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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60년대 전쟁과 젠더 -전후 신세대 작가 곽학송 다시 읽기

          문혜윤 ( Hye Yoon Moon ) 우리어문학회 2012 우리어문연구 Vol.44 No.-

          곽학송은 몇 편의 전후소설로만 기억되는 작가였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는 전쟁에 대한 진지한 천착보다는 남녀 간의 애욕의 문제가 주로 다루어졌다. 정비석 『자유부인』 논쟁이나 박인수 사건으로 대표되듯이, 1950~60년대에는 댄스, 성, 정조, 연애, 아프레게르, 매춘 등 성 풍속의 문란이 문화적 활기와 함께 나타났고, 선정적인 남녀 문제로 대중을 자극하는 소설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그간 연보에서 누락되었던 곽학송의 수많은 대중소설들은 이러한 문화적 요인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본격·순수 소설을 썼던 곽학송이 대중·통속 소설로 외도를 했었던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곽학송은 초기의 전후소설에서부터 전쟁(전후)과 남녀의 문제를 연결 지어 사고하고 있었다. 곽학송의 소설에는 ``남성의 지배-여성의 순종``이라는, 남녀 사이에 개재하는 젠더의 역학 관계가 등장한다. 그 양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형성하는 삼각관계가 빈번히 드러나는데, 이 삼각관계는 두 남자가 힘, 용기, 진취성 등의 남성성을 겨루고 과시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된다. 전쟁터나 전후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와 상관없이 세 남녀는 연애, 성관계, 불륜 등을 벌인다. 두 남자 사이에 낀 여성은 그들의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정적이고 수동적인 인물이다. 이때 전쟁 혹은 전후라는 배경은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남자들에게 요구되어 온 남성성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치이다. 둘째, 손찌검, 강간, 근친상간과 같은 폭력적 성이 자주 등장한다.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 중의 하나가 가장 사적인 영역인 성적인 지점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다. 여성은 부당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것의 비정상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신체 억압은 남성다움의 지속 생산을 위한 사회적인 장치였기 때문이다. 셋째, 여성의 순결 문제가 ``순정물``, ``현대물`` 등의 연애소설에서는 물론, 이와는 판이한 성격의 추리소설에서도 사건의 시작, 전개, 해결의 중요한 틀이 된다. 부권(父權)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여성의 순결과 지조는 관리의 대상이었다. 곽학송(혹은 동시대 사람들)이 드러냈던 순결 집착은 사회 구조 유지와 관련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곽학송 소설에 드러나는 남녀 문제의 근간에는 어떤 식으로든 전쟁의 영향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곽학송은 ``전쟁과 젠더``의 문제-전쟁이라는 구조가 재생산하는 젠더의 역할, 전쟁이 지니는 폭력성과 상동적인 사회 구조의 유지 등-를 사고했던 작가라 할 수 있다. 남성 우위의 사회 구조에 대해 작가의 비판적 인식은 드러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유약하거나 우유부단한 인물들을 통해 흔들리는 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곽학송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탐구보다는 전쟁의 본질적 속성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젠더 배치라는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Gwak Hak-song used to be remembered for his few post-war novels, usually addressing the matters of love and desire between man and woman in his stories rather than making a serious inquiry into war. The 1950s an 1960s witnessed the emergence of disorder in sex customs including dance, sex, chastity, dating, Apres Guerre, and prostitution along with cultural vitality. Good examples include the controversy over Madam Freedom by Jeong Bi-seok and the Park In-su event. Novels stimulating the public with lascivious man and woman issues also gained popularity. Many of Gwak`s popular novels, which were omitted from the records of his career, reflect those cultural factors. However, it does not mean that he went astray with popular novels after writing serious and pure novels. In his early post-war novels, he looked at the war(post-war) in relation to man and woman issues. His novels present gender-based dynamic relations between man and woman in the form of "man`s dominance-woman`s obedience." They take the three following patterns: first, a love triangle among two men and a woman makes frequent appearances in his novels. Such a love triangle begins with two men vying against each other in masculinity such as power, courage, and progressive spirit. In the background of such reality as battlefield and post-war situation, two men and a woman engage in dating, sexual relationships, and adulterous relationships regardless of reality. The woman between the two men is a static, passive character having no influence on their relationships. Here, the war or post-war background serves as a device to make masculinity, which has been required from man socially, culturally, and historically, even more apparent. Secondly, his novels include many cases of violent sex such as hitting, rape, and incest. Violence exercised at sexual points, the most private place, is one of the devices to maintain a patriarchal society. Women are subject to unjust violence but do not raise a question about its abnormal nature because the physical oppression of women is a social device to continue the production of what is masculine. Finally, the issue of female chastity itself becomes an important framework for the beginning, development, and resolution of an event not only in love stories such as "boy-meets-girl stories" and "modern stories" but also in detective novels of a very different nature. In a society where paternal authority was emphasized, female chastity and fidelity used to be the objects of management. The obsession with chastity of Gwak(and his contemporaries) had something to do with the maintenance of social structure. Gwak is considered as a writer who dealt with the issues of "war and gender"-such as the roles of gender reproduced by the structure of war and the maintenance of social structure equal to the violence of war- in that there is the influence of war at the root of man and woman issues in any ways in his novels. Even though he showed no criticism of male-dominated social structure, he depicted shaking consciousness with psychologically weak or indecisive characters. Gwak invested more interest in the gender arrangement between man and woman through the essential attributes of war rather than exploring the unique situations of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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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기 박태원의 문장론

