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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논문 : 고령지역 사상(思想)의 특징과 사적(史的) 전개(展開) ;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성리학적 입장에 대한 검토 -한주학파(寒洲學派)와의 논변을 중심으로-

        임종진 ( Jong Jin Lim ) 경북대학교 퇴계학연구소 2008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3 No.-

        본 논문은 19세기말 영남의 성리학자인 李種杞의 성리학적 입장을 살펴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性理學에 대한 이종기의 입장은 그의 문집 속에 들어 있는 소논문들, 李震相과 그의 제자 및 다른 성리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글 속에서 이종기는 여러 성리학적 주제들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이종기는 크게 두 측면에서 자신의 성리학적 입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첫 번째 측면은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李珥의 성리학적 입장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退溪學派로서의 자신의 사상적 좌표를 명확하게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 측면은 퇴계학파 내에서의 성리학적 입장과 관련되어 있다. 이점과 관련해서는 이종기와 이진상을 비롯한 寒洲學派(許愈, 尹胄夏, 郭鍾錫)와의 논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理氣論과 心性論을 중심으로 해서 이 부분에 대한 이종기와 한주학파의 성리학적 차이점을 드러내 보이면, 자연스럽게 당시 퇴계학파 내에서 이종기의 성리학적 입장이 가지는 의미와 평가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理氣論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양측 모두는 기본적으로 朱熹와 이황에서 비롯된 主理論의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여러 가지 주제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요컨대 한주학파는 보다 주리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리와 기의 차별성을 강조하려는 입장이라면, 이종기는 리와 기의 조화와 공존의 측면을 보다 강조하려는 입장이다. 心性論과 관련해서도 한주학파는 心卽理說을 주창함으로써 이황의 心合理氣說을 고수한 이종기와 대립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양측의 입장 차이는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첫째는 朱熹와 같은 성리학자들의 이론 자체에서 발견되는 부정합성의 문제 때문이고, 둘째는 한 성리학자의 이론에 내재된 다면적인 함의 중에서 어떤 측면을 중요하게 보는가하는 문제가 계속 남기 때문이다. 이제 이종기의 성리학적 입장과 관련해서 약간의 평가를 덧붙이고자 한다. 이종기는 기본적으로 李滉의 理氣互發說과 심합리기설의 입장을 성리학 이해의 근간으로 삼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理發ㆍ氣發만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물론 기호학파의 主氣論에 대한 비판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한편으로는 퇴계학파의 주리론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리 위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경향에 대한 퇴계학파 내부의 자기반성적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진상을 중심으로 하는 한주학파가 理優位論을 근간으로 하는 觀念(idea) 위주의 理想主義的입장에서 퇴계학을 계승했다면, 이종기는 상대적으로 氣의 존재론적 위상에 좀 더 주목하여 종래 퇴계학파의 性理思想을 보다 현실적인 입장으로 이동시켜 사상적 균형성을 회복하려는 태도를 견지한 `退溪學의 現實主義的 繼承者`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The main object of this article is to look over the Neo-Confucian position of Lee Jong-Gi, a Confucian scholar of Youngnam area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His position on Neo-Confucianism can be figured out through some small articles in his collection of works and his correspondences with Lee Jin-Sang and his disciples and other scholars. In these works, we can see that Lee Jong-Gi had revealed his position to the various Neo-Confucian issues in two large aspects. The first aspect is that by way of taking critical stance on the Neo-Confucian position of Lee I, the representative figure of the school of Giho, he, as a scholar of the school of Toegye, established clearly his stance of thought. The second aspect is related to his position within the school of Toegye. In regard to this point,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his argument with the school of Hanju represented by Lee Jin-Sang. This article mostly deals with this part, and thereupon meaning and evaluation about Lee Jong-Gi`s Neo-Confucian position can be drawn naturally. First of all, if we look into the theory of li[principle]-ki[material force], both sides basically took the position of the theory of Juli[主理論] which was originated by Chu Hsi and Lee Hwang. However, if we take one step further, we can see that they revealed some differences in many issues. For example, while the school of Hanju(Lee Jin-Sang and his disciples like Heo Yu, Yun Ju-Ha, Kwak Jong-Seok) tried to emphasize the distinction between li and ki by way of revealing more the aspect of Juli, Lee Jong-Gi tried to emphasize the harmony and coexistence of li and ki. In regard to the theory of human mind and nature, the school of Hanju, by advocating the theory that human mind is li[心卽理說], tookdifferent stance against Lee Jong-Gi who held fast to Lee Hwang`s theory of human mind as the integration of li-ki[心合理氣說]. Yet, the difference of both positions is at the same time a kind of structural problem that cannot be dissolved easily. It is due, first, to the disparity discovered from the theory itself of Neo-Confucian scholars such as Chu Hsi, second, to the fact that there still remains a problem that among various immanent implications of a scholar which aspect is to be considered most importantly. At this point, we need to add some evaluation in regard to Lee Jong-Gi`s Neo-Confucian position. Basically he got his root of Neo-Confucian understanding from Lee Hwang`s theory of co-arousal of li-ki[理氣互發說] and theory of human mind as the integration of li-ki. Therefore, he was skeptical to the Neo-Confucian position that had excessive emphasis on the arousal of li[理發] and the arousal of ki. This kind of position as well as the critique of the theory of Juki[主氣論] of the school of Giho has a much greater deal of weight, but in the meanwhile it is related to self-reflective attitude within the school of Toegye against the tendency to interpret everything mostly with regard to li. This tendency had been developed as the theory of Juli of the school of Toegye had been handed down to later generations. From this aspect, we can see that while the school of Hanju led by Lee Jin-Sang had taken over Toegye Studies form the idealistic position centered on idea based on the theory that li is superior, Lee Jong-Gi can be called `a realistic successor of Toegye Studies` who adhered to the position to recover the equilibrium of thought by way of moving the school of Toegye`s traditional Neo-Confucian thought into more realistic position after paying more attention relatively to the ontological location of ki.

