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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공(反共)과 민주(民主)의 시김석(試金石) -대만잡지 『자유중국(自由中國)』의 1950년대 한국보도와 인식-

        증천부 ( Tseng Tien-fu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8 동방문학비교연구 Vol.8 No.-

        본문은 대만의 주요 정론잡지 『自由中國』의 한국 관련보도를 대상으로 1950년대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견지했던 반공, 자유, 민주의 가치가 한국을 매개로 어떻게 사고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1950년대 전반기의 관련내용은 한국전쟁 보도와 분석이 주를 이룬다. 주로 냉전 지역학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이 세계 냉전의 아시아적 양상임을 매우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해 미국을 위시한 민주국가들이 단결하여 소련의 야욕을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국제 반공 전략의 입장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규모 군사지원을 독촉하는 주장인데 이는 당시 대만의 궁극적인 위협요소인 중공을 방어해 줄 수 있는 대상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1950년대 중반기 이후의 한국 관련보도는 반대당인 민주당의 성립과 집권당과의 정쟁, 두 차례의 대선 상황, 이승만 개인과 정권의 통치성격 등에 대한 자세한 보도와 함께 1960년 315부정선거에 대한 한국 민중의 시위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한국정치의 변화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이면에는 『자유중국』 지식인들이 견지해 온 정당정치와 헌정체제의 가치와 추세에 한국의 상황이 부합되어 자신들의 주장을 재확인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데 일종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이렇게 1950년대 『自由中國』의 10년간의 한국보도는 ‘反共’과 ‘民主’로 정리될 수 있는데 자유주의파 지식인들의 반공, 자유, 민주의 가치와 신념, 주장을 시험하는 일종의 시금석 역할을 했으며 자유중국의 민주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데 일종의 근거로 작용했다고 하겠다. This paper investigates Korean media reports of the Taiwanese Political Journal "Free China", to examine how liberal intellectuals of the 1950s considered the value of anti-communism, freedom, and democracy in Korea. Divided into two parts, in the first half of the 1950s there had been abundant reports and analyses of the Korean War, which regards the War as the Asian aspec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Cold War. Democratic nations, leading b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USA), are united to show the common view that the communist forces of the Soviet Union should be thoroughly crushed. It is worth noting that under the international anti-communist strategy, it was a claim to urge active intervention and large-scale military support from the USA, which means that Taiwanese intellectuals were considering the United States as a target to contend the Chinese Communist Party. Since the mid-1950s, Korean media had reported the formation of the Democratic Party in Korea, the two presidential elections, and the nature of Rhee's individual and regime governance. And the electoral fraud on March 15 1960 is reported in detail. Free China had shown that Taiwanese intellectuals took a very positive attitude about the changes in Korean politics. The reason might have resided in the common value of party government and constitutional system that the "Free China" intellectuals advocate. In summary, the Korea Discourse of the "Free China" in the 1950s can be summarized as "anti-communist" and "democratic".

      • 사회적 권력 관계와 여신의 자리 -고조선 건국신화와 일본 왕권신화를 중심으로-

        박광은 ( Park Gwang-eun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5 동방문학비교연구 Vol.5 No.-

