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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부리오의 "관계미학"의 의의와 문제

        김기수 한국미학예술학회 2011 美學·藝術學硏究 Vol.34 No.-

        니콜라스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미술계가 1990년대에 들어 대다수의 비평가와 철학자들이 다루기를 꺼려하는 새로운 현상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바로 이러한 새로운 예술현상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하기 위해 "관계미학"과 "관계예술"이란 개념을 창안하게 된다. 부리오는 관계예술이란 인간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예술이고 관계미학이란 인간의 상호관계에 기초하여 작품을 평가하는 이론으로 각각 정의하며, 90년대 일련의 예술가들이 이러한 인간관계를 자신의 예술적 주제로 다루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가 인간의 관계를 폐색하고 단절해왔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리하여 관계예술가들은 폐색되고 단절된 인간의 관계를 다시 뚫고 연결함으로써 그리하여 소규모의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개진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부리오는 이러한 관계예술가들의 출현의 시대적 배경과 그들의 문제의식,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예술적 형식의 창안과 그들이 제시하고자 했던 공동체를 다양한 이론가들의 다양한 개념들을 차용하고 취합함으로써 자신의 관계미학의 이론을 확립하게 된다. 본고는 구체적으로 관계미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요개념들을 부리오의 텍스트를 통해, 즉 ⑴ 관계예술의 출현의 시대적 배경을 데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고 또한 관계예술의 기능을 마르크스의 "사회적 틈으로서의 예술"의 개념을 통해 검토하고, ⑵ 관계예술가들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창안하게 되는지를 데니와 레비나스의 형식의 개념을 통해 논의한 뒤, 나아가 ⑶ 관계예술이 추구한 실제적 소(小)유토피아와 그것의 철학적 토대를 위해 차용된 펠릭스 가타리의 "주체성"과 "미적 패러다임"의 개념을 차례로 검토한다. 그런 뒤, 관계예술이 다루는 인간관계가-부리오가 자신의 이론에 한편 철학적 토대와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끌어들였던 가타리의 (주체성과 미적 패러다임의 의거한) 탈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다른 한편 새로운 미학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90년대 현대예술의 담론 속에 위치시키려했던 미학적 맥락에서, 특히 랑시에르의 비판적 예술의 관점에서-어떤 적합성을 갖는지를 논의함으로써 관계미학의 의의와 문제를 조명한다. 본고는 부리오의 관계미학의 의의가 주로 현대(미술)사적 맥락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관계예술이 등장한 90년대라는 시대적 맥락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몰락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적 결합에 의해 상징화될 수 있는데, 이것은 소위 시장 자유주의 또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지배로 집약된다. 니콜라스 부리오는 90년대 일련의 예술가들이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지배체제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론적으로 체계화 했으며 실천적으로 전시기획을 해왔다. 우리는 여기서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은-모든 미술사의 전환기가 그렇듯이-현대예술의 흐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을 준비했고, 실제로 이것에 반응했던 일련의 예술가와 부리오와 같은 비평가/기획자/이론가를 통해 예술의 시대적 존재이유(raison d'etre)를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리오의 업적은 이러한 90년대 새로운 예술가들의 운동을 "관계미학"과 "관계예술"이라는 전문개념의 창안을 통해 하나의 시대적 양식으로 포착하고 정식화하려 했다는데 있다고 사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는 부리오의 관계미학이 적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첫째 부리오는 관계미학을 가타리의 사상에 근거시키고자 했지만, 사실상 탈구조주의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함이 없이 그의 주체성과 미적 패러다임의 개념을 원용하고 있으며, 둘째 부리오의 관계예술은-랑시에르에 따라 비판적 예술의 힘이 의도와 결과의 직접적 인과관계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분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동질적인 다수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오늘날 비판적 예술의 스펙트럼에서 주변화 되어 있다. 그리하여 부리오의 관계예술은 오늘날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갈등구조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제한적이며, 그것이 제시하는 소(小)유토피아도 민주주의적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 부리오의 관계미학의 많은 문제는 아마도 그가 이론적으로-특히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사이에서-애매하고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Nicolas Bourriaud holds that the 1990s artworld came to confront such a new artistic practice that an overwhelming majority of critics and philosophers were reluctant to come to grips with, and comes up with such concepts as "relational aesthetics" and "relational