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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불교 연구의 성과와 과제- 1970년대~2010년대의 불교사학과 불교철학 연구를 중심으로 -

          고영섭 한국불교학회 2013 韓國佛敎學 Vol.68 No.-

          이 논문은 한국 고대불교 즉 사국과 남북국시대의 불교 연구 성과와 향후 과제를 분석 검토한 글이다. 한국불교의 서론에 해당하는 한국 고대불교 즉 사국-통일신라와 대발해 시대 불교에 대한 연구는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전래와 수용과 공인을 거쳐 주체적으로 소화한 불교의 첫 탐구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불교는 한국불교의 서두라는 점에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를 주체화하고 자아화하여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며 ‘한국학의 자존심’과 ‘한국불교의 자긍심’을 수립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논자는 여기에서 한국 고대불교를 국가별, 시기별로 구분한 뒤 반야-중관-삼론, 유가-유식-법상, 밀교, 지론-섭론-기신, 법화-천태-교관, 화엄-일승-법성, 정토-염불-염불선, 선법-선관-선수 등 불교사상사의 전개에 따라 주제별, 인물별로 분석해 보았다. 고구려의 僧朗과 義淵과 普德, 백제의 謙益과 玄光과 慧均, 신라의 圓光과 安含과 慈藏을 필두로 통일신라의 圓測과 元曉와 義湘, 그리고 憬興과 義寂과 太賢 등으로 이어지는 성취는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다른 사상가들과 당당히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깊었다. 이들 이외에도 元表, 慧超, 無相, 地藏, 慧覺 등은 세계인으로 살았던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의 불학자들은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론보다는 실천에 집중하는 인도의 ‘교학’과 실천보다는 이론에 치중하는 중국의 ‘종학’을 뛰어넘어 이론과 실천을 치우침 없이 아우르는 한국의 ‘불학’의 틀로 녹여 내었다. 때문에 사국-통일신라시대 불학자들의 성취는 이후에 전개되는 모든 연구영역에서 ‘한국학의 자존심’이자 ‘한국불교의 자긍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가 거시적이고 거치른 연구였다면, 앞으로의 연구는 미시적이고 섬세한 연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진면목을 밝혀내고 우리의 참얼굴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확충되어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국 고대불교 연구는 일제 식민사관의 극복과 민족사관의 수립을 위하여 거칠게나마 윤곽을 잡아주기 위한 노력의 시기였다. 이제는 세계의 보편사관과 특수사관의 균형에 기반하여 우리 시대의 역사를 두발로 걸어가고 철학을 올곧게 세워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구려와 백제, 가야와 신라 및 대발해의 불교 전래와 수용 및 공인과정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어야 한다. 또 오대산 결사와 오대산 화엄만다라 신앙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각 학통별, 사상별, 인물별 연구가 특정 학통과 사상 및 인물 중심을 넘어 보다 다양화되고 세분화되어야 한다. 나아가 한-일, 한-중, 한-인 불교교류와 구법승과 전법승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화 확장되어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국 고대불교에 대한 선학들의 연구 분량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축적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이들 선행연구의 성찰적 평가에 기초하면서 새로운 연구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국의 불교학자들이 우선적으로 직면하는 것은 한국불교 기초사료의 발굴과 찬술 문헌의 복원에 입각하여 그들 사료와 문헌 속에 담겨 있는 한국불교의 독자적 인식과 독특한 논리를 분석하여 적출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이론이 지니고 있는 보편성과 특수성, 구심성과 원심성, 종합성과 독자성을 의식하 ...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and review the studyresult and future assignment of Buddhism study result in ancient age,the age of four countries and south and north country. The study onthe Buddhism of the age of four countries-Unified Sinra andDaebalhae, which belongs to the introduction of Korean Buddhism,was the first research process adopting Indian Buddhism and ChineseBuddhism through its introduction, acceptance and official approval. Because the Buddhism of this age was the process to subjectify IndianBuddhism and Chinese Buddhism and change them into Korean styleto find out Korean when considering that it was the beginning ofKorean Buddhism. It was the process to establish 'pride of Koreanstudy' and 'self-esteem of Korean Buddhism'. Here, the researcher classified ancient Korean Buddhism bycountry and age and analyzed each subject and character by Buddhistphilosophy history such as Thoughts of Prajñā-Madhyamika-Samron,Yogācāra-Vijñāptimatrata-Beopsang, Esoteric Buddhism,Dasabhumika-Mahāyāna samparigraha śāstra-Sraddhotpāda śāsrtra,Lotus-Tiantai-Teaching and meditation, Huayan-OneVehicle-Beopseong, Pure Land-Yeombul-Yeombulseon and Methodsof Dyāna-Vipaśyanā-practice of meditation. The achievement beginning from Seungrang, Uiyeon and Bodeok of Goguryeo, Gyeomik,Hyeongwang and Hyegyun of Baekje and Wongwang, Anham andJajang of Sinra and being connected to Woncheuk, Wonhyo, Uisang,Gyeongheung, Uijeok and Taehyeon of United Sinra was wide and deepenough to be fairly compared to other philosophers of East Asia. Besides them, Wonpyo, Hyecho, Musang, Jijang and Hyegak were theKorean people who lived in the wide world. Korean Buddhist scholarsconcentrated on practice rather than theory while accepting IndianBuddhism and Chinese Buddhism. Beyond ‘Doctrine' of India thatconcentrates on practice rather than theory and ‘Teaching of Sect' ofChina that concentrates on theory rather than practice, they fusedtheory and practice in the frame of Korean Buddhist study. Becauseof this reason, the achievement of Buddhist scholars from the age offour countries to the age of Unified Sinra and Daebalhae became the‘pride of Korean study' and ‘self-esteem of Korean Buddhism' in allstudy fields. Although the previous study on them was macroscopic, roughstudy, the future study should be microscopic, detail study. Therefore,it should find out their real aspects and expand the effort to connectthem to real face of Korean people. For the last half century, the studyon ancient Korean Buddhism was the effort to create the rough outlineto overcome Japanese colonial view of history and establish historicalview of a nation. Now, it is time to walk the history of this age onown feet and establish right philosophy on the basis of the balancebetween the world's universal view of history and special view ofhistory. For the purpose, the study on the process to introduce, acceptand official approve Buddhism in Goguryeo, Baekje, Gaya, Sinra andDaebalhae should be deepened.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analyzeOdaesan Association and Odaesan Hwaeom Mandara belief. The studyon school, philosophy and character should be diversified andsubdivided beyond a certain school, philosophy and character. The study on Buddhist ex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Korea andChina and Korea and India, Seeking the Buddha-Dharma monk andspreading Buddha-Dharma monk should be deepened and expanded. Previous scholar's countless studies on ancient Korean Buddhismhave been accumulated for the last half century. The current assignmentof Korea is to search for various methodologies for a new study onthe basis of introspecting evaluation of previous studies. KoreanBuddhist scholars should analyze and extract the unique recognitionand logic of Korean Buddhism contained in historical material andliterature on the basis of excavation of basic Korean Buddhism historymaterial and restoration of compiled literature. It is necessary to searchfor the s...

