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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의 詩文合一과 文章流弊에 대한 논의

        나련첨(羅聯添),金智英(번역자) 중국어문논역학회 2017 中國語文論譯叢刊 Vol.0 No.40

        본고는 나련첨이 1992년에 발표한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에서 제2장 한유의 以文爲詩와 以詩爲文, 제3장 한유 文의 流弊를 번역하고 주를 가한 것이다. 본고의 제1장에서는 한유의 이문위시와 이시위문에 대하여 논하였다. 한유의 이문위시에 대하여는 찬반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유의 이문위시에 대해 비난한 이들로는 송대의 蘇軾⋅黃庭堅⋅魏泰⋅孫奕⋅陳師道⋅劉克莊, 명대의 王士禎, 청대의 毛先舒⋅王士禛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문위시는 시의 본색에서 벗어난 단지 압운한 문이라 여겼다. 이문위시에 대해 찬성한 이들로는 송대의 呂惠卿⋅李常⋅惠洪, 원대의 趙秉文, 명대의 李東陽⋅陸時雍, 청대의 顧嗣立⋅趙翼⋅方東樹, 근대의 錢基博⋅朱自淸⋅夏敬觀⋅陳寅恪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이문위시는 문을 시 속에 끌어들여 시의 영역을 확충하였다고 여겼다. 나련첨은 역대의 이문위시에 대한 평가를 검토하고, 전인들의 이문위시에 대한 견해를 귀납하여 이문위시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다음으로 한유가 ‘이시위문’했다는 설은 錢穆 선생이 처음 제기하였는데 그 근거는 청대 曾國藩의 ‘無韻之詩’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한유는 ‘이문위시’에 다시 ‘이시위문’을 더하여 진정으로 ‘詩文合一’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이는 한유 문학의 創新이며 문학상 미증유의 성과이다. 제2장에서는 한유 文의 유폐에 대하여 논하였다. 한유의 글은 平易自然과 奇崛造作의 두 가지 풍격을 지녔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는 쉽게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 한유가 진부한 표현과 賤俗함을 피하고자 썼던 창작방법은 때로 유폐를 낳기도 했는데, 1) 字句가 生割하고 2) 晦澁하고 3) 客氣가 盛하고 眞氣는 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유 문은 장점이 많지만 이를 잘 배우지 못해 말류에 이르며 이러한 폐단을 야기했던 것이다. This paper is translation and annotation of the Han Yu’s ‘Yiwenweishi(以文爲詩)’⋅‘Yishiweiwen(以詩爲文)’ and the negative effect of his prose published in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 in 1992 by Luo Lian-tian(羅聯添). The Han Yu’s ‘Yiwenweishi’ is controversial. Those who support Yu’s ‘Yiwenweishi’ think that it draws the prose into poetry area and expand the poetry world. On the other hand, some underestimate that it is a just rhymed verse. Luo Lian-tian induce opinions on ‘Yiwenweishi’ from ancestor and gives a definition of the ‘Yiwenweishi.’ Next, the claim of Han Yu’s ‘Yishiweiwen’ is raised by Qian Bin-si(錢穆) and his view is based on Zeng Guo-fan(曾國藩)’s saying of ‘poetry with no rhythms(無韻之詩)’ in Qing. Han Yu adds ‘Yishiweiwen’ to ‘Yiwenweishi’ to reach truly ‘Cohesion of poetry and prose’, which builds Han Yu’s novel literature and unprecedented achievements. Next, this paper covers the negative effects of Han Yu’s prose. His writings have two characteristics: naturally plain and quaint. However, such a stage is not easy to reach. In particular, the writing style of naturally plain sometimes resulted in negative effects in three ways, that is, the words became unfamiliar, less lucid, and more artificial & less pure.

