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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호 <남향집> 제작연도에 관한 실증적 연구

        오병희(Oh Byung hee) 한국조형디자인학회 2017 조형디자인연구 Vol.20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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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향집>은 1930년대에 한국의 자연에 바탕을 둔 한국적 인상주의의 완성한 오지호의 대표작이다. 그리고 <남향집>은 오지호가 1935년부터 1944년까지 거주했던 개성 초당집의 사랑채와 앞뜰의 대추나무를 그린 작품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본 연구는 <남향집>이 1947년경 제작되고 1960년대 후반에 제작되거나 보필되었다는 연구에 관해 반론을 제시하였다. 각종 문헌과 아카이브 자료, 보고서를 근거로 <남향집>이 1939년 빛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그린 근대미술작품임을 증명하였다. 또한 1948년 오지호 개인전에 사양(斜陽, 25호)으로 출품된 <남향집>에 관한 오지호의 작품 설명을 분석하여 작품을 제작한 계절과 시간, 작품 속 소녀에 관해 밝혀보았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남향집>이 1947년경 제작되고 1960년대 후반 재제작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작품에 대한 사실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먼저 <남향집>이 일제강점기 개성 초당집 사진의 구도, 기물 등과 일치하지 않다는 주장에 관해 개성집 초당집 사진과 <남향집> 작품을 유족의 증언을 토대로 비교․분석하여 일치함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남향집>의 소재가 전남 화순 동복의 오지호집이라는 주장에 대해 오지호 동복집은 기와집으로 기와집을 초가집으로 바꾸어 <남향집>을 그릴 수 없다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해방 후 재제작 되었다거나 앞, 뒷면이 달라 보필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1948년 오지호 개인전을 도운 김은수의 회상의 글을 근거로 당시 개성시기 현존하는 작품이 완벽한 상태였으며 1955년 오지호가 목조로 지은 작품 친화적인 오지호 화실을 통해 반증하였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08년 오지호 작품 27점을 과학적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해방 후에 오지호가 작품을 덧칠하거나 재제작 했을 가능성이 희박함을 밝혔다. 본 연구의 <남향집>의 제작시기, 재료분석, 작품분석을 통해 한국적 인상주의를 완성한 오지호와 <남향집>에 관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South Facing House is considered a seminal work by Oh Ji-ho who works in a kind of Korean-style Impressionism based on Korean nature. This painting features Sarangchae, a detached building of a residence used as a reception room for male guests, and a jujube tree in Chodangjip in Gaeseong where Oh resided from 1935 to 1944. This residence has been designated as a registered cultural property. This study raises an objection to an assertion that South Facing House was painted and complemented in 1947 or in the late 1960s. This study has verified that this work is a modern artwork painted in 1939 on the basis of literature, archived materials, and survey reports. It has also tried to elucidate the season and time of this painting and the girl appearing in this work based on the description of South Facing House that was on show at Oh’s 1948 solo exhibition under the title The Declining Sun. This has also verified the assertion that this work was not painted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First of all, it has been proved that the setting of furniture and house hold items in South Facing House matches up with that of the photograph featuring Chodangjip through a comparative analysis on the basis of the bereaved family’s testimony. As to the assertion that South Facing House is a depiction of Oh’s house in Dongbok, Hwasoon, Jeonnam, this study provides evidence that the that thatched-roof house in South Facing House could not have been painted from the roof-tiled house in Dongbok. It has also proved its opposition against the assertion that this work was produced after liberation in consideration of its preservation and material, based on an essay by Kim Eun-soo who assisted at Oh’s 1948 solo exhibition. This study has revealed that the possibility of this work being repainted or reproduced by Oh after liberation is extremely low based on the materials of 27 pieces which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scientifically analyzed. A reasonable evaluation of Oh Ji-ho s Korean-style impressionism and his work South Facing House can be made through an analysis of the production period and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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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화단의 모더니즘 추상미술 전개에 관한 연구

