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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포도와 포도주 전래에 관한 小考

        박세욱(Park Sewok)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6 江原人文論叢 Vol.16 No.-

        고대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선진 문물을 주로 중국에서 받아들이면서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도 많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만 받아들였거나 우리의 토양 맞게 한국화 한 것도 많다. 이러한 상황을 잘 말해줄 수 있는 것 중에서 포도와 포도주를 들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포도가 들어온 것은 문헌상으로 그 기록을 찾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편적인 기록들과 남아 있는 신라 왕국의 유물들은 포도가 이미 삼국시대에 들어왔다는 정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유입가능성은 통일신라시기에 접어들면서 한·중간 인적 물적 교류가 높아지면서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몇 개의 간접적인 유물뿐 아무런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고려시대에는 “東方文物之國”으로서 서해안 일대에 많은 국제 무역항이 열려있었고, 숭불정책으로 서역의 불교인들이 고려에 많이 도래하였다. 게다가 팔만대장경이 조성되면서 포도뿐만 아니라, 많은 서역의 문물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문헌은 고려 말 李奎報의 시가 가장 빨리 포도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결국 포도는 13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헌적 기록으로 남겨지게 된 셈이다. 그러나 13세기 전반에서 13세기 중반까지 몽고와 항전은 포도와 포도주의 국내 등장을 막았고, 그 후로는 가뭄으로 인한 元나라와 고려의 금주령 속에서 포도주는 특수한 계층만이 향유하는 귀족적인 것으로 되었다. 특히 사원에서 소규모로 재배되었던 포도나무는 술이 사원과 승려에게 금지되면서 고려의 포도나무는 관상용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 후 들어선 이씨 왕조 오백년은 개국부터 꾸준히 금주령을 내렸기 때문에 포도와 같은 과일주의 釀造를 결정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어 조선중기에는 사치풍조에 대한 儉約令까지 내려지는 상황에서 비록 포도의 재배는 사원에서 벗어나 일반 私家에서도 종종 길러졌다고 하지만, 그 공급량은 미미했으며, 집단적인 재배나 釀造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중국이나 서양에서 볼 수 있었던 포도주와 관련된 화려한 알콜로그래피(Alcoolographie)는 특정기간 특정작가에게만 보인다. 결국 조선시대 금주령은 우리나라 과일주의 발전을 방해하였고, 쉽게 많은 양을 양조할 수 있었던 소주나 탁주는 상대적으로 그 생산이 늘어난 반면에 포도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고급의 식물로서 약용이나 관상용으로 길러지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이 같은 외래의 문물을 놓고 그것을 수용한 양상은 무척 상반되게 나타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우리 조선시대 중·후반 문인들은 중국행 사신 길에 올라서야 이미 북경의 명주가 되어버렸던 포도주를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뿐이었다. Korea was considerably different from China in accepting civilization from the West (especially from the Middle East). The grape shows us the difference. The grape appears for the first time in the literary work of Lee Gyubo in the 13th century AD. However, the presence of the grape can be traced back to the era of Three Kingdoms in some historical relics. It was rare to find the mention of the grape in written records before the war of Koryeo-Mongolia, due to imperial decrees prohibiting alcohol, frequently proclaimed at the end of Koryeo and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Dynasty. It lead to the result that the grape could not be generalized and cultivated collectively and the consumption of wine was not wide spread. Therefore, unlike in the ancient Chinese literature, allusion to grapes and wine was scarce. In ancient Korea, the grape as a foreign fruit was used only for the medicinal use and provided a certain literary enjoyment to literati. Finally Koreans had to wait for the modern times to popularize the grape and wine.

