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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이 초등학생의 사회불안 감소와 회복탄력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

        조희영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석사

        RANK : 247631

        본 연구는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초등학교 6학년 학급에 적용하고, 프로그램이 초등학생의 사회불안 감소와 회복탄력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봄으로써 프로그램의 효과를 검증하고자 하였다.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해 부산광역시 A초등학교 6학년 2개 학급을 대상으로, 각 학급을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으로 구분하였다. 실험집단에는 사전검사, 총 8회기(회기 당 40분씩, 주 2회)의 프로그램, 사후검사를 실시하되, 통제집단에는 프로그램을 처치하지 않고 사전검사와 사후검사를 실시하였다. 프로그램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오경자, 문혜신(2002)의 아동-청소년용 사회불안 척도와 주소영, 이양희(2007)의 아동용 탄력성 척도(RSC)를 사용하여 순위 공변량분석(ranked ANCOVA or Quade-test)을 실시하였다. 프로그램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실험집단은 통제집단보다 수행불안,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 회피행동 및 사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비주장성을 포함한 전체 사회불안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의 사회불안 감소에 효과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실험집단은 통제집단보다 자기효능감, 부정적 감정의 인내, 긍정적 지지관계, 통제력, 자발성을 포함한 전체 회복탄력성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의 회복탄력성 향상에 효과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양적 분석 결과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감문과 연구자 관찰 내용을 분석한 결과, 강점 찾기, 칭찬하기, 감사일기 쓰기 등 긍정성을 증진하는 활동이 프로그램 효과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이 초등학생의 사회불안 감소와 회복탄력성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데 효과가 있음을 나타낸다. 앞으로 다양한 종속변인에 대한 긍정심리 기반 집단지도 프로그램의 효과 검증 연구가 필요하며, 본 프로그램의 일반화를 위하여 연구 대상의 범위를 다양화하고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 現代建築外皮의 錯視現象을 利用한 오나먼트에 관한 硏究

        조희영 건국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631

        This study is focused on the new special effect, involved by the surface of the exterior-envelope like illusional or immaterial effect, with analyzing how 'the Ornament using Optical Illusion' compose the exterior-envelope. They consider it as not just a medium for the expression but the problem of space. The experiments of exterior-envelope which is rational and expressive are found in the architecture of Herzog & de Meuron, Jean Nouvel, Dominique Perrault, Wiel Arets, and Kazuyo Sejima exploring the detailed differences of expressional effects within the monolithic volume. They tending to Minimalism maintain the functional volume of Modern architecture. But in opposition to the expressional effect of it, they try a new interpretation overall on the expression concept. To show the cause of these extensive experiments on exterior-envelope not sharing special-ism or regional context, I've reinterpretation the existing discourses about structure and ornaments, analysing the shift of material bases and the construction method of exterior-envelope. After modern architecture, ornaments of the exterior-envelope, even though regarded which were removed by the economical and functional demand, still have remained to exist in the form of white external skin. It is because that the modern architecture was in the transitional phase of expressions, when society or technology could not accept radically changing foundations of material aesthetically. Thereafter their experiments adding functional and plastic layers to the exterior-envelope started from purely functional purpose, and then in 1980s have developed into the plastic means to compose an autonomic exterior-envelope, while accepting the order of a structural body. I could verify that their plastic methods were derived from the Optical art and the Kinetic art in the 1950s, Minimalism in 1960s-1070s and a serial of art experiment. This exterior-envelope covers the monolithic envelope and has the characteristic of immateriality. As activated physically and optical-illusionary, it is getting to university. These experiments are the attempts to restore the ornamentality of the exterior-envelope in a way not displaying the symbolic and the technical value. 1980년대를 전 후 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현대 건축가 중 몇몇은 형태가 제거되고 평활한 외피를 가진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구조의 발전을 통해 중력을 무시한 듯한 형태의 외관을 지닌 건축물이 지어 지는 것이 가능했던 시기에 Herzog & de Meuron, Jean Nouvel, Dominique Perrault, Wiel Arets, Sejima Kazuyo같은 건축가들은 단일 볼륨 내에서 기존의 장식과 다른 외피의 표현효과를 실험했다. 형태적으로만 봤을 때 근대의 cube로 돌아간 듯한 이 건축물들은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를 다음의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수 세기 동안 서구 예술의 바탕이 된 대표의 문화는 자연의 모델과 인간 몸을 아름다움의 모델이자 비율에 대한 시스템의 패러다임으로 여겼다. 미술과 관련되어, 건축은 기념비적인 ‘언어’로 인식되고, 이론화 되고 사용되었다. herzog & de Meuron은 이런 시스템을 부수는데 기여를 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미술의 기초적인 두 변수인 자연과 몸을 적용해왔고, 특히 생화학과 유전공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기숙적인 연구 결과에 초점을 두고 있다. Centre REHAB 건물과 같이 Laban Dance Centre는 모든 것이 뇌의 신체적인 연습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다‘. -Herzog & de Meuron 이러한 외피실험은 전통적인 장식처럼 구조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거나 근대건축에서처럼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외피 자체의 표현성을 제한하는 대신, 평활면 내에서 뇌의 작용에 의한 착시로 활성화 된다. 이러한 건축 실험은 상징적, 구조적 가치를 제거하여 외피에서 일어나는 현상 자체를 건축물의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장식으로 삼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외피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장식을 ‘현상적 장식’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건축적 실험들은 현재에 와서 위의 건축가들과 그 작품들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크게 주목받고 있다. 실체는 변하지 않지만 관찰자에게는 매 순간 변화하는 듯한 효과를 주는 현상적 장식은 현대 사회가 가지는 불확정성, 실체와 그 이미지 즉, 포장의 괴리, 일회성과 찰나성 등을 떠올려볼 때 관심을 가질만하다. 하지만 위의 Herzog & de Meuron의 글이 담고자 하는 내용은 그 너머에 있을 듯하고 현상적 장식이 주는 더 큰 의미와 그 방법의 바탕을 찾아보고자한다. 본 논문에서는 과거의 장식 개념, 근대 건축의 담론들을 현대 건축의 현상적 장식에 대한 개념과 비교하고 또한 현상적 장식을 방법적으로 분류하여 건축물에서 어떠한 구성과 효과를 가지고 관찰자에게 작용하는 지를 알아보고 실제로 건축 작품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분석하여 도출된 내용을 토대로 현상적 장식이 현대에 어떠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데 그 목적을 둔다.