        오병희 ( Oh Byung Hee ) 한국기초조형학회 2017 기초조형학연구 Vol.18 No.1

        본 연구의 목적은 광주의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흐름을 통해 광주에서 앵포르멜 추상이 시작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추상 모더니즘을 지향한 독창적인 예술가들이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창작한 한국 추상미술에서 광주가 중요한 지역임을 고찰하는데 있다. 광주사범학교 교사인 강용운과 양수아가 전개한 앵포르멜은 광주를 비롯한 현대적 의미의 우리나라 현대추상운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강용운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 앵포르멜 영향을 받은 추상 작품을 그렸으며 양수아는 1948년 광주미국공보원에서 추상화전을 열었다. 광주의 앵포르멜 추상은 박서보, 하인두보다 빠르며 강용운의 <봄>(1947)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 모더니즘 추상운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 후 광주의 모더니즘 추상운동은 광주사범학교에서 강용운, 양수아에게 수업을 받은 정영렬, 최종섭, 우제길, 최재창, 장지환 등이 주도한다. 이들은 1964년 설립된 모더니즘 추상미술 단체인 에뽀끄를 중심으로 광주화단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1970년대 광주 추상화가들은 회화의 평면성을 확보하면서 객관적, 분석적으로 화면을 재구성한 모노크롬 추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향의 추상 작품을 제작한다. 1980년대 이후 최종섭, 김종일, 우제길 등 광주의 추상 모더니즘 작가들은 독창적인 화풍의 작품을 창작했다. 최종섭은 우리 정서와 문화를 한지의 물성으로 표현한 단색 위주의 모노크롬 추상회화 <코리아환타지> 연작을 제작한다. 김종일은 1970년대 그린 검정 모노크롬 회화에서 1980년대 이후 검정에 색을 넣은 작품을 그렸다. 우제길은 빛에 의해 발현된 물체와 색을 바탕으로 물질의 본질을 연구하고 실험하였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개최 이후, 추상회화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미술 등 미술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This study is an inquiry into the fact that Informel in Korea first started in the Gwangju area and Gwangju was a significant region in Korean abstract art where creative artists who practiced abstract art of the 1960s produced works through which they experimented with a wide range of styles and explored their identities. Informel in Korea initiated by Kang Yong-un and Yang Su-ah, teachers at Gwangju Teachers` School, was the departure point of the modern Korean abstract art movement. Kang produced paintings influenced by Art Informel from the late 1940s to the early 1950s while Yang held his solo show of abstract paintings at the 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in Gwangju in 1948. Gwangju`s abstract Informel art was ahead of that of Park Seo-bo and Ha In-du. It can be seen as a progenitor of Korean modernism and abstract art if we consider Kang Yong-un`s Spring (1947). Gwangju`s abstract art movement was led by Jung Young-ryeol, Choi Jong-seob, Woo Je-gil, Choi Jae-chang, Jang Ji-hwan, and others who studied under Kang Yong-un and Yang Su-ah at Gwangju Teacher`s School. They actively worked in the Gwangju art community with Epoque, a modern abstract art organization founded in 1964. The Gwangju abstract art scene of the 1970s produced abstract works of great diversity, concentrating on monochrome art in which images are objectively and analytically shaped while attaining a painting`s two-dimensional trait. After the 1980s, Gwangju`s abstract artists such as Choi Jong-seob, Kim Jong-il, and Woo Jae-ghil created works of art in their ingenious styles. Choi Jong-seob produced the serialized work Korean Fantasy, including monochrome abstract paintings in which the artist represented our emotion and culture with the material property of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Kim Jong-il worked on black monochrome paintings in the 1970s and works adding additional colors in the 1980s. Woo Jae-ghil studied and experimented with the nature of material based on matter and color emerging through light. As the Gwangju art scene underwent a great change after the 1995 Gwangju Biennale, young artists pursued abstract art mainly with Epoque and produced works of post-moder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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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북미술가의 북한에서 작품 및 활동 연구 -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따른 작품의 주제별 연구를 중심으로

