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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9세기 중국에서의 세책(貰冊) 문화

            이민희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본고는 일찍부터 출판 및 서적 유통이 발달한 중국에서 과연 세책(貰冊, 도서대여)도 융성했는지를 살피고, 그 세책 독서문화의 의미를 고구하고자 했다. 한국 내 중국 세책 관련 논의와 연구가 활발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도 세책 관련 자료와 논의 자체가 많지 않다. 그것은 실제 중국에서 세책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서포(稅書鋪)라는 세책점(도서대여점)이 있었고, 보증금과 대여료[租賃, 또는 租費]를 받고 17세기 이후로 강남 지역과 북경 등 대도시에서 통속소설을 빌려 읽었던 사실을 일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중국 서적 유통과 독서 문화 이해에 있어 부분적 의미를 제공할 뿐이다. 서적 출판 및 유통 시스템이 일찍부터 잘 갖춰져 다양한 책 매매가 가능했던 데다 장서 의식이 컸던 중국인 독자에게 있어 책을 직접 구매하는 것은 매력적인 소비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반 서민 독자들(여성 포함)은 대여비가 구매비보다 저렴했기에 세책 소설을 즐겨 찾고, 애용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빌릴 때 맡기는 보증금이 구매비용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아 세책이 일반 소비자에게 폭넓게 다가가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은 세책 문화가 발달한 한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등과 비교할 때, 특수한 지점이라 할 것이다. 비록 세책문화가 활성화되진 못했지만, 중국에서는 책방에서 빌려주던 통속소설을 음란서적 내지 불온서적으로 규정짓고 금지령을 내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것이 청대에 집중된 것으로 중국세책업은 17세기 이후에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중국의 세책 문화는 세계 세책문화 발달 및 쇠퇴 요인을 이해하고, 세계 세책문화 지형도를 그리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 中國自古以來書籍的出版及流通便十分發達,然而中國的租書行業是否也同樣興盛呢? 本文對此進行考察,幷探究其租書、讀書文化的意義。韓國對中國租書方面的相關探討及硏究幷不活躍,而中國國內的租書相關資料及探討也幷不充分,這是因爲中國的租書業確實不發達。雖然可以通過一部分記錄確認17世紀以后有名爲稅書鋪的租書店,收取保證金和租赁費,幷且在江南地區與北京等大城市有借閱通俗小說的事實,但這只能爲理解中國書籍流通與讀書文化提供部分幇助。 中國的租書文化爲何不發達? 這是因爲中國早就具備良好的書籍出版及流通系統,可以買賣多樣且廉价的書籍。不僅如此,中國讀者有很强的藏書意識,對他們而言,直接購買書籍是比借閱更爲合理的消費。而且,很多情況下保證金比購書費用還要高昻得離譜,所以租書對一般消費者而言不具魅力。這與租書文化發達的韓國、日本、歐洲多數國家和美國相比,實屬特殊情況。雖然租書文化在中國幷不活躍,但從書店租借的通俗小說被指爲淫亂書籍乃至危險書籍,而被下禁令的情況却幷不少見。淸朝時期的租書業主要在部分大城市以部分讀者爲中心展開。如上所述的中國租書文化對理解世界租書文化發展與衰退的原因,勾畵世界租書文化地形圖,具有指導性意義。

