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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팍영화제와 한국의 냉전 세계주의

          구민아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9 아시아문화연구 Vol.49 No.-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the implementation of the Korean Cold War strategy through comprehensive research on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is a non-competitiv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organized by Cultural and Social Center for the Asian Pacific Region, an affiliated organization of the Asian and Pacific Council, to strengthen the solidarity of “free-world” Asian countries and to prevent the spread of communism in Asia. By holding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the Korean government pursued the internationalization of Asian film industries and sought to build up a sense of cultural solidarity among member countries. The cultural policy of the United States had a great impact on the emergence of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as the venues reflecting the desire for the globalization of Korean films. The Asia Foundation, which implemented the cultural enrichment programs in Asia, encouraged Korea to participate in the Asian Film Festival in order to consolidate a network of anti-communist filmmakers. The Asian Film Festival became a venue for the Korean film industry to explore the possibilities of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in various ways. The Asian Film Festival provided opportunities not only to open up the overseas market for Korean films, but also to boost the Korea’s national image. Furthermore, it was also a venue to stimulate the postcolonial resistance against Japanese cultural imperialism. This article will examine how the US cultural policy influenced the desire for the globalization of Korean films, and then explore the process in which the desire is realized as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by national policy. By doing this, I would like to contribute to expanding the horizon of historical research on Korean international festivals. 이 글의 목적은 1969년에 막을 올린 아스팍영화제의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냉전 전략이 아스팍영화제를 통해 구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데 있다. 아스팍영화제는 한국의 주도로 출범한 아스팍 사회문화센터가 아시아 자유 진영 국가의 결속을 강화하고 공산 세력을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해 주최한 비경쟁 국제영화제이다. 한국 정부는 아스팍영화제를 통해 회원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선전하여 아시아 영화의 국제화를 꾀하고, 각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회원국 간의 문화적 연대감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냉전기에 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의 국제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장으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미국의 문화정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문화 원조 사업을 시행한 아시아재단은 반공 영화제작자 네트워크 형성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국이 아시아영화제에 참가하도록 독려하였다. 아시아영화제는 한국영화계가 국제영화제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장이 되었다. 아시아영화제는 한국영화의 해외시장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되었다. 또한,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탈식민지적 욕망을 자극하는 장이기도 하였다. 아스팍영화제를 주관하였던 아스팍과 사회문화센터의 설립과정을 살펴보면 아스팍영화제가 아시아영화제를 거치며 배태되었던 국제화에 대한 열망과 일본의 헤게모니에 대한 견제 의식, 해방 이후부터 한국 정부가 견지해온 반공 이데올로기가 결합하여 탄생한 냉전 세계주의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냉전기의 미국의 문화정책이 한국영화의 국제화에 관한 관심과 열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피고, 이러한 열망이 아스팍영화제를 통해 국가 정책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냉전의 맥락에서 검토하며, 한국의 국제영화제 역사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 KCI등재

