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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용(有用)과 무용(無用) 사이에서 ­장자(莊子)에서 ‘용’(用)의 역설과 그 철학적 함의­

        김시천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19 철학연구 Vol.0 No.60

        This paper deals with the famous “paradox of uselessness” that a useless thing is rather useful in the Zhuangzi. This theme, repeated through the short parables and anecdotes that a big tree in the mountains are useless and long lived, is in fact a trace of existential thinking to overcome the fate of the individual in the social changes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of ancient China. Generally the usefulness is regarded as an important value as one’s ability and qualities. Just as the usable trees are useful, being useful is a human pursuit by revealing human values. But Zhuangzi begins the journey of thinking to overcome the paradox in human life. According to him, the paradox of uselessness is not one, but two. It is not my use of my abilities that I have developed, that is, my employment is not me, but the employer of my abilities that I have learned and trained. Rather, what I can use is considered useless to those who hire me. It is my life and my living. At this point, Zhuangzi refers to the theme that “a useless thing is rather useful.”(無用之用)The paradox of uselessness of Zhuangzi, in today’s terms, can be understood on the one hand as the discovery of privacy as a space to enjoy one’s life and the effort of overcoming alienation to escape the subordinate life. And this problematics is in line with the Analects of how to view the employment to royal office and the learning for oneself. Thus, this paper raises the necessity to re-define the Zhuangzi’s philosophy in the flow of philosophical history in ancient China. I think this issue will require further discussion and dispute in the future. 이 논문은 『장자(莊子)』의 유명한 “쓸모 없는 것이 오히려 쓸모 있다”는 ‘용(用)의 역설’을 다루고 있다. 산 속의 커다란 나무는 쓸모가 없기에 오히려 오래 산다는 우언(寓言)을 통해 반복되는 이 주제는, 실제로는 전국(戰國) 시대라는 전쟁기의 사회 변화 속에서 개인이 처한 운명을 극복하려는 실존적 사유의 흔적이다. 상식적으로 ‘쓸모’(用)란 스스로의 능력이나 자질로서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쓸모 있는 나무가 유용한 것처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인간적 가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간이 추구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장자는 그 역설을 인간이 처한 삶 속에서 극복하려는 사유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용의 역설’은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이다. 내가 키운 나의 능력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 즉 내가 배움과 훈련을 통해 기른 능력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고용한 자라는 점이다. 오히려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나를 쓰는 자에게는 무용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나의 생명과 삶이다. 장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말한다. 『장자』의 ‘용의 역설’은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한편으로 자신의 삶을 향유할 공간으로서 ‘사적 공간’의 발견과 종속된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소외 극복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논어』의 문제의식에서 보면 ‘위기지학’과 ‘출사’(出仕)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장자』의 철학을 고대 중국의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규정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문제는 향후 더 많은 논의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 KCI등재

