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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대 유학의 전개 양상

          유흔우 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2005 철학·사상·문화 Vol.0 No.1

          청대 유학을 살펴보기 가장 좋은 방법은 송명유학, 즉 신유학과 대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학(淸學)은 송학(宋學)과의 대립논쟁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청대 유학의 발전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경세치용학 단계로서 왕학 수정이 주요 내용이다. 두 번째 단계는 고증학 성장기로서 한학(漢學)과 송학(宋學) 논쟁이 주요 내용이다. 세 번째 단계는 근대 유학 단계이다. 이 글은 청대 유학의 새로운 도덕철학을 살펴보기 위한 전초적 작업에 해당한다. 청대 유학에 대한 종래의 일반적 인식은 ‘정체(停滯)’, 또는 철학 부재설이다. 필자는 유학 발전의 ‘정체’가 ‘실용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청학의 반송학(反宋學)적 특징 또한 주희(朱熹)의 ‘천인합일(天人合一)’론이 가지고 있는 내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대 유학의 전개 양상을 자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이 글은 그 대체적인 발전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The best way to characterize Ch'ing Confucianism is to contrast it with what is called Song-Ming neo-Confucianism. Song-Ming neo-Confucians were primarily moral Philosophers debating endlessly among themselves on metaphysical questions such as whether 'moral principles'(理) are inherent in 'human nature'(性) or in 'human mind'(心). As a result, the Song-Ming period witnessed the emergence and development of a rivalry between two major philosophical systems represented, respectively, by the Cheng-Zhu and the Lu-Wang schools. By contrast, Ch'ing Confucians were, first and foremost, scholars devoting themselves to painstaking philological explication of classical and historical texts. They took great pride in having reestablished the Confucian canon on the foundations of critical scholarship, aided by the newly sharpened tools or philology. This is precisely why 'classical scholarship' has generally been indentified by modern intellectual historians as the quintessence of Ch'ing Confucianism, as opposed to the metaphysical speculation of Song-Ming neo- Confucianism. This contrast makes it clear that whereas Song-Ming neo-Confucians and Ch'ing Confucians studied the same body of the sacred text, they were guided by two entirely different paradigms. Therefore, it can be safely assumed that a paradigm shift must have taken place during the intellectual transition from the Ming to the Ch'ing. An inquiry into why and how this epochal shift occurred will provide us with a convenient way to trace the origins of Ch'ing Confucianism.

        • 성불(成佛)과 위성(爲聖)

          유흔우 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2008 철학·사상·문화 Vol.0 No.6

          신인문학을 정초하는데서 신유학과 선불교의 이상 인격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신유학은 수양과 공부를 통해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철학의 궁극적 목적으로 한다. 반면 중국 선불교는 부처(佛)를 현성(現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부처의 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본래 인도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상으로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유학(儒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로 형성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유학의 이상인격인 성인(聖人)과 불교의 부처(佛) 사이에 놓여 있는 가장 큰 차이는, 유학의 성인은 끝까지 사회성 차원을 떠나지 않는 반면 부처는 ‘고독성’이라는 종교 차원이 우선이라는 점에 있다. 이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서로 다른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중국 선불교는 노장(老莊)의 도가와 마찬가지로 만물의 공성(共性)에 기초하지만 유학은 인간의 고유성을 주목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선불교는 인간의 본질·본성을 가능성 차원에서 논의하지만, 신유학은 가치적으로 확정된 어떤 것으로 말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인간 본질의 실현 방법이나 그 결과가 다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신유학에서 신인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이를 위해 신유학의 천인합일론을 전제로 중국 선불교와 여러 관점을 비교하였다. 또 공자와 맹자의 철학이 본래부터 천인합일적 이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부정하고, 운명 내지 객관필연적 추세를 의미하는 천명(天命)과 인간의 주체 자유 역량을 대비시키는 것에 공자·맹자 철학의 핵심이 있다는 점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신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간의 주체와 자유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It is a very meaningful work that studies the ideal state of human being in both Neo-Confucianism and Zen of Buddhism within the comparative perspective. On one hand, Neo-Confucianism ultimately aims at a state of being a Man(;being a moral saint) through the cultivation and the continuos learning of himself. On the other hand, Zen's thoughts in China aims at the presentative completeness of being a Buddhist saint(;being a state of Buddha himself). The idea of this presentative completeness in being couldn't be ever found in originally existing Buddhism of India so far. This great idea could have been established by the result from the influence of Confucianism on Buddhism, when it came inside into China and the conventional thoughts in China. There is a big difference between a state of being a Man as the ideal image and a state of being Buddhist saint, in that Confucianism never goes beyond the correlational tie of sociality while Buddhism carries on the religious dimension of its isolated nature in the first place. This feature would be brought up by the different opinions on the nature of human being each other. That is to say, Zen's thoughts rest on a firm basic idea of the commonness in all things of the universe similar to Taoism, meanwhile Confucianism pays intensive attention on human being's own peculiarity. Therefore, Zen in Buddhism pursues the discussion about human nature within the possible sphere while Neo-Confucianism regards human nature as something that can be firmly determined with value sets. According to these different viewpoints, it is absolutely natural that there are differential ways of realization and its results in human nature. This paper aims at the introspection in Neo-Confucianism in order to figure out its possible access towards Contemporary New-Humanism;(Neo-humane studies). For this general purpose, it compares the concepts of oneness in between Heaven;‘Tian’(天) and Human;‘Ren’(人) with the several perspectives in Zen's thoughts. In addition to this procedure, carefully negating the general existing viewpoint on that Confucius's thoughts and Mencius's had been originally taken as the idea of oneness in between ‘Tian’(天) and ‘Ren’(人), this paper begins to look closely into the key point of Confucian as the tensive correlation of the subjective free will with Tianming(天命) that indicates the objective necessity and the inevitable fate as well as fortune. This effort in this paper makes it possible to put an emphasis on the essential feature of Contemporary New-Humanism;(Neo-humane studies) in that there are human being's free will and subjectivity.