      • KCI등재

        晩求 李種杞의 性理思想

        임종진(Lim Jong-Jin) 대한철학회 2004 哲學硏究 Vol.89 No.-

        만구 이종기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19세기 말 영남의 퇴계학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학문적 업적은 생각 이상으로 높이 평가될 여지가 많다. 이종기의 학문 세계는 이기론과 심성론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황의 성리학을 충실하게 계승하려는 입장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황의 주리론적 입장을 따르고 있지만 지나치게 리와 기만을 중요시한 '主理(주리)', '主氣(주기)' 양쪽의 이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물론 주기론에 대한 비판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차츰 리만을 중요시 하여 리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퇴계학파 내의 주리론적 경화 현상에 대한 주리론 내부의 자기반성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당시의 대표적인 영남의 유학자들과 긴밀한 학술적 교류가 있었으며, 특히 한주학파와의 논변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껏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보면 퇴계학파 내의 유력한 분파에 직접 속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복추·이진상·김흥락 등 기라성 같은 한말 퇴계학파 후예들과 곽종석·이승희 등 그 다음 세대에 가려진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지리적으로 볼 때 현재의 고령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이진상의 한주학파에 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퇴계사상의 본래적 입장에 충실하면서 이진상 및 그의 문인들과 치열한 성리학적 논변을 전개하였다. 이종기와 이진상 및 그의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그 당시 퇴계학파 내에서 한주학파와 비한주학파 사이의 성리학적 이해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주로 이종기 자신의 성리학적 관점이 간결하게 담겨있는 그의 글을 통해서 그의 성리사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종기는 대산 이상정 이전의 보수적인 퇴계사상의 수용을 기본으로 해서 율곡학파(기호학파)의 주기론적 경향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퇴계학파 내에서도 지나치게 리 중심의 경향에 치우친 것으로 보이는 이진상 계열의 성리학적 견해를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서 이종기는 주자학-퇴계학 계열로 이어지는 이른바 '性理學的 正脈(성리학적 정맥)'의 본 모습을 다시 한번 환기시킴으로써, ‘퇴계학의 보수적 계승자'의 위치에서 당시 한말 영남 유학계의 사상적 중심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at understanding Mangu Lee Jong-Gi(1837-1902's Neo- Confucian thought. Lee Jong-Gi was a scholar of the school of Toegye in Youngnam area in the 19th century. Lee Jong-Gi's Neo-Confucian thought is a system of his interpretations of Chu Hsi's and especially Toegye Lee Hwang's Neo-Confucian thought. His thought can be divided into the theory of li-ch'i and, the theory of human mind and nature. It is expressed well in his letters addressed to Lee Jin-Sang(1818-1886), and Kwak Jong-Suk(1847-1916), and in his miscellaneous writings. Toegye's advocacy of the mutual movement of li and ch'i refers to no other than the manifestation of li and movement of ch'i. In contrast, Yulgok Lee I's view of li and ch'i is different widely from that of Toegye. Yulgok's view of li and ch'i bases itself on the view that only ch'i moves by its own energy being governed by li. Lee Jong-Gi agrees with Toegye's viewpoints and could not but criticize Yulgok's theory by way of clarifying Chu Hsi's and Toegye's theory of li-ch'i. And Lee Jong-Gi criticizes Lee Jin-Sang, a prominent Neo-Confucian scholar of the his period. Lee Jin-Sang asserts that mind is li. This had been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issues in the academic circle of Neo-Confucianism in Youngnam area in the 19th century. Lee Jong-Gi emphasizes the orthodox views of the school of Toegye through the criticism of two prominent Neo-Confucian scholars of the Chosun period, Lee I and Lee Jin-Sang.

