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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리교 생태유아교육 대안 탐색 : "Waldorf 생태유아교육학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황보현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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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자는 몇 가지의 질문 제기를 통해서 논문의 주제에 관심하였다. ‘하나님께 서 창조하신 피조세계가 신음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창조의 영성을 가진 우리 감리교인들이 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 방안 마련에는 무관심할까?’, ‘왜 침 묵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세상의 ‘편리성의 원리’에 익숙해지고, 영성이 무뎌졌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즉,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토대로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자 연을 개발해도 된다는 의식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는 바로 인간에게 있던 본연의 “생태적 영성”이 “파괴적 영성”으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 는 생태적 영성의 회복을 위해 감리교 웨슬리 신학의 회심의 신학, 코이노니아의 신 학, 성령 체험의 신학을 살피고, 그 실천적 대안으로 발도르프 생태유아교육학을 살 폈다. 이들의 만남을 통해서 감리교 생태유아교육학이 전인적이고 생태학적 패러다 임의 전환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Ⅰ장에서는 20세기 말부터 극심한 생태적 질서의 파괴와 생태계 위기의 문제가 전개된 상황의 원인 즉, 이원론적인 세계관과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 과학기술문명, 대량생산과 소비 체계, 불평등한 국제관계, 국내 정치구조와 인성구조, 교육제도와 교육 내용 등의 다양한 요인들이 있음을 소개하였다. 다양한 요인들 중에서, 우리는 교육제도와 교육의 내용의 부분에 집중하여 생명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살림의 신학, 교육실천, 생태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적으로 내용을 전개함을 밝혔다. Ⅱ장에서는 감리교 생태유아교육의 신앙의 모태가 되는 웨슬리의 사상과 감리교 신학, 한국 감리교신학과 기독교교육의 역사적 고찰을 하였다. 또한, 생태적 위기와 위협의 시대에 감리교 유아교육의 방향성이 어떠한지 살펴보기 위해 7군데 교회를 선정하여 -아현, 마포중앙, 낙원, 베다니, 삼양, 종교, 기쁜 교회 등- 실태를 조사하 였다. 감리교신학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회심의 신학, 코이노니아 신학, 성령 체험의 신학에서 생태적 영성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리교 기독교교 육의 실제적인 현장에서는 생태적 영성을 키울 수 있는 실천적인 교육의 내용과 방 법이 없음을 보게 되었다. Ⅲ장에서는 20세기 초엽부터 지금까지 범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발전, 연구되 고 있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인간 이해와 구체적 실천으로써의 독일의 발 도르프 생태유아교육을 살펴보았다. 또한, 현재 한국의 발도르프 유아교육 기관 중 에 서남 재단에 소속되어 있는 서울의 “서남발도르프어린이집”을 소개하였다. 실제 적으로 인지학적 인간 이해가 어떻게 드러나며, 발도르프 생태유아교육의 모습과 비 교해볼 때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Ⅳ장에서는 감리교 생태유아교육이 발전해야 할 방향성을 네 가지의 대안을 제시 하며 밝혔다. 발달론적 인간 이해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유아를 바라보고, 삶의 패 턴에 맞는 교육의 일정을 개발하자고 하였다. 또한, 유아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유를 인정해주는 교육을 지향해야 하며, 생태적인 환경 구성과 환경에 대한 철학을 가져 야 함을 밝혔다. 이 대부분은 발도르프 생태유아교육학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기 때 문에 꾸준한 대화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유아교육은 개인의 우열의 순서를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인종 간 또는 국민 간의 우열의 순서를 바꾸어놓 을 수 있는 힘122)을 지니고 있으므로, 감리 교 기독교교육 안에서 유아교육을 재조명하고, 특별히 이 시대가 생태적 위기와 위 협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도록 하는 생태학적 패러다임의 유아교육이 필요하다. 유 아교육에서 생태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과 사유하는 방식이 종래의 것과 다른 ‘생명의 고귀함’을 알 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만이 아니라, 자연, 이웃, 모든 피조물의 생명이 고귀하 고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된다. 또한, 감리교 생태유아교육은 회심, 코이노니아, 성령 체험에서 생태적 영성의 단 서를 가지고 있는 감리교 신학을 중심으로 실천적인 범위 안에서 21세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꾀해야 한다. 다양한 교육적 방법과 원리, 교육목적과 목표를 제시하고 교육의 내용을 구성하며, 현실의 문제 특 히, 생태계의 위협과 더불어 생겨나는 많은 문제, 인간의 물질화 등에 정면 승부할 수 있는 생태적 영성의 회복과 전인적이고 생태적인 패러다임에 근거한 신학과 교 육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선은 감리교가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맞는 생태적인 영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인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코이노니아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 다. 이러한 감리교 신학에 대한 재해석은 성서신학, 역사신학에서 더 구체적으로 제 시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발도르프 생태유아교육의 교육원리인 리듬생활, 자유의 원 리, 생태적 원리의 내용을 감리교 생태유아교육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하고, 감리교 생태유아교육이 바르게 정립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가 필 요하겠다. 또한, 이러한 감리교 생태유아교육이 발도르프 생태유아교육을 넘어서 전 우주적인 생태적 영성을 회복하는 감리교 기독교교육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 팬데믹 상황에서의 온라인 예배 연구 : 감리교신학대학교 [나눔의 예전학회]의 사례를 중심으로