          문혜윤(Moon, Hye-Yoon) 한국현대소설학회 2020 현대소설연구 Vol.0 No.77

          박태원의 문장론은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에 산재되었지만, 해방기에 출간된 『중등문범』(1946), 『중등작문』(1948)을 함께 살펴야 전체적인 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 그간 박태원의 문장론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진 바 없으나,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김기림의 『문장론신강』 사이를 잇는 해방기 대표 문장론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박태원의 문장론에는 ‘표준’이 강조되었다. 조선어로 글을 쓰는 행위자체를 중시하였으며, 당시 형성 중이던 ‘표준’과 ‘규범’을 벗어난 것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한자어, 외래어, 번역어 등을 통해 타자성을 드러내는 실험을 계속하였다. 표현 범위의 확장을 통해 조선어 문장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구상을 드러낸 것이다. 즉 그 당시 박태원은 ‘표현=묘사=기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이후 박태원이 간행한 두 권의 『중등문범』, 『중등작문』은 타자의 흔적을 억압하고서 성립된 ‘국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 두 권의 단행본 속에는 ‘어떤 국어’를 수립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이미 수립된 국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두드러진다. 해방기에는 국어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국어의 성립으로 보지 않았으며, 문장 쓰기가 작법 혹은 수사(修辭) 등의 기술적 문제로 축소되었다. ‘국어’와 ‘문장’이 구분되는 분기점을 보여준다. Park Tae-won’s sentence theory was scatter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ut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the whole aspect by looking at Model Sentences for Secondary School(1946) and Composition for Secondary School(1948) published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The study on Park Tae-won’s sentence theory has not been properly conducted, but it needs to be dealt with as the representative sentence theory of the liberation period between Lee Tae-June’s Mun-Jang-Kang-Hwa[文章講話] and Kim Ki-Lim’s Mun-Jang-Non-Shin-Kang[文章論新講].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Park Tae-won’s sentence theory emphasized “standard”. The act of writing in Korean was emphasized, and those outside the “standard” and “norm” that was being formed at the time were subject to criticism. Also, experiments revealing otherness through Chinese, foreign, and translated languages were continued. Through the expansion of the range of expression, the idea to raise the level of Korean sentence was revealed. In other words, Park Tae-won had the perception of “expression = description = technique”. The two volumes of Model Sentences for Secondary School and Composition for Secondary School published by Park Tae-won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were based on the “Korean” established by suppressing the traces of others. In these two volumes, the question of how to use the “already established Korean language” is more pronounced than the question of “what Korean” to establish.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the act of writing in Korean was not considered as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language, and sentence writing was reduced to technical problems such as rhetoric. It shows the branching point where “Korean language” and “Sentence” is sepa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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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식민지 국어 교과서의 글쓰기 -『보통학교 학도용 조선어독본』(1911)을 중심으로-