          • <유씨삼대록>의 ‘순씨’ 우행(愚行)에 나타난 웃음의 의미

            윤준섭 ( Yoon Joon-seob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유씨삼대록>에서 순씨는 우행을 통해 주변 인물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유씨 집안 여성들이 순씨를 보고 웃는 것은 따듯한 웃음보다 비웃음에 가까웠다. 그 웃음은 순씨의 외양이나 문화적 취향의 결핍, 투기, 음주 등 부녀자의 덕목위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순씨는 주변 인물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 마음은 남편 유세필을 향한 것이었다. 이 모습은 유교적 예법에 충실하여 자신을 엄숙하게 단속했던 유씨 집안의 여성들과 대비된다. 이 점에서 순씨가 유씨 집안의 여성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양상을 다시 볼 수 있다. 순씨는 자신의 본능대로 우행을 저지르지만 유교적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유교적 예법에 얽매여 스스로 본성을 억누르는 유씨 집안의 여성들의 삶이 본성에 충실한 순씨의 자유로운 삶과 비교할 때 웃음거리가 된다. Sunssi in < Yussisamdaerok > causes laughter from surrounding characters through a foolish action. It is almost a mockery that the Yu's women laugh at her. This is due to the woman's violation of virtues, such as Sunssi's appearance, a lack of cultural tastes, jealousy, and drinking. But Sunssi expresses her mind freely despite the laughter of people around her. It is directed at her husband Yu Sepil. This contrasts with the Yu's women who control herself, sticking to Confucian etiquette. In this regard, you can reconsider the way in which Yu's women makes a fool of Sunssi. Sunssi is a character who behaves according to her instinct rather than being bound by Confucian etiquette. Rather, the lives of Yu's women, who are bound by Confucian etiquette and restrained themselves, are a laughing matter compared with Sun`s free life, which is faithful to her instinct.

          • 말하는 영웅 -제주 조상본풀이에 나타난 영웅의 죽음과 말을 중심으로-

            조현설 ( Cho Hyun-soul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신화적 영웅은 어떤 얼굴을 지니든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양이목사본>의 양이목사는 제주민의 공마 헌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한다. <부대각본>의 부대각은 집안의 보존을 도모한 ‘부집’ 사람들에 의해 희생당한다. 희생을 통해 제주의 두 조상신본풀이는 제주민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영웅의 형상을 제시한다. 희생에 즈음하여 두 영웅은 후손들에게 ‘나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제주의 일월조상굿은 이 유언을 재현하는 의례이다. 그런데 이 유언에 표현되어 있는 제주민들의 목소리와 정체성은 같지 않다. 양이목사처럼 현실의 권력에 칼로 맞서는 저항도 있지만 부대각처럼 목숨을 내걸고 신에게 등장하는 저항도 있다. 그러나 저항의 형식은 달라도 두 영웅이 유언을 통해 외부의 힘에 저항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Heros in myths make a sacrifice of themselves for their community. Governor Yangi in the shamanist song of Jeju make a sacrifice of himself to resolve the horse-offering of Jeju peoples. Also Boodaegak was sacrificed by the Boo clan to keep their clan. Through their sacrifices, two Bonpuri for ancestral god suggests hero’s image that Jeju peoples want to remember. Specially heros in Bompuri speak out of their mind in the face of death, that is the voice of Jeju peoples. And Gut for symbolic ancestor is a ritual to represent their will. Resist against a power from the outside! This is a message in two Bonpuri and the hero’s will.

          • 김삿갓의 자아 찾기, 웃음과 울음

            김준형 ( Kim Joon-hyeong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6 동방문학비교연구 Vol.6 No.-

            김립은 `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그의 시는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세상에 대해 말한다. 욕설과 조롱의 시. 그 때문에 그는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점은 욕설과 조롱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 담긴 김립의 사유가 더 중요하다. 노골적인 웃음 뒤에 감춰진 서글픈 자기 연민. 이 글에서 주목한 키워드다. 김립의 방랑은 개인적 분노에서 출발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노는 사회로 향했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분노가 크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커졌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회에 대한 공격, 민중에 대한 애정, 자아 성찰은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그의 시를 지배하는 웃음은 그 이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바탕 웃고 넘어가면 그만인 작품 뒤에 숨겨진 통곡. 그것은 탈출구조차 찾지 못한 김립 시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울분의 시대를 살았던 식민지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애송되었다는 점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 The Joseon Dynasty poet Kim Lib (金笠) found his raison d`etre through poetry. Popularly known as “Kim Sat-gat the Wandering Minstrel,” Kim Lib, or Kim Byeong-yeon (金炳淵, 1807~ 1863) as his real name, speaks of the world sometimes metaphorically or sometimes bluntly. Because he wrote poems of profanity and mockery, he was often criticized by scholars. But, what should be noted as important is not profanity or mockery per se but the poet`s personal reason behind his works. The keyword is sad self-pity hidden behind obvious laughter. Kim Lib`s wandering started from personal rage. As time passed by, the rage was directed towards society. He was angry against social contradiction but he could not do anything. His sense of shame toward himself grew larger. His attack against society, affection for people and self-examination appearing his poems were made from such a background. Laughter in particular that dominates Kim`s poems should be noted in this regard. Behind the poems inviting simple bursts of laughter are wails of pain. That is the true nature of Kim Lib who could not find his way out.