        ‘천하’(天下)에서 ‘강호’(江湖)로: ㅁ장자』에서 ‘강호’의 발견과 ‘사회’의 상상

        김시천 동양사회사상학회 2019 사회사상과 문화 Vol.22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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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deals with the social thoughts of the Zhuangzi(莊子), one of the Philosophers and Hundred Schools in ancient China. In the twentieth century, the Zhuangzi was studied mainly on metaphysics, ontology, and epistemology, but received little attention from the term ‘the jiang-hu or rivers-and-lakes’(江湖), which reveals his unique perspective on the social. The jiang-hu is a plain word that literally means rivers and lakes. However, in the context of the emergence of the word in the Zhuangzi, the unique meanings of “the tian-xia or Under Heaven”(天下) are revealed. If the tian-xia is basically a politico-spatial meaning of the extent where the emperor’s political power is affected, then the intent of that word indicate to the outside of that range. Of course, in ancient China, the rivers-and-lakes cannot be said to be a realistic social space. Also, it does not describe in detail what kind of institutions and norms construct the community. Nevertheless, the rivers-and-lakes seems to have sufficient meaning as a means of resistance and criticism against the centralized power order that was in place at that time. For this reason, the concept of the rivers-and-lakes presented by the Zhuangzi is not presented as a blueprint for a society but is defined as imagination. But imagination is not just fiction. It is ‘imagination’ because it can be a reality like the modern society we live in today, but it is not systematic and concrete. In this paper, I tried to describe the unique social and ideological meaning and background of his concept of the rivers-and-lakes. First, the Zhuangzi criticized ‘the tien-xia’ as a centralized system led by the Legalists and Confucians at that time, and tried to reveal that he imagined a new society called Kang Ho. Second, the rivers-and-lakes was expressed as a “community of friends” formed by voluntary mutual agreement of people with uncommon characters. This meaning and historical context of ‘the rivers-and-lakes’ received little attention in the academic circle of the 20th century, and I wanted to reveal that it is an area of interest in future research. The the rivers-and-lakes, comparable to the western word, ‘society’, is thought to be a useful concept to reexamine the socio-political thoughts of the Zhuangzi and the various social spheres in the past of East-Asian world. Although the rivers-and-lakes is still in use, its origin and meaning have never been discussed in academic circles. This paper presents the meaning and context that was first used in the Zhuangzi, and can be compared with the meaning of that word, which was used in various fields in the past. It is also expected to be an opportunity to stimulate new research in fields other than philosophy and thought. 이 논문은 고대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장자(莊子)』의 사회사상을 다루고 있다. 20세기에 『장자』는 주로 형이상학과 존재론, 인식론 중심으로 연구되어왔으나, 그의 독특한 사회에 관한 관점을 드러내는‘강호’(江湖)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강호’는 글자 그대로는 강과호수를 뜻하는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장자』에서 강호가 등장하는 맥락을 살펴보면, ‘천하’와 대비되는 독특한 의미들이 드러난다. ‘천하’(天下) 가 기본적으로 황제의 정치 권력이 영향을 미치는 곳을 의미하는 정치공간적 의미라면, 강호는 그 범위의 바깥을 의미한다. 나는 이 논문을 통해 그의 ‘강호’ 개념이 갖는 독특한 사회 사상적 의미와 배경을 서술하고자 했다. 첫째, 장자는 당시 법가(法家)와 유가(儒家) 가 주도하던 중앙집권화된 체제로서의 ‘천하’를 비판하며, 강호라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였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둘째로, ‘강호’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의 자발적 상호 합의에 의해 구성되는 ‘친구들의 공동체’ 로 표현된다. 물론 고대 중국에서 ‘강호’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공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강호’가 어떤 제도와 규범으로 이루어진사회인지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당시에 진행되었던중앙집권화된 권력 질서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의미로서 강호는 충분한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장자』가 제시한 강호의 개념에 대해 일종의 사회에 대한 청사진으로 제시하지 않고, 다만 상상이라는 말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상상이 허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살고 있는 현대 사회처럼 현실이 될 수 있는, 그러나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지 않기에 ‘상상’이라고 한 것이다. ‘강호’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은 과거 거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앞으로의 『장자』 연구에서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번역된 용어인 ‘사회’에 필적하는 ‘강호’ 는 『장자』의 사회 정치 사상은 물론 그 후의 다양한 사회적 영역을 재조명하는 데에 유용한 개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강호’는 지금도 여전히 쓰이고 있는 말임에도, 그 기원과 의미는 그간학계에서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 이 논문은 『장자』에서 처음 쓰인 의미와 맥락을 제시함으로써, 과거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던 강호의 의미와 비교해 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철학과 사상 이외의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를 자극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또한 기대한다.