          초국가 도시네트워크로서 동아시아 문화공동체에 관한 연구

          손예령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9 아시아문화연구 Vol.51 No.-

          Today, with the advent of ‘globalization’, ‘localization’ is appearing. Based on ‘empathy’, regionalism and universalism coexist and new empathy society for mutual development is emerging. Accordingly exchanges have become active for improving the understanding and empathizing between regionalism and universalism, and ‘Transnational Cultural City Network’ transcends the national boundary as a venue for improving communication between different cultures is being formed. Understanding the complexity and multi dimensionality of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revolution in the transnational East Asia requires new analyzing instruments beyond the traditional state society dichotomy. At this time, Transnational City Network plays a role that a state cannot do and will become an important mechanism that effectively connects different forces within or transcending the boundary of transnational Asia. To understand and communicate cultures in the era of globalization that is more varied, complex and variable today than before, Transnational Cultural City Network’s role is important. Especially in the East Asia where issues in political, military, and historical dimensions still remain, cultural community is peace community and a window for empathy and communication. So Transnational Cultural City Network within East Asia will have to be activated. This will enable to improve the sense of belonging as East Asian citizen, enhance the regional identity of East Asia, and contribute to the regional cultural development. 오늘날 ‘세계화’가 나타남과 동시에 ‘지역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공감’을 통해 지역주의와 보편주의가 공존하고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감사회가 출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주의와 보편주의 간의 이해와 공감을 증진시키기 위한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문화 간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한 장으로서 국가 경계를 초월한 초국가 문화도시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초국가적 동아시아의 사회, 정치, 경제적 변혁의 복잡성과 다차원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국가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분석 도구가 필요하며, 이때 ‘초국가 도시네트워크’는 국가가 할 수 없는 역할을 하며, 효과적으로 초국가적 아시아의 국경 안이나 국경을 초월한 서로 다른 세력을 연결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이전보다 다양하고, 복잡하며, 가변적이게 된 세계화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초국가 문화도시네트워크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여전히 정치, 군사, 역사적 차원의 문제가 남아있는 동아시아에서 문화공동체는 평화공동체이자 공감과 소통의 창구가 되므로, 동아시아 내 초국가 문화도시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시민으로서 소속감이 증진되고, 동아시아 지역정체성을 제고하며, 그리고 지역 문화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KCI등재

          한국 대학생들의 아시아ㆍ서구에 대한 인식 차이와 한국 미디어의 영향 연구

          오대영(Oh, Day-young)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2 아시아문화연구 Vol.27 No.-

          한국과 아시아간의 교류가 크게 늘고, 한국은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한국에게 아시아는 매우 중요해졌고, 아시아와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사회는 서구 중심적이고, 아시아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는 외국에 대한 공중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아시아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대학생 3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서 아시아와 서구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해 한국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대학생들은 아시아와 서구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서구보다는 아시아와 더 관련이 많았다. 대학생들은 서구 뉴스보다 아시아 뉴스를 찾아보는 빈도가 더 많았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한국 미디어가 서구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보도하지만, 아시아에 대해서는 그렇치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문화ㆍ스포츠 등 5개 주제의 20개 항목에서 조사한 결과 대학생들은 모든 항목에서 아시아보다는 서구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14개 항목에서 부정적이고, 6개 항목에서만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구에 대해서는 3개 항목에서만 부정적이고, 10개 항목에서는 긍정적, 7개 항목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국 미디어의 아시아와 서구 뉴스에 대한 인식에서도 대학생들은 ‘경제성장’을 제외한 19개 항목에서 한국 미디어가 아시아보다 서구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15개 항목에서 부정적이고, 5개 항목에서만 긍정적으로 보도한다고 평가했다. 서구에 대해서는 15개 항목에서 긍정적으로, 5개 항목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보도한다고 인식했다. 대학생들의 개인적인 인식보다 한국 미디어가 아시아에 대해서는 더 부정적으로, 서구에 대해서는 더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한국 미디어의 아시아와 서구에 대한 보도태도는 대학생들의 인식과 상관관계가 있어, 한국 미디어의 아시아에 대한 보도태도가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Personnel and material exchanges have greatly increased with Korea and Asia, and Asia became more important to Korea. But Korean society is still the West-oriented and has a strong tendency to downplay Asia. Media has influenced greatly the idea of the public on foreign world. Media’s role is very important for changing perceptions of Korean people on Asia. I surveryed 323 college students of Korea. Students thought that both of Asia and the West(America and Europe) are important to them, but they have more relationships with Asia than the West. Students have consumed Asia-related news more than the West-related news, but they recognized that Korean media reported the West-related news dutifully and did not Asia. Students have better perceptions about the West than Asia in all 20 items of 5 themes(politics, economy, social matters, diplomacy and security, culture and sports). In the perceptions on Korean media’s coverage attitude regarding 20 same items, students thought that Korean media has better coverage attitude to the West than Asia in 19 items except ‘economic growth’. Korean media reported more negatively Asia and did the West more affirmatively than personal perceptions of students. The coverage attitude of Korean media has the correlation with the perceptions of students, so it is necessary for the coverage attitude of Korean media to be improved.

