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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역사로서의 역사영화와 개연성으로서의 역사

        이하나 역사문제연구소 2022 역사비평 Vol.- No.139

        This article aims to review the issues and challenges of history films, which are one of the most problematic fields of historical use in the field of popular culture, and explore the direction of Korean history films from the perspective of public history. In this article, among all historical films based on history or subject matter, all historical films that are dealt with at least one of the three elements: real people, real events, and representation of a specific era are broadly referred to history films. Since the 2010s, history films have become a popular genre that has been successful in both box office and criticism. However, history films were highly controversial due to pro-Japanese issues or historical distortions and had a decisive impact on box office success, including “Cheongyeon(Blue Swallow)” in the mid-2000s, “Deokhye Ongju(The Last Princess)”, “Gunhamdo(The Battleship Island)”, and “Naratmal Sami(The King’s Letters)” in the mid-to-late 2010s. In the controversy surrounding these films, the issue is whether history films should not have negative characters as leading roles, how far can they pursue film imagination and entertainment, and whether imaginative fiction inserted in history films can be viewed as a kind of historical interpretation. Through these issues, it is argued that history films are a place where the public’s perception and emotions about history are expressed through criticism and discussion around the film as well as the content, and strategies and attitudes are set in different positions of creators/producers and users/consumers. When recognizing historical films as public history, is the problem of verisimilitude of history films, the problem of re-recognizing the meaning of history films as historical interpreters, the need to recognize that history films are films of the present rather than films of the past, and the ethics of representation in history films. After all, history films indicate history as a probability rather than history of fact. The film has an outstanding advantage in recreating and portraying plausible stories that might have been there at the time. It will be a strategy of history films as a public history to capture the various paths that may come to face the truth there. 이 글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발생하는 역사 활용 중에서도 가장 문제적 분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역사영화의 쟁점 및 난제들을 검토하고 공공역사의 관점에서 한국 역사영화의 방향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역사를 배경이나 소재로 하는 전체 역사극영화 중에서 실존 인물, 실제 사건, 구체적인 시대의 재현이라는 세가지 요소 중에서 한 가지라도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모든 역사극영화를 광범위하게 역사영화로 칭한다. 2010년대 이후 역사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한 대세 장르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영화가 친일문제나 역사왜곡 문제로 크게 논란이 일고 흥행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2000년대 중반의 <청연>을 필두로, 2010년대 중후반의 <덕혜옹주>, <군함도>, <나랏말싸미> 등의 사례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들 영화를 둘러싼 논란들 속에서 쟁점은 ① 역사영화는 부정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서는 안되는가 하는 문제, ② 역사영화가 허용하는 영화적 상상력과 오락성의 추구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하는 문제, ③ 역사영화에 삽입된 상상적 허구를 일종의 역사해석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쟁점들을 통해 역사영화가 내용 뿐만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비평과 토론을 통해서 대중이 역사에 대해 가지는 인식과 정서가 표출되는 장소이며, 이에 대한 전략과 태도는 창작자/생산자와 수용자/소비자 각각의 다른 입장 속에서 설정되는 것임을 논한다. 역사영화를 공공역사로서 인식할 때, ① 역사영화의 핍진성(verisimilitude) 문제, ② 역사 해석자로서의 역사영화의 의미를 재인식하는 문제, ③ 역사영화는 과거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성, ④ 역사영화에서의 ‘재현의 윤리’가 문제가 된다. 결국, 역사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사실의 역사라기보다는 개연성(probability)으로서의 역사이다. 그때 그 장소에서 있었을 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재현하고 묘사하는 데 영화는 탁월한 장점을 발휘한다. 어쩌면 그곳에서 진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다양한 경로들을 포착하는 것이 공공역사로서의 역사영화의 전략이 될 것이다.