      • 조선시대 내시 복식 연구

        조희영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631

        조선시대는 유교를 정치ㆍ문화ㆍ사상의 근본이념으로 삼으며 왕을 중심으로 국가가 통치되던 사회였다. 그리고 전제군주사회에서 절대권을 행사한 왕의 곁에는 그들의 수족으로서 항상 내시들이 존재하였으며, 왕 가까이에서 왕명을 전달하고 왕과 왕실의 의식주를 책임지며 궁중의 잡일을 도맡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최근 내시묘의 발굴과 더불어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으로 내시의 역사와 생활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권력자인 왕이나 사대부의 그늘에 가려져 체계적인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식사 분야에서도 내시 복식에 대한 연구는 유물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문헌자료 또한 다른 복식에 비해 부족하여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본 연구는 각종 문헌 기록과 기록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내시 복식을 규명하고 일반 관료들의 복식 변화와 비교하여 그 특징과 흐름을 살펴보았다. 또한 왜곡된 채 전해지고 있는 내시의 복식과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무각(無角) 사모의 실제를 살펴보았다. 먼저 문헌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내시 복식을 의복(衣服), 관모(冠帽), 대(帶), 화혜(靴鞋)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내시의 복식은 문무관의 관복(官服)과는 달리 조복(朝服), 제복(祭服), 공복(公服), 상복(常服) 등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이는 관직에 따라 내시도 복식에 차이는 있었지만 문헌에 기록된 대부분의 내시가 왕이나 왕세자, 왕비 등 왕족 가까이에서 궁중내의 각종 임무를 전담하는 상위직(上位職)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관복이 명확하게 구분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초 내시는 고려말 우왕(禑王) 13년(1387)에 호복(胡服)을 폐지하고 문무관의 의관제도를 명(明)나라의 관복제도로 고쳤으나 이에 따르지 않고 구제(舊制)가 이어져 태조 원년(1392)에 품계별로 관복 제도를 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의 조관복식을 그대로 착용하였다. 내시에게 하사된 의복이 다른 문무관에게 하사된 원령, 직령, 답호, 철릭 등과 차이가 없으며, 사용된 직물과 색상뿐만 아니라 단령 속에 답호, 철릭을 일습으로 받쳐 입던 착장법에서도 사대부와 구별이 되지 않았음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다만 신분과 품계에 따라 각기 다른 흉배를 갖추었는데 내시는 문관의 품계에 따른 흉배를 착용하였다. 즉 일반 관원들에게 상하 위계질서를 정하는 품계가 있듯이 내시도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으로 일반 관원들과 같은 품계체제에 편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정 관료들뿐만 아니라 왕까지도 내시의 정치개입을 견제하고 권력을 약화시키고자 내외관의 복식을 구별하려는 노력을 계속 하였다. 그 예로 연산군은 외관과 구별되는 관모를 특별히 제작하게 하고, 영조와 정조는 내시의 제복에서 패옥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명하였다. 이러한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내시 제복에서 패옥은 정조대까지 유지되었으며, 내시의 조복 착용도 일상적이지 못한 일로 기록되었으나 정조 2년(1778)『?廟都監都廳儀軌』반차도에서 조복을 입고 따르는 내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각(角)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이미 고려 말에도 적용되었듯이 조선중기까지도 각(角)의 유무는 신분을 나누는 위력을 지녀 내시 사모(紗帽)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기록과 초상화를 통해 시대에 따라 사모의 형태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모 뒤에 달린 각(角)은 국말까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시의 립(笠)에 대해서는 특별한 금제가 없었으나 입자(笠子) 정상에 옥(玉)을 장식한 것이나 내시학도(內侍學徒)가 유생(儒生)들이 쓰던 유건(儒巾)을 착용하고, 내시(內侍)가 복건(幅巾)을 착용한 것으로 보아 관(冠) 착용에 있어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자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대(帶)는 흉배와 함께 신분을 구분하는 척도로 사용되었으나 이 규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시의 경우도 규정을 위반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서대(犀帶), 정대(?帶), 은대(銀帶), 금대(金帶)는 지위와 품에 맞지 않는 대(帶)로 거론되었다. 내시에게 하사된 화(靴)는 사피화(斜皮靴), 화(靴), 녹피혜(鹿皮鞋)가 있으며 화(靴)는 주로 상류계층에서 관복에 착용한 신으로 고급 신임을 알 수 있어 내시들이 좋은 품질의 화혜(靴鞋)를 신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 자료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자가 지닌 한계성 또한 적지 않으며 단편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므로 문헌자료와 유물자료가 갖는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궁중기록화를 통하여 내시의 복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궁중연향도(宮中宴享圖)에서 확인되는 청선내시(靑扇內侍), 휘건함(揮巾函), 화반(花盤), 작(爵)을 받아 왕에게 바치는 내시, 협시내시(挾侍內侍), 궤장내시(?杖內侍)는 다른 관원들의 복식과 마찬가지로 상복인 단령과 사모, 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또한 궁중진하도(宮中陳賀圖)에서 보이는 협시내시(挾侍內侍), 청선내시(靑扇內侍), 봉어궁시내시(奉御弓矢內侍), 실검협시봉시(實劒夾侍奉侍)도 조복을 착용한 관원 외의 문무관의 복식과 동일한 상복 단령과 사모, 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내시의 상복은 조선시대 문무관의 상복 변화와 맞물린다. 