      • KCI등재후보

        장수와 복락, 多子의 고상한 염원 : 19세기 전북지역 묵포도도 전문화가의 활약

        강영주(Kang, Young-ju) 한국민화학회 2022 한국민화 Vol.- No.17

        본 연구는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춘파 강봉훈이 제작한 《묵포도도 10폭 병풍》의 고찰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와 동일시기 동일지역에서 활동했던 호운 서병우와 낭곡 최석환 포도도의 형식과 양식이 춘파의 포도도와 유사함을 살필 수 있었으며 이어 전북지역 포도화풍에 영향을 미친 충청 찰방을 지낸 조선 후기 대표적인 포도화가 휴당 이계호의 생애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전북지역에 활동한 포도그림 화가들의 작품이 당시 중앙화단이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형식과 양식이어서 더욱 주목되었다. 이것은 중앙에서 40대 이전 포도그림으로 이름을 떨친 휴당 이계호가 이후 충남 공주지역에서 포도그림 화가로 활약했던 것과 관련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18세기 이전 문인들의 修己 목적이자 인격화된 君子 식물로 인식해 제작 감상되었던 포도도는 이계호에 이르러 포도의 식물학적 특징의 사실적 묘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활달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로 화가의 감흥을 표출하고 포도의 길상적 상징까지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변하였다. 더 나아가 19세기 전북지역 포도도 전문화가 최석환은 이계호의 포도도 화풍을 이어받아 대형 병풍에 농묵으로 서예적 용법을 준용하여 빠르고 신속하게 붓을 휘둘러 작화 행위 자체에 흥취를 더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포도도에 부귀영화와 다자다산을 상징하는 다람쥐[鼠]를 그려 넣어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상징과 부귀다산의 세속적 상징을 모두 담아내었다. 즉 이계호에서 시작된 묵포도도는 군산 임피의 최석환, 익산의 서병우, 이리의 강봉훈에게 이어지고 이들의 묵포도도를 경험한 근대기 문인서화가인 정술원, 김철수, 허백련에게 전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전북지역에서 활동한 견식있는 화가들이 그린 묵포도도는 조선 포도도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This study started in the process of examining the grape painting of Chunpa Kang Bong-hoon(春坡 姜鳳薰), director of the Wonkwang University Museum. In addition,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format and style of the painting of Houn Seo Byung-woo(湖雲 徐丙于) and Nangok Choi Seok-hwan(浪谷 崔奭煥), who were active in the same area at the same time as Kang Bong-hoon. It then served as an opportunity to redefine the life of Hyudang Lee Gye-ho(休堂 李繼祜), a representative grape painter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o died while living in Gongju(公州), Chungcheongnam-do. The works of grape painting artists working in the Jeonbuk(全北) regions drew more attention because they were unique in form and style that could not be found in the central art organizationt or other local art organizationtf at the time. This may have started when Hyudang Lee Gye-ho became the best painter in Gongju, Chungcheongnamdo, and served as a grape painter for decades. It can be seen that the characteristics of grape painters who worked mainly in Jeollabuk-do in the 19th century were first changed by the purpose of training themselves before the 18th century and by recognizing them as personified plants. In other words, the characteristics of grape painting in the 19th century changed in a way that paid attention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botanical characteristics of grapes and expressed the artists excitement with lively and lively strokes and included auspicious symbols of grapes. Furthermore, in the 19th century, Choi Seok-hwan took over Lee Gye-hos grape painting style and quickly wielded a brush with a thick ink on a large screen to add excitement to the painting act itself. In addition, a mouse symbolizing wealth and many children(多子) was drawn to include both the ideal human symbol of a man of virtue(君子) and the secular symbol of wealth and fertility in the grape painting. In other words, it can be seen that the grape painting, which began in Lee Gye-ho, were handed down to Choi Seok-hwan of the Gunsan Impi, Seo Byung-pyo of Iksan, and Kang Bonghoon of Iri(益山), and to Jeong Sul-won(斗山 鄭述源), Kim Cheol-soo(芝雲 金綴洙) and Heo Baek-ryeon(毅齋 許百鍊), who experienced grape paintings them. Grape paintings, which have symbols of honor and auspiciousness born from the hands of knowledgeable grape painting specialists such as Choi Seok-hwan, Seo Byung-pyo, and Kang Bong-hoon, show the process of changing the meaning and value of Joseons grape paintings. The next task will be to consider the works of Oh Nam-woon and Kim Hak-soon, who were not clearly revealed in this paper, and artists specializing in folk painting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and grape painting in the central art organization or Gyeongsang-do.

      • 포도 가공 중 잔류농약 가공계수에 관한 고찰

        임무혁 ( Moo-hyeong Im ),지유정 ( Yu-jeong Ji ) 한국환경농학회 2016 한국환경농학회 학술대회집 Vol.2016 No.-