art" in order to theoretically account for this new art-practice. Bourriaud defines "relational art" as dealing with human relations and "relational aesthetics" as judging artworks on the basis of human relations. He assumes that what leads a bevy of 1990s' artists to take up such human relations as their subject-matter rests on their recognition that the ever-growing capitalist system has cut off human relations. Thus, relational artists strive to put forward an alternative to the problem of capitalism by re-connecting such cut-off human relations and thereby advancing a practical microtopia. Bourriaud has been able to establish his theory of "relational aesthetics" by borrowing a set of concepts from various theorists. In this vein, this paper shall examine-on the ground of Bourriaud's text that deals with major concepts upon which his relational aesthetics turns-⑴ the concepts of "the Society of the Spectacle"(Debord) as a way of analyzing the background of the advent of relational art and "Art as a Social Interstice"(Marx) as a way of articulating the function of relational art, ⑵ the concept of "form"(Daney & Levinas) as a way of showing how relational artists came to invent a new artistic form, and ⑶ Bourriaud's reading of Guattari's concepts of "subjectivity" and "aesthetic paradigm" so as to figure out whether Bourriaus's appeal to Guattari is relevant to relational art's pursuit for a tangible microtopia. Afterwards, this paper shall investigate the significance and limitations of relational aesthetics at once from the viewpoint of poststructualism (from which Guattari's ideas derive) an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1990s contemporary art in which Bourriaud situates his relational art. This paper shall examine the significance of relational aesthetics in relevance with its contemporary art. The 1990s' context in which relational art made appearance (after the Fall of Berlin Wall) may be characterized by the contradictory combination of capitalism and democracy, which implies that global capitalism came to dominate throughout the world. Bourriaud quickly sensed that a group of the 1990s' artists started engaging into new artistic practice with their awareness of the problems growing out of the new global system, timely constituted a theoretical framework whereby to explicate what they were doing, and exquisitely organized several exhibitions for what he called relational artists. Bourriaud's contribution, it shall be argued, lies in his ingenious invention of the technical concepts such as "relational aesthetics" and "relational art" for the arguably uncharted artistic practice of the 1990s, which could establish themselves as a stylistic concept of the period of the 1990s. Nevertheless, this paper shall argue that Bourriaud's relational aesthetics contains no less problems. First, Bourriaud put to use Guattari's concepts of subjectivity and aesthetic paradigm without fully taking into account the context of poststructualism in which Guattari made up those concepts, while intending to rest relational aesthetics upon Guattari's philosophy. Second, Bourriaud's relational art has been marginalized in the spectrum of today's critical art because it builds on homogeneous multiplicity, as shown in Ranciere's argument for critical art. Therefore, Bourriaud's relational art has been so narrowly circumscribed that it could not properly figure in today's various social, cultural, political conflicts, and the kind of microtopia it envisages, it shall turn out, is far from democratic. The majority of Bourriaud's problem may be responsible for the ambiguous and eclectic stance that he took between modernism and postmodernism, and between structualism and poststructualism, it shall be pointed out.

