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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초기의 기록관리제도와 그 변화

        조호연,Cho, Ho-Yeon 한국기록학회 2004 기록학연구 Vol.0 No.10

        This paper aims to research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archival systems in the Soviet Union from 1917 to the 1920's. The Russian revolution was the turning point not only for the political and social changes but for the archival administration in Russia, as it provided the new Soviet regime with the chances to reorganize the archival institutions under Bolshevik rule. However, we must not forget the fact that the Russian Archival Workers' Union had taken part in the organization of the archival systems together with the Bolshevik revolutionaries. The Soviet government intended to transform the decentralized and poorly organized archival systems in the prerevolutionary years into the centralized and bureaucratized ones. In this meaning, the decree signed be V. I. Lenin on 1 June 1918 was estimated as the real basis for the Soviet archival centralization. Lenin's archival decree of 1918 encompassed the entire national documentary legacy, which was gradually extended to all types and categories of manuscripts and archival records by successive legislation. The concept of state proprietorship of all documentary records was designated "Single State Archival Fond"(Edinyi Gosudarstvennyi arkhivnyi fond), which was renamed as "Archival Fond of the Russian Federation" after the collapse of the USSR. The independent state administrative agency, that is, "Main Administration of Archival Affairs"(Glavnoe upravlenie arkhivnym delom) was charged with the management of the entire "Single State Archival Fond". While the Soviet Union reorganized its archival systems in the twenties, the archival institutions became under the severe control of the government. For example, M. N. Pokrovskii, the well-known Marxist historian and the political leader, headed the organizational work of archives in the Soviet Union, which resulted in the exclusion of the prerevolutionary specialists from the archival field in the Soviet Union. However, the discussions over the concept of "the Archival Fond" by B. I. Anfilov helped to develop the archival theories in the USSR in the twenties. In conclusion, the Soviet Union, having emphasized the centralization of the archives, developed its archival systems from the early period, which were the basis of the systematic archival institutions in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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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일전쟁의 원인과 베조브라조프 일파

        조호연 ( Ho-yeon Cho )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人文論叢 Vol.44 No.-

        러일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한 상당수의 국내외 연구에서는 소위 베조브라조프 일파의 역할과 관련된 소위 ‘속죄양’ 이론이 비중 있게 언급되고 있다. 그에 따르자면, 러시아 궁정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던 일군의 모험주의자들이 압록강 유역에서 삼림 이권을 확보하고자 시도함으로써 일본이 전쟁을 개시하는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베조브라조프 일파의 모험주의적인 활동이 러일전쟁의 발발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자면, 베조브라조프 일파에게 러일전쟁의 원인을 돌리는 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 점은 베조브라조프 일파가 성립되었을 때로부터 약화될 때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이 일파가 등장한 시기는 1898년 초였는데 이때는 이미 러시아가 뤼순항을 강제 점령한 이후였다. 또 베조브라조프 일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비테의 정치적 영향력 약화는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러시아의 재무장관으로 있던 비테의 실각은 니콜라이 2세 본인의 권력의지와 연관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또한 베조브라조프 일파가 벌인 사업은 1903년 6월부터 재정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차르 정부는 그들에게 별다른 재정 지원도 해주지 않았다. 러일전쟁 발발의 책임은 당시에 동아시아 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던 열강들이 공유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러시아 측으로서는 일본의 전쟁의지를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전쟁발발 가능성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일본이 좀 더 쉽게 전쟁개시를 결단하는 중요동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A number of researchers concerned with the origins of the Russo-Japanese War have remarked on the so-called ‘scapegoat theory’, which emphasized on the roles of the clique around A. M. Bezobrazov at the outbreak of the war between Russia and Japan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e theory explained that the adventurers, including Bezobrazov, tried to seek the commercial interests around the Yalu River and stimulated the Japanese to attack on Russia.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origins of the Russo-Japanese War and Bezobrazov’s clique. I traced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group in detail. In result, it is thought that the influences of Bezobrazov’s clique on the Russo-Japanese war must not be overemphasized. The best days of the clique and the downfall of S. lu. Witte who was regarded as the main opponent against the clique, did not coincide. Moreover, the tsar’s government did not provide any aid to the clique, which encountered the financial crisis in June, 1903. It was not the adventurous activities of Bezobrazov’s clique but the groundless optimism of the Russian government that resulted to the outbreak of the Russo-Japanes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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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롭스키 역사학의 흥망과 부침

        조호연 ( Ho-yeon Cho )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2 人文論叢 Vol.59 No.-