        Processing facter(PF, 가공계수)는 과일 가공식품의 농약잔류허용기준 설정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 연구는 2010년부터 2014년 JMPR 보고서 중 포도 가공시 잔류농약의 PF를 요약하였다. JMPR에서 평가한 포도 가공식품에 대한 농약 잔류량 변화자료는 비교적 일관성 있는 자료이므로 본 연구에서는 식품의 가공방법별 농약 가공계수를 조사하여 농약 물리화학적 특성과의 상관성을 고려하여 앞으로 포도 가공에 따른 농약 기준설정 자료 생산 시 예측모델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포도를 세척, 주스, 포도주, 건포도 및 pomace를 처리하는 동안의 21종 농약 PF를 비교하였다. 포도의 가공공정 중 21종 농약의 PF 연구자료를 평가한 결과, 포도 주스 가공시 PF 값은 불검출-1.7 (평균0.50±0.55)로 매우 다양한 결과로 조사되었다. 주스 가공계수 중 clothianidin이 1.45, dichlobenil 1.4, dinotefuran 1.2 및 etoxazole 1.7로 조사되었다. 포도주의 경우는 12농약 성분의 PF의 범위는 불검출-1.1 (평균0.36±0.41) 이었다. 이들 중 cyantraniliprole은 1, etoxazole 1.1, fenamidone 0.71 및 sulfoxaflor 0.7인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8성분은 불검출-0.28로 포도주 발효과정 중 농약성분은 대부분 분해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포도는 17농약 성분의 자료 중 PF의 범위는 0.22-6.29 (평균2.52±1.51)이었다. Chlorothalonil 의 0.26, cyantraniliprole 0.52 및 triflumizole 0.22 결과를 제외한 14개 농약의 PF는 1.64-6.29로 건포도 제조과정 중 대부분 농약성분은 농축되었다. 포도 가공시 농약의 물리화학적 특성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Kow와 포도 주스, pomace 및 포도주 제조 후 농약의 PF는 무의미한 낮은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증기압과 건포도 제조에서도 무의미한 낮은 상관관계가 조사되었다. 포도의 가공 공정에는 농약의 특성보다는 가공방법에 따라서 농약의 PF 값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 포도(葡萄)의 품성(品性)과 효능(效能)에 대(對)한 문헌연구(文獻硏究)