      • KCI등재

        이륙(李陸)의 「송일본승성진수좌환국시서(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에 대한 분석적 연구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임채명 ( Chae Myung Lim )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7 漢字 漢文敎育 Vol.18 No.-

        이 논문은 유가의 입장에서 사상을 달리하는 불가의 스님을 대하는 양상이 어떠하였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두 작품을 서로 비교한 것이다. 두 작품은 中唐의 문인인 韓愈의 「送浮屠文暢師序」와 조선전기의 문인인 李陸의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다. 700여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유가로서 불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우선 한유의 작품을 전범으로 설정하여 분석한 후, 이륙이 그 전범을 모의하였는지의 여부를 작품의 내용을 대비하는 방법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분석한 결과, 한유는 유가로서 불가를 대하는 데에 ``이름이 유가면서 불가의 행동을 하는 자``와 ``이름이 불가면서 유가의 행동을 하는 자``의 두 유형으로 나누고는 전자를 배격하고 후자를 승인하는 태도를 보였고, 더 나아가 후자마저도 ``이름이 유가면서 유가의 행동을 하는 자``가 되도록 요구하였다. 그것은 불가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대인 불가의 스님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 극단적인 입장이었다. 이러한 한유의 견해는 유가의 도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 「原道」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한유는 聖人의 道에 대비되는 불가의 교리가 인간을 夷狄이나 禽獸로 만드는 야만적인 것이라고 여겼기에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한유의 불가에 대한 인식은 왜구의 노략질로 골치를 썩어온 조선전기의 문인인 이륙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이륙은 한유가 「送浮屠文暢師序」에서 유가의 聖人之道를 언급할 때 사용한 주요 용어들을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에 그대로 차용하였고 왜구의 노략질이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불가의 교리에 연원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해 내었다. 내용도 서로 닮아 있지만 몇 군데의 형식도 한유의 작품에서 익히 본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이륙의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가 한유의 「送浮屠文暢師序」를 모의하였다고 확언할 수 있다. 다만 글을 시작하거나 맺는 방식에 있어서는 한유가 논쟁적인 글쓰기를 한 데 비하여 이륙은 설명하고 진술하는 글쓰기를 하는 차이를 보였다. 이것은 두 사람의 개성이나 문세의 상이함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륙이 유가로서 불가의 스님을 응대하는 양상의 전범을, 시공을 초월해 중당의 한유의 글에서 찾아내어 모의하였음을 확인하였다는 데에 본고의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This study is mainly focused on the comparison between the two Confucian scholar`s writings: Han-Yu`s Farewell Preface of Prime Monk Mun-Chang and Lee-Ryuk`s Farewell Poetry Preface of Prime Monk Sung-Jin`s Return to Japan. As Confucian scholars they had quite similar aspect to see Buddhist although there were almost seven hundred years of time distance. This study analysed Han-Yu`s Preface first and then compared them to that of Lee-Ryuk to see if there were any similarities in content. As a result, this study can find the following Fact; Han-Yu divided people into two types. one is the confucian scholars that act like Buddhists and the other is the Buddhists who act like confucian scholars. He rejected the former and accepted the latter. He even demanded real confucian scholar`s quality. This means he had a extreme opinion that denied Buddhists and monks. This kind of opinion was well appeared in Wondo which were full of his view about the doctrines of Confucius. He regarded Buddhist doctrines as a main cause of making human as barbarians so he criticized them. This kind of understanding evoked Lee-Ryuk`s consensus because he was a scholar of former Chosun dynasty which was infested with Japanese pirate raiders. So he used Han-Yu`s key expressions in Farewell Preface of Prime Monk Mun-Chang when he referred to the doctrines of Confucius in Farewell Poetry Preface of Prime Monk Sung-Jin`s Return to Japan. He found the fact that pillage of Japanese pirate raiders had its origin in Buddhist doctrines. Several contents and forms of his writings were similar to those of Han-Yu. From this fact, this study can assert Lee-Ryuk imitate Han-Yu`s Farewell Preface of Prime Monk Mun-Chang in his Farewell Poetry Preface of Prime Monk Sung-Jin`s Return to Japan. However the way he began or closed his writings was different from that of Han-Yu. Han-Yu chose disputatious writing style but on the other hand Lee-Ryuk followed explaining and stating style. This derives from the difference of writing style between the two people. As a Confucian scholar, Lee-Ryuk followed the way Han-Yu treat Buddhists as barbarian in his writings. From this viewpoint, this study is worth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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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夏敬觀의 <說韓愈> 譯註