          • 서긍(徐兢)(1091~1153)의 『고려도경(高麗圖經)』 간행(刊行)과 내용상 특징

            배규범 ( Bae Kuy Beom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6 동방문학비교연구 Vol.6 No.-

            『高麗圖經』은 송나라 徽宗의 명으로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徐兢이 귀국 후 황제에게 지어 올린 책이다. 본고의 목적은 한중교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고려도경』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집필되었으며, 그 내용상의 특징은 무엇이고, 또 현대 중국의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곳인가를 정리해보는 것이다. 그 결과를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高麗圖經』의 집필은 당시 고려가 어려움에 처한 송을 도울 의지와 능력이 되는지를 염탐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었다. 둘째, 현재 전해지는 『高麗圖經』 40권은 남송 건도3년(1167)에 서긍의 조카 徐?이 간행한 건도본이 저본이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乾隆58年[1793] 翕縣의 鮑廷博이 家藏抄本과 明나라 鄭弘本을 근거로 교감하여 만든 『知不足齋叢書』와 1932년, 중국의 故宮博物院에서 편찬한 『天祿琳琅叢書』제1집에 영인된 『高麗圖經』이 善本으로 인정받고 있다. 셋째,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고려도경』의 사료적 가치를 다양한 각도에서 인정하는 한편, 현대 연구자들에 디테일한 오류를 잡아내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GoryeoDogyeong(『高麗圖經』) is Seo Keung(徐兢;1091~1153)`s report on nation envoy, which Goryeo envoy group was Goryeo`s visit by the order of the Emperor Huizong(徽宗) of Song(宋). This study is attempt to look into 『Koryeodokyeong』 including its publication process, the Character and Chinese`s understanding of this book. And the result can be devided into three parts. First of all, The reason of writing 『Koryeodokyeong』 was to find out if Koryeo was available to help the Song dynasty, which was facing difficulty at that time. Secondly, The existing 『Koryeodokyeong』 40 volumes was the original script published by Seo Keung`s nephew Seo Chen(徐?) in 1167. And after many years, BaoTingBo(鮑廷博) published 『知不足齋叢書』 in 1793, which based on the manuscripts in his Family(家藏抄本) and Zheng Hongben(鄭弘本) in Ming(明). That was recongnized as the best version of 『Koryeodokyeong』. Finally, many Chinese scholars made valuable mention of historical materials of 『Koryeodokyeong』. And besides, they`ve been noticing tiny errors in it and trying to correct them all.

          • 반공(反共)과 민주(民主)의 시김석(試金石) -대만잡지 『자유중국(自由中國)』의 1950년대 한국보도와 인식-

            증천부 ( Tseng Tien-fu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8 동방문학비교연구 Vol.8 No.-