        오병희 ( Oh Byung Hee ) 한국기초조형학회 2018 기초조형학연구 Vol.19 No.4

        월북미술가는 1940년대 중후반 해방공간의 시기와 6.25 전쟁 기간에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미술가를 말한다. 이들은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한 후 미술가들을 교육하고 작품 제작을 하는 등 북한미술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월북미술가들이 1988년 해금되면서 한국에서 월북미술가에 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 후 세계적으로 이념의 대립시대가 끝나가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이념적 대립이 완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월북미술가와 북한미술에 관한 연구가 다각적으로 진행된다. 본 연구는 북한에서 미술 기반을 형성하였고 작품 활동을 한 월북미술가의 창작한 작품을 시기별로 살펴보고 주제별로 연구하였다. 냉전체제에서 소련,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 창작의 기본 방침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이다. 북한미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근간으로 북한 당국의 지침에 따르는 사회주의 노선에 근거를 둔 작품이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월북미술가와 북한미술가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기법과 정부가 제시한 주제의 작품을 그린다. 따라서 북한당국의 정책에 따른 월북미술가들의 작품은 시기별로 내용별로 구분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미술사』를 근거로 시기 구분을 하였으며, 월북미술가들은 제1시기에 인민군을 묘사하거나,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사적지, 북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관한 내용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제2시기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인민의 행복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린다. 제3시기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이 활기차게 생산을 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을 그렸다. 본 연구에서 이러한 시기별 특징을 지닌 월북미술가들의 작품을 주제별로 다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분류한 주제별 항목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작품, 사회주의 경제의 기반인 노동자, 농민을 그린 작품,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풍경화, 풍속화 등 3가지이며 그 안에 구체적인 주제로 다시 분류하여 작품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월북미술가들의 작품에 관한 주제별 연구를 통해 월북미술가와 북한미술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토대가 될 것이다. South-North Korean artists are Korean artists who have migrated from South Korea to North Korea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1940s and the Korean War. Many of these artists have contributed to North Korean art as both artists and educators. In the Republic of Korea(South Korea), studying South-North Korean artists was prohibited until 1988. Once the ban was lifted and the political antagonism between the two Koreas abated, lively research on South-North Korean artists and North Korean art followed, from many angles. This study looks into South-North Korean artists, whose contributions to North Korean art were considerable, by period and theme. During the Cold War, Socialist Realism was a fundamental, guiding principle of art-making in Socialist nations such as the Soviet Union,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n art is based on the Socialist route per government guidelines. Therefore, North Korean artists, including South-North Korean artists, are notable for art of subject matter and techniques based on Socialist Realism. Art by South-North Korean artists can be grouped by period and contents, as influenced by the government’s policies. In the first period, guided by Chosun Art History, South-North Korean artists would either depict soldiers or sites of Kim Il-Sung’s battles against the Japanese army, or work with the theme of North Korea’s Socialist economic development. In the second period artists’s main theme was the people’s happiness under the Socialist system. The third period can be characterized by a Socialist Realism in which productive farmers and urban laborers could be seen hard at work. This study investigates such South-North Korean art by theme. I have identified the following three broad categories: art about the Socialist system, art depicting rural and urban laborers, and landscapes or genre paintings expressing Socialist thought; and I have also identified subcategories. This theme-based research on South-North Korean artists’ practices will contribute to our systematic understanding of South-North Korean artists and North Kore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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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 남도 남종화의 유교미학적 요소에 관한 연구

        오병희(Oh Byung hee) 한국조형디자인학회 2017 조형디자인연구 Vol.20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남종화는 동아시아 사상과 정신을 담은 작품으로 남도는 조선후기 이후 남종화 전통이 현재까지 계승ㆍ전개된 지역이다. 근현대 화단에서 허백련은 한국 남종화의 맥을 계승하였으며 단아하고 깊이있는 운필을 통해 남종화를 법고창신하였다. 또한 허백련의 제자들은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을 바탕으로 사경산수와 채색을 통해 남도 남종화를 새롭게 전개해 나간다. 본 연구는 근현대 허백련과 제자들이 사의를 추구한 남종화와 삶과 실경을 도입하여 그린 남종화를 연구하는데 성리학과 양명학 등 유교철학으로 작품을 연구하였다. 남도 남종화를 유교철학으로 살펴보면 순수하고 완벽한 이(理)를 추구한 사의와 인품을 추구한 남종화가 있으며, 남종화를 근본으로 남도의 풍경과 정감을넣어 그린 남종화가 있다. 또한 실경과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한 사경산수는 양명학의 자아의식과 개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조선후기 진경산수와 연관된다. 근현대 남종화의 보편적인 정신을 근간으로 풍경과 정서를 담은 작품은 남도만이 가진 독창적인 양식이다. 또한 남도 사경산수는 산과 나무, 물 등 실경에 대한 느낌과 감성을 표현한 개성 있는 작품이다. 이와 같이 남도의 남종화가들은 남종화의 기법과 정신을 바탕으로 남도의 실경과 정서를 담은 개성적인 작품을 그렸다. Southern School Painting, or namjong-hwa, has captured East Asia s spirit and philosophy; and its tradition has continued since the late Chosun era to this day, in Jeollanam-do Province. Heo Baek-ryeon succeeded the lineage of Korea s Southern School of Painting, profoundly innovating the Southern School s style through graceful and exquisite brush strokes. Also, Heo s disciples introduced fully imagined landscapes and colors into Jeollanam-do namjong-hwa while preserving the style s spirit and techniques. Through Confucian philosophy, including Neo-Confucianism; this study examines the namjong-hwa of Heo Baek-ryeon and his disciples, who pursued an original spirit, and Southern School Painting representing life and actual, or true view, landscapes. The Southern School of Namdo painting is classified into two types based on these Oriental philosophies: Namjonghwa seeking perfect, pure “I” (이, 理)(Chinese “li”) as the foundational forces of the universe, saui (사의, 寫意)(expressing the meaning of painting or the spirit of a painter) and personality, and Namjonghwa featuring Namdo’s scenery and emotion. Real-view landscape painting addressing actual landscapes and aspects of actual quotidian life are associated with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of the late Joseon Dynasty representing national self-consciousness. Works that feature landscapes and emotions, based on the universal spirit of modern and contemporary Southern School of painting are ingenious paintings unique to Namdo. Also, Namdo’s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are distinctive works representing feelings and emotions of realistic landscapes with mountains, trees, stones, and water. Works by Jeollanam-do s namjong-hwa painters embodying local sentiments and representing Jeollanam-do s landscapes painted from life, following the artists complete mastery of Southern School Painting techniques and spirit, require critical eval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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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적 정치적 목적성을 가진 존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 연구 - 정통 좌파를 대변하는 AIZ 게재 작품을 중심으로