      • KCI등재

        도(道)의 친구들 - 『장자』 ‘막역지우’(莫逆之友)의 의미와 함축 -

        김시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9 시대와 철학 Vol.30 No.2

        The thoughts of Chuangtzu have generally been known as the literature within Taoism that criticized Confucianism among post-all philosophers. The cental thoughts are closely related to the thoughts of Laotzu along with the views of the world and humans the philosophy on enlightenment and virtue, which is uniquely developed into ‘the free and easy wandering’(逍遙) and ‘the making all things equal’(齊物) and they are considered as the philosophy to advocate the freedom of consciousness. However, many philosophers have recently emphasized the differences between Laotzu and Chuangtzu because they tend to firmly find them individual. In fact, are we able to realize where the characteristics of Chuangtzu are? This research, above all, accounts for the traits of Chuangtzu in accordance with the viewpoints of direct narrators, which helps to rationally understand the strange characters' personalities, temperamental behaviors, and fractious conversations among them. Also, these various aspects of them can be interpreted as deliberate approaches to disrupting the order of ranks based on joking and avoidance relationships to analyze the anthropology. In this sense, Chuangtzu partially differs from the other literature because unlike his, its contents mostly utilized ‘the ruler and the ruled’(君臣) and ‘the master and the diciples’(師弟) relationships among traditional Five Cardinal Relations in Confucianism. Further, these characters show the continuity of the natural world through the cosmology of ‘ch’i’(氣) and the thoughts of Chuangtzu have been understood to secure equal human interactions through this continuity. This is the philosophical strategy to distinguish his thoughts from Mencius which has focused on every human' ‘nature’(性) to change into Yao-Shun(堯舜). Also, the thought about all human lives from the transformations of ‘ch’i’, the main source to form the world, indicates a kind of natural equality. This research aims to comprehend the ideal egalitarian society that Chuangtzu conceived from the evidence of humans, their societies, and relationships through his distinctive traits. In addition, his imagination about freedom suggests that he depended on the desires for the equality. In this regard, his philosophy implies possibilities to interact with the issues about the present individualism and freedom within contemporary philosophy boundaries. 『장자』(莊子)는 일반적으로 선진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유가(儒 家)의 비판자였던 ‘도가’(道家)에 속하는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심 사상은 『노자』(老子)와 함께 도(道)와 덕(德)에 관한 철학을 핵심으로 하는세계관과 인간관에 있으며, 이를 발전시킨 ‘소요’(逍遙), ‘제물’(齊物)과 같은 독특한 사상은 정신(精神)의 자유를 옹호한 철학으로 평가된다. 하지만최근 많은 학자들은 『노자』와 『장자』 사상의 차이를 강조하며 서로 독자적인 철학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장자』 사상의 독특성은어디에 있는가? 이 논문은 무엇보다 『장자』에 등장하는 화자(話者)에 초점을 맞추어텍스트의 특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장자』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비난하고, 조롱하며, 가르치고 일깨우면서 경합하듯 대화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제처럼가르침을 주고받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수평적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친구라고만은 볼 수 없는 기이한 관계로 설정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장자』는, 전통적 인간관계의 중심축인 오륜(五倫) 가운데 ‘군신’(君臣)이나 ‘사제’(師弟) 관계의 화자들이 등장하는 그 외의 문헌들과 일정 정도 구분된다. 나는 『장자』에 등장하는 화자들을 인류학의 분석 도구인 ‘농담관계’ 와 ‘회피관계’ 개념에 비추어 해석하고자 했다. 『장자』는 친밀성과 상호부조라는 도덕적 관계인 친구에 대해 ‘막역’(莫逆)으로 새롭게 규정하는데, 이는 ‘농담관계’가 보여주는 몇 가지 특징과 매우 유사하다. 이를 통해 보면, 『장자』에 등장하는 기괴한 인물과 행적의 설정은 일종의 위계의 전복을 의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는, 『장자』에 등장하는 기괴한 등장인물들의 성격, 그들 사이의 괴팍한 행적과 대화를 합리적으로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이러한 등장인물들은 ‘기’(氣)의 우주론을 통해 자연세계의 연속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장자』가 수평적 인간 관계의 근원을 자연의 연속성을 통해 확보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요순(堯舜)과 같이 될 수 있는 ‘본성’(性)을 지닌다는 『맹자』(孟子)와 구분되는 철학적 전략이다. 세계를 형성하는 근원인 기(氣)의 취산(聚散)으로부터 인간의 생명이 유래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자연적 평등을 암시한다. 이 논문은, 이와 같은 『장자』 철학의 독특성을 통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 관계에 대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상상하였던 흔적이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장자』의 자유에 대한 상상은 평등에 대한 염원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장자』이해는, 『장자』 철학이오늘날 ‘개인주의’와 ‘자유’ 등과 관련된 현대 철학의 쟁점들과 연결될 수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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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老子와 帝王의 도 - 노자의 ‘전설’과 <노자> 텍스트에 대한 재검토 -

