학의 창시자로 소극적인 평화와 적극적인 평화를 구별한다. 앞의 것은 무력 아래의 평화이며 전쟁을 감춘 평화이다. 뒤의 것은 갈등조차 비폭력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얻어지는 평화이다. 그런데 왈저는 ‘정의로운 전쟁’이란 개념을 제시하면서 정의롭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만 옹호될 수 있는 전쟁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갈퉁은 평화학자이고 갈퉁은 전쟁학자이다. 갈퉁의 구별대로라면, 왈저는 소극적 평화론자일 뿐이다. 아이히만의 재판의 의미는 야스퍼스와 아렌트가 동의했듯이, 미래를 위해 좋은 예를 남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은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고 감정적인 부분이 많았다. 불교는 평화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느 종교도 마찬가지로 평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반드시 불교를 말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칸트는 평화를 위해 개개인의 도덕적 성숙을 강조했다. 그러나 주체적인 삶이나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삶은 아직도 몽매한 인류의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평화보다는 학살을 말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철학의 의무 가운데 하나는 형이상학 속에 숨어있는 폭력의 구조를 밝혀내는 일이다. This paper discussed on many philosopher’s views of peace. I doubted totalitarian character of Nishida Kitaro who aligned himself with militarism, and reflexed Heidegger’s metaphysic which accepted Hitler's suggestion, and wondered how Jewish Arendt assented to German Heidegger. Arendt found out ‘The banality of Evil’, and thought that living without thinking was the origin of political evil. Buddhist egalitarianism is contradictory to Hindu caste system. Skillful action did not make Karma in Buddhism, but hereditary classes cannot be overcame by one's exertion in Hinduism. In later years, Mahayana Buddhism lost its identity and became such a part of Hinduism as Bhagavadgītā. Kant concerned about current politics as much as his speculative critics. He judged Western imperialism vicious, and vindicated Chinese and Japanese actions on it. Kant was busy not only to clear the limit of reason but also to dream of eternal peace in the real world. Foedus Amphictyonum like contemporary U.N. should be considered for the world peace. Galtung invented a peace study, and divided the conception of peace into the negative and the positive. Negative peace is a peaceful status under the power. Walzer maintains a concept of ‘Just War’ concept although it needs lots of conditions. Walzer’s Just War might be Galtung’s negative peace. Eichman’s court, a war criminal trial, should be an ideal example of ‘the crime against humanity’ in future ages. Buddhist ethics might be expected not as general religions do, but as a concrete doctrine endeavoring to achieve the world peace in detail. Kant emphasized individual moral maturity, but human responsible subjectivity is not accomplished yet. We had to talk about massacre rather than peace. One of jobs for philosophers is a discovery for the structure of violence behind meta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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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맹의 정신론

        정세근 대동철학회 2015 大同哲學 Vol.70 No.-