        김종덕 ( Jong Dug Kim ) 한국농업사학회 2014 농업사연구 Vol.13 No.1

        고문헌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1) 고대 이란어인 budaw를 음역(音譯)한 “蒲萄”는 의미는 같이 모여 술을 즐겁게 마 시고 취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2) 초룡주(草龍珠)는 용의 여의주라는 의미이고 왕성한 생명력과 다산을 의미하여 일상생활에 포도문양을 많이 이용하였다. (3) 진숙달(陳叔達)의 고사에서와 같이 효도의 상징인 포도는 번조증과 갈증을 없애 는 효능이 있으며, 포도로 만든 포도주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4) 감초와 포도는 서로 상극이며, 포도의 단맛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향이나 꿀물을 주기도 하였으며, 대추나무에 접목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포도는 물을 뿌리로 흡수하여 줄기를 지나 열매로 보내는 과정이 매우 빨라 목통(木通)이라고도 하였다. (5) 『齊民要術』(530∼550) 저술당시에 포도재배에 시렁을 이용하였으며, 추위에 약한 포도덩굴을 보호하기 위해 구덩이에 묻고 짚을 깔아주기도 하였다. 포도수확은 낱알로 하였고 포도에 꿀과 기름을 넣고 달인 다음 음건하여 건포도를 만들었다. 포도를 저장하 는 방법으로 구덩이 흙벽에 포도송이 가지를 꽂고 덮개로 닫고 흙으로 덮는 방법을 이 용하였다. 『山林經濟』(1715)에서는 납설수(臘雪水)의 소독작용을 이용하여 병충해를 방 지하고자 하였다. (6) 비단길이 열리면서 서역에서 중앙아시아지역을 거쳐 중국으로 포도와 포도주가 전래되었다. <神農本草經>에 한(漢)나라 이전에 이미 농서(농西)지역에 포도가 있었으나 옥문관(玉門關)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神 農本草經>은 신농씨의 저작이 아니라 한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고, 사용된 지명 또한 한 나라 때의 것이기 때문이다. (7) 통일신라시대에 매우 사실적인 포도덩굴이 묘사된 포도당초문이 보이고, 실제 포 도주잔으로 사용한 로만글라스(Roman glass)인 봉수병(鳳首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 신라시대에 포도와 포도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문헌기록가 운데 포도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高麗史節要』(1452)의 충렬왕 24년(1298) 9월의 기록 이다. 이색(李穡, 1328-1396)의 시에 “새로 심은 포도가 몇 자[尺]나 자랐다.”라는 것으로 미루어 이 당시에 포도가 널리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8) 중국에 포도주제조법이 도입된 것은 당태종이 고창국(高昌國)을 정복한 640년경 으로 보인다. 포도주는 크게 누룩釀造포도주와 자연발효포도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러 한 포도주를 증류하여 만든 蒸溜포도주(소주=브랜디)로 구분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자 연발효포도주가 일반적이었으나 동양에서는 포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누룩양조 포도주 방법으로 술을 빚었다. 처음 포도주가 도입되었을 때에는 건주(乾酒, 白酒)와 술 을 얼렸을 때 얼음 속에 있는 술로 알코올의 도수가 높아 얼지 않은 동주(凍酒)였다. 동 주(凍酒)를 술의 정액(精液, 순수한 진액)으로 인식하였다. (9) 일곡양주(一斛凉州)는 포도주를 뇌물(賂物)로 주고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비유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포도주의 맛이 좋음을 비유하는 것으로도 사용한다. (10) 태양인 식품으로 포도를 분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포도가 진액이 윤 택[其液緣淫]하여 간(肝)을 완화시고, 막는 기운[塞力]이 강하다. 둘째, 태양인 완실(完實) 무병(無病)의 조건이 소변이 왕성하게 잘 보아야 한다고 보았는데, 과즙이 많은 포도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셋째, 수렴하는 기운이 있는 포도는 토하려는 구역질을 가라앉 히는 작용이 있어 태양인의 속을 보한다. 태양인 리증(裏證)병증에 포도를 사용하였으며, 포도뿌리는 태양인의 구역질에 사용된다. 넷째, 수렴기운이 있는 포도는 위로 솟구치는 기를 아래로 내리며 수도(水道)를 잘 나가게 하므로 안태(安胎)하는 작용을 한다. This study has some findings through documentary research followed below. (1) “Grapes(蒲萄[podo])” describing the sound of “budaw” in the ancient Iranien is made up by meaning that people enjoy drinking together and get drunken. (2) “Choryongju(草龍珠)` is a cintamani of a dragon in the mouth, meaning the full vitality and productivity. With this reason, the pattern of grapes are used in daily life. (3) Shown in the ancient Jinsukdal(陳叔達)`s event, graphs are symbol of filial piety, having an effect against thirst. Also, grape wine has a symbolic meaning of wishing good health and longevity. (4) Licorice and graphs are incompatible; musk and honey water were watered for increasing the sweet taste of graphs or jujube tree is engrafted on a graphvine. (5) A wall shelf was used for planting grapes and grapevine was buried in a hole for protecting it from the cold at the time of writing Jeminyosul(『齊民要術』(530∼550)). The grape harvest was done by gathering a single berry and dried graphs were made by pouring honey and oil over graphs and drying them in the shade. To save grapes, after digging a hole on the soil wall, grapes are covered with soil, sticking a branch of graphs. According to Sanrimkyeongje(『山林經濟』(1715)), Napseolsu(臘雪水) was used against disease and insects as a sterilizer. (6) With the Silk Road open, graphs and wine were introduced from the western countries to China via Central Asia. The supposition in Shinnongbonchokyeong(<神農本草經>) is wrong that graphs had existed in the region of Nongseo(농西) before Han Dynasty but they couldn`t be delivered through Jade Gate(玉門關). That`s because Shinnongbonchokyeong was not written by Shinnongsi but in the Han Dynasty and the name of a place was also made up in Han Dynasty. (7) As a still-life painting called Pododangchomun portraying grapevine quite realistically and Roman glass named Bongsubyeong(鳳首甁) used as a wine glass was found , graphs and wine are assumed to have existed in the period of unified Silla Among the ancient documents in existence, the first comment about wine was the record in Goryeosajeolyo(『高麗史節要』(1452)) in September 1298. From a line from the poem by Lee Saek(李穡, 1328-1396), “The newly planted grapevine was grown well”, graphs are assumed to have been planted in those days. (8) The wine-making technique was introduced in 640 in China. The wine was can be divided into three: one is wine with yeast, another is natural ripening wine and the other is brandy distilled. In the western style, natural ripening wine was common while wine with yeast was generally used in the eastern nations when wine was first imposed. (9) The term, “Ilgokyangju(一斛凉州)”, is an quotation used when someone enters government service in return for offering wine as a bribe as well as when wine tastes good. (10) The evidence that graphs are classified as Tayangin food are followed below. First, graphs having abundant juice have an energy to relax liver and the defensive strength. Second, the prerequisite for Taeyangin`s healthy state is urinating fully, that graphs make it easier as they have ample juice. Third, graphs can help Taeyangin relieve nausea and stop vomiting as they have gathering Qi, saving the inner energy. Taeyangin`s exterior disease can be treated by graphs` and the root of graphs can be available for nausea. Fourth, graphs can make the water route(水道) in the body smooth and the embryo comfortable by making the bursting Qi descend.

      • KCI등재

        일본의 포도주 생산 합작방식이 중국의 포도주산업 발전에 주는 함의: 중국 옌타이(烟台)와 일본 카추누마(勝沼) 포도주 생산지역 비교를 중심으로

        박경철 한국농촌지도학회 2012 농촌지도와 개발 Vol.19 No.2

        19세기 말, 일본(1877년)과 중국(1892년)은 서양으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포도 주를 들여왔지만 그 발전과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본은 소규모의 포도주기 업 위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해온 반면, 중국은 소수 대규모로 발전해 오다 중간 에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정체되었는데 최근에 와서 많은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 간 포도주산업과 지역의 발전측면에서 보면, 두 국가 간의 이러 한 차이의 비교는 양국 간의 포도주산업과 지역의 발전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 다. 특히, 현재 중국농민의 권익과 농민전업조직의 필요성이 갈수록 중시되는 상황에서 일본 카추누마(勝沼)지역의 지방정부, 포도주기업, 농가 간 유기적인 포도주 생산과 지역발전을 위한 합작방식은 향후 중국 옌타이(烟台)지역의 포도 주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농촌지역 내 협력조직체제의 구축과 발전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 KCI등재