        신화는 그 텍스트가 구성된 시공간적 맥락을 반영한다. 다수의 신화에서 신의 체계가 가부장적 가족의 형태를 따르는 것은, 신화가 뿌리를 둔 사회가 바로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가부장적인 신의 체계 내에서의 여신과 그 역할에 주목할 수 있다. 이때한 가지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은, 남성 중심 사회 내에서 남성 건국주의 이야기로 구성된 일본 왕권신화에서, 최고신이자 태양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마테라스는 여신이라는 것이다. 이 의문에 주목하여 이 글에서는 아마테라스와, 고조선 건국신화 내의 웅녀를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웅녀는 아마테라스와는 달리 신화 텍스트 내에서 단군을 생산하는 일 외에는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한국과 일본의 지역적 인접성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난다. 고조선 건국신화는 기본적으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신화이다. 따라서 건국주와 그 혈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웅녀는 건국주 단군의 한쪽 혈통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부각되지 못한다. 이는 웅녀가 피지배층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웅녀가 속했던 집단은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에 퍼져 있었던 ‘곰 문화`의 영향 안에 있었으며, 곰을 시조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이들이 이주민에 의해 지배당하며 고조선이 성립하였고, 그 과정에서 곰이 건국신화 내에 통합된 결과물이 웅녀이다. 웅녀가 곰에서 인간으로 변모한다는 것은 곰을 섬기는 부족이 이민족의 지배 체제 내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특히 인간 가운데에서도 여성이 된다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고대국가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상징이다. 이후 웅녀는 환웅에게 간청하여 아이를 낳고 사라지는데, 이로써 웅녀는 남성의 서사로부터 소외되고 타자화된다. 일본 왕권신화 역시 천황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의 신화이다. 그를 위해 일본 왕권신화는 천황의 근원을 신의 계보에 두고, 그 계보의 정점에 아마테라스를 둔다. 그런데 신화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남성 건국주의 계보를 담고 있음에도, 아마테라스는 여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대 일본사회의 종교 영역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비교적 컸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종교적 영향력에 더하여 일본 왕권신화가 구성되던 당시 천황의 아마테라스에 대한 숭배가 결합하면서 아마테라스가 최고신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더하여 아마테라스는 신화 내에서 여성성을 극도로 탈각한, 오히려 남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이 여성성을 탈각하여 자기로부터 소외되는 방식을 통하여서만 아마테라스는 남성의 신화 내에서 여성 최고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웅녀에게는 여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제가 없었고, 아마테라스에게는 있었다. 또한 웅녀는 출산과 같이 여성의 영역에 속한 일을 적극적으로 간청해서 수행하고, 아마테라스는 그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다. 이 두 가지 측면에 의하여 웅녀와 아마테라스가 선 자리는 크게 달라졌고, 이는 결국 사회적권력의 방향과 신화의 관계를 보여준다. 방향에 호응하지 못한 웅녀는 사라졌고, 호응하였던 아마테라스는 살아남은 것이다. A myth mirrors the spatial and the temporal contexts in which its text was composed. Because most ancient societies from which the myth originated were based on patriarchy, so were the family system of divinities. Thus we can pay attention to the goddesses and their roles within the patriarchal myths. However, Amaterasu(天照), a goddess in the male-centric royal myth of Japan, is actually the supreme goddess and goddess of Sun. This paper performs a comparative study on Amaterasu and Ungnyeo(熊女), a goddess in the founding myth of Gojoseon(古朝鮮) who is said to have produced Dangun(檀君), the founding hero of Gojoseon. Considering adjacency of Korea and Japan, it is an interesting to find out that unlike Amaterasu in the Japanese myth, Ungnyeo has few important roles in the myth of Gojoseon except the production of Dangun. The myth of Gojoseon is basically the one regarding the foundation of a new nation, so the founding hero and his genealogy is the most important. Still, as Ungnyeo is of the subordinate class, her story is not outstanding in the myth though she takes one part of the founding hero`s genealogy. Ungnyeo`s race, which was under the “Bear Culture” widespread in Siberia and Manchuria, worshipped bear as progenitor. The group of immigrants established Gojoseon after subordinating the race of “Bear Culture”, and the symbol of bear was integrated into the myth of Gojoseon as the bear turns into a woman called Ungyeo. The story of a bear that becomes human implies the annexation of the bear-worshipping group into the immigrants` rule. Especially, Ungnyeo`s feminine existence justifies the male-centric ancient regime. After Ungnyeo prays to Hwanung(桓雄) and produces Dangun, she is no longer mentioned in the myth. She experiences the process of alienation from the male-centric narrative. The royal myth of Japan is also a national myth which supports the authority of the ruler - Emperor of Japan. Therefore, the origin of the emperor is the divine genealogy, of which Amaterasu is placed at the top. The genealogy of the Japanese royal myth is basically of the male founding hero, but ironically the supreme divinity is female. We must consider the fact that the influence of women was strong in the religious field of the contemporary Japan. In addition to such influence, the worship of Amaterasu by the emperor of that period let her ascend to the throne of the supreme divinity. Finally, Amaterasu extremely casts off her femininity, and appears in the myth as a masculine figure. This is some kind of alienation from oneself. Amaterasu could survive as the supreme goddess in the male-centric narrative by alienating herself from her femininity. In conclusion, for Ungnyeo there was not any social mechanism to support her as goddess, while for Amaterasu there was. Also, Ungnyeo actively joined “feminine works” like delivery, but Amaterasu isolated herself from such duties of women. These two aspects resulted in a huge difference between the position of Ungnyeo and that of Amaterasu, which reflect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endency of social hegemony and the myth narrative. Ungnyeo did not comply with the tendency and disappeared; on the other hand, Amaterasu did comply with it, and she remained as the supreme goddess.