        金智英(Ji-Young Kim) 중국어문논역학회 2015 中國語文論譯叢刊 Vol.0 No.36

        본고는 夏敬觀의 <說韓愈>를 역주한 것이다. 하경관은 근대 저명한 학자로서 同光體시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同光體는 근대 古詩를 배웠던 학파 가운데 하나이다. 하경관이 <說韓愈>에서 전개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유 시에 대한 평가는 그의 문을 논했던 평가를 통해 대체로 알 수 있는데, 실제 한유의 <薦士> 시에 그의 시론이 그대로 담겨있다. 2) 한유의 시는 경전을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백과 두보와 달리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 3) 송대 陳師道 · 張戒 · 劉?의 평가와 명대 王世貞 · 陸時雍의 평가를 비교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였다. 4) 蘇軾의 <潮州韓文公廟碑>와 張戒의 《歲寒堂詩話》에서 한유 시를 논한 내용은 그 서술 자체가 한유 시의 氣象과 부합된다고 평가하였다. 5) 한유시는 ‘웅장함(雄)’과 ‘호방함(豪)’이라는 두 글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6) 송대 문인 가운데 한유 시를 가장 잘 배운 이는 王安石이라고 말하였다. 7) 한유 시가운데 <琴操> · <秋懷詩> · <南山詩> · <山石>에 대하여 논하였다. 8) 한유의 시 <謝自然詩>는 그의 문장 <論佛骨表>에 버금가는 것으로 한유가 불교와 도교를 힘써 배척하였음을 지적하였다. 9) 한유가 단약을 복용하여 죽었다는 기존에 설에 대하여 이는 한유가 아니라 한유와 字가 같았던 衛中立이라고 주장하였다. 10) 한유가 시문에 있어 六經의 문장만을 따랐다고 한 주장에 반박하여 한유 시는 원래 《文選》의 체를 따랐다고 주장하였다. 하경관의 <說韓愈>는 청대 동광체 시인의 전통 시가에 대한 시학관념과 문학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This paper is translation and annotation of the <說韓愈 (Discussion on Han-Yu)> by Xia Jing-guan. Xia Jing-guan is a prominent modern scholar and one of the 同光體(Tongguangti) poets. The Tongguangti is one of the modern schools where studies old Chineses poetry. The <Discussion on Han-Yu>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 1) The evaluations on the Han Yu’ poetry are generally viewed in the evaluations on his writings, and especially, the Han Yu’s poem <薦士 (Jianshi)> contains his poetics as they are. 2) As Han-Yu’s poetry built on the scriptures, Han-Yu, unlike Li-Bai and Du-Fu, was able to establish his own way of writing. 3) Xia Jing-guan compares with the evaluations from the Song’ writers like Chen Shi-dao, Zhang-Jie, Liu-Ban and Ming’s writers like Wang Shi-zhen, Lu Shi-yong and then describes his own thinking for them. 4) The narrative style shown in evaluations of Han-Yu’s poetry in <潮州韓文公廟碑(ChaozhouHanwengongmiaobei)> by Su-Shi and 《歲寒堂詩話(Suihantangshihua)》by Zhang-Jie correspond closely with that of Han Yu’s poetry itself. 5) Xia Jing-guan says that Han Yu’s poetry can not be expressed only by two words ‘grandeur(雄)‘ and ‘broad-minded(豪)’. 6) Xia Jing-guan says that among the Song’s writers, Wang An-shi is the best learner of the Han Yu’s poetry. 7) Xia Jing-guan discusses <琴操(Qincao)>, <秋懷詩(Qiuhuaishi)>, <南山詩(Nanshanshi)>, <山石(Shanshi)> among the Han Yu’s poetry. 8) Xia Jing-guan points out that Han Yu strived to exclude Buddhism and Taoism, which is shown in his poem, <謝自然詩(Xieziranshi)> and also his writing, <論佛骨表(Lunfogubiao)>. 9) Xia Jing-guan asserts that the view that Han Yu was killed by taking a sulfur is not true. This mistaken view is caused by the Wei Zhong-li’s death, whose name is same with that of Han Yu. 10) Xia Jing-guan refutes the claims that Han Yu’s poetry followed only the writing style of 六經(Liujing) and asserts that Han Yu follows the style of original 《文選(Wenxuan)》. The <說韓愈(Discussion on Han-Yu)> by Xia Jing-guan is significant in that it shows the notion of the Tongguangti’ poets in the Qing about the poetic and literary consciousness of the traditional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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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의 詩文合一과 文章流弊에 대한 논의