      • KCI등재

        주체 사관에서 인민과 민족의 자리

        홍종욱 역사문제연구소 2022 역사비평 Vol.- No.140

        Paik Nam-un’s Marxist historiography during the colonial period clarified it’s character of anti-colonial historiography by pursuing the universal subject of the nation. North Korean historiography succeeded in the tradition of anti-colonial historiography and attempted to prove that the universal law of world history was also carried out in Korean history by completing the historical narrative based on the theory of internal and unilinear development. The direction of North Korean historiography was consistent with the theory of immanent development established in the study of Korean history in South Korea and Japan in the 1960s and 1970s. Marxist historiography of the periphery, aimed at national liberation and socialist construction, sought to harmonize the class and national perspectives. This has been declared as the principle of party character and the principle of historicism in North Korean historiography. As the Juche ideology was supported as the only ideology and the Kim Il-sung autocracy was strengthened, North Korean historiography made a new search by presenting the pedigree ethnic concept and paying attention to the struggle of the masses beyond economic determinism. In this direction systematized as the Juche historiography, the specificity of colonial-periphery historiography and the contemporaneity with critical histories of other countries are confirmed. North Korean historiography and Juche historiography existed in the flow of modern Korean historiography in that they pursued the universal subject of the nation. However, the Juche historiography denied the reason for the existence of historiography by ignoring evidence and emphasizing only the ideology of the nation, going through the Dangun nationalism and Daedong river civilization theory. The journey of anti-colonial historiography since the colonial period ended in anti-historiography. 식민지 시기 백남운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민족이라는 보편적 주체를 추구함으로써 반식민주의 역사학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북한 역사학은 반식민주의 역사학의 전통을 이어 일국사적 단선적 발전단계론에 입각한 역사 서술을 완성함으로써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법칙이 한국사에도 관철됨을 보이고자 했다. 북한 역사학의 방향은 1960~70년대 남한과 일본의 한국사 연구에서 정립된 내재적 발전론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 건설을 지향한 주변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계급적 관점과 민족적 관점의 조화를 꾀했다. 이는 북한 역사학에서 당성의 원칙과 역사주의 원칙으로 천명되었다. 주체사상이 유일사상으로 떠받들어지고 김일성 유일 체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북한 역사학은 혈통적 민족 개념을 내세우고 경제 결정론을 넘어 인민대중의 투쟁에 주목하는 새로운 모색을 한다. 주체 사관으로 체계화되는 이러한 방향에서는 식민지-주변부 역사학의 특수성과 함께 비판적 역사학의 국경을 넘는 동시대성이 확인된다. 북한 역사학과 주체 사관은 민족이라는 보편적 주체를 추구한 점에서 한국 근대 역사학의 흐름 속에 존재했다. 그러나 주체 사관은 단군 민족주의, 대동강 문명론을 거치면서 사료와 실증을 경시한 채 민족이라는 이념만을 앞세움으로써 역사학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했다. 식민지 시기 이래 이어온 반식민주의 역사학의 여정은 반역사학으로 귀결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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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전쟁을 성찰하며―정사(正史)·정통성(正統性)론의 함정

        홍석률 역사문제연구소 2019 역사비평 Vol.- No.128

        지난 역사전쟁은 주로 역사교과서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왜 역사교과서였을까?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은연중에 역사교과서를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역사서술 또는 일종의 정사(正史) 같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로 갈수록 교과서의 기능과 역할은 절대화되기보다는 상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난 역사전쟁의 과정에서 교과서는 더욱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받았으며, 나아가 국가 전체의 공식적인 역사서술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단일한 국정역사교과서, 이른바 “올바른(正) 역사교과서”의 추진은 그 극단이었다. 이에 역사논쟁은 국가 정체성, 정통성 문제로 과잉 정치화, 이념화되었다. 친일/반일, 종북/반북의 이분법적 논리가 성행하고, 이승만·박정희 찬양론 대 악마론이 맞붙었다. 이는 역사논쟁에서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역사인식의 실종을 가져왔고, 치열한 이념 논쟁 속에서 오히려 이념은 변질되거나 퇴행하였다. 시대착오적인 정사(正史)의 추구, 정통론적 역사인식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The History Wars in South Korea were mainly centered on the issue of history textbooks. Why was it a history textbook? Still, Korean society tends to regard history textbooks in the schools as official historical writings or authentic history(正史) on a state level. Increasingly toward a democratic and pluralistic society, the function and role of textbooks tend to be relative rather than absolute. In the course of the past history wars, however, textbooks were given more absolute importance. The attempt by Park Geunhae government for a single state history textbook, the so-called “right history textbook”, was its extreme. History debates tended to be over-politicized and ideologicalized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and state legitimacy. As a result, in the course of historical debate, historical perception has become narrower rather than expansive. The pursuit of anachronistic authentic history and orthodox recognition were important rea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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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역사, 민중사의 새로운 혁신인가 해체인가?