        • KCI등재

          한국 불교학의 세계화와 세계 불교학의 한국화 방안 ‒ 한국어와 영어 권역 불교학술 논저를 중심으로 ‒

          고영섭 한국불교학회 2015 韓國佛敎學 Vol.76 No.-

          이 논문은 국제적인 시야와 무대에서 한국학으로서 불교학의 보편적 언어와 문법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글이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사는학자들의 가장 큰 화두는 학문 간의 상호 소통의 문제일 것이다. 통역자를 대동하든 번역자를 매개하든 우리말과 외국어의 소통의 문제는 시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아온 이들이 발화하는 말과 글 즉 언어와 문장은 서로의 만남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인식되고 있을까. 국내의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국학’의 성과와 국제의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한국학’의성과는 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공유되고 소통되고 있을까. 이러한 물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학과 한국학의 성과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불교학 자체의 연구 논저를 공유하고 소통하여 연구를 심화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먼저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불교학의 여러 논저들을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는 사회적 여론 형성과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국내외의 연구 성과가 세계의 시민들 속에 살아있는 성취가 되고, 국외의 연구 성과가 우리의 국민들 속에 살아있는 성취가 될 때 우리는 국제화와 세계화의 과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통역이든 번역이든 궁극적인 목표는 연구 결과물의 공유와 소통에 있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고전은 一者 번역을 넘어 多者 번역이 되어야 한다. 다자 번역이 이루어지더라도 책임번역자가 반드시 있어야만 그 성과가 온전히 집성될 수 있다. 한국불교 고전의 경우에는 원전의 다자 번역을 통한 우리말 대본이 먼저이루어져야 한다. 이 대본에 기초하여 三藏 傳承의 다자 번역 형식을 원용하면 많은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둘째, 대학의 영어권번역연구소와 전문 번역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국내외의 불교학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과 영어 번역이 가능한 한국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 번역본은 국내외의 유수한 출판사와 유명 대학출판사에서 출판해야 한다. 전문성과 시장성을 갖춘 출판사에서 간행함으로써 번역 논저가 연구자의 손에 직접 닿을 수 있게 해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완성도가 보다 높은 번역본이 출간되고 소통되어 좀더 심화된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한국어와 영어 권역 불교학술 논저의 공유와 소통 및 연구의 심화를 위해서는 한국학으로서 불교학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 한문번역에 익숙한 이들을 발탁하여 지원함으로써 한국불교 고전의 완역본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2) 우리말로 완역된 한국불교 고전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을 발탁하여 번역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동시에 국외에서 이루어진불교학의 여러 논저들을 영어 번역이 가능한 한국인을 선발하여 번역할 수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3) 이렇게 이루어진 번역본을 국내외의 유수한 출판사와 유명 대학출판사에서 출판하여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연구 성과가 세계의 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결과물로 다가가고, 국외의 연구 성과가 우리의 국민들이 접할 수 있는 결과물 다가올 때, 우리는 한국 불교학의 세계화와 세계 불교학의 한국화라는 과제를 해결해 갈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was intended to explore the measures that could help examine universal language and grammar used in Buddhist Studies which were performed as Korean Studies based on global insight and in global community. Interdisciplinary communication might be the most outstanding issue among scholars in this era of internalization and globalization. Communication between Korean language and foreign language may represent the challenge of the times, regardless of whether the communication is facilitated by interpreter or translator. How have the writings and words articulated by those living in different time and space, i.e., the language an sentences, been understood and perceived when they encounter each other? How are the results of ‘National Studies’ at home and results of ‘Korean Studies’ abroad being communicated and shared among scholars? To answer this question, we need to share research articles of Buddhist Studies which are carried out in Korea or abroad, as well as results of National Studies and Korean Studies, and further deepen the research. Above all, there should be groundswell of public opinion throughout society for translation of various articles of Buddhist Studies performed in Korea and overseas countries, along with institutional support. Through such process, results of domestic and overseas studies should become viable outcomes for citizens around the globe and results of overseas studies should become viable outcomes for Korean citizens. Then, we will be able to resolve issues of internationalization and globalization. After all,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ultimately aim to promote communication and sharing of results derived from studies. To resolve this issue, several tasks should be completed. First, classics should be translated by multiple translators, instead of single translator. For Korea Buddhism classics, original scripture should be first translated into Korean version through multi-party translation. Based on the translated scripture, many ambiguities can be resolved through multi-party translation of succession of Tipitaka(三藏 傳承). Second, translation research institutes of universities in English-speaking countries and professional translators should be fully leveraged. Particularly, native English speakers and Koreans capable of translating English into Korean should be fully utilized to ensure that results of domestic and overseas Buddhist Studies can be shared. Third, translated scripture should be published by prominent domestic and overseas publishers and renowned university publishers. The translated versions should be made directly available to researchers by ensuring that the publication is made by publishers with proven professionalism and marketability. In that way, translated scripture with greater perfection can be published, leading to more profound research findings. Thus, Buddhist Studies need to be researched as Korean Studies for communication of articles of domestic and overseas Buddhist Studies and furtherance of studies. For that, 1) those well-versed in translation of Chinese letters need to be recruited to secure complete translations of Korean Buddhist classics. 2) Korean Buddhist classics translated in Korean language should be translated in English by recruiting those who use English as mother tongue, and at the same time, Koreans capable of translating various overseas articles of Buddhist Studies in English should be also recruited to secure English translations. Furthermore, 3) such translations should be published by prominent domestic and overseas publishers and renowned university publishers so as to make them available to researchers. Thus, results of studies performed by Koreans can become accessible by citizens worldwide and outcomes of studies abroad can become accessed by Koreans. Then, we will be able to resolve the issues related to globalization of Korean Buddhist Studies and Koreanization of global Buddhis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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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帝下 寺法에 관한 연구