          문혜윤 ( Hye Yoon Moon ) 한민족어문학회 2015 韓民族語文學 Vol.0 No.71

          이 글은 식민지 시기 최초의 국정 국어(조선어) 교과서 『보통학교 학도용 조선어독본』(1911)을 다룬다. 총독부 편찬의 첫 국어(조선어) 독본으로서, 통감 정치 시기의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독본』(1907)을 저본으로 삼았고, 이후 『보통학교 조선어급한문독본』(1913)과 『보통학교 조선어독본』(1923,1933)에 영향을 준 교과서이다. ‘국어 교과서’는 ‘국어’라는 말이 가지는 복잡한 함의와 ‘교과서’라는 체재가 표방하는 의미가 얽혀 있으므로 다방면의 해석을 부여해야 하는 텍스트이다. 『보통학교 학도용 조선어독본』은 식민지로 전락한 직후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국어’에서 ‘조선어’로의 표제 변화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국가어(민족어)를 가르치는 교육적 전달의 형태에 대해 함께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국어 교과서는 ‘국어’라는 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를 파악하여야 하며 이는 교과서 속의 단원 구성 및 제재기술을 살핌으로써 어느 정도의 의미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교과서’가 가지는 교육적인 목적은 단원의 배치나 기술의 방식 등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 이에 교과서의 ‘글쓰기’라는 개념을 통해 대상에 새롭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보통학교 학도용 조선어독본』은 권1 누락, 권2 26과, 권3 22과, 권4 19과, 권5 19과, 권6 21과, 권7 20과, 권8 19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텍스트에 드러나는 ‘글쓰기’의 특징은 첫째, 단원들 간의 연결과 반복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인접해 있는 단원에서의 연결과 반복뿐 아니라, 동일 제재가 다른 권 사이에서도 연결되고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과 반복은 내용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제시되는 경우보다, 한 인간을 둘러싼 주위환경에 대한 구성이나 다른 장르를 학습하는 식으로 일탈하기도 하는 느슨한 방식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이유로 연결되는 과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어서, 이것들이 명백하지 않은 상태의 연결을 지지하고 보강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내용을 통한 근대인의 구성뿐 아니라 구성 요소들의 반복을 통한 근대인(주체)를 구성해 내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텍스트에 드러나는 ‘글쓰기’의 두 번째 특징은, 지도(地圖)의 축적처럼 확대하고 축소하는 시선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원의 내용 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지도(地圖)처럼 모든 것을 아우르고 조망하는 시선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지만, 단원들간의 관계(소재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서 다른 단원에서의 복잡한 설명으로 전이, 같은 제재의 한 측면에 대한 설명에서 다른 측면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 방식)를 통해서도 파악할수 있다. 이러한 확장하거나 축소하는 시선은 서로 다른 영역의 것을 이어 붙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즉 부모와 자식의 친밀함이 군민(혹은 학생)과 군수(혹은 선생님)의 친밀함으로 전환되거나 국가나 천황에 대한 친밀함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텍스트에 드러나는 ‘글쓰기’의 세 번째 특징은, 동일한 제재를 다루는 다른 교과서 (특히,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독본』)와의 비교를 통해 명백해지는데, 주장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문장이 슬쩍 사라짐으로써 설명하고 해설하는 방식의 글이 전면화된다는 점이다. 설명하고 해설하는 방식은 일견 글쓴이(혹은 편찬자)의 중립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당대 신문과 잡지에서 범람하였던 논설과 비평이 가진 의미와 비교하였을 때, 중립적이라 말할 수는 없는 점이 존재한다. 교과서에 높은 비중으로 나타나는 설명이라는 문종(장르)은 권위를 설명하는 쪽이 가지게 함으로써 통제하고 억압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Basic Reader of Joseon Language for Primary School Students(1911), the first government-designated Korean(Joseon language) textbook during the colonial days. Being the first basic reader of Korean publish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it was based on the original script of Basic Reader of Korean for Primary School Students(1907) published ring the period of resident-general politics and influenced Basic Reader of Chinese Characters at the Level of Joseon Language for Primary School(1913) and Basic Reader of Joseon Language for Primary School(1923 and 1933). “Korean textbooks” demand interpretations across many different areas since the complex implications of “Korean” are intermingled with the meanings of “textbook” system. Reflecting the situations right after