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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시기 康津 지역의 의병활동과 「金陵倡義錄」

          김만호(Kim, Man-ho) 역사문화학회 2016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19 No.2

          「金陵倡義錄」은 임진왜란 시기에 금릉 즉, 康津 지역에서 창의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자료는 단독 문건이 아니라 개인의 문집에 부가적으로 실려 있는 것으로 창의한 자의 이름과 간략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모두 7종의 「금릉창의록」이 전해지고 있다. 우선 문집에 4종이 실려있는데 金應鼎의 『懈菴文集』, 郭期壽의 『寒碧堂集』, 黃大中의 『兩蹇堂集』, 趙彭年의 『溪陰集』이 그것이다. 또한 『湖南地方壬辰倭亂史料集』 Ⅲ에도 2종이 실려있고, 『花巖祠誌』(1927년 刊)에서도 확인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지만 내용상으로는 문집에 실린 4종이 기본이 되고 있다. 편제를 보면 우선 이름을 적고 아래에 本貫과 字를 割註 형식으로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관직이나 과거합격 내역, 임진왜란과 관련된 활동 내역을 담고 있다. 총 39명의 인물을 싣고 있는데, 강진의 인물은 25명이고 타지역의 인물이 14명이었다. 이렇게 보면 「금릉창의록」은 강진만이 아니라, 강진 지역의 의병활동과 관련된 자들을 함께 적은 기록이라 하겠다. 또한 강진 내에서는 성전, 작천, 병영, 옴천면 출신자들이 주로 입록되어 있었다. 가문별로는 原州 李氏, 海南 尹氏, 淸州 金氏가 다른 가문보다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금릉창의록」을 작성한 시기는 1606년 이후로 보이며, 작성을 주도한 세력은 金應鼎, 金億秋, 趙彭年, 李浚 등으로 보인다. 「금릉창의록」을 통해 강진 지역에서 결성되었던 금릉창의 활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김억추가 檄文을 보냈다든지, 김응정, 이준, 鄭名世, 박대기 등이 병량미와 의병을 모았던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즉, 지금까지 강진 지역의 의병활동은 정유재란 당시를 중심으로 정리되었지만, 「금릉창의록」을 통해 임진년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하겠다. 또한 이 기록은 전쟁을 수습해 가는 과정에서 그러한 사실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려 했던, 강진 지역 내의 재지 사족들의 동향도 함께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사료라 하겠다. The Geumneung Changuirok or “Record of the Immense Righteous Ones of Geumneung,” is a record of major personalities of the Gangjin area in Southwest Korea at the time of the Japanese invasions, the Imjin War of 1592-98. The material is not one single volume. The term Geumneung Changuirok is applied to any of a number of individual compilations of stories. Until now there were known to be seven types of Geumneung Changuirok, but an analysis of the contents shows the various records are from the collections left behind by Kim Eung-jeong(金應鼎), Kwak Gi-su(郭期壽), Hwang Dae-jung(黃大中), and Jo Paeng-nyeon(趙彭年). The standard practice of historians at the time was to write each person's name, the origin of the patriarchal clan, and the adult name as an insert. Below that would be one's official work or past accomplishments and activities during the Imjin War. Thirty-nine names in all are included in the records and twenty-five of them are people of Gangjin, while fourteen are from elsewhere. Seen this way, the Geumneung Changuirok details the actions of Righteous Army figures not only from Gangjin. Also, within Gangjin we know specific townships of origin, like Seongjeon, Jakcheon, Byeongyeong, and Omcheon. Separated by clan, the Lee of Wonju(原州李氏), the Yoon of Haenam(海南尹氏), and the Kim of Cheongju(淸州金氏) are represented more than others. We can also see that the Geumneung Changuirok was written after 1606 by writers like Kim Eung-jeong, Kim Eok-chu(金億秋), Jo Paeng-nyeon, and Lee Jun(李浚). The Geumneung Changuirok's significance, foremost, could be said to be in its inclusion of facts and information not seen in other records, namely, in what movements there were when the Imjin War broke out; the details of the situation, of the creation of the Righteous Army at this moment of national crisis, become clear. As a result, the delivery of notices, the rice provisions for soldiers, and the chief forces of the ad-hoc assembled Righteous Army become easier to grasp. Also, the Geumneung Changuirok gives us a rough idea of the situation for people who came from the same towns as the Gangjin rural elite though this record of how Korea got a handle on the war and formed the Righteous Army.

