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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적의 시에 나타난 樂天과 無爲 일고

        장도규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69 No.-

        Lee Eun-jeok made a way for a new aspect of literature by moving his innocent idea as it was, which he had realized from the reason of nature that does flow without cease in heaven and earth, into the literature, and further broadened the range of literature by establishing neo-confucian's nature recognition while he found natural beauty lied in nature and realized to bone even confucianism temperament in it. He elucidated again the inevitable relationship from the sympathy between human consciousness and materials, and embodied the substance of reason obtained from consolidation of reason of nature and ego, into his literature. Based on his literature opinion expected, his poetry or literature was reviewed into "Lakchun poetry" poetry and “Muwee poetry". In the "Lakchun poetry", the author interpreted the goal and the spirit of literature lied in his works as the unity of principle of nature and ego. Lee Eun-jeok thought that, only when the pursuit of the principle of nature the sages show is integrated with ego, the inner world of humans, the best work could be created. It means such an aspect of life that is boundlessly open and principle of nature and ego are harmonized together, which is exerted after ceaselessly reasoning the huge universe and growing temperament. In the “Muwee poetry" the reason of nature resident in each phenomena of materials should be pursued, based on the typical confucianism that intends to obtain justice of life in the life and just of nature in the nature. The other one is that poems are to recite the temperament. To him, authentic poems were such ones in which pure temperament was revealed by conserving temperament and accumulating virtue. 회재 이언적은 일생에 네 차례의 사화(士禍)가 일어났을 정도로 정치 사회적으로 도덕적 상실기에 살았다. 일생을 통하여 성현(聖賢)의 학문에 뜻을 두고 도학(道學)에 침잠하여 도덕적 진솔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였으며, 자신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도학적 사유를 그의 문학에 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도학적 삶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문학 전반에 걸쳐 내재된 흐름의 한 축으로 낙천과 무위를 들 수 있다. 낙천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아도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고자 하는 낙천안토(樂天安土)의 정신이다. 마음의 갈등을 떨쳐 버리고, 자연과 화합하면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수신의 정신으로 천리의 진원을 찾고자 하였고, 사물에 대한 관조적 심회, 학문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늘에 순응하는 기쁨을 읊고자 하였다. 무위는 순수하게 자연에 몰입하여 이상향을 추구하는 삶이다. 그것은 구도자적 철학정신과 통하고, 성취된 학문이 성숙의 단계에 이르러 무위락자연(無爲樂自然)의 이상향으로 드러났다. 이언적은 인간의 의식과 사물과의 교감에 의한 필연적인 관계를 재천명하고, 도학적 덕치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인간본연의 근원을 회복하고, 성정을 함양시키고자 하면서도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작위적 행위를 하지 않는 양진경세의 사유양상을 그의 문학에 구현시켰다는 점에서 도학자 문학의 한 전형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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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오현의 도학적 배경과 문학관

        장도규 한국사상문화학회 2004 韓國思想과 文化 Vol.26 No.-

        Chosun ohyun aspired to the learning of the wise and pursued moral philosophy, trying to lead a morally sincere life and to incorporate the thinking of moral philosophy in their literature from a moralistic point of view. they shows the backing of the moral philosophic reason as moralistic point of view and examines Dohakpa literary understanding, dividing into three courses of stirring up, antagonism and opposing, centering on Sajangpa and Dohakpa. Then it examines the literary outlook of Chosun Ohyun who followed them. The Dohakpa starting by Kim Gweng-Pil, Chung Yo-Chang, followers of Kim Chong-Jik had the theory philosophically unsophisticated and it wasn't until Lee Eun-Juk and Lee Hwang that it became logically systematic and literary embodiment of moral philosophy established itself as well. The literature of Chosun Ohyun is the pursuit of moral completion of humanity and from the viewpoint of literary embodiment of moral philosophy it can be said that they showed a real character of the moralists' literature. 조선 오현은 도학에 깊이 침잠하여 자신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시문학의 방향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정여창과 김굉필이 의리에 중점을 두었다면 조광조는 경세에, 그리고 이언적과 이황은 심성의 도야에 시의 중점을 두면서 도학과 문학의 절충을 통한 시풍의 진작을 시도하였다. 정여창김굉필은 시의 바탕이 되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경전를 공부한 연후에야 만이 올바른 문학이 창작된다고 보았다. 철저한 기본적 수양을 갖추고서 때때로 시문을 본다면 그 와중에 시가 저절로 몸에 익혀지는 것이지 시 짓기를 위해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이거나 그것에 전념하여 상지(喪志)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조광조는 문학에 있어서 당대 정치 현실과 그것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담은 경세적 도학시(道學詩)를 지었으나 그 독자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언적은 이를 심화시켜 성정에 바탕 한 문학적 인식을 전제로 관물오리(觀物悟理)의 문학론을 표명하였다. 그것은 성인의 학문에 잠심해서 천지조화의 이치를 궁구하고 인간내면의 성정을 도야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모든 만물에는 천리(天理)가 구현되어 있고 그것을 내면의 순수자아에 체득하여 표출한 것이 그의 문학이요, 시로 인식하였다. 이황은 유가의 전통적 시가관인 시경의 문학관에 충실하여 온유돈후의 문학론을 표명하였다. 그것은 성인의 학문에 잠심해서 천지조화의 이치를 궁구하고 인간내면의 성정을 도야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조선 오현은 관념적 도학에 바탕 한 감성적인 문학의 순화, 즉 도학과 문학을 접맥시켜 도학적 문학을 창출코자 하였다. 주자학을 기조로 자신의 철학을 더욱 발전시켜 존재와 인식의 윤리로 대치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현실문학의 한계를 인간내면세계의 탐구로 극복하려 하였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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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적의 태극론과 도덕론 일고

