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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미아니의 교회관과 종교개혁 이전 교회개혁운동

        김봉수 ( Bong Soo Kim ) 개혁신학회 2011 개혁논총 Vol.19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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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교회의 개혁가들 중에는 후에 근대 종교개혁가들이 보여주게 될 사상적 특징들을 자신의 개혁이념으로 삼아 교회개혁운동을 추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인물들로는 먼저 성직계급주의를 극복함으로써 <제2차바티칸 공의회>를 예감한 인물로 인정받는 다미아니(Petrus Damiani, 1007-1072)를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시대 순서를 따라 발도(Peter Waldo, 1140-1218)와 위클리프(John Wyclif, c. 1328-1384), 그리고 후스(Jan Hus, c. 1369-1415)를 예로 들 수가 있다. 위에서 말한 중세의 교회개혁가들은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근대의 종교개혁가 들이 보여준 개혁이념들인``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은혜(sola gratia)``, 그리고``만인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과 같은 것들 중에 일부를 자신이 추구했던 교회개혁운동의 사상적 토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다미아니는``교회와 국가의 역할 분담``, ``교회의 동일한 구성원인 성직자와 평신도``, ``영성 추구에서 나타난 남녀 차별의 극복``과 같은 말들로 표현되는 만인제사장적 교회관을 보여주었다. 발도와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에 근거하려는 태도와 초대교회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런 개혁이념을 드러내 보였다. 위클리프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급하고,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성경 중심주의를 보여주었다. 끝으로 후스는 중세에 지배적이었던 계급적 교회론을 부인하면서 교황무오설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근대의 종교개혁운동을 준비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정리해 보면 중세의 교회개혁가들인 다미아니, 발도, 위클리프, 그리고 후스는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는 종교적 근거에서 주장되던 권위에 대한 복종을 그 특색으로 하던 시대 한 가운데서 계급적 교회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만인제사장적교회관에 입각한 성경적 교회를 회복하기 위한 교회개혁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근거로 종교개혁 이전 교회개혁가들과 그들이 추구한 교회개혁운동에 대한 평가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Damian lived in the midst of the hierarchical medieval society. Nevertheless, he thought that there must be a profound equality among the members in the Christian world, a fellowship which is not ruptured by hierarchical differentiation. His rejection of episcopal immunity was found once again in his profound intuition that the sacerdotal office demands service to one`s flock rather than domination over it. Damian`s conception of the equality between the members of Church was not differ from the idea of priesthood of all believers, which echoed in the reformed theology of Luther and Calvin. As they did, Damian quoted core verses from Paul, John, and Peter to support his own reform movement.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ies are members of Christ himself"(1 Corinthians 6:15). "Who loved us, and washed us from our sins in his own blood, and made us a kingdom, and priests to God and his Father"(Revelation 1:5-6) "You are a chosen race, a royal priesthood, a dedicated nation, and a people claimed by God as his own, to proclaim the triumph of him who has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marvelous light"(1 Peter 2:9). The equalitarianism of ``priesthood of all believers`` might force Damian to maintain a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radical and the moderate in Curia. But after his death, the condition of affairs has changed. Hildebrand acceded to the Pontiff as Gregory VII. And he accepted the radical and class-conscious theory of Humbert in his reign. From this time, in the medieval Catholic Church a kind of clericalism began to grow. Due to this bad condition we can see a group of reformers who acted before the reformation. Waldo, Wyclif, and Hus were the representatives for this group. They and their followers denied openly the papal power and the hierarchy of Church. And they, like Augustine or Damian, found the basis of their reforms in the Bible. Most of them, therefore, on the ground of the spirit ``priesthood of all believers`` that comes from ``sola scrpitura``, they sought to embody an antihierarchical and brotherly view of Church in their reforms. For this purpose they were willing to be excommunicated or burned to death. To sum up, including Damian, the reformers before the reformation not only attacked the clerical sins (simony and nicolaitism), but also devoted themselves to build an ideal Church, of which the apostles said in the New Testament. Because of this they could show the similar aspects with the reformers (as Luther and Calvin) of the reformation, and was evaluated friendly by them. Taking into this, I would say that the evaluation of reforms before the reformation is need to be more posi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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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자들의 예배개혁에 대한 고찰과 적용