        김지영 중국어문논역학회 2017 中國語文論譯叢刊 Vol.0 No.40

        This paper is translation and annotation of the Han Yu’s ‘Yiwenweishi(以文爲詩)’⋅‘Yishiweiwen(以詩爲文)’ and the negative effect of his prose published in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 in 1992 by Luo Lian-tian(羅聯添). The Han Yu’s ‘Yiwenweishi’ is controversial. Those who support Yu’s ‘Yiwenweishi’ think that it draws the prose into poetry area and expand the poetry world. On the other hand, some underestimate that it is a just rhymed verse. Luo Lian-tian induce opinions on ‘Yiwenweishi’ from ancestor and gives a definition of the ‘Yiwenweishi.’ Next, the claim of Han Yu’s ‘Yishiweiwen’ is raised by Qian Bin-si(錢穆) and his view is based on Zeng Guo-fan(曾國藩)’s saying of ‘poetry with no rhythms(無韻之詩)’ in Qing. Han Yu adds ‘Yishiweiwen’ to ‘Yiwenweishi’ to reach truly ‘Cohesion of poetry and prose’, which builds Han Yu’s novel literature and unprecedented achievements. Next, this paper covers the negative effects of Han Yu’s prose. His writings have two characteristics: naturally plain and quaint. However, such a stage is not easy to reach. In particular, the writing style of naturally plain sometimes resulted in negative effects in three ways, that is, the words became unfamiliar, less lucid, and more artificial & less pure. 본고는 나련첨이 1992년에 발표한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에서 제2장 한유의 以文爲詩와 以詩爲文, 제3장 한유 文의 流弊를 번역하고 주를 가한 것이다. 본고의 제1장에서는 한유의 이문위시와 이시위문에 대하여 논하였다. 한유의 이문위시에 대하여는 찬반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유의 이문위시에 대해 비난한 이들로는 송대의 蘇軾⋅黃庭堅⋅魏泰⋅孫奕⋅陳師道⋅劉克莊, 명대의 王士禎, 청대의 毛先舒⋅王士禛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문위시는 시의 본색에서 벗어난 단지 압운한 문이라 여겼다. 이문위시에 대해 찬성한 이들로는 송대의 呂惠卿⋅李常⋅惠洪, 원대의 趙秉文, 명대의 李東陽⋅陸時雍, 청대의 顧嗣立⋅趙翼⋅方東樹, 근대의 錢基博⋅朱自淸⋅夏敬觀⋅陳寅恪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이문위시는 문을 시 속에 끌어들여 시의 영역을 확충하였다고 여겼다. 나련첨은 역대의 이문위시에 대한 평가를 검토하고, 전인들의 이문위시에 대한 견해를 귀납하여 이문위시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다음으로 한유가 ‘이시위문’했다는 설은 錢穆 선생이 처음 제기하였는데 그 근거는 청대 曾國藩의 ‘無韻之詩’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한유는 ‘이문위시’에 다시 ‘이시위문’을 더하여 진정으로 ‘詩文合一’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이는 한유 문학의 創新이며 문학상 미증유의 성과이다. 제2장에서는 한유 文의 유폐에 대하여 논하였다. 한유의 글은 平易自然과 奇崛造作의 두 가지 풍격을 지녔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는 쉽게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 한유가 진부한 표현과 賤俗함을 피하고자 썼던 창작방법은 때로 유폐를 낳기도 했는데, 1) 字句가 生割하고 2) 晦澁하고 3) 客氣가 盛하고 眞氣는 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유 문은 장점이 많지만 이를 잘 배우지 못해 말류에 이르며 이러한 폐단을 야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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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愈와 柳宗元의 작문 경쟁