      •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 -삼국시대 텍스트 읽기의 한 방식-

        조현설 ( Cho Hyun-soul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6 동방문학비교연구 Vol.6 No.-

        『삼국사기』에는 천재지변 기사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는 자연현상을 인문현상과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유기체적 우주론, 구체적으로는 음양오행적 사유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런 상징적 질서(노모스)가 고착되면 천재지변이라는 특이한 자연현상은 특정한 의미로 수렴된다. 여기에는 특정 사건을 하나의 의미로 계열화하려는 권력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785년 신라 38대 원성왕의 즉위를 둘러싼 폭우와 알천 홍수 사건을 천명으로 해석한 『삼국사기』의 기사가 바로 그런 사례이다. 하지만 동일한 사건을 『삼국유사』는 다른 방식으로 의미화하고 있다. 점몽가에 의해 해석된 천명의 논리가 비점몽가에 의해 정확히 반대로 해석된다. 비점몽가는 천명을 상대화함으로써 욕망을 균질화하려는 왕권의 권위를 부정한다. 이 부정의 언어를 적실히 독해해 내는 것, 이것이 삼국시대 텍스트 읽기의 유력한 방식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There are numerous natural disasters article in Samguksagi(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It connects organismic cosmology to understand natural phenomena and a social phenomena. Specifically, That is the product of Five-Elements school. But when this symbolic order(Nomos) is fixed, natural disasters are stuck in a specific meaning. In the Nomos, there is a logic of power making specific case to one meaning. For example, The King Wonsung`s story of AD 785 years is the case. That story was interpreted as Heaven`s will in Samguksagi. However, the same event was expressed in a different meaning in Samgukyusa. Heaven`s will interpreted by fortune-teller is interpreted the other way by non-fortune-teller. As a result, the authority of the throne is denied by `desiring-production` that non-fortune-teller is showing. I think this is a powerful way to read texts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 <유씨삼대록>의 ‘순씨’ 우행(愚行)에 나타난 웃음의 의미

        윤준섭 ( Yoon Joon-seob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유씨삼대록>에서 순씨는 우행을 통해 주변 인물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유씨 집안 여성들이 순씨를 보고 웃는 것은 따듯한 웃음보다 비웃음에 가까웠다. 그 웃음은 순씨의 외양이나 문화적 취향의 결핍, 투기, 음주 등 부녀자의 덕목위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순씨는 주변 인물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 마음은 남편 유세필을 향한 것이었다. 이 모습은 유교적 예법에 충실하여 자신을 엄숙하게 단속했던 유씨 집안의 여성들과 대비된다. 이 점에서 순씨가 유씨 집안의 여성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양상을 다시 볼 수 있다. 순씨는 자신의 본능대로 우행을 저지르지만 유교적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유교적 예법에 얽매여 스스로 본성을 억누르는 유씨 집안의 여성들의 삶이 본성에 충실한 순씨의 자유로운 삶과 비교할 때 웃음거리가 된다. Sunssi in < Yussisamdaerok > causes laughter from surrounding characters through a foolish action. It is almost a mockery that the Yu's women laugh at her. This is due to the woman's violation of virtues, such as Sunssi's appearance, a lack of cultural tastes, jealousy, and drinking. But Sunssi expresses her mind freely despite the laughter of people around her. It is directed at her husband Yu Sepil. This contrasts with the Yu's women who control herself, sticking to Confucian etiquette. In this regard, you can reconsider the way in which Yu's women makes a fool of Sunssi. Sunssi is a character who behaves according to her instinct rather than being bound by Confucian etiquette. Rather, the lives of Yu's women, who are bound by Confucian etiquette and restrained themselves, are a laughing matter compared with Sun`s free life, which is faithful to her instinct.