          김경집 한국불교학회 2007 韓國佛敎學 Vol.49 No.-

          the Japanese imperialism governed Korean Buddhism to use the sabob(寺法) that controlled law of korean buddhism in 1911. Korean Buddhism was converted a thirty main temples of Buddhist sects by the controlled law of korean buddhism. Each thirty main temples of Buddhist sects established the sabob and gained the permission of The government-general. As a result, the Japanese imperialism had a hold on personal management and economic bloc of korean buddhism by the sabob. In accordance with the Japanese imperialism policy, the ceremony of Korean Buddhism had disappeared and the ceremony of Japanese Buddhism were flourished in Korean society. The government-general reformed the sabob toward permission the korean monk’s marry and eat meat in 1926. The government-general had established the taegosabob and deepen the colonialization of Korean Buddhism in 1941. The result, many tradition of Korean buddhism was collapsed. The monks had dominated korean buddhism became the pro-Japanese group, and work up spiritual and material assist when the Japanese imperialism starts a war with America from December. 8. 1941 to August. 15. 1945. 1910년 8월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한국불교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실시하였다. 그들은 한국불교의 종파를 폐지하는 한편 향후 통제를 위한 법령을 제정하였다. 그것이 1911년 6월 제정된 사찰령이다. 이 법령에 의해 한국불교는 30본산제로 전환되었으며, 각 본산은 100조에 달하는 본말사법을 제정하여 총독부의 인가를 얻어야 했다. 그 결과 일제는 이 사법에 의해 한국불교의 인사권과 경제권을 장악하여 자신들이 바라는 식민지 지배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사법이 제정되면서 가장 변화된 것은 불교 교단이었다. 1902년 대한제국이 사사관리서의 설치와 현행세칙의 제정으로 생겨난 대법산제와 이후 한국불교의 독자적인 의식에 의해 형성된 원종과 임제종이 폐지되고 30본산제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제도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승직과 법식 또한 일제가 의도하는 대로 변질되어 한국불교의 법식은 사라지고 일본불교의 법식이 유행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법령이 제정되고 한국불교가 일제의 통제 하에 놓이자 이를 비판하고 폐지하자는 여론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자 일제는 한국불교의 현실에 맞게 개정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실제 개정할 때에는 한국불교의 식민지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특히 당시 불교계의 최대 현안이었던 대처육식의 문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시키면서 한국불교의 지계 정신을 악화시켰다. 이것은 승풍의 변질로 이어졌고 친일적인 인물이 주지에 임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30년대 말에 이르면 일제는 한국불교의 통합 의지를 허용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전시에 필요한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새로운 태고사법으로 전환하고 불교계를 총본산제로 개편하였다. 이런 변화로 한국불교는 오랜 염원이었던 총본산을 건립할 수 있었지만 이때 종권을 장악한 인사들은 더욱 친일화 되었다. 그래서 1941년 12월 8일 시작된 태평양 전쟁에서 일제의 승리를 위해 정신적인 지원과 함께 물질적 지원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 韓國 近代佛敎 ‘帶妻食肉’의 二元的 路線