        羅聯添(Lian-Tian Luo),金智英(번역자) 중국어문논역학회 2017 中國語文論譯叢刊 Vol.0 No.41

        본고는 羅联添이 1992년에 발표한 <論韓愈古文幾個問題>의 제4장 “韓愈와 柳宗元이 고문으로 서로 경쟁함(韓柳爲文相角)”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한유와 유종원의 글이 유사하다거나 경쟁적이라는 견해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이런 주장은 송대의 羅大經, 명대의 孫礦, 청대의 林云銘, 근대의 錢基博이 제기한 바 있다. 필자는 한유와 유종원의 작문 경쟁에 대한 이전의 정황을 검토하고, 이전에 언급되지 않았던 다른 작품들을 예로 들어 한유와 유종원의 글쓰기에 확실히 경쟁심리가 있었음을 증명하였다. 즉 한유와 유종원의 작품 가운데 서로의 작품을 의식하면서 경쟁적으로 쓴 29조의 작품을 예로 들며, 창작 연대와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그 증거를 제시하였다. 경쟁했던 작품을 종합해 보니 두 사람의 작품 중 시기를 확정할 수 있는 작품 가운데 한유가 유종원 보다 앞서 지은 작품이 월등히 많았다. 이로써 유종원이 고문 창작에 있어 한유와 경쟁하려는 의도가 많았고, 한유가 유종원과 경쟁하려 한 것은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또한 한유가 고문 창작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후인들이 한유를 당송고문운동의 으뜸으로 추앙하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This paper is a translation of Han-Yu and Liu Zong-yuan’s writing competition in Chapter 4 of Luo Lian-tian’s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 The view that Han-Yu and Liu Zong-yuan’s writings are similar or competitive has been around for a long time. These claims were made by Luo Da-jing of Song Dynasty, Sun-Kuang of Ming Dynasty, Lin Yun-ming of Qing Dynasty, and Qian Ji-bo of modern times. I reviewed the previous context of Han-Yu and Liu Zong-yuan’s writing competition and proved that there was a clear competition in their writings by taking other works not mentioned before. I took examples the twenty - nine articles which compete with each other while conscious of their works among the works of Han-Yu and Liu Zong-yuan, in a chronological order Among the works that we can confirm the timing of the works of two people, Han-Yu had much more works than Liu Zong-yuan. This shows that Liu Zong-yuan intends to compete with Han-Yu for the Composition of the ancient writing, and that Han-Yu did not try to compete with Liu Zong-yuan. This also clearly shows that Han-Yu was in a leading position in the Composition of the ancient writing. There is a clear reason why the posterity pay reverence to Han-Yu as the forerunner of the Composition of the ancient writing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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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愈와 柳宗元의 작문 경쟁

        김지영 중국어문논역학회 2017 中國語文論譯叢刊 Vol.0 No.41

        This paper is a translation of Han-Yu and Liu Zong-yuan’s writing competition in Chapter 4 of Luo Lian-tian’s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 The view that Han-Yu and Liu Zong-yuan’s writings are similar or competitive has been around for a long time. These claims were made by Luo Da-jing of Song Dynasty, Sun-Kuang of Ming Dynasty, Lin Yun-ming of Qing Dynasty, and Qian Ji-bo of modern times. I reviewed the previous context of Han-Yu and Liu Zong-yuan’s writing competition and proved that there was a clear competition in their writings by taking other works not mentioned before. I took examples the twenty - nine articles which compete with each other while conscious of their works among the works of Han-Yu and Liu Zong-yuan, in a chronological order Among the works that we can confirm the timing of the works of two people, Han-Yu had much more works than Liu Zong-yuan. This shows that Liu Zong-yuan intends to compete with Han-Yu for the Composition of the ancient writing, and that Han-Yu did not try to compete with Liu Zong-yuan. This also clearly shows that Han-Yu was in a leading position in the Composition of the ancient writing. There is a clear reason why the posterity pay reverence to Han-Yu as the forerunner of the Composition of the ancient writing movement. 본고는 羅联添이 1992년에 발표한 <論韓愈古文幾個問題>의 제4장 “韓愈와 柳宗元이 고문으로 서로 경쟁함(韓柳爲文相角)”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한유와 유종원의 글이 유사하다거나 경쟁적이라는 견해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이런 주장은 송대의 羅大經, 명대의 孫礦, 청대의 林云銘, 근대의 錢基博이 제기한 바 있다. 필자는 한유와 유종원의 작문 경쟁에 대한 이전의 정황을 검토하고, 이전에 언급되지 않았던 다른 작품들을 예로 들어 한유와 유종원의 글쓰기에 확실히 경쟁심리가 있었음을 증명하였다. 즉 한유와 유종원의 작품 가운데 서로의 작품을 의식하면서 경쟁적으로 쓴 29조의 작품을 예로 들며, 창작 연대와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그 증거를 제시하였다. 경쟁했던 작품을 종합해 보니 두 사람의 작품 중 시기를 확정할 수 있는 작품 가운데 한유가 유종원 보다 앞서 지은 작품이 월등히 많았다. 이로써 유종원이 고문 창작에 있어 한유와 경쟁하려는 의도가 많았고, 한유가 유종원과 경쟁하려 한 것은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또한 한유가 고문 창작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후인들이 한유를 당송고문운동의 으뜸으로 추앙하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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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愈 시와 불교와의 관계