단령 제도는 세종 28년(1446) 특정의례에서만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흑색 단령으로 통일하여 입도록 하였다. 그러나 의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인지 18세기 궁중연향도에서는 흑색으로 통일되지 못하고 토황색, 녹색, 청색 등 여러 가지 색이 보인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는 점차 흑색으로 통일되어 의례시 흑단령 착용이 점차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흉배 착용은 궁중진하도와는 달리 궁중연향도에서는 일부만 보이는데 상복 단령에 흉배가 빠질 수는 없으나 내시와 다른 관원들까지도 흉배가 보이지 않는 것은 관료들의 어려웠던 경제사정이 반영된 것이거나 회화 역시 제한된 화폭 안에서 표현의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嘉禮都監儀軌』반차도에 나타낸 내시로는 내관(內官), 내시(內侍), 오장내시(烏杖內侍), 소환(小□), 귀유적(歸遊赤), 보행내시(步行內侍) 등이 있으며 시위하는 형태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되었다. 즉 같은 내시라 명명되더라도 가례 의식에서 임무와 직분이 다르기 때문에 시위하는 형태에도 차이가 있었다. 기행 내시(騎行內侍)는 모두 단령과 사모, 대를 착용하고 있으며 청색, 녹색, 현록색의 단령은 의례용 흑단령으로 전기 반차도에서는 소매가 비교적 좁은 형태이며 후기로 갈수록 소매가 넓게 표현되어 있었다. 흉배는 일부 반차도에서만 확인되며 사모의 형태는 전기에는 각(角)이 밑으로 쳐져 있는 반면에 후기에는 거의 직각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가례반차도에는 귀유적(歸遊赤)이라고 하는 보행인이 등장하며 복식으로 홍주의(紅紬衣), 자적주의(紫的紬衣), 청감두(頭), 다회(多繪), 두석토환(豆?吐環), 청목행전(靑木行纏), 흑단운혜(黑□雲鞋)가 기록되어 있다. 홍의와 자적의는 반차도에서 원령의 포로 보이지만 일부 『儀軌』에서 철릭[天益]으로 기록되어 인조 25년(1647) 관복 복구에 따라 하급직의 통례복(通禮服)으로 착용된 철릭으로 생각된다. 귀유적이 착용한 모(帽)는 □巾, 甘頭, 甘土, 頭, 甘吐로 기록되는데 반차도에 표현된 감두는 조선 중기 묘에서 흔히 출토되는 소모자 형태와 같았다. 연(輦)의 좌우에 나뉘어서 행렬하는 보행내시는 립(笠)ㆍ단령ㆍ대, 각 반차도 내의 귀유적과 같은 감두ㆍ단령, 사모ㆍ단령ㆍ대의 3가지 종류의 복식을 착용하였다. 이상에서 기존의 내시에 대한 편견으로는 감히 내시가 문무관에 비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흉배나 단령 착용에서 차이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부와 권력을 손에 쥔 내시들이 화려하고 사치스런 복식으로 비난을 받거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초 내시부의 관원은 140명으로 다른 부서에 비해 일부 군부대를 제외하고는 관원이 가장 많은 부서였다. 그러나 국말에 이르러 내시의 입지는 약화되었는데 궁중기록화를 통해 궁중의식과 관련하여 임무와 역할이 다양하고 궁중내에서 여러 일을 관리하는 수많은 내시가 있어 여전히 궁중과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 중요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었다. The King in the Joseon Dynasty(朝鮮時代) had ruled over the country by Confucian ideas which were basic idea of politics, culture and ideology. The eunuchs had been closely connected with the kings and taken charge of delivering the king's commands and taken care of the royal family. Though an interest about the eunuchs is getting higher because of the excavation as well as the movies and the TV drama, the studies about them has been rarely researched until now. In the field of traditional costume history, the eunuch's clothing has not considered as it is hard to find the relics and documents than the others. This study is for the eunuch's clothing with reference to records and the Court Documentary Paintings(宮中記錄畵). And I tried to survey the transition of their clothing by comparing to the other officials and to make a correct understanding about that. First of all, the eunuch's dressing is divided by clothing(衣服), headpieces(冠帽), belt(帶) and shoes(靴鞋) in the written history document. The eunuchs' clothing different from the official uniform had not been clearly divided by the ceremonial outfit(朝服), the ritual outfit(祭服), the official outfit(公服), the ordinary outfit(常服) in the Joseon Dynasty. Although their outfits were different depending on the official rank, it didn't matter to divide the clothing type. Most eunuchs who assisted the royal family in the written history documents were in high position. Though King U(禑王, 1387) in the end of the Goryo Dynasty changed the official outfits system into the system of the Ming Dynasty, the old system had lasted. The eunuch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wore the previous official outfit in spite of the new official uniform system. The clothing, the round neck robe(團領), the straight collar coat(直領), the short sleeve coat(塔胡), the pleats coat(帖裏) given to the eunuchs were not different from the other general officials'. Also, it was exactly same that the short sleeve coat(塔胡) and the pleats coat(帖裏) were layered under the round neck robe(團領) as well as material