        오병희 ( Oh Byung Hee ) 한국기초조형학회 2019 기초조형학연구 Vol.20 No.1

        존 하트필드는 1910년대 후반부터 정치적 성격을 지닌 베를린 다다에서 활동한 예술가다. 1918년 독일공산당(KPD)에 가입한 하트필드는 독일의 정치와 사회에 관한 독일공산당의 노선에 따른 작품을 제작하여 당대의 현실을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하였다. 하트필드의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한 235개의포토몽타주를 1930년부터 1938년까지 좌파 사회주의 잡지 AIZ(노동자 화보신문)에 게재하였다. 이러한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는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과 히틀러가 집권한 극우 정권인 나치 파시즘의 본질에 관해 독일공산당의 노선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려는 정치적, 사회적 의도를 가진 선동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하트필드는 독일공산당 당원으로서 당의 노선에 따른 포토몽타주를 제작하여 바이마르공화국 집권당 사민당과 나치스에 관하여 비판하였다. 본 연구에서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의 정치적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바이마르공화국 정권시기, 극우정당 성장기, 나치스의 집권기로 나누고 독일공산당의 노선변화에 따라 작품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 시기는 중도파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치와 사회적 상황에 관해 좌파적 입장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바이마르공화국이 세계대공황으로 붕괴되면서 극우정당이 대두되는 시기로 독일공산당의 주적인 나치스를 비판하고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히틀러와 나치스 집권자들에 관해 풍자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공산주의자 하트필드가 사회주의 사상과 연관된 소련과 노동자에 관한 작품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작품을 제작한 시기이다. 하트필드의 정치적 성격의 포토몽타주는 소련과 독일공산당의 노선에 따라 중도좌파 정권, 극우 나치스를 공격하여 프롤레타리아와 소련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다. John Heartfield is an artist who has contributed to the political Berlin Dada movement since the late 1910s. A member of the German Communist Party (KPD) since 1918, Heartfield expressed his thoughts by creating art based on a critical eye for German politics and society. Between 1930 and 1938, Heartfield published 235 works of photomontage in the Socialist magazine, Arbeiter-Illustrierte-Zeitung (AIZ, meaning Laborer Illustrated), with a political purpose. Such works by Heartfield had propaganda qualities, and were socially and politically meant to raise the public’s awareness of the true nature of far-right, Nazi Fascism, as well as to criticize Capitalism. A member of the German Communist Party, Heartfield criticized the reality of his time with works following his party lines. This study has classified his photomontage works into three periods: the period of the Weimar Republic; the growth period of the ultraright party; and the period of the Nazis’ rise to power. The first of these periods is characterized by the artist’s criticism of the Capitalist system from a leftist point of view, and concerns the political and social circumstances of the moderate Weimar Republic. The second period is set against the fall of the Weimar Republic due to the global economic depression, and the rise of Nazi Fascism; and is marked by the artist’s criticism of the totalitarian system of Nazism, and his opposition to war, in his satire of contemporary figures such as Adolf Hitler. The third period sees the Communist Heartfield presenting the Soviet Union and the laborer in a positive light. Photomontage which is political messages of John Heartfield used to aim of finality about proletariat and the Soviet Union what built Socialism with snark to Nazi Fascism and leftist followed the Soviet Union also German Communist Party.

