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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조선후기 전란 제재 소설에 그려진 북부지방의 표상

        권혁래 ( Kwon Hyeok-rae ) 한국고전문학회 2017 古典文學硏究 Vol.52 No.-

        이 논문에서 필자는 전란을 제재로 한 조선후기 소설 <임진록>, <임경업전>, <박씨전>, <김영철전>, <신미록>에 그려진 한반도 북부지방의 주요 장소를 파악하고, 장소의 경관과 인물의 활동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표상화 양상을 고찰하였다. 위 작품들에서는 평양, 의주, 황주, 정주성, 영유현, 자모산성 등이 주요 장소로 부각되었다. 인물들의 이동경로에서는 의주대로로 불리는 ‘한양-개성-평양-의주’ 구간 거점 도시들의 이름과 경관이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다. 필자는 소설 작품에 그려진 주요 장소와 인물의 이동경로를 다섯 장의 문학지도에 표현하였다. 개별 작품별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임진왜란의 초기 전투를 제재로 한 <임진록> 앞부분에는 무기력하게 후퇴를 거듭하는 선조의 어가 행렬과, 유성룡과 무신들이 함경·평안도의 지역민들을 모아 왜군에게 반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주요 장소로는 ‘선조의 피난 노정’과 함께 벽제, 송도, 금천, 황주, 평양, 박천, 선천, 의주에 이르는 군사적 거점 도시들의 경관이 비중 있게 그려졌으며, 평양성 전투의 승리와 함께 ‘평양성’이 주요 장소로 부각되었다. 연관 장소로는 한양, 안주, 순안, 금강산 유점사, 회령, 함흥, 황해도 동선령, 중국의 봉황성 등이 그려졌다. 임란 초기의 절대적 약세를 이기고 왜적을 패퇴시킨 무신과 지역민, 의병, 승병의 활약을 통하여 북부지방은 ‘국가수호 최후의 보루’로 표상화되었다. 둘째, 후금 및 청나라와의 전쟁을 주요 제재로 한 <김영철전>, <임경업전>, <박씨전>, <최척전>에서 북부지방은 평양과 의주가 주요 장소로 부각되며, 영유현, 창성, 석다산, 자모산성, 안주, 삭주 등의 지명이 등장하였다. <임경업전>에서 의주는 ‘호국의 도시’로 표상화되고, 임진강, 청석령, 동선령, 황주, 평양에 이르는 길과 명승지들은 볼모로 끌려가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눈을 통해 처연한 경관으로 묘사되었다. <김영철전>의 영유현과 자모산성은 ‘적막하고 고단한 삶의 터전’으로, <최척전>의 삭주와 <박씨전>의 평양은 ‘학정과 수탈의 도시’로 표상화되었다. 셋째, <신미록>에는 정주성 전투 장면을 중심으로 모반하는 서북인, 이에 맞서는 순무중군 및 의주 의병장이 표상화되었다. 주요 장소는 정주성이고, 홍경래 군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으로 가산, 곽산, 태천, 철산, 선천, 용천, 함종 등이 그려졌다. 작가는 홍경래군의 불칙함과 저돌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정주를 비롯한 서북 지역을 ‘반역의 성읍’으로, 김견신, 허항과 같은 의병장들의 발언과 활약을 부각시킴으로써 의주를 다시 한 번 ‘호국의 도시’로 표상화하였다. <임진록>에서 ‘국가수호 최후의 보루’로 표상화되었던 관서 지방이 1861년 <신미록>에서 ‘반역의 성읍’으로 변모되었다는 것은 문학지리학적 면에서 의미심장한 발견이다. In this paper, I examine the aspect of representation of north Korean region drawn in the novels of the late Joseon Dynasty; Imjin rok, Lim Kyung-eop jeon, Pak-ssi jeon, Kim Young-chul jeon, Sinmi rok. The places drawn in the Kyeongpan-bon of Imjin rok, are Pyongyang, Anju, Sun-an, Mt. Kumgang, Hoiryeong, and Hamheung. The writer portrayed the region as a “longevity of loyalty” through the appearance of the northern area people fighting against the Japanese army. In Lim Kyung-eop jeon, Pak-ssi jeon, Kim Young-chul jeon, the hard-line view of north Korean region people who were invaded by Qing military forces was drawn. The main places were Pyongyang city, Euju city, Yeong-yu city, Jamosanseong hill fort. In Sinmi rok, scenes of Jeongju castle’s battle, rebellion of people in the north, and soldiers of Euju city were drawn. The main place of Sinmi rok is Jeongju castle, and related places are Kwaksan city, Taecheon city, Cheolsan city etc. The writer of Shinmi rok shaped this area as a “rebellious area”. As a whole, the major places on the novels of the late Joseon Dynasty are Pyeongyang city, Euju city, Hwangju city, Jeongju city, Yeong-yu city etc. 'Euju-daero(Euju Big Road) repeatedly appeared in various works.