        이글은 공맹의 정과 신의 용법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노자』와 『장자』에서는 점진적으로 정과 신에 대한 강 조가 도드라지며, 마침내 『회남자』에 이르러 정신의 탄생이 정식화된다. 이 과정 속에서 신은 정에 대한 우위를, 정신은 형해에 대한 우위를 갖게 된다. ‘귀신’에서조차 신은 귀에 앞선다. 이런 경향은 정신의 독립적인 영역을 확 보하려는 도가의 철학적 자세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런데 절대적 자아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가의 경우는 이와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난다. 유가에게는 객관세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사회나 국가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개인의 정신보다는 문화적 전통 속에서 배태된 예(禮)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인간에게 예는 사회의 질서와 인간의 규범이다. 『논어』에서 ‘신’은 ‘귀신’의 신으로 7차례 등장한다. 그렇지만 공자는 귀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말할 수 없다면 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귀신보다는 이 세계의 인문화가 공자에게는 중요했다. 『맹자』에서 ‘신’은 단 한 차례 ‘온갖 신’(百神)과 같이 귀신이라는 뜻을 갖지만 그것조차 민의를 담는데 치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백신과 백성(百姓)은 가치적으로 동일선상에 놓인다. 신은 저절로 되는 교화의 신비스러움을 가리 키기도 하며, 인격의 최고경지를 표현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공자와 맹자에게 중요한 것은 정과 신이 아니라 예였다. 나아가 귀신을 뛰어넘는 하늘(天)이야말로 그들이 섬기고 자 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의 영역을 극대화시키는 정신의 역할보다 백성을 이롭게 하는 현실주의가 우선되었 다. This paper aims at arranging Jing(pure matter) and Shen(pure soul) in the philosophy of Confucius and Mencius. Jing and Shen had been emphasized gradually in Laozi and Zhuangzi. Finally, Jingshen(spirituality) which combined Jing and Shen has been born formally in Huainanzi. In this process, Shen is superior to Jing; Jingshen is superior to body(Xinghai: shape and skeleton). Even between Gui and Shen(Guishen: ghost), Shen is proceed to Gui. This sort of tendency is related with Taoist attitude which is willing to ensure an independence of spirituality. However, Confucian who cannot accept an existence of absolute self has the opposite opinion. For them, the most important thing is not only an objective world, but also a role of society or state. Li(rite) which was conceived in the cultural tradition is more meaningful than an individual spirituality. Li is an order of society and a norm of human beings. In the Analects of Confucius, Shen appears 7 times as Guishen(ghost) though Confucius said that he could not know and tell about ghost. Confucius wanted to keep his distance against ghost. For him, humanization of this world is more significant than ghost. In Mencius, Shen appears just 1 time as Guishen. But it means whole ghosts(one hundred ghosts) which represents the will of whole people(one hundred people). Shen also means a mystery of education and the highest stage of character. The most momentous thing is Li rather than Jing and Shen for Confucius and Mencius. Futhermore, They hope to worship Tien(heaven) overcoming Guishen. Their Realistic point of view to benefit people have precedence over spirituality which maximizes the realm of individ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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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장자의 정신론

        정세근 한국동서철학회 2012 동서철학연구 Vol.64 No.-

        이 글은 장자의 ‘정’(精)과 ‘신’(神) 그리고 ‘정신’(精神)을 용례별로 정리했다. 『장자』에서도 정과 신이 연용되는 횟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정은 32차례, 신은 105차례, 정신은 8차례 나온다. 장자의 정은 ‘천지의 정’(天地之精), ‘정조의 정’(精粗之精), ‘정성의 정’(精誠之精), ‘형정의 정’(形精之精)으로 나뉜다. 천지의 정은 산천의 정, 육기(六氣)의 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의 원질(arche)과 통한다. 모든 생명과 자연의 기원을 가리킨다. 황제나 요순이 인간의 본질(性/性情之情)이나 사물의 원질(物之質)을 망쳐 놓았기 때문에 심양(心養)해서 제 뿌리로 되돌아가자(各復其根)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산천정기’와 통한다. 정조의 정은 대소와 관련된다. 이때 정은 매우 작음(小之微)이다. 사물에는 고움과 거침이 있기 마련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거침이고, 뜻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고움이다. 가장 곱다고 해도 그것은 형태를 갖는 것으로 정은 물질성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때 정은 정미(精微)와 통한다. 