        김시천 동양철학연구회 2012 東洋哲學硏究 Vol.69 No.-

        The Lao-tzu is not an easy text to read, translate, and interpret. Still, I believe that the problems with regard to the text and author of the Lao-tzu has not solved. According to the examination of Angus C. Graham, the legends of Lao-tzu in the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 reveals the complexity of the person, as an alledged author, that consists of legends originated from different sources. In this case we need to have an other approach to the Lao-tzu, the Lao-tzu text in itself, in particular, the personal pronouns. It resulted that the Lao-tzu was an text of the elite in ancient China, because the sayings of Lao-tzu normally addressed the ruling class about the issues of good government and social order. 필자는 이 글에서 두 가지 논의를 담아내고자 했다. 첫째, 『노자』의 저자에 관한 기초자료로 간주되어 온 사마천의 「노자열전」에 담긴 전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노자열전」에 대한 그레이엄, 콘 등의 학자들의 치밀한 분석에 따를 때 우리는, 「노자열전」이 『노자』의 저자에 관한 사실들을 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한대의 시점을 가장 충실하게 드러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자』가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전설들이 한데 얽혀서 하나의 ‘역사화 된’ 노자상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게다가 그 ‘역사화 된’ 노자는 한대 초기의 한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다. 둘째로 필자는 그간 『노자』의 저자를 확정하려는 논의와 달리, 『노자』에 등장하는 인간에 관한 표현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른 제자문헌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성인(聖人), 후왕(侯王) 그리고 사(士)라는 정치적 유력자들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노자』의 화자와 청자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노자』라는 책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와 달리 보통의 백성이나 일반적인 의미의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매우 부정적이고 피상적인 의미 외에는 부여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필자는 다른 어떤 문헌보다도 『노자』가 ‘호모 임페리얼리스’라는 당시 천하의 정치적, 사상적, 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이라 제안하고자 했다. 이렇게 보면 『노자』는 물론 선진 제자백가 문헌에 대해 우리는 누가, 누구를 위해 제시한 텍스트 혹은 철학사상인가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개념 중심의 연구가 놓치기 쉬운 몇 가지 지점들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 KCI등재후보

        도가와 여성성 - 노자에서 ‘돌봄’의 개념은 가능한가

        김시천 한국여성철학회 2007 한국여성철학 Vol.8 No.-

        The feminist expressions of the text Lao-tzu had already been famous among scholars, though under an ambiguous concerns. For more than 50 years Joseph Needham's voice on the affinity between feminism and Taoism has gone to the heart of feminist philosophers. But I want to set against the voice of Joseph Needham on the Lao-tzu. The man, the author of Lao-tzu, was not a feminist philosopher. When we scrutinize the unearthed texts that has named by the Lao-tzu in 1973 and 1993, we cannot help concluding that the feminist approaches to the Lao-tzu are the most recent ones. In the oldest text of the Lao-tzu, the Guodian Lao-tzu, we have no evidences on the feminist thoughts. On the contrary, a new excavated text together with the silk manuscripts Lao-tzu in Mawangdui in 1973, feminist expressions turned into an anti-feminist context. The probability of the meeting of feminism and Taoism rests on the specified commentaries on the Lao-tzu at a latest date. And the most famous sinologist was Joseph Needham that insisted on the close relation of Taoism and feminism. 중국의 문헌 노자에는 ‘여성적’ 표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이를 현대의 여성주의 철학과 연결시키거나 또는 친여성주의적 철학으로 노자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상당수 있어 왔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해석에 동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해석은 노자와 관련된 문헌 전통에서 근거를 찾기 어려우며, 또한 특정 주석서를 통한 해석에 바탕하여 해석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자를 여성주의와 접속시키려는 시도의 발원지는 조셉 니담, 앤거스 그레이엄 그리고 모계사회와 생식숭배론이다. 이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서 나머지 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은 니담의 논의이다. 그런데 이러한 니담의 해석은 노자에 대한 도식적 규정, 선별적인 원문 인용에 근거한 것으로서 실질적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오히려 다른 학자들은 노자의 여성적 표현이 여성성의 강조라기보다, 성인 남성 통치자의 보완적인 처세 방식이라 말한다. 실제로 새로이 발굴된 곽점노자에는 여성적 가치를 강조하는 표현을 찾을 수 없으며, 백서노자와 함께 발굴된 문헌에서 ‘여성적 절도’는 오히려 반여성주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상 노자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은, 따라서 니담의 자극을 통해 새롭게 제기된 문제의식으로 노자를 해석하려는 시도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주의할 점은 춘추전국 시대의 노자라는 텍스트 자체에 혹은 ‘노자’라는 인물에게 ‘여성주의적 철학’ 또는 ‘친여성주의적 사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 KCI등재

