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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인의 맥

          박해남 안동대학 안동사연구회 1986 安東史硏究 Vol.1 No.1

          인간이란 태어나서 사고를 가지게 된 후부터 생명을 다할때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은 크게 과거-현재-미래의 세부분으로 세분할 수 있다. 과거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현재는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미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중에서 인간은 보다 더 과거에 얽매인 생활을 하면서 산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과거의 실적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KCI등재

          도시의 기억과 초국경적 교류협력: 독일 북동부 도시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박해남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 2019 문화와 정치 Vol.6 No.4

          In Lüneburg, a city where tens of thousands of German immigrants from Eastern Europe settled down after World War II, there have been conflicts over the memory of East Prussia. But the historical memory has been positively changed over the last 20 years. Local intellectuals use the memory of East Prussia for the promotion of transnational cooperation. Based on this, they are engaged in the cultural and academic activities with the multiple cities of Eastern Europe.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교류와 협력을 위한 기억의 활용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이 글은 기억의 공간이자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에 주목하여, 도시들이 초국경적 교류와 협력에 기억을 활용하는 양상을 분석하였다.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였던 뤼벡(Lübeck)과 동유럽거주 독일인들의 대량 이주 경험을 지닌 뤼네부르크(Lüneburg)라는 독일 북동부의 두 도시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이들 도시에서 한자동맹과 동유럽으로부터의 이주에 관한 기억을 어떻게 변용시켰는지, 초국경적인 교류와 협력에 기억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독일 제2제국과 제3제국 시기 한자동맹은 독일인들의 제국주의적 확장으로 기억되었지만,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도시 간 상업네트워크이자 유럽연합의 선례로 기억되기 시작하였다. 뤼벡의 지역 지식인들은 한자동맹을 도시 간 교류와 협력의 네트워크로 재현하는 박물관을 만들고, 새로이 만들어진 한자동맹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으며, 한자동맹에 관한 초국경적 학술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2차 대전 시기부터 동유럽으로부터의 피난과 이주한 이들의 정착지였던 도시 뤼네부르크는 이들이 거주하던 동프로이센의 기억과 박물관을 둘러싼 갈등을 경험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지역의 지식인들은 동프로이센의 기억을 동유럽과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기억으로 변용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동유럽 도시들과의 문화적 및 학술적 교류를 수행하고 있다.

        • KCI등재후보

          The Interaction between Civil Society and the State in the History of Inter-Korean Sports Dialogue, 1988-2018

          박해남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20 민주주의와 인권 Vol.20 No.3

          North and South Korea made moves towards reconciliation in 2018. This occurred around the time of the Pyeongchang Olympic Games, and although surprising it was not unprecedented. Indeed, the sports diplomacy of 2018was inspired by historical experience gained sin the late 1980s. It is well known that sport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tools for dialogue for both governments on the Korean Peninsula, but it is less known that South Korean civil society engaged in the history of sports dialogue. Whilst most studies in the field have only focused on the government's role, this study sheds light on the interaction between South Korea's civil society and the government in the course of sports dialogue with North Korea. The article reorganizes the history from 1988 to 2018: civil society's period of initiative from 1988 to 1992, cooperation between civil society and government from 1998 to 2007, and a period marked by discord between civil society and government in the years after 2008.

        • KCI우수등재

          한국 발전국가의 습속개조와 사회정치 1961~1988

          박해남 비판사회학회 2019 경제와 사회 Vol.- No.123

          This article argues that the Korean government sought to reform the behavior of Koreans to solve the social question, which occurred during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and to facilitate social order and social integration. To verify this argument, this study analyzes the discourse and policies on moral reform in the President's speeches and the government's policy documents. Moreover, this study also attempts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the policy changes and the effects of the social politics during the Developmental State period from 1961 to 1988. The finding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since the early 1960s, the government diagnosed Koreans' behavior as the cause of social questions including poverty. The solution was the behavioral reform of the individual subjects based on the self-help principle. There was no principles like redistribution or solidarity in their social politics. Second,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concept of respectable behavior defined by the state. As they saw poverty as the main social problem in the 1960s and 1970s, the Developmental State Korea encouraged some habits that were useful for economic growth. In the 1980s, the government viewed social disorder as the greatest problem of the time and emphasized civilized habits such as behavioral order and cleanliness as solutions. Third, the results of the social politics carried out by the Developmental State was very divisive, for they applied discriminative treatment, such as exclusion and discipline to the members of the society. The government viewed members of the lowest social class as a ‘source of social pollution' and isolated them from the rest of society.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was the object of surveillance and discipline through the social reform campaigns. Only a small number of highly educated and highly skilled workers benefitted from the institutional social safety net. 이 글은 발전주의 시기 사회구성원들의 습속을 개조하려던 국가의 시도를 사회정치 로 본다. 발전국가 특유의 방식으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문제에 대처 하고 사회질서와 통합을 확보하려고 한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연설 과 정책 문서들 안에서 습속 관련 담론 및 정책을 확인해 이를 검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발전국가의 사회정치가 지니는 특성과 효과를 파악하고자 했다. 분석의 결과 다음 과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첫째, 1960년대 초반부터 발전국가는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습속이 빈곤 등 사회문제의 원인이라 진단했다. 그리고 자조(self-help) 원 리에 기초한 개별 주체들의 습속개조를 해결책으로 삼았다. 연대나 재분배와 같은 것들 은 고려되지 않았다. 둘째, 습속개조를 위해 발전국가가 인정할 만한 습속이라 상정한 것들은 연대별로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사회문제는 주로 빈곤에 관한 것인 만큼 발전국가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습속을 강조했고, 아울러 탈정치 화되고 비서구화된 습속을 강조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발전국가는 무질서를 더 큰 문제로 보았고, 질서와 청결 등 문명화된 습속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셋째, 이러한 담론에 기초한 정책의 실천은 사회구성원들을 분할하는 과정에 다름없었다. 기층의 사 회구성원들은 사회의 습속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여겨져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으며, 대 다수의 인구는 관제 캠페인을 통한 습속의 감시와 계몽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오직 소 수의 고학력 및 고숙련 노동자에게 제도적 사회안전망을 제공했다.