        • KCI등재

          郭店楚簡 『性自命出』의 心性論 연구

          유흔우 한중인문학회 2017 한중인문학연구 Vol.54 No.-

          이 논문은 <性自命出>을 儒家 心性論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유가 심성론은 크게 人 性論과 道德 修養論의 두 분야를 포괄하고 그 가운데 本體論(宇宙論)과 認識論을 포함하며, 性․心․情․天․命․道․敎․物 등등에 대한 토론을 포함한다. <性自命出>은 子思 또는 門人의 저작으로써 郭店竹簡의 儒簡 11종 14편중의 한 편이지만孟子이전의 유가 심성론의 초기 정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五 行>․<成之聞之>․<尊德義>․<六德>과 더불어 ‘五行’(仁․義․禮․智․聖의 五德) 사상 체계를 구성하는 <性自命出>은 孔子에서 孟子에 이르는 100여 년간의 자료 공백의 문제를 복원하게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孟子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화되기 이전의 유가 심성론 사상을 가장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성론 체계가 아직 성숙되기 이전 단계의 심성론의 기본 개념들 및 관계에 관한 토론은심성론이 성숙되었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한 것인데, 이에 따라국내외의 많은 연구자들은 <性自命出>․<中庸>․<孟子> 등의 심성론 사상 비교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모두 <五行>을 사상적 근원으로 하고 서로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性’에 대한각기의 다른 해석으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사상적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性自命出>은생리적이고 심리적인 情感․欲望 등으로 ‘性’을 해석하여 告子에서 荀子로 이어지는 性惡說 의 근원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孟子 性善說의 단초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性 自命出>은 戰國時期 유가 인성론의 두 가지 노선의 분기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性自命出>을 분석한 것이다. 이는 戰國時代 儒家의 초기심성론을 복원하는 작업의 일환이고, 공자와 맹자 사이의 유가 심성론의 특징을 고찰하는 의의를 갖는다. This paper analyzes Xing Zi Ming Chu(性自命出) of Guodian Chumu Zhujian (郭店楚簡) in terms of Human Nature and Moral Cultivation. Specifically, this paper discusses Xin-Xing-Lun(心性論) between Confucius and Mencius, focusing on the key concepts like Xin(心), Xing(性) and Qing(情) and their relationship. Xing Zi Ming Chu contains the most philosophical contents among 11 volumes of Guodian Chumu Zhujian, along with the Wu Xing Pian(五行篇). Each provides theories of xin(心) and xing(性) that are developed in different ways. Both are presumably written before Mencius. Wu Xing Pian and Xing Zi Ming Chu can fill the gaps that are caused because of the limited amount of context in the theories of Xin and Xing (eg. Analects( 論語), Doctrine of the Mean(中庸), Book of Mencius(孟子 and Book of Xunzi(荀子)). It is almost certain that the author of Wu Xing Pian is Zisii(子 思), however there are several opinions for the authorship of Xing Zi Ming Chu: possibly Zis, Gongsun Ni(公遜尼), Shi Shi(世碩) etc. Although neo-confucianists argue that the Mencius theory of nature is in line with the Doctrine of the Mean by Zisi, there are differences. In Wu Xing Pian, the relatedness of the nature can be found from the vertues of jen(仁), yi(義), li(禮), chih(智), sheng(聖) that are inhered in xin(心). However, Xing Zi Ming Chu provides the similar account as Doctrine of the Mean, which focuses the discussion on qing(情). Hence, we have to consider Doctrine of the Mean, Wu Xing Pian, Xing Zi Ming Chu and Book of Mencius together, to reconstruct the essence of the theories of Xin(心) and Xing(性) in Confucianism. This paper focuses on the concepts and moral cultivation in Xing Zi Ming Chu. This paper reconstructs the Confucius theories of Xin(心) and Xing(性), and clarifies that the Mencius theories of nature are in fact independent from Zisi(子思).

