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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을 활용한 선행연구 검증 및 학술적 오류 정정

        미즈타니 사야카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22 아시아문화연구 Vol.59 No.-

        This study analyzed and reviewed on the historical records and the bibliographies to correct the academic errors caused by the misunderstanding and misreading of the Gisaeng and prostitute-related documents in Records of Gisaeng and Changgi. ‘A Study on Control of Body by Colonial Powers – Foundation of Gisaeng Association During Colonial Korea’ by Hwang Bomyeong (2004) involves numbers of academic errors as follows: 1. Mistaken “Gisaeng Association” as a group that took STD test, 2. Distorted the fundamental characteristics of Bibliographies on Records of Gisaeng and Changgi and produced the wrong perception toward Gisaeng, 3. Mistaken “Hanseong Prostitute Association” and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as the same organization. In conclusion, such academic errors resulted in distorting “Essence of Gisaeng as an entertainer specializing in singing and dancing” and “Fundamental characteristics of Records of Gisaeng and Prostitute.” Thus, these errors must be corrected properly to prevent the repeated reproduction of the wrong information. 본 연구에서는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 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구들 가운데 황보명(2004)의 「식민지 권력에 의한 몸의 통제–일제시대 기생조합 설립을 중심으로」를 중심으로,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 의 ‘기생 관련 서류’와 ‘창기 관련 서류’의 착각・오독(誤讀)으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학술적 오류들과 오인(誤認), 오기(誤記) 등을 당대의 사료들과 서류철 원문의 정확한 해독과 분석을 통해서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황보명(2004)의 「식민지 권력에 의한 몸의 통제–일제시대 기생조합 설립을 중심으로」에는 1. ‘기생조합’을 ‘성병검사’ 대상집단으로 오인, 2. ‘기부(妓夫)’와 ‘창부(娼夫)・포주(抱主)’의 개념적 혼동과 미구분, 3. 서류철 에 대한 문서적 정의에 있어서 ‘창기 관련 서류들’에만 치우친 편협한 정의로 서류철 의 본질적 성격 왜곡 및 기생(妓生)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생산, 4. ‘창기조합’인 ‘비공식적 건강진단조합’・‘경성유녀조합(한도유녀조합)’을 ‘최초의 기생조합’으로 오인, 5. ‘창기조합의 설립과정’을 ‘기생조합의 설립과정’으로 착각, 6. ‘한성창기조합소’와 ‘한성기생조합소’를 ‘동일한 조직’으로 착각, 7. 「기생단속령(근대식 기생제도)」을 「창기단속령(공창제도)」과 유사한 법령으로 오인, 8. 「기생단속령」을 ‘공창제도’의 하위범주로 착각하는 등 다양한 학술적 오류들이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오류들은 당시 ‘가무(歌舞)를 전업으로 하던 예술인(藝術人)인 기생(妓生)의 본질’과 ‘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 의 본질적인 성격’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들에 대한 정정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전문 예술인이었던 기생(妓生)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올바르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의 해제(解題)와 ‘근대식 기생제도의 시작’에 관한 연구 -1908년 9~10월, 1909년 3월에 작성된 ‘기생(妓生) 관련 서류들’을 중심으로-

        미즈타니 사야카 한국음악사학회 2022 한국음악사학보 Vol.69 No.-

        본 연구에서는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을 구성하고 있는 총 4종류의 문서군 가운데 2번째 문서군인 ②「기생단속령(근대식 기생제도)」의 제정 준비부터 발령, 시행, 세부지침, 신고서 양식 등에 이르기까지의 ‘기생 관련 서류들’(1908년 9~10월, 1909년 3월)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정확한 분석과 고찰을 통해 이 ‘기생 관련 서류들’에 담긴 내용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해제(解題)하였다.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의 거의 대부분은 고(古) 일본어와 구즈시지(崩し字)의 일본어(日本語)로 작성되어 있고, 한국의 국한문(國漢文)과 구(舊)한글로 작성된 문서들은 모두 먼저 일본어로 작성된 법령이나 규약, 청원서, 신고서 양식 등을 국한문 또는 구(舊)한글로 옮겨놓은 것이다. 즉 대한제국 말기 한반도의 ‘가무(歌舞) 전문 예술인(藝術人)이었던 기생(妓生)들’을 대상으로 한 ‘근대식 기생제도’와 ‘매음(賣淫)을 전업으로 하던 창기(娼妓)들’을 대상으로 한 ‘공창제도(公娼制度)’는 모두 일제 통감부(統監府)가 정책을 마련하고, 법령을 제정ㆍ발포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세부적인 지침들을 마련해서 실제 일본인 경찰들에게 관리ㆍ감독(取締, 취체)하게 했던, 일제(日帝)라는 식민 지배자에 의해 만들어진 ‘근대식 기생제도(妓生制度)’이며,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이식(移植)된 일본식 ‘공창제도(公娼制度)’이다. 결론적으로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여악(女樂)’이라는 한반도의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해 온 한국의 ‘기녀(기생)제도’가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인 대한제국기에 있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식 기생제도’로 전환되지 못하고, 일제 통감부 경찰권력에 의해 타의적이고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히 기록된 타자에 의한 역사적 상흔(傷痕)이다.