        • KCI등재SCOPUS

          백서의 심근경색 모델에서 중간엽 줄기세포를 이용한 심근형성술의 효과

          박해남,연태진,권진숙,김영화,김기석,배장환,손보라,황경국,김동운,이명묵,조명찬 대한심장학회 2004 Korean Circulation Journal Vol.34 No.11

          Background and Objectives:Cellular cardiomyoplasty (CCM) is considered to be a novel therapeutic approach for post-myocardial infarction (MI) heart failure. In this study, the functional effects of cultured mesenchymal stem cells (MSCs) transplantation and the associated histopathologic changes were evaluated in a rat model of MI. Materials and Methods:Rats were subjected to 5 hours of coronary ligation followed by reperfusion, and 10 days after MI, animals were randomized into either the MSCs transplantation (MI-MSC, n=8) group or the control (n=8) group. Allogeneic MSCs (3×106 cells) or media were epicardially injected into the center and the border area of the infarct scar. Results:Four weeks after the MSCs transplantation, the echocardiogram showed preserved anterior regional wall motion and increases in fractional shortening in the MI-MSC heart relative to the control heart. Left ventricular (LV) end diastolic pressure was smaller in the MI-MSC than in the control group. Implanted MSCs formed islands of cell clusters on the border of the infarct scar, and the cells were positively immunostained by sarcomeric α-actinin and cardiac troponin T. In addition, the number of microvessels on the border area of the infarct scar was greater in the MI-MSC than in the control group. Conclusion:Allogeneic MSCs transplanted into the MI scar formed clusters of cell grafts on the border of the infarct, expressed cardiac muscle proteins, increased microvessel formation, and improved regional and global LV function. Our data indicate that CCM using MSCs may have a significant role in the treatment of post-MI heart failure. 배경 및 목적: 세포를 이용한 심근형성술(cellular cardiomyoplasty)이 심근경색 후 심부전 치료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본 연구는 백서의 심근경색 모델에서 중간엽 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s, MSCs)의 이식이 경색 심장의 심기능 및 조직병리학적 변화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방 법: 백서에서 5시간 동안 관동맥을 결찰한 후 결찰을 풀어 재관류가 이루어진 통벽성 심근경색을 유도한 뒤, 10일 후 무작위로 MSCs를 이식한 군(MI-MSC, n=8)과 대조군(n=8)으로 나누었다. MI-MSC군은 3×106개의 배양된 MSCs를 심근경색의 중앙 부위와 주변 부위에 총 3~5회에 걸쳐 주입하였다. 결 과: 세포 이식 4주 후 심초음파를 이용해 측정한 좌심실 내경은 MI-MSC군과 대조군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나, MI-MSC군에서는 심근경색의 주변부인 좌심실 전벽의 운동성이 대조군과는 달리 어느정도 유지되었으며, 좌심실 분획단축률은 MI-MSC군에서 유의하게 증가하였다(27.1±1.4 vs. 19.8±2.6%, p<0.05). 또한, 좌심실 확장말기압도 MI-MSC군에서 대조군과 비교하여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조직학적 검사에서 심근경색의 크기는 양군 간에 차이가 없었으나, 경색 반흔의 두께는 MI-MSC군이 유의하게 두꺼웠다(1.54±0.05 vs. 1.14±0.1 mm, p<0.05). 이식된 MSCs는 주로 경색의 주변부에서 군집을 이룬 형태로 발견되었으며, 이식 세포의 군집에서 sarcomeric α-actinin과 cardiac troponin T가 발현되는 많은 수의 이식 세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식 세포의 군집 주위에서는 von Willebrand factor에 염색되는 많은 혈관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경색 주변부의 미세혈관 개수는 MI-MSC군에서 대조군과 비교하여 유의하게 높았다(9.5±1.0 vs. 5.3±0.5 vessels/HPF, p<0.05). 결 론: 백서의 심근경색 반흔에 이식된 MSCs는 경색의 주변부에서 군집을 이루며 생존하였고 수축 조절 단백질들을 발현하였으며, 경색 반흔 두께의 감소를 억제하였고 경색 주변부 미세혈관의 형성을 증가시켰으며, 국소 벽운동 및 전반적인 심기능을 향상시켰다. 본 연구의 결과는 MSCs를 이용한 심근형성술이 심근경색 후 심부전 치료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고려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KCI등재