        최영록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2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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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의 주제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온라인 예배 연구이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굉장히 동시대적인 주제이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유례없는 펜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의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 큰 변화의 물결이 드리우게 되었다. 이천 년 역사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던 기독교 예배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예배는 그 태생부터 공동체적 행위였기에, 예배 모임은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온라인으로의 예배 전환은 교계에 엄청난 논쟁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대부분 찬반에 대한 이론적 입장 정리나, 교회와 사회적 변화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이미 온라인 예배를 시작한 교회 현장에서는 온라인 예배의 방법론 탐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연구자는 온라인이라는 방법론을 탐구하기 전에, 예배라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우선 집중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예배의 본질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대적인 상황과 다양한 방법론 속에 어떻게 왜곡되지 않고 담길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실천적 제언을 통해, 실제 예배 현장에서도 온라인 예배가 선용(善用)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예배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으나, 그것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과 인간 존재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그 신비한 만남에는 두 가지 큰 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그렇다면, 과연 온라인상에서도 예배의 두 축인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응답’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떠한 이유로 가능하며, 또 무엇을 통해 가능한가. 예배는 단순히 보고 듣는 시청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일어나는 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느낄 수 있으며, 느껴야만 한다. 이에 대해 연구자는 예배가 오감(五感)을 넘어, 영적인 감각까지 포함된 육감(六感)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한다. 예배자로서의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응답은 단순히 개인적 행위가 아닌 공동체적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예배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많은 예배자들이 예배에서의 다 감각성과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역자들은 기술적인 방법론이나 새로운 컨텐츠를 찾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가장 좋은 해결책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성찬이다. 예배에서 성찬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도 성찬이 가능한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는 예배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실제 온라인을 통해 성찬예배를 드린 모범적이고, 실천적인 예시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감리교신학대학교 나눔의 예전학회(지도교수: 박해정)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진행했던 “대면-향기로 잇다” 예배이다. 이를 통해, 각 교회의 온라인 예배가 단순히 보고 듣는 시청물이 아니라, 맛보고 경험하는 예배로 회복되고 갱신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본 연구와 사례를 통해 단순히 이번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예배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맞이할 다양한 사회적 위기와 변화 속에서도 우리의 예배가 그 본질을 건강히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건강한 교회 연구

        진영철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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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건강한 교회라는 연구를 통해 미래사회의 이해와 현 상,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또한, 지금까지의 건강한 교회의 이론 과 그 이론에 대한 현실적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나아가서 미래사회의 건강한 교회 에 대한 제안을 말하였다. 또한 여러 교회들의 예를 통해 현재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모델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교단과 신학교, 미래사회의 선교에 대한 방안을 모색해 보았 다. 레너드 스윗의 미래 사회의 예측과 EPIC 교회의 모델은 미래사회의 변화 속에 교회 가 어떻게 변해야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으며, 자연적 교회성장의 이론은 오늘날 교회가 자신의 교회의 건강성을 진단하기 위해 필요한 점검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사회는 지금 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다양하게 변하는 시대이다. 교회는 이러한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 특별히 선교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미래사회의 교회, 미래사회의 선교는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오늘날 사회로부터 여러 지탄을 받고 있는 교회가 미래사회의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 가? 