        우리는 이 논문에서 포크롭스키 역사학이 등장하여 부침을 겪은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먼저 그의 어린 시절, 그리고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시기, 그리고 사회활동을 통하여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과정이 기술되었다. 그리고 볼셰비키 혁명 이후 그가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소련에서 스탈린에 버금가는 영향을 확보하게 된 과정도 살펴보았다. 이런 활동에서는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그의 학문적인 사상이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는 클류쳅스키의 영향이 남아 있었으며, 이 점은 상업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주장에서도 반영되었다. 포크롭스키는 1932년에 사망하였는데, 그의 학문은 그의 사후 스탈린주의 역사학에 의하여 대체되면서 철저히 부정되었다. 이후에 스탈린주의 역사학이 1950년대 중반에 스탈린 비판과 함께 부정되기 시작함으로써 그의 역사학도 자연스럽게 복권되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련 해체 이후에도 그의 역사학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복잡한 문제로 남아 있다. In this paper, I intend to trace the process of the rise and fall of M. N. Pokrovskii’s historiography. At first, his childhood, his university life, and his social activities as a Bolshevik were explained. And I looked at how he gained a political and academic influence comparable to Stalin's in the Soviet Union after the Bolshevik Revolution. In these activities, of course, his academic ideology as a Marxist played a large role. Nevertheless, it is said that he was influenced by his teacher, Kliuchevskii, in his theory of commercial capitalism. Pokrovskii died in 1932, but his scholarship was completely denied as it was replaced by Stalin’s historiography. After Stalin was criticized in the mid-1950s, his historical studies were naturally rehabilitated. However, even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the evaluation of his historiography still remains a complex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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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논문 : 역사인식 속에서의 냉전 -북한 역사학계의 러시아사 이해-

        조호연 ( Ho Yeon Cho ) 한국서양사학회 2015 西洋史論 Vol.0 No.127

        북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점점 더 축적되고 있지만, 북한 역사학계가 러시아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본격적인 연구가 시도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 특히 한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은 주로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북한 역사학이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에 토대를 두고 성립되었다가 주체사관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 북한 역사학의 토대가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스탈린주의 역사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점은 북한 역사학이 표방하고 있는 ‘당성의 원칙’과 ‘역사주의의 원칙’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다. 역사의 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는 주관적인 요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객관적인 요인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스탈린 시대에 스탈린이 역사해석의 권한을 독점했듯이 이 두 요소를 결합시킬 수 있는 권한은 주체사관의 핵심인 수령에게 있다. 따라서 북한 역사학은 스탈린주의 역사학에 그 근본을 두고 있고, 주체사관이 표방되고 있는 요즈음도 스탈린주의 역사학의 중요한 측면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력사사전』과 몇 종의 고등중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통하여 북한 역사학계가 소련사를 포함한 러시아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이 점은 명확히 확인된다. 그 내용을 러시아 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자면, 북한 역사학은 러시아 혁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주제나 인물에 대해서는 과거 스탈린시대처럼 민족주의적인 기준들을 부분적으로 적용하여 심지어 일부 차르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서술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과 관련해서는 사회주의의 승리로서 기술되고 있으며, 특히 혁명 전후의 모든 사건들이나 인물들이 스탈린과의 관련성을 통하여 평가되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스탈린이 시도한 공업화와 농업집단화는 아주 긍정적으로 기술되고 있는 반면에, 흐루쇼프가 시도한 정책 혹은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은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냉전 성립의 한 축이 스탈린주의라고 한다면, 세계사적 틀에서는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북한의 러시아사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냉전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It has been supposed that the historiography of North Korea was established on the basis of Marxism-Leninism. And most historians think that after the stability of North Korean government in the middle of 1950’s the historiography of North Korea came under the strong influences of Juche Idea, that is, the official ideology of North Korea. However, to be more precise, the North Korean historiography in the initial stage did not derive from Marxism-Leninism, but from Stalinism. As J. V. Stalin had the absolute power in North Korea in the late 1940’s and in the beginning of 1950’s, the motto “Learn by the Soviet Union” means the imitation of Stalinism. Moreover, the foundations of the historiography in North Korea has retained its characteristics, which mean both the principle of party spirit(in Russian, партийность) and the principle of historicism. The main characteristics of the historiography of North Korea has been reflected in the perceptions of Russian history, which could be found in the school textbooks and historical dictionaries published in North Korea. First of all, the periodization of Russian history has been continuously understood through the social formation theory in North Korea. In addition, the North Korean historians has highly estimated the Russian Revolution as the great socialist revolution. In North Korea, the policies of Stalin has been positively thought, while his political opponents like L. D. Trotsky have been written in the extremely negative ton. Nikita Khrushchov and Mikhail Gorbachev are called as the revisionists and the traitors to the socialist cause. Considering that Stalinism constituted one of the main components of the cold war, it might be concluded that the cold war is ongoing in the perceptions of historiography in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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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학과 역사교육

