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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분단 전후 아리랑의 전개 국면과 민족공동체 복원을 위한 아리랑의 활로 모색

        강등학 한국민요학회 2018 한국민요학 Vol.54 No.-

        Arirang, South Korea and North Korea, started on the soil of Arirang, which was built before the division. But after the division, Arirang of South and North walked in different ways. South Korea Arirang showed civilian leadership in accordance with its cultural preferences, while North Arirang has pursued public supply in accordance with the Party's literary policy. As a result, South Korea and North Korea's Arirang lose their cultural consensus, and the distance is considerable. The event has been steadily continuing to reaffirm that the two Koreas are singing “Arirang” together, but they could not achieve the effective effect of narrowing the cultural distance of Arirang. If this is the case, we will need a more fundamental and practical approach to the cultural dimension in order to narrow the cultural distance between two Koreas of Arirang and to enhance cultural consensus. To this end, it is necessary first to explore the interactions between North and South Arirang, which are in a heterogeneous phase, and to establish a foundation for restoring the cultural consensus of Arirang. However, it is difficult to raise cultural jointity between two Koreas of Arirang. Therefore, we must resolve the issue right now, establish a shared phase with the contact point, and go on to gradually expand it and make continuous efforts. From this point of view, South and North Korea should push forward the joint registration of Arirang's UNESCO humanity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hrough this project, Arirang debate will be carried out between the two Koreas, and further work will be required to restore the cultural consensus of Arirang. Arirang is not just to symbolize the ‘one’, but to be a mediator of ‘one’. 향토민요로 존재하던 아리랑이 경복궁 중건을 계기로 대중민요가 되어 전국적으로 유행되고, 영화 <아리랑>을 계기로 문화모태가 되어 문화적 진화를 하며 콘텐츠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아리랑>은 민족을 상징하는 사회성을 획득하고, 그 후 아리랑은 감성지향과 의식지향의 이원적 전개 축을 구축했다. 남한과 북한의 아리랑은 분단 이전 구축된 아리랑의 토양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분단 이후 남북의 아리랑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남한 아리랑은 문화취향에 따라 민간주도의 전개를 보인 반면, 북한 아리랑은 당의 문예정책에 따라 공적 공급의 전개를 해왔다. 그 결과 남한과 북한의 아리랑은 문화공동성을 잃고 그 거리가 상당히 벌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이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서로 ‘하나’임을 재확인하는 이벤트는 꾸준히 지속해왔지만, 그렇다고 상호 아리랑의 문화적 거리를 좁히는 실효적 효과에 이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남북 간 아리랑의 문화적 거리를 좁히며 문화공동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벤트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본질적이며 실천적인 접근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남북의 아리랑 연구자와 문화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이질적 국면에 처한 남북 아리랑의 상호 접점을 모색하고, 아리랑의 문화공동성 회복을 위한 토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토대 위에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아리랑콘텐츠를 개발해 공급할 필요가 있다. 아리랑의 이질적 국면을 좁히고, 공유 국면을 점차 확장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 아리랑의 문화공동성 제고는 일거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당장의 현안부터 해결하며, 이를 접점으로 공유국면을 확보하고,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단계로 나아가며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남북은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 등재 사업을 현안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사업을 통해 남북 간에 아리랑 논의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아리랑의 문화공동성을 회복하는 작업으로 이어가야 한다. 아리랑이 단지 ‘하나’라는 점을 상징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이기 위한 일을 매개하는 존재가 되도록 해야 한다.