칼 뮬러(Karl Mueller)는 기독교의 선교의 전통을 “전 세계를 통해 기독교는 새로운 상황에 순응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노력”이라고 말하면서, 선교는 항상 새로운 상황의 변 화에 대한 위기와 그에 대한 극복이라는 사명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건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선교라는 용어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완성 되어져 가는 것과 변화 되어 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교는 새로운 역사의 사건과 정황 속에서 만들어지고 또 변화 될 수 있는 그래서 역사적 정황 속에서 좀 더 분명해지거나 때론 변화를 하는 것이 다.77)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상황과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상조차 하지 않은 새로운 역사일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이라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을 갖고 모험하는 교회가 되어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 훨씬 좋은데 왜 변화해야 하는가?”“우리 교회의 전통을 하루아침에 없애야 하는가?”“영상은 경 건한 예배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까?” 마치 홍해를 사이에 두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산업사회의 익숙한 삶의 자리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바로 미래사회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진퇴양난의 고비를 주는 것이다. 가는 길은 홍해처럼 깊어 보이고 위협적이며 출렁인다. 새로운 변화를 결코 수용하지 않으려는 내부의 목소리는 교회 리더에게 큰 장애로 다가오지만, 교회는 선교를 위해 끊임없이 변 하고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선교학의 중대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지금의 습관화되고 안정된 자신의 경계를 넘어 위기의 상황에 또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선교의 최전방에서 경계선 상에 경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선교를 실현하는 사건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스 베르너 겐지헨은 “신학 훈련으로 서의 선교신학”에서 선교신학을 이와 같은 의미에서 “다른 최전방과 맞대고 있는 전선과 전선 사이의”최전방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학문 또는 “신학의 경계를 뛰어넘은 간 학문적 인 신학 작업 방법”으로 명명한다. 바로 선교학의 임무는 루드비히 뤼티가 말한 것처럼 신학과 교회의 최전방에서 “논쟁적이고, 상황적이며 그리고 직접적 충격을 감당할만하여 야 하고”더 이상 최전방에서 물러나 명상적 자기만족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78)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여 새로운 미래사회의 현장에 직접적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을 잘 지적하고 있다. 미래사회를 준비하 는 교회는 바로 지금의 습관화 되어있고 안정된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미래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려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 해 교회는 현재의 모습 속에 빠져, 교회밖에 사람들이 저절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선 안 된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선교의 최전방으로 나가 선교를 실현하는 것이 오늘날 미래사회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본 연구자는 미래사회에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첫째, 건강한 교회는 사람들의 영적인 관심과 그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 둘째, 건강한 교회는 고유한 정체성과 그 기능을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셋째, 건강한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을 주는 좋은 이미지를 가진 교회여야 한다. 넷째, 건강한 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올바른 기준을 잡는 교회여야 한다. 영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교회는 예배를 통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 고, 지식보다는 영적인 감동을 주어야 한다. 고유한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목회자와 평 신도 사역의 조화를 통해 그들의 전문적인 기능을 활용하여 미래사회에 전문화된 사역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좋은 이미지로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의 문화와 함께하며 그 필요를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 사회에 어렵고 힘든 소외된 곳에 교회가 관 심을 가지고 세상이 할 수 없는 소중한 일들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섬겨야하는 것이다. 미 래사회는 혼돈과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이다. 교회는 이러한 시대에 올바른 기준을 잡아주 고 자기반성을 통한 교회의 개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나아가 미래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교회가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개 교회주의 를 극복하며 교회 연합을 통한 과거의 분열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교회는 자신만 건강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교단은 지역 교회를 보호 하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며, 신학교는 미래사회의 실천적인 신학교육이 되도록 현장 을 강화해야 한다. 미래사회의 교회는 선교를 지향하고 수평이동이 아닌 독창적인 선교를 하는 교회이다. 이러한 선교는 지역 사회의 문화를 주도하고 어렵고 힘든 곳에 희생적인 정신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교회 이미지는 투명성과 공신력을 잃어버린 사회의 개혁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미래사회에 교회가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미래사회의 건강한 교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교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교회 안에 서 머무는 사람과 세상을 향해 섬기고 전도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교회는 더 이상 사회에서 닫힌 모습이 아니라, 생명력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개 척하고 영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꿈꾸며 오늘 날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미래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고 준비된 모습으로 선교에 앞 장서 나가기를 소망한다.