      • 서긍(徐兢)(1091~1153)의 『고려도경(高麗圖經)』 간행(刊行)과 내용상 특징

        배규범 ( Bae Kuy Beom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6 동방문학비교연구 Vol.6 No.-

        『高麗圖經』은 송나라 徽宗의 명으로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徐兢이 귀국 후 황제에게 지어 올린 책이다. 본고의 목적은 한중교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고려도경』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집필되었으며, 그 내용상의 특징은 무엇이고, 또 현대 중국의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곳인가를 정리해보는 것이다. 그 결과를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高麗圖經』의 집필은 당시 고려가 어려움에 처한 송을 도울 의지와 능력이 되는지를 염탐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었다. 둘째, 현재 전해지는 『高麗圖經』 40권은 남송 건도3년(1167)에 서긍의 조카 徐?이 간행한 건도본이 저본이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乾隆58年[1793] 翕縣의 鮑廷博이 家藏抄本과 明나라 鄭弘本을 근거로 교감하여 만든 『知不足齋叢書』와 1932년, 중국의 故宮博物院에서 편찬한 『天祿琳琅叢書』제1집에 영인된 『高麗圖經』이 善本으로 인정받고 있다. 셋째,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고려도경』의 사료적 가치를 다양한 각도에서 인정하는 한편, 현대 연구자들에 디테일한 오류를 잡아내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GoryeoDogyeong(『高麗圖經』) is Seo Keung(徐兢;1091~1153)`s report on nation envoy, which Goryeo envoy group was Goryeo`s visit by the order of the Emperor Huizong(徽宗) of Song(宋). This study is attempt to look into 『Koryeodokyeong』 including its publication process, the Character and Chinese`s understanding of this book. And the result can be devided into three parts. First of all, The reason of writing 『Koryeodokyeong』 was to find out if Koryeo was available to help the Song dynasty, which was facing difficulty at that time. Secondly, The existing 『Koryeodokyeong』 40 volumes was the original script published by Seo Keung`s nephew Seo Chen(徐?) in 1167. And after many years, BaoTingBo(鮑廷博) published 『知不足齋叢書』 in 1793, which based on the manuscripts in his Family(家藏抄本) and Zheng Hongben(鄭弘本) in Ming(明). That was recongnized as the best version of 『Koryeodokyeong』. Finally, many Chinese scholars made valuable mention of historical materials of 『Koryeodokyeong』. And besides, they`ve been noticing tiny errors in it and trying to correct them all.