      • KCI등재후보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을 활용한 선행연구 분석 및 오류 정정에 관한 연구 - 송방송(2003)의 「漢城妓生組合所의 藝術社會史的 照明」을 중심으로 -

        미즈타니 사야카 바른역사학술원 2022 역사와융합 Vol.- No.12

        Among the studies that have actively utilized bibliographies constructed on [Records of Gisaeng and Changgi], this study specifically examines [Spotlight on Sociological Art Aspects of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by Song Bangsong (2003), excluding the researches by Yamashita Yeong Ae (1992) and Song Yeonok (1998) as they have already been subjected to verification and critical reviews. This study attempted to correct the academic errors, miswriting, and misreading in these studies through a thorough review of historical records and bibliographies of the time. To begin with, [Spotlight on Sociological Art Aspects of Hanseong Prostitute Association] by Song Bangsong (2003) committed the academic error of misinterpreting the “Prostitute Association” as “Gisaeng Association” or mistaking “Hanseong Prostitute Association” and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to be the same association. However,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was the first private Gisaeng association launched in December 1908 by Gisaengs themselves, who specialized in singing and dancing. Meanwhile, “Hanseong Prostitute Association” was a prostitute association formed in August 1909 by the prostitutes who specialized in the state-regulated prostitution system. In other words, sinc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and “Hanseong Prostitute Association” are two separate associations, the hitherto confounding understanding of the two associations as being the same or being both for Gisaeng and prostitutes must be rectified. During the late Korean Empir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and “Hanseong Prostitute Association” had disparate characteristics. This demands a clear distinction in the concepts, usage, and recognition of these two associations. In conclusion, the academic errors regarding the bibliographies on [Records of Gisaeng and Changgi] have been reproduced unremittingly because the preceding researches utilizing the bibliographies on [Records of Gisaeng and Changgi] lacked thorough verification studies as well as objective and comprehensive studies. Thus, there must be verifications of and error corrections in the studies without filter. Hence, this demonstrates an exigent need for a comprehensive reassessment of the bibliographies based on the records of Gisaeng and Changgi. 본 연구에서는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구들 가운데 이미 검증적 고찰이나 비판적 검토 연구가 이루어진 야마시타 영애(1992) 와 송연옥(1998)의 연구를 제외하고, 송방송(2003)의 「한성기생조합소의 예술사회사적 조명」을 중심으로, 이 연구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학술적 오류들과 오독(誤讀), 오기(誤記) 등을 당대의 사료들과 『서류철』 원문의 철저한 분석과 검토를통해서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송방송(2003)의 「한성기생조합소의 예술사회사적 조명」에는 ‘창기조합’을 ‘기생조합’으로 또는 ‘한성창기조합소’와 ‘한성기생조합소’를 ‘동일한 조직’으로 오인(誤認)하는 학술적 오류를 범했는데, 본 연구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한성기생조합소’는 1908년 12월에 ‘가무(歌舞)를 전업으로 하던 기생(妓生)들’에 의한 ‘최초의 민간 기생조직’이고, ‘한성창기조합소’는 1909년 8월에 ‘매음(賣淫)을 전업으로 하던 창기(娼妓)들’을 중심 대상으로 한 ‘공창제도(성매매제도) 하의 창기조직’ 이다. 즉 ‘한성기생조합소’와 ‘한성창기조합소’는 서로 다른 별개의 집단이었기때문에 이 두 조직을 ‘동일한 집단’ 또는 ‘기생과 창기가 혼합(混合)된 집단’으로착각·오인(誤認)한 선행연구들의 기술은 정정되어야 할 것이며, 오히려 대한제국 말기 당시 ‘한성기생조합소’와 ‘한성창기조합소’는 서로 이질적인 성질을 가진집단이었기 때문에 이 두 조직은 개념적·용어적으로 정확히 구별해서 인식·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에 관한 이러한 학술적 오류들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어온 이유는 ‘『서류철』을 활용한 선행연구들에 대한철저한 검증적 연구’와 ‘『서류철』에 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해제 연구’가 부재(不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류철』을 활용한 다른 선행연구들에 대한 검증및 오류 정정 작업과 함께 궁극적으로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에 관한 종합적인 해제(解題) 연구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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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의 해제(解題)와 ‘기생들의 국내외 공연활동’에 관한 연구* - 1910년 5월에 작성된 ‘기생(妓生) 관련 서류들’을 중심으로 -