Joseon fell into the state of colony, Basic Reader of Joseon Language for Primary School Students asks for the examination of format of educational delivery to teach the state language(ethnic language) as it is felt in the change of title from “Korean” to “Joseon language.” Korean textbooks need an inquiry into the ideologies that “Korean” intends to deliver, and those ideologies can be signified to certain degree by looking into the unit organizations and material descriptions in the textbooks. The educational goals of “textbooks,” however, can be found in the formal aspects of unit arrangement and description method. The present study thus decided to take a new approach to the subject through the concept of “writing” in textbooks. Basic Reader of Joseon Language for Primary School Students consists of Volume 1, which is missing, Volume 2 and 26 sections, Volume 3 and 22 sections, Volume 4 and 19 sections, Volume 5 and 19 sections, Volume 6 and 21 sections, Volume 7 and 20 sections, and Volume 8 and 19 sections. The characteristics of “writing” in the texts are as follows: first, connections and repetitions between units happen in high frequency. In addition to connections and repetitions between adjacent units, the same materials are connected and repeated between different books. Such connections and repetitions are, however, presented in a loose manner such as a deviation through the organization of environments surrounding an individual or the study of a different genre, more often than in a way of deepening the content. In spite of it, however, there are sections connected through a clear reason, and they get to support and reinforce the connections in an unclear state. The textbook uses a method of organizing modern individuals(subjects) by repeating the components as well as through content. The second characteristic of “writing” in the texts is the intervention of viewpoint to expand and reduce like the scale of map. It can be figured out through the viewpoint of embracing and viewing everything like a map that is directly displayed in the content of unit and also the relations between units(a transfer from a brief explanation about a material to a complex one in another unit and a connection from an explanation about an aspect of the same material to one about another aspect of its). Such a viewpoint of expanding or reducing makes it possible to put together elements of different areas. In other words, it creates a room for parent-child intimacy to be converted into people(student)-ruler(teacher) intimacy or for the intimacy to migrate to people-state or Japanese emperor intimacy. The third and final characteristic of “writing” in the texts becomes clear by comparing the textbook with other textbooks dealing with the same materials(especially Basic Reader of Korean for Primary School Students). As the sentences that make an argument or voice an opinion secretly disappear, the writings of explanations and commentaries are pushed forward. The ways explanations and commentaries are presented may seem to reveal the neutral attitudes of the author(or publisher) at a glance, but they cannot be considered as neutral when compared with the meanings of editorials and criticisms that flooded newspapers and magazines those days. The style(genre) of writing called explanations, which record a high percentage in the textbook, is offered to the side that explains its authority, thus working as the power to control and sup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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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에스페란토 문학