and color. However the insignia(胸背) was classified by the social status. The eunuch's insignia pattern had followed the civil officials'. But the other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as well as the king had restrained the eunuchs' political role and power and tried to classify themselves. For example, the King Youngjo and the King Jeongjo had prohibited the jade string(佩玉) from the ritual outfit(祭服). In spite of prohibition, it had lasted until the reign of the King Jeongjo. Though the ceremonial outfit of the eunuch had not seemed to be normal, the illustration of Royal Funeral Procession(祔廟班次圖) recorded in two years of the King Jeongjo(1778) showed that the eunuch wore the ceremonial outfit. The wings(角) attached horizontally in the rear of the winged coronet(紗帽) were important part to classify the social status. Although there were transition of the winged coronet(紗帽) shape, the wings had lasted to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re were no specific prohibition about eunuch's hat(笠), but the top of hat(笠) was decorated with the jade ornament. And they wore headdress(巾), Yugeon(儒巾) and Bokgeon(幅巾) used to the Confucian scholars. Even though the belt(帶) was divided by the strict social status, lots of them had broken the rules. Shoes(靴) given to eunuchs were boots overlaid with marten(斜皮靴) and shoes overlaid with deer-skin(鹿皮鞋). The following is the eunuch's clothing by the Court Documentary Paintings(宮中記錄圖). There were the eunuchs held the blue parasol(靑扇內侍), the eunuchs assisted the king closely(挾侍內侍) and the eunuchs carried the chair and the stick(几杖內侍) in the Court Banquet Paintings(宮中宴享圖) and they had worn the winged coronet(紗帽), the round neck robe(團領), belt(帶) like the other official outfit. Also the eunuch's clothing in the Court Celebration Paintings(宮中陳賀圖) was same. The transition of the ordinary outfit in the Joseon Dynasty was very much alike between the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and the eunuchs'. The robes in the 18th century were not standardized by the black color. After the late 18th century, the black round neck robe(黑團領) especially for ceremony had settled down. The eunuchs in the illustration of Royal Wedding Procession(嘉禮班次圖) were divided into Naekwan(內官), Naesi(內侍), Ojangnaesi(烏杖內侍), Sohwan(小䆠), Guiyoojeok(歸遊赤), Bohangnaesi(步行內侍) depending on the guide type. Even if the eunuchs were called to the same word as Naesi, the guide type is different according to the task and role in the wedding ceremony. All eunuchs riding the horses(騎行內侍) wore the winged coronet(紗帽)ㆍthe round neck robe(團領)ㆍbelt(帶). Guiyoojeok(歸遊赤) who showed up in the all illustration of Royal Wedding Procession(嘉禮班次圖) dressed the red robe(紅紬衣), the purple robe(紫的紬衣), the one of headdress(頭), the braided belt(多繪), the ornament of belt(豆鍚吐環), the leggings(靑木行纏), the shoes with cloud pattern(黑縀雲鞋). Even though this robes looked like the round neck robe(團領) in the illustration, some official documents were recorded by the pleats coats(天益). And I guess that the headdress(頭) written by various words is similar to the small hat excavated in the tomb of the mid Joseon Dynasty. The walking eunuchs near the queen palankeen wore the three style of clothing, the hat(笠)ㆍthe round neck robe(團領)ㆍbelt(帶), the headdress(頭)ㆍthe round neck robe(團領), the winged coronet(紗帽)ㆍthe round neck robe(團領)ㆍbelt(帶). Consequently, the eunuchs have never been compared with the other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because of the prejudice. But there are no differences the round neck robe(團領) with the insignia(胸背) as well as headpieces(冠帽). Even though the status and power of the eunuchs were dwindled in the end Joseon Dynasty, there had been so many of them at Court because of their task and role to manage all kind of affairs. From this historical point of view, the eunuchs were indispensible inside Court.