        고팔미 대한중국학회 2008 중국학 Vol.31 No.-

        이 논문에서는 한유 시와 불교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한유는 "불도를 배척한다"고 스스로 자임했지만, 그의 행위는 도리어 불교와 깊고 애매하게 유착되어, 자신의 "선언"과 "행동"이 서로 위배되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원도〉를 찬술하고 불골 맞는 일을 간언하는 등 결연히 불도를 반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승려와 밀접하게 왕래하고 시를 수창하며 정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모순적 태도는 후세에 비평을 받았다. 현존하는 한유의 시 사백여수 중 불교와 관련된 시는 겨우 약 20여 수 뿐이지만, 그 영향은 대단하다. 당나라 때 불교는 정치사상면에서 국가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사회를 침식시키는 큰 병폐였다. 당시에 형성된 방대한 무위도식계급 및 그들의 소비경비는 심히 통절한 것이었다. 그는 시에서 이런 불교의 해악을 지적하고 불교를 적극 반대했다. 한유가 불교를 배척한 것은 불교가 백성들의 생산생활에 막대한 파괴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시에다 불교의 허망과 거짓을 풍자하였으며, 혹세우민을 폭로하였다. 시승과 진지하게 교류한 시들은 후세사람들이 한유가 변심하여 불가에 귀의했다고 여겨 질책을 받았다. 한유와 승려의 교류는 경제적 능력 때문이거나, 시문의 재능이 출중한데 불교에 입문한 것이 통탄스러웠기 때문이거나, 심지어는 그들을 유가의 문하로 끌어들여 벼슬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무본스님을 환속시킨 것은 한유의 일대공로였다. 韓愈는 불교비판에 힘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문학창작방법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 이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는 불교경전을 익숙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시에다 화용했고, 그가 시도한 "이문위시" 역시 직접 불경과 불경번역과정에서 얻은 것이며, 시 속의 몇몇 조구방법들도 역시 불경게송의 조구방법을 모방했다. 이로 본다면 한유는 비록 불교를 배척했다지만 그는 여전히 불교경전을 열람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온갖 전적을 박람했으니, 불경도 당연한 포함될 것이다. 在此论文考察韩愈的诗与佛教的关系。韩愈以 "攘斥佛老" 自命,行为却与佛禅有着深刻․蒙昧未彰的纠结,在其"宣言"和"行动"中采取依违两间的态度。他撰写〈原道〉,谏迎佛骨,坚决反对佛老,一面却同僧道往来颇密,诗歌唱酬․情意缠绵。这种自相矛盾的作法曾受到后人的批评。 韩愈现存的四百多首诗中,涉及到佛教的虽然只有有二十几首,却影响深远。唐代佛教不但政治思想上毒害国家和人民,经济上也成了侵蚀社会的大痛疽。当时形成的庞大的不耕不织的坐食阶级以及他们惊人的靡费是深恶痛绝的。韩愈在诗里指出这些佛教的危害而极力反对佛教。韩愈辟佛是因为佛教对百姓的生产生活造成了极大的破坏。他由于僧道之徒俱善于作蛊惑人心的宣传,而又写到对虚伪佛教的嘲讽与揭露。他与诗僧的真挚交往,这一类诗曾遭到了后人的指责,认为韩愈改变了初衷,皈依了佛门。韩愈与僧侣的交往,或是因为其有经济之才,或是因为其诗文才华出众。在为他们遁入空门叹惋之余,甚至想要将这些人才收回儒家门下,给他们戴上儒冠,而无本师的还俗不能不说是韩愈的一大功劳。 韩愈虽然排佛,却在文学创作方法,仍然受到佛教的影响。这颇让人感兴趣的现象;他不仅熟谙佛典,亦能在诗中化用之;他所创的 "以文为诗" 亦直接获益于佛经和佛经移译过程;在诗里的有些造句方式亦模仿到佛经偈颂的造句方式。从此可知,韩愈虽然排佛,仍然观看佛书,他博览群书,当然包括佛典。