      • KCI등재후보

        자진아라리의 분포와 장르양상에 관한 연구

        강등학 한국민속학회 2004 韓國民俗學 Vol.39 No.-

        자진아라리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그 인근지역에까지 나아가 분포되어 있다. 주로 태백산맥과 차령산맥의 줄기를 타고 나아가며, 위로는 광주산맥, 아래로는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대체로 강원도의 산맥 줄기를 타고 나아가면서 그 인근지역에 분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의 민요는 종류를 다양화하기보다는 기능을 복합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자진아라리도 나무하기, 나물뜯기, 밭매기 등 산간지역의 이러저러한 일거리와 노래 자체를 즐기는 노래판을 통해 전승되어 왔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이르러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자진아라리가 모심기를 하면서도 불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산간노래로 존재하던 것이 뒤에 들노래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자진아라리의 후렴은 넘어간다류, 넘겨주게류, 아라리야류, 얼었다가류, 놀다가세류, 왜요리아려류 등 6종으로 나타난다. 이 중에 이 노래의 대표적인 후렴은 넘어간다류이다. 그러나 자진아라리는 본래 후렴이 없던 노래이다. 현재의 후렴은 들노래로 진출하면서 작업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이른바 아리랑어사설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후렴으로 삼은 것이다. 자진아라리와 아라리는 노래의 생태적 양상이 거의 동일하다. 그래서 두 노래는 사설의 교섭이 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라리의 정서는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지만, 자진아라리의 정서는 대부분 가볍다. 가벼우며 무거운 데 대해 가볍기만 한 것은 부분이다. 그러므로 특성화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설의 공유가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혀 있으면서도, 자진아라리로만 실현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아라리로 충족되기 어려운 측면을 자진아라리가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인데, 집약하면 그것은 흥취적 기능이다. 그러므로 자진아라리는 창자들이 아라리로 충족하기 어려운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함께 공존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원도아리랑은 자진아라리를 통속민요로 변개시킨 노래이다. 향토민요와 통속민요는 그 문화적 성격이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강원도아리랑은 주요 소비공간인 도시에 합당한 정서를 담아내도록 새롭게 바뀌어야 했다. 이러한 변화가 사설에는 생태적 특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또 후렴에는 유흥적 속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래의 정체성이 문화적 생태환경과 맞물려 형성된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아리랑의 전개에 있어서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 곧 본조아리랑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의 전개 동력 가운데 하나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아리랑을 통해 아리랑에 민족이라는 기호가 입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조아리랑은 경기자진아리랑을 편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필자는 경기자진아리랑이 자진아라리를 본으로 삼아 만들어진 노래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진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의 원본이 되는 노래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 KCI등재