      • 2007 개정 초등학교 3〜4학년 과학 교과서 생명 영역 과학 용어 조사

        조희영 경인교육대학교 2014 국내석사

        RANK : 247631

        본 연구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중요 교재인 교과서에 사용된 과학 용어를 분석하여 학생들의 과학 용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그에 따라 학생들의 과학 흥미도와 학업 성취도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기초 자료로 2007 개정 교육과정 초등학교 3〜4학년 과학 교과서의 생명 영역에 사용된 과학 용어를 조사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2007 개정 교육과정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 생명 영역에 실린 과학 용어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과학 용어 사전을 활용하였다. 과학 교과서의 과학 용어 분석은 본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목차, 부록 부분은 제외하였다. 본문의 분석은 본문의 내용, 그리고 본문 중 그림이나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용어를 연구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그러나 분석 대상 중 단순한 명칭이나 고유명사 중 1회만 등장하는 용어는 과학 전문용어에서 제외하였다. 과학 용어 분석에 있어서 과학 용어의 어원은 한자어, 우리말, 외래어, 혼합 상태인 4가지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용어의 빈도는 각 학년별로 분석하였다. 수집된 과학 용어들을 학생들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이용하여 학생들의 용어에 대한 이해 정도를 조사하였다. 연구 대상 학생들은 인천광역시 소재의 B초등학교 3∼4학년 학생들로서 각 학년 당 1학급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과학 교과서에는 3학년용에는 과학 용어가 총 47개, 4학년용의 경우 과학 용어가 63개가 수록되어 있었다. 각 교과서의 어원 분석결과 3학년은 한자어>우리말>외래어, 혼합 형태 순으로 나타났으며, 4학년의 경우 한자어>우리말>혼합 형태>외래어의 순서로 3학년과 4학년 모두 한자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이 우리말 순으로 나타났다. 과학 용어의 빈도 분석 결과 3, 4학년 과학 교과서에서 모두 5회 미만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3학년용에는 31개, 4학년용에는 41개 나타났다. 3학년용에서 24회 이상의 출현 빈도를 나타내는 단어는 동물, 한살이, 관찰, 알, 애벌레 등 총 5개였고, 4학년용에서는 27회 이상의 빈도를 나타내는 단어는 식물, 씨앗, 관찰, 물, 줄기, 잎, 열매, 꽃으로 총 8개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과학 용어에 대해 느끼는 난이도 조사 결과 3학년은 60.77%의 학생이, 4학년은 47.57%의 학생들이 과학 용어가 쉽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과학 용어에 대한 이해도 조사 결과에서는 과학 용어를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의 비율이 3학년의 경우 30.56%, 4학년은 31.92%의 비율로 나타났다. 교과서에 실린 과학 용어는 학생들이 학습하기에 다소 많으며 우리말 과학 용어 보다는 한자 과학 용어가 더 많았다. 그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결과, 배운 양에 비해 정확히 알고 있는 과학 용어 수는 많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과학 교과서를 집필하고,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과학 용어를 지도할 때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 중학교 말하기 교과서 개발 연구 : 제7차 중학교 생활 국어 교과서의 ‘말하기’ 영역 교육 개선 방안

        조희영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7631

        일상 생활에서 말하기의 비중은 크다. 개인적 삶과 사회관계적 삶에서 이미 말하기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흐름에 따라 말하기 교육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강조되어 왔고 교과서의 단원으로도 빠지지 않고 구성되어 왔다. 그러나 현행 말하기 영역의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의 말하기 능력이 신장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일부 현장에서의 말하기 영역에 대한 지도가 여전히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학생들의 말하기 능력의 신장을 위한 교수-학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는 현 교육 체제에서 비롯된 대학 입시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이를 반영한 이론 중심의 교과서의 구성, 교육 현장에서의 학생과 일선 교사들, 더 나아가 학부모들의 말하기 교육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이다. 이에 말하기 교육은 실제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고 '창의적 국어사용 능력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말하기 교육이 시급하다. 따라서 형식적인 활동 과제를 지양하고 보다 구체적인 상황과 활동 내용을 통해 실생활에서 말하기 활동을 원활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과서가 있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이에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연구의 대상을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중학생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제7차 교육 과정의 중학교 ‘생활 국어’ 교과서를 대상으로 교과서의 말하기 영역의 내용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였다. 그 결과 파악된 문제점으로 현행 교육 과정에서 말하기 영역의 체계가 엉성하다는 것과, '생활 국어' 교과서의 말하기 영역의 내용이 교육 과정을 뒷받침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현행 말하기 교육은 교육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이론에서부터 교과서의 실제 활동까지 모두 실제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앞서 여러 논문들에 제시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연구도 많다. 이 연구들의 대부분은 현행 교과서의 재구성이나 매체를 활용한 교수-학습 방법의 변화에 대한 것으로 실제적인 말하기 기능의 향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된다. 교과서를 수업의 ‘성전’인양 떠받드는 현 교육의 실정에서 이미 만들어진 교과서의 내용을 실제 수업에서 재구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이지 핵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되지 못한다. 즉 '창의적 국어 사용 능력 향상'을 목표로 만든 교과서가 문제점이 많다면 그 교과서를 근본부터 바꾸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말하기의 중요성이 커진만큼 말하기 영역을 생활국어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말하기 교과서'를 만들고, 말하기 교과서의 내용 체계는 현행 교과서의 대략적인 분류와 형식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단원 분류와 실생활에서 충분히 응용될 수 있는 활동들로 제시되어야한다. 그저 '정보 전달하기-주장하기-친교 표현-정서 표현'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개하기', '토론하기',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바꾸어보기' 등처럼 하나의 구체적 상황으로 대단원이 설정되어 그 각각의 상황에 맞는 말하기 능력을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언어 기능을 위한 교육은 형식에 치우쳐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문제점을 알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에 집중해야한다. 그 과정이 번거롭고 여태껏 해왔던 것이 아닌 생소한 것이라고 멀리해버린다면 영원히 문제점은 해결될 수 없다. 교육은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것이어서 기본 틀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백년지대계인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 정해진 틀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되짚어보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말하기 교과서'의 개발이 세계를 무대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말하기 능력 향상에 기여하기를 바라며, 아울려 이 연구가 말하기 교과서 연구의 시발점이 되어 더 수준 높은 말하기 교과서의 개발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 작업모형 제작에서 디지털 및 전통적 기법의 정확도 비교