        이승우 개혁신학회 2020 개혁논총 Vol.51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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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은 신학의 개혁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신학의 개혁은 예배의개혁으로 이어졌다. 개혁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한 신학을 신앙을 구체화하는가장 중요한 장소인 예배에서 펼쳐 보여야 했다. 그러므로 예배의 개혁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본 글에서 필자는 종교개혁에서 예배개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피고 그 개혁의 기준과 의미를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고자 했다. 개혁자들은 예배에서 말씀과 성찬의 균형을 회복하고 성찬에서의 잘못된신학은 배격했다.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예배를 위해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설교했으며 예배를 인도했다. 만인제사장의 원리는 예배 현장에서 구현되었다. 개혁자들 간의 완전한 일치를 보지는 못했지만, 위험성이 있는 미신적이고 인간적 요소들은 제거되거나 제한되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개혁 정신이 오늘날 우리 예배 속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개혁자들이 고민하고 싸워왔던 잘못된 신학과그 실행이 우리들의 예배 가운데 반복되지 않도록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회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다양한 개혁을 했던 개혁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 예배도 회중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 예배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성찬의 회복과 균형을 추구했던 개혁자들의 정신은 우리 예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성찬을 더 자주 해야 하고 올바른 성찬의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 개혁자들이 예배에서 설교를 회복했던 정신은 회중의 삶을 이해하며 회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로 적용되어야 한다. 덧붙여 인본주의와 기복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설교가 회복되어야한다. 현대 예배에서 중요한 비중으로 자리 잡은 음악적 요소들을 사용하는데도 개혁자들의 신학적 고민을 신중히 검토하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의 정신이 오늘 우리 교회들에서 신실하게 구현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자들이 고민하고싸워왔던 잘못된 신학과 그 실행이 우리들의 예배 가운데 반복되지 않도록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The Reformation was a reformation of theology, and naturally, the reformation of theology led to the reformation of worship. The reformers had to unfold their theology that they had reformed in worship service. Therefore, it is very meaningful to study the reformation of worship. In this article, how worship reformation was carried out during the Reformation was examined, and an attempt was made to apply the standard and meaning of the Reformation today. Reformers restored the balance of the Word and the Eucharist in worship and rejected the incorrect theology of the Eucharist. They translated the Bible into their native language and preached in the language of the congregation. The doctrine of the “Priesthood for All Believers” was embodied in worship. Although there was no unified opinion between the reformers, superstitious and humanistic factors were removed or restricted. It is still questionable whether the core values of the reformers are applied correctly in our worship today. Reformation must continue so that false theology and its practices that the reformers struggled with are not repeated in our worship. Today, congregations should be encouraged to have active attitudes toward worship, and this follows the spirit of the reformers who made various reforms for the active participation of the congregation. The spirit of the reformers, who pursued the restoration and balance of the sacrament, should also be applied to our worship. The sacrament should be made more often, and the understanding of the proper sacrament should be pursued. The efforts of the reformers to recover preaching in worship must be implemented as preaching that the audience can easily understand and preachers must understand the lives of the audience. In addition, in this era when humanism and shamanic beliefs are prevalent, preaching that reveals the Word of God must be restored. It is necessary for the theological concerns of the reformers on using music in worship service to be considered and applied profoundly to modern worship. We must consider whether the spirit of the Reformation, which is that the church must always be reformed, is being faithfully implemented in our churches today and reformation must continue so that false theology and its practices that the reformers struggled with are not repeated in our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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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역사신학적 고찰-