      • KCI등재

        기획심포지엄 메타비평, 그 현대적 과제와 실천 : 분석미학의 주류와 전망

        황유경 ( Yu Kyung Hwang ) 한국미학예술학회 2010 美學·藝術學硏究 Vol.32 No.-

        필자는 슈스터만이 밝힌 분석미학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과 테마를 바탕으로 분석미학의 주류를 분석한다. 그 특징이란 분석철학의 여러 목표와 방법과의 관련, 크로체 류의 관념론 미학 비판, 예술에 관한 반본질주의와 명료함의 추구, 이차 교과인 메타크리티시즘 즉 비평철학으로서의 미학의 구상, 자연미의 경시, 예술평가 쟁점을 피하려는 경향, 예술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강조의 결핍이다. 덧붙여 필자는 의미, 지칭, 허구, 정의, 개념, 재현, 존재론 같은 분석미학 특유의 논제들 논의의 일반적인 성격을 고려한다. 그리고 분석미학의 보다 최근의 작업의 주목할 만한 한 양상이 문학, 회화, 사진, 음악, 회화 등 개별 예술에 주목 하는 경향임을 진단한다. 이로써 미학은 비평적 실천에 다가간다. 여러 이론가들이 분석미학의 한계를 인식하며 예술의 사회적, 문화적, 실천적, 윤리적 차원의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필요로 하였다. 필자는 이것이 예술의 본질에 관한 그 낡은 패러다임을 개정하는 분석미학의 바람직한 향방이라고 생각 한다. 우선 보다 최근에 분석미학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사고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주목할 만하며 바람직하다. 프래그머티즘 미학과 분석 미학이 전적으로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는 슈스터만의 논변을 고려하며 필자는 앞으로 분석미학이 예술의 사회적, 실천적 차원에 대한 듀이의 통찰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섭하게 되기를 예상한다. 다음으로 20세기 중엽 이후 예술계의 매우 급진적인 변화를 분석하는 영미 이론가들은 분석미학보다는 대륙 전통에서 안내를 구하고자 했다. 대륙적 사고가 예술을 사회변화의 한결 더 넓은 문화적 맥락 견지에서 논의해오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이론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분석미학과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양 전통이 사실상 동떨어져 있지 않은 면면을 고려한다. 여기서도 필자는 앞으로 분석미학은 예술을 그 보다 넓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보아야 함을 예상한다. Shusterman`s identification of the features and themes as most typical in analytic aesthetics. They are as follows: connection with the various aims and methods of analytic philosophy; critique of Crocean idealist aesthetics; anti-essentialism about art and the quest for clarity; the conception of aesthetics as a second-order discipline of metacriticism, i.e., philosophy of criticism; the neglect of natural beauty; a tendency to avoid the issue of evaluating art; lack of emphasis on art`s social and historical context. In addition, I observe a general nature of discussions about analytic aesthetics`characteristic topics. Here such kinds of questions in aesthetics as meaning, reference, fictionality, definition, concept, representation, and ontology are briefly dealt with. Another observation is made of a notable aspect of more recent work in analytic aesthetics. It has been a tendency to attend to the individual arts: literature, painting, photography, music and film. By attending to particular arts aesthetics becomes closer to actual critical practise. Learning the limits of analytic aesthetics, not a few theorists have been in need of deeper discussions of art`s social, cultural, practical, and ethical dimensions. I suggest this is a desirable way for analytic aesthetics to revise its old paradigmatic questions concerning the nature of art. In the first place, it is remarkable that, more recently, analytic aesthetics has shed new light on John Dewey`s pragmatist thinking. Considering Shusterman`s argument that pragmatist and analytic aesthetics are not entirely incompatible, I expect that future analytic aesthetics will more actively embrace Dewey`s crucial insights concerning art`s social and practical dimensions. Next, having observed the very radical changes in the artworld after a mid-20th century, Anglo-American theorists engaged in the analysis of them looked not to analytic aesthetics but to Continental tradition for guidance. For Continental thinking, discussing art in terms of a much broader cultural context of social change, offered them the kind of theory they were looking for. However, I show that some main issues, especially of postmodern thinking are, in fact, not alien to analytic aestheticians. Here again, I prospect that future analytic aesthetics should look at art more directively and actively in its broader sociocultural context.