        조희영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RANK : 247631

        작업모형 제작에서 디지털 및 전통적 기법의 정확도 비교 본 연구는 전통적인 인상채득 과정을 통하여 제작된 작업모형과 디지털 인상 채득 시스템을 이용하여 제작된 작업모형의 정확성을 비교 평가하고자 하였다. 하악치형의 좌, 우측 제1소구치, 제2대구치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수렴각 6도, 높이 6mm의 균일화된 지대주를 임플란트 아날로그에 연결하여 포매하여 주모형을 제작하였다. 트레이와 부가중합형 실리콘 인상재를 이용하여 전통적인 인상채득 방법에 따라 주모형의 인상을 채득한 후 초경석고로 작업모형을 제작하였다. 또한 주모형을 디지털 인상채득 시스템인 iTero system을 이용하여 스캔한 후 폴리우레탄 작업모형을 절삭하여 제작하였다. 주모형을 디지털 캘리퍼스를 이용하여 균일화된 지대주에 표시되어 있는 기준점간의 거리를 측정하였고 같은 방법으로 작업 모형의 지대주 상의 기준점간의 거리를 측정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독립 표본 t-검정을 통하여 분석하였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전통적 인상채득 방법으로 제작된 초경석고 작업모형은 주모형에 비하여 계측점간의 거리가 유의성 있게 증가하였다. 2. iTero system으로 제작된 폴리우레탄 작업모형은 주모형의 계측점간의 거리와 유의성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3. iTero system으로 제작된 작업모형은 전통적 인상채득 방법으로 제작된 작업 모형에 비하여 적은 변위량을 보였다.

      • 치매를 동반하지 않는 파킨슨병 환자의 신경인지기능의 평가 : 증상발생나이 및 주요증상에 따른 평가

        조희영 동아대학교 200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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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초기의 파킨슨병 환자에게서 신경인지기능검사 상 인지기능장애가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치매를 동반하지 않은 파킨슨병 환자의 신경인지기능장애에 관한 구체화된 연구는 없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치매를 동반하지 않은 파킨슨병환자들의 신경인지기능검사의 분석을 통해 이들의 인지기능장애를 평가하고자 하였다. 대상 및 방법: 임상적으로 치매를 보이거나 최종 학력이 3년 미만인 경우를 제외한, 총 141명의 파킨슨병환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신경인지기능검사를 분석하였다. 또한 환자들을 나이( 60세 전군과 60세 후군) 및 주요증상( 안정 시 진전을 동반한 군과 무동성 경직군)에 따라 나누어 환자들의 신경인지기능검사를 비교 분석하였고, 이 때 각 군 간의 학력, 유병기간 및 H&Y stage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결과: 전체 141명중 103명(73%)이 한 가지 이상의 인지기능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인지기능장애의 빈도는 SVLT(38%), stroop test의 색깔읽기(35%), 레이복합도형의 지연회상(34%)의 순서로 나타났다. 환자들을 나이에 따라 두 군으로 나누어 비교했을 때, 고 연령 군에서 모든 검사의 인지기능장애가 빈번하였고 그 중에서도 전두엽기능장애가 흔하였다. 또한 환자들을 주요 증상에 따라 나누어 비교하였을 때 안정 시 진전을 동반한 군의 인지기능장애가 무동성 경직군에 비해 흔하였으며, 그 중 집중력장애가 유의하게 빈번하였다. 결론: 치매를 동반하지 않은 초기의 파킨슨병 환자들에게서 인지기능의 장애는 빈번하게 나타난다. 또한 초기 파킨슨병 환자의 인지기능장애의 양상은 주요 증상 및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 서명응의 『先天四演』에 관한 硏究