        임원택 ( Won Taek Lim ) 개혁주의생명신학회 2012 생명과 말씀 Vol.6 No.-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신학’(theologia)이란 용어가 “하나님의 말씀” (Word of God)과 “하나님에 관한 말”(word concerning God) 둘 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든 혹은 하나님에 관한 말을 의미하든, 어느 경우라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경험함 없이는 신학을 올바로 할 수 없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신학의 의미를 특별히 강조한다. 우리의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우리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개혁주의생명신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강조한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신학은 대상을 추상화하고 고정하며 상대화하는 학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영국의 개혁신학자들은 “theology”라는 용어보다는 “divinity”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게다가 츠빙글리와 칼빈 그리고 불링거는 “theologia” 라는 용어를 정의하거나 논의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religio”라는 개념이었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예배하도록 가르치는 매우 실천적인 가르침에 관심을 가졌다.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이런 실천적 관심을 계승했다. 이렇듯 신학과 관련해서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신앙의 실천을 지향했음이 명백하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신학이 하나님에 관한 지적 앎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앎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신앙의 실천을 매우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입장에 굳건히 서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개혁신학자들은 이론과 실천의 균형을 추구했다. 그런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중 다수는 신학의 이론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신학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했다. 참된 신학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돌림과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신학이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에, 참된 신학은 단지 지적 앎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은 복음이어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 멸망으로 이끄는 신학은 실천이 없는 신학인 반면, 살리는 신학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입장에 굳건히 서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신학자들이 자성하고 현재의 교회를 다시 확고히 세우는데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음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당위적 선언이다. Justifying the use of the term theologia, the Reformed orthodox understood theology to mean both “Word of God” and “word concerning God.” Whether theology means God`s word or our word concerning God, we cannot perform the right doing of theology in either meaning without our personal encounter with God. Reformed Life Theology puts special emphasis on the meaning of theology as God`s word. A theologian should have a personal knowledge of God before his or her theology becomes God`s word. Reformed Life Theology emphasizes our personal encounter with God. For our God in the Bible is not an abstract God but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thus being a personal God. Theology cannot be a science that makes its object abstract, fixed, and relativized. Therefore, theology is not a mere academic discipline. The English theologians expressed a decided preference for the term “divinity” over the word “theology.” In addition, Zwingli, Calvin and Bullinger neither defined nor discussed the term theologia, but the concept of religio was of primary importance to them. They were interested in the very practical teaching that showed the right way of knowing and honoring God. The Reformed orthodox inherited such a practical concern of the Reformers. Thus, with theology, both the Reformers and the Reformed orthodox evidently headed toward the praxis of religion. The statement that “theology is not a mere academic discipline” means that theology is not a mere intellectual knowledge about God but a personal knowledge of God. Then, this statement can be understood as standing in the line of the Reformers and the Reformed orthodox, who paid great emphasis on the praxis of religion. The Reformed theologians pursued the balance of theory and practice. Acknowledging the speculative dimension of theology, however, a large number of Reformed orthodox emphasized its practical dimension. For the goal of true theology is the glorification of God and our salvation. The statement that “ theology is not a mere academic discipline” clarifies that theology, which gives life to our soul and our church, thus a true theology, cannot be a mere intellectual knowledge, but should be a gospel containing the life of Jesus Christ. While a theology leading to perdition is a theology that does not have a praxis, a theology giving life is a theology that has a praxis according to the teaching of the Bible. The statement that “ theology is not a mere academic discipline,” Therefore, not only stands in the line of the Reformed tradition, but also clarifies that today`s theology should reflect on itself and play its proper role in reestablishing the presen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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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신사도개혁운동

        양현표 ( Hyun Phyo Yang ) 개혁신학회 2014 개혁논총 Vol.30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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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도개혁운동은 1990년대 이후 일어나고 있는 성령운동 혹은 은사운동으로서, 와그너가(Peter Wagner)가 1997년에 정의한 교회 성장과 관련된 이론이다. 단순히 와그너의 창작물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이후 비성경적이라고 규정된 여러 성령운동들의 복합체라 하겠다. 신사도개혁운동의 핵심은 초대교회의 사도가 아직도 승계되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도 역시 초대교회 당시의 사도와 동일한 은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성경의 권위보다 우월한 계시를 지금도 받고 있으며 초대교회의 사도들보다도 탁월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여러 현상들을 성령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개혁주의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사도직분은 초대 교회 이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사도개혁운동 주창들은 성경에 기록된 사도의 자격과 용례를 오해하고 있으며, 사도와 관련된 성경구절(고전12:28; 엡4:11)을 잘못 해석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완성된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부류라 하겠다. 진정한 사도는 열 두 제자와 바울뿐이다. 사도직 복원은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들은“오직 성경으로”를 거부하고“성경 외 계시”(“Scripture Plus Apostolic Tradition”)를 주장하고 있기때문이다. 성경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성경 본문을 자가당착적으로 해석하고, 역사적이고 전통적 신학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사도는 오직 성경시대에만 존재했던 특별한 직무요 은사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도직의 복원에 기초한 신사도개혁운동은 비성경적인 종교운동이라 할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양적 성장에만 매몰되어 신사도개혁운동을 성령운동이란 미명하에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In 1997, Peter Wagner coined the term “New Apostolic Reformation” to an up-and-rising Spiritual gifts movement that is related to the theory of church growth. Wagner, however, was not the creator of this movement. He simply combined many non-biblical Spiritual movements after the early 20th century and termed the collection of movements as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The purpose of the NAR movement is to encourage the faith of the Apostles of the early Church. This movement supports the idea that the same Spiritual gifts and powers the early Apostles had still exist today. Thus, supporters believe that Apostles exist in today’s Church. At its root, the NAR believes that today’s Apostles receive a Spiritual revelation that is far superior than those the Apostles of the early church received. Supporters of the NAR believe that they receive new insights and blessings that the early Church did not receive. They also believe today``s Apostles can perform signs and miracles that are superior to those the original apostles performed. Similarly, they regard many of the miraculous symptoms as true works of the Holy Spirit when they are not based on Biblical truth. The NAR Movement cannot be accepted by Reformed Theology because there is no Biblical basis to the movement. Contrary to the NAR, the Reformed Theology’s belief is that Apostles do not exist after Biblical times. Those who believe in the ideas of the NAR misunderstand the qualifications of an Apostle and misinterpret Bible verses related to the office of Apostles (1 Cor. 12:28; Ep. 4:11). Furthermore, the NAR denies the authority of the completed Bible, which includes the belief that the only Apostles are the 12 Disciples and Paul. The idea that Apostles still exist today is unbiblical because they deny “Sola Scriptura” and insists “Scripture Plus Apostolic Tradition.” Followers of the NAR do not realize the authority of the Bible and they deny historical traditional theology. According to traditional theology, Apostles only existed during the Biblical era, in which the Twelve and Paul received special God-ordained gifts and powers. Therefore, the restoration of Apostles in today’s Church is unbiblical, making NAR an unbiblical religious movement. Unfortunately, many churches in Korea accept the ideas and beliefs of the NAR as a God-ordained spiritual movement because of its connection to church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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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과 개혁: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종교개혁 이해 비교