      • 『삼국유사』 「원성대왕」조의 원성왕 형상

        박성혜 ( Park Seonghye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이 글은 『삼국유사』 「기이」편에 수록된 「원성대왕」조를 고찰한 것이다. 「원성대왕」조는 5개의 단위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존의 논의는 여러 단위담중 일부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 글은 단위담 전반을 대상으로 논의를 확장하여, 「원성대왕」조라는 이름 아래 원성왕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주지하다시피 원성왕은 신라 하대의 성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원성대왕」조를 구성하는 단위담은 각각 북천신, 만파식적, 호국룡, 여의주 등을 중심 소재로 삼아 원성왕의 왕으로서의 탁월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첫 번째 단위담은 신라의 모태가 되는 사로국 때부터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했던 북천신을 문화적 표상으로 끌어와서, 신라 왕조의 신, 즉 시조로부터 왕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원성왕을 보여준다. 두 번째 단위담은 중대 왕권의 상징이자 신물인 만파식적을 원성왕의 아버지인 효양이 원성왕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는 상대의 시조에게 권위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신라 중대의 계승자로 자리한 원성왕을 강조한다. 세 번째 단위담은 당나라 사신과 하서국 사람들이 조장한 위기를 극복하고, 호국용들을 구해오는 원성왕이 그려진다. 앞서 두 번째 단위담에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것과 더불어 당나라의 사신으로부터 탄복을 자아내는 원성왕의 형상은 복잡한 대외관계 속에서 신라를 지키는 왕의 형상이다. 특히 하서국 사람 2명이 호국용에게 주술을 걸어 잡아가는 형상은 원성왕이 즉위하던 당시 경쟁자였던 김주원이 하서량, 즉 명주로 물러나고 그의 아들과 손자가 각각 원성왕의 손자인 헌강왕 때에 반란을 일으켰던 역사적 사실을 형상화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네 번째 단위담은 자라에게 보시를 베풀었던 사미 묘정이 그 보답으로 자라에게 구슬을 받고, 이 구슬로 인해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당나라 황제까지 만나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 구슬이 당황제가 잃어버렸던 여의주였다는 내용이다. 『장자』 외편에 실린 상망일화를 끌어와서 새롭게 구성된 이 단위담은 불교의 유사(遺事)를 기록하려 한 『삼국유사』의 편찬 의도와 관련하여 불교의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원성왕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성왕 증손자인 애장왕 때에 이르러 원성왕은 신라 왕실의 제사인 오묘(五廟)에서 ‘원성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봉안되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신라 하대의 열조(烈祖)로서 인식되었다. 원성왕 사후에 지속되었던 의례와 당대에 향유되었던 다양한 설화 및 역사적 사실들은 원성왕을 둘러싸고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였다. 여기에 승려 일연의 편찬의도까지 더해져 역사적 인물이자 동시에 설화적 인물로서의 원성왕이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article “Wonseogdaewang” in Chapter Kiyi(紀異), Samguk Yusa. Previous studies have focused only on parts of this article, especially the first and second substories. However, for proper understanding of this article, it is necessary to study whole article, which consists of five substories. This paper begins with the question of how this article was constructed and how the image of King Wonseong was formed under the name of ‘Wonseogdaewang’. As everyone knows, King Wonseong is a person who played a pivotal role in opening up ‘the later period of Silla’. The “Wonseogdaewang” article portrays the eminence of King Wonseong using the following cultural symbols: the god of the northern river(北川神), Manpasikjeok(萬波息笛), the kingdom defending dragon (護國龍) and Yeoiju. In the first substory, King Wonseong is depicted as a king who has been acknowledged by the progenitor of Silla through the cultural symbol of the god of the northern river, which has embodied royal authority since ‘the early period of Silla’ The second substory shows Hyoyang, the father of King Wonseong, delivering Manpasikjeok to King Wonseong. This scene portrays King Wonseong not only as a king authorized by the progenitor, but also as a successor to kingdom of ‘the middle period of Silla’. The third substory depicts King Wonseong overcoming the crisis caused by an envoy of Tang and the people of Haseoguk. This portrayal of King Wonseong as a figure who was admired by the envoy of Tang for his wisdom, along with the tale of King Wonseong blocking the Japanese invation of Silla in second substory, emphasizes King Wonseong’s ability to manage foreign relations. And the portrayal of the people of Haseoguk stealing dragons out of country by using magic is considered to be representation of the historically true event of Kim Joowon’s son and grandson rebelling against King Heongang(憲康王), the grandson of King Wonseong. The fourth substory is about a Buddhist acolyte. King Wonseong holds a Buddhist mass in the palace. During this mass, a Buddhist acolyte named Myojeong(妙正) gives alms to a soft-shelled turtle and the turtle gives him a marble. Myojeong is loved by everybody and even meets China’s emperor. But the marble turns out to actually be the emperor’s lost marble. This story, which was constructed by taking the anecdote of Sangmang(相忘) from the outer chapter of Zhuangzi(莊子) and modifying it, portrays King Wonseong as a figure connected to Buddhism. King Wonseong was recognized as a great ancestor even in ‘the later period of Silla’, and he was entitled Wonseongdaowang(The Great Wonseong) in a memorial service under the reign of King Aejang(哀莊王). Continued rituals, the various tales that circulated at that time and historical facts have contributed to the creation of the myth surrounding King Wonseong. The compilation intention of Iryeon(一然), has further cemented the image of King Wonseong both as a historical figure and a literary figure.