          김광식(Kim Gwang sik)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5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3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고찰은 한국 근대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불교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일본불교의 상징으로 지칭되었던 이른바 ‘帶妻食肉’의 문제를 정리한 논고이다. 근대기 불교의 대처식육에 대한 문제는 근대불교의 본질 이해의 단서로 인식한 연구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한국 내부의 대처식육의 인식 및 수용에 대한 이념, 한국불교내부의 대처식육에 대한 찬반양론의 흐름은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 영향을 미친 일본의 대처식육에 대한 성격까지는 연구가 미치지 못하였다. 대처식육의 문제는 한국의 근현대 불교를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주제이다. 이를 통하여 韓日 불교의 교류, 이질적인 불교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지금까지 연구는 연구 관점의 단순성, 민족 감정의 문제, 일본에서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지 않은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개재되어 심화되지 못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연구 성과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이 고찰에서는 대처식육이 한국 근대불교에 수용되었던 제반 흐름을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개괄적으로 살폈다. 그러면서 대처식육에 대한 수용을 긍정(善)과 부정(惡)으로 대별하면서 그에 내재한 인식을 분석하였다. 본고가 한일불 교 문화의 이해, 교류 등에 일조가 되길 기대한다. 本考察は、韓国近代佛教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日本佛教に対する本質を理解するために、日本佛教の象徴ともいわれている'帶妻食肉'の問題を整理した論考である。近代期佛教の帶妻食肉に対する問題は、近代佛教の本質理解の手掛かりとして認識している研究がいくつなされている。しかし、韓国内部の帶妻食肉の認識やその受容に対する理念、韓国仏 教内部の帶妻食肉にたいする賛否両論の流れは整理されていない。特に韓国に影響を及ぼした日本の帶妻食肉に対する性格までは研究が進んでいない。帶妻食肉の問題は、韓国の近現代仏教を説明する最も本質的な主題であるといえる。それにも関わらず、韓国での今までの研究はその観点の単純性、民族感情の問題、日本での研究成果を反映していない限界などが複合的に関わり、研究が深まらない原因になっていると思われる。筆者は、このような研究上の限界を認識しながら、この考察では帶妻食肉が韓国近代佛教に受容されてきた流れを幾つかの時期に区分して概括的に論究した。また、帶妻食肉の受容を肯定(善)と否定(悪)として大別し、それに内在している認識を分析した。本稿が韓日佛教文化の理解、交流などに少しでも役に立つことを期待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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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전서』의 편찬과 과제

          조은수 한국불교학회 2014 韓國佛敎學 Vol.69 No.-

          The Han’guk Pulgyo chŏnsŏ (Complete Works of Korean Buddhism) is an enormous compilation of the entire literary output of the 1,700-year-old Korean Buddhist tradition, in 14 massive volumes, reflecting the ideologies, thought, culture, and very identity of Korean Buddhism. Contained within are commentaries on sutras and treatises; recorded Sŏn sayings, collections of koans and poems, travelogues, historical documents, inscriptions, and more. This paper retraces the 30-year history of the chŏnsŏ, from plans first made in 1970 to the final volume in 2004. It examines the historical circumstances and needs that prompted its creation, as well as the central role played by figures such as Ko Ik-chin. It is clear that the chŏnsŏ was the fruit of deep devotion and determined effort to fulfil a long-standing desire of Korean Buddhist scholars. This paper also reviews the schematic principles adopted in the current chŏnsŏ – the range and types of included texts and the selection of recensions. There are many points of improvement: basic tools such as an index are lacking, as well as deficiencies in text numbering, punctuation marks, and provision of digital services. Improving digital services in particular is of critical importance in enhancing the accessibility and utilization of the chŏnsŏ. 『韓國佛敎全書』는 한국 불교 역사 속에 나타난 문헌적 성과의 집대성이다. 경전과 교학 율학 문헌에 대한 주석류, 선승들의 어록, 공안집, 게송, 여행기와 역사문헌, 비문, 시문, 한글 가사, 언해문 등 많은 다양한 문헌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불교전서』는 한국의 불교학계의 오랜 바램이 모여져서 1970년대 그 편찬의 계획이 수립되었고, 고익진 박사 등의 주도하에 1979년 첫권이 출간된 이래 2004년 마지막 14권이 발간됨으로써 30여년에 걸쳐 전 14권의 총서로 출간되었다. 본 논문은 『한국불교전서』의 편찬을 촉발시킨 당시의 사회적 학문적 배경과 편찬 과정을 살펴본 후에 그 편집 체재를 분석하여 수록 범위, 수록된 문헌의 종류, 문헌의 배열 방식, 선정과 교감 표식 등에 있어서의 원칙을 찾아보았다. 한편 이러한 특장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색인 등 공구서가 개발되어야 하며, 일련번호, 구두점, 그리고 현재의 디지털 서비스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음을 지적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의 새로운 문헌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고 기존 입력 자료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교감이 요구되기에 디지털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야 말로 현재의 한국불교전서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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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고 고익진의 삶과 학문세계