        미즈타니 사야카 바른역사학술원 2022 역사와융합 Vol.- No.13

        본 연구에서는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을 구성하고 있는 4종류의 문서군 가운데 ‘한성기생조합소 기생(妓生)들의 일본 순회공연 및 국내 개성(開城) 공연’의 기획에서부터 일제 통감부 경시청에의 청원(請願) 및 인가(認可)에 이르기까지 그 전 과정과 관련내용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기록인④‘한성기생조합소 기생(妓生)들의 일본 순회공연 및 국내 개성(開城) 공연에 관한 서류들’(1910년 5월)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정확한 분석과 고찰을 통해 이‘기생(妓生) 관련 서류들’에 담긴 내용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해제(解題)하였다. ‘한성기생조합소 기생(妓生)들의 일본 순회공연’은 1910년 4월 14일경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문 국한문판』 등에 일본인들의 한성기생조합소 기생 8명 등과의 도일(渡日) 공연 교섭 및 계약에 관한 기사가 먼저 보도되고, 이로부터 한달여 후인 1910년 5월 9일까지 구체적인 도일(渡日) 공연단 인원 구성 및 고용비용의 조정(1,500원→1,580원→1,550원), 계약서 작성 및 청원서 준비 등 본격적인 계약체결 작업이 진행되었고, 1910년(융희 4년) 5월 11일 ‘일본인 2인과 기생8명에 의한 한성기생조합소 기생 등의 도일(渡日) 공연 청원’ → ‘5월 12일 인가’ → ‘5월 13일 품의(稟議)·결행(決行)되어 당일 서부·중부 경찰서장에게 발송완료’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성기생조합소 기생(妓生)들의 국내 개성(開城) 공연’은 1910년 5월 9 일 「한성기생조합소 기생 8명 등과의 도일(渡日) 공연 교섭상황 보고 및 원각사무용(舞踊) 개최 기획의 건」 문서에 ‘원각사 무용(舞踊) 개최 기획의 건’이 처음으로 언급되었고, 1910년 5월 20일 「원각사 주인의 개성(開城) 공연 청원서 및 계약서」와 「한성기생조합소 기생 10명의 개성(開城) 공연 청원서 및 계약서」 제출, 1910년 5월 24일 「경시청 지령 제77호 원각사 주인 및 한성기생조합소 기생 10 명의 개성(開城) 공연 청원 인가」, 같은 5월 24일 「원각사 주인의 한성기생조합소 기생 10명 고용 개성(開城) 공연 청원 인가 및 지령(指令)」, 그리고 1910년 5 월 25일 ‘인가(認可) 지령(指令)’을 원각사 사무원 안춘민(安春敏)에게 교부완료(交付スミ)의 순으로 진행되었음이 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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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능화의 ‘친일 반민족 상세 행적’에 관한 연구 - 「 『조선해어화사』를 통한 기생 역사왜곡의 확립자」 이능화의 구체적 친일 행적 -

        이정남,미즈타니 사야카 바른역사학술원 2021 역사와융합 Vol.- No.9

        본 연구는 이이화, 반민족문제연구소,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미즈타니 사야카, 이정남 등에 의한 ‘이능화의 친일 행적 및 역사왜곡’에 관한 기존의 연구성과들과 이능화와 관련된 기록 및 사료들을 최대한 총망라하여 대한제국기 및 일제강점기에 있어서 ‘이능화의 친일 반민족 행적’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조목조목 밝히는 것을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이능화의 친일 반민족 활동’은 매우 다양한 방면에서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능화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의조선 식민통치에 현저히 협력하여 일본제국으로부터 고위관직과 다양한 포상 및훈장들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편수회, 친일 불교단체, 친일 학회, 친일 조직들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조선사(朝鮮史) 왜곡’과 ‘식민사관(植民史觀) 전파’ 에 앞장섰으며, 심지어는 일본의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神武 天皇)을 시작으로, 조선의 강제 일본 식민지화의 원흉이었던 메이지 천황(明治 天皇), 다이쇼 천황(大正 天皇), 쇼와 천황(昭和 天皇) 등 일본 천황들을 찬양하는 한시(漢詩)인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을 지어 바치며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正當化)시키기까지 하였다. 즉 이능화는 ‘단순히 왜곡된 『조선사』 편찬에 참여한정도’가 아니라 다방면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친일활동을 전개해 간 대한제국기 및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자 우리나라 근대 사학계의 대표적인 ‘친일 어용학자’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이능화의 학술적 성과물들이 모두 친일(親日)· 매국(賣國)과 맞바꾼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이능화와 같이 이미 사망한‘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이제 와서 직접적으로 단죄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친일(親日)·매국(賣國), 그리고 ‘소수의 자극적인 특정기록만을 근거로 한 무리한일반화의 오류’를 통한 어설픈 ‘역사왜곡(歷史歪曲) 행위’는 이능화처럼 이렇게‘기록’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친일파(親日派)·매국노(賣國奴)·역사왜곡자(歷史歪曲者)라는 오명(汚名)의 꼬리표가 달려 영원히 후세에 낙인(烙印)될수 있음을 매우 신중하게 자각하고, 일반화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해당 역사에 대한 논조를 펼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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