        • KCI등재

          태국의 한류 - 문화의 초국적 소비와 재생산

          이미지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20 아시아문화연구 Vol.53 No.-

          The purposes of this study are to look back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process of the Korean Wave in Thailand and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Wave and the forms of its acceptance in the country today. Based on these efforts, the study aimed to assess the Korean Wave in Thailand for the last 15 years and have contemplation over its future directions. The study first examined how much the popular culture of South Korea was consumed in Thailand. There was a recent rapid decrease to the exports of South Korean broadcasting programs to Thailand, but the number of South Korean broadcasting programs that aired in the nation made an increase in recent years. In Thailand, a demand market was created for overseas dramas even in the early days of broadcasting stations. In 2014, rapid changes started to happen to the nation's broadcasting environment including the digitalization and multi channelization of terrestrial broadcasting. This media situation of Thailand is promoting demand for South Korean dramas in the nation. The study examined the forms of Thailand accepting South Korean dramas and found that they were adding South Korean elements to the content they produced and purchased the formats of South Korean broadcasting for their dramatization into the Thai style. They were localizing the Korean Wave voluntarily and actively beyond simple import and consumption. Thai dramas and shows with South Korean elements reproduced in the nation inherent in them were transmitted to China and neighboring Southeast Asian countries and consumed in those countries beyond Thailand. The Korean Wave in Thailand shows the possibilities of cultural exchanges in two or more directions among Asian nations and further those of a pan Asian cultural zone. By analyzing the Thai cases, the present study reconfirmed the roles and importance of users in the transnational movement of culture and emphasized that South Korea's viewpoint of the Korean Wave should move from its focus on South Korea to its focus on countries accepting the Korean Wave according to this flow. 본 연구의 목적은 태국 한류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돌아보고, 현재 태국에서 보이는 한류의 특징과 수용의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태국 한류의 15년을 평가하고 한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찰했다. 본고에서는 먼저 태국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얼마만큼 소비되고 있는지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확인했다. 한국의 대 태국 방송프로그램의 수출액은 최근 급격한 감소 추세에 있었지만, 실제로 태국 내에서의 방영편수는 최근 오히려 증가했다. 태국에서는 방송국 개국 초기부터 해외드라마의 수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2014년부터 지상파의 디지털화, 다채널화가 진행되는 등 방송환경이 급변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지의 미디어 상황이 한국드라마의 수요를 촉진하고 있었다. 태국에서의 한국드라마 수용 형태를 보면 단순한 수입과 소비를 넘어서, 자국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에 한국적인 요소를 삽입하거나, 한국방송의 포맷을 구입하여 태국판으로 각색하는 등 한류의 자발적인 현지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렇게 태국에서 재생산된 한국적인 요소를 내재한 태국드라마 등은 태국 내에서의 소비에 그치지 않고, 다시금 중국과 주변 동남아시아로 송출되어 소비되고 있었다. 이처럼 태국의 한류는 아시아 국가 간 쌍방향・다방향 문화교류의 가능성, 나아가 아시아 문화 권역의 형성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 연구의 태국 사례 분석을 통해 초국가적 문화 이동에 있어서의 수용자의 역할과 중요성이 재확인되었으며, 우리의 한류를 보는 시각 또한 이러한 흐름을 고려하여 자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한류 수용국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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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투스 중첩에 의한 문화적 양각 현상 변화 - <빈 필 신년음악회>와 <미스터트롯>의 소비를 중심으로

          박주초(Park, Ju-cho)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21 아시아문화연구 Vol.56 No.-