          문혜윤 ( Hye Yoon Moon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6 民族文化硏究 Vol.70 No.-

          이 논문은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명백한 하나의 현상이었던 에스페란토 문학의 현황과 그것이 추구했던 문학의 방향을 살폈다. 식민지 조선의 에스페란토 문학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 없는데, 이는 에스페란토가 ``외국어``가 아니라 ``국제 공통어``이기 때문에 국가 단위의 문학 분류 체계에 끼어들 자리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에스페란토 문학은 독자들이 접하는 언어를 기준으로 1) 에스페란토로 직접 제시되는 경우, 2) 한국어-에스페란토 번역이 함께 제시되는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에스페란토 문학은 번역 없이 에스페란토로만 소개되기도 하였다. 에스페란토 운동은 ``1국가 2언어``의 이상을 강조하였는데, 에스페란토 직접 제시는 그 이상을 실현하는 상징적 행위로 여겨졌다. 어느 나라의 문학이었을 그것들이 이미 한 차례 에스페란토로의 ``번역``을 거쳐 언어와 국적을 탈피하면서, 식민지 조선에는 ``세계문학``이라는 형태로 전해졌다. 에스페란토 직접 제시는 언어 횡단의 비대칭성(언어들 사이의 언어 역학적, 사상적, 정치적 비대칭성)을 뛰어넘도록 만들었다. 2) 한국 문학이 에스페란토로 번역되거나, 에스페란토 문학이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하나의 자연어를 다른 자연어로 번역하는 것은, 한 민족어의 ``판에 박은 사상과 표현``을 다른 민족어의 ``판에 박은 사상과 표현``으로 옮기는 것이다. ``고유의 관용 어법이 없``는 에스페란토는 ``보편적 감정과 사상``을 그릴 수 있는 언어로 여겨졌으나, 에스페란토로의 번역을 위해 뽑힌 한국 작품들은 한국 문학의 차원에서도 이미 조선의 풍토를 반영하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state of Esperanto literature, which was clearly a phenomenon in colonized Joseon in the 1920s and 1930s, and the literary directions it sought after. The vogue of Esperanto in colonial Joseon started with interest in literature written in the language. But there are no studies that shed light on the ways Esperanto literature was distributed and enjoyed in Korea probably because there is no suitable place for it in the literary classification system by the ethnic group and nation units since Esperanto is not a "foreign language" but a "common international language. Based on the languages that the readers were exposed to, there were three types of Esperanto literature distributed in Korea during the colonial days: 1) the type that was presented directly in Esperanto, 2) (with including the type that was presented both in Esperanto and Korean translation) the type that was presented in Korean translation. 1) Korean papers introduced Esperanto literature in full scale with no Korean translation. The Esperanto Movement highlighted the ideal of "one nation, two languages"(using the mother tongue in the nation and using Esperanto, the common language, in international exchanges). Introducing Esperanto literature in Korean papers with no Korean translation was considered as a symbolic act to fulfill the ideal. The literary works of other countries were "translated" in Esperanto and thus broke from the boundary of language and nationality, and they were delivered in the form of "world literature" to colonial Joseon. It was considered that Esperanto literature practiced the immediacy of the original work as it was, thus overcoming the translingual asymmetry or dynamic, ideological, and political asymmetry between the language to be translated and the one to translate. 2) There were cases in which Korean literature was translated in Esperanto or Esperanto literature in Korean. One of the special linguistic merits of Esperanto is "no unique idiomatic expressions." Translating a natural(ethnic) language in another natural(ethnic) language is moving from the "stereotyped ideas and expressions" of an ethnic group to those of another ethnic group. Esperanto, which is considered to reflect no such limitations of ethnic language, can depict universal emotions and ideas with no ethnic characteristics. The works of Korean literature selected to be translated in Esperanto, however, did not reflect the climate of Joseon already even in the dimension of Kore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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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독본류와 한글 문체의 형성

