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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謝氏南征記>의 主要 異本 考察

        이래종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2003 大東漢文學 Vol.19 No.-

        지금까지의 『謝氏南征記』 異本 연구를 통해 우리는 약 80여 종에 달하는 이 소설 이본들의 계열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기왕의 논의에 힘입어 이 소설의 주요 이본으로 거론되고 있는 4편의 寫本의 형성 과정과 그 특성 및 가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南基泓本은 金春澤 漢譯本 계열에 속하는 이본이다. 이 이본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달리 누군가에 의해 별도의 윤색이 가해지기도 하고 김춘택의 보유문이 본문 속에 편입되기도 한 이본에 불과하다. 따라서 김춘택 한역본으로서의 그 본문의 이본 가치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延世大本은 국문 원본계의 직역투 한역본이다. 『사씨남정기』 국문 原本의 모습을 비교적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으므로 오늘날 이 이본을 통해 金萬重의 국문 원본의 모습을 규지하고 김춘택 한역본과 국문 원본과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 이본 가치를 높게 평가할 만하다. 藏書閣本은 국문 원본에 가까운 이본이다. 그렇지만 한문본에서 번역된 것 같은 부분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全篇의 문장 흐름이 비교적 매끄러운 편이며 아울러 우리말 古語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현존 국문 이본 중에서는 우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만하다. 趙東一本도 국문 원본에 가까운 이본이다. 하지만 이 이본은 金萬重의 『南征記』 원본을 한역한 이본인 『白 洲重逢記』와 김춘택 한역본의 일부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이본 가치는 그다지 높게 평가할 수 없다. Some scholars have made the studies of different versions of the SASSINAMJUNGGI(謝氏南征記), so We have gotten at about eighty kinds of the interrelated versions in this novel. In this thesis, through the preceding research, I made a special study of a process of the four manuscripts' formation and characteristics. The Version of NAMGIHONG(南基泓) is a different version that is belongs to a chinese version of KIMCHEUNTAEK(金春澤). This different version is not only embellished separately by someone but also included KIMCHEUNTAEK's added paper in the text. Consequently value of the text is not estimated highly. The Version of YONSEI UNIVERSITY is the chinese version which is translated literally from the korean original text. Because SASSINAMJUNGGI has kept the figure of korean original text unimpaired, through this text, we can both know KIMMANJOONG(金萬重)'s Korean original text and presume the distance between KIMCHEUNTAEK's Chinese version and Korean original version. At this point, we can estimate this text highly. The Version of CHANGSOGAK(藏書閣) is nearly like korean original text. But this version has various parts which seems to be translated from the chinese version. And yet the whole stream of sentences are relatively smooth, what is more, it contains many korean classical words. Therefore among existing different versions of korean, we can estimate highly. The Version of CHODONGIL(趙東一) is also nearly like korean original text. But this version is translated into korean from the part of BAEKBINJOOJOONGBONGGI(白蘋州重逢記) which is the different version of KIMMANJOONG's NAMJUNGGI(南征記) and KIMCHE UNTAEK's chinese version. As a result, this version can not valued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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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疑義의 形式과 그 特性

        이래종 대동한문학회 2013 大東漢文學 Vol.39 No.-

        科舉制度在將儒教視為篇國家的指導理念乃至實踐倫理的東洋各國主要是通過儒家經傅的考試来選拔官吏的制度。科舉通過考試檢驗儒家經傳的方法隨著時代的變化而變化著,並非固定不變,大體上分為口述考試和制述考試。口述考試包括貼經、口義和講書的方法,制述考試包括五經義和四書疑的方法。 在我國經義受到北宋的王安石創始的經義試取制度的影響,在高麗中期睿宗時代導入,通過六經考試後,從麗末忠樓王時開始,一起考六經義和四書疑。到了朝鮮時代,大力獎勵儒學,前期在文科進行初試的初場,在小科進行生員試的初試,在會試進行疑義。後來,到了中期,五經義降級至備篇,自英正朝以後,在文科初試只寫作1篇四書疑。雖然在生員試初試複試依然寫作四經義和四書疑各l篇,但比重比過去減少了很多。 四書疑和五經義是形式上相同的文體,只是出題的範圍和方法等稍有不同而已。該形式無論是在中國,還是在我園,都隨著時代的變遷而變化著,並非固定不變。我國從高麗中期以後開始制述疑義,朝鮮前期以前的 作品好像並沒有留存下來。因此,從明宗朝以後的作品來看,大概由破題、承題、小講、大講、結尾5個段落構成。 科擧制度는 儒教를 국가의 指導理念 내지 實踐倫理로 삼았던 東洋의 諸國에서 주로 儒家 經傳의 試驗을 통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였다. 科擧에서 儒家 經傳을 시험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일정하지 않았으나 대체로 口述 試驗과 製述 試驗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구술 시험에는 貼經과 口義 및 講書의 방법이 있었고, 제술 시험에는 五經義와 四書疑의 방법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經義는 北宋의 王安石이 창시한 經義 試取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려 중기 睿宗 시대에 도입하여 六經으로 시험하다가 麗末 忠穆王 때부터는 六經義와 더불어 四書疑도 함께 시험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자 儒學을 적극 장려하면서 전기에는 文科에서는 初試의 初場, 小科에서는 生員試의 初試와 會試에서 각각 疑義를 시험하였다. 그러다가 중기에 이르러 五經義는 備篇으로 그 격이 떨어졌다가 英正朝 이후에는 文科 初試에서는 四書疑 1篇만을 작성하게 하였다. 生員試에서는 초시 복시에서 여전히 四經義 四書疑 각 1篇씩을 작성하게 하였지만 그 비중은 이전보다 크게 하락하였다. 四書疑와 五經義는 형식상 동일한 文體로써 그 출제의 범위와 방법 등이 다소 다를 뿐이었다. 그 形式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시대마다 달라 일정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중기 이후 疑義가 製述되기 시작하였으나 조선 전기 이전의 작품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이에 明宗朝 이후의 작품을 살펴보면 대략 破題 承題 小講 大講 結尾의 5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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