          오늘날 미디어 기술의 발전은 문화의 접촉면을 확대하였다. 대중의 선택 가능성은 높아졌으며, 동일 미디어에서 서로 다른 장르의 문화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부르디외가 이야기한 아비투스는 과거처럼 특정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아비투스는 중첩된다. 아비투스의 중첩은 특정 문화로 취향이 쏠리는 문화적 양각현상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를 잘 볼 수 있는 예가 바로 클래식과 트로트이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클래식은 고급문화, 트로트는 대중문화로 구별되었다. 따라서 과거의 클래식은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로서 접근하는 문화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클래식 음악’과 ‘트로트’에 대한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고급, 대중(저급)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둘의 소비 형태가 더 이상 다르지 않으며, 이 둘을 동일한 미디어 환경에서 함께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문화에 대한 사회적 양각현상을 밝히고 문화에 있어 고급과 대중으로 구분되는 현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클래식”과 “트로트”의 정의와 인식 그리고 오늘날 이 둘이 수용자에게 주는 의미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빈 필 하모닉 신년음악회>와 <미스터트롯>의 소비 형태 분석을 통해 중첩된 아비투스 환경에서 변화된 문화적 양각현상을 밝히고자 한다. In The development of media technology today has expanded the interface of culture. Public choice has increased, and different genres of cultural content can be provided at the desired time in the same media. Now, the habitus that Bourdieu talked about is no longer formed as specific as in the past. Today"s habitus overlaps. habitus overlap brought about a change in the straddling of cultural acceptance in which taste was focused on a particular culture. Examples of this are classical and trot. In the past, classical music was distinguished as a high-end culture and trot culture in Korean society. Thus, classical music in the past was an approaching culture as a desire to rise in status. Today, however, revealing tastes in classical music and trot no longer exists as a dichotomous distinction between high-end and public (low-end). The two forms of consumption are no longer different, and they are enjoyed together in the same media environment. This paper reveals social embossments of culture and raises the question of the phenomenon of being distinguished between advanced and popular in culture. It also reveals the definitions and perceptions of “classics” and “trot” and the meaning they give to inmates today. Finally, through the analysis of consumption patterns of <Wien Philharmonic New Year"s Concert> and <Mr. Trot>, we want to reveal the cultural straddling that have changed in the overlapping habitus environment.

        • KCI등재

          포드재단(Ford Foundation)과 동아시아 ‘냉전지식’

          정문상(Chung, Moon-sang)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4 아시아문화연구 Vol.36 No.-

          포드재단은 연구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아세아문제연구소, 근대사연구소와 문화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두 연구소는 이를 계기로 중국근대사연구를 본격화하는 등 연구 활동의 전기를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냉전의 지적 패러다임과 그에 입각한 페어뱅크의 ‘충격-반응론’의 두 연구소로의 본격적인 유입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냉전의 지적 패러다임은 양 연구소 연구진이 가지고 있었던 근대사관과 근대화 이해 그리고 민족의 근대화에 대한 강한 열망 등과 맞물림으로써 수용되고 확산될 수 있었다. 수용된 관점과 논리들은 두 연구소 연구진에게 중국근대화 내지는 근대사를 보는 관점을 제공했으며,이들 연구진들은 이러한 논리와 관점에 기대어 중국근현대사를 연구했고 체계화시켜 나아갔다. 냉전지식으로서의 중국근현대사가 포드재단과의 문화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 양국의 중국근현대사학계에서 표출된 냉전의 지적 패러다임의 수용을 둘러 싼 다양한 관점과 태도는 물론, 포드재단과의 문화적 관계의 구축에 따라 형성된 냉전지식이 동아시아의 냉전구도의 동요와 균열에 따라 어떻게 변형되고 변화되었는지 하는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은 차후의 연구과제로 삼고자 한다. As the Ford Foundation carried out long-term research support projects for the Asiatic Research Institute and the Institute of Modern History, the Foundation was able to establish cultural relationships with these research institutes. By establishing these relationships, these research institutes could reach a milestone for academic development. However, this development assumed a knowledge paradigm of the Cold War, which was represented by modernization theory, and the full-scale inflow and spread of Fairbank’s “Impact-Response theory” based on the paradigm. The knowledge paradigm could be broadly accepted and spread by being interlinked with the existing modern history theories, the perception of modernization, and strong desires for national modernization that researchers at the two research institutes had. The researchers studied and systemized modern Chinese history while relying on these logics and viewpoints. The emergence of modern Chinese history as knowledge of the Cold War in Korea and the Republic of China is considered fairly meaningful in terms of the formation and continuance of the Cold War in East Asia.