        한국민요학의 문제의식 추이와 경기도 민요연구의 과제

        강등학 한국민요학회 2010 한국민요학 Vol.30 No.-

        It is Gyenggi-do folksong that accepted the some professional music of 19th century at Seoul. And Gyenggi-do folksong is more variety than the rest area in main section of uses. These mean that Gyenggi-do folksong developed widely and dynamically than the rest area. But the study on Gyenggi-do folksong didn’t achieve a good product that much. More concrete state is this. We have a lot of data of Gyenggi-do folksong which was evenly inquired in area. But it wasn’t made sufficiently vocal and video data from the inquiry of Gyenggi-do folksong, also wasn’t inquired about the details of individual folksong. And the information service of Gyenggi-do folksong on computer network should be improved by providing the a lot of data about aspect of the scene and culture The study on Gyenggi-do folksong have mainly researched in aspect of musicology, except a little of performative, ecologic and traditional aspect. Therefore the majority of papers on Gyenggi-do folksong have discussed in aspect of musicology, it is both that the study on Gyenggi-do folksong didn’t evenly develop to academical fields. And besides aspect of musicology the study on Gyenggi-do folksong is still in the general stage, so it has the needs of research on more detailed level. 경기도의 민요는 통속민요의 수용이 많은 편이다. <논매는소리>에 통속민요가 여럿 수용되어 있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개성난봉가>, <경복궁타령>, <양산도타령>, <방아타령> 등이 모두 <논매는소리>로 보고되어 있으며, 특히 <방아타령>은 경기도의 <논매는소리>로서는 <상사소리>, <방아소리>에 이어 그 분포가 세 번째로 넓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경기도는 <모심는소리>, <논매는소리>, <운상하는소리>, <묘다지는소리> 등 각각의 부류에 속하는 개체요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런데 논농사요와 장례의식요는 각각 노동요와 의식요의 범주에 있어서 그 분포와 밀도가 가장 높은 부류에 해당한다. 통속민요의 수용이 많고, 또 민요의 중심 부류가 그 전개를 활발히 한 것은 경기도가 문화적으로 그만큼 강한 탄력을 지닌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민요학은 경기도의 민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경기도 민요연구는 문화적 탄력이 강한 곳으로서 한국민요학에 대한 그만한 기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경기도의 민요연구는 한국민요학의 연구추이와 어떠한 호흡을 이루고 있는가?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그 동안 경기도 민요연구의 성과를 검토하고, 아울러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이 연구의 중심적 의도이다. 경기도의 민요자료는 지역적으로 고르게 축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민요수집의 추이에 비추어보면, 경기도의 민요수집은 성음자료 및 영상자료의 작성, 그리고 국소확장적 조사에 미흡한 상황에 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경기도 민요수집은 앞으로 현장복사의 작업과 현장 관찰 작업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민요의 전산서비스 역시 현장과 문화에 관한 정보를 보완하여 수용자가 상황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경기도 민요수집의 과제는 앞으로 현장의 복사와 전달, 관찰 등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전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경기도 민요연구는 각 범주가 고르게 전개되지 못했다. 최근 한국민요학의 연구추이는 생태론적 연구, 문학학적 연구, 음악학적 연구, 연행론적 연구, 국외민요연구, 북한지역 민요연구, 소비양상과 문화성향 연구, 가창자 연구, 문헌민요 연구, 전승 및 현재화 연구 등 여러 범주에 걸쳐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 가운데 경기도 민요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음악학적 연구뿐이다. 생태론적 연구, 연행론적 연구, 전승 및 현재화 연구 등에 일부 논의가 이루어진 상황이며, 나머지 범주는 작업 자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경기도의 민요연구는 음악론적 연구를 제외한 작업의 대부분이 조사연구와 총괄적 연구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경기도 민요연구가 범주별 편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사연구나 총괄적 연구를 넘어서서 국면을 보다 세부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학학적 연구, 생태론적 연구, 문화성향 연구가 보다 촉진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의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문학학적 연구와 생태론적 연구는 조사연구와 총괄적 논의를 넘어서서 세부적 국면을 읽어내는 데 대해 토대가 될 수 있는 작업이며, 아울러 문화성향 연구는 경기도 민요가 여타지역과 구분되는 문화적 탄력과 문...