          문혜윤 ( Hye Yoon Moon ) 민족어문학회 2006 어문논집 Vol.- No.54

          일제 강점 이후 공적 교과서의 체재가 일본어 위주로 재편되면서, 민간 차원에서 조선어를 중심으로 편찬한 `독본(讀本)`류들이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독본`은 `모범`이 될 만하다고 여겨지는 글들이 묶여진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한글 문장의 형식을 전파하고 계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논문은, 1910~20년대를 대표하는 최남선의 『시문독본』과 1930년대를 대표하는 이윤재의 『문예독본』을 텍스트로 삼아, 그 시대에 드러났던 문체의 Individual scholars actively publicized Joseon language-centered `Dok-bon(讀本)`-type books while public textbooks were largely written in Japanese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ok-bon` played a role in spreading and correcting the form of Hangul s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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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논문 : 근대적 글쓰기의 형성과 글쓰기 장(場)의 재인식 ; 1930년대 수필의 장과 장르의 역학

          문혜윤 ( Hye Yoon Moon ) 반교어문학회 2010 泮橋語文硏究 Vol.0 No.29

          이 논문은 1930년대 수필의 장이 형성되었던 과정을 추적하면서 수필 장르를 둘러싼 역학관계를 고찰하였다. 수필에 대해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장르 관념은 1930년대에 생성되었으며, 이는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에서 수필을 싣는 양이 현저하게 늘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필의 장르적 속성 중 하나인 `무형식의 형식`은 1930년대의 매체들이 수필을 운용했던 방식, 즉 일정한 주제를 부여하여 글을 쓰게 하는 방식을 통해 한층 강화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편집자가 미리 제시한 주제로 글을 써야 했기에 주제에 적절히 들어맞는 글이 생산될 수밖에 없었는데, 동시에 여러 이유로 주제에 맞추지 못하는 글도 같은 코너에 실렸기 때문에, 낱낱의 글로 발표되었다면 `수필`로 포함되지 못했을 글도 `수필`에(`수필` 이라는 장르 안에) 포함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수필로 분류할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수필`이 된 것이 아니라, `수필이라는 분류 하에 발표되고 나서 `수필`이 된 것`이다. 연하고 물렁한 형식을 가진 수필은 `자기 고백`을 장르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는다. 하지만 주제가 미리 제시된다는 점에서 수필에 기술되는 `나`는 회상, 공상, 연상 등의 생각의 방식을 통해 가공된 것인 경우가 많았다. 현실(삶)과 밀접하게 소통하지 않는 표피적인 `나`를 그리는 수필이 다수 등장함으로써 깊은 사색보다는 얕은 감상에 치우친 글이 수필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듯 근대적 수필(근대적 수필의 특성)은 장르 내재적인 원인보다는 매체를 통한 외부적 원인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크다. 해외문학파가 수필의 에세이로의 격상을 주장했던 이면에 소설이 가지는 장르의 우위를 극복하고자 했던 집단의 헤게모니 쟁투가 개입되어 있고, 글쓴이를 성별에 따라 나눈 여류수필 기획이 자주 등장함으로써 여자 문인은 `센티멘털리즘`에 호소하는 수필을 쓰는 것이 적합하다는 젠더적 편견을 만들기도 하는 등 수필은 다양한 역학관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dynamic relationships surrounding the essay genre, tracing the process of its field being formed in the 1930s. The genre concept that is still applied to essays with effect today was formed in the 1930s, when the amounts of essays carried by newspapers and magazines exploded. One of the genre attributes of essays, "the form of no form" was further reinforced by the way of operating essays by the media or the way of giving a certain subject to write about in the 1930s. In most cases, they had to write on a subject suggested by the editor, which produced writings fit for the subject. And there were many writings published in the same section despite the fact that they were not fit for the given subject due to many different reasons. As a result, writings that would not have been categorized as "essays" if they had been published separately got to belong to the genre of "essays." In other words, they became "essays" not because "they fell into the category of essays" but because "they were first grouped as essays and then called essays." Taking a soft and tender form, essays find the important content of its genre in "self-confessions." However, "I" who was depicted in essays was often processed through such thinking methods as reflection, fantasy, and association since a subject was provided in advance. As many essays started to appear which described superficial "I" who did not conduct close communication with the reality(life), those which were inclined toward shallow sentiments rather than deep contemplation made the mainstream of essays. Thus early modern essays(or their characteristics) were in huge parts manipulated by external causes like the media rather than innate ones in the genre. Those literary figures who returned to the nation after studying abroad tried to raise the status of essays to overcome the genre superiority of novels. Along with that hegemony struggle among groups, female essay plans were often made which distinguished writers according to gender. As a result, a gender-based prejudice emerged that believed female writers would be better fit to write essays appealing to "sentimentalism." In short, essays were surrounded by such diverse dynamic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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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텍스트의 재발견과 한국 문학의 정전 형성 과정 : 해방기 국어 교재를 통해 본 국어와 정전의 형성