        • KCI등재

          성남시의 문화정책 현황과 과제

          윤우준(Yoon Woo Jun)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06 아시아문화연구 Vol.10 No.-

          Since it is culture that is a topic for the 21st century, every city in the world shares advocacy for making itself city of culture. Whatever such advocacy by cities implies, nowadays it becomes the most popular slogan and cities competitively propose and formulate a variety of programs and plans for its fulfillment. The reason of advocacy for making culture city by cities is that cityscape is one of the firsthand indices representing the culture, identity and opulence of city residents and, in global paradigm for the 21<SUP>st</SUP> century, a city as such comes to be recognized as a brand. In other words, culture of a city becomes one of the most pivotal factors making up competitiveness of the city. Local governments or municipalities have already made out specified action plans for making culture city which is being acknowledged as a crux of urban competitiveness. Similarly, Seongnam city enormously proposes a variety of culture policies, orienting toward a culture city. Nonetheless, it seems necessary for the city to put a lot of effort in setting the basic direction of its culture policies. Mostly, culture policies by Seongnam city work around the establishment of large-scale hardware without well-defined objectives and hollow, event-like programs. Because such policies are mostly implemented on beneficent basis, city residents remain as mere objects or spectators, not subjects or participants. For the rebirth of Seongnam city as a culture city of genuine value, its culture policies premise clear understanding of its specific historical background and current problems as well. The most urgent problems that Seongnam city now has can be summed up as follows: dissemination of the sense of community among its residents through the improvement of former negative image of the city as a poor region and the conflict resolutions between residents living at old and new downtown; establishment of the city identity which can be shared among its residents and satisfaction of their cultural needs; and development and commercial use of a variety of cultural assets. For success in its culture policies, Seongnam city should need radical reconsideration and well-placed implementation process of such policies from the long-term perspective. First of all, the municipality should build cooperative network with the experts and relevant organizations from diverse fields and be well equipped with administrative leadership and planning capacity based on such network. Basically, Seongnam city is required to inquire and develop those cultural-historic assets and narratives that help the city identify and establish its historical root and cultural identity and make use of such assets and narratives in educational facilities for cultural experience, tourism and cultural industry, enhancement of the city image, activation of various city festivals, and so on. It is expected that such policies enable the municipality to earn financial advantages as well as provide a breeding ground for the city that is necessary to lead its residents into a sense of cultural homogeneity and change and improve their life into more cultural one. In short, based on development and establishment of abovementioned fundamental cultural and historic assets, Seongnam city should consider outcomes from relevant academic fields including urban planning and conduct coordination and consultation with them in order to formulate comprehensive, integrated medium-and long-term plans for culture city that present persuasive and specified future vision of the city for the 21st century. Only if above processes precede, Senognam city will be able to grow to a city of culture in a real sense, a state that is the very essence of urban competitiveness in the future. Kyungwon University is the best partner for Seongnam city in its progress into culture city. Though Kyungwon University is the only a big, well-established university rooted in the Seongnam city, it h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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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문화연구와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이야기 ―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