        김요섭(Kim, Yo Sep) 개혁신학회 2017 개혁논총 Vol.4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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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인문주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종교개혁에 기여했고 16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에라스무스와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루터가 협력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524년 에라스무스가 발표한『자유의지에 관하여』(De Libero Arbitrio, Diatribe seu Collatio)에 맞서 루터가 이듬해『노예의지에 관하여』(De Servo Arbitrio)를 발표하자 그들의 종교 개혁에 대한 이해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본 연구는 자유 의지와 관련한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논쟁을 검토하여 두 신학자가 다르게 생각했던 종교 개혁에 대한 이해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 두 신학자의 서로 다른 결론을 말 하게 된 상이한 성경관과 해석의 방법론을 비교한다. 이어서 자유 의지의 가능성에 대한 인간론의 쟁점들을 통해 그들이 그렸던 인간 구원의 지향점 임 무엇이었는지 살핀다. 이와 같은 성경관과 인간론의 비교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기독교“종교”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당시 기독교 신앙의 개혁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두 신학자는 당시 로마 가톨릭이 보여주고 있는 신앙의 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고 개혁의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동일했다. 그리고 성경의 핵심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로 생각했다는 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그리스도 철학”(Philosophia Christi)의 이상을 따라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공동체 전체의 조화 가운데 이루어지는 영적 변화를 추구했다. 에라스무스와 같은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에게 종교개혁은 선한 문서로서의 성경의 탐구와 그 도덕적 실천 프로그램의 평화스러운 도입을 통한 개인의 삶과 기독교 사회의 개선이었다. 이에 반해 루터는 그의“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이 대변하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그 확신에 근거한 종교개혁을 추구했다. 그는 성경 전체가 이 구원 진리를 명확하게 가르친다고 주장하면서 구원을 위한 어떤 가능성도 인간에게 없다고 강조했다.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에게 종교개혁은 성경 전체가 명확히 증거하는 구원의 진리를 재확인함으로써 이에 따라 신자들의 삶과 기독교회 전체가 회복되는 근본적인 회복이었다. In sixteenth century, Christian humanism contributed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many ways. Many contemporary people regarded Erasmus and Luther shared the same vision for the religious reformation. However Erasmus’ De Libero Arbitrio (1524) and Luther’s counter publication of De Servo Arbitrio in the next year made it clear that two theologians held different views. This study analyzes the debate on the free will between Erasmus and Luther in order to manifest the different ideas of the religious reformation between Christian humanism and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the first place, this study compares the different understandings of Scripture and hermeneutics from which Erasmus and Luther proposed the different ideas of the reformation. Their different anthropological ideas for God’s grace of salvation will be examined in the following chapter. These comparisons of the hermeneutic and the anthropological ideas of Erasmus and Luther show their different ideas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century Christianity. Both Erasmus and Luther took the same position in criticizing the Roman Catholic religion and pursuing the reformation of the Christian religion under the supreme authority of Scripture. They also agreed that the foremost essential theme of the bible was Jesus Christ. Yet Erasmus, with the vision of “Philosophia Christi”, affirmed the capability of human efforts in order to realize the spiritual enhancement in the harmony of the ecclesiastical authority. Erasmus and other renaissance Christian humanists considered the religious reformation as the improvement of the spiritual life and the Christian society by meditating the ethical teachings of Scripture and introducing the practical program for moral progress in a peaceful manner. On the contrary, Luther understood the religious reformation from the soteriological perspective that emphasized the conviction of God’s grace for salvation in Christ’s redemptive works. He argued that the whole Scripture, teaching this truth, denied any human ability for their salvation. For Luther and other protestant reformers, therefore, the religious reformation was the fundamental recovery of the Christian life and the religious community by reaffirming the biblical truth of salvation declared in Scri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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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설과 개혁: 『재세례파 논박』에 나타난 칼빈의 종교개혁 이해