        포도주와 성 암브로시우스의 성경 주해서

        정환규 한국서양중세사학회 2022 西洋中世史硏究 Vol.- No.49

        Saint Ambrose of Milan(339-397) is the first Father of the Church that first made ethical mention on drinking alcohol. He tried to show the right path to the faithful by recognizing the merits and demerits of Alcohol. His writings on Social teachings show these thoughts well. But, to understand his views on alcohol we need to take a closer look at his Exegesis of the Bible. This thesis, based on the Preliminary Study of Genesis, narrows to the Exegesis that are not related to Genesis. Especially focusing on the wine that takes the major position among the alcohol mentioned, trying to draw its specialty. In this study, Opera omnia di Sant’Ambrogio - the most trustworthy Critical Text – is used. Saint Ambrose did not only stay at the abstaining alcohol but found the ethical foundation from the Bible. During his Exegesis, he used the word “wine” 135 times. among the usage, 49times(36.3%) are the direct quotation of the Bible. Saint Ambrose mentioned wine from the origin of the wine to the mystical transformation of the Blood of Christ. The wine is created to give joy to the humans by the Creator, but due to the misuse of the human, its negative aspects are also revealed. So, by the stories of people and Apostoles in the Bible, we need to deal with the wine well. Symbols are another important aspect that Saint Ambrose’s wine. Wine is represented among various alcohol that overcomes its limit and is also used at various dimensions such as the pleasure of the flesh, blood of righteousness, drink of the evil, wrath of God, grace and joy from the God, His Words, faith, Holy Spirit, etc. Among all, the wine is used at the Eucharist, Mass. So, the wine moves beyond the symbolic dimension and enters fo the mystical zone – Blood of Christ. Wine is not to be unconditionally permitted nor unconditionally prohibited. The wine is from our real-life that has many symbols, and it expands to the mystical area. To make a deep understanding of the view on alcohol of Saint Ambrose, we need to understand the wine that has this many values. So, moving forward from the standard ‘be moderate on wine’ to see a new ethical basis of Saint Ambrose, and this can lead us not only to understand the western society at that time, but also become our guideline.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339-397)는 술을 마시는 데 윤리적 언급을 한 첫 서방 교부로, 술이 가진 장단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신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려 노력하였다. 이런 암브로시우스의 생각은 그의 사회교리 저서에 잘 나타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그의 음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작성한 성경 주해서를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서는 창세기 주해서에 관한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창세기와 연관되지 않은 주해서로 시선을 좁히고, 이 속에 나타난 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포도주에 한정하여 그 특성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 작업을 위해서 신뢰할 수 있는 비평본, 『암브로시우스 전집(Opera omnia di Sant’Ambrogio)』의 판본을 이용한다. 암브로시우스는 단순히 포도주를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성경에서 윤리적 근거를 찾는다. 성경 주해서 안에서 암브로시우스는 포도주를 총 135번 사용하는데, 이 가운데 36.3%에 해당하는 49번이 성경의 직접 인용이다. 이것을 기반으로 암브로시우스는 포도주의 기원부터 그리스도의 피에 이르는 신비적 변화까지 포도주를 언급한다. 포도주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창조하신 물건이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남용으로 부정적인 면도 드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성경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과 사도들의 이야기를 교훈 삼아 포도주를 잘 다루어야만 한다. 상징은 암브로시우스의 포도주가 가진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다. 포도주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술 전체를 대표하는 물건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육체적 쾌락, 의로운 사람이 흘리는 피, 악마가 주는 음료, 하느님의 진노,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기쁨, 그분의 말씀, 신앙, 성령 등 여러 차원에서 이용된다. 포도주는 무엇보다 성체 성사, 곧 미사성제에서 쓰이는 물품이다. 따라서 포도주는 상징의 차원조차 넘어서 그리스도의 피라는 신비적 영역으로 들어간다. 포도주는 무제한으로 허용할 물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배제할 물건도 아니다. 포도주는 현실의 물건이면서도 여러 상징을 지니고 있고, 더 나아가 신비의 영역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가 생각한 음주론을 숙고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다양한 가치를 가진 포도주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단순히 ‘포도주를 절제하라’는 기준을 넘어서 암브로시우스의 새로운 윤리적 근거를 바라볼 수 있고, 이것은 당시 서구 사회를 이해하는데 뿐만 아니라 오늘날 신앙인에게도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 냉동온도에 따른 포도즙의 동결특성