        조호연(Cho, Ho-Yeon) 효원사학회 2019 역사와 세계 Vol.- No.56

        이 글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혁명직후에 소련 정부는 과거 제정 러시아 역사학계의 흔적을 부정하는 데 주력하였으며, 1929년에는 소위 “학술원 사건”을 통하여 구시대 역사학자들을 학계에서 대거 축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포크롭스키가 집필한 『간략 러시아사』가 1930년대 초까지 러시아사 교재로 활용되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 소련 역사학과 역사교육 분야에서는 『소련 공산당사(略史)』라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기본 교재가 발행됨으로써 스탈린주의 역사학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탈린주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1950년대 중반 스탈린이 비판받던 시점에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성과 합법칙성을 중심으로 하던 스탈린주의 역사학의 대강은 그 이후의 소련 시기에도 유지되었으나, 심지어 러시아혁명에 대한 해석에서도 어느 정도의 이설이 용인될 정도로 학문의 경직성은 완화되었다. 이러한 역사학 연구 분위기와 맞물려 역사교육 분야에서도 새로운 역사 교과서 제작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역사교육방법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들이 다수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는 학생들의 역사 인식문제와 같은 철학적인 주제만이 아니라, 역사 학습 시에 사용할 수 있는 교수기법 같은 실천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가 다수 발표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이후에는 소련식 사회주의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이후로 러시아연방 정부는 국가 교육 표준 이념 등 정책적인 결정을 통하여 역사교육 분야의 방향을 잡고자 하였다. 역사교육과 관련하여 최근의 상황을 보자면, 교육목표 요소, 내용 요소, 활동 요소를 결합시켜야 한다는 점이 2014년 2월에 공표된 “조국사에 관한 종합학습방법 개념”에서 명시되었다. 또 역사교육의 내용 측면에서는 “2025년까지의 시기에 러시아 연방의 국가민족정책 전략”에서는 러시아 국민들을 공통의 기억의 장으로 결합시키는 역할을 역사교육이 담당해야 한다고 기술되었다. 이처럼 소련과 러시아에서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역사 그 자체만큼이나 격변을 경험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소련 시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학 및 역사교육 분야의 일관된 특징은 두드러져 보인다. 즉, 소련 시기부터 오늘날의 러시아 연방에 이르기까지 소련과 러시아에서 역사학 및 그와 연관된 역사교육은 언제나 관심거리이자 논란거리로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해왔던 것이다. 특히 1960년대로부터 1980년대 사이에 역사연구방법론 분야에서 소련 역사교육학자들이 이룩해낸 성과는 앞으로도 러시아 역사학 및 역사교육분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Immediately after the Bolshevik Revolution, the Soviet government focused on denying the traces of the works of the established Russian historians. Historical education in the schools was banned, and even in 1929, even the ousting of old-time historians from academia through the so-called “academic events” occurred. The Soviet government tried to build the new historical scholarship and historical education through the works of M. N. Pokrovskii, who had the greatest influence on the time. Nevertheless, it can be said that Soviet history and history education were only completed in Stalinist history, which appeared when History of the All-Union Communist Party (Bolsheviks): Short Course was published. Stalinist history and history education reached a turning point when Stalin himself was criticized in the mid-1950s. In conjunction with the atmosphere of history research, new history textbook production work has been actively conducted in the field of history education, and many outstanding achievements have been made in the field of history education methodology. Among them are not only philosophical subjects such as students’ historical perception problem, but also practical subjects such as teaching techniques that can be used in history learning. Perestroika brought about fundamental changes not only in political situations but also in history and education. Since the 1990s, when the Soviet Union disintegrated, the Russian Federation has sought to shape the history education sector through policy decisions such as the idea of national education standards. In recent years with regard to history education, it was stated in the “Concept of Comprehensive Learning Methods for Korean History” published in February 2014 that the elements of educational objectives, content and activities should be combined.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history and history education in the Soviet Union and Russia have experienced such upheavals as history itself. In other words, history has always been a matter of concern and controversy in the Soviet Union and Russia, from the Soviet era to today’s Russian Federation. The achievements of Soviet history educators in the field of historical research methodology between the 1960s and 1980s are expected to contribute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Russian history and history education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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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역사 교육의 현안들 - 역사 교육의 목적, 역사 교과서, 단일국가시험 역사과목을 중심으로