        • KCI등재

          『論語』 ‘攻乎異端’章에 대한 한ㆍ중ㆍ일 주석의 비교

          유흔우 한중인문학회 2017 한중인문학연구 Vol.56 No.-

          유학은 공자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는 학문이고, 공자의 가르침은 <논어>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유학이 3세기 말엽이후 한국․일본․베트남 등의 아시아 국가로 전래하고, 16세기에유럽의 여러 나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유학의 여러 경서들 중 <논어>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세계적 시각에서의 유학 연구는 각 시대와 유학 전파 지역에서의 <논어>에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동아시아의 유학을 비교하는 일환으로 <논어> 「위정」 제16장에서의 “攻乎異端, 斯害也已”라는 공자의 말에 대한 중국․한국․일본 유학자들의 해석을 비교한 것이다. <논어>는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구절들을 포함하고, 이들은 대부분공자 사상을 포괄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관건이 되는데, ‘攻乎異端’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장은 「위정」에서 ‘學’을 토론하는 문장 가운데 하나로써, 해석의 차이는 곧 공자의학문․학습에 대한 태도와 방법, 그리고 대상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반영한다. 이 장은 또 공자의 ‘一以貫之’(「里仁」․「衛靈公」)의 ‘道’와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溫故而知新)”(「爲 政」)는 전통과 창신의 관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이 장에 대한 동아시아유학자들의 해석을 세 가지 유형, 즉 첫째, “이단의 학문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것은 해가 된다”, 둘째, “이단 학설을 공격하는 것은 해가 된다”, 셋째, “이단의 학설을 공격하면 해가 그친다”로 구분하여 비교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인 해석을 찾아 본 것이다. <논어>에 대한 해석과 재해석은 항상 동아시아 유학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원천의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攻乎異端’장에 대한 중국․한국․일본 유학자들의 해석과 재해석은 특히 공자의 ‘學’관념과 그 실천에 관한 이해와 수용의 차이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각자의 새로운 발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Confucianism is based on the teaching of Confucius and the gist of his teaching can be studied in Analects. Analects has been the focus of studies of Confucianism throughout the spreading of Confucianism over Asian countries including Korea, Japan and Vietnam at the end of 3th century and European countries in 16th century. In other words, the studies of Confucianism under the international view point has to focus on studies of Analects in the regional context of the relevant era. This paper compares the different interpretation of ‘The study of strange doctines is injurious indeed!’ in China, Korea and Japan, with the special attention paid to the comparison of East Asian Confucianism. Analect has been discussed extensively, however it is hard to unify the different interpretation that is available in the literature. The gist, however, can be found in the chapter The study of strange doctrines. This chapter discusses Learning in Wei Chang, and the difference in the interprtation of this chapter can be the starting point of understanding the philosophy of Confucius regarding learning. This chapter i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idea of Confucius in that the Way in ‘a single thread runs runs(一以貫之)’ and “Review what you have learned and know what is new(溫故而知新)” is reflected in its contents. This article provides a comparison between three types of interpretation of Confucianism in East Asia; “Studying the strange doctrines is harmful”; “Debating with Strange doctrines is harmful”; “Debating with the strange doctrines is a way to stop the harmness.” The goal of this paper studies the reasonal conclusion by comparing these three arguments. The analysis and reanalysis of Analects always improve the modern Confucianism. In this respect, the analysis and reanalysis of the chapter “The study of strange doctrines reflect the Act of the understanding as well as provide a new perspective on the issues of Learning and Way of Confucius.