        소현숙 역사문제연구소 2022 역사문제연구 Vol.26 No.2

        This study reviews recent research on minority history and examines how it can be combined with the novel people’s history that emerged as an innovative alternative to the existing people’s history. Studies on various minorities such as vagrants, disabled people, Hansen’s disease patients, and orphans have been conducted in the midst of wholesale changes in academia, which include the decline of the traditional people’s history research and the emergence of minority movements. These studies revealed the experiences of heterogeneous subjects that could not be easily integrated into Minjung (the people), criticized the violence of modernity and norms that were not captured by the existing people’s history, and materialized the multi-layered aspects of domination and oppression. In addition, by revealing that the majority are complicit in the exclusion and violence suffered by minorities, the diversity of harm was captured and the possibility of solidarity based on differences was explored. In this study, I will explore how such research on the history of minorities contributes to the restructuring of the existing people’s history. 이 연구에서는 최근 활발하게 진척되고 있는 마이너리티 역사 연구의 성과를검토하고 민중사를 혁신하려는 문제의식 속에서 제기된 ‘새로운 민중사론’과 이러한 연구성과들이 어떻게 서로 접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전통적인 민중사연구의 쇠퇴와 소수자운동의 활성화라는 학계 안팎의 변화 속에서 2000년대 이후 부랑자, 장애인, 한센인, 고아, 성소수자 등 다양한 마이너리티 집단에 대한역사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들 연구는 민중으로 쉽게 통합될 수 없는 이질적 주체들의 경험을 가시화하고 기존의 민중사가 포착하지 못했던 근대성과 ‘정상성’ 규범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지배와 억압의 다층적 면모를 구체화하였다. 또한 마이너리티 집단이 겪는 배제와 폭력에 다수가 공모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가해-피해의 다층성을 포착해왔다. 이를 통해 마이너리티 역사 연구는 민족과 계급을 중심으로 한 낡은 민중사의 해체를 촉진해 왔다. 그러나 민중사를 ‘아래로부터 역사’로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름 없고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제 이름과 역사를 찾아줌으로써 역사학을 민주화하는 시도로 이해한다면, 마이너리티역사는 민중사의 새로운 혁신이기도 하다. 젠더·섹슈얼리티·인종·국적·장애· 지역 등 차이가 차별이 되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사람들이 이루어 온 역사에 대한 지식 없이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역사학의민주화’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 KCI등재

        ‘朝鮮史’의 서술과 역사지식 대중화 - 黃義敦의 『中等朝鮮歷史』를 중심으로

        박종린 역사문제연구소 2014 역사문제연구 Vol.18 No.1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s Japan switched to the cultural politics and implemented reconciliation policies, wider movements for the education of Korean history emerged. The 2nd Joseon Education Decree in 1922 also stimulated public demand for the education. This situation made it possible for Korean history books by Korean historians to be published. During 1923 and 1924, seven Korean history books were published. These books were divided into two groups - books by nationalist historians and books by pro-Japanese historians. Among the best known books is 『Sinpyeon Joseon History(新編朝鮮歷史)』 by Hwang Ui Don. 『Jungdeung Joseon History(中等朝鮮歷史)』 by Hwang was first published in 1926 and the 9th edition was published in 1933. This book was easy to read and included a lot of maps and pictures, and thus it was more popular than other books. 『Revised Jungdeung Joseon History(增訂 中等朝鮮歷史)』 by Hwang was used as a textbook for Korean history in many secondary schools, and widely read by those who have an interest in Korean history. Accordingly, Hwang affected public recognition of Korean history, and the books by Hwang played an important role in promoting popularizing historical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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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사(朝鮮史)`의 서술과 역사지식 대중화 ― 황의돈(黃義敦)의『중등조선역사(中等朝鮮歷史)』를 중심으로

        박종린 ( Park Jong Rin ) 역사문제연구소 2014 역사문제연구 Vol.18 No.1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s Japan switched to the cultural politics and implemented reconciliation policies, wider movements for the education of Korean history emerged. The 2nd Joseon Education Decree in 1922 also stimulated public demand for the education. This situation made it possible for Korean history books by Korean historians to be published. During 1923 and 1924, seven Korean history books were published. These books were divided into two groups-books by nationalist historians and books by pro-Japanese historians. Among the best known books is 『Sinpyeon Joseon History(新編朝鮮歷史)』 by Hwang Ui Don. 『Jungdeung Joseon History(中等朝鮮歷史)』 by Hwang was first published in 1926 and the 9th edition was published in 1933. This book was easy to read and included a lot of maps and pictures, and thus it was more popular than other books. 『Revised Jungdeung Joseon History(增訂中等朝鮮歷史)』 by Hwang was used as a textbook for Korean history in many secondary schools, and widely read by those who have an interest in Korean history. Accordingly, Hwang affected public recognition of Korean history, and the books by Hwang played an important role in promoting popularizing historical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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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전환기 한국학 지형 다시 읽기 - 신문 · 잡지의 한국 역사 · 문화 관련 텍스트 계량 분석을 중심으로