      • KCI등재

        한주학파의 성리학에 대한 심재 조긍섭의 비판

        임종진(Lim, Jong-Jin)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8 한국학논집 Vol.0 No.70

        심재 조긍섭은 조선이 멸망하며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에 살았던 유학자였다. 시간적 요소와 지리적 배경을 결합시킬 때 조긍섭과 가장 쉽게 연결될 수 있는 학맥은 퇴계학파 중에서도 낙동강 중류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주학파이다. 그러나 한주학파와 조긍섭의 관계는 적어도 성리학이라는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동안 팽팽한 대립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학문적으로 볼 때 조긍섭은 자신의 사상적 계보를 한주학파에 비판적인, 이른바 ‘퇴계학파의 적통'이라 일컫는 학봉 김성일 계통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주 이진상과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성리학적 주장이 주희와 이황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조긍섭은 이러한 입장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긍섭은 이와 관련해서 한주학파의 여러 인물들과 이러한 성리학적 문제를 두고 토론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진상의 수제자라고 볼 수 있는 면우 곽종석과는 여러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러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다. 특히 조긍섭은 지나치게 리의 역할을 확대하고 상대적으로 기를 배제하려는 곽종석의 성리학적 입장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조긍섭은 이진상이 자신의 성리학적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여러 경전에서 성리학의 요지를 뽑아 편찬한 『이학종요』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 책은 이진상 본인뿐만 아니라 이진상의 제자들도 거듭하여 교정하는 등 한주파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시한 저술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적어도 성리학적 입장과 관련해서는 한주학파와 조긍섭이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관계하고 말할 수 있다. Cho, Geung-Seop(Simjae) was a Confucian scholar who had lived at the time when Choson Dynasty ceased to existence, and fell into the colony of Japan. From the standpoint of his mixed temporal and geographical surroundings, among the Toegye Schools his scholarly line could easily be regarded as belonging to the Hanju School which had been formed centered around the middle reaches of Nakdong River However, at least from the aspect of Neo-Confucian thought, the relationship of Cho, Geung-Seop and the Hanju School was not friendly. Rather, for his whole life he had maintained somewhat tense relationship with the school. It is due to the fact that academically Cho, Geung-Seop based his scholarly line on the Kim, Seong-Il(Hakbong) school which, being called as ‘the orthodox school of the Toegye School', took critical stance against the Hanju School. Yi, Jin-Sang(Hanju) and his academic descendants asserted that their Neo-Confucian studies were based on the thoughts of Chu, Hsi and Yi, Hwang, ut Cho, Geung-Seop could not accept their assertions. Thus, in regard to this kind of Neo-Confucian issue he had debated with many scholars from the Hanju School. Especially, he was in many correspondence with Gwak, Jong-Seok(Myunwoo), one of the best disciples of Yi, Jin-Sang debating on the issue. More specifically, he strongly criticized on the Neo-Confucian interpretation of Gwak, Jong-Seok trying to expand the role of Li, and relatively exclude the role of Qi. Also, Cho, Geung-Seop severely criticized Lihakjongyo(理學綜要) which was edited selectively from various Confucian books in support of Yi, Jin-Sang's own Confucian assertions. It was treated as a very precious book for, and by the Hanju School to the extent that Yi, Jin-Sang himself, and his disciples had revised it repeatedly. Putting these various aspects together, at least in regard to the Neo-Confucian academic stance, we can conclude that Hanju School and Cho, Geung-Seop could not but maintain an irreconcilable relationship to each other.