      • KCI등재

        洪景來亂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 - 「辛未錄」의 형성맥락에 대하여 -

        이지영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7 어문연구(語文硏究) Vol.45 No.3

        Sinmilok is a narrative about Honggyungrae rebellion which rose in 19th Pyongan province. There are Two version of text. One is the woodblock printed in 1861 and the other is a manuscript which is housed in Changseogak palace Library. The manuscript has older vocabularys and spellings, and less mistakes in comparison with the woodblock printing. So I supposed the original text had written before the woodblock text, and the fact that the both version used ‘your majesty’ instead Sunjo tells Sinmilok had been written before the year 1832. The advanced research said that Sinmilok was affected by Jingjungilgi, but there are many difference between them, above all the difference of viewpoint. The similarity between them arose from the characteristic of Jingjungilgi which took extensive record on Honggyungrae rebellion. So I think Sinmilok is not a novel but a kind of record that had been produced by memory on Honggyungrae rebellion, of those days and some people. 「辛未錄」은 坊刻本과 藏書閣 소장의 筆寫本 두 종의 異本이 전하는데, 필사본이 방각본보다 표기나 어휘가 古形이며 오류가 적다. 이로 보아 필사본이 原本에 더 가깝다고 추정된다. 두 이본 모두 序頭에 ‘純祖’를 ‘我朝 聖上’이라고 한 것을 주목하면 原本은 1834년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刊記나 한 면당 글자수 변화 등의 특징으로 보아, 1861년 간행본은 선행하는 刊本의 후반부를 새로 板刻하여 再刊行한 것으로 추정된다. 「辛未錄」은 『陣中日記』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義兵보다는 京軍을 더 비중 있게 다루고 朴基豊을 긍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는 『陣中日記』와 거리가 있다. 홍경래란에 대한 한 쪽의 시각에 의해서 재구성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으며, ‘殉節한 官吏’의 유형에 맞게 허구화 된 가산군수의 죽음으로도 알 수 있듯 「辛未錄」은 허구적인 ‘소설’이 아닌 홍경래란에 대한 또 하나의 記憶/記錄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 KCI등재

        홍경래란의 기억과 문학적 형상화

        송하준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서강인문논총 Vol.0 No.50

        The Hong Kyong-nae Rebellion was a shocking event that denied the overall social system in the 19th century Cheosun. Every comment about it written in the literature until the end of 19th century was negative and no goodwill find there at all. Defending or even justifying Hong Kyong-nae was equal to confession of a rebellion. Any person who showed incorrect reaction at its initial stage or suspicious behaviors were attached by the society. They had to explain the reason of their every trivial reactions word by word. In here, we reviewed the texts written by Im sung-go, Baek Gyeong-hae, Yu Hyo-won, Lee Geun-joo, etc. Their writings showed how much they strived for saving their family and their own lives. The literary works such as Sinmirok also described and showed the results and impacts made by their fights. In addition, it confirms that many took the moral high ground over the deceased in order to maintain their social positions and influences. “Sinmirok” was published for the public and even the women in the deep palace could read. This book drew basic frame to understand the rebellion. However, it failed to free from the mainstream discourse as it was based on the government records. New perspective was rising as 20th century begins. “Hongkyongnaesilgy” and “Hongkyongnaejeon” gave a new assessment on the person by using new concepts including human rights, equality, people and revolution. The domination idea from the past could not explain the reality no more and the new era needed to call the past event and assign a new meaning on it. 홍경래란은 19세기 조선의 사회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한 사건이었다. 19세기 말까지의 문헌에서 홍경래를 언급한 말은 모두 부정적인 뜻이었다. 그에 대한 온정적인 태도는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다. 당시에 홍경래를 변호한다는 건 스스로를 불온한 무리라고 자인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홍경래란 때 대응을 잘못했거나 행적이 의심스러웠던 인사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소명해야 했다. 이 논문에서는 임성고(任聖皐)・백경해(白慶楷)・유효원(柳孝源)・이근주(李近冑)와 관련된 자료를 검토했다. 그들이 남긴 글에는 개인의 생존과 가문의 존립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신미록』・『정주가』 같은 문학 작품에 형상화된 양상을 통해 그런 노력이 어떤 효과를 거뒀는지도 살폈다. 아울러 죽은 자들의 후광을 빌어 산 자들의 도덕적 우위를 확인함으로써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 경우도 확인했다. 『신미록』은 방각본으로 간행돼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궁중의 여인들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홍경래란을 이해하는 기본틀을 제시한 셈이다. 『신미록』은 관변(官邊)의 기록에 바탕을 둔 작품인 만큼 주류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홍경래란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홍경래실기』・『홍경래전』은 ‘인권’・‘평등’・‘민중’・‘혁명’ 등 새로운 관점을 동원해 홍경래를 재평가했다. 새로 맞이한 환경을 설명할 수 있는 역사적 기억을 불러내야 했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했던 것이다.