      • 설교와 성찬의 유기적 통합 연구 : 찰스 라이스의 신학을 중심으로

        조현석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2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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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설교-성찬’ 이중구조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주었던 초대교회 예배의 원형을 탐구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예배 개혁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초대교회 당시 저스틴 마터와 히폴리투스의 저작은 초대교회 예배가 설교-성찬의 이중구조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형식의 단순함과 간단명료함을 주된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중세기를 거치며 이러한 균형은 깨지게 되었고, 이후 촉발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존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초대교회 예배의 균형을 재구현하기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로 여겨진다. 루터가 라틴어 사용과 화체설의 영향으로 소외되었던 ‘말씀의 예전’을 회복시키고 성찬 제정사의 의미적 변용을 시도하여 양자 사이의 유기 적 연결을 시도했다면, 웨슬리는 실천적인 차원에서 중도성에 기반한 신학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의 연결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성찬 찬송을 다작(多作)하여 양자 사이의 실질적인 균형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개혁의 연속 선상에서 발생한 20세기 예전 회복 운동(Liturgical Movement)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Vatican Ⅱ)는 가톨릭과 개신교 진영 모두에게 성찬과 설교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으며, 이는 본질과 형식의 올바른 관계 설정에 대한 성숙한 이해로 나아갔다. 이러한 맥락에서 20세기 ‘신설교학’의 대표 학자인 찰스 라이스는 ‘일상적 언어와 스토리텔링’, ‘해석과 상상력’ 등을 특징으로 설교와 성찬의 유기적 통합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특별히 그의 신학과 유사한 지점이 많은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의 예문을 분석하는 작업은 라이스의 신학을 실재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오늘날 교회의 설교-성찬의 유기적 통합 가능성에 대한 보다 선명한 청사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 라깡의 정신분석학적 소외에서 본 판넨베르크의 진리문제

        박참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2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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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판넨베르크의 보편사신학에서 나타난 진리 문제를 라깡의 정신분석학적 '소외'의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보편사신학에 대한 이해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라깡의 소외이론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적 진술과 계시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나는 언어적 한계와 계시 수용자 관점에서 그 수용범위를 확장하는 지점에서 '소외'가 적용된다. 주체는 '소외'와 함께 타자의 결핍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을 구별하는 '분리'를 통해서 주체로 복귀한다. 이때 그리스도론은 '분리'를 통해 그리스도교적 주체로 탄생한다. 헤겔 신학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비판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적용한다. 첫 번째는 판넨베르크 보편사신학에 대한 이데올로기화에 대한 우려에 대한 응답이다. 두 번째는 헤겔 신학과 판넨베르크 신학의 차이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헤겔의 신학과 접목한 지젝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교의적 검토이다. 이 작업을 통해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직면하고 있는 현대적 논의와 신학의 학문성이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는 기초신학적 토대를 마련한다. 끝으로 판넨베르크의 신학을 라깡의 이론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그리스도교적 주체의 도래를 제시한다.