          문혜윤 ( Hye Yoon Moon ) 우리어문학회 2015 우리어문연구 Vol.51 No.-

          해방 직후 국가 건설에서 선결되어야 할 것은 국어의 수립이었다. 국어가 가진 상징성이 형성, 전파되는 과정에서 조선어학회의 역할은 막중했다. 한국어와 한국적 상황에 대한 방비가 없이 주둔하게 된 미군정 및 미군정 학무국담당자들은 조선어학회의 인사들을 준용하고 조선어학회 저작의 교과서를 채택하여 국가 안정화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국어, 교육, 교과서는 국민의 형성에 필수적인 것이어서, 해방 직후의 출판시장은 국정 및 검인정 교과서, 부교재 형태의 출판이 활황을 이루었다. 이 글은 조선어학회 저작의 『중등국어교본』과, 교재류의 출판을 담당했던 여러 출판사들 중 조선어학회와의 관련성이 짙은 정음사 부독본총서를 살핌으로써, 해방기 국어와 국어 정전의 형성 과정을 살폈다. 국어의 형성뿐 아니라 국어정전의 형성을 살필 수 있는 이유는, 그 당시 대부분의 교재류가 식민지 시기의 작품들을 선별하여 묶은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6년 간행된 정음사 부독본 시리즈는 총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 정인승의 『한글독본』, 2권 송시열의 『우암선생계녀서』, 3권 최영해의 『조선시조집』, 4권 김원표의 『조선속담집』, 5권 김병제의 『조선어철자편람』, 6권 박태원의 『중등문범』이다. 각 권 담당자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조선어학회와 관련을 맺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국정 『중등국어교본』과 비교하였을 때 드러나는 해방기 독본의 공통점은, 식민지 시대에 유통되었던 작품들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국어의 성립, 나아가 국가의 성립을 뒷받침하는 기제를 작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 첫 번째가 청춘, 청년, 봄 등을 소재 및 주제로 하는 작품들이 양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새 시대의 약동하는 힘과 의지, 새 시대 국민의 자세를 함양하도록 한다. 두 번째는 계절을 비롯하여 날씨나 자연에 관한 구성 및 기술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개별자로서의 경험보다는 추상적인 형태의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생활과 기억의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어 및 한글이라는 역사성 속에 교과서를 위치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정음사 부독본총서의 공통점 중 하나가 한문학 기억에 대한 소거인데,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표준어, 맞춤법 규정이나 작품의 본문에 제시된 (자주 틀리는 표기에 붙은) 방점 등이 이를 증명한다. 한글간소화파동을 전후로 하여 조선어학회의 영향력 쇠퇴가 드러나고, 정부 수립을 기점으로 강화된 반공 국시의 풍토는 다시 한 번 교과서 및 독본의 형태를 변화시키는데, 이에 대한 비교도 추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One of the first decisions to be made in the process of nation building right after Liberation was the establishment of Korean. The Joseon Language Society had tremendous roles to play in the process of the symbolism of Korean being formed and spread. Being stationed in the nation with no preparations for Korean and Korean situations, the American military government and those in charge of the matters from its education and management bureau appointed the members of the society and adopted the textbooks written by the society so that they would play their roles in the stabilization of the nation. As Korean, education, and textbooks were essential to the formation of people, the publication market of the nation right after Liberation was booming with the publication of government-designated, authorized, and auxiliary textbooks. This study examined the formation process of Korean and Korean canons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by looking into the Korean Textbook for Secondary School written by the Joseon Language Society and the supplementary reader series published by Jeongeumsa, which was closely related to the society among the several publishers responsible for textbook publication. The study was able to examine the formation of Korean canons as well as that of Korean because most of the textbooks those days were collections of selected works from the colonial period. Published in 1946, the supplementary reader series of Jeongeumsa consisted of total six volumes including Volume 1 of Hangul Reader by Jeong In-seung, Volume 2 of Wooam Seonsaeng Gyenyeoseo by Song Shi-yeol, Volume 3 of Collection of Joseon Shijos by Choi Yeong-hae, Volume 4 of Collection of Joseon Proverbs by Kim Won-pyo, Volume 5 of Handbook of Joseon Spelling by Kim Byeong-je, and Volume 6 of Model Sentences for Secondary School by Park Tae-won. Those who were in charge of each of the volumes had relations with the Joseon Language Society in any forms. Compared with the government-designated Korean Textbook for Secondary School that was published almost at the same time, the reader from the Liberation period had common features with it including being organized mainly with the works in circulation during the colonial days and activating the mechanism supporting the formation of Korean and further the nation. First, the works on the materials and topics of youth, young people, and spring held a high percentage in quantity. They proposed the lively power, determination and vision of the new era and helped to cultivate the attitude of people for the new era. Second, they revealed organization and description about weather and nature including the seasons, which reflects the intention to present experiences in abstract forms rather than individual experiences and reorganize them into a new life and memory. Finally, they exhibited the intention to place textbooks in the historicity of Korean and Hangul. One of the common features among the volumes of the supplementary reader series of Jeongeumsa was the elimination of memories of Chinese classics, which was demonstrated by the standard language and spelling rules at the end of each volume and the side dots(attached to the frequently miswritten marks) in the main body. The forms of readers(textbooks) underwent another round of changes as the Korean Language Society lost its influence around the Hangul simplification shock with the anti-communist climate reinforced by the establishment of government, which raises a need to compare them in future study.