      • First Record of Subfamily Lycorininae (Hymenoptera : Ichneumonidae) from Korea

        Jin-Kyung,Choi,Jong-Chul,Jeong,Jin-Yeol,Cha,Jong-Wook,Lee 한국응용곤충학회 2013 한국응용곤충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13 No.04

        The subfamily Lycorininae Cushman & Rohwer, 1920 is a small group with a single genus, Lycorina. This subfamily can be easily distinguished from other ichneumonids subfamilies by the following characters: impreesed triangular pattern on the metasomal tergites, tergite 2-4 with convex central triangular area; hypopygium of female large and triangular in lateral view, centrally membranous and with small median apical notch. Genus Lycorina is a cosmopolitan genus with 30 described species (Yu et al., 2012). Also, from this genus have been reported five species in Eastern Palaearctic region, six species from China, two species from Japan and one species for the first time from Korea. The focal host range appears to be weakly concealed larva of micro-lepidopteran species. Some species have been reared from Crambidae in leaf-rolls or webs (Doerksen & Neunzig, 1974; Finlayson, 1976) and Tortricidae (Chao, 1980; Shaw, 2004). In this study we report one newly recorded to Korea species, Lycorina triangulifera Holmgren, 1859 and provide the diagnosis and photographs.

      • Taxonomy of the Genus Pristomerus (Ichneumonidae: Cremastinae) with Descriptions of Three New Species from Korea

        Jin-Kyung,Choi,Jong-Chul,Jeong,Jin-Yeol,Cha,Jong-Wook,Lee 한국응용곤충학회 2013 한국응용곤충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13 No.04

        The genus Pristomerus Curtis, 1836 is one of among 36 genera belonging to the subfamily Cremastinae. This genus is a large genus with 100 worldwide species distributed (Yu et al., 2012). Also, from this genus have been reported 15 species in Eastern Palaearctic, eight species from China, seven species from Japan and three species from Korea. Subfamily Cremastinae is known as koinobiont endoparasitoids of solitary larval-pupa mostly Lepidoptera and Coleoptera (Fitton & Gauld 1980). Spectrum of host species of Pristomerus include various small Lepidoptera living in tunnels, leaf rolls, buds and other hidden areas (Rousse et al., 2011). Genus Pristomerus can be easily distinguished from other genera by the following characters: hind femur with ventral tooth; deep gastrocoelus on tergite II. Three species from this genus, Pristomerus chinensis Ashmead, 1906, P. erythrothoracis Uchida, 1933, and P. vulnerator (Panzer, 1799), have been reported from Korea previously. In this study we report three newly recorded species, Pristomerus rufiabdomenalis Uchida, 1928, P. parilis Kusigemati, 1984, P. kendarensis Kusigemati, 1984, and described three new species. Here we provide the descriptions and photographs of six species of genus Pristomerus, and species key.

      • SCOPUSKCI등재

        한국 민간약 「진해초잎」의 생약학적 연구

        박종희,이준도,이유진,오종영 한국생약학회 2004 생약학회지 Vol.35 No.3

        The Korean folk medicine "Jin Hae Cho Ip" has been used as a remedy for neuralgia and as an invigorating drug after a childbirth, etc in Korea. With regard to the botanical origin of "Jin Hae Cho Ip", several species of Potentilla (Rosaceae) has been refered, but no pharmacognostical study has yet been performed in this regard. To clarify the botanical origin of the "Jin Hae Cho Ip", the morphological and anatomical characteristics of the leaflets and petioles of Potentilla and Sibbaldia species growing in Korea, such as P. chinensis, P. cryptotaeniae, P. dickinsii, P. discolor, P. fragarioides var. major, P..frevniana, P. kleiniana, P. rnatsumurae, P. paradoxa, and S. procumbens, were compared.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Jin Hae Cho Ip" was composed of the leaves of P. chinensis and P. discolor.