            본문은 대만의 주요 정론잡지 『自由中國』의 한국 관련보도를 대상으로 1950년대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견지했던 반공, 자유, 민주의 가치가 한국을 매개로 어떻게 사고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1950년대 전반기의 관련내용은 한국전쟁 보도와 분석이 주를 이룬다. 주로 냉전 지역학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이 세계 냉전의 아시아적 양상임을 매우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해 미국을 위시한 민주국가들이 단결하여 소련의 야욕을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국제 반공 전략의 입장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규모 군사지원을 독촉하는 주장인데 이는 당시 대만의 궁극적인 위협요소인 중공을 방어해 줄 수 있는 대상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1950년대 중반기 이후의 한국 관련보도는 반대당인 민주당의 성립과 집권당과의 정쟁, 두 차례의 대선 상황, 이승만 개인과 정권의 통치성격 등에 대한 자세한 보도와 함께 1960년 315부정선거에 대한 한국 민중의 시위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한국정치의 변화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이면에는 『자유중국』 지식인들이 견지해 온 정당정치와 헌정체제의 가치와 추세에 한국의 상황이 부합되어 자신들의 주장을 재확인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데 일종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이렇게 1950년대 『自由中國』의 10년간의 한국보도는 ‘反共’과 ‘民主’로 정리될 수 있는데 자유주의파 지식인들의 반공, 자유, 민주의 가치와 신념, 주장을 시험하는 일종의 시금석 역할을 했으며 자유중국의 민주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데 일종의 근거로 작용했다고 하겠다. This paper investigates Korean media reports of the Taiwanese Political Journal "Free China", to examine how liberal intellectuals of the 1950s considered the value of anti-communism, freedom, and democracy in Korea. Divided into two parts, in the first half of the 1950s there had been abundant reports and analyses of the Korean War, which regards the War as the Asian aspec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Cold War. Democratic nations, leading b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USA), are united to show the common view that the communist forces of the Soviet Union should be thoroughly crushed. It is worth noting that under the international anti-communist strategy, it was a claim to urge active intervention and large-scale military support from the USA, which means that Taiwanese intellectuals were considering the United States as a target to contend the Chinese Communist Party. Since the mid-1950s, Korean media had reported the formation of the Democratic Party in Korea, the two presidential elections, and the