        조희영 숭실대학교 대학원 2011 국내박사

        RANK : 247631

        A Study on Seo Myeng-Eung's 『Sun-Chen-Sa-Yeon』 CHO, HIE-YOUNG Department of Philosophy Graduate School Soongsil University This thesis studies on the content of 『Sun-Chen-Sa-Yeon(先天四演)』written by Seo Myeng-Eung(徐命膺, 1716~1787). 『Sun-Chen- Sa-Yeon』generally contains his studies and ideas and it is in the head of 『Bo-Man-Jae-Chong-Seo(保晩齋叢書)』by his works in his lifetime. His study was named by Sun-chen study whose origin was Shao Yong(邵雍, 邵康節, 1011~1077) and it was continued by Chu Hsi(朱熹, 1130~1200) and Cai Yuan-ding(蔡元定, 1135~1198). In『Sun- Chen-Sa-Yeon』, Seo Myeng-Eung explains the reason of heaven and ground through the Sangsoo(象數) in 「Ha-Do(河圖)」which is a picture for Sun-Chen and Moo-Moon-Ja-Yeok(無文字易),「Sun-Chen -Sa-Do(先天四圖)」「8Gue-Do(8卦圖)」「Bang-Wi-Do(方位圖)」「Cha-Seo-Do(次序圖)」and「Bang-Won-Do(方圓圖)」. ‘Sun-Chen(先天)’ means that the time the pure energy of nature is plentiful and all are achieved. It also means the world that human nature has natural appearance like Fu His(伏羲) period. In the Hoo-Chun[後天, reality] for approaching Sun-Chen, the behavior of people(凡人) is 'In-Eui-Ye-Ji(仁義禮智)' based on the character of nature(自然性). ‘Sun-Chen-Sa-Yeon' means that Sun-Chen is interpreted and deduced by four methods. The four methods are ‘Earn-Sang-Soo-Eui(言-象-數-意)’ and it was called by Sun-Chen-Sa-Do(先天四道). In ‘Earn-Do(言道)’, it's mentioned by 「Ha-Do」 ontology that 「Ha-Do」 is in the center of Sun-chen study. It regards 「Ha-Do」 as the ‘foundation of humanities manufacture’ and it is regulated by the place that 「Sun-Chen-Sa-Do」 was appeared at first. ‘Sang-Do(象道)’ explains astronomical calendar through the 「Bang-Won-Do」. Seo Myeng-Eung regulated that 「Ha-Do」 is 'Hoik-Jun-Yeok(畫前易)' formed by only Yangui(兩儀) and Sasang(四象) and said that creation and change of all things cannot get out of the pattern of Yangui and Sasang. If examining ‘Soo-Do(數道)’, he is a person of logical soo theory (理數論者) and person of soo basical theory that soo is advanced by sang. Seo Myeng-Eung divided all things of heaven and ground with Sa-Boo-Bub(四府法), widened to 16 sa, unfolded Yeok-Soo-Ron(易數論) and judged the history with Won-Hoi-Wun -Se(元會運世). The key words of Seo Myeng-Eung's theory in ‘Eui-Do(意道)’ are ‘中’ and ‘心’. 「Sun-Chen-Do(先天圖)」 said that 中(Middle, Center) is 心(Heart) and Tae-Keuk(太極) because all changes are occurred in the center, 中. Seo Myeng-Eung created new conditions of Sun-Chen study(先天學) and opened new prospect. He suggested the point different from the existing Sun-Chen study and based on it, there is a comprehensive standpoint embracing other studies. Sun-Chen study entered new conditions with 'way to Sun-Chen' suggested by Seo Myeng-Eung and ‘「Ha-Do」 ontology’ established by him. The prospect opened in new conditions is appeared in changes of So-Gang-Jeol's 「Nae-Do(內圖)」. Seo Myeng-Eung solidified 「Ha-Do」 ontology through the changes of 「Nae-Do」 and created the space combined by Chun-Moon(天文) and 「Bang-Won-Do」. In the same context, the differentiation with existing ‘Ha-Rak-Ron(河洛論)’ is tried by changing Cai Shen(蔡沈)'s 「99 direction capital(99方數圖)」. He considered 「Oui-Do」 as the celestial bodies in 「Bang-Won-Do」, 「Nae-Do」 as the earth and 3 Geuk of Chun-Ji-In (天地人) as celestial bodies, so it reads I-Ching(易) dynamically. Seo Myeng-Eung interprets Daojia(道家) from the standpoint of Sun-Chen study(先天學) and shows open attitude to accept the Western astronomy passed at that time with Sun-Chen study. Seo Myeng-Eung was close to royal family originated by Hanyang noble family and his periodical worry needed the method to respond the Western study flowed to Joseon(朝鮮). The academic system contains Rujia(儒家) and Daojia, leads periodical ideology of Joseon and leads the future. Seo Myeng-Eung discovered the solutions in Shao Yong's Sun-Chen-Yeok- Hak(先天易學) and interpreted it from the viewpoint of Joseon. Furthermore, he developed it to new system reflected by natural