      • KCI등재후보

        성인에서의 심장이식 - 17 예 경험에 대한 보고 -

        오병희(Byung Hee Oh),강현재(Hyun Jae Kang),정우영(Woo Young Chung),채인호(In Ho Chae),김효수(Hyo Soo Kim),손대원(Dae Won Sohn),이명묵(Myoung Mook Lee),박영배(Young Bae Park),최윤식(Yun Sik Choi),서정돈(Jung Don Seo),이영우(Young Woo 대한내과학회 1998 대한내과학회지 Vol.55 No.3

        N/A Background: Cardiac transplantation has been established as a treatment of choice for patients with endstage heart failure. However, the experiences of cardiac transplantation are still limited in Korea. Methods Seventeen adult cardiac transplantations (13 males and 4 females) were performed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since March 1994. Clinical outcome & course, acute rejection, and complications among transplanted patients were reviewed. Results: Underlying cardiac conditions leading to cardiac transplantation were dilated cardiomyopathy in 9, valvular heart disease with severe LV dysfunction after prosthetic valve replacement in 3, restrictive cardiomyopathy in 2, ischemic cardiomyopathy in 1, intractable ventricular tachyarrhythmia in 1 and hypertrophic cardiomyopathy with severe LV dysfunction in 1 patient. Ages of recipients were between 22 and 54 (median-38). Mean follow up duration was 27 months (1-45 months). The frequencies of rejection decreased with time and were similar to those of previous reports 1.23 episodes of rejections per patients during first 3months after transplantation, 0.25 during second 3months, 0.17 and 0.08 during third and fourth 3 months. Infectious complications developed in 21.4% of patients during the first year after transplantation and infectious agents were Cytomegalovirus (CMV), gram negative bacteria, and Candida. One-year survival rate of recipients was 81.9%. Systemic CMV infection in 1, aortic rupture in 1, and sudden death in 1 patient were the causes of mortality, all of which developed during early post-transplantation period. Conclusion: Cardiac transplantation seems to be a reasonable therapeutic regimen for patient with end stage heart failure even in this country with limited experience; however, close attention and management against acute rejection and infectious complications, especially during the early post-transplantation period, are critical for long term survival.

      • KCI등재후보

        우리 나라 농어촌지역 성인의 고혈압 유병률

        오병희(Byung Hee Oh),김창엽(Chang Yup Kim),이건세(Kun Sei Lee),강영호(Young Ho Khang),이영조(Young Jo Lee),강위창(Wee Chang Kang) 대한내과학회 1999 대한내과학회지 Vol.56 No.3

        N/A Objectives : To establish prevalence of hypertension in rural area of Korea, we surveyed adult residents older than 30 years, based on the recommendation and classification of JNC-5(Joint National Committee on Detection, Evaluation, and Treatment of High Blood Pressure). Methods : From December 1996 to February 1997, we studied 4,209 persons in 41 rural areas purposely sampled nationwide. Blood pressure was checked twice at the time of the first visit and again checked twice after one week later for the person fell under hypertension criteria at the first visit. Persons fell under hypertension criteria at the first visit without second visit for recheck were categorized as suspected hypertension. For the suspected hypertension, we predicted whether fell under criteria by logistic regression model. Results : 1) The distributions of blood pressures show unimodal curve, skewed to the right. The peaks of the systolic blood pressure was between 120∼129㎜Hg, tending to move to the right for the age of 50-and-over in male, 70-and-over in female. But peaks of the diastolic blood pressure were consistent between 80∼84㎜Hg in both sexes. The distributions of blood pressures for male were slightly deviated to the right compared with those of the female. 2) The crude prevalence rate of hypertension, defined as systolic blood pressure ≥140㎜Hg or diastolic blood pressure ≥90㎜Hg or taking anti-hypertensive medication, was 25.94%. And the prevalence rate of suspected hypertension was 5.54%. Through the logistic regression model, the prevalence of hypertension was estimated as 29.94%. Age-sex-adjusted prevalence rate for the rural area-Myon regions- was 25.94%, if adjusted to the age-sex composition of the 1995 national census population. 3) Prevalence rate was 27.76% in male and 30.03% in female, if adjusted to the age-sex composition of the base population of this study. Prevalence rate progressively increased with age, higher in men than women before about age 60. 4) Prevalence rates among eight Provinces(Do) was different. Unadjusted rates for Kyonggi Province was 24.74%, and rates for Chonnam Province was 34.18%. But there was no significant differences of the prevalence rate between inland and seaside. 5) By logistic regression model, 65.39% of stage 1 hypertension and 75.51% of stage 2 hypertension at the first visit were estimated as to be included in hypertension criteria. 6) By the JNC-5 classification, only 22.33% of the patients taking anti-hypertensive medication was being controlled. Conclusion : The prevalence rate of hypertension by classification of JNC-5 at rural area was 25.94%. We could not find significant differences of prevalence rate between inland and seaside. Follow-up measurement of blood pressures will be needed to establish more valid prevalence rates of hypert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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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미술의 선구자 고희동의 회화세계 연구 서양화 - 요소를 절충한 한국화를 중심으로