      • KCI등재

        <정자소리>의 분포와 장르양상에 관한 연구

        강등학 한국민요학회 2010 한국민요학 Vol.29 No.-

        Jungjasori is one of the no refrain song with the plural verses form, which spread mainly over the eastern part of Korea; Gangwon-do, Gyeongsangbuk-do, Gyeongsangnam-do etc. Besides Jungjasori, Minari, Odoktegi, Arari, Jajinarari belong to this kind of song. And these songs are descended in a line from Minari. Jungjasori is simiilar to Minari on musical component on account of Jungjasori derived from Minari. But people who embraced Minari from necessity of song for rice-planting, changed a singing method of the song. So a singing method of these songs is different from each other. Minari’s singers sing roundly one by one without order, however Jungjasori’s singers who are divided into two groups, sing half of song by turns. Minari that is exchanged a singing method, gradually had been different from original on the component of words and the mood of performance. In other words this song got new character of song genre. Then changed Minari was regarded new song, and called the song new name that is Jungjasori, or Monorae. Jungjasori is a unique folk song that is sung no refrain song with the plural verses form by turns of two groups singers. Therefore the performance of Jungjasori was culturally experience that wasn’t there before. So this song could was widely gained popularity. Consequently this song spreaded over the Gyeongsangbuk-do, Gyeongsangnam-do, in addition to the neighborhood, that is became a representative farming song in the Gyeongsangbuk-do and Gyeongsangnam-do. <정자소리>는 <등지>, 또는 <모노래>라고도 하는 <모심는소리>로서 영남지역 농요 중에 그 분포가 가장 넓고 고른 노래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자소리>는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농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자소리>는 장절형식 무후렴요의 하나이며, 이러한 장절형식의 무후렴요는 대체로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상남도를 비롯한 동부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특성을 보인다. 예를 들면 <정자소리>를 비롯해 <미나리>, <오독떼기>, <아라리>, <자진아라리> 등이 모두 그러한 노래인데, 이것들은 그 원천을 같이 하면서 서로 다른 관계를 맺으며 현재의 생태를 이루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소리>는 <미나리>로부터 파생된 노래이다. <미나리>는 밭매기, 논매기를 중심으로 벼베기, 꼴베기 등 지역에 따라 여러 용도로 부르던 것인데, 뒤에 이곳저곳에서 모심기의 용도로 부르는 곳이 생겨났다. 영남지역도 그러한 곳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는데, 그 중 일부 지역에서는 종래 <미나리>의 가창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채택했다. 윤창으로 부르던 노래를 사설분담식 교환창으로 부른 것이다. 그 결과 가창방식이 변경된 <미나리>는 점차 원래의 <미나리>와 다른 장르형질을 생성하면서 새로운 노래로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소리>의 가사는 2행단위로 구성되며, 2인의 화자가 설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정자소리>의 가창이 대화조의 언술행위로서 연행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미나리>의 가사는 1행단위로 구성되며, 1인의 화자가 설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미나리>의 가창이 독백조의 언술행위로서 연행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장절형식요를 사설분담식 교환창으로 부르는 사례는 <정자소리>가 거의 유일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정자소리>의 연행은 <미나리>를 윤창으로 부르는 연행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로서 신선감을 유발하게 된다. 영남지역에서 모심기는 남녀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이들이 각각 선창과 후창을 맡아 집단적으로 노래를 주고받는 연행문화는 특히 체험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정자소리>는 영남지역의 내륙에 속하는 낙동강 이동지역에서 생성되어 낙동강 이서지역으로 나아가 각 방향에 따라 내성천, 소백산맥, 섬진강, 그리고 남해의 바다를 경계로 다소의 넘나듦을 보이며 분포를 이루어냈다. <정자소리>가 이처럼 넓게 퍼져 간 것으로 보아 당시 이 노래의 문화적 에너지가 그만큼 강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형질로 빚어낸 연행문화가 당시 민요 연행자들에게 강한 호응을 받았다는 말이다. <정자소리> 확산의 대부분이 실은 <미나리> 분포지 잠식의 결과인 점을 생각하면, <정자소리>의 문화적 에너지가 특히 <미나리>의 분포지에 강한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정자소리>가 <미나리>의 분포지로 확산되어 나간 것은 기존 문화에 대한 새로운 문화의 파동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포괄해 보면, <정자소리>의 내력은 동부지역 장절형식 무후렴요의 국면 전개의 일환이면서 동시에 낙동강을 중심으로 분출된 새로운 연행문화의 국면 전개라는 이원적 맥락을 지니게 된다.