      • FC 1-1 : Immunomodulatory effects of Ul-Jin thermomineral water on Imiquimod-induced psoriasis like murine model

        ( Eun Jong Song ), ( Sae Mi Park ), ( Hye Rim Ko ), ( Dae Hong Kim ), ( Kum Hee Jung ), ( Young Bok Lee ), ( Dong Soo Yu ), ( Jin Wou Kim ) 대한피부과학회 2013 대한피부과학회 학술발표대회집 Vol.65 No.2

        Background: Balneotherapy is considered to have therapeutic properties for psoriasis, however the immunologic mechanism of balenotherapy is not established. Objectives: A imiquimod-induced psoriasis model was used for evaluating the therapeutic effects of balneotherapy with Ul-Jin (Baek-Am) thermomineral water. Methods: Clinical improvements were evaluated using modified SCORAD index. Confocal microscopic imaging analysis was performed for lesional expression of IL-17, CD-4, Foxp3, and TNF-a. Lesional mRNA expression of IL-17, IL-15, IL-6, and Foxp3 was evaluated by real-time reverse transcriptase polymerase chain reaction method. Histologic evaluation was also performed. Results: balneotherapy with Ul-Jin (Baek-Am) thermomineral water showed immunomodulatory effects in psoriasis-like murine model by decreasing inflammatory cytokines and increasing lesional regulatory helper T cells. Conclusion: These results suggest that balneotherapy can be an effective and safe treatment option in psoriasis.

      • KCI등재

        기획논문: 경상우도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학단(學團)을 중심으로 :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삶과 사상적 특징

        임종진 ( Jong Jin L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1 남명학연구 Vol.31 No.-

        晩求 李種杞는 19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영남의 퇴계학파에 속하는 유학자이다. 그는 당시 영남의 여러 대표적인 유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유학계를 이끌던 비중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을 바탕으로 평가한다면, 그는 앞으로도 좀 더 활발하게 연구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이종기라는 인물의 삶과 그의 學問淵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 당시 학술 교류의 한 양상을 일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상적 측면과 관련해서도 그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이종기의 사상적 좌표를 재확인하고자 한다. 이종기가 관심을 둔 유학 분야는 性理思想과 禮學思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분야에 대한 이종기의 사상적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으로 이종기의 異端觀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불교와 서학에 대한 이종기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종기는 성리사상에서는 무엇보다도 리와 기의 조화와 공존을 강조하는 균형 잡힌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리와 기에 치우친 견해들을 비판하였다. 예학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중시하는 유연한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유연성은 이단관에서도 반영되어, 조선사회에 현실적으로 위협이 되는 서학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배척하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그 위험도가 검증된 불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19세기말의 격동기 속에서 조선의 전형적인 유교 지식인이 추구한 삶과 생각의 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Mangu Lee Jong-gi(1837-1902) was a Confucian scholar who had played an active role in Toegye School of Yongnam area in the nineteenth century. He was a man of importance keeping company with various representative Confucian scholars of Yongnam, but, compared with others, had not been well known. However, based on the writings he had left, we cannot but evaluate him as a valuable figure on whom more active studies should be made. This article, first of all, is to concentrate on his personal life, and to trace his academic origin. By way of this, we can figure out some of the phase of academic exchanges of those days. Also, we can re-conform the inclination of Lee, Jong-gi`s thought by way of teasing out the characteristics of his thought. The academic fields of his interest were in Neo-Confucian thought and in the Studies of Rites. Therefore, we, first, are planning to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his thought. Then, for the clarification of his thought on heterodoxy, his standpoints on Buddhism and the Western Studies will be examined. In his Neo-Confucian thought, Lee, Jong-gi, most of all, maintained a flexible perspective attaching importance to a balanced attitude that emphasized the harmony of li and ki. Based on this, he criticized the thoughts leaning exclusively to li or ki. In regard to the Studies of Rites, he suggested a flexible perspective making much importance of reality. This sort of flexibility was also reflected in his thought on heterodoxy, so that he held fast to his own exclusive attitude toward the Western Studies which was noting but a real threat to the Choson society. However, he was not hostile to Buddhism which had been verified not dangerous. Thus, in this study, we can grasp the life and the stream of thought of a typical Confucian scholar of Choson society in the turbulent period of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 KCI우수등재