      • KCI등재후보

        대체현실게임 분석을 통한 사회적 예술로서의 대체현실아트 연구

        신서원,이현진 한국영상학회 2012 한국영상학회 논문집 Vol.10 No.1

        대체현실게임'은 최근 소개되는 실험적 형식의 게임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과 공공의 선을 추 구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목적과 지향점을 가지는 예술을 '대체현실아트'고 명명해보고 이 새로운 개념을 사회적 예술 형식으로 접근해서 정리한다. 먼저 예술작업의 사회참여와 예술의 사회적 기능 사이에서 다 양한 사회참여예술의 역사를 살펴보고, 또한 예술이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대하여 접근하고 있다는 현대 예술 비평가 니꼴라 부리오의 관계미학적 특징과 한계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 한계의 극복 방법으로 대체 현실예술(Alternate Reality Art)의 개념과 목적을 제시하기 위해, 대체현실게임이 디자인적 방법론으로 삼는 "최적화된 경험 디자인"의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것이 관계적 미학과는 또 다시 어떤 식으로 연관될 수 있는지 분석하여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기능하고자 하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관계적 예술의 가능성에 대하여 접근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방식의 작업들을 살펴봄으로서 사회적 예술 구현의 가능성에 대 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 KCI등재

        참여미술에서의 윤리와 미학 -클레어 비숍(Clair Bishop)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영욱 ( Young Wook Lee ) 한국미학회 2014 美學 Vol.78 No.-

        이 글의 목표는 참여미술에 대한 클레어 비숍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다. 참여미술이란 지난 20년간 미술관으로부터 벗어나 거리와 마을, 투쟁 현장 등에서 시민, 주민들과의 협업을 통하여 모종의 사회적 함의를 예시해왔던 작업과 프로젝트들을 말한다. 그간 이들 작업들은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공동체-기반 미술, 사회문제에 관여하는 미술, 커뮤니티아트 등으로 불려왔는데, 비숍은 이들을 ‘참여미술’이라고 칭하며 랑시에르의 논의에 기대어 자신의 이론을 수립한다. 논점은 90년대 이후 참여미술의 ‘사회적 전회’가 ‘윤리적 전회’의 방향을 취하는 가운데 미적인 것을 단지 이러한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격하시켜 버린 지점이다. 비숍은 랑시에르의 ‘미학적 예술체제’에 관한 논지를 받아들여 미학과 정치의 동일성을 주장하고, 참여미술의 활로를 모색한다. 이 글은 이에 따라 참여미술의 역사와 미학에 대한 비숍의 이론을 사회적 전회에 대한 해명, 윤리적 전회에 실상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 미학적 예술체제에서의 미학과 정치의 동일성에 대한 설명 그리고 참여미술의 구체적 사례를 통한 대안제시의 순으로 소개한다. 필자는 이 같은 비숍의 이론 소개가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되어온 한국 참여미술 담론의 혼란상을 정리하는 데 일정정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introduce Clair Bishop`s theory on “participatory art”. Participatory art indicates works and projects that have expressed art`s social implication for more than last twenty years. Participatory art have done it by collaborating with communities, neighbors and social groups in town, street and social venues which are located outside of museum-gallery space. Numerous titles were applied to this sort of art, such as “new genre public art”, “socially-engaged art” or “community-based art”, but here, Bishop renames it to “participatory art” and bases her theory on Jacques Ranciere`s aesthetics. The point is that since the 90`s, the “social turn” of participatory art has taken the direction to the “ethical turn”, and it caused the aesthetic elements of those works` degradation into something merely instrumental for such a purpose. Applying Ranciere`s explanation on ‘aesthetic regime of art’, Bishop advocates that art and politics are one and the same, and seeks for the way to renew such participatory art. The essay illustrates participatory art`s history and aesthetics, specifically these points sequentially: the explanation of the social turn of participatory art, the critique of the ethical turn of participatory art, the investigation of the identity of art and politics and the suggestion of an alternative for participatory art by presenting some concrete examples of it. I believe that introducing Clair Bishop`s theory on participatory art would help understand the complex situation in which Korean participatory art scene has confronted for more than a decade.