        홍정완 역사문제연구소 2020 역사문제연구 Vol.24 No.1

        The total amount of articles regarding “Korean history and culture” in early modern Korea(1896∼1910) was 1,959 out of 312,000 articles surveyed (0.6%), which was relatively small. In case of the Hwangseong-sinmun and the Korea Daily News articles which covers the majority, the appearance frequency of the articles gradually increases over years, but the frequency has a jagged appearance. The articles on “Korean history and culture” during the period can be broadly classified into two different types. One is the trajectory of Shin Chae-Ho, which was developed around the history of foreign conflict, namely, the Daedonggosa(大東古事) that was serialized in the 1906 Hwangseong-sinmun for a long time, and the related articles of the Korea Daily News since 1908. The other is that of the Hwangseong-sinmun-led group, such as Jang Ji-Yeon, who tried to approach Korean history and culture based on “Byeonbopron(變法論)” as a theory of modern reform in Confucianism before 1905. The latter tried to focus on "Korean history and culture" based on a positive review of the so-called “Silhak(實學)” in the Late Joseon Dynasty, but after that, it was not expanded. This resulted in the significance of the external conflicts of ancient history. 근대전환기 '조선 역사·문화' 관련 기사의 전체 분량은 조사 대상 기사 31만 2천여건 중1,959건(0.6%)으로 비교적 적은 기사 건수를 보였다. 대상 기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조선 역사·문화' 관련 기사 출현 양상을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기사가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내면서도 출현 빈도가 연도별로 상당히 등락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근대전환기 '조선 역사·문화' 관련 기사는 그 문제의식과 주제에 따라 크게 2가지 흐름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대외 항쟁의 역사를 축으로 전개된 신채호의 궤적, 즉 1906년 『황성신문』에 장기 연재된 「大東古事」와 1908년 이후 『대한매일신보』의 관련 기사로 이어진 흐름을 들수 있다. 다른 하나는 1905년 이전 유교적 입장의 근대개혁론으로서 '변법론(變法論)'에 입각해조선 역사·문화에 접근하려고 했던 장지연 등 『황성신문』 주도 그룹의 움직임이다. 후자는 이른바 조선 후기 ‘실학(實學)’에 대한 적극적인 재조명을 바탕으로 '조선 역사·문화'에 대해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지만, 이후 확장되지 못하고 약화되는 가운데 1907년 이후 단군(檀君)과 고대사(古代史)의 대외항쟁이 갖는 의의를 가미하는 형태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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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역사교육―환경사와 역사교육의 연대를 위한 제언

        고유경 역사문제연구소 2022 역사비평 Vol.- No.138

        This paper contains some suggestions for a close connection between environmental history and history education. The ‘spatial turn’ of history, the global nature of the environmental history, and its relevance to the present raise the need to introduce environmental history into world history education. Although the current history curriculum and textbooks only recognize the environment as a current problem, environmental history education should, above all else, make it possible to reflect on the interaction between humans and the environment in a long-term context with the goal of ‘sustainable development.’ In order to introduce environmental history into the history curriculum step by step, this paper proposes three categories of themes, namely migration and trade, power, and global history of disaster, aligned with the world history education of exchange and interaction. 이 논문은 환경사와 역사교육의 긴밀한 연대를 위한 제언을 담고 있다. 역사학의 ‘공간적 전환’, 환경사의 지구사적 성격 및 현재와의 관련성은 환경사를 세계사 교육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현행 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환경을 현재의 문제로만 인식하지만, 환경사 교육은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장기적 맥락에서 성찰하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은 환경사를 역사 교육과정에 단계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교류와 상호작용의 세계사 교육에 맞춘 세 범주, 곧 이주와 교역의 환경사, 권력의 환경사, 재난의 지구사라는 주제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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