      • 말하는 영웅 -제주 조상본풀이에 나타난 영웅의 죽음과 말을 중심으로-

        조현설 ( Cho Hyun-soul )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신화적 영웅은 어떤 얼굴을 지니든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양이목사본>의 양이목사는 제주민의 공마 헌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한다. <부대각본>의 부대각은 집안의 보존을 도모한 ‘부집’ 사람들에 의해 희생당한다. 희생을 통해 제주의 두 조상신본풀이는 제주민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영웅의 형상을 제시한다. 희생에 즈음하여 두 영웅은 후손들에게 ‘나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제주의 일월조상굿은 이 유언을 재현하는 의례이다. 그런데 이 유언에 표현되어 있는 제주민들의 목소리와 정체성은 같지 않다. 양이목사처럼 현실의 권력에 칼로 맞서는 저항도 있지만 부대각처럼 목숨을 내걸고 신에게 등장하는 저항도 있다. 그러나 저항의 형식은 달라도 두 영웅이 유언을 통해 외부의 힘에 저항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Heros in myths make a sacrifice of themselves for their community. Governor Yangi in the shamanist song of Jeju make a sacrifice of himself to resolve the horse-offering of Jeju peoples. Also Boodaegak was sacrificed by the Boo clan to keep their clan. Through their sacrifices, two Bonpuri for ancestral god suggests hero’s image that Jeju peoples want to remember. Specially heros in Bompuri speak out of their mind in the face of death, that is the voice of Jeju peoples. And Gut for symbolic ancestor is a ritual to represent their will. Resist against a power from the outside! This is a message in two Bonpuri and the hero’s will.

      • 『금계일기』에 나타난 노인(魯認)의 의식세계 및 중국상(中國像)

        박명숙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본고는 금계일기에 나타난 저자의 의식세계와 그가 바라본 중국像을 살펴 보았다. 儒者 노인은 유교 윤리덕목을 두루 갖춘 조선사대부의 전형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시상황에서 노인이 지탱한 근간은 義의 윤리이다. 공적으로는 大義의 실현을 위해 조선에 있을 때는 참전하였고 일본 포로로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탈출하여 천자의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사적으로는 부모와 임금에 대해서 무한한 효와 충을 보였으며 바른 것을 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모두 상의 예의를 지켰으며 변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서는 강한 응징심리를 보여주었다. 중국 사대부들과 교류함에 있어서는 본인 역시 조선의 사대부라는 계층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아 현지 사대부들과 당당하게 교류할 수 있었고 동시에 같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예에 큰 관심을 갖고 소상히 금계일기에 적어둔 면이 각별하다. 노인은 개인, 국가, 천하는 동심원으로서 임란에 明의 파병은 천자가 인을 행한 것이기에 당연하나 조선 역시 자체적으로 항전해야 한다고 의식하고 있었다. 노인이 본 중국은 풍요로움과 물력이 대단하였으며 중국인들 역시 의기가 충후하였다. 이런 유교의 본고장에서 노인은 수신의 기회를 얻었고 천자로부터 “공의 충은 문천상 같고 절은 소무와 같다”는 칭찬을 들었으며 자신이 정리한 응변복수책을 천자에게 올리는 義도 행해 천하의 중심부에서 사대부로의 직책을 온전히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은 조선의 재조지은의 나라일뿐더러 儒者 노인에게 있어서는 나라와 자신을 포함한 재조지은의 나라로서 아주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本文主要探討了《錦溪日記》的作者魯認在作品中展現的意識世界及其所反映的中國形象。儒者魯認是典型的朝鮮士大夫,具備傳統的倫理美德。壬辰倭亂之時,魯認一直秉持的是“義”。爲了實現大義而奮勇參戰,被日本俘獲后,作爲俘虜冒死逃亡中國尋求幇助,對于父母和君王表現出无限孝忠,于公于私都品行端正、忠義兼備,无論在中國還是日本,都恪守禮儀,對挑起戰亂的日本,則懷有强烈的愤懑懲戒心理。 在與中國士大夫們交往過程中,魯認體現出朝鮮士大夫的强烈階層意識,與中國士大夫交流時落落大方,同時對于同一階層所恪守的禮儀表現出相當興趣,幷將其詳細寫進《錦溪日記》中。魯認認爲個人、國家和天下是融爲一體的,壬辰倭亂之時,明朝派兵是天子行仁義之事,朝鮮應該自主抗擊倭寇。通過“壬辰倭亂”,魯認認識到國防的重要性,進而實現了由“文官”向“武官”的人生轉變。 魯認眼中的中國是一片太平盛世,浩蕩繁華、武力强盛到“口不可形容、筆不能盡記”的程度,幷認爲中國人都義氣忠厚。在儒敎的發源地中國,魯認再次獲得了修身的机會,幷得到皇帝“爾忠如祥,爾節如武”的稱贊,同時他將自己整理的“應變復仇策”上呈皇帝。可以看出,作爲一個朝鮮士大夫,魯認在中國完成了自己的使命,幷獲得了肯定。因此可以說,中國不僅是對朝鮮,對魯認本人也有再造之恩。相較于當時其他朝鮮士大夫,中國對魯認來說應該是一種非常特殊的存在。