      • KCI등재후보

        Bodily, Aesthetic, and Ethical Dimensions of Martial Arts as Social Practices

        이기범 한국체육철학회 2004 움직임의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Vol.12 No.2

        본 연구의 목적은 1) 무도(武道)를 사회적 실천으로 이해하고, 2)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무도를 구성하는 신체적 체험, 미학적 체험과 윤리적 체험의 의미를 논의하는 것이다. 사회적 실천은 특정한 기술과 지식이 요구되는 일련의 협업적 활동들을 지속하여, 특정한 목표와 탁월성을 지향한다. 다른 형태의 사회적 실천에 비해, 무도는 신체적 체험을 통하여 미학적·윤리적 체험을 한다. 반복되는 신체 단련에서 비롯되는 신체적 체험은 자아성취감, 심신의 최적 조화로서의 몰입, 내적 학습 모델을 생산한다. 이러한 신체적 체험은 동료와 사범들과 함께 협업적으로 이루어진다. 신체적 체험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게 되면,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과 스타일을 창안하고자 수련하는 미학적 영역을 체험하게 된다. 미학적 체험은 무도 수련의 중요한 계기이지만, 집착하게 되면 자신의 세계에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의 고유성은 자기 이해, 자기 성찰, 자기 발전을 향한 의지로 성숙되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도장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수련을 존중하고 학습하는 윤리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윤리적 체험은 무도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확대되어 무도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윤리적 책임감을 발휘하도록 성숙되어야 한다. 신체적 체험이 무도의 토대가 되지만, 미학적 체험 그리고 윤리적 체험과 조화를 이루며 성장할 때 무도는 사회적 실천으로서 수련의 탁월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 KCI등재

        Bodily, Aesthetic, and Ethical Dimensions of Martial Arts as Social Practices

        Gi Beom Lee 한국체육철학회 2004 움직임의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Vol.12 No.2

        본 연구의 목적은 1) 무도(武道)를 사회적 실천으로 이해하고, 2)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무도를 구성하는 신체적 체험, 미학적 체험과 윤리적 체험의 의미를 논의하는 것이다. 사회적 실천은 특정한 기술과 지식이 요구되는 일련의 협업적 활동들을 지속하여, 특정한 목표와 탁월성을 지향한다. 다른 형태의 사회적 실천에 비해, 무도는 신체적 체험을 통하여 미학적·윤리적 체험을 한다. 반복되는 신체 단련에서 비롯되는 신체적 체험은 자아성취감, 심신의 최적 조화로서의 몰입, 내적 학습 모델을 생산한다. 이러한 신체적 체험은 동료와 사범들과 함께 협업적으로 이루어진다. 신체적 체험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게 되면,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과 스타일을 창안하고자 수련하는 미학적 영역을 체험하게 된다. 미학적 체험은 무도 수련의 중요한 계기이지만, 집착하게 되면 자신의 세계에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의 고유성은 자기 이해, 자기 성찰, 자기 발전을 향한 의지로 성숙되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도장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수련을 존중하고 학습하는 윤리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윤리적 체험은 무도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확대되어 무도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윤리적 책임감을 발휘하도록 성숙되어야 한다. 신체적 체험이 무도의 토대가 되지만, 미학적 체험 그리고 윤리적 체험과 조화를 이루며 성장할 때 무도는 사회적 실천으로서 수련의 탁월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 KCI등재