          이봉춘 한국불교학회 2014 韓國佛敎學 Vol.69 No.-

          Most Korean scholars in Buddhist studies recognize Koh Ik-jin (1934-1988) as a topnotch scholar in modern Korea. This consensus among academia is due to his great achievements in the study of early Buddhism and Korean Buddhism. They also underscore his character who endeavored to realize the Buddhist ideals in both areas of theory and practice by organizing the Ilseung Bosalhoe (Bodhisattva’s Society for the One Vehicle). Although he was short-lived, his life troubled by life-long pain from illness and his scholarship characterized by immense breadth and depth are indeed impressive. Because he was able to encounter Buddhism and accomplish his scholarship due to the suffering from illness, he regarded it as a wonderful companion in his life. His severe illness awakened him to the impermanence and true meaning of life and propelled his search for the truth. The Buddhist way he pursued was, however, not a blind or obsessed faith but a path to enlightenment predicated on the critical attitude. Thus, his Buddhist scholarship denotes his existential orientation. The scholarship of Koh Ik-jin, who began his study in Buddhism very late in his life, can be appreciated by going over his achievements made during about fourteen years of his academic career. These achievements, which were published in about 40 papers, are concerned with (1) pioneering the study of early Buddhism and laying a firm foundation for its further research, (2) establishing comprehensive and systematic Buddhist thought which includes both Hinayana and Mahayana Buddhism, (3) presenting an ideological vision for Korean Buddhism, and (4) editing and publishing the Han’guk Bulgyo jeonseo (The Complete Works of Korean Buddhism) series. His scholarly vision can also be discerned from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Ilseung Bosalheo. As this society aims at spreading Buddhism for people engaged in society, it should be labelled as a new Buddhist movement in which people pursue Buddhist enlightenment and practice in their daily life. In other words, he endeavored to realize the Buddhism that transcends the boundaries of academia and actively participate in the secular realm. 한국의 불교학자들 대부분은 근현대 한국불교학의 대표학자로 고익진(1934~1988)을 손꼽는다. 그가 초기불교 연구에 초석을 다지고 한국불교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일승보살회를 조직하여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병행한 학자였다는 인식에서이다. 길지 않은 삶을 살다간 고익진은 평생을 동반한 병고와 광범하고 정치한 불교학 연구 두 가지 코드로 읽혀진다. 그에게 있어서 병고는 차라리 경외로운 도반이었다. 그로 인해 불교와 만나고 불교학을 이루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독한 병고 속에서 인생의 무상과 함께 참 삶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은 진리탐구의 길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는 신앙에의 맹목적인 추종이나 매몰이 아닌, 비판적 각성을 전제로 한 구도의 길이었다. 그만큼 그가 연구 개척해온 불교학은 실존적 성향을 띤다. 만학으로 시작한 고익진의 학문세계는 동국대 강사 시절을 포함하여 불교학과 교수재임까지 14년 정도의 기간 중에 이루어낸 불교학연구의 업적들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① 거의 전무하던 초기불교분야의 연구 개척과 정초 ② 대소승을 포괄하는 불교의 일원적 사상체계 정립 ③ 한국불교의 사상적 비젼 제시 ④ 『한국 불교전서』 편집 간행 등으로 요악할 수 있다. 이들 업적은 그가 남긴 대략 40여편의 저술과 논문 속에 담겨 있다. 이와 더불어 고익진의 학문세계는 일승보살회의 조직과 활동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생활인의 불교를 표방하며, 생활 속에서 깨달음과 그 실천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결사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학문에만 갇혀 있는 불교가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약동하는 불교를 이루고자 하였다.