      • 박애적 자유죽음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 장 아메리 실존주의 철학과 현대 신학 간의 대화 모색

        박성민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2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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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긴급한 대응을 요하면서도 선뜻 접근하기엔 난해한 문제다. 많이 자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만큼 자살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높았고, 또 자살 문제에 대응하는 정부의 관련 정책도 일찌감치 수립되어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그 효과는 크지 못했고 자살의 문제에 대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조차 자살자를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 자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고찰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닥쳤다. 이처럼 자살 문제를 대하는 기존의 관점들은 자살자를 국가·사회적 관리의 대상으로 대상화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살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의 다양성·포괄성·유효성을 위한 하나의 노력으로서 자살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재고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철학자 장 아메리는 자살 문제의 내부자적 접근에 실낱같은 단서를 제공해 준다. 그는 희생자의 자살을 원한의 요구가 좌절됨에 따른 모순적인 해방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그는 “자기 살해(suicaedere)”를 “자유죽음(Freitod)”이라고 고쳐 불렀다. 희생자-몸을 지닌 사람이 원한을 증언함으로써 정복 당한 자신의 몸을 극복하고 자유와 존엄성을 회복하고자했던 상황은 신앙고백을 통해 바빌로니아 포로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이스라엘-유다 포로민들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앙 운동으로서 증언을 통해 정복 당함의 상황을 극복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아메리와 이스라엘-유다 백성들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 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서는 훼손되고 정복 당한 몸을 가진 채로 자유죽음의 운동을 펼쳤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을 대하는 히브리 성서의 관점은 생물학적인 죽음, 형제 살해, 토라 신학적 죽음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 이때 히브리 성서는 형제 살해의 현실과 토라 신학적 죽음만을 문제시하고 생물학적인 죽음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자살에 대하여 히브리 성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명예로운 것이라는 조건 내에서만 그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억압과 피억압자 집단 내부에서 자행된 폭력이 극에 달하자, 이 두 가지 방식의 폭력으로부터 강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예수 추종자들은 생물학적인 죽음을 적으로 겨냥함과 동시에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는 것을 저항의 수단으로 삼았다. 또한 예수 추종자들의 신앙 운동은 박애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무모한 자발적 순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초기그리스도인들도 그 전통을 지키며 자신과 이웃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투옥 및 고문을 당하거나 순교했다. 이후 중세 그리스도교의 자살 탄압 조치는 더 이상 자발적 순교와 상관없게 된 그리스도교의 상황을 반영한다. 중세 그리스도교와 고대 세계의 고전적 자살 반대론에 대하여 아메리 철학은 자유죽음과 메시지라는 개념을 통해 반박한다. 아메리 철학이 계몽을 신뢰하는 철학적 신앙에 의존된 필리아적 자유죽음을 지향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자발적 순교는 신앙에 의존하는 박애적 자유죽음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위르겐 몰트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역사를 그리스도의 버림 받음, 고난 당함,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면, 자살자들은 그들 스스로 버림 받음과 고난을 감당한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하나님의 역사에 포용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와 종교의 상관관계에서 본 팬데믹 시대 한국교회 위기 연구 : 폴 틸리히 신학을 중심으로

        최요셉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2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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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문화를 형성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틀(frame)이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종교를 위협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과학과 철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계시의 객관성이 의심받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칸트는 종교를 도덕의 영역으로,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감 정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틸리히는 그러한 영역들에 종교를 위치시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보았고, 종교란 “인간 정신생활의 모든 기능에 있는 깊이의 측면”이라고 정의하게 된다. 이로써 종교의 영역은 넓게 확장되었고, 종교와 문화 사이의 커다란 간격이 좁혀지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한국교회는 국가와 세속 문화에 크게 대립하는 모습을 빈번하게 보이곤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국교회는 그토록 갈등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었을까? 본 연구에서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적절히 이해하는 능력이 부재했던 교회의 모습 속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코로나19를 통해서 교회는 교회대로, 세상은 세상대로 멀찍이 떨어져 이원화되어 있었음을 확인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급격한 속도로 기술과 지식이 발전하고 다원화되고 있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세상과 교류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신학적 기반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던 중요한 이론가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팬데믹 시대에 한국교회가 겪었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한다. 