        해석(解釋)인가, 전유(專有)인가?- 20세기 한국의 노자 이해와 ‘동양철학’(東洋哲學) -

        김시천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9 儒學硏究 Vol.47 No.-

        The thoughts of Laotzu(老子) have been considered very significant in Korea because they are one of the core elements to consist of the ‘Three Teachings’―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Particularly, Laotzu and Confucius established two important starting points of the mainstream, all philosophers and scholars, throughout the entire philosophy history at the beginning of twentieth century. Also, the following many related texts and actions have been regarded traditional key factors because these contributed to the process of East Asian philosophical history. However, his thoughts were clarified as heresy, and Confucian scholars in Chosun were unaware of them. This research shows how importantly the thoughts of Laotzu change into positive outstanding traditions. His thoughts have been compared with Confucianism texts because of ambiguous poetical styles, and historically conveyed through not annotation but appropriation. From Song Dynasty, influential Confucian philosophers and nobility in particular integrated or embraced his thoughts in the manner of ‘an annotation of Laotzu by Confucian ideas’’(以儒解老). Some Confucian scholars’s annotation of Laotzu in Chosun is a case in point. Also, from the late nineteenth to the twentieth century, the Western philosophy appeared in the University education and this made controversial issues about civilization and self identity, which caused East Asian philosophy to spontaneously change. In fact, the influential Western philosophy embraced Eastern philosophy as the collective identity without reference to the authenticity and heresy and therefore, the latter changed into the former and has remained positive. Nonetheless, unlike the thoughts of Laotzu and Chuangtzu on the reality and its awareness, this appropriation process makes these thoughts overlooked. His thoughts and the East Asian traditional philosophy have limitations not to try to solve the reality but to passively act and affirm the values and meanings on the past in accordance with the tradition. In this way, this research emphasizes the necessity of the twenty-first century Laotzu and his thoughts and reviews the twenty century ones. 오늘날 한국에서 노자는 유(儒)·불(佛)·도(道)라는 ‘삼교’(三敎)를 구성하는 가장중요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20세기 초에 공자와 더불어 노자는, 철학사의 원류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가장 중요한 두 기점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연원하는 갖가지 텍스트와 실천들은 동아시아의 철학적, 사상적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전통’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19세기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노자는 명백한 ‘이단’(異端)으로서, 배척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종종 잊혀지곤 한다. 이 논문은 ‘이단’으로 배척되던 노자가 어떻게 중요한 하나의 ‘전통’으로 변화, 긍정될 수 있었는지 살피고 있다. 유가 텍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호한 시적 문체로 구성된노자는, ‘해석’(annotation)보다 ‘전유’(appropriation)를 통해 역사 속에서 전수되어 왔다. 특히 송대(宋代) 이래 문자의 세계를 주도했던 유가 문인(文人) 사대부(士大夫)는 ‘이유해로’(以儒解老)라는 전유의 방식으로 노자를 통섭 또는 포용하고자 했다. 몇몇 조선 유학자들이 남긴 노자 주석서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근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서구의 ‘철학’ (philosophy)이 유입되고, 대학 제도가 도입되면서 과거의 물적 기반을 상실한 전통적학문 체계는 ‘문명화’와 ‘자기 정체성 유지’라는 커다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통 담론은 ‘동양철학’이라는 범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했다. 한편 ‘서구’라는 거대 타자의 등장은 정통과 이단으로 구분하던 내적 차이를 ‘동양’ 이라는 집단 정체성으로포용하면서, 마침내 노자는 ‘이단’에서 ‘전통’으로 변화, 긍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전유의 과정은 노자나 장자와 같은 소수 전통이 과거의 사회와 역사에서 씨름하고자 했던 현실과 그 문제의식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노자를 비롯한 ‘전통’은 현실의 문제를 씨름하기보다 ‘전통’을 구성하면서 과거의 가치와 의미를 긍정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게 되는 한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노자에 대한 해석과 토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는, 이러한 20세기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KCI등재