        • KCI등재

          한국불교 계율학의 연구성과와 전망

          신성현,하춘생 한국불교학회 2013 韓國佛敎學 Vol.68 No.-

          The research of disciplinary code in Korean Buddhist academiahas been actually started from offering the course of disciplinarycode in the department of Buddhist studies at Dongguk University. It is commonly known that the First Buddhist Council was held soonafter the mahaparinirvana of the Buddha, dated round 400 BCE inwhich the Vinaya was recited by Upali. About 100 years after theBuddha's Nirvana the Second Buddhist Council at Vesāli derivesprimarily from the canonical Vinayas of various schools which theoverall result was the first schism in the Saṃgha between theSthaviras and the Mahāsāṃghikas because of disagreement of theinterpretations on the Vinaya disciplinary rules. When disciplinarycode was respected and the study of Vinaya was thriving Buddhistmonastics was also flourishing in the history of Buddhism not onlyTheravada but Mahayana. As time goes on, however, Dharma andVinaya in Buddhist monastics have not been respected and alsogiven circumstances were not amicable. It seems to be the mostoverlooked that the codification and interpretation of disciplinarycode is the result of historical accumulations. Therefore, it is self-evidence that the studies of disciplinarycode would be towards applying to real world. Living Buddhism isnot just an ancient belief system superimposed on modern societiesbut it is itself shaped by the forces of history and culture. All extant Vinaya texts included the Dharmaguptakas Vinaya (Four PartsVinaya, 四分律) which is followed by Korean Buddhism should becarefully reinterpreted and taken in the original meanings. Forinstance, it should be a clue the interdisciplinary research betweendisciplinary code and modern ethics. In addition, the Vinaya textsin Pāli should be urgently translated for grasping the originalintention and meaning of the codification Vinaya. The academicresearch of scholars should be conducted in such directions and soits result should be contributed for better circumstance to Buddhistmonastic community. 한국의 불교학계에서 계율연구가 본격화된 시점은 이지관이 1975년 동국대 박사학위논문으로 『南北傳六部律藏比較硏究-四分律比丘戒本을 중심으로-』를 발표한 이후 실질적으로는 1977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계율학 과목이 신설되면서부터이다. 주지하다시피 계율이 처음 결집된 것은 불멸직후에 이뤄진 제1차 결집 때 우바리존자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불멸 100년 후 웨살리의 제2차 결집 때 계율에 대한 해석차이로 부파분열이 일어나면서 각 부파마다 독립적 계율을 전승하게 되었다. 이후 율장은 5본으로 정리되어 남․북방으로 전해졌고, 북방불교의 종주국인 중국의 경우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唐代 측천무후시대에 이르기까지 6전의 율부가 모두 번역되었다. 특히 수당 이후부터는 『사분율』의 세력이 왕성해지면서 중국율통의 기초를 다지는 일가를 이루게 되었고,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사분율』에 의거해 수구의식을 치러온 기반을 이룬 것도 그러한 역사성에 따른 것이다. 남․북방의 불교통사를 통해 교단의 모습을 살펴보면 계율이 존중되고 계율학이 번성했을 때 교단도 함께 번성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불교사에서 일찍이 불교의 전성기를 누렸던 백제와 신라시대에 범본율본이 확립되고 범망경 등의 대승계가 번성했던 사실은 그 같은 역사성을 잘 반증해준다. 하지만 갈수록 교단 안에서 율법을 숭상하지 않고 계율을 존중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곧 율의 성문화와 율의 해설 등이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불교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불교의 현실에서도 정상적으로 비구생활을 하는 비구들이 괴팍한 사람으로 천대받는 까닭은 생명성 없는 과거 인도불교의 관념이나 중국불교의 관념으로 한국의 현대인들을 규범한 데서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계율학의 연구가 현실에 적용하고자 하는 의지와 지혜를 발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불교가 의존하고 있는 『사분율』을 비롯해 모든 율장의 재번역을 통해 계율제정의 취지를 바로 알고자 하는 일이 시급한 까닭도, 불교의 현대윤리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계율제정의 본의를 바로 살펴야 한다는 점에서는 율본의 원전인 빨리율의 번역도 매우 시급한 일로 지적된다. 계율연구자들의 이러한 연구자세와 방향제시야말로 율법을 숭상하지 않는 교단현실의 지표로 작용해 계율을 선양하고 존중하는 환경조성에 큰 몫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는 동국대 불교학과에 계율학 과목이 처음으로 신설된 이후 현재까지 30~40여 년 동안 한국의 불교학계가 일궈낸 계율관련 연구성과를 고찰해 계율이 던져주는 의의와 향후 계율연구의 방향 및 전망 등을 살펴보는데 그 의미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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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불교의 토착화와 구심화 - 融和와 敎化를 중심으로 -