        이야기꾼 ‘거시기 담론’의 미학, 구조, 가치에관한 구비문학적 시론 -전라도 이야기꾼의 사례를 중심으로-

        허정주 실천민속학회 2015 실천민속학연구 Vol.25 No.-

        All of the live language are specialized with socio-historical characteristicsand areas of dialects. These characteristics of areas of dialects have importanteffects on storyteller’s discourses in these areas of dialects and method,structure, aesthetics, and thoughts of these stories. There is an example, Gusigiin these examples in the area of Jeollado. This word is used as substitute;pronoun, adjective, verb, adverb, conjunction, etc., And this word makesdiverse cracks in discourses of storyteller under horizon of narrative discoursesby changes in word class or constituent of sentence. In addition to this, Gusigidiscourses open these discourses to audiences and compose interactive fieldof stories and interactive structure of discourse. Gusigi discourse itself becomes‘socio-reflective mirror’ of community of Gusigi discourse, arouse ‘collectivethinking’ of that community, and make the members of the community arriveto horizon of ‘communal goodness’. Storyteller in Jeollado province composes stories under influence of Gusigidiscourse, traditionally. Gusigi discourse converts ‘close structure’ of story into‘open structure’, realizes ‘emptying-filling aesthetics’, ‘blank-space aesthetics’,‘flow-formation aesthetics’, ‘aesthetics of immersion’, and seeks philosopherof ‘thought transference’, philosophically. This method of discourse can be used as curing discourse, too. 살아 있는 모든 언어는 그 언어 나름의 역사-사회적 특성을 형성해 나아가며 지역에 따라각기 다른 방언권을 형성해간다. 이러한 특성들은 그것을 활용하는 그 방언권 내부의 이야기꾼 담론에도 영향을 미쳐, 이야기의 방법․구조․미학․철학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사례 중에 전라도 지역의 ‘거시기’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말을 대신하는 ‘대용어’로서 대명사․형용사․동사․부사․접속사 등으로 다양하게 변용될 뿐만 아니라, 이 말이서사 담론의 지평으로 나아가게 되면, 품사적 혹은 문장 성분적 변화를 자유롭게 기하는 가운데 이야기꾼 담론 내부에 여러 ‘틈’을 만들기도 한다.그리고 이런 틈들을 통해서 그 담론을 청관중들에게 ‘개방’하여 공연자-청관중 간의 상호소통적인 ‘이야기의 판(장)’을 구축하고, 그 장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독특한 상호작용적 공동체 담론구조를 이룩해내기도 한다. 또한, 이 ‘거시기 담론’ 그 자체가 그러한 개방적․역동적․상호적 소통관계 속에서, 이야기꾼의 담론을 전승하는 집단 공동체의 ‘사회적-반성적거울’이 되게 하고, 이를 통해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집단적 사고’를 자극․작동시키며, 이러한 과정에서 그 공동체의 ‘공동의 선(善)’을 지향․추구하는 합의의 지평에 도달하게 한다. 전통적으로 전라도 지방의 이야기꾼은 설화 현장에서 이 ‘거시기’라는 말과 그 계열에 속해 있는 말들의 지대한 영향 하에서 이야기를 구성해 나아가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이야기꾼들의 설화들은 일종의 독특한 이야기문화인 ‘거시기 담론’의 전통을 형성해 왔다. ‘거시기 담론’은 담론의 구조를 ‘닫힌구조’에서 ‘열린구조’로 전환시켜주며, 미학적으로 일종의 ‘비움-채움의 미학’, ‘여백의 미학’, ‘흐름 형성의 미학’, ‘몰입의 미학’ 등을 구현하기도하고, 철학적인 차원에서는 ‘집단적 사유’와 ‘이심전심’ 미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담론 방식은 일종의 ‘치유담론’으로서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 KCI등재

