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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리영희의 "인간주의적" 사회주의에 관한 비판적 연구

        이순웅 ( Soon Woong Lee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8 시대와 철학 Vol.19 No.3

        리영희는 자신을 휴머니스트, 인도주의자, 평화주의자, 우상 파괴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이념적 정체성을 사회 제도로서 표현하면 사회민주주의다. 그는 서유럽, 특히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현존하는 가장 인간다운 사회로 규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사회민주주의를 하나의 모범적 제도로 생각한 데에는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중국의 변화, 북한 사회가 갖고 있는 난제들, 미국식 자본주의의 침략적 본성, 남한권력 구조의 비정통성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자리잡고 있다. 리영희를 `인간주의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면, 강조점은 `사회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주의`에 있는 것이다. 강조점을 `사회주의`에 두면서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리영희를 일면적으로 보는 것이다. 리영희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리영희의 사상을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것이고, `인간적`이라는 것은 자본주의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적당히 결합한 사회민주주의가 리영희에게는 바람직한 사회체제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영희가 사회주의자인가 자본주의자인가 하는 물음에 굳이 대답을 해야 한다면 (리영희는 그러한 물음 자체를 의미 없는 것으로 보고 거부하겠지만) 그는 자본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 리영희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주의자 리영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를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고 이기심에 기초해서 움직이는 체제로서 인간적, 도덕적 타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는 이 문제를 `의지의 낙관주의`로 푸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보면 현재의 세계 질서는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으니 열심히 실천해보자는 것이 리영희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의지보다는 지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리영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 같다. 남북한 문제와 관련해서 그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 통일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에 따르면 독일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독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남한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자는 식이다. 그렇지만 남북한은 서독과 동독과는 다른 매우 이질적인 역사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리영희의 생각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서독이나 동독은 나치 세력을 철저하게 제거하려는 노력을 공유했지만 남북한은 친일파 문제와 관련해서 매우 이질적인 길을 걸어왔다. 북한은 그들을 철저하게 제거했지만 남한에서는 그들이 권력층에 들어갔다. 더욱이 독일 통일은 소유권을 재편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적잖은 혼란을 겪은 것으로 안다. 리영희의 대안이 좀더 설득력을 지니려면 남북한이 소유권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 리영희는 구조결정론에서 벗어나자고 Young-hee Lee called himself humanist, humanitarians, pacifist and_iconoclast. And such ideal identities he has may be defined in a word `social democracy.` He seems to define the social democracy of Western Europe, especially Northern European countries as model of ultimate humanistic society. And the reason why he thinks social democracy as an institutional model comes from a variety of contemporary historical phenomena such as collapse of USSR and East European socialistic countries, socioeconomical change of China, difficult problems of North Korean society, aggressive nature of American capitalism, illegitimacy of South Korean regime hierarchy and so forth. If Young-hee Lee is called `a humanistic socialist`, it accentuates his `humanistic` aspects rather than his `socialistic` aspects. Some people focuses more on his `socialistic` aspects and even criticizes him for socialist, but they have one-sided views on Lee. It is true that Lee criticizes capitalism, but it is unreasonable to assert that he proposes socialism as alternative way to overcome capitalism. On the supposition that Lee`s thoughts are oriented to humanistic socialism, it indicates that socialism is more `humane` than capitalism, and the `humane` means that socialism is morally superior to capitalism. Possibly, that is why Lee considered social democracy-as a moderate combination of capitalism and socialism-as advisable social system. Nevertheless, if someone may still give a question about whether Lee is socialist or capitalist, it is recommended to answer that he is closer to capitalist, rather than socialist, although he doesn`t answer to such a question itself he thinks meaningless, because Lee seems to go through his agonized speculations and thereby come to a conclusion that socialism has moral advantages to capitalism, but it is inevitable to accept capitalism(market economy) in our real world. This is a reality that humanist Lee can hardly accept and embrace, because he has been still concerned about potential risk of capitalism that is a system mainly driven by market economy and interacts with human self-interest, which may ultimately result in human and moral corruptions. Lee seems to try to resolve this problem by means of `optimism of the will.` From long-term perspectives, Lee possibly thinks that current world order still has its optimistic future, so we have to do our best to create new world order. However, such an opinion has difficulties in satisfying some people who value intelligence more than will. Lee seems to have too simple views about the combination of capitalism and socialism, and this tendency is well demonstrated by his interests in the reunification of Germany as a benchmark for resolving potential issue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According to his opinions, East and West Germany could achieve peaceful reunification because of socialistic elements inherent in West Germany. So Lee simply proposes that North Korea should accept market economy, while South Korea should embrace socialism. However, this idea may have limitations, since South and North Korea have undergone very different modern history, contrary to that of West and East Germany. West and East Germany made collaborative efforts to root out Nazis after World War Ⅱ, whereas South and North Korea have walked through very different ways from each other regarding political purge of pro-Japanese group. North Korean regime rooted out pro-Japanese group radically, while South Korean regime absorbed this group into the corridors of power. Besides, German reunification has involved not a few conflicts concerned with the issue about reorganization of property right. In order that Lee`s alternative way become more convincing, it is necessary for him to show more unambiguous standpoint about the issue of property right to South and North Korea. Lee asserts that we have to overcome structural determinism. Here, the structural determinism means a sort of intellectual and 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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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감벤의 정치철학에서 민주주의 문제와 주체의 역할

        이순웅(Lee, Soon Woong)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4 통일인문학 Vol.57 No.-