          마키노 에이지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2 아시아문화연구 Vol.25 No.-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 and tsunami that struck Japan on March11,2011, and particularly the ensuin gnuclear accident at the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Plant, produced more than 300,000 victims, survivors and evacuees mainly in the northeastern Tohoku region and the Kanto area, where Tokyo is located. The colossal earthquake and massive tsunami devastated a great many villages and communities along with their traditions in the Tohoku region, and claimed the lives of many local residents who were also guardians of traditional culture. The release and worldwide spread of radioactive materials from the stricken nuclear power plant in Fukushima have had a far-reaching influence on the whole of Japanese culture rather than being limited to the livelihoods of Fukushima people, the local culture and economy, and the local agricultural and tourism industries. Consequently, Japanese culture is now undergoing a rapid transformation. The author elucidates the significance of the most important cultural value for human beings as something that is enabled only by study of the humanities. 2011년 3월의 동일본대지진, 특히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인간과 최신 과학기술의 성과조차 무력화시키는 자연의 맹위와 인간에게 기인하는 자연의 제어불가능한 위협에 의해 피해지 주민의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술과 기반’, ‘정주지(colonia)’를 빼앗았다. 이 ‘복합재해’, 특히 방사능오염에 의해 전혀 새로운 성격의 ‘식민지주의’(colonialism)라고도 불러야할 폭력이 일본에서 살아가는 많은 인간에게 세대를 넘어 앞으로 불안에 떨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태를 가져온 것이다. 이 전혀 새로운 성격의 ‘식민지주의’가 일본에 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제 국민 사이로 확대할 기우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일본의 전통문화나 의식주, 전반적인 것에 걸쳐 인간의 문화적 생활양식과 그 기반을 대규모로 파괴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원전건설기술의 수출은 머지않아 동아시아의 전통문화나 의식주 등 문화적인 생활양식과 그 기반을 대규모로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후쿠시마원전사고의 최대 교훈 중 한 가지는 인문학의 입장에서 이러한 ‘역사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여러 ‘신화’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피해자의 비통한 외침에 귀를 기울여 그러한 약자의 구술 역사를 널리 전승하는 것에 있다. 정치ㆍ경제ㆍ금융의 위기적 상황이나 군사적 긴장관계에 있는 아시아지역 문화연구의 중요한 과제는 후쿠시마원전사고에 의해 명확해진, 지역에 사는 인간의 생명이나 생활의 지평으로부터 모든 지식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고 그러한 현실을 생생한 단어로 서사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인문학의 시도에 의해 ‘내셔널 히스토리’의 제약을 초월하여 인간다운 사회가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 사이에서 실현가능해지고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의 실현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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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녀(同人女)’의 발견과 재현

          김효진(Kim, Hyo-jin)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3 아시아문화연구 Vol.30 No.-