      • KCI등재

        <단허리소리>의 분포와 관련 국면 검토

        강등학 한국민요학회 2016 한국민요학 Vol.48 No.-

        Folk songs have their own energy according to their aesthetics and emotions, and the sensitivity of consumption is formed according to the cultural landscape. Therefore, the power of folk songs is determined by the functions of their own aesthetic qualities and cultural topography, and they experience competition and conflict with other beings of the same purpose. Therefore, the distribution of folk songs has its own ecological history. This aspect is also included in the distribution phase of Tanhotisori. Most of Tanhotisori are distributed in the South Han River area and its extension areas. Gangwon-do, Hoengseong and Wonju, and the South Han River as the root. However, the South Han River basin area is the boundary area where the four major area of agricultural work songs such as Arari-area, Hanasori-area, Sangsasori-area, and Chongjasori-area meet and face confrontation. Among these areas, the high share of Tanhorisori was only in the Arari-area and the southeastern part of the Hanasori-area. This is due to the weakening of the impulse when it enters the outer zone and undergoes a process of conflicting with other songs there. In the distribution area of Tanhotisori, the shape of the refrain is different and forms an opposite phase. In Tanhotisori's reflections where the strong influence of the base area of the foothold is strong, the model is maintained and its influence gradually weakens and the key word “tanhori” changes to “taehori” according to the level. In the Taehori-area, the ornamental phrases of the refrain are used orthodox in the vicinity of the base, and the ornamental phrases of the refrain are varied in various places. <단허리소리>는 대부분 남한강 수계지역과 그 연장지에 분포한다. 강원도 횡성과 원주 등 섬강 일대에 토대를 두고 남한강을 루트로 삼아 주변지로 퍼진 것이다. 그런데 남한강 수계지역은 아라리권, 하나소리권, 상사소리권, 정자소리권 등 4대 농요권이 맞부딪치며 대립국면을 보이는 경계지역이다. 이 중 <단허리소리>가 높은 점유율을 보인 곳은 아라리권과 하나소리권의 동남부지역에 그쳤다. 외부 권역에 진입하면서 그 곳의 다른 <논매는소리>들과 경쟁하며 충돌하는 과정을 겪으며 추동력이 약화된 탓이다. <단허리소리>의 분포지들은 후렴의 모습을 달리하며 대립적인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단허리소리> 후렴이 섬강일대 거점지의 영향력이 강한 곳에서는 전형이 유지되고, 그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그 정도에 따라 핵심어 “단허리”가 “대허리”로 바뀐다. 그리고 대허리권 안에서는 거점과 인접한 곳에서는 전형 후렴의 정통형 장식어구가 쓰이고, 더 나아간 곳에서는 후렴의 장식어구가 다양하게 변이되는 양상을 보인다. 민요는 스스로 지닌 미감과 정서에 따라 각자의 에너지를 지니며, 문화지형에 따라 소비의 감도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민요의 파급력은 스스로의 미적 자질과 문화지형의 함수에 의해 결정되며, 이를 바탕으로 동일용도의 다른 존재들과 경쟁과 충돌을 경험한다. 그러기에 민요의 분포는 각각 나름의 생태력을 내포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단허리소리> 분포 국면 읽기는 그것의 생태력 읽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 KCI등재후보