        장도규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3 No.-

        Hoejae Lee eun-juck cut a main figure in the history of Chosun Dynasty's Confucian ideas by understanding neo Confucianism with a self-direction and creativity and systematizing the orthodox Confucianism of our own. For about two centuries after the introduction of neo Confucianism, some had to focus only on the theoretical sides of Chinese classics of Confucianism while some others had to focus only on practical sides or moralities of Sohak. It is Lee eun-juck who consolidated the two groups into one core system and dug down into neo Confucianism philosophically. He viewed Taeguk as a metaphysical entity which gives a foundation to the existence and shaping of all sorts of things in a real world. Unfolding his lively theory of Taeguk, Lee eun-juck firmly established his ontology of Oneness in Taeguk and emphasized that Sangdalcholly(上達天理) should be pursued only after or by living up to one's commitments to his ordinary daily activities, for example, through Hahhahk Innsah(下學人事). he played a leading role in establishing the concept of Taeguk as "Ree(理)". Though he didn't advocate putting a title of nobility onto "Ree", he said that "Ree" is the origin of all things in the universe and the reason for existence as a concept superior to "Ghee(氣)". Accordingly it can be said that his theory on "Ree" and "Ghee" is based on after 'Ree' comes 'Ghee. Besides, though most of taoist scholors in his days had a tendency to put more importance on "Toi(道)" in the midst of a political chaos Lee eun-juck tried to put forward his own moralism based on "In" for maintaining a new order in the current chaotic world, helping our king become as perfect as kings in ancient Chinese countries, "Yo" and "Soon(堯舜)" and living in such an ideal country modeled after "Yo" and "Soon". Confucianism is generally a practical learning which seeks "Sooghee Ahnin(修己安人)". Even though Confucianism contains many additional metaphysical contents with the aid of the advanced Sung Confucianism, the basic nature of it is mainly based on the principle of "Sooghee Ahnin". 이언적은 성리학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우리의 정통유학을 체계화 시켜 조선조 유교철학사에 뚜렷한 위치를 점한다. 성리학이 들어온 지 200여여 년 동안 경서를 통한 이론적 면에 치중한 이가 있는가 하면 소학(小學)과 행실의 실천궁행에 치중한 이도 있었다. 이 둘을 하나로 묶어 그 핵을 찾아내고 성리학을 철학적으로 파고 든 이가 이언적이다. 그는 현상세계의 배후에 온갖 사물의 존재 및 생성 근거가 되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실재로써 태극을 인식하였다. 이언적은 생동적 태극론을 펴면서 조선전기에서 태극(太極)의 개념을 하나의 이(理)로 정립시키는데 주도적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유교적 태극일리(太極一理)의 본체관을 정립시켰고 상달천리(上達天理)에 대해서는 그 이전에 하학인사(下學人事)를 통하여 가까운 일상생활부터 확실하게 실천한 후에 상달천리를 꾀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또한 당대의 정치적 혼란으로 출(出)보다는 퇴(退)를 중히 여기는 것이 도학파 문인들의 일반적 성향임에도 이언적은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아가 인(仁)을 바탕으로 경세적 도덕론을 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 나의 군주를 요․순임금이 되게 하고 그 백성이 요․순 시대와 마찬가지의 도덕적 이상국가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그의 포부를 밝혔다. 유학은 본래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실천적 학문이다. 비록 성리학의 발달로 인해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이 첨가되었지만 그 본령은 여전히 수기와 안인에 있다. 따라서 성리학이란 수기와 안인에 대한 형이상학적 정당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언적의 태극론과 도덕론은 그의 유학사상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退溪詩에 나타난 思惟一考