        • KCI등재

          조선후기 장성(長城) 지역의 남문창의(南門倡義) 기억과 그 의미

          김만호 ( Kim Man-ho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2017 역사학연구 Vol.67 No.-

          이 논문은 조선후기 長城 지역의 南門倡義에 대한 기억과 그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장성은 임진왜란 7년 기간 동안 지역 차원에서 세 차례나 倡義를 한 보기 드문 지역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장성 지역은 전란의 병화를 고스란히 안게 되었고, 결국 인근의 珍原과 통합되어야 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보면 이 지역의 임진왜란 특히 남문창의에 대한 기억은 타지역과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장성 지역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남문창의를 본격적으로 기억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1698년 ?以中의 후손인 ?烋가 『鰲山名人錄』을 작성한 바 있지만 그곳에는 남문창의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1794년 倡義祠를 건립, 1799년 『南門倡義錄』 발간, 1802년 南門倡義碑 건립 등 단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남문창의를 기억하고 현창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 내에서 어떠한 변화의 계기가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본고에서는 그 계기를 1796년 金麟厚의 文廟配享에서 찾았다. 임진왜란 당 시의 남문창의 주도자들은 대부분 김인후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더하여 그의 문묘배향을 正祖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정조는 비슷한 시기에 金德齡과 梁大樸 등 호남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들을 추숭한 바 있고, 1798년 광주에서 功令科를 실시하게 하여 변이중과 김인후의 후손들을 챙겼다. 즉, 장성 남문창의를 주도한 자들의 후손들은 김인후의 문묘배향을 계기로 남문창의를 본격적으로 기억하고 현창했던 것이다. This thesis studied the memory and the meaning of the righteous activities at Nammun of Jangseong region in the Late Joseon Period. Jangseong(長城) is an unusual area where the rightest activities occurred as much as three times during the seven-year Imjin War. However, Jangseong was destroyed by a fire which occurred during a battle after the war. Eventually, Janseong had to be integrated into its neighboring Jinwon(珍原). Considering this fact and looking further into the memory of Imjin War, especially at the righteous activities at Nammun, this thesis hoped to show different aspects that may vary from the other regions. It was only in the late 18th century that the memory of righteous activities at Nammun during the Imjin War was recorded earnestly in Jangseong. In 1698, Byeon-hyu(?烋), who descended from Byeon I-joong(?以中), recorded Osanmyeonginrok(鰲山名人錄) but no record of the activities at Nammun was found there. After that, when Changuisa(倡義祠) was built in 1794, Nammunchangirok(南門倡義錄) was published in 1799 and a monument of the righteous activities at Nammun was erected in 1802. The righteous activities at Nammun was intensively remembered and appeared for a short period of time. It is thought that this would have been possible because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region at the time. A further investigation revealed the reason for those changes were found from Kim In-hoo`s confucian shrine[金麟厚文廟配享]. People who lead the rightest activities at Nammun during the Imjin War were mostly Kim In-hoo`s pupils. In addition, there was much attention to the King Jeongjo, who lead the events to set up the shrine. At around the same time, King Jeongjo(正祖) honored Kim Deok-ryung(金德齡) and Yang Daebak(梁大樸), who were Homan(湖南) army leaders during the Imjin War. He took great care of their descendants by carrying out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功令科] in Gwangju. In other words, descendants of the people who lead the rightest activities at Nammun, started to remember and illuminated the rightest activities at Nammun when Kim In-hoo`s shrine was set up.

        • KCI등재

          회재 박광옥의 의병활동과 추숭

          김만호 ( Kim¸ Man-ho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20 호남문화연구 Vol.0 No.68

          임진왜란 초기 호남의병의 창의를 주도했던 인물은 고경명과 김천일이 대표적이다. 고경명은 광주출신으로 담양에서 거의하였으며 호남 최대 규모인 6,000여명의 의병을 이끌었다. 김천일은 나주출신으로 호남의병 중 가장 빠른 시점에 의병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두 의병장에 대한 생애와 의병활동에 대해서는 기존연구에서 이미 검토된 바 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호남의병 창의를 가능케 했던 박광옥(朴光玉, 1526∼1593)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박광옥은 임진왜란 당시에 이미 고령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1593년이라는 이른 시점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의 활약상이나 관련 기록이 충분치 못한 점은 인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초 호남의병의 성군(成軍) 과정 및 후방에서 끊임없이 지원했던 박광옥의 활동을 살피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박광옥의 의병활동 및 그와 함께 활동했던 주변 인물들을 검토하였다. 또한 박광옥 사후에 진행된 지역 사림들과 후손들의 추숭활동을 살펴 조선후기 호남 지역의 사회 분위기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싸우다가 죽은 유명한 의병장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데에 전력을 다 했던 박광옥을 통해 호남의병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혀졌으면 한다. The key figures who took the lead in raising righteous army in Honam(湖南)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Imjin War were Go Gyeong-myeong(高敬命) and Kim Cheon-il(金千鎰). Go, hailing from Gwangju, raised righteous army in Damyang and led the region's largest 6,000-strong army. Kim, who came from Naju, raised righteous army, the earliest such instance in the region. The two leaders' lives and their role in the righteous army have been discussed in previous studies. However, little is known about Park Gwang-ok(朴光玉 1526-1593) who, along with Go and Kim, made it possible to raise righteous army in Honam. Of course, Park could not participate in the actual action as he was too old when the Japanese invasion occurred. As he died in the early years of the war, in 1593, historical records of his leadership remain meager. Nonetheless, it should be significant to scrutinize the formation of the righteous army in the early days of the war and Park Gwang-ok's endless support on the home front. Thus, this paper has reviewed Park's righteous army activities and those of the people who worked with him. The study further aims to help understand the social ambience in Honam in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by researching the worship of Park by the region's Confucian scholars and his descendants after his death. In addition to our understanding of famous righteous army leaders who fought to their death, revisiting the life of Park Gwang-ok who went all out to support them should deepen our understanding of the righteous army that rose in Honam.