      • KCI등재

        談唐宋古文之稱的緣起問題

        安贊淳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2012 中國學論叢 Vol.36 No.-

        당송고문운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당송 고문운동의 태동원인, 내용, 계승발전, 영향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의 고문운동은 한유, 유종원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古文``이란 두 글자도 한대이후 경학에서 ``今文``과 구별되는 문자명칭으로만 쓰이다가 한유·유종원 이후부터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문체명칭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청대의 증국번(曾國藩)이 ``고문``이란 두 글자로 육조이래 ``문필(文筆)``가운데 단행산체(單行散體)의 ``필(筆)``을 지칭한 것이 한유로부터 연유하였다고 한 후부터 중국 근현대의 학자 전기박(錢基博), 나연첨(羅聯添), 웅례회(熊禮匯) 등은 하나같이 증국번의 견해를 언급하며 그의 말에 힘을 실어왔다. 예를 들면 나연첨(羅聯添)같은 경우 증국번의 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한유 이전 및 동시대인의 문집을 다 뒤졌지만, 한유 이전 고문가들 중 ``古文``이란 명칭의 용례를 발견하지 못했고 다만, ``고문``이란 두 글자로 쓰기 전에 고문운동의 선구라 불리는 문중자(文中子)나 유면(柳冕)의 문장 가운데에 ``고지문(古之文)`` 혹은 ``고인지문(古人之文)``이라 쓴 경우는 있어서 이를 한유의 ``古文``이란 명칭의 전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한유의 생년(768년)보다도 58년 이른 시기(710년)에 초당 사학자 유지기에 의해 쓰여진 ≪사통(史通)≫에 ``古文``이란 명칭이 몇 차례 보이고, 그 사전적 함의를 살펴보았을 때 가리키는 바가 한유 이후 고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유지기와 고문가들의 ``고문``에 대한 취사(取捨) 태도에 차이가 있고, 유지기가 당시나 후대 영향력이 있는 사학가이었으므로 한유 등이 《사통(史通)》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설령 읽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유지기가 사용한 명칭이 한유 등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古文``이 한대 경학에서 문자의 명칭에서 문체의 명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유지기의 ``고문(古文)``이 실제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와 영향력은 비록 한유의 ``고문``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시기적으로 한유보다 앞서는 것은 분명하므로 이렇게 ``고문``이란 명칭의 연원설의 한 문제로 제기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KCI등재

        蘇軾 詩의 韓愈 詩文 인용 양상과 그에 따른 宋詩的 특징의 심화

        류소진 ( Liu¸ Sojin ) 한국중국학회 2021 중국학보 Vol.97 No.-

        蘇軾(1036-1101)은 평소 韓愈(768-824)의 문학과 학문은 물론 그의 인품과 인생 역정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흠모하고 공감했다. 이는 그의 詩歌 창작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은 소식 시의 한유 시문 인용 양상에도 잘 나타나,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한유의 시문이 소식의 시에 약 300회 인용되었다. 본고에서는 이 자료의 세밀한 분석을 통해 소식이 자신의 시에 한유의 어떤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많이 인용했는지 그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고, 소식 시의 한유 시문 인용이 그것의 宋詩的 특징을 심화하는 데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확인해 보았다. 연구 결과, 소식은 시를 지을 때 한유의 산문 41편에서 69회, 시 109수에서 224회, 부 3편에서 3회 등 각종 문체에 걸쳐서 두루 그리고 다량으로 한유의 시문을 인용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원래의 어휘나 구절을 원형 그대로 인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원래의 어휘나 구절에 약간의 변화를 줌으로써 새로운 어휘나 구절을 창출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한유 시문의 전체 또는 일부의 함의를 한두 마디에 압축해 넣음으로써 고도의 함축성을 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유의 시문을 인용함으로써 심화된 소식 시의 宋詩的 특징은 奇險한 표현의 多用에 따른 낯설고 색다른 정취, 才學의 과시에 따른 衒學的 분위기 등 두 가지가 있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은 嚴羽가 『滄浪詩話』에서 宋詩의 특징이라고 지적한 ‘以文字爲詩’ 및 ‘以才學爲詩’와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므로 소식 시의 한유 시문 인용은 소식 시가 宋詩的 특징을 심화하는 데에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Su Shi usually admired Han Yu and sympathized with him in many ways, such as his literature, his scholarship, his personality and his life itself. This had a huge impact on his poetry creation, and it was also well reflected on his quotation of Han Yu’s works. I found that Su Shi quoted Han Yu’s works about 300 times in his own poetry. Through detailed analysis of these data, I surveyed the aspect, the way and the frequency of the quotation of Han Yu’s works in Su Shi’s poetry and its effect on deepening the poetic characteristics of the Song dynasty. As a result, I found out that Su Shi quoted 69 times from 41 proses, 224 times from 109 poems and 3 times from 3 poetic essays(賦) written by Han Yu. In some cases, Su Shi quoted Han Yu’s original words or phrases literaly; in some cases, he made new words or phrases by changing original words or phrases; and in some cases, he compressed the whole contents or a part of contents into one or two words. His quotation of Han Yu’s works like these brought about a very deep implication. The poetic characteristics of the Song dynasty in Su Shi’s poetry which were deepened by quoting Han Yu’s works, has following two features: a strange and unusual flavor resulted from the frequent use of bizarre and weird expressions, the pedantic atmosphere according to the ostentation of knowledge. These two features differentiate the characteristics of his poetry from those of previous poetry, they are generally consistent with ‘writing poem with word(以文字爲詩)’ and ‘writing poem with knowledge(以才學爲詩)’, which Yan Yu(嚴羽) pointed out as the poetic characteristics of the Song dynasty in 『Canglang Shihua(滄 浪詩話)』. Therefore, I think that the quotation of Han Yu’s works in Su Shi’s poetry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deepening the poetic characteristics of the Song dynasty.