      • 18~19세기 중국에서의 세책(貰冊) 문화

        이민희 동방비교연구회 (구 한국동방문학비교연구회) 2017 동방문학비교연구 Vol.7 No.-

        본고는 일찍부터 출판 및 서적 유통이 발달한 중국에서 과연 세책(貰冊, 도서대여)도 융성했는지를 살피고, 그 세책 독서문화의 의미를 고구하고자 했다. 한국 내 중국 세책 관련 논의와 연구가 활발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도 세책 관련 자료와 논의 자체가 많지 않다. 그것은 실제 중국에서 세책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서포(稅書鋪)라는 세책점(도서대여점)이 있었고, 보증금과 대여료[租賃, 또는 租費]를 받고 17세기 이후로 강남 지역과 북경 등 대도시에서 통속소설을 빌려 읽었던 사실을 일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중국 서적 유통과 독서 문화 이해에 있어 부분적 의미를 제공할 뿐이다. 서적 출판 및 유통 시스템이 일찍부터 잘 갖춰져 다양한 책 매매가 가능했던 데다 장서 의식이 컸던 중국인 독자에게 있어 책을 직접 구매하는 것은 매력적인 소비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반 서민 독자들(여성 포함)은 대여비가 구매비보다 저렴했기에 세책 소설을 즐겨 찾고, 애용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빌릴 때 맡기는 보증금이 구매비용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아 세책이 일반 소비자에게 폭넓게 다가가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은 세책 문화가 발달한 한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등과 비교할 때, 특수한 지점이라 할 것이다. 비록 세책문화가 활성화되진 못했지만, 중국에서는 책방에서 빌려주던 통속소설을 음란서적 내지 불온서적으로 규정짓고 금지령을 내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것이 청대에 집중된 것으로 중국세책업은 17세기 이후에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중국의 세책 문화는 세계 세책문화 발달 및 쇠퇴 요인을 이해하고, 세계 세책문화 지형도를 그리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 中國自古以來書籍的出版及流通便十分發達,然而中國的租書行業是否也同樣興盛呢? 本文對此進行考察,幷探究其租書、讀書文化的意義。韓國對中國租書方面的相關探討及硏究幷不活躍,而中國國內的租書相關資料及探討也幷不充分,這是因爲中國的租書業確實不發達。雖然可以通過一部分記錄確認17世紀以后有名爲稅書鋪的租書店,收取保證金和租赁費,幷且在江南地區與北京等大城市有借閱通俗小說的事實,但這只能爲理解中國書籍流通與讀書文化提供部分幇助。 中國的租書文化爲何不發達? 這是因爲中國早就具備良好的書籍出版及流通系統,可以買賣多樣且廉价的書籍。不僅如此,中國讀者有很强的藏書意識,對他們而言,直接購買書籍是比借閱更爲合理的消費。而且,很多情況下保證金比購書費用還要高昻得離譜,所以租書對一般消費者而言不具魅力。這與租書文化發達的韓國、日本、歐洲多數國家和美國相比,實屬特殊情況。雖然租書文化在中國幷不活躍,但從書店租借的通俗小說被指爲淫亂書籍乃至危險書籍,而被下禁令的情況却幷不少見。淸朝時期的租書業主要在部分大城市以部分讀者爲中心展開。如上所述的中國租書文化對理解世界租書文化發展與衰退的原因,勾畵世界租書文化地形圖,具有指導性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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