          한국 발전국가 시기 사회정치와 부랑인의 사회적 배제

          박해남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9 민주주의와 인권 Vol.19 No.4

          This study seeks to explain what caused the cruel confinement and violence against the vagabonds during the developmental state period of 1961-1988. Unlike existing researches which argues that the developmental state allowed the horrible situation in order to make the vagabonds into ‘normal' members of society, this study focuses on the aspect of social exclusion by the state and civil society. The state determined that the causes of social question in Korean society lay in the behaviour of its members. It carried out the behavioural reform, and the segregation of those who were determined to be a social evil by the government. Civil society was not a valid competitor to the state during the process of the social politics. This was especially with regard to vagabonds - they shared an idea of ‘social purification' with the state. No social groups argued that the Korean society should include the vagabonds and give an opportunity them to be inserted into the society. The owner of Hyungje Workhouse didn't try to change the inmates' behaviour so that they could be reinserted society later. What the owner concentrated was to force the inmates to obey the order of the workhouse. The inmates were socially excluded for they lost all life chances and were totally segregated from the everyday life of wider society. 이 글은 형제복지원으로 대표되는 발전국가 시기 부랑인의 무차별적인 수용과 시설 내의 폭력적 일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부랑인들을 정상적 사회주체로 갱생하고자 했다는 기존의 설명을 넘어,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벌어진 사회정치 과정에서 부랑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가 발생했다는 것을 가설로 삼았다. 발전주의시기 국가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성원들의 습속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구성원들로 하여금 알아서 습속을 개조할 것은 주문했고, 문제적 습속을 지닌 이들을 사회악이라 부르며 단속하고자 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비책은 소수의 고학력 및 고숙련인력에게만 제공되었다. 한편, 시민사회는 그러한 발전국가의 사회정치에 대한 유효한 경쟁세력이 되지 못했다. 이들은 습속에서 문제를 찾는 사회정치관을 국가와 공유하기도 했고, 부랑인을 동정했지만 연대나 권리의 대상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이처럼 국가와 시민사회 가운데 부랑인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섭(inclusion)하고자 하는 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수용시설 사업자들은 부랑인들의 사회복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시설의 지속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를 위한 폭력은 수용자들이 ‘사회적 삶'에 참여할 능력을 상실시켰다. 피해생존자들이 경험한 것은 발전국가 시기의 다층적인 사회적 배제였다.

        • KCI우수등재
        • KCI등재

          18세기 조선의 漢詩에 나타난 近代性 탐색

          박해남 한국시가학회 2010 韓國 詩歌硏究 Vol.28 No.-

          This paper was prepared to abstract the concrete theoretical frame which explain the modernity on Chinese poetry of 18th Century's Chosun dynasty. And I suggested two factors, 'development' and 'self-consciousness', to explain the modernity. According to these elements, I want to see the 18th century's Chinese poetry in Chosun. The social and economic 'development' demanded changes of cognition and extension of world view to intellectuals of 18th century. The economic development generates a brutally alienated and atomized society, for example cold social indifference, destructive of every cultural or political value. Likewise, on the psychological plane, self-development in these conditions cold only mean a profound disorientation and insecurity, frustration and despair, concomitant with―indeed inseparable from―the sense of enlargement and exhilaration, the new capacities and feelings, liberated at the same time. But this atmosphere is the groundwork in which modern sensibility is bor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not wholly achieved. I found several evidences of modernity from chinese poetry of 18th century's Chosun. But I am not sure that literal conditions of this period was modern or not. 이 논문은 18세기 조선의 한시에서 ‘근대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 이론 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준비되었다. 이를 위해 ‘발전'과 ‘자각'이라는 두 축을 설정하였다. 18세기 조선의 한시를 살핌에 있어서, 당대의 ‘발전' 과정에서 느낀 지식인들의 ‘자각'이 한시라는 장치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을 통해 근대성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논거로 삼고자 했다. 18세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은 조선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자각'을 통해 여러 부면에서 새로운 인식의 변화와 세계관의 확장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요소는 의식의 무정형성을 도출할 수 있는 나름의 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각' 속에는 꼭 긍정적인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과 불안, 기대와 좌절 등이 혼재한다. 그렇기에 이 시기 지식인들의 문학에서 복합적인 양상이 보이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그가 속한 학맥, 黨色 등에 따라 어느 면을 더 신뢰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전망과 확신이 저마다 다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다룬 몇몇 인물들의 예로 보더라도 분명 18세기의 한시에서 문학적 근대성의 단초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련의 흐름에 기반한, 전면적인 근대의 모습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신있는 논지를 도출하지 못한 점이 이 논문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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