      • KCI등재

        羅聯添의 “韓愈 고문의 ‘起衰’와 ‘兼美’론”

        김지영 중국어문논역학회 2016 中國語文論譯叢刊 Vol.0 No.39

        This paper is translation of Luo Lian Tian’s book titled <Comments on Hanyu’s prose in respect of several aspects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 Luo Lian-tian appreciates in his book that Hanyu’s role “raising the writing style from the last eight dynasties decline (文起八代之衰)” and “taking advantage of the good aspects for the past era (文兼八代之美).” His book can be summarized mainly in three aspects. First, the definition of the eight dynasties and the controversial definition of the eight dynasties among scholars. And secondly, the real meaning of HanYu’s role of prose-raising from its’ decline for the past era since East-Han (東漢) dynasty and the validity of the contention. The last but not the least, the evaluation of Hanyu’s prose in that it embraces the advantages of the past era, especially more remarkable in his beizhiei (碑誌類). The writing style of beizhi (碑誌) was very popular and further developed since the East-Han and HanYu is obliged to get some help from it. HanYu takes this beizhi (碑誌) rhetorical writing style and makes good use of its wiring spirit. 본고는 羅联添(1927-2015)의 <論韓愈古文的幾個問題>(《唐代文學硏究》(第三輯), 1992)를 번역한 것이다. 나련첨은 한유의 고문과 관련된 문제를 1. 쇠락한 문풍을 일으켜 세움과 8대의 장점을 겸비함(‘起衰’與‘兼美’) 2. 이문위시와 이시위문(‘以文爲詩’與‘以詩爲文’) 3. 고문의 유폐(古文流弊) 4. 한유와 유종원이 문으로 서로 경쟁함(韓柳爲文相角)으로 장을 나누어 서술하였다. 본고에서는 지면 관계상 1장만을 번역하였다. 이 논문의 주지를 요약하면 한유의 문이 ‘8대의 쇠락함을 일으켰고(文起八代之衰)’ 또 ‘8대의 장점을 겸비했다(文兼八代之美)’는 것이다. 나련첨이 전개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한유가 쇠락함을 일으켰다고 한 ‘8대’ 란 과연 어느 시기인지, 그 시기 획정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정리하였다. 두 번째로 한유가 쇠락했던 문풍을 일으켜 세웠다는 말이 과연 타당한지를 살피고, 쇠락함을 일으켜 세웠다는 말의 함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8대 문풍의 쇠락은 문장이 대우에 구속된 文體의 쇠락, 경전의 주지를 담지 않은 내용의 쇠락, 사마천과 양웅의 문장 氣格을 갖추지 않은 기격의 쇠락 세 가지로 보았다. 세 번째로 한유의 문장은 8대의 장점을 겸비하기도 했는데, 한유가 지었던 비지류의 작품에는 동한 이래의 8대 문장의 장점을 겸비하였다. 비지의 문체는 동한 이후에 성행하고 발전하였는데, 한유 역시 이러한 비지 문체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유는 비지문 작품에서 8대 문장의 수사와 구법을 취하고 그 氣格을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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