정성의 정은 오늘날 정성의 뜻과 비슷하다. ‘참’(眞)을 내세우면서 진정한 효성과 충절을 강조하여, 유가의 형식적인 덕목을 나름대로 실제화한다. 참을 얻어라. 술을 먹으면 늘 기쁘고, 상을 당하면 정말 슬프다. 형정의 정은 사람의 형체와 대비되는 정기를 말한다. 형태는 정기로부터 생겨났다. 번거로운 일을 버리면 형체가 힘들지 않고, 어지러운 삶을 버리면 정기가 망가지지 않는다. 형체가 온전하고 정기가 제자리를 찾으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 정력이 몸뚱이를 지탱해준다. 노자의 용례와 비슷하다. 장자의 신은 ‘신령의 신’(神靈之神), ‘형신의 신’(形神之神), ‘귀신의 신’(鬼神之神), ‘신기(神奇)와 신기(神氣)’, ‘신명(神明)’으로 나뉜다. 신령의 신은 대체로 형용사적 용법으로 사람 앞에 붙이거나 술어로 쓰인다. ‘신령스런 거북이’이나 ‘지인(至人)은 신령하다’와 같은 용례가 대표적이다. 형신의 신은 사람의 신체와 대립되는 정신을 말한다. 우리말에서 ‘몸과 마음’이라고 할 때처럼 마음으로 번역될 수 있다. 몸은 연약하지만 마음은 잘 모으고 있다는 식이다. 마음은 몸의 한부분인 눈과 대비되어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몸을 기르는 것보다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앞선다. 게다가 이 마음은 형체를 뛰어넘어 우주와 자연의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귀신의 신은 오늘날의 귀신을 가리킨다. 귀와 신이 자주 떨어져 사용되지만 신은 귀의 조종자이다. 여전히 귀신은 놀람의 대상이다. 신기(神奇)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으로 냄새나는 것(臭腐)과 상반된다. 그러나 냄새나는 것이 신기가 되고, 신기가 냄새나는 것이 된다. 모두 한 기(一氣)이다. 신기(神氣)는 사람의 신묘한 기운을 가리킨다. 신명은 지극히 신령하고 지극히 순정한 것으로 정신성과 물질성의 최고 형태이다. 오늘날의 ‘천지신명’과 상통한다. 신도 부정적인 용법이 적지 않다. 신기(神氣)가 지나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신이 왕성하다’(神王)는 것도 부적절한 것이고, ‘신성’(神聖)도 버려야 할 것으로 묘사된다. 장자에서 마침내 정과 신이 만나면서 ‘정신이 도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이 등장한다. 정과 신은 그 순수성 때문에 결합하면서 나의 정신만이 아니라 천지의 정신에로 확산되고, 나아가 신명의 지위를 얻는다. 신으로 연결되는 정신과 신명이다. 정신이 탄생하면서 그것의 자유의 의미가 부각된다. 這篇文章按照用例整理出來了庄子的「精」,「神」,以及「精神」. 在庄子中連用精與神的場合不多. 精一字出現三十二次,神一字出現一白五次,而精神此辭부出現了八次而已. 庄子的精分爲「天地之精」,「精粗之精」,「精誠之精」,「形精之精」四種. 「天地之精」可謂是山川之精,六氣之精,相當於古代希臘的原質(arche),指的是所有生命和自然的起源. 三皇五帝삭墮「性情之情」和「物之質」,因此應該以新養各復其根. 此與所謂的「山川精氣」說得通. 「精粗之情」連關於大小, 此時,精爲「小之微」. 事物各有精粗,可以言論者是物之粗,而可以意致者是物之精. 最「精微」的也必須有形,精不能脫離物質性. 「精誠之精」類似於世人所謂的「精誠」. 庄子標榜「眞」,不但强調眞正的慈孝和忠貞,倂且將儒家的形式德目實際化了. 得眞者,以樂飮酒,以哀處喪. 「形精之精」爲對比於形體的精氣,形體來自精氣,是所謂的「形本生於精」. 庄子曰:「棄事則形不老,遺生則精不우」,又曰:「夫形全精復,與天爲一. 」精力保持身體,此相似於老子. 庄子的身分爲「神靈之神」,「形神之神」,「鬼神之神」,「神奇」和「神氣」,及「神明」. 「神靈之神」大體上是形容詞,以「神鬼」或「至人神矣」爲例. 「形神之神」指的是對立於形體的精神,正如:雖然身體虛弱,精神反而可以凝聚. 因爲目是身體的一部分,所以神相對於目,養神重於養形,此神超越身體成爲宇宙自然的普遍心. 「鬼神之神」是今人所謂的鬼神,可是神爲鬼之主,鬼仍然是량訝的對象. 「神奇」相對於「臭腐」.不過臭腐復爲神奇,神奇復爲臭腐,兩者都是一氣「神奇」是人的神妙氣運. 「神明」便是至神至精的,又是精神和物質的最高形態,所謂的「天地神明」相通. 神偶而是否定性的. 有時,神氣過分,如:「神(雖)王」,「巧知神聖」. 在庄子中,終於精與神遇到,闡明了「精神生於道」. 精與神基於純粹性而結合,以得到神明之位. 此是,精神不但是人的,而且擴散到天地,神連系了精神和神明,精神一辭的誕生帶來了自由的觀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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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정신문화와 도덕 교과의 복원

        정세근 한국동서철학회 2022 동서철학연구 Vol.- No.106

        This paper aims to propose a policy making. My subject is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t moral course for promotion of Korean human spiritual culture’. Ethics education in Korean school has undergone all sort of hardship, for example, anti-ethical national ethics, political ethic education, superficial ethic knowledge, not opened solid ethics, and pedagogic pseudo-ethics. As is generally known, ethics course of secondary education is called ‘moral philosophy’ in Austria and Australia. Eventhough Korean ethics course needs ideological education for unific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n and moral psychology for pedagogical peculiarity, the main stream is moral philosophy or value. Philosophical society have been made 3 times desperate efforts for education of secondary school ethics. This third period(2021~2022) is held with 27 chairmen committee including 6 nation-wide society for philosophy. At this time, we tolerated all