nature of Rhee's individual and regime governance. And the electoral fraud on March 15 1960 is reported in detail. Free China had shown that Taiwanese intellectuals took a very positive attitude about the changes in Korean politics. The reason might have resided in the common value of party government and constitutional system that the "Free China" intellectuals advocate. In summary, the Korea Discourse of the "Free China" in the 1950s can be summarized as "anti-communist" and "democratic".

          • 『금계일기』에 나타난 노인(魯認)의 의식세계 및 중국상(中國像)

            박명숙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본고는 금계일기에 나타난 저자의 의식세계와 그가 바라본 중국像을 살펴 보았다. 儒者 노인은 유교 윤리덕목을 두루 갖춘 조선사대부의 전형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시상황에서 노인이 지탱한 근간은 義의 윤리이다. 공적으로는 大義의 실현을 위해 조선에 있을 때는 참전하였고 일본 포로로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탈출하여 천자의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사적으로는 부모와 임금에 대해서 무한한 효와 충을 보였으며 바른 것을 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모두 상의 예의를 지켰으며 변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서는 강한 응징심리를 보여주었다. 중국 사대부들과 교류함에 있어서는 본인 역시 조선의 사대부라는 계층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아 현지 사대부들과 당당하게 교류할 수 있었고 동시에 같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예에 큰 관심을 갖고 소상히 금계일기에 적어둔 면이 각별하다. 노인은 개인, 국가, 천하는 동심원으로서 임란에 明의 파병은 천자가 인을 행한 것이기에 당연하나 조선 역시 자체적으로 항전해야 한다고 의식하고 있었다. 노인이 본 중국은 풍요로움과 물력이 대단하였으며 중국인들 역시 의기가 충후하였다. 이런 유교의 본고장에서 노인은 수신의 기회를 얻었고 천자로부터 “공의 충은 문천상 같고 절은 소무와 같다”는 칭찬을 들었으며 자신이 정리한 응변복수책을 천자에게 올리는 義도 행해 천하의 중심부에서 사대부로의 직책을 온전히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은 조선의 재조지은의 나라일뿐더러 儒者 노인에게 있어서는 나라와 자신을 포함한 재조지은의 나라로서 아주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本文主要探討了《錦溪日記》的作者魯認在作品中展現的意識世界及其所反映的中國形象。儒者魯認是典型的朝鮮士大夫,具備傳統的倫理美德。壬辰倭亂之時,魯認一直秉持的是“義”。爲了實現大義而奮勇參戰,被日本俘獲后,作爲俘虜冒死逃亡中國尋求幇助,對于父母和君王表現出无限孝忠,于公于私都品行端正、忠義兼備,无論在中國還是日本,都恪守禮儀,對挑起戰亂的日本,則懷有强烈的愤懑懲戒心理。 在與中國士大夫們交往過程中,魯認體現出朝鮮士大夫的强烈階層意識,與中國士大夫交流時落落大方,同時對于同一階層所恪守的禮儀表現出相當興趣,幷將其詳細寫進《錦溪日記》中。魯認認爲個人、國家和天下是融爲一體的,壬辰倭亂之時,明朝派兵是天子行仁義之事,朝鮮應該自主抗擊倭寇。通過“壬辰倭亂”,魯認認識到國防的重要性,進而實現了由“文官”向“武官”的人生轉變。 魯認眼中的中國是一片太平盛世,浩蕩繁華、武力强盛到“口不可形容、筆不能盡記”的程度,幷認爲中國人都義氣忠厚。在儒敎的發源地中國,魯認再次獲得了修身的机會,幷得到皇帝“爾忠如祥,爾節如武”的稱贊,同時他將自己整理的“應變復仇策”上呈皇帝。可以看出,作爲一個朝鮮士大夫,魯認在中國完成了自己的使命,幷獲得了肯定。因此可以說,中國不僅是對朝鮮,對魯認本人也有再造之恩。相較于當時其他朝鮮士大夫,中國對魯認來說應該是一種非常特殊的存在。