        김요섭 한국개혁신학회 2017 한국개혁신학 Vol.56 No.-

        Calvin and other magistrate reformers pursued the religious reformation against errors and corruptions of Roman Catholicism. However, this reformation was different from the radical ideas. In spite of some similarities, Calvin strongly refuted those radical views because the reformation was not a restitution of reconstructing the whole Christian religion after demolishing the every existing doctrinal and ecclesiastical structure. For him, the proper reformation was the recovery of the substance and foundation of the true Christian religion according to the consistent and manifest truth in Scripture. This study aims to illustrate Calvin’s idea of the reformation by examining his criticism of the anabaptists’ radical ideas. Calvin’s “Treatise against the Anabaptists” published in 1544 and the other related works will be analyzed for this examination. After the review of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Calvin’s works against the anabaptists, three themes will be investigated to compared Calvin’s reformation to the radical restitution: Bible, Church, and secular government. This investigation tries to manifest Calvin’s consistent understanding of foundation, methods, and sphere of the reformation. This study hope to clarify Calvin’s idea of the religious reformation and find its significance for contemporary Christianity. It is necessary to acknowledge the reformers’ arguments against the anabaptist radical ideas as well as the Roman Catholics in order to exactly commemorate and correctly apply the legacy of the sixteenth-century reformation. Against both the Roman Catholic idolatry and the radical delusion, Calvin and the reformers emphasized the clear and distinct truth of God’s sovereign grace of salvation in Scripture. The proper way of the reformation, according to Calvin, is the constant endeavor of reflection and restoration to recover the true religion of Christian Church and glorify God’s name alone. 칼빈을 포함한 주요 개혁자들은 당시 로마 가톨릭의 여러 가지 오류에 맞서 성경의 진리에 따라 기독교 종교의 회복하는 종교개혁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 종교개혁은 기존의 모든 교리와 체계를 거부한 급진적 입장과도 달랐다. 여러 유사점들에도 불구하고 칼빈이 급진주의를 더 강하게 비판한 것은 종교개혁은 기존의 모든 것을 부인한 뒤 이루는 “재건설”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명확한 진리를 재확인함으로써 추구하는 본질의 “회복”이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재세례파”로 통칭한 급진주의의 주장들에 대한 칼빈의 반박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제시하려 했던 종교개혁의 개념이 무엇이었는지 재구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 칼빈의 여러 저술들 가운데 1544년 출판된 『재세례파 논박』을 중심으로 관련 저술들을 분석할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 저술의 등장하기까지 재세례파에 대한 칼빈의 이해와 상황적 배경을 다룬 후 이어서 성경, 교회, 그리고 세속사회에 대한 재세례파의 급진적 주장을 그가 어떻게 비판했는지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칼빈이 일관되게 제시한 “종교개혁”의 토대와 방법 그리고 범위를 드러낼 것이다. 결론에서는 본론의 분석을 통해 확인한 칼빈의 종교개혁 이해를 정리하고 그 의의를 제시할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정확하게 기념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에 바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왜 로마 가톨릭의 적폐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재세례파와 급진세력의 주장을 거부했는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과 급진 세력 양편을 모두 비판하면서 이에 맞서 성경이 가르치는 명확한 구원 진리를 개혁의 기초와 목적으로 강조했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드러냄으로써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는 위한 반성과 회복의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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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0년대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