        이야기꾼 ‘거시기 담론’의 미학, 구조, 가치에 관한 구비문학적 시론

        허정주(Heo, Jeong-Joo) 실천민속학회 2015 실천민속학연구 Vol.25 No.-

        살아 있는 모든 언어는 그 언어 나름의 역사-사회적 특성을 형성해 나아가며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언권을 형성해간다. 이러한 특성들은 그것을 활용하는 그 방언권 내부의 이야기꾼 담론에도 영향을 미쳐, 이야기의 방법·구조·미학·철학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사례 중에 전라도 지역의 ‘거시기’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말을 대신하는 ‘대용어’ 로서 대명사·형용사·동사·부사·접속사 등으로 다양하게 변용될 뿐만 아니라, 이 말이 서사 담론의 지평으로 나아가게 되면, 품사적 혹은 문장 성분적 변화를 자유롭게 기하는 가운데 이야기꾼 담론 내부에 여러 ‘틈’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틈들을 통해서 그 담론을 청관중들에게 ‘개방’하여 공연자-청관중 간의 상호소통적인 ‘이야기의 판(장)’을 구축하고, 그 장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독특한 상호작용적 공동체 담론구조를 이룩해내기도 한다. 또한, 이 ‘거시기 담론’ 그 자체가 그러한 개방적·역동적·상호적 소통관계 속에서, 이야기꾼의 담론을 전승하는 집단 공동체의 ‘사회적-반성적 거울’이 되게 하고, 이를 통해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집단적 사고’를 자극·작동시키며, 이러한 과정에서 그 공동체의 ‘공동의 선(善)’을 지향?추구하는 합의의 지평에 도달하게 한다. 전통적으로 전라도 지방의 이야기꾼은 설화 현장에서 이 ‘거시기’라는 말과 그 계열에 속해 있는 말들의 지대한 영향 하에서 이야기를 구성해 나아가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이야기꾼들의 설화들은 일종의 독특한 이야기문화인 ‘거시기 담론’의 전통을 형성해 왔다. ‘거시기 담론’은 담론의 구조를 ‘닫힌구조’에서 ‘열린구조’로 전환시켜주며, 미학적으로 일종의 ‘비움-채움의 미학’, ‘여백의 미학’, ‘흐름 형성의 미학’, ‘몰입의 미학’ 등을 구현하기도 하고, 철학적인 차원에서는 ‘집단적 사유’와 ‘이심전심’ 미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담론 방식은 일종의 ‘치유담론’으로서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All of the live language are specialized with socio-historical characteristics and areas of dialects. These characteristics of areas of dialects have important effects on storyteller’s discourses in these areas of dialects and method, structure, aesthetics, and thoughts of these stories. There is an example, Gusigi in these examples in the area of Jeollado. This word is used as substitute; pronoun, adjective, verb, adverb, conjunction, etc., And this word makes diverse cracks in discourses of storyteller under horizon of narrative discourses by changes in word class or constituent of sentence. In addition to this, Gusigi discourses open these discourses to audiences and compose interactive field of stories and interactive structure of discourse. Gusigi discourse itself becomes ‘socio-reflective mirror’ of community of Gusigi discourse, arouse ‘collective thinking’ of that community, and make the members of the community arrive to horizon of ‘communal goodness’. Storyteller in Jeollado province composes stories under influence of Gusigi discourse, traditionally. Gusigi discourse converts ‘close structure’ of story into ‘open structure’, realizes ‘emptying-filling aesthetics’, ‘blank-space aesthetics’, ‘flow-formation aesthetics’, ‘aesthetics of immersion’, and seeks philosopher of ‘thought transference’, philosophically. This method of discourse can be used as curing discourse, too.

      • KCI등재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미학적 특성과 사회적 소통방식 연구

        서수정(Seo, Soo-jung)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17 만화애니메이션연구 Vol.- No.47