          고영섭 한국불교학회 2015 韓國佛敎學 Vol.75 No.-

          이 논문은 불교의 한국 토착화와 구심화 과정을 ‘융화’와 ‘교화’의 관점에서 살핀 글이다. 이미 오래 전에 이 땅에 토착화하고 구심화해 온 한국불교가대한시대(1897~통일이전) 이래 서양종교의 공격적 선교전략으로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다시 토착화와 구심화 및 대중화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고대에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서 전래한 불교는 고유의 토착신앙인 천신신앙과 산신신앙 및 이들 신앙과 융화한 무속신앙과 대립하면서 갈등하였고 융화하면서 교화하였다. 불교는 전래와 수용과 공인의 과정을 통해 천신신앙과 산신신앙 및 무속신앙과 대립하고 융화하면서 교화해 왔고 나아가 도교와 유교와도 갈등하면서서로 융화해 왔다. 불교 전래 이후 사찰의 건축구조 내에서 상당-중당-하당이보여주듯이 천신신앙과 산신신앙 및 무속신앙은 전통적 三才思想의 구조를견지해 오고 있다. 비록 불교에게 중심적 지위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토착신앙의 기능과 역할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불교 역시 토착신앙인 천신신앙과 산신신앙과 무속신앙뿐만 아니라 도교와 유교와 ‘融和’하며 공존해 왔다. 불교가 한국의 토양에 토착화 할수 있었던 것은 다른 종교의 문화적 과정을 적대하지 않고 해당 종교의 진리성을 수용하는 불교의 포괄주의적 입장과 태도를 견지해 왔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불교 특유의 포용성과 관용성에 힙입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현세와 내세의 복을 기원하는 미륵신앙과 관음신앙및 아미타신앙 등과 같은 불교신앙이 널리 확산될 수 있었다. 그 결과 불교는토착신앙들과 융화하면서 교화해 올 수 있었고 도교와 유교와 융화하면서 공존해 올 수 있었다. 불교는 이러한 ‘융화’의 지혜와 ‘교화’의 자비를 통하여이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 고대불교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지혜’를 통한 ‘융화’와‘자비’를 통한 ‘교화’로 천신신앙과 산신신앙 및 무속신앙과 도교와 유교와융화하고 공존할 수 있었다. 때로는 한국의 토착신앙을 물리치거나 융화하면서 때로는 한국의 고유 신앙을 깨우치거나 교화하면서 ‘한국불교’로 토착화할 수 있었다. 많은 연구자들이 한국불교의 특성 혹은 성격을 ‘통합불교’ 또는 ‘종합불교’라고 일컫는 까닭은 ‘中道’ 즉 ‘正道’라는 불교 본연의 정신에 서서 통합하고 종합해 왔기 때문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research the Korean naturalization and centripetalization of Buddhism from the viewpoint of “harmony” and “reformation.” Korean Buddhism was naturalized and centripetalized in Korea long ago. It has been expelled from the main stream since the Daehan period (1897~until before unification) because of aggressive missionary work by Western religions. Now, it is time to worry about the naturalization, centripetalization and popularization again. Buddhism that was introduced as a new social phenomenon in ancient Korea has conflicted against, harmonized with and reformed unique indigenous religions such as the gods of heaven religion and the mountain spirit religion and shamanism, fusing these regions. Buddhism has conflicted against, harmonized with and reformed the gods of heaven religion, mountain spirit religion and shamanism through the introduction, acceptance and official approval process. Since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as the construction structure of the temple shows in Sangdang-Jungdang-Hadang, the gods of heaven religion, the mountain spirit religion and shamanism have maintained the structure of traditional Samjae Thought. Although indigenous religions yielded the central position to Buddhism, their functions and roles have been maintained. At the same time, Buddhism has harmonized with and coexisted with Taoism and Confucianism as well as the indigenous religions such as the gods of heaven religion, mountain spirit religion and shamanism. The reason that Buddhism could be naturalized in the soil of Korea was the comprehensive viewpoint and attitude of Buddhism that admitted the cultural processes of other religions without harboring antagonism against them. At the same time, the catholicity and generosity of Buddhism to admit and accept differences was helpful for the naturalization process. In this way, the Buddhist belief that prays for fortune in this world and during one’s lifetime such as the Mireuk belief, the Gwaneum belief or the Amita belief could be widely expanded. As a result, Buddhism could harmonize with and reform indigenous religions and also harmonize with and coexist with Taoism and Confucianism. Buddhism became rooted deeply in Korea through the wisdom of “harmony” and the generosity of “reformation.” The ancient Buddhism of Korea harmonized with and coexisted with the gods of heaven religion, the mountain spirit religion, shamanism, Taoism and Confucianism through the “wisdom” of “harmony” and “generosity” of “reformation.” It was naturalized as “Korean Buddhism” while defeating or harmonizing with the indigenous religions of Korea or enlightening or reforming them. The reason that many researchers call Korean Buddhism “integrated Buddhism” or “synthesized Buddhism” is that Buddhism has unified and synthesized other religions with the original mind of Buddhism, the “midway” or “right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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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石顚과 漢岩을 통해 본 불교와 시대정신

          염중섭 한국불교학회 2014 韓國佛敎學 Vol.71 No.-

          Under the Japanese Buddhism that fully allowed monks to take wives and eat meats in the early Meiji Restoration, Korean Buddhism faced a great crisis in keeping the pure tradition of home-leaving saṃgh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ose days, many Buddhist scholars led the reckless movement to learn the Japanese Buddhism, criticizing the powerless Korean Buddhism and comparing it with Japanese Buddhism actively supported by mighty Japanese government. The typical person was Han Yong-wun. He made effort to make Korean Buddhism ‘advanced’ as like Japanese one, sending the Japanese Governor a letter of suggestion about the monk’s wife-taking. But, it was a wrong judgment that destroyed the tradition of Korean Buddhism. Seogjeon(石顚), a monk in the age of Japanese colony, was one of the most excellent Buddhist scholars who was expert in Zen(dhyāna), Doctrinal(vinaya) and Disciplinary(śīla) Buddhism. When the wife-taking became an issue, he tried to block the influence of Japanese Buddhism through the disciplinary education. The result was his book <Gyehag Yagjeon(戒學約詮)>. Furthermore, Seogjeon himself kept on the pure disciplinary way of life, showing an upright standard for monks. With this, Seogjeon’s status went high in the Buddhist world and he was elected as Gyojeong(敎正) the highest master of Korean Buddhism in 1929 and 1946. Hanam(漢岩) was a little younger than Seogjeon. Hanam became the supreme Zen master in those days. He was very strict in the doctrine and the discipline which had been frequently neglected by other Zen masters. Due to this, he came to develop the soft and rather feminine style of Zen while his master Gyeongheo(鏡虛) showed the masculine style of Zen. Especially, Hanam’s Zen style was combined with the strict discipline to establish a peculiar range named ‘Seongye Ilchi(禪戒一致, unity of Zen-Discipline).’ This fresh Zen style of Seongye Ilchi is noteworthy for a very appropriate and desirable practice method in the present Korean society which is going into the advanced one. Hanam was so expert in Doctrinal and Disciplinary Buddhism as well as Zen that he became a good model of Korean Buddhism. Therefore, he became Gyojeong and Jongjeong(宗正) of Korean Buddhism four times in 1929, 1935, 1941, and 1948. Seogjeon and Hanam were the leaders of Korean Buddhis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right after the Korean independence, laying the foundations of present Korean Buddhism. Their teachings will be a good guideline for the Korean Buddhism that is preparing the future development. 일제강점기 한국불교는 메이지유신 초에 娶妻.肉食이 완전 허용된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청정한 출가승단의 전통이 위기에 직면한다. 당시 불교지식인들은 조선조의 무력한 한국불교에 대한 자기비판과, 강국 일본의 위상을 후광으로 가진 일본불교를 비교하며, 무분별한 일본불교 배우기에 앞장선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한용운이다. 한용운은 총독부에 帶妻에 대한 건의서까지 제출하면서,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와 같이 선진화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불교의 전통을 무너트리는 오판이었다. 石顚은 일제강점기 禪.敎.律에 능한 최고의 敎學 승려로써, 대처가 문제되자 戒律교육을 통해 일본불교의 영향을 막아내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탄생한 저술이 ..戒學約詮..이다. 또 석전은 스스로도 청정한 戒行을 지켜, 승려로서의 반듯한 모범을 보인다. 이와 같은 석전의 불교계 위상은, 1929년과1946년에 한국불교의 최고 어른인 敎正에 추대되도록 한다. 漢岩은 석전과 조금 늦은 동시대인으로, 일제강점기 禪수행의 최고 경지에 이른 분이다. 한암은 禪師들이 등한시하기 쉬운 敎學과 戒行에도 철저했다. 그로 인하여 스승인 鏡虛의 남성적인 禪風과는 다른, 부드러운 여성적인선풍을 개척하게 된다. 특히 한암의 선풍은 엄격한 계율과 결함되어 ‘禪戒一致’라는 독특한 경계를 정립한다. 이러한 禪戒一致의 청정한 선풍은, 오늘날선진국으로 접어드는 한국사회에 있어서 가장 적합하고 귀감이 되는 수행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암의 敎學과 律에도 능통한 禪師로서의 모습은, 한국불교의 사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1929년.1935년.1941년.1948년, 이렇게 무려 4차례나 敎正과 宗正이라는 한국불교의 최고 지위에 오르게 된다. 석전과 한암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 한국불교를 주도했던 분들로, 오늘날 한국불교의 초석을 다지신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로 나아가는 한국불교에 있어서, 이 분들의 가르침은 더 없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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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한국의 세속불교 : 기원, 전개 및 배경