리처드 니버와 본회퍼는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문화 이해 이론을 전개했는데, 그러한 문화 이해 방식이 과연 기독교 중심의 유럽 국가들이 아닌 다원화된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할지 의문이 든다. 그들의 이론에서는 그리스도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데, 그리스도가 낯설거나, 혹은 종교 자체가 낯선 이들에게는 그러한 문화 이해가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서의 종교를 근간으로 문화 이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어떨까? 트뢸치는 과감하게 기독교를 상대화함으로써 그러한 시도를 해나갔다. 그는 여러 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역사적 상대주의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종교의 절대성에 부당함과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신앙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서는 분명히 기독교의 보편적인 진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트뢸치가 기독교의 교의적인 내용을 대부분 포기함으로써 기독교 고유의 정체성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트뢸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베버는 종교의 본질적 내용보다 윤리적 요소에 더 관심을 가졌고, 문화와 종교의 관계를 신학적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루었다. 그렇게 종교와 문화의 적절한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틸리히의 이론이다. 그의 독특한 신학 방법론인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신학은 문화 모든 영역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이라는 관계 속에서 신학이 다양한 삶의 영역들과 맞닿게 되고 하나님을 요청하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삶과 신앙이 더 이상 멀찍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가 바이러스라는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때로는 세상의 기술과 지식을 빌리고, 심지어는 세상의 요구대로 따라야했던 상황도 발생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한 번 만 왔다 가리라는 법은 없기에, 교회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여 세상과 긴밀히 교류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길러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교회가 갖고 있던, 세상과의 교류를 단절하도록 하는 요소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종교와 문화를 단절시키는 요소들 은 사이비 종교 안에서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반면교사 삼고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잘 준비함으로써 교회가 다시금 생명력을 되찾기를 바란다.

      • 에버하르트 융엘의 되어감 이해를 통해 살펴본 십자가신학의 의미 : 무신론시대의 삼위일체론

        박상호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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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신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니 무신론은 신학에 있어 위기라기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신학의 위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무신론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신학이 감당해야 할 끊임없는 주제였다 그것은 이 논문이 숨을 쉬게 된 2020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래된 문제는 결코 고리타분한 주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 반복되는 물음이란 그 만큼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신론이 필연적으로 신학에 중요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신학의숙명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숙명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는 신앙이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가 사유하는 신학의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에서 출발한다. 20세기의 신학은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시면서도 동시에 계시의 주체이시기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따라서 신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논할 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계시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무한하고 불가해한 깊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물음은 종결되지 않고 우리 가운 , . 데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무신론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가운데 활동하고 계심을 말해야 한다 신학자 에버하르트 융엘 . (Eberhard Jüngel)은 삼위일체론에 근거하여 무신론 시대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활동하고계심을 체계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에버하르트 융엘은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되어감'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표현함으로써 무신론 시대에도 여전히 삼위일체론적 신학이 필요하며 또, 한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본 논문은 융엘의 십자가 신학이 무신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혜안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할 것이다 기. 독교 신학은 십자가에서 무능하게 죽은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 능력 가운데서도 자신의 신적 능력을 드러내는 힘으로 현존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십자가신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별히 융엘의 십자가신학은 그의 초기 신학의 핵심적 개념인 '되어감'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 더 분명하게 파악될 수 있다 융엘은 칼 바르트 의 삼위일체론에 기초한 (Karl Barth) 계시 이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되어감' 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행위와 분리하지 않으려는 개념적 이해에 가깝다. 본 논문은 융엘의 '되어감'과 십자가신학의 연결성을 확인하고 그것이 어떻게 죽음조차 극복하는 하나님의 현존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해명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에버하르트 융엘은 칼 바르트의 해석자를넘어서 고유한 신학적 체계를 지닌 신학자로서 재조명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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