          • 사회적 권력 관계와 여신의 자리 -고조선 건국신화와 일본 왕권신화를 중심으로-

            박광은 ( Park Gwang-eun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5 동방문학비교연구 Vol.5 No.-

            신화는 그 텍스트가 구성된 시공간적 맥락을 반영한다. 다수의 신화에서 신의 체계가 가부장적 가족의 형태를 따르는 것은, 신화가 뿌리를 둔 사회가 바로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가부장적인 신의 체계 내에서의 여신과 그 역할에 주목할 수 있다. 이때한 가지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은, 남성 중심 사회 내에서 남성 건국주의 이야기로 구성된 일본 왕권신화에서, 최고신이자 태양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마테라스는 여신이라는 것이다. 이 의문에 주목하여 이 글에서는 아마테라스와, 고조선 건국신화 내의 웅녀를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웅녀는 아마테라스와는 달리 신화 텍스트 내에서 단군을 생산하는 일 외에는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한국과 일본의 지역적 인접성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난다. 고조선 건국신화는 기본적으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신화이다. 따라서 건국주와 그 혈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웅녀는 건국주 단군의 한쪽 혈통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부각되지 못한다. 이는 웅녀가 피지배층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웅녀가 속했던 집단은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에 퍼져 있었던 ‘곰 문화`의 영향 안에 있었으며, 곰을 시조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이들이 이주민에 의해 지배당하며 고조선이 성립하였고, 그 과정에서 곰이 건국신화 내에 통합된 결과물이 웅녀이다. 웅녀가 곰에서 인간으로 변모한다는 것은 곰을 섬기는 부족이 이민족의 지배 체제 내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특히 인간 가운데에서도 여성이 된다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고대국가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상징이다. 이후 웅녀는 환웅에게 간청하여 아이를 낳고 사라지는데, 이로써 웅녀는 남성의 서사로부터 소외되고 타자화된다. 일본 왕권신화 역시 천황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의 신화이다. 그를 위해 일본 왕권신화는 천황의 근원을 신의 계보에 두고, 그 계보의 정점에 아마테라스를 둔다. 그런데 신화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남성 건국주의 계보를 담고 있음에도, 아마테라스는 여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대 일본사회의 종교 영역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비교적 컸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종교적 영향력에 더하여 일본 왕권신화가 구성되던 당시 천황의 아마테라스에 대한 숭배가 결합하면서 아마테라스가 최고신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더하여 아마테라스는 신화 내에서 여성성을 극도로 탈각한, 오히려 남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이 여성성을 탈각하여 자기로부터 소외되는 방식을 통하여서만 아마테라스는 남성의 신화 내에서 여성 최고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웅녀에게는 여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제가 없었고, 아마테라스에게는 있었다. 또한 웅녀는 출산과 같이 여성의 영역에 속한 일을 적극적으로 간청해서 수행하고, 아마테라스는 그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다. 이 두 가지 측면에 의하여 웅녀와 아마테라스가 선 자리는 크게 달라졌고, 이는 결국 사회적권력의 방향과 신화의 관계를 보여준다. 방향에 호응하지 못한 웅녀는 사라졌고, 호응하였던 아마테라스는 살아남은 것이다. A myth mirrors the spatial and the temporal contexts in which its text was composed. Because most ancient societies from which the myth originated were based on patriarchy, so were the family system of divinities. Thus we can pay attention to the goddesses and their roles within the patriarchal myths. However, Amaterasu(天照), a goddess in the male-centric royal myth of Japan, is actually the supreme goddess and goddess of Sun. This paper performs a comparative study on Amaterasu and Ungnyeo(熊女), a goddess in the founding myth of Gojoseon(古朝鮮) who is said to have produced Dangun(檀君), the founding hero of Gojoseon. Considering adjacency of Korea and Japan, it is an interesting to find out that unlike Amaterasu in the Japanese myth, Ungnyeo has few important roles in the myth of Gojoseon except the production of Dangun. The myth of Gojoseon is basically the one regarding the foundation of a new nation, so the founding hero and his genealogy is the most important. Still, as Ungnyeo is of the subordinate class, her story is not outstanding in the myth though she takes one part of the founding hero`s genealogy. Ungnyeo`s race, which was under the “Bear Culture” widespread in Siberia and Manchuria, worshipped bear as progenitor. The group of immigrants established Gojoseon after subordinating the race of “Bear Culture”, and the symbol of bear was integrated into the myth of Gojoseon as the bear turns into a woman called Ungyeo. The story of a bear that becomes human implies the annexation of the bear-worshipping group into the immigrants` rule. Especially, Ungnyeo`s feminine existence justifies the male-centric ancient regime. After Ungnyeo prays to Hwanung(桓雄) and produces Dangun, she is no longer mentioned in the myth. She experiences the process of alienation from the male-centric narrative. The royal myth of Japan is also a national myth which supports the authority of the ruler - Emperor of Japan. Therefore, the origin of the emperor is the divine genealogy, of which Amaterasu is placed at the top. The genealogy of the Japanese royal myth is basically of the male founding hero, but ironically the supreme divinity is female. We must consider the fact that the influence of women was strong in the religious field of the contemporary Japan. In addition to such influence, the worship of Amaterasu by the emperor of that period let her ascend to the throne of the supreme divinity. Finally, Amaterasu extremely casts off her femininity, and appears in the myth as a masculine figure. This is some kind of alienation from oneself. Amaterasu could survive as the supreme goddess in the male-centric narrative by alienating herself from her femininity. In conclusion, for Ungnyeo there was not any social mechanism to support her as goddess, while for Amaterasu there was. Also, Ungnyeo actively joined “feminine works” like delivery, but Amaterasu isolated herself from such duties of women. These two aspects resulted in a huge difference between the position of Ungnyeo and that of Amaterasu, which reflect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endency of social hegemony and the myth narrative. Ungnyeo did not comply with the tendency and disappeared; on the other hand, Amaterasu did comply with it, and she remained as the supreme goddess.

          • 러일전쟁 전기(戰記),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전쟁문학 -『북해이담』에서「러일전쟁 미래기」까지-

            김시덕 ( Kim Shiduck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8 동방문학비교연구 Vol.8 No.-