        윤홍선 ( Hongsun Yun ) 한국농업기계학회 2019 한국농업기계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4 No.2

        본 연구는 포도즙을 냉동할 때 냉동실 온도가 포도즙의 동결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여 적정한 냉동조건을 설정하기 위하여 수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냉동실의 온도를 -5℃~-20℃ 범위에서 변화시키며 포도즙의 온도변화와 동결시간을 비교하였다. 포도즙은 포도쥬스 제조공장에서 캠벨얼리 품종의 포도로 부터 착즙한 첨가물이 없는 포도즙을 구매하여 사용하였다. 포도즙의 당도는 13.8 Brix 이었다. 포도즙은 직경 550mm, 높이 600mm의 스텐레스통에 120ℓ를 담아서 냉동실에 보관하여 포도즙의 온도를 계측하였다. 포도즙의 온도는 보관용기 표면부와 포도즙 중심부에서 상하로 5점씩 측정하였다. 포도즙의 동결량은 실험시간 동안 미동결된 포도즙의 무게를 측정하여 환산하였다. Fig,1에서 포도즙의 온도는 6.0까지는 표면과 중심의 온도가 함께 급속하게 하강한 후에 표면온도 -3.0℃, 중심온도 -2.0℃까지는 냉각속도가 서서히 둔화되었다. 냉각시간이 24시간이 경과된 이후부터 표면온도는 -3.0℃, 중심온도는 -2.0℃로 유지되면서 표면부터 중심부로 포도즙의 결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용기 표면과 중심부의 온도는 약 5시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변동되었다. Table1에서 포도즙의 동결량은 냉동실의 온도에 비례하여 증가되었다. 앞으로 포도즙 동결시간의 단축을 위하여 용기 표면에서의 표면열전달과 표면으로부터 중심부로의 전도열전달의 영향을 고려하여 최적조건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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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통 바슐라르의 질료적 상상력을 통한 포도주 이미지의 다층성 연구

        김옥재 한국프랑스문화학회 2023 프랑스문화연구 Vol.57 No.1

        Cette étude porte sur le vin au travers des différentes études d’images de Gaston Bachelard. Bachelard a dévéloppé sa théorie de l’image en se référant à la vigne et au vin comme exemples spécifiques de l’imagination de la matière. Dans le domaine littéraire, le dynamisme de l’imagerie bachelardienne s’est affaibli, et la science du vin moderne manque d’une approche humaniste de ses valeurs intrinsèques. C’est pourquoi une étude plus poussée de la vigne et du vin à travers Bachelard et son développement ultérieur profiteront simultanément au monde littéraire et à la science du vin. À travers cette démarche, si la théorie de Bachelard débouche sur l’étude pratique du vin et si cette dernière mène à des recherches sur le passé de la culture de la vigne, mettant ainsi en évidence son essence spirituelle, cela pourra mener à des échanges actifs entre les deux disciplines. Pour ce faire, nous interprétons et développons la théorie de l’image des différentes parties de la vigne et du vin, avec une attention particulière portée à l’imagination matérielle des ouvrages de Bachelard sur la terre, le feu, l’eau et l’air. Ensuite, nous engageons des recherches plus multidimensionnelles sur la couleur, le goût, la forme et la beauté du vin. Enfin, nous pouvons accéder aux aspects les plus essentiels des vins du passé, qui nous ont permis d’apporter plus de valeur aux vins modernes, en particulier à travers l’agriculture biodynamique et les vins naturels. Et nous souhaitons finalement utiliser cette étude pour prédire les évolutions futures du vin. 본 연구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이미지 연구 중 포도주에 관한 것들에 주목하였다. 바슐라르는 질료적 상상력의 구체적인 예로 포도나무와 포도주에 주목하여 그의 이미지론을 전개했으나 그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바슐라르의 포도나무와 포도주에 관한 연구를 떼어내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일은 문학 세계와 실용적인 현대 와인학 모두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문학 세계에서 바슐라르의 이미지론은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고 있지만 활발함이 둔화되었고, 현대의 와인학은 과학과 유통의 발전에 따라 실용적 학문 중심으로 급성장해 왔는데 그 본질적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통해 바슐라르의 이론은 포도주에 관련한 실용 학문으로 나아갈 길을 찾게 되고 포도주에 관련한 실용 학문은 정신적 본질을 찾아내는 과거로의 연구를 진행한다면, 중간 지점에서 두 분야가 활발한 교류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흙’, ‘불’, ‘물’, ‘공기’에 관련한 질료적 상상력에 주목하여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이미지론을 발전시켰으며 그것을 토대로 포도주의 색과 맛, 형태, 미감에 관해 다층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를 통해 과거의 포도주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면을 찾아낼 수 있었으며, 그것들은 현대의 포도주, 특히 최근의 유행인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 그리고 내추럴 와인에 좀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본 연구를 통해 과거의 농법이 최근에 급부상한 이유를 ‘심층생태학’과 관련지어 살펴보고 포도주의 미래의 경향을 예측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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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과천 출토 청주 한씨 스란치마에 나타난 포도동자문의 기원과 함의