        • KCI등재

          사회복지관 평가의 BSC성과측정모델 도입에 관한 탐색적 연구

          김만호(Kim, Man-Ho), 박순미(Park, Soon-Mi), 송영달(Song, Young-Dal)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2012 한국사회복지행정학 Vol.14 No.4

          본 연구는 현행 사회복지관 평가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BSC모델을 적용하기 위한 탐색적 연구이다. Niven(2003)의 공공 및 비영리부문의 적용을 위한 BSC 적용모형을 바탕으로 조직의 미션과 BSC관점별로 사회복지관 평가지표를 재분류하였다. 분석결과 사회복지관 평가지표를 BSC적 관점에 따라 재분류하면 내부프로세스 관점의 평가지표 수가 40개로 가장 많았고, 그 지표가 전체 지표에서 차지하는 점수 비중은 50.6%의 비율로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비하여 미션 관련 지표는 1개, 고객 관점지표 16개, 재무관점지표 5개, 학습과 성장관점지표 9개, 지역사회 자원관점지표 8개 등을 분석되었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평가지표의 불균형과 복잡성, 미션과 비전에 관한 지표 부재, 고객 관점 평가의 미흡 등의 한계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본 연구가 가지는 함의는 기존의 사회복지관 평가체계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새로운 접근모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평가의 궁극적인 목적을 조직의 특성에 따라 미션과 비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점과 전략을 수립하여 산출뿐만 아니라 성과를 측정하는 것으로 제시할 수 있다. This study extends the Balanced Scorecard (BSC; Niven, 2003) to the domain of evaluation in social welfare centers. We used Niven"s (2003) BSC framework for non-profit organizations through redesigning indicators in performance evaluations of social welfare centers according to organizational mission and perspectives on BSC. As results, forty out of seventy nine BSC indicators were re-categorized as internal process indictors: whereas one indicator as organizational mission related; 16 indicators as customer perspective; 5 indicators as financial perspective; 9 indicators as learning and growth; and 8 indicators as community resource perspective. Results also showed limitations of current evaluation indicators as follows: imbalance and complexity in measurement; absence of indicators on organizational mission and vision; and lack of customer perspective on evaluation. Based on the study results, the implications of improvement for the community social welfare center performance evaluation system were discussed.

        • KCI등재

          녹색주의 사회복지에 관한 탐색적 연구

          김만호(Kim, Man Ho), 최영신(Choi, Young Shin)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2012 한국사회복지행정학 Vol.14 No.1

          본 연구는 녹색주의 사회복지의 탐색을 위해 먼저 복지국가에 대한 녹색주의적 비판에 대하여 살펴보고 녹색주의에 대한 이론적 고찰로서 녹색주의 의미, 녹색주의의 등장배경에 대하여 검토한 후 새로운 사회복지의 관점으로서 녹색주의 사회복지의 모형에 대해 탐색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틀로는 ‘복지국가의 한계'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발전과 복지국가를 설명하고 있는 관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한계로써 지적되고 있는 “제도의존”, “공동체의 기능 상실”, “불평등의 재생산”, “생태계의 오염”의 4가지 관점을 이용하고자 하였으며, ‘녹색주의 관점'에 대해서는 녹색주의의 가치인 “순환성”, “총체성”, “다양성”, “자립성”의 4가지 관점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에 의하면 녹색주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상황을 생태와 인간복지의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자연을 인간과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고자 시도한다. 따라서 녹색주의에 기반한 녹색주의 사회복지는 자원소비적인 사회복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 비공식적인 이웃관계의 회복, 다양한 생물들의 상호의존적 공생관계, 다양성을 존중하는 평등주의적 공동체를 강조하며,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통하여 자립적인 지역사회와 공동체 건설을 추구하고 있다. The study was to explore of the greening of social welfare as view of the new social welfare, First, reviewing the greening critique of Welfare State. followed as theoretical investigation on the greenism, look for the meaning of greenism, the emergence of the greenism background.<br/> Analytical framework of this study, a 'traditional limits of social welfare point' for the welfare of a capitalist society, which describes the development and the welfare state in terms that commonly appear as limitations are pointed out in the 'system dependent', 'Features of the community loss', 'reproduction of inequality', 'pollution of the ecosystem', was to use the four perspectives of the 'greenism perspective' for the values of the greenism, 'circularity', 'chongcheseong', 'diversity', 'independence' was to use the four perspectives.<br/> According to the results of this study, greenism, threatening the survival of the human and ecological crisis: the crisis of human welfare, defined as the natural integrity of human beings and do not separate attempts to recognize and respond. Therefore, the resource consumption for greenism-based social welfare rather than social welfare of sustainable development, the restoration of the unofficial neighborhood relations, and various creatures of the interdependent symbiotic relationship, respect diversity, emphasizing egalitarian community, the principal way of life self-reliant communities through the construction of the community and has been pursu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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