        조호연(Ho Yeon Cho)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2019 슬라브학보 Vol.34 No.4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dentify the issues that have emerged as important issues in the field of historical education in Russia from the time of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to the present day. As history education in the Soviet era was under state control, the situation changed rapidly in the field of history education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In the 1990s, there were several perspectives for the purpose of history education. In the early stages, some scholars thought that the disciplined function of history education should be denied, but since 2000, the role of discipline in history education has been emphasized it as the main purpose of history education. However, rather than injecting a single national ideology in history education, as in the Soviet era, it is thought that history education should serve the functions of national integration and civic education. The discussion about the purpose of history education is reflected in the history textbook issue. The textbooks written in the Soviet period lost their usefulness after the Soviet Union was dismantled, and Russia has steadily made efforts to produce new historical textbooks since the 1990s. Now, rather than a single textbook, as in the Soviet era, history textbooks selected through open competition are being used. Nevertheless, it is pointed out that the political tendency is reflected in the textbook writing, especially on sensitive subjects related to the Soviet period. At present, there is the single state exam for graduates of schools in Russia. The exam initially included multiple choices but turned to measuring comprehensive historical thinking, and the answer scoring criteria were presented in more detail. It is true that some criticism of the single state exam is being raised, but the Russian government is expected to maintain this system in the future. As such, Russia can be said to deal with various issues in the field of history education while facing the upheaval of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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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논문 :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마산포와 러시아

        조호연 ( Ho Yeon Cho ) 경남대학교 가라문화연구소 2013 加羅文化 Vol.25 No.-

        This article is focused on examining the policy of Russia on Masanpo(the old name of Modern Masan) from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It was during the period that the imperialistic powers, including Russia and Japan, were competing for the Korean peninsula and Manchuria. Having considered the historical materials, we came to the following results. First of all, the Russian navy began to be interested in the geopolitical importance of Masanpo after the Sino-Japanese War. However, the suggestion of the Russian navy was put on hold by the Foreign ministry of Russia, which took account of the complexities of international situations. Secondly, the decision of the Korean government to open Masanpo made the Russian navy rearouse the interest in Masanpo. At this time, the Russian government made decision to set up the vice-consulate at Masanpo in order to attract the Russian businessmen as well as to establish the coal equipment for the Russian navy. Although it was faced with the interruption of Japan after the opening of Masanpo, Russia succeeded in secure the land which they wanted in Masanpo. Thirdly, the changes of international situation in the East Asian region prohibited the Russian navy from making use of Masanpo. Moreover, G. A. Kozakov, who was appointed the vice-consul on July 1902, suggested that the Russian government withdraw the Russian guard who took chare of watching on the illegal felling of trees at the land, which was leased by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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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의 본질과 인문학의 발전방향

        조호연 ( Ho Yeon Cho )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人文論叢 Vol.35 No.-

        이 논문은 대학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본 후, 인문학의 발전방향을 고찰한 글이다. 교육제도로서의 대학은 서양 중세에 동업조합으로 성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되어 오다가, 19세기 초에 건립된 독일의 베를린 대학에서 연구와 교수의 일치라는 특징이 등장하였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중사회가 도래하자 멀티버시티라는 다원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학의 역사를 각 시기별로 보더라도 대학의 중요한 본질은 자유였으며, 이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학의 존재이유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편으로는 대학의 여러 학문 중에서도 특히 자유라는 가치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현상이 빈번히 논의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 열풍이 불기도 하였다. 인문학 위기의 근원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게 제시되었으나, 그에 대한 해결책은 크게 보아 논리학적 전통에 따른 것들과 수사학적 전통에 따른 것들로 대별할 수 있다. 논리학적 전통에 따른 해결책은 주로 연구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수사학적 전통에 따른 해결책은 대체로 교육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이런 해결책을 실행하려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으나, 역시 현재의 위기론의 핵심은 인문학 전공자들의 사회진출 문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은 원래 성립되었을 때 교양(liberal arts)으로서의 학문적 전통을 중시했듯이, 오늘날에도 인문학은 각 대학의 교양과정과 전공과정에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인문학과 관련된 주체들은 인문학 전공자들의 사회진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고 판단된다. This essay examines the short history of universities and the essence of this high educational institution in order to propose the development direction of humanities. Throughout all the histories, the universities continued to maintain and respect the freedom from all kinds of authorities. The tradition of respect for the liberal arts has been well preserved in the humanities, which form the core in the subjects of the contemporary universities. Nowadays, the universities in Korea are faced with the restructuring, through which many universities were forced to close down or to reduce the number of their students. Even under the current situation, the humanities must not be abandoned in the universities, because they make the division between the universities and the trade schools. The restructuring of universities is bound together by the so called humanities crisis while the humanities boom took place in societies. After the humanities crisis began to be discussed, some proposed the solutions based on the tradition of logics, while others suggested the solutions following the tradition of rhetoric. In principle, it must not be denied that the suggested solutions have their own validities. Moreover, it is considered that a high level of lecture concerning the humanities should be provided, which enables students to prepare well for the entry into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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