        황대우 개혁주의생명신학회 2019 생명과 말씀 Vol.23 No.1

        This paper is dealing with the territorial Reformation of Strasbourg, the southern city of Germany in the sixteenth century. The political structure of Strasbourg was close to the ideal polity of Plato. The top political organization of the city was the small Council, in general called the City Council. The urban Reformation could not have happened without the mutual cooperation between Church and Government. It was not easy, because there were much disagreement of opinion on the urban Reformation between the Reformers and the members of the City Council. The first Reformer of Strasbourg was Mattäus Zell. He was strongly influenced by the works of Luther the Reformer of Wittenberg in order to preach evangelically. In 1523, three Reformers arrived in Strasbourg. They were Wolfgang Capito, Caspar Hedio, and Martin Bucer. Unlike the first two, the last was not invited. Bucer quickly increased his influence. Within a short time, he became the leader of the Strasbourg's preachers. The attitude of the preachers for the Reformation of Strasbourg always were active and positive while that of the city councilors usually were passive and negative. For the Reformers it was a divine mission to preach purely the Word of God. The councilors thought that the stabilization of the city was more important than the evangelical preaching. The conflicts between Strasbourg's preachers and councilors were results of those different attitudes for the Reformation. In spite of passive attitude of the city councilors, Strasbourg finally became the reformed city, so that she abolished the Mass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21 February 1529. The primary cause of the urban Reformation was the evangelical preaching of the Reformers. The citizens strongly supported them because of their enthusiasm of the pure evangelism. Consequently, the City Council commanded the preachers to preach the Word of God only. In fact, the enthusiastic preaching of the Reformers had gradually removed a lot of the socio-political difficulties and obstacles to the urban Reformation. In short, the Word of God was the motive power of the Reformation of Strasbourg in 1520s. 본 논문은 1520년대 독일 남부도시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을 다루고 있다. 16세기 스트라스부르의 정치 구조는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치구조에 가까웠다. 이 도시의 최고 정치 기구는 시의회라 불리는 소의회였다. 교회와 정부의 협력 없이는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왜냐하면 도시개혁을 위해 교회의 대표자들인 종교개혁자들은 언제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던 반면에 시의회는 거의 항상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자세였기 때문이다. 스트라스부르의 첫 종교개혁자는 마테 첼이었다. 그는 복음적인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자 루터의 영향을 받았다. 1523년에 3명의 종교개혁자가 스트라스부르에 들어왔는데 그들 중 부써는 초대받지 못했으나 빠르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단 기간에 스트라스부르 설교자들의 리더가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개혁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반면에 시의회는 말씀보다 도시의 안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의회는 도시가 무질서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때론 종교개혁자들과 대립하곤 했다. 비록 이런 갈등과 반목은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스트라스부르는 결국 1529년 2월 21일에 미사를 폐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공적으로 종교개혁을 수용했다. 스트라스부르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끈 주요 원인은 설교자들의 복음 설교였다. 스트라스부르 설교자들은 순수한 복음 설교를 통해 시민들의 지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시의회도 순수한 복음 설교 외에 다른 것을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순수한 복음 설교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믿음과 열정이 도시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만들었다. 한 마디로, 1520년대 스트라스부르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한 사건이었다.

      • 장종현 박사의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 주제설교 연구: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를 향한 함의(含意)