        • KCI등재

          『論語』 ‘季路問事鬼神’章에 관한 연구

          유흔우 한국공자학회 2016 孔子學 Vol.31 No.-

          This article studies the Chapter 12 ‘Jih-lu and celestial and eternity spirits’ in the Analets and focuses on the ideas of ‘life and deaths’ in Confucianism. Briefly summarizing, Chapter 12 contains the answers of Confucius for the questions by Jih-Lu: Jih-Lu asked back to Confucius "Before you have learned to serve human beings, how can you serve earthly spirits": And Confucius answers it as "When you do not know Life yet, how can you know about death?. This apology of Confucius (and Confucianism) gave us an impression that Confucianism barely discusses the matter of Death, but focuses only on the matters of Life. However, in fact in Analects, the matters of Death are mentioned more than double Life is mentioned. Some scholars argue that Confucius has been agreed with the existence of the celestial spirits, and this can be taken to be the statements as Confucius recognizes the existence of the after world. If this is true, the death is not the endpoint of Life: Instead, it is a course for the next. It is possible to interpret Confucius’answer towards Death in multiple ways. However, if we take his statements such as "These things the Master did not speak of: anomalies, prodigies, disorder and spirits" seriously, we can realize that Confucius doesn’t agree or disagree for the existence of the celestial spirits. Henceforth, his answer cannot be taken as the denial of the celestial spirits. Wang-Fuzhi said that the scholars misinterpret the life and death view of Confucius and he state that Life states the course of Life before Death, and Death is the end of Life. Zhao-You then interprets Jih-Lu’s question as his inquiries for the rightful death. I will take these two views seriously, and will interpret the Chapter 12 as follows: For Confucianism, Death means "To cease permanently to be alive". Henceforth Confucius’s answer to Jih-lu’s questions emphatizes the ending of Life. In other words, what is intended in Confucius’s answer is to point out the meaning of Death. Here Death connotates the unavoidable death, uncertainty of the life and death. Such uncertainties inspires fear and vanity. However Confucius provides views of life and death here as the recognizing the ending can be a motivation to makes us to put efforts on the matters of Life. From this Confucius can take Death as comfort or rest. Such view on death is in line with the arguments of physicalism, which argues that Death means the end of bodies and spirits. I took such view and wrote this article, and crucially argue that the course of finding well-dying from well-being is important. This can be summarized as "Well-ending", and it is reasonable and agreeable view on the matters of Life. 이 논문은 『論語』 「先進」 ‘季路問事鬼神’章(「11‧12」)에 대한 역대 주석서들의 분석을 통하여 孔子의 자각적인 생사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11‧12」는 季路(子路)가 鬼神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孔子가 “사람을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未能事人, 焉能事鬼?)라고 反問하고, 또 계로가 죽음(死)에 대해 묻자 “삶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反問한 것이다. 孔子의 이러한 변명(apology)은 이후 孔子 및 儒家가 鬼神存在와 死後를 회의하거나 부정하기 때문에 生을 주로 담론하고 死에 대해서는 보류하고 논하지 않는다(存而不論)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논어』에서 공자는 生보다 死를 두 배나 더 말하고 있다. 공자가 귀신의 존재를 긍정했다는 주장은 공자가 사후 세계를 존재론적으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사후 세계를 인정하는 경우 죽음은 삶의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과정이나 단계에 불과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孔子가 子路에게 反問으로 대답한 眞意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귀신존재 문제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회의론·불가지론·부정론·긍정론 등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공자는 괴이함과 용력과 반란과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7‧21」)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귀신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았다는 말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회의론이나 불가지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王夫之는 기존의 주석가들이 모두 生死 개념을 잘못 파악하였다고 말하면서, ‘生’은 ‘죽기 이전을 통 털어 말하는 것’(未死以前統謂之生)이고, ‘死’는 ‘삶의 끝’(生之終)이라고 한다. 趙佑는 자로가 ‘죽음에 처하는 마땅함’(處死之當)에 대해 물은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王夫之와 趙佑의 生死 해석이 孔子의 진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孔子 및 儒家에서 ‘죽음’은 삶의 영원한 정지를 의미한다. 孔子가 子路에게 반문한 것은 인생에서 ‘끝(終)’이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는 공자가 죽음을 사실 차원의 문제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의미 차원에서 사색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가변성,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편재성 등등은 죽음의 內包性이다. 이러한 죽음의 내포로 인해 불안과 공포, 그리고 허무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지만 儒家는 인생에 ‘끝’이 있다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면 오히려 인생에 대한 강렬한 使命과 노력의 충실성을 적극적으로 촉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孔子의 自覺的 生死觀에서 촉발된 것이다. 유가는 이로부터 ‘죽음’을 ‘편안함(安)’ 또는 ‘休息’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죽음관은 죽음이 ‘끝’, 즉 육체와 정신 모두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는 물리주의의 죽음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죽음관은 善生(well-being)을 통해서 善死(well-dying)를 확보하고, 善死는 또 다른 新生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바로 善終(well-ending)을 의미한다는 생사관이라 할 수 있고,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그렇다고 동의할 수 있는 合意的인 관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불교와 유교의 대화 -불교와의 ‘대화’에서 나타난 유학의 이론적 변이와 변혁을 중심으로-