science and intended to prepare present and future. He is a Sang-Soo epidemiologist who unfolds Yeok-Ri(易理) with Sang(象) and Soo(數), but his point is concluded to loyalty. His Sim-Sung-Ron(心性論) is ‘中’ mind and ‘Goong-Ri-Jin-Sung(窮理盡性)’ reflected by ‘一事無’'s Sun-Chen ideology and it can be a goal that we must seek together. He insists that thought must be opened by regarding ‘中’ and ‘心’ as the best values. The reasons are that ‘中’ balances between all things and human by extremely high, ‘心’ relates among the human and makes ‘understanding and embracing’ possible and ‘openness of awareness’ guides human to the wide world. ‘中’ becomes humane capital if it is valued without abandonment and social capital if accumulating mutually with Sung-Sim(誠心). If reflecting on his study, it is greatly ‘study seeking and explaining the basis of heaven and ground’ and the method can be ‘seeing the world again after going back to the foundation[Ea-Mul-Kwan-Mul(以物觀物) and Ban-Kwan(反觀)]. However, it's urgent to 'communicate with philoso- phical point' by finding humanities and scientific factors that his Sun-Chen study has actually. Key Words ; Sun-chen study(先天, 先天學), Fu His(伏羲), 「Ha-Do(河圖)」, Shao Yong(邵雍, 邵康節), 「Sun-Chen-Do(先天圖)」 , Sun-Chen- Sa-Do(先天四道-言象數意), 中(Middle, Center), 心(Heart) 서명응의 『先天四演』에 관한 연구 哲 學 科 조 희 영 指導敎授 곽 신 환 본 논문은 徐命膺(1716~1787)이 지은『先天四演』의 내용을 연구하는 글이다. 『선천사연』은 그의 학문과 사상을 총괄적으로 담고 있는 저서이며 생전에 그의 저작물을 엮은『보만재총서』의 권두에 있다. 그의 학문을 선천학이라 하며 그 유래는 邵康節(1011~1077)에서 비롯되고 朱熹(1130~1200)와 蔡元定(1135~1198)에 의해 이어졌다. 서명응이『 선천사연』에 주장한 내용은 ‘先天’에 관한 그림이자 無文字易인 「河圖」와「先天四圖」인「8卦圖」「方位圖」「次序圖」「方圓圖」에 나타난 象과 數를 통하여 천지의 이치를 해명하는 것이다. 선천이란 자연의 순수한 氣가 넘치고 誠이 충만한 때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伏羲時代처럼 인간의 본성이 그 자연적 모습을 간직한 세상을 말한다. 선천에 도달하기 위한 後天[현실]에서 凡人의 행위는 自然性에 기초한 ‘仁義禮智’이다. ‘선천사연’이란 선천을 네 길로 해석하고 연역한다는 뜻이다. 그 네 길은 ‘言-象-數-意’이며 이를 先天四道라 했다. ‘言道’에서 서명응은 「하도」를 선천학의 중심에 두는 「하도」 본체론을 언급한다. 「하도」를 ‘인문제작의 근본’으로 보고 있으며 「先天四圖」의 생출처로 자리 매김한다. ‘象道’에서는 「방원도」를 통하여 천문역법을 해명한다. 서명응은 「하도」는 兩儀와 四象으로만 이루어진 ‘劃前易’으로 규정하고 만물의 생성변화는 양의와 사상의 패턴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數道’를 보면 그는 理數論者이자 동시에 數가 象에 앞선다는 數 根本論者임을 알 수 있다. 서명응은 四府法으로 천지만물을 분류하고 16事로 넓혀가면서 易數論을 전개하고 원회운세로 역사를 재단한다. ‘意道’에 나타난 서명응 사상의 핵심은 ‘中’과 ‘心’이다. 「선천도」는 그 가운데인 中에서 모든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며 中은 心이자 태극이라 했다. 선천학은 서명응이 제시한 ‘선천으로 이르는 길’과 그가 수립한 ‘「하도」 본체론’으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국면은 특히 소강절의「내도」변형에서 나타난다. 서명응은 「내도」 변화를 통해서「하도」본체론을 공고히 하고 天文과 「방원도」가 결합할 공간을 창출해 낸다. 같은 맥락에서 蔡沈의「99방수도」를 변형하여 기존의 ‘하락론’과 차별화를 시도한다. 그는 「방원도」에서 「외도」를 천체로 보고 「내도」를 지구로 보며 天地人 3極을 천체로 재해석하는 등 역동적으로 易을 읽어낸다. 또한 서명응은 선천학의 관점으로 道家를 해석하고 당시 전래한 서양천문학도 선천학으로 수용하려는 개방적 자세를 보여준다. 이와같이 그는 기존 선천학에 변화를 시도하고 타 학문을 포섭하는 통섭적 자세로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수립하는 동시에, 선천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서명응은 한양 명문 출신의 왕실 측근으로 그의 시대적 고민은 조선에 유입된 西學에 대응하고, 儒家와 道家를 포괄하면서 조선의 시대사상을 주도해 나갈 학문적 사상적 체계였다. 그는 그 해결책을 소강절의 선천역학에서 발견했고 이를 조선의 시각으로 재해석했으며, 더 나아가 자연과학을 반영한 새로운 역학으로 발전시켜 현재와 미래에 대비하려 했다. 서명응은 象과 數로 易理를 전개하는 상수역학자이지만 그의 논지는 義理로 귀결된다. 그의 心性論은 自然之事인 ‘一事無’의 선천사상이 반영된 ‘中’의 마음과 ‘窮理盡性’인 바 그것은 우리가 더불어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서명응은 ‘中’과 ‘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思考가 탁 트여 있을 것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中’은 至高至極하여 만물과 사람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心’은 인간 사이를 서로 연결하여 ‘이해와 보듬기’가 가능하며, ‘인식의 트임’은 사람을 넓은 세상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중’은 그것을 버리지 않고 귀히 여기면 인간적 자본이 되고, 誠心으로 서로가 쌓으면 사회적 자산이 된다. 그의 학문을 돌이켜 보면 크게는 ‘천지의 존재 근거를 추적하여 해명하는 학문’이고 그 방법은 ‘근본으로 돌아가 세상 다시 보기(以物觀物하고 反觀하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의 선천학이 품고 있는 인문과학적 요소를 찾아서 ‘철학적 논제와 회통하기’가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주제어 ; 선천(학), 복희,「하도」, 소강절,「先天圖」, 先天四道(言象數意), 中, 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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