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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의 정서지능 및 직무만족도가 이직의도에 미치는 영향
김화순(Hwa Soon Kim),문혁준(Hyuk Jun Moon) 가톨릭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2016 생활과학연구논집 Vol.35 No.1
This study looks at the turnover intention of child-care teachers, emotional intelligence in the child care teachers, job satisfaction, and investigate the impact on turnover intention. The results of this study were as follows. First, emotional Intelligence of child care teachers in accordance with the socio-demographic variables were significantly in age, education and experience. Second, job satisfaction of child care teachers in accordance with the socio-demographic variables were significantly in age, education and pay, experience, establishment types full. Third, turnover intention of child care teacher in accordance with the socio-demographic variables were significantly in education, pay, establishment types. Fourth, emotional intelligence and overall job satisfaction are correlated. Fifth, look at the relative influence of socio-demographic background(education, pay, establishment types), job satisfaction, emotional intelligence on turnover intention, Child care teachers support facilities(national and public, work/corporate) is also a lower turnover intention than the unsupported facilities(private, homes).
Dialogism of Prospero's ‘Shadow' in The Tempest
Hwa-soon Kim(김화순) 한국셰익스피어학회 2011 셰익스피어 비평 Vol.47 No.4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Prospero)는 극의 거의 종결 부에 이르러 시종으로 부리던 캘리번(Caliban)을 나폴리 왕인 알론조(Alonso)와 그의 수행원들 앞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의 캘리번 수용은 캘리번이 자신의 시종이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며 다의적 해석을 가능케한다. 극 속에서 캘리번은 프로 스페로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하나의 비유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란 개인이나 사회 혹은 제도의 어두운 숨겨진 이면을 뜻한다. 개인의 경우 “그림자”는 의식세계에서 두려워하고 혐오하여 감추고 억압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자신 속의 타자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을 경우 개인은 심리적으로 분열될 수 밖에 없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의 지팡이와 책을 버리고 캘리번을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진정한 자아를 가진 자로서 고국으로 귀환한다. 이런 면에서 프로스페로는 셰익스피어의 인물 중 자아이해가 가장 잘 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프로스페로의 “그림자”는 제임스 1세 치하의 영국이라는 국가의 “그림자”이며 영국의 해외식민지 원정의 “그림자”에 관한 비유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캘리번의 이미지는 애니아 룸바(Ania Loomba)가 지적했듯이 인종차별과 식민지적 욕망의 산물이다. 오셀로처럼 캘리번은 르네상스 시대 연극무대에서 타자의 이미지를 재현해내고 있다. 그 무대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 물듦, 동 일화에 대한 시대적 공포를 재현해내며 확인과 재생산의 순환고리를 완성시킨다. 극 속에서 캘리번과 프로스페로의 긴장관계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바로 신세계에서 식민주의자들의 두려움이기도하며 제임스 1세 치하에서 정치적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기도하다. 한편, 템페스트는 타자에 대한 수용이 타자를 가장 잘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캘리번은 프로스페로가 그를 마법의 힘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해 주었을 때에 프로스페로에게 기꺼이 복종하며 변화를 약속한다. 힘을 통한 억압적 지배를 배제한 타자에 대한 수용은 셰익스피어가 당대의 식민주의적 정서를 넘어 탈 식민지주의적 시선을 지녔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