          본 논문은 초국가적인 대중문화의 생산, 유통, 소비와 함께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동인녀’의 발견과 재현, 그리고 이 현상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일본 야오이(やおい)?BL(Boys’Love)문화의 수용과 확산을 분석한다. 아마추어 만화?소설텍스트인 동인지의 생산과 유통, 수용을 포괄하는 동인문화에 참가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동인녀는 아마추어창작물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1980년대 이후 한국 동인문화를 이끌어온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반 한국사회에서 동성애 소재 대중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얻게 되면서 매스미디어에 의해 새로운 문화소비층으로 ‘발견’되고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내부자적 관점에 바탕한 동인녀 재현의 사례로서 본 연구는 순정만화, ?오덕후 이야기:보통연애,모두 하고 있습니까??및 블로그인 <보통연애 블로그(http://normallove.egloos.com)>를 분석한다. 이 만화는 1)생산자이자 진정한 자신으로서 동인녀 정체성, 2)한국 동인문화의 패러디로서의 측면, 3)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동인녀 정체성의 강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한국 동인문화의 특징을 재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매스미디어가 발견한 동성애 관련 콘텐츠의 소비자로서 동인녀의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인 작가에 의해 내부자적 입장에서 재현되는 동인녀는 역사적으로 일본 대중문화의 적극적인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 아마추어 만화문화를 지탱해온 생산자로서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최근 동성애 관련 콘텐츠의 소비자로서 부녀자(腐女子)개념의 유입과 확산 또한 일본 후조시 문화의 영향뿐만 아니라 한국 동인문화의 변모라는 측면에서도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In this article, I analyze the discovery and representation of Dong-in-nyo in the context of the Korean reception and proliferation of Japanese Yaoi and Boys’ Love (BL) culture. Dong-in-nyo, which means women who actively participate in Dong-in culture, including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reception of Dong-in-ji as amateur comics and/or novel magazines, have been discovered as a new group with unique cultural tastes by Korean mass media, as male homosexuality have recently become a popular theme in the Korean content industry. Contrary to Korean mass media’s interests in Dong-in-nyo as new consumers of contents on male homosexuality, Korean girls’ comics The Odeokku Story:Does Everybody Fall in Normal Love? and its blog shows a way of representing Dong-in-nyo on the basis of insiders’ viewpoints, such as 1) Dong-in-nyo identity as producer and true self, 2) the parody of Korean dong-in culture, which has its own unique history since 1980s, and 3) the reinforcement of dong-in-nyo identity through communication among the artist/editor and readers. As conclusion, I argue that dong-in-nyo have played both roles as active consumers of Japanese popular culture and as producers of Korean dong-in culture, contrary to their representation in Korean mass media.

        • KCI등재후보

          한중일 언어권의 Deus, God의 수용과 크리스트교의 전개

          정백수(Jung Baek-su)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0 아시아문화연구 Vol.20 No.-

          근대이후 한중일의 언어로 각각 번역 수용된 서양문화들 가운데, 크리스트교만큼 상호 간에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문화영역은 달리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근대가 근본적으로 서양문화의 충격으로부터 비롯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크리스트교야말로 서양 정신문화의 기층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중일 언어권에서의 크리스트교 문화의 이질적인 전개는 더욱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한자문화와 유교적, 불교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한중일에서 어떻게 하여 크리스트교 문화만큼은 극단적으로 상이한 전개의 양상을 띠게된 것일까. 한중일의 크리스트교 문화의 첫 출발은, 말할 것도 없이, Yahwhe의 라틴어역 Deus와 영어권의 번역어God의 수용과 그 개념적 정립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고에서는 첫째, 한중일의 언어는 Deus와 God의 수용과 소통을 위해 어떠한 번역을 시도한 것일까, 둘째, 중국어의 〈上帝〉, 일본어의 〈神かみ〉, 한국어의 〈하나님〉은 각각의 언어사용자에게 어떠한 신앙적 개념을 표상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각 언어의 번역 과정과 번역어의 개념적 차이는 한중일의 크리스트교의 상이한 전개라는 문화현상과 어떠한 지점에서 관계하는 것일까를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Among the cultures received from the West since modern times and translated into Korean, Japanese, and Chinese, no contrast as stark as in Christianity can be found. Different courses of development of Christianity in those linguistic areas are worth attention, given that the modern history of East Asia was made into being, somewhat with shock, by the impact of Western cultures and at the center of Western spiritual cultures had been Christianity. How did Christian cultures in those countries, where Chinese letters and traditions of Confucian and Buddhism are shared, take different courses of development? Without doubt, the beginning of the Christian cultures in Korea, Japan, and China can be identified in the introduction and conceptual development of “Deus” and “God”, both of which are “Yahwhe” translated into Latin and English respectivel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delve into the following three questions : First, into what words did the people in the three countries try to translate “Deus” and “God” to facilitate their introduction and communication? Second, What are the religious concepts of “Shangti” in Chinese, “Kami” in Japanese, and “Hananim” in Korean, represented by the users of each language? Third, What does the difference in translation processes and conceptual meanings of the words translated in each language have to do with the cultural manifestations resulting from different courses of development of Christianity in Korea, Japan, an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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