        아감벤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되고 있는가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본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감벤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먼저 상정해놓고 그 본질과 실제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또는 실제 현실이 그 본질에 어느 정도 접근해 있는지 따위의 방식은 따르지 않는다. 대신에 아감벤은 두 개이면서 하나인 ‘절합(articul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근대민주주의는 조에(zoe)의 정치적 삶, 즉 비오스(bios)를 찾아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고대 민주주의와 구별된다. 그러나 생명정치(bio-politique)로서의 근대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결탁되어 있다. 민주적인 법 역시 전체주의를 정당화해준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않는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체로서의 호모 사케르에게 주어진 임무는 세속화(profanazione), 무능(im-potential), 놀이로서의 패러디인 파라바시스(parabasis) 등이다. 근대 정치에는 여전히 신학적 요소가 있다. 그리고 법 외부에 있으며 예외상태에 있는 호모 사케르는 법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존재이다. 말이 사물을 드러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호모 사케르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According to Agamben, more important point is how democracy is comprehended and applied, not what is democracy. Because democracy is composed historically, not exists as a specific essence. Therefore, Agamben does not follow a method as determining how the essence and actual reality are different from each other or how close the actual reality has approached the essence by postulating the essence of democracy first. Instead, Agamben explains how to comprehend democracy by using ‘articulation’ which is the one and at the same time two. Modern democracy is distinguished from ancient democracy in the point of trying to search zoe’s political life, i.e. bios. However, modern democracy as bio-politics(bio-politique) is colluded with totalitarianism. Democratic laws also justify totalitarianism. Therefore, democracy is the democracy which does not protect democracy. Therefore, the missions given to homo sacer as the subject are profanation(profanazione), impotence(im-potential), and parabasis which is the parody of play, etc. There are still theological elements in modern politics. And homo sacer, which is outside the law and in the status of exception, is the existence which can play with the law as it pleases. The point that words cannot but be spoken, though they cannot reveal the object, that is the fate given to homo sa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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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근대적 주권을 넘어서는 연대의 모색 -아감벤의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이순웅 ( Soon Woong Lee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0 시대와 철학 Vol.21 No.2

        근대적 주권의 형성 과정에는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인민주권이라는 개념은 근대에서 실현되지 않았다. 근대는 자연법을 내세우면서 권력은 초월적 존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자연상태는 근대적 주권의 형성이 폭력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결국 근대적 주권은 자연법이라는 법을 획득함으로써 폭력성을 띤 주권권력이 되었다. 주권자는 주권권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잘 설명했지만 홉스를 포함한 이른바 고전적 사회계약론자들은 근대적 주권의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다. 근대적 주권 개념 자체가 폭력과 한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주권 개념 역시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다. 한국의 역대 정권은 군사정권이든 비(非)군사정권이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근대적 주권권력을 형성해나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군사정권은 독재 정권이고 비군사정권은 민주적 정권이라고 말하면 한국의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한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근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근대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아류 제국주의 국가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속에 있는 국제적 먹이사슬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눈치를 보되 후진국의 인민들을 착취해야 살아남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예를 들면) 정규직 역시 자본가의 눈치를 보되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 조건에 근거해야 살아남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배자(자본가)와 피지배자(노동자)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은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의 투쟁에 `구사대(救社隊)`의 일원으로 쇠파이프를 들고 나가는 정규직은 또 하나의 근대적 아류 주권자이며 아류 지배자이다. 근대적 주권을 넘어서는 연대를 발견하려면 주권 개념이 아니라 통치 개념을 통해서 근대를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아류 제국주의 국가든 후진국가든 근대적 주권권력으로부터 추방된 자, 그래서 무능한 자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추방된 자는 자유로운 자이며 무능한 자는 근대적 주권권력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않는 자로서 근대적 주권권력이 만든 질서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으며 끝내는 질서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자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호모 사케르에게 주어진 임무다.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modern sovereignty involves violence(Gewalt). The concept of popular sovereignty was not realized in modern times. Putting up the natural law, modernism declared that power does not come from a supernatural being. However, this is also the evidence that the natural state has to join hands with violence in order to form modern sovereignty. After all, modern sovereignty became sovereign power(potere sovrano) stained with violence by acquiring the law(Recht) called the natural law. Sovereign is merely another name of sovereign power. Hobbes explained the natural state fluently, but so-called classical social contract theorists including Hobbes failed to appreciate the real meaning of modern sovereignty. Because the concept of modern sovereignty itself is coupled with violence, the concept of sovereignty in Korea is not `a certain goal to be attained ultimately` either. Korean regimes in the past, whether they were military or non-military one, are not different in that they established modern sovereignty while admitting neo-liberalism. And for this reason, if one says that military regimes are despotic and non-military ones are democratic, it means that he does not understand `the present` of Korea properly. Korea is an epigone imperial nation that practices modernism demanded by the U.S. and that titled neo-liberalism sincerely. Moreover, the international food chain in the neo-liberal world order is reproduced exactly as it is. In other words, Korea has the structure that curries favor with powers including the U.S. and, at the same time, exploits people in underdeveloped countries for survival. It is in the structure that (for example) permanent staff survives through reading the face of capitalists while taking advantage of contingent workers` poor working conditions. In this sense, the traditional dualism of rulers (capitalists) and the ruled (workers) may have to be abandoned. Permanent staff members who go out with metal pipe in hand as strikebreakers against contingent workers` struggles are another modern epigone sovereign and epigone ruler. In order to find solidarity beyond modern sovereignty, we should see modernism not from the concept of sovereignty but from the concept of government(gouvernement). In addition, we should admit that both permanent staff and contingent workers and both an epigone imperial nation and an underdeveloped country are bandits expelled from modern sovereignty and therefore they are impotent. A bandit is one with freedom and an impotent one is one who cannot or does not adjust himself to the order of modern sovereignty. These people can play freely with the order established by modern sovereignty and even can collapse the order. This is the duty given to modern homo sa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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