        『논어(論語)』의 ‘직(直)’ -‘직궁(直躬)’ 이야기와 정의(justice)의 딜레마?-

        김시천 한국유교학회 2019 유교사상문화연구 Vol.0 No.77

        The interpretation of traditional classics often reflects the conflict of reality. One such example is the controversy related to the ‘zhi(直)’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China, Confucius’s ‘zhi’ seems to have been understood as a discussion related to a dilemma of filial piety and social justice. The saying of Confucius, seemingly defending the son who concealed the father’s theft, seems to be so interpretable. However, if we take a comprehensive look at the “anecdote of Zigong(直躬),” which appears in various literatures, it is less likely. I pointed out in this paper that the word ‘zhi’ has at least three concepts and the meaning is not simple. Secondly, the “anecdote of Zigong(直躬),” is appeared in various literatures besides the Analects, and can be mainly divided into two transmissions. In the one line of the Analects, Zhuangzi, and Huainanzi, there are the discourse, in which was discussed as the matters of uprightness(直) or truthworthiness(信). The other line is the Annals of Lü Buwei and Han Feizi, where we find a discussion that can be seen as a dilemma of the filial and justice. In this way, we see that todays the view of the dilemma of filial piety and social justice is based on the legalist interpretation rather than the Confucians. In addition, the “anecdote of Zigong” of the Analects may be a story that reflects the reality where human emotions, morals, and law coexist. In addition, the anecdote can be read as a story that shows the process of combining ritual forms and emotional elements. Similarly, even if we interpret the story of Zigong as a debate involving filial piety and justice, the two may not necessarily be contradictory concepts. For from the Confucian vision of society or a modern point of view, a just society can mean a society where filial piety is recommended or better for the practice of filial piety. Indeed, Korean scholarly translators and commentators find no way of interpreting the “anecdote of Zigong” as a dilemma between filial piety and social justice. Perhaps this reflects the reality of China and the reality of Korea. We can see from this that the interpretation and controversy of ‘classics’ sometimes reflects the problem of the reality in which interpreters live rather than the meaning of the classic itself. In that sense, the difference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anecdote of Zigong might be seen as a testament to the difference in social reality between China and Korea. 전통 고전의 해석은 종종 현실의 갈등을 반영하곤 한다.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논어(論語)』의 ‘직’(直)과 관련된 논쟁이다. 최근 중국에서 공자의 ‘직’은 효와 사회정의와 딜레마를 보여주는 논의로 이해되어 온 듯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버지의 도둑질을 숨겨 준 자식을 옹호한 것처럼 보이는 공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직궁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오히려 그럴 여지는 줄어든다. 나는 이 논문에서 『논어』의 ‘직’이 적어도 세 가지 개념을 가지며,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둘째로 ‘직궁 이야기’는 『논어』 이외에도 여러 문헌에 등장하며, 주로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논어』 계열에는 『장자(莊子)』와 『회남자(淮南子)』가 있는데, 주로 ‘직’(直)이 ‘신’(信)의 문제로 논의된다. 다른 하나는 『여씨춘추(呂氏春秋)』와 『한비자(韓非子)』인데, 여기서 우리는 ‘효’와 ‘충’의 딜레마로 볼 수 있는 논의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효와 사회정의의 딜레마로 보는 시각은, 유가적이이기보다 오히려 법가적(法家的) 해석에 기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어』의 ‘직궁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의 감정, 도덕, 법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또한 『논어』의 ‘직궁 이야기’는 효가 의례적 형식과 감정적 요소가 결합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논어』의 직궁 이야기를 효와 정의가 관련되는 논의로 해석한다 해도, 양자가 반드시 상호모순되는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유가적(儒家的) 사회관이나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정의로운 사회는 효가 권장되거나 아니면 효를 실천하기에 더 좋은 사회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학계의 『논어』 번역자와 주석자들은 ‘직궁 이야기’를 효와 사회정의의 딜레마로 해석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은 중국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고전’에 대한 해석과 논쟁이 때때로, 고전 자체의 의미를 반영하기보다 해석자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기도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논어』 직 해석의 차이는 중국과 한국의 사회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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