        본 논문은 한국 유일의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인디애니페스트’ 수상작을 대상으로 한국 독립애니메이션 이미지를 탐색하여, 예술성과 사회성이 긴밀하게 조응하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미학적 특성들을 분석하고 미학적 특성을 통해 구축되는 사회적 소통방식을 구체적으로 탐색하였다. ‘인디애니페스트’ 수상작들을 통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있는 말 걸기 방식은 세 가지다. 첫 째는 느낌과 충동, 욕망을 조형적으로 재현하여 수화나 음향처럼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말을 거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이미지로 다르게 말하기 방식 즉 일상의 익숙한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하거나 재배치하여 우리 안의 내밀한 리듬이나 정서, 찰나적 성찰이나 사유를 들려주는 방식이며 세 번째 방식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이 모호하게 중첩된 새로운 층위의 현실세계를 통해 ‘변방에서 새어나오는 소음으로밖에 지각되지 않았던 목소리’들을 현실의 담론으로 들리게 만든다. 애니메이션은 본원적으로 이미지로 ‘의미를 발화하고 소통하는’ 매체로서, 언어나 서사를 통해 시행되어 왔던 ‘의미를 발화하고 소통하는’ 방식과 다른 차원 즉 기존의 사회적 목소리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말 걸기 양식을 실행하고 구축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립애니메이션을 비롯해서 ‘애니메이션을 이미지를 통한 사회적, 정치적 말하기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을 인류 최초의 사유방식이자 재현화법으로서의 성격을 계승하고 있는 매체로 접근하여 이미지를, 이야기를 생산하고 의미를 발화시키는 주체 즉 일종의 소통 언어로 탐색하고자 하는 본 논문은 애니메이션학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연구이다. 또한 본 연구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을 학문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정당한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받도록 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This paper analyzes Korean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Korean independent animation, which is closely related to artistic and social characteristics, by searching Korean independent animation image for the winner of "Indie AniFest", the only independent animation film festival in Korea. And social communication methods. There are three ways in which Korean Independence Animation shows the way of speaking through award-winning works. The first is a method of expressing feelings, impulses, and desires in a formative way, and a direct and sensuous image as in sign language or sound. In the second method of speaking differently with images, in the third method, It makes the voice of the fringe through the real world of the story sound as a story of reality. Animation is a medium that "originalizes and communicates meaning" as an image, and has implemented and constructed a new way of speaking, which is different from existing social voices. Nevertheless, it is not easy to find a research that approaches animation from the viewpoint of social and political speech through images. Therefore, this paper is necessary for the balanced development of animation. In addition, this study can contribute to re - examining Korean independent animation from an academic point of view and to discover and evaluate fair value from a wider perspective.

      • KCI등재후보

        텔레커뮤니케이션과 사회적인 것의 미학화

        최종렬(Jong Ryul Choi) 한국사회이론학회 2004 사회이론 Vol.- No.25

        성과 속의 이분법적 상징적 분류체계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적인 것이 텔레테크놀로지를 통해 미학화되고 있다. 모던 시대의 사회적인 것은 오이디푸스 서사를 통해 총체성의 담론이 되는 커뮤니케이션과 그것을 공유한 남성 부르주아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었다. 오이디푸스 서사를 통해 남성은 자신의 결핍을 타자인 여성에게 투사하고 그것을 재전유함으로써 자기충족적인 정체성을 환상적으로 구성한다. 따라서 오이디푸스 서시는 낙원-상실-회복이라는 선형적인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 과정은 자신이 의미 작용의 체계임을 부정하고 마치 경험적 실재에 대한 사실적 표상임을 가장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산출하는 과정을 맞물려 있다. 여기에서 남성 부르주아 공동체는 스스로에 의해 스스로가 정의된 언어외적 토대, 즉 성스런 존재가 된다. 데리다는 유령의 출몰이 이분법적 상징적 분류체계보다 먼저이며, 같이 있으면서 미래에도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서시를 해체할 수 있는 철학을 제출하였다. 텔레테크놀로지는 이러한 데리다의 철학을 사회적 차원에서 실현시켰다. 텔레테크놀로지은 잃어버린 기원, 또는 전기호학적 실체를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추동되지 않는다. 텔레테크놀로지는 무엇보다도 기계이며, 기계는 그저 영속적인 차연적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텔레테크놀로지는 모든 것을 텔레비주얼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만인에게, 모든 곳에, 언제나 전송하려는 드라이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 만물은 텔레테크놀로지를 통해 원격통신하고 있다. 인식론적으로 텔레테크놀로지는 만물을 자의적으로 인접시켜 전송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이전에는 결코 표상될 수 없었던 체계의 한계들을 차연적으로 표상시키고 있다. 성과 속의 이분법적 상징적 분ㄹ체계의 총체성이 기표들과 환유적 전위를 통해 끊임없이 침범받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전복된다. 공정된 아니 안정된 의미의 획득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주체성 형식인 정신병자가 대량 출현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다. 그 결과 성과 속의 이분법적 상징적 분류체계에 기반한 연대가 근본적으로 도전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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