        오병희 ( Oh Byung Hee ) 한국기초조형학회 2017 기초조형학연구 Vol.18 No.1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서화협회의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도화교사로 후학을 가르친 교육자, 서양화로 삽화를 처음 그린 근대화단의 선구자이다. 또한 새로움과 도전을 바탕으로 서양화와 한국화에 있어 한국화단에 영향력을 준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고희동의 서양화 작품인 자화상 3점은 정자관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한국인임을 나타냈으며 외광파 영향을 받아 어두운 배경에 빛의 효과를 강조하였다, 『청춘』창간호에 게재된 <공원의 소견>(1914)은 공원 벤츠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젊은 조선청년을 그린 작품으로 청록색의 나무와 공원의 잔디가 어두운 색조로 그려 외광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부터 작고 할 때까지 주로 그린 작품은 한국화로 고희동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고희동이 한국화를 배운 시기는 1907년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문하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이후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귀국 한 후에도 전통회화를 바탕으로 남종화의 정신을 담은 작품을 그렸다. 이 시기 고희동은 동양화의 발전을 위해서 서양화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화에 서양화 기법을 도입하여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정선을 진경산수화의 시작으로 삼았으며 실경을 바탕으로 서양화법을 적용한 <진주담도>, <금강산 천선대>, <금강산도> 등의 진경산수를 그렸다. 이처럼 고희동은 전통화풍을 근간으로 서양화법을 절충한 작품, 한국화에 서양화 요소를 혼성한 개성적인 진경산수화, 채색화 등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그린 한국화단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예술가이다. 서양화 기법을 사용한 고희동의 전통화와 진경산수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감각을 혼성해 그린 독창적인 한국화이다. Korea`s first Western-style painter, Go Hui-dong is a progenitor of the Korean modern painting scene who led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Calligraphy and Painting Association, taught students as an art teacher, and produced illustrations in a Western-style manner. He is also a key figure in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who influenced both Korean-style and Western-style paintings through his innovation and defiance. The artist`s three self-portraits feature traditional Korean clothes and a special light effect. In these self-portraits he dons a jeongjagwan (a headgear usually worn by scholar-officials) and durumagi (a man`s long overcoat with wide sleeves) to showcase that he is Korean. Influenced by a school of painters engaging in open-air painting (known as pleinairisme), he underscored the light effect in the dark background. An example is A Brief View at a Park printed in the first issue of Youth in which a young man is reading a book on a bench in a park with bluish green trees and grass depicted in dark shades. This portrayal intimates that he was influenced by pleinairisme. From the latter period of Joseon until his death, Go Hui-dong mostly worked on Korean-style paintings. In 1907 Go began learning Korean-style painting under Ahn Jung-sik and Jo Seok-jin. Afterwards, he learned Western-style painting in Japan. After his return from Japan, he executed paintings that held the spirit of the Southern School of painting based on traditional painting idioms. In this chapter of his career, Go worked on Korean-style paintings embracing Western painting techniques, asserting that Joseon painters had to know about Western-style painting in order to evolve Oriental painting. Considering Jeong Seon a progenitor of true-view landscape painting, he executed true-view landscapes such as Pearl Pond, Geumgangsan Cheonseondae, and Geumgangsan to which Western painterly idioms were applied based on traditional painting language. He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Korean art scene with his wide array of works including color paintings, paintings created with Western painting styles anchored in traditional idioms, and distinctive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made through a fusion of Korean-style painting elements and Korean-style painting. His traditional paintings and true-view landscapes done with Western painting techniques are ingenious works that manage to integrate the Eastern spirit into Western se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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