        성종현 ( Seong Chong Hyon ) 개혁주의생명신학회 2017 생명과 말씀 Vol.18 No.-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주창자이신 장종현 박사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선지학교를 1976년 설립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끊임없는 무릎 기도와 탁월한 리더십에 힘입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는 신학교와 신학교수들이 많아질수록 교회의 현장은 메말라 가고 있음을 간파하고 그 원인이 신학교육의 문제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2003년 10월 25일에`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를 외쳤고, 2008년 12월 1일에는 제1회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을 열었다. 본 논문은 종교개혁의 설교학적 의의에 기초하여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의 장종현 박사의 주제설교 연구를 통해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를 향한 함의(含意)를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에서 장종현 박사는 한국교회의 개혁을 염두에 두고서 일 년 동안 준비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박사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이 제2의 종교개혁 의 역사에 쓰임을 받기를 소망하고 있다. 본 논문의 제1장은 개혁주의생명신학 생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아홉 차례의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의 주제와 더불어 주요 대지를 소개하고 있다. 제2장은 장종현 박사의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 주제설교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를 향한 함의 (含意)를 살피고 있다. 첫째, 개혁주의생명신학의 태동이다. 제1회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 주제설교가 한국교회에 끼친 공헌은 종교 개혁 500주년을 앞두고서`개혁주의생명신학`이라는 새로운 용어 가 공적으로 발표된 계기를 마련한 데 있다. 장종현 박사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주창하면서 죽어 있는 개혁신학을 살리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으로`개혁주의생명신학`을 주창하였다. 둘째, 개혁주의 생명신학 포럼의 주제성교는 신학의 본질을 반성하면서 신학의 본 질의 회복을 촉구하기 위해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 전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장종현 박사의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의 주제설교는 개혁주의생명신학에서 강조하는 7대 실천운동을 구슬같이 꿰뚫고 있다. 셋째, 그의 주제설교는 포럼이 진행된 공간에서만 머물지 않고 기독교 TV와 라디오 그리고 신문 등을 통 해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강하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의 연합운동을 더욱 촉진하게 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장종현 박사는 다가오는 2017년 10월 31일 제 10회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에서`종교개혁 500주년과 개혁주의 생명신학`이라는 제하의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다.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의 주제설교는 다가오는 종교개혁 1,000년을 향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Dr. Jong Hyun Chang, an advocate of the Reformed Life Theology, established a small seminary to raise up ministers. He succeeded in growing a great repeat of development through the grace of God and his kneeling prayer and leadership. In many countries, as theology has developed more and more into a mere scholarly discipline, the spiritual state of local churches has consequently declined even more. On the process of being too speculative, theology has lost the spiritual life found in Jesus Christ, its very substance and spiritual power. As we live up to the Gospel in every aspect of our lives, we seek to promote spiritual revival in Korean churches by restoring the vitality of the Gospel, the essential substance of theology. To this end, Dr. Chang advocates `Reformed Life Theology`. Reformed Life Theology attempts to inherit and develop the reformed theology by emphasizing its five mottos: sola Scriptura, solus Christus, sola fide, sola gratia, and soli Deo gloria, and by setting the seven practical movements of the Reformed Life Theology such as a movement of faith, theological restoration, repentance-forgiveness, spiritual life, the Kingdom of God, sharing, and prayer-the Holy Spirit. The first chapter of this thesis introduces the subject and main outlines of Dr. Chang`s sermons of nine forums of the Reformed Life Theology. The second chapter studies the implications to the Korean churches welcoming the Reformation`s 500th anniversary.

      • 개혁주의생명신학으로 본 한국교회 청년대학생사역의 문제점과 그 대안: 제2의 종교개혁을 기대하면서

        안오순 ( Ahn Oh Soon ) 개혁주의생명신학회 2017 생명과 말씀 Vol.18 No.-

        한국교회는 민족의 아픈 현실 속에서 겨자씨 한 알처럼 시작하였지만 대한민국의 건국과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하면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일은 청년대학생이 교회를 떠난다는 사실이다. 이 겨레와 함께 하였던 한국교회가 그 겨레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교회가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세속의 가치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안팎에서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암담한 중세교회 현실에서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개혁자들의 후예로서 개혁운동을 시작할 때이다. “교회는 `개혁된 교회`가 아니라 `항상 개혁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개혁은 한 시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할 성경정신이다. 그 개혁운동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개혁운동은 청년대학생사역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운동은 개혁주의생명신학에 뿌리를 둬야 한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유일한 목표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살리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교회 청년대학생사역을 개혁주의생명신학의 렌즈로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 하고자 한다. 그 대안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청년대학부사역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1대1 성경공부와 소그룹 사역, 그리고 성경적 설교를 통하여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을 신행일치의 제자,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로 양성하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의 뿌리에는 전도와 기도가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성경적 생명가치를 회복시키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붙들고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다면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겨레와 하는 함께 하는 생명력 있는 교회, 한반도를 넘어서 오대양 육대주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역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을 것이다. The Korean church, which originated as a kernel of wheat during national crisis, has now spread its roots and grown as a tree in which birds can nest.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is nation, its modernization, industrialization and democratization, the church took its role as the salt and light of society. However, in contemporary society, the church has found itself in disrepute. The most pressing issue lies in that youths do not wish to stay within the church, highlighting that is has become outdated and is increasingly shunned. The reason for this lies in that churches have lost their spiritual power and have conformed to the secularism of this world. This highlights the need for the second reformation of the church. Today`s believers are the descendants of reformers in the middle age who lifted their voices and effected change. Reformation entails continuity, it is not finished with the work of one generation but it is a continual and ongoing process of change. Churches must be reformed continually. This is biblical reformation. Where will this change begin? Campus youth ministry is the starting point of reformation. The foundation of this lies in Reformed Life theology. The ultimate purpose of Reformed Life theology is to let ourselves to be transformed by the power of the Spirit so that we may resuscitate the church and glorify God. In light of this, I would like to propose alternative ways to address the current spiritual situation of campus youth ministry in Korea. Alternatives such as encouraging a paradigm shift in Korean spiritual leaders regarding campus youth ministry, the recovery of the Christian community through one to one Bible study, small group ministry and Biblical preaching. Its fruit will be the genuine disciple who practice Biblical teachings in their actual lives and self-supporting lay missionaries who can spread the gospel of Jesus to the world. The root of all these works must be evangelization and prayer. Reformed Life theology is the way to restore the Biblical values of life. We must pay heed to it and cling to it, practice it until the second reformation arises in our generation. With this, the Korean church will be regain its spiritual power and influence and Korea will become a conduit for sending missionaries the world over. And God will use Korea as a priestly nation for world mission again.