        <돈돌라리>의 형성맥락과 노래의 실상 읽기

        강등학 국립민속박물관 2023 민속학연구 Vol.- No.52

        “Dondolari” is a product of cultural hybridity that was created in the 1910s or 1920s when Japanese songs were fused with the song of the Korean folk dance from South Hamgyeong Province. However, most of the songs in the Hamgyeongnam-do area's song-dance play are characterized by being composed of “larari” spoken sounds. The cultural hybrid of “Dondolari” was also formed based on these characteristics of the songs in Hamgyeongnam-do's song-dance play. Dondolari is a chaotic-type song-dance play, which has unique characteristics different from Ganggangsullae, Wolworicheongcheong, and Notdaribalbgi, which belong to compositional song-dance play. Ganggangsullae is organized into circle dance and various games, and each play sings a song that fits the theme, and the action embodies and shapes the content of the play. On the other hand, Dondolari sings several songs outside, including “Dondolari”, and inside, the dance board is formed as an unorganized collection of individuals. There is a free spirit that is different from other song and dance plays in Dondolari. ‘Dondolari’ appeared in the context of the ‘lari’ system of oral sounds and existed as a part of the oral sound. Because of this situation, the proportion of the oral sound is dominant in the singing of “Dondolari”. This means that “Dondolari” essentially exists in the nature of an oral beat. It is a song called a function of supplying rhythm for dance movements. When the excitement rises on the Dondolari playground, the play emotion is also strongly featured in the singing of “Dondolari”. The singing of “Dondolari” is an act of praising the dance developed on the spot by chanting “Dondolari,” and at the same time, it becomes an act of expressing the excitement of the scene. In addition, the fragmentary phrases of place names inserted into the spoken sounds of “Dondolari” also become meaningful with on-the-ground emotions. They are the mediums that express the fullness of Dondolari's excitement. Both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and the existence phase of “Dondolari” are linked to the play emotion of the song dance play. This means that the identity of “Dondolari” is formed solely as a song for singing and dancing play. <돈돌라리>는 1910년대, 또는 1920년대에 함경남도 일대의 가무놀이 노래에 일본의 창가가 습합되어 생겨난 문화적 혼종의 산물이다. 그런데 함경남도 일대의 가무놀이 노래들은 대부분 ‘라라리’ 구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돈돌라리>의 문화적 혼종도 함경남도 가무놀이 노래들의 이러한 특징의 맥을 이어 이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문화적 습합으로 출현한 <돈돌라리>가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돈돌라리가 함경남도 일대 가무놀이의 전형으로 자리매김 되기에 이르렀다. 돈돌라리의 노래춤판으로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한식 다음날 북청군 남대천 강가에서 벌어진다. 이곳의 돈돌라리를 다룬 1938년의 동아일보 기사가 있어 그 광경을 재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오후부터 신북청역 철교 아래 백사장에 젋은 여자들이 모여 노래춤판을 벌리는데, 그 수가 수만이라 할 정도로 상당하다. 이들은 서로서로 모여 입타령을 하고 춤을 추는데, 그렇게 놀음하는 모둠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수많은 노래춤판이 여기저기 흩어져 남대천 백사장을 가득 채우며 들썩이는 장관이 전개되는 것이다. 돈돌라리는 난장형 가무놀이로서 구성형 가무놀이에 속하는 강강술래, 월워리청청, 놋다리밟기 등과 다른 독자적 특징이 있다. 강강술래는 원무와 여러 놀이로 조직되고, 각 놀이는 주제에 맞는 노래를 부르며 동작은 놀이 내용을 구현하며 형상한다. 이에 반해 돈돌라리는 밖에서 <돈돌라리>를 비롯한 여러 노래를 불러주고 안에서는 춤판이 개인들의 집합으로 비조직적으로 형성된다. 돈돌라리의 춤판에 여타 가무놀이와 다른 자유분방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춤판에 흥이 달아오르면 개인 기량의 격정적인 춤사위가 나타난다. 누군가 선도하여 춤의 대열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무동, 꼽추, 유걸이 등의 연희가 벌어진다. 여기에 노래와 장단 소리도 더욱 고조되어 놀이판이 난장의 분위기에 이른다. 돈돌라리에는 놀이욕구와 에너지가 강하게 나타나며, <돈돌라리>는 이러한 놀이판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끈다. ‘돈돌라리’는 ‘라리’계 구음의 맥락 위에 출현하여 구음의 일부 구성음으로 존재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돈돌라리>의 가창은 구음 비중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돈돌라리>가 본질적으로 입타령의 성격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춤동작을 위한 장단 공급의 기능으로 불리는 노래인 것이다. 돈돌라리 놀이판에 흥이 오르면, <돈돌라리>의 가창에도 놀이정서가 강하게 실린다. <돈돌라리>의 가창은 어느덧 ‘돈돌라리’를 연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현장의 감흥을 표출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돈돌라리> 구음에 삽입된 단편적 어구들도 현장적 정서가 입히게 된다. “시내강변”, “모래청산”, “보배산천” 등은 각각 특정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돌라리의 흥취가 가득함을 표상하는 매개들이다. 이러한 매개들을 통해 돈돌라리의 흥취와 감흥이 곳곳에 가득한 세상을 구가한 것이다. <돈돌라리>의 형성배경과 존재국면은 모두 노래춤판의 놀이정서에 맞물려 있다. <돈돌라리>의 정체성이 오롯이 가무놀이 노래로서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돈돌라리>의 실상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 놀이 현장을 우선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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