        • KCI등재

          현대문학 : 한자/한자어의 조선문학적 존재 방식 -이태준을 중심으로

          문혜윤 ( Hye Yoon Moon ) 우리어문학회 2011 우리어문연구 Vol.40 No.-

          한자/한자어는 한국 문장의 형성 과정에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글쓰기의 주류적 형태가 한문체에서 국한문체로, 그리고 국문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자/한자어는 ``외부의 것``으로 인식되어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글 전용``의 승리로 귀착된 문체의 흐름에서 한자/한자어는 여전히 삭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면서 국문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범람하기도 했으나 그 순수성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외부의 것``인 한자/한자어는 한글 문장 안에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재편되면서 국문체의 형성에 관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문인들은 ``한글 전용``을 주장하면서도 그 주장을 국한문체의 글로 드러내곤 하였다. 이 글은 이러한 모순에 담긴 의미를 해명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태준의 경우를 살펴보았다. ``한글문학만이 조선문학``이라고 외쳤던 속문주의자 이태준은, 자신의 주장대로 소설에서는 한글 전용을 실현했지만 수필에서는 한자 노출을 허용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이태준은, 식민지 시대의 많은 문인들이 그러했듯이, ``한글로 글을 쓴다``는 표기 차원의 문제와 ``조선어로 글을 쓴다``는 어휘 차원의 문제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는 당시의 문장이 한글/조선어의 통사구조로 이행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한글 전용``에 대한 당위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한자어의 경우 한자를 노출하여 표기하는 모순이 나타났던 것은, ``한글 전용``이 한글/조선어식 통사구조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자/한자어의 배제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글 전용을 강조하면서도 한자어의 한자를 노출하는 것은, 한자어가 그것의 근원을 지우고 조선어화되어 가던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특히 이태준이 자신의 수필에서 한자의 노출을 허용했던 의식의 밑바탕에는, 한자/한자어를 심미적 차원으로 고양하여 조선어 문장 안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가 소설에서 주장한 한글 전용은 묘사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는 의성어와 의태어, 감각어 등의 형용사와 부사가 사실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과 맞닿는다. 반면 수필에서의 한자 노출 허용은 명사에 대한 강조였다. 그는 수필의 제목에 드러나는 대상, 만약 그것이 한자어라면 한자를 노출해서 표기되는 그 대상을 다루면서도 그것의 묘사에 집중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형상화해 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 대상의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통해 그것의 윤곽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한자의 시각성을 통해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통해 공백을 만들어 버리는 이중의 방식이다. 한자를 통해 형성되는 꽉 찬, 그러나 텅 빈 공간에는 시간성(역사)이 부여된다. 이것이 이태준이 한자를 통해 시도했던 (상대적으로 그 역사가 짧다고 인식됐던) 조선어를 심미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Chinese characters/words raised a variety of controversy in the formation process of Korean sentences. They were regarded as "something from outside" and thus excluded in the process in which the mainstream writing format moved from Chinese writing through Chinese and Korean writing to Korean writing. In spite of the writing format flow that ended in the victory of "exclusive use of Hangeul", however, Chinese characters/words remain alive. There were active discussions and discourse that emphasized the purity of Korean writing style based on the claim of "exclusive use of Hangeul", but the purity was something that was not possible from the beginning. "Something from outside," Chinese characters/words were reorganized in Hangeul sentences in a modern fashion and got involved in the formation of Korean writing format. During the Japanese rule, many literary persons would insist on "exclusive use of Hangeul" in the Chinese and Korean writing format. This study set out to explain the significance of such a contradiction by examining the case of Lee Tae-jun. Maintaining that "Only Hangeul literature is the true Joseon literature," Lee Tae-jun, a person who has the literal principle, only used Hangeul in his novels just like he maintained. However, he did allow for the appearance of Chinese characters in his essays. Like many literary persons during the colonial days, Lee identified the transcription matter of "writing in Hangeul" with the vocabulary matter of "writing in Joseon language," which suggests that sentences were made in the syntactic structure of Hangeu/Joseon language those days. A contradiction of using Chinese characters in Chinese words despite the absolute recognition of "exclusive use of Hangeul" surfaced, for "exclusive use of Hangeul" meant not the exclusion of Chinese characters/words but the formation of Hangeul/Joseon language syntactic structure. The Chinese characters of Chinese words were exposed in spite of emphasis on exclusive use of Hangeul, which reveals a "process" of Chinese words erasing the origin and becoming Joseon words. Especially Lee tried to raise Chinese characters/words to an aesthetic level and include them in Joseon sentences by allowing for Chinese characters in his essays. His insistence on exclusive use of Hangeul in his novels is connected to the matter of depiction, which lies in line with the idea that adjectives and adverbs such as onomatopoeic, mimetic, and sense words can bring reality. Meanwhile, his allowance for Chinese characters in his essays was his emphasis on nouns. He would deal with the subject revealed in his essay titles by exposing Chinese characters in its Chinese word but not focus on its description. He would create a contour for the subject through the objects around it instead of an embodiment through what is seen, heard, and felt. That serves double purposes of enriching meanings through the visibility of Chinese characters and creating an empty space through it. Temporality(history) is granted to the space that is both filled and empty through Chinese characters, which is the way Lee tried to raise Joseon language(whose history seemed relatively short) to an aesthetic level through Chinese charac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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