kind of ethics, for example, eastern and western philosophy, and religions. Before applying of high school credit system(2025), Ministry of education planned to notify an education course in 2022. However, it ignored the emphasis of humanity, and for that reason, philosophical society announced a statement(2021.6.25.). In the assertion, there is not only for restoration of independent moral course but also for education for humanity and civic ethics in the secondary school. The moral course of secondary education denotes ‘education for humanity’ and ‘education for citizen’. We have not a law for education for citizen but only a law for humanity now, though. The Goal of moral course is ‘Moral human and his civil justice’. ‘Faithfulness, regard, responsibility’ are applicable to education for individual moral human; values of ‘Justice for society’ to education for civilian. Furthermore, we request an essay writing examination instead of choosing 1 answer among 5 for entering college. It is necessary for ethics education to study classics. We society for philosophy with society for ethics education and society for religion insist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t moral course based on legal background. Education for humanity and citizen is a priority matter whatever your political party are. 이글은 정책 제안을 목표로 한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대한민국 인문정신문화 창달을 위한 도덕 교과의 독립적 위상 복원’이다. 윤리적이지 않은 국민윤리, 정치학으로 변형된 윤리교육, 심도 없는 윤리적 지식, 개방되지 않는 폐쇄적 윤리, 교육학 우선의 껍데기 윤리가 윤리교육학을 역사 속에서 알게 모르게 변형시켰다. 알다시피, 오스트리아나 호주 등에서는 ‘도덕철학’(moral philosophy)이라는 말로 중등 과정의 윤리교육을 일컫는다. 우리의 윤리교육학에 아무리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통일’의 문제나 교육학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도덕심리학’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그 주된 줄기는 도덕철학 또는 가치다. 윤리교육과 관련되어 철학계에서는 크게 3차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이번 셋째 시기는 2021~3년 현재로 전국규모의 6개 학회가 포함된 27개 철학학회 회장단 모임이 바탕이 된 ‘미래교육을 위한 전국철학회 연석회의’의 도덕 교과군의 독립적 위상 복원 요구다. 셋째 시기에는 ‘철학’이라는 말에 집착하기보다 ‘윤리’의 내용상에 들어가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그리고 ‘종교’까지 포함하여 도덕 교과군을 독립하여 복원시키자는 의견으로 그 뜻이 모였다. 교육부에서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을 앞두고 2022년 교육과정의 총론과 각론을 확정·고시하고자 했는데 여기에 ‘인문 정신’에 대한 강조가 심각하게 무시되어 철학계가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어 ‘도덕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전국 철학회 연합회의’(‘미래교육을 위한 전국철학회 연석회의’의 전신)에서 성명서를 발표한다(2021.6.25.). 여기에는 도덕 교과군의 독립 복원만이 아니라 ‘인성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이 도덕 교과를 주축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염원이 담겨있다. 도덕 교과에는 ‘인성교육’과 ‘시민교육’이라는 두 축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도 우리는 현재 ‘인성교육법’만 있고 ‘시민교육법’이 없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도덕적 인간과 그가 만들어가는 정의로운 시민사회’가 도덕 교과의 목표다. 이를테면 ‘성실, 배려, 책임 등’과 같은 가치는 개인의 인성 교육에, ‘정의로운 사회’라는 가치는 시민 교육에 해당된다. 나아가 자신, 타인, 사회, 자연에 대한 성찰은 그런 점에서 단답식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하여 서술형, 토론형, 개방형(학제적) 문제가 요청된다. 나는 서, 논술형 대학입시제도의 확립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도덕교육을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교 과정부터 ‘고전’에 대한 학습과 그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이다. 철학계는 윤리교육계와 종교계와 더불어 도덕교육의 독립적 위상 복원을 법률적 기반 위에서 주장한다. 관련 법률을 제정 또는 수정 제안하고, 여야 정쟁과 무관하게 대한민국 인문정신의 창달이 ‘인성 교육’과 ‘시민 교육’이라는 두 축에 바탕하여 ‘시민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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