      • KCI등재후보

        중세시대 개혁의 선구자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

        김요섭(Kim Yosep) 개혁신학회 2016 개혁논총 Vol.40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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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시대의 대표적인 교회 개혁 사상가 위클리프는 14세기 말 잉글랜드의 시대 상황 속에서 교회의 개혁을 위한 사상을 제시하고 그 실천을 시도한 인물이었다. 본 연구는 먼저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이 등장한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검토한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예정으로부터 참 교회 개념을 설명한 위클리프의 교회 이해를 평가하고 교회 개혁을 위해 그가 제시한 실천 방안을 다룬다. 위클리프의 개혁적 교회론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국내적으로는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왕실과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었으며 국외적으로는 교황청의 대분열이었다. 또 사상적 배경으로는 14세기 말 옥스포드에서 전개된 철학적 논의 가운데 위클리프가 취한 실재론과 신적 원리와 피조 세계의 원리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지배권”개념이었다. 이와 같은 배경 위에서 위클리프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총합으로서의 참된 교회”라는 신학적 교회 이해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 이해 위에서 교황을 포함한 교회의 제도적 측면의 오류 가능성을 주장하고 부패의 실상을 지적했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과 사제들이 목회자로서의 본분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세속 군주가 교회의 사적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위클리프가 제시한 교회 개혁의 실천 방안들이었다. 위클리프의 교회 개념과 그 실천적 함의들이 이후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제시했던 교회론과 여러 점에서 서로 다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절대화하면서 이에 대해 교회 제도를 상대화한 점, 교황을 비롯한 사제들의 권위를 그 직임이 아닌 충실한 직무 수행에서 찾으려 한 점, 하나님의 예정과 그리스도의 머리이심을 강조함으로써 지상 교회의 영속성과 개혁의 필연성을 주장한 점들이다. 이와 같은 개혁적 교회론으로 인해 위클리프는 16세기 종교개혁을 예비한 중세 후기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John Wyclif, one of the representative reformers of the middle age, presented his reformation ecclesiology in the context of the fourteenth century England. There are two most noticeable historical backgrounds: Domestically, he developed his ecclesiology in the political conflicts between the monarchy and the ecclesiastical leadership in England. Internationally, “the great schism” effected his reformation ecclesiology. Concerning philosophical backgrounds, propositional realism, endorsed by Wyclif in the metaphysical controversy of the late fourteenth century Oxford, and his concept of “dominion,” elaborated to explain the causal relationship between the divine and the created order, offered him useful theoretical grounds. For Wyclif, the true Church is “the whole congregation of the elect.” This theological idea enabled him to criticize present corruptions of the institutional church. Sincere teaching of Scripture, recovery of the ministerial role of priests, and deprivation of temporal goods of the church by secular rulers were Wyclif’s proposals for reformation. In spite of some differences, Wyclif’s reformation ecclesiology shows some significant similarities with the sixteenth-century protestant reformers: the idea of the relative nature of the church compared to the absolute truth of Scripture, the definition of the priestly office not as authoritative position but as pastoral role, and the emphasis on the perpetuity and the continuous need for reforming the Church due to the fact that “Christ is the sole head of the Church.” Those similarities are sufficient reasons for calling Wyclif “a pioneer of reformation” who prepared the way to the protestant refo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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