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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의 조선 고대문화 인식과 그 변화-『조선고고학연구』를 중심으로-
유중현 한일관계사학회 2017 한일관계사연구 Vol.56 No.-
일제강점기의 고고학자 후지타 료사쿠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후지타의 연구와 활동이 식민사관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후지타의 조선고고학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했다. 본고에서는 후지타의 논문집 『조선고고학연구』를 중심으로 그의 조선 인식과 변화를 살펴보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 및 후지타 개인의 상황에서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했다. 후지타는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사업을 심의하는 조선고적연구회의 위원이었으며, 그 실무를 담당하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주임이자 조선고적연구회의 간사로 활동했다. 한편으로는 경성제국대학의 교수가 되어 조선사는 물론 고고학을 강의했다. 후지타는 일제강점기 식민 권력의 지배 담론 생산을 위한 업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따라서 지배 권력인 조선총독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후지타의 『조선고고학연구』에는 유적 및 유물을 다룬 원고 7편, 조선고고학 개설 2편이 실려 있다. 개별 유적 및 유물을 다룬 원고들은 후지타의 조선고고학 인식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개설 2편은 각각 1934년과 1942년에 발표되었다. 검토 결과 1934년의 개설에서는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이 보이는 반면, 1942년의 개설에서는 만주와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만주국의 건국으로 인한 필드의 확장, 만주국의 건국과 함께 주목된 만선연구의 영향, 후지타의 업무와 조선총독부의 밀접한 관계, 1930년대 이후 경성제국대학의 만몽 연구에 대한 관심이다. 이와 같은 검토를 통해 후지타의 조선 인식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처지에 따라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유중현,제보경,추지영 대한영상의학회 2020 Korean Journal of Radiology Vol.21 No.2
Microvascular ultrasonographic imaging is the most recent and unique Doppler ultrasound technique. It uses an advanced clutter filter that can remove clutter artifacts and preserve the low-velocity microvascular flow signal. The potential advantages of microvascular ultrasonography are its superiority in detection and visualization of the small blood vessels in tissues, providing radiologists with more information on the vascular structures. Therefore, it has shown particular value in the clinical fields.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provide microvascular ultrasonographic images for the tissue microvasculature, including the brain, thyroid gland, kidney, urinary bladder, small bowel, ovary, testis, lymph node, and hemangiomas in children, focusing on the comparison with conventional color Doppler ultrasonographic images.
일제강점기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의 조선 고대문화 인식과 그 변화
유중현(柳重鉉) 한일관계사학회 2017 한일관계사연구 Vol.56 No.-
일제강점기의 고고학자 후지타 료사쿠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후지타의 연구와 활동이 식민사관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후지타의 조선고고학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했다. 본고에서는 후지타의 논문집 「조선고고학연구」를 중심으로 그의 조선 인식과 변화를 살펴보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 및 후지타 개인의 상황에서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했다. 후지타는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사업을 심의하는 조선고적연구회의 위원이었으며, 그 실무를 담당하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주임이자 조선고적연구회의 간사로 활동했다. 한편으로는 경성제국대학의 교수가 되어 조선사는 물론 고고학을 강의했다. 후지타는 일제강점기 식민 권력의 지배 담론생산을 위한 업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따라서 지배 권력인 조선총독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후지타의 「조선고고학연구」에는 유적 및 유물을 다룬 원고 7편, 조선고고학 개설 2편이 실려 있다. 개별 유적 및 유물을 다룬 원고들은 후지타의 조선고고학 인식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개설 2편은 각각 1934년과 1942년에 발표되었다. 검토 결과 1934년의 개설에서는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이 보이는 반면, 1942년의 개설에서는 만주와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만주국의 건국으로 인한 필드의 확장, 만주국의 건국과 함께 주목된 만선연구의 영향, 후지타의 업무와 조선총독부의 밀접한 관계, 1930년대 이후 경성제국대학의 만몽 연구에 대한 관심이다. 이와 같은 검토를 통해 후지타의 조선 인식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처지에 따라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