      • KCI등재

        남산도서관 소장 고소설의 서지적 연구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2013 열상고전연구 Vol.37 No.-

        이 글은 서울의 남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소설 17종을 대상으로, 서지(書誌), 각 책의 계통과 특징을 검토한 것이다. 서울의 남산도서관에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한문 방각본 소설 『구운몽』1종, 한글 필사본 『구운몽』1종(3책), 경판 방각본 『구운몽』, 『당태종전』, 『조웅전』, 『백학선전』, 『삼국지』(2종), 『신미록』, 『심청전』, 『양산백전』, 『양풍전』, 『임장군전』, 『장한절효기』, 『정수경전』, 『제마무전』14종, 등사본(謄寫本) 『열여춘향수절가』1종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들은 모두 이화여대에서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던 강윤호 교수가 기증한 것으로, 검토한 결과 대부분 학계에 알려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경판 방각본의 경우 대부분 한남서림(翰南書林) 판권지가 모두 붙어져 있었고, 경판 방각본 『삼국지』는 원래 있었던 간기(刊記)의 일부를 지운 채 유통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1910년대 한남서림에서 인수했던 경판 방각본 소설의 종류, 『삼국지』의 유통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이러한 서울 남산도서관 자료의 실상과 특성을 알리는데 주안을 두었다. This article targets Seventeen types of Gososol in the Seoul Namsan Public Library to examine the bibliography, system, and characteristics of each. Among the Seventeen types, Hanmun banggakbon Guunmong, Philsabon Guunmong, Hangul banggakbon gyeongpanbon Guunmong, Dangtaejongjeon, Choungjeon, Bakhaksunjeon, Samgukji, Shinmirok, Simchungjeon, Yangsanbaekjeon, Yangpungjeon, Limjanggunjeon, Janghanjeolhyogi, Jungsukyungjeon, Jaemamujeon, Chunhyangjeon have been already found in Korea, too. As of this article was a Gososol argument in the 1910s through the Hannamseolim could determine the type and distribution aspects. This article will focus on promoting the reality of these materials.

      • 신미민란의 문학적 형상화 연구 : 정주가를 중심으로

        정영문 崇實語文學會 2003 崇實語文 Vol.19 No.-

        억눌린 삶을 살았던 백성들에 의해 민란은 발생했다. 그들의 봉기는 억눌린 자신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사회 전체, 심지어는 후대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민란 중에서 대표적 사건이라 할만한 신미민란은 평안도를 중심으로 일어나 전국토에 영향을 주었다. 혁명적이라 할만한 커다란 사건이었기에 발생 당대뿐만이 아니라 후대에 걸쳐 다양한 시각에서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들 문학작품들을 통하여 당시와 후대의 사람들이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급격한 혼란 속에서 사회를 이끌어 나갈 지식인들이 그 사건을 맞이하여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도 읽어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가사문학으로 형상화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신미민란의 의미와 변이양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현장에서 기록한 가사 〈정주승전곡〉과 10여 년이라는 시공간적 차이를 두고 기록된 〈정주가〉에서 신미민란을 인식하는 양상이 얼마나 다르게 인식되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사건은 후대로 올수록 산문화되고 소설화되어 갔다. 그로 인해 사건 위주의 기록이 인물중심으로 변이 되었고,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적 차이도 근대의식의 유입에 따라 이전의 가사문학과는 달라졌다. 일정한 한계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민란의 의미가 근대의식의 유입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이되어 간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지식인들의 유형들도 그 의미가 역전되는 현상을 보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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