          김종명 한국불교학회 2020 韓國佛敎學 Vol.93 No.-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origins of secular Buddhism, which is used as a synonym for Buddhism for blessings in this paper, together with its development and background in ancient Korea. In India, early Buddhism was a self-sustaining life education system. However, Buddhism introduced to ancient Korea was a Chinese form of Buddhism as a belief system. The agents of Buddhist acceptance in ancient Korea was the political circles, and Buddhism functioned as a political religion, a religion for blessings, and a miraculous religion at that time. Believing in karmic retribution, ancient Korean intellectuals, including kings and nobles, misunderstood Buddhism or had limitations in understanding it: they regarded the Buddha as a divine being, Buddhism as a belief system, and the Buddhist community as a subject of national control. This tradition is believed to have continued until the present with different forms and contents. These characteristics of ancient Korean Buddhism still remain points of debate for further study in term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the Buddhist philosophical meaning of the theory of karmic retribution, Buddhism as a tradition,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sity and intelligence. 이 연구의 목적은 4세기부터 10세기까지 고대 한국의 기복불교로 대표되는 세속불교의 기원과 전개 및 배경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기복불교는 한국불교의 제반 문제점이 집약적으로 돌출된 현상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이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거의 없었다. 3장의 본문으로 구성된 이 논문의 1장 「세속불교의 기원」에 서는 인도로부터 중앙아시아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다시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된 세속불교의 기원에 대해 검토하였다. 2장 「세속불교의 전개」에서는 4세 기부터 10세기까지 한반도에서 전개된 세속불교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 논하였다. 3장 「세속불교의 배경」에서는 세속불교의 인적 배경으로서 승려, 국왕을 포함한 왕족 및 관리로 대표되는 지식인들의 불교관 및 세속불교의 사상적 배경으로서의 업설을 검토하였다. 초기 불교는 자력에 바탕을 둔 인생교육제도였다. 그러나, 불교의 시공간적 전개와 함께, 그 성격도 변하였으며, 업사상을 바탕으로 한 기복신 앙은 그 대표적인 산물이었다. 인도에서 성격 변화를 거친 초기불교는 중앙아시아로 전파되었으며, 다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다. 중국으로 전파된 불교는 중국화의 과정을 거쳤으며, 고대 한국에 처음 전해진 불교도 이러한 중국화 된불교 전통이었다. 초기불교의 성격 변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정치계와 불교계의 유착으로 간주된다. 현존 자료들에 의하면, 고대 한국에서도 불교 수용의 주체는 정치권이었으며, 불교는 정치 종교, 기복 종교 및 기적 종교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고대 한국의 세속불교 전통의 인적, 사상적 배경은 당시의 지식인과 업사상으로 나타났다. 불교의 수용 및 전개와 관련된 당시의 지식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잘못되었거나, 제한적이었는데, 그들은 초기불교에서와는 달리, 붓다를 신적 존재 로, 불교를 타력 신앙으로, 승단을 국가적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이 전통은 고려(918~1392)와 조선(1392~1910)을 거쳐 현재까지도 그 형태와 내용을 달리한 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 한국불교의 뿌리가 된 고대 한국불교의 이러한 특성들은 종교와 정치의 관계, 업설의 불교철학적 의미, “전 통”으로서의 불교, 종교성과 지성의 관계 등의 측면에서 추후 연구를 위한 논쟁점 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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