            각각의 시대는 각각 고유한 “대외전쟁 전기”를 탄생시킨다. “대외전쟁 전기”란 자국과 외국 간의 전쟁을 주제로 한 전쟁문학을 뜻한다. 전세계의 여러 나라 가운데 일본은 대외전쟁을 경험한 횟수가 비교적 적다. 그렇다보니 가끔씩 겪게 되는 대외전쟁의 경험은 강렬히 인상지워져서 수많은 대외전쟁 전기가 탄생하는 바탕이 된다. 그 가운데,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에 걸쳐 있는 19세기라는 시기를 상징하는 대외전쟁 전기가, 일본과 러시아의 충돌을 테마로 하는 러일전쟁 전기다. 여기서 말하는 일본과 러시아의 충돌이란 1904-05년의 러일전쟁은 물론, 1806-07년에 러시아 해군이 사할린과 남부 쿠릴열도의 아이누인·일본인을 습격한 흐보스토프 사건, 그리고 1861년에 러시아 군함이 쓰시마를 점령한 사건 등도 포함한다. 러일전쟁 전기에는 그 이전에 형성된 대외전쟁 전기에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언젠가 발발할 러일전쟁의 전개를 예측하고, 그 미래전쟁의 구체적인 양상을 시뮬레이션하는 전기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1771년 모리츠 베뇨브스키의 일본 방문과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전달된 세계정세 및 군사정보를 바탕으로 탄생한『해국병담』은 1806-07년의 흐보스토프 사건을 예견했고, 흐보스토프 사건에 촉발되어 1808년에 탄생한『북해이담』은 멀리 1904-05년 러일전쟁과 1918-25년의 간섭전쟁을 예견했다. 그리고 멀리『북해이담』과 맞닿아 있으며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탄생한 “러일전쟁 미래기”와 “미일전쟁 미래기”는 러일전쟁과 간섭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예견했다. 그리고, 이러한 러일전쟁 전기의 전통은 현대에도 살아있다. Every age has its characteristic military literature on international wars. Japan has experienced international wars less than any other countries in the world. The rare experience on international war in Japan has attracted many Japanese. It is the reason why so many military literature Japanese have written and printed when a war have once broken out. Among these military literature, works on Russo-Japanese Wars written and printed between Edo period and Meiji period represent 19th century. Russo-Japanese Wars mean Russo-Japanese War in 1904-05, Khvostov incident in 1806-07 that russian navy attacked Ainu people and Japanese in Sakhalin island and Kuril islands, and Tsushima incident that Russian army occupied Tushima island in 1861. The originality of literature on Russo-Japanese Wars is that these works have predicted future Russo-Japanese wars and simulated how it would develop. Kaikoku Heidan written and printed by Hayashi Shihei in 1786-1791, triggered by Móric Benyovszky's visit to Japan in 1771 and informations on the world offered from Dutchmen in Dejima, predicted Khvostov incident in 1806-07. Hokkai Idan written in 1808 stirred by Kaikoku Heidan and Khvostov incident predicted remote Russo-Japanese War in 1904-05 and Siberian intervention in the Russian Civil War by Japanese army in 1918-25. And Nichiro Senso Miraiki and Nichibei Senso Miraiki printed before Russo-Japanese War in 1904-05 are linked to Hokkai Idan and predicted Siberian Intervention and The Pacific War. And the tradition of works on Russo-Japanese Wars is still alive in the modern period Japan.

          • 고대한국(古代韓國)의 동요관(童謠觀)과 천인상관사상(天人相關思想)

            岡山善一郞 ( Okayam Zenichiro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5 동방문학비교연구 Vol.5 No.-