        1930년대 『불교』지 문학장의 구성과 문학적 실현 양상 - 편집인과 직원·기자를 중심으로 -

        김종진(Kim Jong Jin) 불교학연구회 2016 불교학연구 Vol.4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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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불교 잡지는 1912년에 간행된 『조선불교월보』를 기점으로 2~30종정도가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잡지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오랫동안 간행된 잡지는 단연 『불교』(전108호, 1924.7~1933.7)이다. 『불교』는 다양한 사상적 담론 외에 역사적 문화적 문학적 내용이 호마다 편제되어 있어 종합지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1920년대 『불교』지에 구현된 문학장에 대한 선행 고찰에 이어 본고에서는 1930년대의 문학장 구성의 주체와 그 문학적 실현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구 대상은 대표 편집인과 소속 직원 및 기자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행정적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시기 문학장 구축의 주체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실제로도 문학 작품 창작을 통해 문학장을 구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권상로에 이어 편집인으로 등장한 한용운이 새로운 편제를 통해 신진문사들을 다수 등장시킨 경과를 살펴보았고, 권두언에 새로운 산문시를 게재함으로써 문학지의 성격을 가미한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구축한 [불교시단]을 통해 이 시대 새로 약진하는 강원, 전문학교 출신의 문학청년 40여 명이 시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된다. 만해는 이들 신진 문사들, 불교문학청년들을 지면으로 이끌어내는데 좌장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김태흡, 도진호, 김일엽, 안진호 등 불교사의 전 현직 직원 및 기자(촉탁기자 포함)들은 시, 시조, 기행문, 수필, 희곡, 설화, 소설 등 다양한 양식을 활용하여 불교문학장을 확장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들의 글은 1920년 말의 일반문인의 문학작품을 대체하면서 종교성과 시대성을 강화하는 1930년대 초의 경향성을 보여준다. With its starting point Joseon Buddhism Monthly Journal published in 1912, about 20~30 modern Buddhist journals have been created and known. Among them, the long-time published journal with the most stable foundation would be Bulgyo (Buddhism), published from July 1924 to July 1933, with a total 108 volumes. Buddhism was composed of historic, cultural, and literary contents other than ideological discourse, showing the character of a general journal. Following exploration of the previous studies on the literature field of Buddhism in the 1920's, this study investigated the subject and power of a literature field in the 1930's. The main targets were representative editors, associated personnel and reporters. They did not only conduct administrational works but acted as the subjects to form a literature field as well. In fact, they played an initiative role in embodying a literature field through creating literary works in reality. This study explores the new section created by Han Yong-un (Manhae), the editor who put his own poem in the beginning of the journal, adding a character of literature journal, and also the literary men he introduced through the section. During this process, about 40 new poets from monastic schools or professional schools made their debut through the section Buddhist Poems . Han Yong-un was the center of this change. In addition, former and present reporters including Kim Tae-heup, Doh Jin-ho, Kim Il-yeop, Ahn Jin-ho, etc., were active in various types of literary fields such as poetry, travelogues, essays, plays, novels and legendary stories, and they expanded the horizons of Buddhist literature. At the end of the 1920's, their works substituted those of general writers and heralded the tendency of reinforcing religiosity and contemporaneity in literature in the 1930's

      • 지능형 정보검색을 위한 객체 기반 시소러스

        최재훈(Jae Hun Choi), 박종진(Jong Jin Park), 한종진(Jong Jin Han), 양재동(Jae Dong Yang) 한국정보과학회 1995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2 No.2A

        본 논문은 전통적인 시소리스에 객체지향 패러다임(Object-Oriented Paradigm: OOP)을 적용함으로써 시소러스의 구축 및 검색을 위한 새로운 의미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객체 기반 시소러스(object-based thesaurus)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 객체 기반 시소러스는 개념 객체(concept object), 인스턴스 객체(instance object) 그리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적 관계들로 구성되는데, 기존의 시소러스 내에 주로 표현되었던 상 · 하의어(Broader Term: BT ·Narrower Term: NT)관계를 개념 객체들 사이의 일반화 계층으로 해석하고, 관련어(Related Term: RT)관계를 집성화(aggregation)나 연관화(association)관계로 분류한다. 이때 집성화 · 연관화 관계에 속하는 객체들은 특정한 객체를 표현하기 위한 속성(attribute)들로 이용되고, 일반화 계층을 구성하는 부객체(sub-object)들에게 상속된다. 또한 객체 기반 시소리스 내의 개념 객체들은 많은 인스턴스 객체들을 포함하게 되는데, 여기기서 OOP의 성질에 의하여 인스턴스 객체에 적절한 개념 객체와의 관계성만을 명시함으로써 쉽게 관리될 수 있고, 이러한 장점은 시소리스의 자동 구축에 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객체 기반 시소러스에 포함된 OOP의 풍부한 시멘틱은 사용자의 질의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능적인 정보 검색을 위해 인지적인 관점에서 질의의 재형성을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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