        이해주 한국문화유산협회 2021 야외고고학 Vol.- No.42

        16C 중반 작으로 추정되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경기도 과천 출토 청주 한씨 스란치마에는 포도송이 옆에 포도와 비슷한 크기의 동자가 포도 줄기를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장식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 치마의 포도동자무늬에 주목해,포도와 동자가 결합한 모티프의 기원과 그것의 사용 맥락을 확인하고 이러한 무늬가 조선사대부가 여인의 예복에 직조된 함의를 도출했다. Ⅱ장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종교를 바탕으로 시작된 로마미술의 포도동자 모티프가 초기 기독교 미술에 채용되고, 나아가간다라지방의 불교미술에서 유행한 대략적인 모습과 중국 및 고려의 그릇에 적용된 사례를검토했다. 포도동자는 로마미술에서 주로 석관에 포도·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와 에로스로 조각된 이래 기독교 및 간다라 불교미술에서 장례와 관련된 정황에서 사후세계의 풍요를 희구하는 장례의장으로 사용되었고, 한국에서는 생활용품인 고려청자에도 널리 장식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리스·로마의 신화·종교에 근거한 로마미술에서 기원했음에도, 이모티프가 특정 종교의 고유 도상이나 장례 의장으로 고정되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을 풍요를 희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염원이 투영된 상징이라는 점에서 찾았다. Ⅲ장에서는 청주 한씨 치마 포도동자문의 특징을 분석했다. 이 치마의 포도동자는 현전하는 유물 중 포도동자문이 표현된 직물 가운데 조성 시기가 가장 앞선 것으로, 복식에 직조된 이 무늬에 관한 한 일종의 典型일 개연성이 높음을 지적했다. Ⅳ장에서는 앞서 살펴본내용을 바탕으로 청주 한씨 치마가 여인의 의복이며 포도동자문은 상류층의 취향이 반영된모티프라는 관점과 교류의 관점에서 조망해 그 함의를 도출했다. In the long skirt of Lady from Cheongju Han Clan out of the collections in Dankook University SueokJuseon Memorial Museum, which is estimated to be a work during the middle of 16th century, a figure of boy who was sitting beside of cluster of grapes holding the grape stalk appears repeatedly. In this paper, the origin of motif, which the grape and the boy are combined, and its utilization context were examined focusing on grape boy pattern of that skirt and the implications that the such pattern was woven in the formal dress of the women during Joseon Dynasty were drawn. In Chapter II, that the motif of grape boy originated in Rome became popular in Gandhara through the early Christian art was examined. Since grape boy was carved as Dionysus, the god of grape and wine, and Eros mainly on the sarcophagus it was used as a design that desires the abundance in afterlife under the funeral context in the Christian art and Gandhara art. And it was identified that the historical fact that it was utilized as a decoration for funeral art is the cause that it could be popular over the regions, religions and ages. That is, although it was originated in the Roman art based on the Greek and Roman myths, since it was the symbol of wealth, it was viewed that it could be introduced to ancient China and Korea having the universal religiosity. In Chapter III, the characteristic of grape boy pattern of Lady from Cheongju Han Clan were analyzed and it was pointed out that grape boy pattern of this skirt woven in clothing, which is the most oldest out of the textiles that the grape boy pattern was expressed out of the relics remained currently is highly likely the model of this pattern. In Chapter IV, based on the contents examined preciously, it was examined associating with the funeral context in the perspective that grape boy pattern of Lady frrom Cheongju Han Clan is the excavated clothing and the implications were drawn viewing in the perspective of foreign exchange and the exchange between gen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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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들레르 작품에 나타난 디오니소스적 여정

        조현진 ( Hyun Jin Cho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인문학연구 Vol.42 No.4