            본 고찰은 『고려사』 <오행지>에서 전개되는 동요관을 중심으로 하여 『삼국유사』와 『고려사』의 동요를 재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 동요사에 있어서 동요의 발생과 의의, 그리고 그 목적 등에 대해 논리적으로 밝히고 있는 문헌은 『고려사』 <오행지>이다. 그래서 한국의 고전 동요를 연구할 때는 먼저 『고려사』 동요관의 파악이 요구된다. 그런데 동요란 명칭은 고대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漢書』를 비롯한 많은 사서에서는 <오행지>를 두어 동요를 다루어왔다. 그런데 『漢書』 <오행지>의 동요관이 『고려사』 <오행지>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 사실은, 『고려사』의 동요관은 기본적으로 고려시대의 동요관이지만 고대한국의 동요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한국문학사의 시대구분과는 달리 『삼국유사』와 『고려사』를 한 시대로 묶어 고대 동요사를 설정해 보았다. 『고려사』 <오행지>는 서문부터 동요의 발생론까지도 『漢書』<오행지>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먼저 『漢書』를 중심으로 한 고대중국의 동요관부터 검토하였다. 이 방법이야말로 고대한국의 동요관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고려사』의 동요와 『漢書』를 중심으로 한 고대중국의 동요와의 비교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同異점를 찾을 수 있었으며, 고대한국의 동요에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 『고려사』와 『漢書』의 <오행지>의 공통점은, 동요의 발생과 예언이라는 목적은 천인상관 사상에 의거한 것이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金行>·<言事>의 오행사상에 의한 동요론인 것이다. 그리고 동요뿐만이 아니라 <오행지>의 異變은 거의가 前兆·예언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수록되어 있다. 한편 고대중국의 동요는 <詩妖>란 의미에서 다루었지만, 『고려사』에서는 동요를 <訛言>·<妖言>으로 취급하였다. 『漢書』의 <오행지>의 동요는 거의가 오행사상에 의해 그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國亡과 같은 사건과 관련되어 있지만, 『고려사』<오행지>에서는 萬壽山謠나 木子謠처럼 인과관계보다는 결과만을 제시하여, 童謠의 내용이 天의 뜻에 의해 일어난 사건처럼다루고 있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사회적 사건을 비판하는 내용의 동요는 오행사상과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초기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고려사』의 동요론에 입각한 각 동요들에 대한 분석은 본문의 참조를 바라며 생략하겠다. 本考察の目的は、『高麗史』「五行志」の童謠觀を基に『三國遺事』や『高麗史』の 童謠を再檢討することにある。『高麗史』「五行志」は、韓國で童謠が發生した 意味や目的について論理的に述べている文獻である。それ故、韓國の古典童 謠を硏究するには先ず『高麗史』に展開される童謠觀を把握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ころで、童謠という名稱は古代中國に始まる。『漢書』を始めとする多くの史書が「五行志」の中で童謠を扱っているのだが、その『漢書』「五行志」の童謠觀が『高麗史』「五行志」に反映されている。高麗時代の史書に古代中國 の童謠觀が反映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は、古代中國の童謠觀が古代韓國に影響し、それが高麗時代まで繼承されたと考えられるのではないか。このことは、つまり高麗時代の童謠觀は古代韓國の童謠觀でもあるという可能性を 示していると言える。そこで從來の韓國文學史の時代區分とは異なるが、『三國遺事』と『高麗史』を同時代として捉え、古代童謠史を論じることを試みた。 『高麗史』「五行志」は、その序文から童謠の發生論まで『漢書』「五行志」の影響 を受けているため、先ずは『漢書』を中心とした古代中國の童謠觀について檢討した。それによって古代韓國の童謠觀の特徵を正確に把握できると思った からである。 『三國遺事』や『高麗史』の童謠と『漢書』を中心とした古代中國の童謠との比較 硏究を通じ、次のような同異点があることがわかった。またこのことは古 代韓國の童謠に對する新たな解釋を可能にした。 『高麗史』と『漢書』の「五行志」に見られる共通点は、童謠が發生した目的は予言であり、これは天人相關思想に依據したものであるという点である。具體的には、童謠は「金行」および「言行」の五行思想によって解釋されている。 これは童謠だけに限ったことではなく、「五行志」に記錄されている異變 は、ほとんどが前兆や予言としての意味を持っている。そしてこのよう な意味を持つ童謠を、古代中國では「詩妖」と言い、『高麗史』では「訛言」、「妖 言」と言った。 これに對し、『高麗史』と『漢書』の「五行志」の違いは、次の通りである。『漢書』「五行志」の童謠は、ほとんどが五行思想による因果關係が說明できるも のであり、その內容は亡國といったような事件と關連している。これに對し、『高麗史』「五行志」では「万壽山謠」や「木子謠」のように、因果關係は無く結果だけを示し、童謠の內容が天の意思によって起きた事件であるように 扱っているものがある。また、五行思想とは直接的な關係が無く、社會的事件を批判する內容の童謠も存在していた。 『高麗史』の童謠論に立脚した各童謠についての分析は本文を參照され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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