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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光鉉 단국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1983 國文學論集 Vol.11 No.-
지금까지 우리는「온각서록」의 소개를 위하여 서지, 표기, 음운, 어휘등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음운 및 어휘면에서 현대 정읍지역어와 비교하여 그 공통성과 상이성을 검토하였다. 비록 약 백년의 거리가 있는 언론의 실태를 놓고 기술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근대방언과 현대방언의 분수령이 처지보다는 연계성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는 현대방언의 연구를 위해서나 역사적인 고구를 위해서 대단히 필요한 것이거니와 평소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근대국어의 연구도 이런 측면이 보완될 때 비로소 완전한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한 문헌과 자료의 발굴 및 기존자료의 재검토가 보다 절실하게 요청된다. 본「온각서록」은 이런 면에서 중요한 문헌적 가치를 지닌다.
田光鉉 국립국어연구원 1994 10월의 문화인물 Vol.1994 No.10
일석은 1896년 6월 9일(음력 4월 28일)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현재의 의왕시 포일동) 양지편 마을에서 종식 씨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의이다. 출생지에 대한 일석의 설명을 보면 이 기회에 나의 출생지에 대해 상세히 해 둘 것이 있다. 포일리 양지편 마을은 내가 출생할 당시에는 광주군 의곡면이었고, 그 후 수원군으로 편입됐다가 수원이 읍이 되면서 화성군에 속하게 되었으며, 최근에 와서 다시 시흥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그러니 광주 태생이라고 할 수도 없고 수원이나 화성 태생이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시흥산이라고 불러 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겠으나, 그것도 마음이 썩 내키지 않으면 개풍 태생이라고 말하곤 한다. 경기도 개풍군은 고려조 이후 나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 온 선향이다. 나의 조부 때 한때 가세가 기울어 광주군으로 이사했던 것이고 그 곳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라 하였다. 그간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 필자마다 각양각색이어서 출생지를 분명기 하기 위해 일석의 글을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