        장도규 영남퇴계학연구원 2010 퇴계학논집 Vol.7 No.-

        퇴계 이황의 시에 드러난 사유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明理 成道의 경지란 우주근원으로서의 天理之道를 읊은 것이다. 사물을 보고 그 이치를 체득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학문은 주자학의 실천을 가장 중요시 여겼으며 철학적 이치를 시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천리를 존양하고 마음을 성찰하는 삶의 태도를 지녔다. 이황의 명리성도의 경지에 이른 시는 표면적으로 자연의 정경과 자신의 감흥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면의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자연정경에 先在하는 理를 밝혀 노래하려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의 자 연현상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선재하는 우주존재의 진리를 체득한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다. 溫柔敦厚라는 풍격은 대상을 향해 적극 적으로 다가서기 보다는 내향적으로 반성이나 반추라는 여과의 과정을 거쳐 의경을 나타내려는 태도이다. 시를 짓기 이전에 작자의 성정을 바 르게 하여 읽는 자로 하여금 理와 敬에 기반 한 온유돈후한 데로 나아 가게 하고자 하였다. 自然達觀의 사유에서, 이황의 退는 자연과 불가분 의 관계가 있다.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자연, 즉 道家의 無爲自然이 아닌 有爲의 현실을 함께하는 儒家의 ‘時中’의 달관적 장소인 것이다. 자 연을 통해 賞自然할 뿐만 아니라 심성수양을 위한 爲己之學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학문은 자연과의 합일을 체험하면서 심성을 탐구하 고 기르는 것이었다. 자연을 구심점으로 하여 敬과 誠을 부단히 投射하 여 물아일체의 달관적 감격을 노래한 것이다

      • KCI등재

        회재 이언적의 情意的 祭文 연구 ? 부모님에 대한 제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장도규 한국사상문화학회 2006 韓國思想과 文化 Vol.35 No.-

        A study on meaning of Lee eun-zuk`s memorial address / Jang dao-gyuNeo-Confucianism in Chosun Dynasty was at the zenith of its prosperity in the 16 century. At that time, Hoi-jae, Lee Eon-jeok(1401-1553) was a main person of leasing neo confucianism in Youngnam province. Well aquainted with moral philosophy and written good style, he was engaged in transering ethics to literature. Lee Eon-jeok started new aspect making ethics to literature by applying his pure mind that is result of awarance for all creatures which is congested width natural law, and he attributed to make wide of circle in literature by establisyhing renewly Sund confucianism researcher's recognition for nature.The characteriztic of memorial address are as followings his memorial address showed the inner feeling of human nature and lee`s memorial address also revealed the traditional view of confucianism, it can be considered as a model for the general memorial address, and memorial address showed Neo-Confucianism of literature which have focused upon Confucianism.Key wordsLee Eon-jeok, memorial address, Neo-Confucianism, ethics, Chosun Dynasty 제문은 망자(亡者)를 추모하고 애도하며 제전(祭奠)을 올리는 글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치원에서 시작하여 개화기까지 꾸준히 실용문으로서 창작되어 왔다. 제문이 질적 확대와 양적 팽창을 가져온 시기는 성리학의 도입과 아울러 사림의식이 성장하였던 조선전기이다. 그 이전까지 지어졌던 신(神)대상의 제문이나 대행(代行)제문대신 작가와 절친한 가족이나 친구, 사제(師弟) 등에 대한 인간중심의, 인간에 대한 짙은 애상이 담긴 제문 창작이 이루어졌다. 신에 대한 송축이나 기원을 담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지녀야하는 덕목을 밝히고 그 실천의 측면을 칭송하는데 중점이 두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조선전기 사림파 제문의 한 전형으로 회재 이언적(1492-1553)의 제문을 들 수 있다. 본고에서 다룬 개장선부군제문과 제선비손부인문은 유교식 상제례의 보급과 향촌교화 활동과 실천윤리의 보급으로 인하여 제문의 대상이 신(神)에서 혈연과 지연, 학연의식의 확대에 의한 인간중심으로 옮겨지면서 단순히 망자의 행적과 공로를 서술하였던 이전의 제문과는 달리 적극적인 작가의 감정개입을 통해 성리학적 이념의 이면(裏面)에 존재하는 작가의 경험적이고도 솔직한 감정과 의식을 표출하였다. 개장선부군제문은 이언적의 나이 10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찬성公 이번의 묘를 개장을 하면서 영전에 고한 제문이다. 내용은 일화를 통한 이별의 기억, 어릴 적 현실, 마음뿐인 사부(思父)의 정, 뒤늦은 개장의 망극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을 되살려 부정(父情)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불효지죄의 눈물로서 그것을 도덕적으로 승화하였다. 제선비손부인문은 제문의 전형적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주인공인 어머니 손씨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작가의 진솔한 감정이 읽는 이로 하여금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였다. 중요한 내용을 순서대로 보면 모자간의 이별과 꿈속에서의 상봉, 부음소식과 어릴 적 어머니의 은혜, 종신봉양 못함의 죄책감과 유명영격(幽明永隔)의 원통함, 슬픔의 격정적 발로(發露) 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임종소식을 듣고 자식으로서 도리를 못한 데 대한 애한, 비탄의 사모곡으로 애상성의 깊이에 있어 일반 제문보다 그 애절함과 비통함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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