          유흔우 한국불교학회 2012 韓國佛敎學 Vol.64 No.-

          This paper studies the consequences of the dialogue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Specifically, it focuses on the changes of Confucianism. Confucianism has a history of overcoming the challenges by criticising others. In general, there are two ways of Confucianists treating the Buddhism. As a religion, it is ‘exclusion.’ As a theory, it is ‘fusion.’ Significant changes happened during the time and appeared as Neo-Confucianism. The most important way of the dialogue was studying Buddhist scriptures. It’s also same for the Buddhists. The integration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is the result of it. In terms of religion types, however, they still keep their uniqueness. In other words, they still keep their own distinctiveness while adopt the ideas from each other. The consilence is the final result of this dialogue. With respect to the Buddhism, the consilence of Confucianism reflects the weakness and lack as Confucian theory has itself. There were briefly two problems Confucianism have; Cosmology and Mind and Nature Theory. In general, the metaphysical aspects of Confucianism fell behind than Buddhism. The Neo-Confunianists found the shortcomings and tried to make their theories as metaphysical. They tried to take one step further to develop better theories than Buddhism. There is a long history to reach this status. The dialogue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has a meaning beyond just a meeting between two religions. There is a literature to identify this meaning. From this base, this paper will take an in-depth scope into the specific crisis the Confucianists had at that time. This methodology especially can analyze the symptom of excluding Buddhism by Confucianists in that time. The influence of Buddhism on Confucianism should be examined for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The methodology of this paper focuses on this aspect. 이 논문은 불교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발생하게 된 유학이론의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유교는 자신이 신앙적 위기나 이론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논쟁의 형식을 통해 다른 학파를 비판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유학자들이 불교를 대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정도였다. 종교형식상에서는 ‘배척’하고, 이론상에서는 ‘융합’한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배척’과 ‘융합’이 유가의 위기극복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학자가 불교와 ‘대화’를 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불교 경전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불교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유교와 불교가 서로 이론적으로 융합을 한 것은 이와 같이 서로 상대측의 경전을 연구하고 자신의 이론적 탐색에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종교의 형식에서 보면, 불교와 유교는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 이론적 융합은 각자 자신의 것을 주로 삼는 ‘통섭’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통섭’은 불교와 유교의 ‘대화’에서 나타난 최종적인 결과이다. 그런데 유교의 불교 통섭은 유학이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족함이나 결함을 반영하고 있다. 불교와 비교하여 유학이론의 가지고 있는 이론적 약점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 있었는데, 첫 번째는 우주론 영역이고, 두 번째는 심성론 영역이다. 전체적으로 말해 형이상학에서 유학은 불교에 미치지 못하였다. 신유학은 이와 같은 자신의 이론적 약점을 자각한 유학자들이 불교의 형이상학을 이끌어 들여 유학을 형이상학화하고 최종적으로는 불교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론을 창출하고자 한 것이었다. 신유학자들의 배불론은 불교 이론을 통섭한 바탕 위에서 이를 완전히 초극하고자 한 것이었다. ‘불교와 유교의 대화’에서 그 ‘대화’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종교 간의 ‘만남’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를 해명하는 문제에서 서로가 주고받은 영향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주지하는 대로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그 방법을 달리하여, 유학자들이 느끼고 있었던 위기가 어떤 위기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특히 이 방법은 유학자들의 불교배척 이론을 그 심층에서 분석하는 데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중국철학사 발전에서 말하면, 불교의 역할은 신유학의 탄생에 큰 영향을 준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 논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론은 불교의 이러한 역할을 해명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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