        보들레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은 프랑스 낭만주의 시기이다. 19세기 초반 라마르틴, 비니 와 위 고를 비롯하여 프랑스 문인들은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는데, 그 중요한 기폭제가 되는 저서가 스탈 부인의 『독일론』이었다. 그러나 다른 작가들과 달리 보들레르는 독일 낭만주의를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대표적으로 스탈 부인이 책 전체의 핵심이라고 언급한 열광을 보들레르는 도취라는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이는 시를 창작하는 것이 신에게서 부여 받은 영감이나 계시와 같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도적으로 무엇인가에 몰입하려는 의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들레르가 갖는 디오니소스적인 측면, 즉 열광의 상태인 시 창작 과정을 등한시 한 채, 결과로서의 도취 자체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본 논문에서는 보들레르에게 창작의 매개체였던 디오니소스적인 도취, 문학적 창작과 관련된 열광과 광기가 시인의 작품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2장에서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중 디오니소스의 상징물인 지팡이를 다룬 「티르스」와 또 다른 산문시 「천직들」 그리고 『인공낙원』의 전신인 에세이 「포도주와 아쉬시에 관하여」의 일화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보헤미안 음악가들의 삶 속에서 포도주 도취를 선사하며 세상을 방랑하는 디오니소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디오니소스와 불가분의 관계인 포도주를 시상으로 삼은 『악의 꽃』 <포도주>부의 4편의 시들을 차례대로 검토하였다. 「넝마주이들의 포도주」, 「살인자의 포도주」, 「고독한 자의 포도주」, 「연인들의 포도주」라는 각 시편에 설정된 등장인물들에게 포도주는 희망과 위로를 주거나 때론 범죄의 도구가 되기도 하며, 신과 같은 오만함을 선사하기도 하고, 사랑의 황홀감을 배가시키거나 이상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포도주로 인한 강렬한 도취, 디오니소스 축제의 광기가 초래하는 살인, 인간임에도 12주신主神의 대열에 오른 그의 신성, 미지의 본향인 낙소스 섬으로의 귀환과 같은 디오니소스의 다양한 요소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들레르 작품에 나타난 디오니소스의 여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위에서 살펴본 방랑과 도취 이외의 관점으로 4장에서는 <포도주>부의 서시 격인 「포도주의 영혼」과 『악의 꽃』 마지막 <죽음>부의 최후의 시 「여행」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포도송이가 으깨어져 포도주가 발효되어가는 긴 숙성의 여정은 시인이 지상의 말들paroles을 재료로 고뇌 속에 시를 완성하는 창작 과정의 암시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포도주의 도취 속에 잉태된 작품들을 통해서 시적 몽상에 이르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세계로 접근하는 것이 보들레르의 디오니소스적 여정의 끝이자,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Ne avec le Romantisme francais, Baudelaire s`y meut naturellement. Au debut de 19eme siecle, la plupart des ecrivains francais sont fortement influences par le Romantisme allemand, en particulier, par De L`Allemagne(1810) de Madame de Stael. Pourtant, Baudelaire n`a pas comme d`autres, Lamartine, Vigny ou Hugo, a le decouvrir et a s`y convertir. Il a adopte seulement quelques fondements majeurs et originaux de son esthetique:le Surnaturalisme et l`Ironie. De plus, il a transforme la notion d`enthousiasme en celle d`ivresse. Pour Baudelaire, la poesie n`est pas une emanation du Divin ou une Revelation mais bien volonte de s`enivrer. Ainsi, on a depuis longtemps souligne et focalise sur l`ivresse lui-meme chez Baudelaire, en oubliant le cote dionysiaque. Cette etude a pour but de suivre un parcours dionysiaque chez Baudelaire. Tout d`abord, en analysant trois œuvres qui traitent le bohemianisme Les Vocations, Le Thyrse dans le recueil posthume de poemes en prose Le Spleen de Pairs et Du vin et du hachisch dans l`essai Paradis artificiels, on peut examiner la caracteristique du thyrse qui est un symbole de Dionysos et elucider la relation etroite entre celui-ci et les musiciens qui s`enivrent du vin et menent une vie vagabonde. Ensuite, en analysant de pres 4 poemes dans le Vin des Fleurs du Mal-Le Vin des chiffonniers, Le Vin de l`assassin, Le Vin du solitaire et Le Vin des amants -on peut ainsi constater que l`ivresse du vin differe selon les categories de gens. De plusieurs effets du vin comme la consolation du peuple, le moyen criminel, l`orgueil semblable a Dieu, l`aspiration vers le paradis inconnu sont associes aux attributs principaux de Dionysos. En detail, ce sont l`ivresse du vin invente par Dionysos, le roi Penthee mis en pieces par ses fideles, sa divinite en tant qu`Olympien et son retour au lointain pays natal. Par ailleurs, il s`avere que le parcours dionysiaque chez Baudelaire est de ne cesser d`errer de ville en ville et s`enivrer de vin. Il implique la creation poetique et meme l`image de la mort dans L`ame du vin, le premier poeme d`ouverture de le Vin et Le Voyage, le dernier poeme de la Mort des Fleurs du Mal, dans lequel tous les sujets baudelairiens des poemes precedents s`y rassemb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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